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종이 기억하는 크래커의 첫경험 창간호는 부끄러움이 많은 잡지였어요.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았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만든 잡지여서 그런지 고칠게 너무 많았어요.
뿌듯함 이런 것 보다는 부끄러움이 많은 창간호로 기억해요.
자괴감이 많이 들었지만 아무에게도 내색 할 수가 없었어요.
나를 믿고 같이 가는 구성원들에게 자신감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덕분에 그 뒤로 많은 노력을 했고 그때의 계기로 많은 발전이 있었죠.
- 장석종이 말하는 크래커 잡지 광고주 눈치를 살피는데… ‘우리는 좀더 배고프자’는 주의에요.
‘좀더 배고프고 우리가 하고 싶은걸 하자.’ 광고주와 작업을 할 때도 지킬 건 지키려고 해요.
크래커 한 권의 가격이 3800원이에요. 그 한 권을 팔면 300원이 남아요.
그 돈이면 크게는 벌지 못해도 잡지를 운영하는데 충분하죠.
크래커는 광고주를 위한 잡지가 아니라 판매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잡지에요.
즉 광고주가 아닌 독자들을 위한 잡지를 추구하고 있어요.
잡지에 보도자료나 광고 기사는 절대 올리지 않아요. 하지만 광고주들은 상당히 싫어하죠.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봐도 잘한 것 같아요.
왜 다른 곳에 똑같이 올리는 걸 올리는지 모르겠어요.
- 크래커는 어떻게 운영될까 크래커의 가장 좋은 점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틀이 없다는 점이에요.
구성원들이 모여서 각자 만들고 싶은걸 모아서 만드는 거죠.
편집장이 만들고 싶은걸 만드는 게 아니라
크래커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만들고 싶은걸 만드는 겁니다.
때문에 같이 일할 사람을 뽑을 때도 입고 온 옷이나 신발을 먼저 봐요.
뭐든지 크래커는 극단적으로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해요.
못 입어도 개성 있게 입는 게 좋아요. 크래커에 등장하는 모델 또한 그런 사람을 찍으려고 하고요.
저는 확고한 사람이 좋아요. 트렌드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 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좋죠.
디자이너를 뽑을 때도 딱히 정해진 틀이 없어요.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감각만 있으면 뽑죠.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장 중시해요.
기술만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어요.
예전에 디자이너를 뽑는데 디자인 툴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정말 감각 있고 자신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었죠.
“같이 일합시다”했죠.
물론 6개월 동안 디자인 툴을 가르치면서 일해야 했지만
지금은 크래커의 색을 잘살려 주는 어엿한 디자이너로 같이 일하고 있어요.
- 크래커의 마감 분위기는 애들이 3~4일 동안은 기본적으로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새벽 3시가 되면 간이침대에서 다같이 자는 풍경이 연출되죠.
물론 전 사람들이 잘 때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대신 끝나고 나면 애들이 밥 먹고 가자고 해도 가지 않을 만큼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어버려요.
제가 원래 간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뭔가를 무리하게 하면 몸에 금방 신호가 오거든요.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아도 일에 매달리면 신기하게 간수치가 높아지지 않더라고요.
일이 재미있어요.
- 크래커에 등장하는 사람들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을 사람들 쳐다보는데 할애할 만큼 항상 사람들에게 목말라 있어요.
지하철을 타다가도 딱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번호를 받아서 에디터에게 넘겨줘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봐요.
길거리 캐스팅을 가장 많이 하고요 인터넷으로 찾기도 많이 하고요.
지인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지인은 한 달이면 끝이에요.
신참 에디터가 들어와서 한달 써먹으면 끝이죠.
그리고 중복인물은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해요. 싸이월드 클럽에 사진을 올려놓고 컨펌을 진행해요.
저번 달에 모 에디터가 섭외한 사람들이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아서 10명을 섭외해왔던 적도 있어요.
이런 것 때문에 에디터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래서 캐스팅 디렉터를 따로 쓰기도 해요. 돌아다니면서 사람 찾아서 제보를 해주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 장석종이 첫눈에 반한 그녀
지금 여자친구는 만나자마자 사귀었어요.
한국패션에 대한 강의 때문에 잠시 갔다가
강의를 들으러 온 여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만나게 됐죠.
저는 과거에 연연하기 보다는 항상 미래와 현재만을 바라보는 스타일이에요.
과거는 자연스럽게 까먹어 지더라고요.
반면 여자친구는 반대로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에요.
상당히 현명한 사람이라 여자친구의 말을 전적으로 귀 기울여 듣는 편이에요.
- 장석종이 기억하고픈 남자 몸에 문신을 한다면 꼭 할아버지 세례명을 세기고 싶어요.
묘비명처럼 십자가랑 같이 가슴 중간에요. 저희 책에 커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제가 쓰지 않아요.
보통은 편집장이 쓰는 코너지만 다른 친구에게 그 부분을 양보하죠.
하지만 제가 유일하게 그 커버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때가 바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죠.
