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의 심장은 금새라도 폭발할 듯이 두근거렸고, 식은땀은 온몸을 타고 축축히 흘러 내렸다. 도대체 이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그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앞에서 자신을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는 저 고참은 도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고 있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으니, 그저 답답하고 불안할 뿐이었다.
창우의 표정이 훨씬 더 누그러지며 박하사의 눈치를 슬슬 본다. 언뜻 봐도 상당히 쩔쩔 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박하사는 런닝 차림으로 침상에 반쯤 누워 과자를 먹고 있었다. 아주 여유롭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바로 BNQ 최고참의 모습, 그것이었다. 그런 박하사가 영민을 슬쩍 본다.
그러나 그 순간 영민의 머릿속에서는 아침에 장하사가 자신에게 얘기 해 주었던 주의사항들이 새삼 상기되어졌다. 진땀이 나는 영민.
"와 안앉노?"
"괜찮습니다."
"앉아라카이!"
박하사의 목청이 조금 높아지자 망설여지는 영민. 앞에는 좀전에 자신을 닦달해 대던 오창우하사가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매서운 눈빛. 또다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영민. 문득 장하사가 나타나 자신을 도와줬으면 하는 헛된 기대를 한다.
말끔하게 약복을 다려입은 영민이 산꼭대기에 위치한 여기 공군 XXXX부대로 막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자신보다 한 기수 위인 장하사였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영민을 마중 나온 것이었다.
"야, 니가 이하사지? 이영민하사?"
"필승!"
"어 그래 됐고... 오느라 고생했다. 밥 안 먹었지?"
"...."
"나 따라와라 응? 긴장 풀고 임마."
장하사는 첫인상부터가 아주 좋았다. 그 편하고 밝은 인상이 영민의 칼날같던 긴장감을 조금 무디게 해 주었었다.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듬직한 체구의 장하사를 따라서 영민이 처음간 곳은 ´영외자 식당´ 이었다. 늦은 아침시간이었지만 식당안에는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 몇몇 장교와 하사관들이 있었다. 영민은 그들을 보고는 그만 바짝 얼어붙어 버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 영민의 등을 툭 치며 다시금 긴장을 풀어주는 장하사. 그가 대위를 향해 경계를 붙인다.
"필승! 많이 드십시오."
그러자 가볍게 목례로 장하사의 경례를 받아준 대위가 영민을 흘끔 바라본다.
"신임하산가 보네?"
"예! 하사 이영민! 그렇습니다!"
순간 식당안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영민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장하사가 움찔 놀랄 정도였다. 그러자 뒤쪽에서 중사하나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얌마! 여기가 훈련단 연병장이냐? 어디 식당에서 소릴 지르고 난리야?"
어쩔 줄 모르는 영민. 훈련단에선 무조건 목소리를 크게 내야만 했었다. 목소리 작다고 단체 얼차려를 받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여긴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얼른 장하사가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하하, 신임하사라 군기가 바짝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곤 영민을 돌아다 보며 나직히 입을 연다.
"이하사. 식당에서는 그렇게 고함 안 질러도 돼. 응?"
"예. 알겠습니다."
아까 보단 많이 힘이 빠진 영민의 목소리. 그러자 장하사가 바짝 다가오더니 다시한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야. 뒤에 ´알겠습니다´ 는 빼. 그건 임마 병들 말투야. 그냥 짧게 ´예´로 끝내라구."
"예......"
영민은 한껏 더 소리를 죽여 대답한다. 그러자 다시 장하사는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영민의 식판에다 밥과 반찬들을 이것저것 수북히 담는다. 그의 뒤를 강아지마냥 바짝 붙어 따라다니는 영민.
기분과 상관없이 밥맛은 엄청 좋았다. 처음엔 주위의 눈치를 보느라 깨작거렸지만 맘놓고 편안히 먹어라는 장하사의 말이 떨어지고 좀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있는 영민이었다. 그렇게 먹어대니 금방 식판 바닥이 드러났다.
"야, 너 좀 더 먹을래?
"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더 먹어도 돼. 너보고 돈내라구 안 할 테니까 더 먹고 싶음 더 먹어."
