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딸을 가지고 놀으라고 써있는 성경책

개소리201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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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어떤 집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 손님에게
행패를 부리려고 합니다. 

이 때, 집 주인 왈,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두 딸이 있다.  그들을 내어 줄 테니, 그 애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라.  그 대신 우리 집에 온 손님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답니다.

이것이 여호와(예수)에 대한 훌륭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 바이블에, 
여호와 3 명이 소돔성(城)의 죄악을 현장에서 조사하려고 길을 가다가,  믿음의 조상
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집에 잠시 들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들을 보자마자
알아보고서 영접합니다. 그들은 전부터 서로 안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모습은 정확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들은 발도 씻고 떡(빵)도
먹으면서 피로를 풉니다.  3 명의 여호와들은 소돔성을 향해서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소돔성에 들어설 때는 2 명의 천사 모습으로 바뀝니다. 신통한 것은, 롯
(아브라함의 조카)도 천사들을 보자마자 금방 알아 보는 것입니다.  롯도 전부터 여호와들과
안면이 있었던가요? (롯은 소돔성에 살고 있음) 

**참고;
요즈음 예수쟁이들은 여호와(예수)가 나타나면 그들을 어떻게 식별하여
알아 보고 환영하게 될까요? 아브라함이나 롯처럼, 여호와(예수)가 나타나면
덮어 놓고 그냥 알아 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2)여튼 계속 바이블을 보기로 합시다.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천사)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
(창세기 19;1~2) 


** 롯은 영의 눈을 가졌던 겁니다. 
어떻게 천사(여호와)를 척 알아 보았을까요? 
어쨌든 천사(여호와)들은 롯의 집으로 들어가서 하루 묵기로 정합니다. 


(3) 바이블을 계속 봅시다.

[..... 롯이 그들(천사=여호와)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으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파워쎾쓰)하리라."]
(창세기 19;3~5) 


** 이 사건은 적어도 3500 년 전의 일입니다. (바이블이 맞다면) 
그런 시대에 남의 집 손님의 영 좋지 않은 곳을 노리고 강간하려고 무론 노소가 사방에서 떼거리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게 어떻게 사람 사는 세상일까요? 노략질이 생업으로 되어 있던 중동 지방의
고대사회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신 여호와(바이블)의 성격이 어떠한 것일까는
자명해집니다. 



(4) 이에 롯의 일 처리 방법이 가관입니다.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여호와=천사)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창세기 19;6~8) 


** 자기 집에 온 손님들이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라고 롯이 믿었다면,자기 딸을 뭇남성에게
내돌리면서까지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바이블 구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잉 아부도 아니요, 신에 대한 예배도
아닌 무서운 궤변일 뿐입니다. 

롯의 딸들은 이미 정혼한 청년들도 있었습니다.누구 맘대로 그 딸들을 내돌린다는 말일까요? 
여호와(성령)는 요셉이란 청년과 정혼한 마리아를 범하여 예수를 임신시켰다더니 ...... 
바이블의 어디를 읽어야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가 나올까요? 


다음도 봅시다.

다음 이야기는 한 레위인이 자신의 첩과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가서 생긴 일입니다.

그들이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 성에 있는 무뢰배들이 몰려와서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드리며 노인에게 요구하였다. "영감 집에 든 자를 내보내시오. 우리가 상관(파워쎾쓰)
해야겠소!"그러자 노인이 밖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 그게 어디 될 말인가!
이런 나쁜 짓을 하다니! 이분은 이미 내 집에 들어왔는데, 이런 고약한 짓을 하지 말게나.
나에게 처녀 딸 하나가 있는데 내어줄 터이니 욕을 보이든 말든 좋을 대로들 하게. 그러나
이 사람에게만은 그런 고약한 짓을 해서는 안 되네."

그들이 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레위인은 자기 첩을 밖에 있는 자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잔인하게도 그 여자를 밤새도록 강간했다. 그러다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그 여자를 놓아 보냈다. 날이 밝자 그 여인은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 환히 밝기까지 문지방에
쓰러져 있었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대문을 열고 다시 길을 떠나려고 나서다가 제 첩이 손으로
문지방을 붙잡은 채 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일어나 가자고 하였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는 첩을
나귀에 얹어가지고 자기 고장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는 집에 도착하는 길로 칼을 뽑아 자기 첩의 시체를
열 두 조각으로 내가지고는 이스라엘 전국에 보냈다. (판관기 19장 22~29)



더 할 말이 없는 끔찍한 장면입니다. 바이블은 21세기 현대인들의 보편적 윤리적 가치와 전혀 맞지 않는 청동기 시절의 소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