올해는 확실히 솔로 여가수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세로 자리매김한 아이유를 필두로 주(JOO), 나비, 베이지 등에 이어 최근 애프터스쿨 리더 가희와 베이비복스 리드보컬 출신 간미연도 각각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솔로가수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비주얼과 음악성을 두루 갖춘 지나(G.NA)의 활약은 단연 눈부시다.
최근 지나는 새 미니앨범 타이틀곡 ‘블랙 앤 화이트’가 꾸준한 사랑 속에 뒷심을 발휘, 음원차트 1위에 오르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여기에 17일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는 처음으로 1위에 등극하며 솔로 여가수의 저력을 발휘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 센트럴 시티를 시작으로 12일 대전, 13일 부산에서 잇달아 열린 첫 전국투어 팬 사인회에서도 밀려드는 팬들로 그녀의 핫한 인기를 입증했다.
특히 지나는 이번 앨범활동을 통해 우월한 몸매로 더욱 시선을 사로잡았다. 새 앨범 활동 전 3.5kg을 감량했다는 지나는 특히 체지방이 많이 빠졌다면서 그 전 ‘꺼져줄게 잘 살아’와 ‘수퍼솔로’로 활동했을 때보다 더욱 탄탄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갖췄다.
지나는 “예전에 활동했을 때는 몸매만 부각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감추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음악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전에 몸매에만 시선이 몰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고 하하.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당당해 지고자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9등신 마네킹 몸매에 이기적인 기럭지, 작은 얼굴, D컵의 가슴 사이즈 등은 사실 지나에게는 본의아닌 콤플렉스였다.
“마네킹 몸매란 수식어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 칭찬은 당연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타고났다기 보다 오히려 그런 수식어에 맞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려 하고 맞춰가게 되는 것 같다. 발육 상태가 조금 남달랐던 것은 가족의 영향이 크다. 어머니, 여동생, 할머니까지 나와 체형이 비슷하다. 하지만 큰 가슴은 고충도 많다.”
지나의 말처럼 그녀의 우월한 신체 조건은 부모로부터 나왔다. 지나의 어머니 윤태선씨는 캐나다에서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지나의 어머니는 록커 유현상의 아내이자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와 절친 사이로 지나는 캐나다에 있을 때 평소 최윤희를 이모라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지나의 아버지 최선수씨는 해병대를 나와 태권도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지나의 여동생 또한 현재 캐나다에서 운동 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지나도 가수 데뷔전 배구와 치어리딩을 통해 타고난 몸매를 더욱 좋게 유지할 수 있었다.
단 운동을 좋아했던 가족들에 비해 지나는 음악을 더 가까이 했고 몰래 가수의 꿈을 키웠다.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떨어져 조부모와 살게 된 지나는 가수를 딴따라라 생각하는 조부모에게 꿈을 꽁꽁 숨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나는 결국 2005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하고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무작정 한국을 찾았다. 당시 지나는 ‘배틀신화’ 오디션에 합격해 가수가 될 기회를 잡았다. 비슷한 시기에 2PM 닉쿤과 2PM 전 멤버 박재범도 JYP에 픽업됐다. 지나는 “공개 오디션에 보러간 우리한데 똑같이 캐스팅 명함이 주어졌고 한국에 간 시기도 비슷했다. 또 각자 기획사에 픽업되고 하는 과정이 지금 생각하면 뭔가 하느님의 뜻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지나는 2007년 케이블 채널 MTV '다이어리 오브 오소녀'를 통해 데뷔를 준비했으나 무산됐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아픔을 겪었다. 오소녀 출신으로 유빈과 유이, 전효성은 각각 원더걸스, 애프터스쿨, 시크릿으로 먼저 데뷔했고 지나는 고스란히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지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또 찾아왔다. 비스트와 포미닛이 소속된 큐브의 홍승성 대표가 지나의 재능을 알아채고 자신의 소속사로 데려온 것. 물론 큐브에 들어와서도 가수 데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는 꿈을 향해 쫓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을 겪는 동안 또래에 비해 더욱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한 번에 된 게 한 개도 없었다. 쉽게 되는 것은 없다. 쉽게 되는 건 쉽게 또 사라진다. 남들이 한 번 겪을 것을 세 번 네 번 겪으니까 이제 힘든 일들이 힘들다는 생각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데뷔가 늦어졌다고 해도 마음 속에 뭔가 어른이 되고 훨씬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주목받는 아이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지나는 늘 학교 행사에 열성적으로 참가했고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아주 많았다. 앞장서서 하는 것을 좋아했고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인생의 어둠과 외로움, 소외감 등을 느꼈다. 지나는 돌이켜보면 그 때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나는 왜 빨리 못할까'하는 답답함이 오히려 더 큰 사람이 됐다는 자신감과 뿌듯함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인내하고 잡은 가수, 그리고 데뷔, 이후의 활동들에 지나가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다.