솔직히 더 먹고 싶었고 자신이 더 먹어도 장하사가 기분 나빠하진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영민은 그만먹기로 했다. 아무리 잘해 주더라도 초반부터 빠진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아닙니다.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
그러자 장하사는 어디론가 가더니 손수 물 한 컵을 떠온다.
"저... 제가..."
당혹스러운 영민.
"아니 됐어. 자 이거 마셔."
영민은 너무 잘해주는 장하사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받는 영민. 그러자 장하사가 피식 웃는다.
"너 이렇게 맛난밥은 앞으로 먹기 힘들 거다."
"......?"
"여긴 영외자 식당이야. 영외자들이 식사하는 곳이라구. 영내 하사들은 요 아래 사병식당에서 영내 병들이랑 같이 먹어."
"그렇습니까?"
어쩐지 밥맛이 너무 좋았었다. 흰 쌀밥에 훈련단 음식들과는 완전히 맛이 틀린 반찬들...... 그러나 이건 영외자들을 위한 식사였던 것이다.
"담배 피니?"
"예? 예......"
그러자 주저없이 담배하나를 건내는 장하사. 놀라는 영민. 얼떨결에 손까지 저으며,
"괜찮습니다."
"아냐. 담배 펴도 괜찮아. 받아."
"......"
"어서받아."
어쩔 수 없이 하나를 건네 받는 영민. 그러자 바로 라이터를 켜주는 장하사. 영민, 황송스럽다는 듯이 얼른 다가가 불을 붙인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장하사는 별거 아니란 표정으로 자신도 담배하나를 물고는 불을 당긴다.
"편하게 펴. 응? 앞으로도 내 앞에서는 긴장할 것 없어. 딱딱하게 굴지도 말고 목소리도 크게 하지마. 응?"
"예."
영민은 정말로 맘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건 비단 담배연기의 훈훈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장하사는 정말로 남을 편하게 만드는 남다른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둘이서 잠시간 말없이 담배를 피워대다가 이윽고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장하사가 입을 열었다.
"몇 가지만 주의 깊게 들어라. 이하사."
"예!"
영민은 다시금 정색을 하고는 담배를 끈 후, 들을 자세를 완벽히 갖춘다.
"우선 말이다. 절대로 다른 고참들 앞에선 웃지마라. 응? 특히 BNQ안에선 누가 뭐라고 해도 이빨 보여선 안돼. 어디서 짱구같은 놈이 튀어나와서 개지랄을 떨어대도 절대 웃지말란 말야. 알았지?"
"예."
"그래. 그리고 또하나 BNQ안에선 고참들 볼때마다 무조건 필승 때려. 금방 봤던 고참이 또 지나가도 또 경례하는 거야. 무슨말인지 알겠어? 무조건 대성박력으로 필승 때려. 넌 지금 제일 쫄병이지? 그러니까 누구든지 하사만보면 필승 때리면 되겠지?
"예."
"그리고 혹시라도 고참들이 편히 쉬라고 한다던지 TV를 보라고 한다던지 한번 웃어보라고 슬슬 분위기 잡아도 절대 거기에 속지마. 쉬라고 윽박을 질러대도 끝까지 버텨야 돼. 알았지? 나를 제외한 다른 고참들 앞에선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된단 말야. 나도 다른 고참들과 같이 있으면 내앞에서도 긴장 해야돼. 절대 BNQ안에서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마."
"예......"
장하사의 주위사항을 하나하나 듣고 있자니 영민은 절로 긴장이 되어 버렸고 좀전에 맛있게 먹었던 밥도 전혀 소화가 안 될 것 같았다. 장하사는 다시 담배하나를 권하며 자신도 한 대 피워 가면서 그 밖에 나머지 주위사항들과 BNQ 생활규칙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다.
이윽고 마지막 주위사항을 얘기하려는 장하사. 그런데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말야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장하사는 다시 새로운 담배하나를 꺼내 물었다. 꽤나 해비스모크였다. 인상이 점점 굳어지는 장하사. 그의 그런 표정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영민은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
더욱 의아해지는 영민. 그는 지금 장하사의 말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안됐다. 장하사는 조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말야. 정말 있어. 그런데 넌 말야...... 그 귀신얘기와 관련해서 조심해야 될게 세가지가 있거든."