딱 그대 한번만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썼었죠. 그날 마감을 부랴부랴 끝내고 광주로 내려갔죠.
그만큼 할아버지는 저에게는 상당히 소중한 분이에요.
- 크래커가 사랑하는 독자들 기억에 남는 분은 한 어르신인데, 항상 사무실에 들려주시는 분이 있어요.
책 받으러 오셨다가도 먹을 거 사다 주시거나 에디터 생일도 챙겨주시는 분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소품 감독님이시더군요. 참 멋스러우신 분이셨어요.
사무실에 독자들이 주소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요.
정말 딱 주소만 들고 찾아오는 분들이죠. 그럴 때면 정말 깜짝깜짝 놀래요.
일하고 싶다고 오는 사람도 있고요.
독자가 찾아오면 최대한 잘해주려고 해요, 없는 책도 챙겨주고요.
하지만 전 그 모든걸 에디터에게 떠맡기곤 바람 쐬러 간다며 사무실에서 사라져 버리죠. 쑥스럽거든요. 그런걸 보면서 우리가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서 기분은 좋죠.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독자 편지 같은 거 받아보면 정말 좋아요.
인터넷 게시판에도 글을 많이 남겨주시는데,
비공개로 글을 남기는 경우에는 상당한 장문으로 답변을 주기도 해요.
- 크래커의 올해 목표는 앞으로 책을 더 두껍게 만들 생각이에요. 지금이 140페이지 정도인데 200페이지 정도로요.
처음에 무가지였을 때는 80페이지 정도였는데,
좀더 두껍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지금까지 오게 됐죠.
더 볼거리들 많게 해서 조금 더 두껍게 만들려고요.
또 올해 안에 외국의 라이선스를 유치하는 것도 목표고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 중이긴 한데 우선은 한나라라도 진출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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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종 편집장의 욕심만큼이나 크래커는 창간 2년 만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며 수많은 독자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잡지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을 다루고, 비록 배고플지라도 광고주보다는 독자를 먼저 생각하고,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이런 잡지가 앞으로도 더 많아졌으면 하는 건 저의 욕심일까요? 지금 그가 걸어가는 길을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패션 잡지 크래커 장석종 편집장을 만나다
대표가 친구로 있는 탓도 있지만 평소 크래커를 즐겨보는지라
친구에게 크래커의 편집장을 소개받았습니다.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만나본 크래커의 편집장은 정말 ‘인물’이 맞더군요.
잘생긴 얼굴도 얼굴이지만 과연 크래커의 ‘장’이라고 할 만큼
진중하면서도 생각이 열린 친구였습니다.
해서 오늘은 장석종 편집장의 입을 통해
제가 그 동안 크래커에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실제 크래커 잡지에 등장했던 장석종 편집장의 모습
- 장석종이 기억하는 크래커의 첫경험
창간호는 부끄러움이 많은 잡지였어요.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았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만든 잡지여서 그런지 고칠게 너무 많았어요.
뿌듯함 이런 것 보다는 부끄러움이 많은 창간호로 기억해요.
자괴감이 많이 들었지만 아무에게도 내색 할 수가 없었어요.
나를 믿고 같이 가는 구성원들에게 자신감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덕분에 그 뒤로 많은 노력을 했고 그때의 계기로 많은 발전이 있었죠.
- 장석종이 말하는 크래커 잡지
광고주 눈치를 살피는데… ‘우리는 좀더 배고프자’는 주의에요.
‘좀더 배고프고 우리가 하고 싶은걸 하자.’ 광고주와 작업을 할 때도 지킬 건 지키려고 해요.
크래커 한 권의 가격이 3800원이에요. 그 한 권을 팔면 300원이 남아요.
그 돈이면 크게는 벌지 못해도 잡지를 운영하는데 충분하죠.
크래커는 광고주를 위한 잡지가 아니라 판매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잡지에요.
즉 광고주가 아닌 독자들을 위한 잡지를 추구하고 있어요.
잡지에 보도자료나 광고 기사는 절대 올리지 않아요. 하지만 광고주들은 상당히 싫어하죠.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봐도 잘한 것 같아요.
왜 다른 곳에 똑같이 올리는 걸 올리는지 모르겠어요.
- 크래커는 어떻게 운영될까
크래커의 가장 좋은 점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틀이 없다는 점이에요.
구성원들이 모여서 각자 만들고 싶은걸 모아서 만드는 거죠.
편집장이 만들고 싶은걸 만드는 게 아니라
크래커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만들고 싶은걸 만드는 겁니다.
때문에 같이 일할 사람을 뽑을 때도 입고 온 옷이나 신발을 먼저 봐요.
뭐든지 크래커는 극단적으로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해요.
못 입어도 개성 있게 입는 게 좋아요. 크래커에 등장하는 모델 또한 그런 사람을 찍으려고 하고요.
저는 확고한 사람이 좋아요. 트렌드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 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좋죠.
디자이너를 뽑을 때도 딱히 정해진 틀이 없어요.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감각만 있으면 뽑죠.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장 중시해요.