지나는 으레 비주얼이 좋은 가수들이 겪는 가창력 논란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데뷔는 늦었지만 그만큼 가창실력을 높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번 앨범 수록곡들은 누가 노래를 시키면 바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노래 연습을 많이 했다며 라이브 무대에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안무에 있어서는 뛰어난 춤솜씨를 잠시 숨기고 지나의 색다른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귀여운 안무들을 새롭게 선보였다. 혹시나 거부감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지나는 되려 차갑고 도도하게만 보던 이미지가 친숙해져 이제 여자팬들도 많아졌다며 반색했다. 실제로 본 지나는 훨씬 발랄하고 싹싹하고 서글서글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지나의 목표는 1등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지나라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 내 목표는 1등이 아닌 나를 알리는 것이다. 선배가수 윤미래나 박정현, 팝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처럼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가수가 됐음 좋겠다. 지나라는 브랜드의 네임밸류(Name Value)가 있는, 지나 음악하면 주저없이 들어볼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나 “G.NA라는 브랜드의 네임밸류를 높여라”
[뉴스엔 2011-02-18]
올해는 확실히 솔로 여가수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세로 자리매김한 아이유를 필두로 주(JOO), 나비, 베이지 등에 이어 최근 애프터스쿨 리더 가희와 베이비복스 리드보컬 출신 간미연도 각각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솔로가수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비주얼과 음악성을 두루 갖춘 지나(G.NA)의 활약은 단연 눈부시다.
최근 지나는 새 미니앨범 타이틀곡 ‘블랙 앤 화이트’가 꾸준한 사랑 속에 뒷심을 발휘, 음원차트 1위에 오르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여기에 17일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는 처음으로 1위에 등극하며 솔로 여가수의 저력을 발휘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 센트럴 시티를 시작으로 12일 대전, 13일 부산에서 잇달아 열린 첫 전국투어 팬 사인회에서도 밀려드는 팬들로 그녀의 핫한 인기를 입증했다.
특히 지나는 이번 앨범활동을 통해 우월한 몸매로 더욱 시선을 사로잡았다. 새 앨범 활동 전 3.5kg을 감량했다는 지나는 특히 체지방이 많이 빠졌다면서 그 전 ‘꺼져줄게 잘 살아’와 ‘수퍼솔로’로 활동했을 때보다 더욱 탄탄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갖췄다.
지나는 “예전에 활동했을 때는 몸매만 부각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감추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음악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전에 몸매에만 시선이 몰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고 하하.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당당해 지고자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9등신 마네킹 몸매에 이기적인 기럭지, 작은 얼굴, D컵의 가슴 사이즈 등은 사실 지나에게는 본의아닌 콤플렉스였다.
“마네킹 몸매란 수식어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 칭찬은 당연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타고났다기 보다 오히려 그런 수식어에 맞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려 하고 맞춰가게 되는 것 같다. 발육 상태가 조금 남달랐던 것은 가족의 영향이 크다. 어머니, 여동생, 할머니까지 나와 체형이 비슷하다. 하지만 큰 가슴은 고충도 많다.”
