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과 형제들에게

이병철20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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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한 해가 지났다. 뜨거운 여름과 하늘 맑은 가을,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을 지나 이제 다시 봄이 오는데, 얼마나 많은 계절을 떠나보내고 또 맞이해야 가슴 속 슬픔의 샘이 마를는지 우리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단다. 봄이 성큼 다가오지만 바다는 1년 전 그날 밤처럼 여전히 차가운 입김을 뿜어내고 있구나.

 

  2010년 3월 26일, 고요하던 파도가 한 순간에 돌변해 송곳니를 세우고 물살을 찢던 밤, 사랑하는 그대들을 태운 천안함이 교활한 북한군의 어뢰에 두 동강이 난 채 무섭게 가라앉았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밤바다 아래서 살을 에는 추위와 숨 막히는 고통을 견디며 죽음과 맞서 싸우느라 힘이 들었을 그대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저릿하다. 그대들이 없는 삶의 자리가 너무 쓰라리고 공허해 한참을 주저앉아 일어날 수 없던 날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눈물과 소주는 얼마나 싼 진통제인지, 움켜쥔 아픈 가슴 더 붉고 시리게 하던 그 취기 덕에 반강제로 잠이 든 밤이 참으로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대들의 부모로, 형제로, 또 친구요 애인으로 살았던 날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대들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 고깃국 한 그릇 더 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포근한 털스웨터 하나 짜 입혀주지 못하고, 술 한 잔 더 사주지 못한 우리들의 빈손에 그대들은 오늘도 서늘한 바람으로, 부드러운 햇살로 잠시 와서 머물다 간다.

 

  사랑하는 아들과 형제들아, 그대들은 죽음을 죽음으로써 이기고 마침내 영원한 숨결을 얻었구나. 그대들은 죽은 게 아니라 다만, 삶의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태어나고 자란 가정, 전우들과 고락을 같이한 평택 2함대에서부터 이제는 우리들의 가슴 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대들도 죽지 않고 함께 살아있으리란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비록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함께함의 주체는 육체가 아닌 정신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대들과 함께 있다.

 

  바다는 아직도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저 차갑고 캄캄한 물결은 매정하여 말이 없구나. 그러나 수평선 위로 노을이 번질 때, 우리는 그대들의 붉은 뺨을 생각한다. 부서지는 파도 끝 물방울에서 그대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떠올리고, 햇살을 되비쳐 반짝거리는 물비늘을 보며 그대들의 푸르스름한 수염자국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아들과 형제들아! 우리의 추억과 그리움, 다 주지 못한 사랑으로 저 차가운 바다를 어머니의 양수처럼 따스하게 덥힐 테니,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다 이루지 못한 꿈들은 바다 속에다 진주알로 고이 남겨둔 채 이제는 부디 편히 쉬려무나.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찬란한 눈빛으로 숨 쉬는 그대들은 억만년이 지나더라도 변함없이 우리의 아들이고 형제란다.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