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어떤 남성도 자신이 가사노동만을 하며 살아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남성들은 가사노동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며 남자들은 잘 할 줄도 모르고 또 그건 남자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그들은 가사노동 역시 직장생활만큼 귀찮고 힘겹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가사노동은 어떤 면에서 마치 건설현장 잡부들의 일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멍청한 인간도 할 수 있는 부가가치 낮은 일이다. 핵물리학 박사학위 소지자도 해낼 수 있는 일이지만 동시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도 똑같이 해낼 수 있는 성격의 일이다. 이것들은 너무 쉽고 단순해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 조카 마리아도 대부분 해내는 일들이다. 밥 짓기, 빨래, 설겆이, 청소, 욕실 정리, 요리, 장 보기, 아기 기저귀 교환, 바느질 등등...... 더구나 오늘날, 이들 중 상당 부분은 발달된 기계문명이나 서비스업체가 대신 해주고 있다. 기계문명은 수많은 남성들의 일자리를 뺏아 왔지만 반면에 더 많은 여성들의 삶을 더욱 편하게 만들어 왔다. 여성은 분명 축복받은 성(sex)이다.
주중에, 그것도 밝은 대낮에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남자를 보면 사람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 녀석은 분명 하찮은 직업조차도 없는 백수일 거야. 아니면 자신의 가게를 가진 사장이거나.’
하지만 그게 여자일 경우 사람들은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주부들은 직장에 다니지 않으므로 낮에 길 위에 나오는 게 흔한 일이다. 또 그게 주부들의 모습이니까. 그렇다. 주부는 사장과 같다. 주부는 언제든 뭐든지 할 수 있고 모든 시간을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다. 대낮에 도시 전체를 살펴 보라. 이곳저곳 온통 여자들(주부들)뿐이다. 헬스클럽, 요가 교습소, 수영장, 골프장(여기서 불륜 드라마가 종종 탄생하기도 한다), 백화점, 은행, 병원(약간의 불편한 느낌만 있어도 병원을 찾는다는 사실은 여성들의 긴 평균수명에 크게 기여했다), 카페, 카라오케.....
주부들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이 세상의 남편들을 위해 그것에 대해 잠깐 설명해 주려 한다. 남편이 출근한 직후부터 퇴근할 때까지는 한 마디로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어린 소녀가 남동생에게 ‘부모님이 교회에 가셨어, 자, 파티를 시작하자꾸나!’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남편이 일터로,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로 모조리 사라지고 나면 주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제서야 편안함을 느낀다. 온갖 오락거리와 취미거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발놀림은 바빠진다. 유치원 숙제의 그것과 비슷한 난이도를 가진 하찮은 집안일만 조금 해치워 버리기만 하면 그 외의 시간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으니 어찌 흥겹지 않겠는가? 친구나 자매들과 수시간동안 전화통화를 하거나, 새로 나온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러 가거나, TV홈쇼핑에서 새 소파를 주문할 준비를 하거나....... 안락하고 평화로운, 마치 남태평양이나 북아프리카의 비문명적인(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사회에서나 가능한 삶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바로 주부들이다.
현대사회가 만들어준 인간의 생태가 주부들에게 선사한 커다란 혜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낮잠’이다. 그리고 대도시의 직장인들이 정말 갈망하는 게 하나 있다면 매일 1시간의 낮잠이다. 낮잠을 자는 직장인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CEO 또는 최소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중역 정도 되지 않으면 (스페인 같은 시에스타 문화권이 아니라면) 잠깐의 낮잠이라도 잘 시간을 얻는 건 완전히 불가능하다. 고용주들은 그런 걸 허용하느니 차라리 사내 구조조정을 시도할 테니까. 하지만 주부들은 거의 매일 낮잠을 자며 방바닥에 수건질을 하거나 TV연속극을 보다가도 피곤함을 느끼면 그대로 쓰러져 잠을 청한다. 현대적인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의 성장과 휴식을 위해 낮잠시간을 제공하는데, 이 예외적인 교육시설을 제외하면 그 어떤 공립, 사립 학교에서도 낮잠을 허용하진 않는다.
