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 내게 첫 올레, 7코스

박교빈2011.03.16
조회318

내게 첫 올레, 7코스

 

* 외돌개(외돌개 제주 올레 안내소) → 월평마을 송이슈퍼(16.4Km)

   외돌개 - 돔베낭길 - 속골 - 수봉로 -  법환포구 - 제주 풍림 리조트 -  강정포구 - 월평포구 - 월평마을

* 시작 시간 : 12시 40분. 종료 시간 : 18시 30분

 

                        리무진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았다. 버스 창문에 김이 서렸다. 

 

공항에서 서귀포로 가는 리무진 버스 창밖으로 오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3월임에도 밖은 쌀쌀하여 창문에 김이 서렸다.

‘아, 이제 시작이다. 여행의 시작, 새로운 세계에서의 시작.’

 

뉴경남호텔에서 하차하여 숙소로 향했다. 차가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을 걷는데 저 멀리 한라산이 정상 부근으로는 눈옷을 입은 채로 서 있다.

‘내가 정말 제주도에 오긴 왔구나.’ 

TV에서 본 듯한 여관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안내실은 비어 있다. 윗층에서 청소기 작동하는 소리만 들려온다. 오늘 필요한 물건만 배낭에 남기고 나머지는 캐리어로 옮기는데 벽에 붙은 제주도 관광 홍보문의 문구가 마음에 확 와 닿는다.  

 

 

 

 

“제주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물빛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짐을 맡기고 주인에게 괜찮은 근처 식당을 알려달라고 하니 ‘네거리 식당’과 ‘조림명가’를 말해주어 조림명가에서 전복뚝배기로 아침과 점심을 겸해서 먹었다. 수족관에 살아 있는 전복으로 요리하며 새우가 들어 있어서 무슨 새우냐 직원에게 물었더니 일본에서는 귀하다는 딱새우(딱총새우)라는데 껍질이 단단했다. 쌈장 대신 갈치속젓이 나온 것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먹어본 갈치속젓은 비린내가 나지 않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7코스 시작점인 외돌개 제주 올레 안내소를 찾아 배낭을 멨다.

길가에 있는 집의 돌담 안에는 동백꽃이 활짝 피어 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대문 앞에 앉아 여유로운 자태로 해바라기를 한다. 잘 다음어진 산책로를 지나는데 쑥향이 코를 찌를 정도로 진하다. 옆을 보니 두 여인이 쑥을 뜯고 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쑥을 뜯는 여인이라. 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황우지 12동굴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은 제주를 통한 미군의 일본 본토상륙에 대비하여

제주도에 7만 5천에 이르는 관동군을 배치하고 제주 전역을 요새화한다.

이 곳 황우지 해안에 있는 12개의 갱도는 당시 일본군이 미군 상륙에

대항하기 위한 자폭용 어뢰정을 숨기기 위해 만든 것이다.

 

 

 

 외돌개 제주 안내소를 지나 올레에서 처음 만난 제주 바다의 첫인상은 ‘벅참’이었다.

아무래도 하느님의 팔레트에는 수 천만 가지의 색깔이 있어 그 날 기분에 따라 인간에게 주실 색 선물을 결정하시는 것 같다. 변화무쌍한 자연을 둔감해진 인간이 분별을 못할 뿐. 우리가 일상이 지겹다며 행복을 쉽사리 느끼지 못하듯이.

 

   해녀의 테왁이 바다 위에 떠 있다. 바다 오른쪽 동그란 점. 

 

청록색 물빛 바다에서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그 풍경은 댄디 스타일 차림을 한 남자가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을 활보하는 것보다 더 멋지고 자유롭게 보인다. 아니, 어떤 이의 삶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바다 가운데 외롭게 서 있다 하여 외돌개란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범섬에 있는 원나라 군사를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처럼 꾸몄다고 한다. 이를 본 적군들이 겁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데서 '장군석'이라고도 불린다.   

 

 외돌개를 지나는데 귤을 파는 노점이 있다. ‘귤귀신’인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주인은 자꾸 천혜향을 사라 한다. 말로만 들어본 천혜향. 얼마냐고 물으니 5000원이라고 한다.

“비싸서 못 사겠어요.”

“5천원이 비싸요?”

“우와, 아저씨는 부자신가 보다.”

귤을 1000원치 7개 사고 천혜향을 1개만 1000원에 팔라 했더니 안 된다 하면서도 내가 안 돼 보였는지 2개 천원에 준다. 난 이 때까지도 레드 키위가 천혜향인 줄 알았다. 천혜향을 모르는 서울촌놈인 내게 귤 2개를 천혜향이라고 속여 집어 주는 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얼핏 보면 귤하고 똑같다.   

천혜향은 천리 밖에서도 향을 숨길 수가 없어 천혜향이다.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으며 진한 향기와 풍부한 과즙이 특징이란다. 식감은 오렌지와 같고 껍질은 얇고 단단하여 손톱으로 까기 힘들 정도였다. 속 생김새는 영락없는 귤이다. 나중에 보니 어떤 노점에서는 천혜향을 3개에 5천원에 팔고 있었다. 외돌개 지나 대장금 촬영지 부근에서 감귤 파는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인생이라는 길디 긴 길에서 표류할 때마다 올레 길 화살표처럼 내가 갈 길을 단박에 알려주는 그 어떤 표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귀포여고 앞을 지나는데 배낭이 어깨를 누른다. 본디 무거운 배낭이었으나 초반에는 무거운 줄 몰랐던 배낭, 본디 가벼운 배낭이었으나 보온병, 물병처럼 내 욕심을 가득 담아 무거워진 배낭.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본래 하느님은 우리 인생을 쿨cool하고 스마일smile하게만 설계하셨는데 소유욕과 탐욕이 인생길을 무겁고 힘겹게 하는 건 아닐까. 필요한 물품들이 실상은 인생의 무게를 더하는 짐일 뿐인 것이다.    