지나의 말처럼 그녀의 우월한 신체 조건은 부모로부터 나왔다. 지나의 어머니 윤태선씨는 캐나다에서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지나의 어머니는 록커 유현상의 아내이자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와 절친 사이로 지나는 캐나다에 있을 때 평소 최윤희를 이모라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지나의 아버지 최선수씨는 해병대를 나와 태권도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지나의 여동생 또한 현재 캐나다에서 운동 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지나도 가수 데뷔전 배구와 치어리딩을 통해 타고난 몸매를 더욱 좋게 유지할 수 있었다.
단 운동을 좋아했던 가족들에 비해 지나는 음악을 더 가까이 했고 몰래 가수의 꿈을 키웠다.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떨어져 조부모와 살게 된 지나는 가수를 딴따라라 생각하는 조부모에게 꿈을 꽁꽁 숨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나는 결국 2005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하고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무작정 한국을 찾았다. 당시 지나는 ‘배틀신화’ 오디션에 합격해 가수가 될 기회를 잡았다. 비슷한 시기에 2PM 닉쿤과 2PM 전 멤버 박재범도 JYP에 픽업됐다. 지나는 “공개 오디션에 보러간 우리한데 똑같이 캐스팅 명함이 주어졌고 한국에 간 시기도 비슷했다. 또 각자 기획사에 픽업되고 하는 과정이 지금 생각하면 뭔가 하느님의 뜻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지나는 2007년 케이블 채널 MTV '다이어리 오브 오소녀'를 통해 데뷔를 준비했으나 무산됐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아픔을 겪었다. 오소녀 출신으로 유빈과 유이, 전효성은 각각 원더걸스, 애프터스쿨, 시크릿으로 먼저 데뷔했고 지나는 고스란히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지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또 찾아왔다. 비스트와 포미닛이 소속된 큐브의 홍승성 대표가 지나의 재능을 알아채고 자신의 소속사로 데려온 것. 물론 큐브에 들어와서도 가수 데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는 꿈을 향해 쫓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을 겪는 동안 또래에 비해 더욱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한 번에 된 게 한 개도 없었다. 쉽게 되는 것은 없다. 쉽게 되는 건 쉽게 또 사라진다. 남들이 한 번 겪을 것을 세 번 네 번 겪으니까 이제 힘든 일들이 힘들다는 생각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데뷔가 늦어졌다고 해도 마음 속에 뭔가 어른이 되고 훨씬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주목받는 아이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지나는 늘 학교 행사에 열성적으로 참가했고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아주 많았다. 앞장서서 하는 것을 좋아했고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인생의 어둠과 외로움, 소외감 등을 느꼈다. 지나는 돌이켜보면 그 때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나는 왜 빨리 못할까'하는 답답함이 오히려 더 큰 사람이 됐다는 자신감과 뿌듯함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인내하고 잡은 가수, 그리고 데뷔, 이후의 활동들에 지나가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다.
지나는 으레 비주얼이 좋은 가수들이 겪는 가창력 논란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데뷔는 늦었지만 그만큼 가창실력을 높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번 앨범 수록곡들은 누가 노래를 시키면 바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노래 연습을 많이 했다며 라이브 무대에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안무에 있어서는 뛰어난 춤솜씨를 잠시 숨기고 지나의 색다른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귀여운 안무들을 새롭게 선보였다. 혹시나 거부감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지나는 되려 차갑고 도도하게만 보던 이미지가 친숙해져 이제 여자팬들도 많아졌다며 반색했다. 실제로 본 지나는 훨씬 발랄하고 싹싹하고 서글서글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지나의 목표는 1등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지나라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 내 목표는 1등이 아닌 나를 알리는 것이다. 선배가수 윤미래나 박정현, 팝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처럼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가수가 됐음 좋겠다. 지나라는 브랜드의 네임밸류(Name Value)가 있는, 지나 음악하면 주저없이 들어볼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나의 예쁜 몸매보다 더 빛나는 것은 지나의 열정이다.
〈뉴스엔 고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