주부들은 정말 행복한 이들이다. 모든 소녀들은 주부의 삶에 대해 배우고 자란다. 경쟁과 분투,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는 자신들과 무관한 것이며 그런 것들은 남자들의 세계에 속해 있다고 셍각하며 나몰라라 한다. 그녀들 중 대부분은 직장이란 곳을 결국 경험하긴 하겠지만 그것 역시 한 때의 일임을 그녀들은 알고 있다. 그녀들에게 인생 최대의 비즈니스는 결혼이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녀들은 그것에 대해 열심히 교육받는다(어느 문화권에서든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훨씬 더 자주, 많이 얘기나눈다).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완전히 갈리기 때문이다. 팔자 늘어진 유한마담이 될 수도,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긴 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중년여성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온갖 치밀한 전략과 시도, 계산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를 물색하고 선택한다. 그에게 대단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가 꽤 쓸 만한 노동기계이기만 하다면 답은 보통 OK다. 그리고 그 다음엔 긴장을 푼 채 앞치마를 걸치고 안주하는 것뿐이다.
그녀들이 집에서 하는 일은 정말 하찮은 것들이고 심지어 정신지체인들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저학력조차 없는 사람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남편에게는 좀 더 많은 돈을 벌어오길 요구한다. 이혼할 때는 자신도 그 가계의 자산 형성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를 주장하며 총 재산의 절반이나 그 이상을 요구한다. 주부들은 엄청난 퇴직금 또한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난 수습변호사였을 때 주당 최소한 90시간 넘게 일했다. 점심식사도 급히 끝냈고 커피 마실 여유조차 없었다.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줄곧 프로미식축구의 열성팬이었는데 그 해에 단 한 경기도 시청하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주부 역할과 변호사 역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한다 해도 난 핍박받거나 이혼당하지 않고 거기다 우리 가정이 얻는 자산의 절반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난 단연코 주부 역할을 택할 것이다. 백 번 물어도 똑같이 대답하겠다. 이 세상에서 어떤 정신 나간 해병이 PX 보직을 거절하고 특수수색대를 지원하겠는가?
이 세상의 남성들은 단 한 번도 의구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 왜 자신의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집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고 자신은,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집 밖에서 위험과 스트레스와 건강침해를 감수하면서 가족 전체의 생계를 부담할 돈을 얻어오는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 쪽은 사슴고기를 구해 오는 역할을, 한 쪽은 사슴고기를 굽는 역할을 하는데(둘 중 어느 역할이 훨씬 손쉬운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런 분업은 태어났을 때 이미 운명지어진 것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누구도 이 불공평한 남녀의 역할 분담과 잘못된 사회시스템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오히려 그 반대다. 어리석은 어른 남성들과 그런 남성이 될 운명을 가진 어리석은 소년들은 주부라는 건 희생양이고 봉사자이고 순교자이고 가엾은 하녀이며 그런 면에서 아내들과 어머니들은 동정받는 동시에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과 성공을 위해 내 아내는 주부(남성들은 이 극도로 고생스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이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거라고 굳게 믿는다)라는 비천한 역할을 감수해 왔으며 따라서 난 생의 나머지동안 내가 그녀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 뭔가 커다란 보답을 해야 한다.'........이렇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남성들은 스스로를 열심히 교육시켜 왔다. 한 마디로 남성들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고 더구나 여성들도 자신에게 이득되는 그런 상황을 굳이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앞서 언급한 힘겹고 고생스런 역할은 변호사 남편과 주부 아내, 과연 누구 쪽일까?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난 직장생활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내 아버지가 은행가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분명히 그걸 너무도 좋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소년이 매일 자전거가게 주위를 얼씬대듯이 내 아버지도 그런 이유에서 은행에 들어갔고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들을 (가끔은 주말까지) 그곳에서 보낸다고 생각했다. 난 아버지가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모습만 보았지 그가 일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으므로 그가 직장에서 어려움이나 고통을 겪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또 아버지는 유순한 성격이었고 항상 내 앞에선 웃는 얼굴만을 보였으므로. 잘은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보건대 은행은 분명 엄청나게 신나는 곳일 테지!