 

 

‘이상하다. 올레에 사람들도 없고 옆으로는 자동차만 쌩쌩이다.’

서귀포여고를 지나서 바닷가 올레로 접어드는 길이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것을 놓치고 30분째 혼자, 아니 차도와 함께 반대편으로 가는 자동차와 걸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길가에 있는 난간에 걸터앉아 한라산을 바라보며 식당에서 담아온 따뜻한 물도 마시고 빵과 귤도 먹었다.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까, 하면서.  

되돌아 가기 싫은 괜한 오를 부리며 10분 쯤 더 걷다가 오토바이 수리점에 길을 물어 바닷가쪽으로 향했다. 미나리 논가에서 아주머니가 미나리를 다듬고 있었다.

 

 

 “아주머니, 근데요 왜 논에 그물을 쳐놓았나요?”

아주머니는 일하는 손을 멈추지 않고 고개를 들어 흘낏 쳐다본다.

“오리요."

“네? 오리요?”

“바다 오리, 오리가 겨울에 먹으니까요.”

“아, 먹을 게 없어서요?”

“네.”


이제 바닷가이다. 올레를 다시 찾았다. 수봉로 쯤일 것이다. 왼편을 보니 사람들이 바닷가를 따라 걷고 있다. 나는 잃은 길을 다시 찾은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짐짓 태연하게 걸었다.

 

 

 법환포구. 남은거리 11.5km.

‘이상하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이제 삼분의 일 정도 걸었다니... 지금이 오후 4시인데.’

나처럼 혼자 길을 가는 여인에게 이 사실을 물으니 삼분의 일 온 게 맞단다.

너무! 놀멍(제주도 사투리 : 놀면서) 쉬멍(쉬면서) 하면 망한다!

'분노의 걸음질'이 시작되었다. 사색이고 자연이고 뭐고 없다. 단지 걷기만 있을 뿐.

등에서는 땀이 날 정도로.

‘이러려고 제주도에 온 건 아닌데.’

 

 

한 번 길을 잃은 경험이 있어 올레에서 만난 리본이며 간세, 화살표는 참 반갑다. 그것도 2개를 동시에 해 놓은 곳은 몇 배 더 반갑다.

 

 

 

저녁 바닷바람의 위력은 대단하다. 손이 발갛게 얼었다. 동상에 걸릴 것만 같다. 이것은 흡사 바람과의 싸움이며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온 몸으로 짜릿하게 한기를 느끼는데 바람은 자꾸만 자꾸만 내 뺨을 때려댄다.

 

 

 

                        월평포구 모습

 

월평 포구를 지나 해안가 숲길을 혼자 걷는데 월평포구에서 보았던 중년 남자가 저 멀리 뒤에 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혼비백산하여 뛰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는데 종점은 나오지 않아 애가 타고 무서웠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다 고민 끝에 112에 전화를 걸었다.

“있잖아요, 제가 올레길 7코스를 혼자 걷는데요.”

112 직원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무심히 대답한다.     

“네.”

“저 뒤에 아저씨가 따라오는 것 같아요. 날도 어두워지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전화 드린거예요.”

여직원이 당황한다.

“지금도 따라 오나요? 경찰 보내 드릴까요?”

“아니요, 지금은 제가 막 뛰어서 안보이구요. 무섭긴 한데 아직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혹시나 무슨 일 생기면...”

“그 아저씨 따라오면 바로 전화 주세요. 바로 112 누르세요.”

“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얼마 안 있으니 마을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음 놓고 즐기며 걸을 것을... 내가 걸은 숲길을 뒤돌아보았다. 허탈하면서도 무사히 한 코스를 마쳤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송이슈퍼에서 올레7코스 종점 스탬프를 찍고 올레꿀빵을 사먹었다. 통영에 갔을 때 먹어본 꿀빵과 비슷한데 제주도 특산물을 넣은 것과 다진 견과류가 듬뿍 묻어있는 것이 약간 다르다. 슈퍼 앞에서 5번 버스를 타고 가다 기사님이 일러준 곳에 내렸다. 리무진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바람이 너무 세게, 춥게 불어댄다. 버스 표지판도 나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600번 리무진 버스가 왔다. T머니 교통 카드를 대니 무료 환승이다. 버스 앞자리에 앉아 기사님과 말을 주고 받았다.

내가 112에 전화 건 일을 이야기 했더니,

“제주도 남자들이 말투만 무뚝뚝하지 마음은 안 그래요. 제주도민은 나쁜 사람은 없고 전부 친절하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뿐이에요.”

 

나 역시 뒤따르던 아저씨는 나같은 올레꾼 뿐이었을 텐데 겁이 많고 잡생각이 많은 내가 곡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스에서 내려 네거리식당에서 저녁으로 책에서 본 갈칫국을 먹었다. 생갈치로 끓인 국이 참 시원하고 따뜻했다.

 

 

 

2011년 3월 2일 여행비 지출 내역 :

 

집→김포공항, 마을버스와 공항철도 : 1,100원

제주공항→민중각(게스트 하우스) T머니 교통카드 사용 : 5,000원

전복뚝배기 11,000원

귤7개와 천혜향 2개 2,000원

올레꿀빵 1,000원

올레 7코스 종점→게스트하우스, 버스비: 1,000원

갈칫국: 9,000원 

게스트 하우스 2박: 24,000원   

총 54,100원


제주 올레 https://www.jejuoll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