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

이봉주20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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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를 동으로 2.5미터, 지구 자전축을 10센티미터 이상 이동시켰다는 이번의 대지진. 강도 9에 가까운 지진을 어디 보기라도 했겠는가. 지진도 지진이지만 쓰나미의 위력은 저게 정말 현실일까 싶을 정도로 영화같기만 했는데, 그게 영화였다면 오히려 좋았을 것을, 많은 인명이 대 재앙에 희생이 되었다. 재해가 끝났다, 라고 과거형으로 못박아 놓으면 복구의 의지로 도움의 손길로 미래를 이끌어낼텐데 지진이 일어났던 지대의 원전에서 연쇄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열도뿐이 아니라 전 세계는 방사능 노출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진이나 쓰나미는 그래도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방사능의 위험도는 맨눈으로 볼 수도 없으니 사람들의 불안심리는 높아지기만 하는 듯하다.

 

우리가 눈으로 봤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위력을 가진 자연 재해. 어떠한 현상이 인간의 상식선이나 일반적인 상상력을 뛰어넘으면 거기에 대해 즉각적으로 압도됨을 느낀다. 순간적인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존재 혹은 오랜 시간 동안 쌓아놓은 문명까지도 말짱 헛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자연의 힘. 그것이 가진 생명력에 숭배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가진 파괴력에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는 줄 알았던 지구는 알고보면 그저 자연이 주인이려니, 공존은 커녕 미미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땅 빌고 시간 빌어 잠깐 기생하는 정도라는 것을 여실이 보여준다.

 

인간의 삶은 어느 정도 변하지 않는 터전 위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살아나가는 것인데 이는 진리가 아니라 <전제>일 뿐이라는 것을 이 재해를 보며 깨닫는다. 전제란 어떤 현상을 이루기 위해 먼저 내세우는 것이니 이를 위해선 암묵적/인습적 동의가 밑바탕이 되어야한다. 다시 말해 이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기 위해선 터전(장소)과 시간의 이상적인 전제가 있어야한다는 뜻. 하지만 전제란 항시 뒤집힐 수 있는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기에 여기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자연이란 거대한 반론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이 반론인 것만은 아닌 게 앞 문장에서도 언급했던 자연은 늘 거기게 그렇게 있을 뿐 우리 인간이 깜빡깜빡 '잊고 살' 뿐이다. 지진의 위험이나 쓰나미의 위험은 인간이 핵 발전소를 건립하며 안고 있는 핵폭발 위험보다도 사실 적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이미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상적인 삶을 위해서 잠시 잊을 뿐. 잠시 잊으며 새파란 잔디 위에 집을 짓고 짝을 맺고 자식을 낳고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핵 연료를 쓰고 있을 뿐이다.

 

하긴 잊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위험이 있음을 알지만 우리 인간 수명은 백년도 안되기에, 그 짧은 시간을 평화롭게 살기위해서라도 망각의 기능은 고마운 것이다. 잊고 사는 게 좋고, 잊어도 되니, 너무 달달 볶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끝장, 내편 아니면 적, 과거있으니 용서할 수 없는 현재, 이런 분파적인 사고는 안그래도 아슬아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피곤만을 더 가져다 줄 뿐 아니겠는가.

 

글을 마치며 기억나는 문구를 빌려오겠다. 이는 8세기 페르시아 (이란)의 시인 사디에 의해 쓰여진 시인데 유엔 빌딩에 새겨진 모토이기도 하다.

 

인간의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어느 한곳이 아프면 몸 전체에서 고통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고충에 동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

인간이라고 부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