반면에 내 어머니는 매우 험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신문 배달부와 실랑이를 하기도 했고 전화기를 잡고 친언니나 친구와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보험 외판원에게 욕지거리를 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느라 애쓰기도 했다. 설겆이, 새우 튀기기, 빨래, 청소 등등 내가 하기 싫어하는 모든 귀찮은 일들이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소파에 길게 누워 오랫동안 잘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주부란 얼마나 피곤하고 고단한 역할이며 내겐 그런 걸 경험할 운명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난 얼마나 행운아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나도 언젠가 턱수염이 자랄 나이가 되면 말쑥한 양복을 입고 매일 아침 어디론가 출근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무척 즐겁고 흥미로운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앞치마를 걸친 채 접시를 닦거나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거닐게 될 내 누이의 모습에 대해서는 한심함을 느꼈다.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삶인가! 나라면 견딜 수 없을 텐데! 그런 점 때문에 난 내 누이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동정했고 신의 불공평함을 저주했다. 나 역시도 커다란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노동하는 건 아버지 쪽이었고 그것에 비하면 어머니는 마치 몇몇 소일거리 외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공주처럼 살았다. 내가 더 높이 사야 할 것은 하루종일 집을 지키며 어린 날 애완동물처럼 길들여온 어머니의 노고인가? 아니면 매일 오두막을 뛰쳐나가 칼과 창으로 사냥감을 포획해 온 아버지의 노고인가? 어느 쪽인가? 하지만 소년들은 어린 시절의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건 벽에 걸려 있는 달력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어머니의 날’을 정해 두고 그 날은 어머니에게 선물이나 꽃을 전달한다. 그 날은 ‘나를 양육해주신 훌륭한 어머니에게 사랑을 표현하자’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날이다. 하지만 이 날은 ‘아버지 없이 자란 사람들이 어머니를 예찬하는 날’이 아니다. ‘아버지는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어머니만 칭송하는 날’이다. 황당하지 않은가? ‘아버지의 날’은 대체 어디 있는가? 어머니만 훌륭한가? 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즐겼을 뿐이고 어머니만 가족을 위해 힘든 모든 일들을 해온 것인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난 다시 태어난다면 변호사 따윈 되고 싶진 않다. 차라리 여성으로 태어나 주부의 삶을 살고 싶다. 기득권만 잔뜩 가진 평온하고 안락한 주부의 삶을.
(펌) <힘든 가사노동>이란 엄살은 그만두라.
(펌) <힘든 가사노동>이란 엄살은 그만두라.
이 세상의 어떤 남성도 자신이 가사노동만을 하며 살아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남성들은 가사노동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며 남자들은 잘 할 줄도 모르고 또 그건 남자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그들은 가사노동 역시 직장생활만큼 귀찮고 힘겹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가사노동은 어떤 면에서 마치 건설현장 잡부들의 일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멍청한 인간도 할 수 있는 부가가치 낮은 일이다. 핵물리학 박사학위 소지자도 해낼 수 있는 일이지만 동시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도 똑같이 해낼 수 있는 성격의 일이다. 이것들은 너무 쉽고 단순해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 조카 마리아도 대부분 해내는 일들이다. 밥 짓기, 빨래, 설겆이, 청소, 욕실 정리, 요리, 장 보기, 아기 기저귀 교환, 바느질 등등...... 더구나 오늘날, 이들 중 상당 부분은 발달된 기계문명이나 서비스업체가 대신 해주고 있다. 기계문명은 수많은 남성들의 일자리를 뺏아 왔지만 반면에 더 많은 여성들의 삶을 더욱 편하게 만들어 왔다. 여성은 분명 축복받은 성(sex)이다.
주중에, 그것도 밝은 대낮에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남자를 보면 사람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 녀석은 분명 하찮은 직업조차도 없는 백수일 거야. 아니면 자신의 가게를 가진 사장이거나.’
하지만 그게 여자일 경우 사람들은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주부들은 직장에 다니지 않으므로 낮에 길 위에 나오는 게 흔한 일이다. 또 그게 주부들의 모습이니까. 그렇다. 주부는 사장과 같다. 주부는 언제든 뭐든지 할 수 있고 모든 시간을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다. 대낮에 도시 전체를 살펴 보라. 이곳저곳 온통 여자들(주부들)뿐이다. 헬스클럽, 요가 교습소, 수영장, 골프장(여기서 불륜 드라마가 종종 탄생하기도 한다), 백화점, 은행, 병원(약간의 불편한 느낌만 있어도 병원을 찾는다는 사실은 여성들의 긴 평균수명에 크게 기여했다), 카페, 카라오케.....