기술만 있는 사람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어요.
예전에 디자이너를 뽑는데 디자인 툴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정말 감각 있고 자신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었죠.
“같이 일합시다”했죠.
물론 6개월 동안 디자인 툴을 가르치면서 일해야 했지만
지금은 크래커의 색을 잘살려 주는 어엿한 디자이너로 같이 일하고 있어요.
- 크래커의 마감 분위기는
애들이 3~4일 동안은 기본적으로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새벽 3시가 되면 간이침대에서 다같이 자는 풍경이 연출되죠.
물론 전 사람들이 잘 때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대신 끝나고 나면 애들이 밥 먹고 가자고 해도 가지 않을 만큼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어버려요.
제가 원래 간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뭔가를 무리하게 하면 몸에 금방 신호가 오거든요.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아도 일에 매달리면 신기하게 간수치가 높아지지 않더라고요.
일이 재미있어요.
- 크래커에 등장하는 사람들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을 사람들 쳐다보는데 할애할 만큼 항상 사람들에게 목말라 있어요.
지하철을 타다가도 딱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번호를 받아서 에디터에게 넘겨줘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봐요.
길거리 캐스팅을 가장 많이 하고요 인터넷으로 찾기도 많이 하고요.
지인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지인은 한 달이면 끝이에요.
신참 에디터가 들어와서 한달 써먹으면 끝이죠.
그리고 중복인물은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해요. 싸이월드 클럽에 사진을 올려놓고 컨펌을 진행해요.
저번 달에 모 에디터가 섭외한 사람들이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아서 10명을 섭외해왔던 적도 있어요.
이런 것 때문에 에디터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래서 캐스팅 디렉터를 따로 쓰기도 해요. 돌아다니면서 사람 찾아서 제보를 해주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 장석종이 첫눈에 반한 그녀
지금 여자친구는 만나자마자 사귀었어요.
한국패션에 대한 강의 때문에 잠시 갔다가
강의를 들으러 온 여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만나게 됐죠.
저는 과거에 연연하기 보다는 항상 미래와 현재만을 바라보는 스타일이에요.
과거는 자연스럽게 까먹어 지더라고요.
반면 여자친구는 반대로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하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에요.
상당히 현명한 사람이라 여자친구의 말을 전적으로 귀 기울여 듣는 편이에요.
- 장석종이 기억하고픈 남자
몸에 문신을 한다면 꼭 할아버지 세례명을 세기고 싶어요.
묘비명처럼 십자가랑 같이 가슴 중간에요. 저희 책에 커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제가 쓰지 않아요.
보통은 편집장이 쓰는 코너지만 다른 친구에게 그 부분을 양보하죠.
하지만 제가 유일하게 그 커버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때가 바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죠.
딱 그대 한번만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썼었죠. 그날 마감을 부랴부랴 끝내고 광주로 내려갔죠.
그만큼 할아버지는 저에게는 상당히 소중한 분이에요.
- 크래커가 사랑하는 독자들
기억에 남는 분은 한 어르신인데, 항상 사무실에 들려주시는 분이 있어요.
책 받으러 오셨다가도 먹을 거 사다 주시거나 에디터 생일도 챙겨주시는 분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소품 감독님이시더군요. 참 멋스러우신 분이셨어요.
사무실에 독자들이 주소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요.
정말 딱 주소만 들고 찾아오는 분들이죠. 그럴 때면 정말 깜짝깜짝 놀래요.
일하고 싶다고 오는 사람도 있고요.
독자가 찾아오면 최대한 잘해주려고 해요, 없는 책도 챙겨주고요.
하지만 전 그 모든걸 에디터에게 떠맡기곤 바람 쐬러 간다며 사무실에서 사라져 버리죠. 쑥스럽거든요. 그런걸 보면서 우리가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서 기분은 좋죠.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독자 편지 같은 거 받아보면 정말 좋아요.
인터넷 게시판에도 글을 많이 남겨주시는데,
비공개로 글을 남기는 경우에는 상당한 장문으로 답변을 주기도 해요.
- 크래커의 올해 목표는
앞으로 책을 더 두껍게 만들 생각이에요. 지금이 140페이지 정도인데 200페이지 정도로요.
처음에 무가지였을 때는 80페이지 정도였는데,
좀더 두껍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지금까지 오게 됐죠.
더 볼거리들 많게 해서 조금 더 두껍게 만들려고요.
또 올해 안에 외국의 라이선스를 유치하는 것도 목표고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 중이긴 한데 우선은 한나라라도 진출을 하고 싶어요.
-----------------------------
장석종 편집장의 욕심만큼이나 크래커는 창간 2년 만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두며 수많은 독자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잡지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을 다루고, 비록 배고플지라도 광고주보다는 독자를 먼저 생각하고,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이런 잡지가 앞으로도 더 많아졌으면 하는 건 저의 욕심일까요? 지금 그가 걸어가는 길을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출처 : Life Travelogue (http://blog.naver.com/classictaste/12393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