주부들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이 세상의 남편들을 위해 그것에 대해 잠깐 설명해 주려 한다. 남편이 출근한 직후부터 퇴근할 때까지는 한 마디로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가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어린 소녀가 남동생에게 ‘부모님이 교회에 가셨어, 자, 파티를 시작하자꾸나!’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남편이 일터로,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로 모조리 사라지고 나면 주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제서야 편안함을 느낀다. 온갖 오락거리와 취미거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발놀림은 바빠진다. 유치원 숙제의 그것과 비슷한 난이도를 가진 하찮은 집안일만 조금 해치워 버리기만 하면 그 외의 시간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으니 어찌 흥겹지 않겠는가? 친구나 자매들과 수시간동안 전화통화를 하거나, 새로 나온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러 가거나, TV홈쇼핑에서 새 소파를 주문할 준비를 하거나....... 안락하고 평화로운, 마치 남태평양이나 북아프리카의 비문명적인(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사회에서나 가능한 삶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바로 주부들이다.
현대사회가 만들어준 인간의 생태가 주부들에게 선사한 커다란 혜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낮잠’이다. 그리고 대도시의 직장인들이 정말 갈망하는 게 하나 있다면 매일 1시간의 낮잠이다. 낮잠을 자는 직장인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CEO 또는 최소한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중역 정도 되지 않으면 (스페인 같은 시에스타 문화권이 아니라면) 잠깐의 낮잠이라도 잘 시간을 얻는 건 완전히 불가능하다. 고용주들은 그런 걸 허용하느니 차라리 사내 구조조정을 시도할 테니까. 하지만 주부들은 거의 매일 낮잠을 자며 방바닥에 수건질을 하거나 TV연속극을 보다가도 피곤함을 느끼면 그대로 쓰러져 잠을 청한다. 현대적인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의 성장과 휴식을 위해 낮잠시간을 제공하는데, 이 예외적인 교육시설을 제외하면 그 어떤 공립, 사립 학교에서도 낮잠을 허용하진 않는다.
주부들은 정말 행복한 이들이다. 모든 소녀들은 주부의 삶에 대해 배우고 자란다. 경쟁과 분투,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는 자신들과 무관한 것이며 그런 것들은 남자들의 세계에 속해 있다고 셍각하며 나몰라라 한다. 그녀들 중 대부분은 직장이란 곳을 결국 경험하긴 하겠지만 그것 역시 한 때의 일임을 그녀들은 알고 있다. 그녀들에게 인생 최대의 비즈니스는 결혼이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녀들은 그것에 대해 열심히 교육받는다(어느 문화권에서든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훨씬 더 자주, 많이 얘기나눈다).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완전히 갈리기 때문이다. 팔자 늘어진 유한마담이 될 수도,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긴 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중년여성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온갖 치밀한 전략과 시도, 계산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를 물색하고 선택한다. 그에게 대단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가 꽤 쓸 만한 노동기계이기만 하다면 답은 보통 OK다. 그리고 그 다음엔 긴장을 푼 채 앞치마를 걸치고 안주하는 것뿐이다.
그녀들이 집에서 하는 일은 정말 하찮은 것들이고 심지어 정신지체인들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저학력조차 없는 사람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남편에게는 좀 더 많은 돈을 벌어오길 요구한다. 이혼할 때는 자신도 그 가계의 자산 형성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를 주장하며 총 재산의 절반이나 그 이상을 요구한다. 주부들은 엄청난 퇴직금 또한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난 수습변호사였을 때 주당 최소한 90시간 넘게 일했다. 점심식사도 급히 끝냈고 커피 마실 여유조차 없었다.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줄곧 프로미식축구의 열성팬이었는데 그 해에 단 한 경기도 시청하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주부 역할과 변호사 역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한다 해도 난 핍박받거나 이혼당하지 않고 거기다 우리 가정이 얻는 자산의 절반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난 단연코 주부 역할을 택할 것이다. 백 번 물어도 똑같이 대답하겠다. 이 세상에서 어떤 정신 나간 해병이 PX 보직을 거절하고 특수수색대를 지원하겠는가?
이 세상의 남성들은 단 한 번도 의구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 왜 자신의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집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고 자신은,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집 밖에서 위험과 스트레스와 건강침해를 감수하면서 가족 전체의 생계를 부담할 돈을 얻어오는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 쪽은 사슴고기를 구해 오는 역할을, 한 쪽은 사슴고기를 굽는 역할을 하는데(둘 중 어느 역할이 훨씬 손쉬운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런 분업은 태어났을 때 이미 운명지어진 것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누구도 이 불공평한 남녀의 역할 분담과 잘못된 사회시스템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오히려 그 반대다. 어리석은 어른 남성들과 그런 남성이 될 운명을 가진 어리석은 소년들은 주부라는 건 희생양이고 봉사자이고 순교자이고 가엾은 하녀이며 그런 면에서 아내들과 어머니들은 동정받는 동시에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과 성공을 위해 내 아내는 주부(남성들은 이 극도로 고생스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이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거라고 굳게 믿는다)라는 비천한 역할을 감수해 왔으며 따라서 난 생의 나머지동안 내가 그녀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 뭔가 커다란 보답을 해야 한다.'........이렇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남성들은 스스로를 열심히 교육시켜 왔다. 한 마디로 남성들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고 더구나 여성들도 자신에게 이득되는 그런 상황을 굳이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앞서 언급한 힘겹고 고생스런 역할은 변호사 남편과 주부 아내, 과연 누구 쪽일까?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난 직장생활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내 아버지가 은행가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분명히 그걸 너무도 좋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소년이 매일 자전거가게 주위를 얼씬대듯이 내 아버지도 그런 이유에서 은행에 들어갔고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들을 (가끔은 주말까지) 그곳에서 보낸다고 생각했다. 난 아버지가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모습만 보았지 그가 일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으므로 그가 직장에서 어려움이나 고통을 겪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또 아버지는 유순한 성격이었고 항상 내 앞에선 웃는 얼굴만을 보였으므로. 잘은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보건대 은행은 분명 엄청나게 신나는 곳일 테지!
반면에 내 어머니는 매우 험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신문 배달부와 실랑이를 하기도 했고 전화기를 잡고 친언니나 친구와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보험 외판원에게 욕지거리를 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느라 애쓰기도 했다. 설겆이, 새우 튀기기, 빨래, 청소 등등 내가 하기 싫어하는 모든 귀찮은 일들이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소파에 길게 누워 오랫동안 잘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주부란 얼마나 피곤하고 고단한 역할이며 내겐 그런 걸 경험할 운명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난 얼마나 행운아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나도 언젠가 턱수염이 자랄 나이가 되면 말쑥한 양복을 입고 매일 아침 어디론가 출근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무척 즐겁고 흥미로운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앞치마를 걸친 채 접시를 닦거나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거닐게 될 내 누이의 모습에 대해서는 한심함을 느꼈다.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삶인가! 나라면 견딜 수 없을 텐데! 그런 점 때문에 난 내 누이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동정했고 신의 불공평함을 저주했다. 나 역시도 커다란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노동하는 건 아버지 쪽이었고 그것에 비하면 어머니는 마치 몇몇 소일거리 외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공주처럼 살았다. 내가 더 높이 사야 할 것은 하루종일 집을 지키며 어린 날 애완동물처럼 길들여온 어머니의 노고인가? 아니면 매일 오두막을 뛰쳐나가 칼과 창으로 사냥감을 포획해 온 아버지의 노고인가? 어느 쪽인가? 하지만 소년들은 어린 시절의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건 벽에 걸려 있는 달력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어머니의 날’을 정해 두고 그 날은 어머니에게 선물이나 꽃을 전달한다. 그 날은 ‘나를 양육해주신 훌륭한 어머니에게 사랑을 표현하자’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날이다. 하지만 이 날은 ‘아버지 없이 자란 사람들이 어머니를 예찬하는 날’이 아니다. ‘아버지는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어머니만 칭송하는 날’이다. 황당하지 않은가? ‘아버지의 날’은 대체 어디 있는가? 어머니만 훌륭한가? 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즐겼을 뿐이고 어머니만 가족을 위해 힘든 모든 일들을 해온 것인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난 다시 태어난다면 변호사 따윈 되고 싶진 않다. 차라리 여성으로 태어나 주부의 삶을 살고 싶다. 기득권만 잔뜩 가진 평온하고 안락한 주부의 삶을.
--- 테리 제퍼리 맥클로이 ( 전직 변호사이며 시나리오 작가, 칼럼니스트 )
[출처] (펌) <힘든 가사노동>이란 엄살은 그만두라. |작성자 아이반호
집에서 10개월째 놀고 있는 내 남편.. 휴..
http://blog.naver.com/speed88888/10071044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