"......?"
"여기 BNQ는 총 3호실까지 있는데 원래는 4호실까지 있었어. 그 4호실이 지금은 보급반 간이창고로 사용되어지고 있지. 즉 사람이 생활하진 안는다는 거야. 나중에 차차 알게 되겠지만 4호실은 3층 복도 오른쪽 맨 끝방이야. 즉 3호실 바로 옆이지. 근데 그게 왜 창고로 사용되어지는 줄 알아?"
"왜 그렇습니까?"
그러자 장하사는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말을 잇는다. 식판대 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음을 영민은 눈치챘다.
"그 BNQ 4호실 말야......"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던 장하사가 갑자기 머리를 젓는다.
"아냐, 그 얘기 다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데......"
하면서 영민의 표정을 한번 살핀다. 영민은 정말 듣고 싶어 죽겠다는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궁금했다. 그 귀신얘기가...... 그런데,
"너 대대장 신고 요령 아냐?"
"예? 예...... 대충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얘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것 같은 분위기 였다.
"너 좀 있다 신고하려면 그거 연습해 둬야돼. 귀신 얘기와 관련된 세 가지 주의 사항은 나중에 얘기 해줄게."
영민은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중간에서 그만 둘거면 처음부터 얘길 꺼내질 말았어야지...... 자신의 위치가 BNQ 최고 쫄병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장하사가 잠시 야속하게 느껴지는 영민. 그런데 그런 영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장하사가 피식 웃는다.
"너 무서운 얘기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얘기 계속 듣고 싶냐?"
"예?...... 예. 사실은 되게 궁금합니다."
영민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고참앞에선 웃으면 안된다는 불문율을 자신도 모르게 어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전혀 게의치 않는 장하사였다.
"그래? 그럼 마저 얘기 해 줄까?"
"예. 왜 창고가 된 겁니까?"
그러자 장하사도 얘기를 매듭짓고 싶어진 듯 다시금 예의 나직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돌아간다.
"BNQ 4호실 말야......"
"......?"
"그곳에서 사람이 세명이나 죽어나갔기 때문이야."
"예?"
적이 놀라는 영민. 그런 영민을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음 말을 잇는 장하사의 주위엔 사뭇 냉기까지 흐르고 있는 듯 했다.
"불과 2년 전의 일인데, 그 당시엔 신임하사가 들어오면 꼭 그 날 밤에 담력 테스트를 시키는 무시무시하고 엿같은 전통이 하나 있었거든. 그 날도 신임하사가 하나 들어오자 어김없이 고참들은 그를 불러 그 전통을 이행하게끔 했지."
전통? 담력 테스트? 영민은 점점 장하사의 얘기에 흥미가 간다.
"우선 일석 점호가 끝나자 고참 몇명이 그 신임하사를 BNQ 4호실로 불러 그 방에 얽힌 무시무시한 전설을 얘기 해 주었어. 그 내용인 즉, 그 4호실에서 밤 12에서 3시 사이에 혼자 거울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 거울 속에 비치던 자신의 모습이 밖으로 튀어나온다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지. 다 그 고참들이 지어낸 이야기였어.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임하사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 전설에 신경이 쓰였겠지. 아무튼 그 전설을 얘기 해준 후, 사색이 되어버린 신임하사를 혼자 4호실에 남겨 두고는 모두들 나와 버렸던 거야. 절대 자지말고 거울을 계속 보고 있다가 거울속의 녀석이 튀어나오면 놓치지 말고 꼭 잡고 있으란 협박어린 명령까지 내린 후 커다란 거울 하나를 놓고선 말야."
장하사는 그러고는 잠깐 시계를 본다. 시간은 꽤 흘러 있었다. 그러나 영민은 시간이야 어찌 되었건 얼른 다음 얘기를 계속 듣고 싶었다. 장하사는 이야기를 정말 실감나게 잘 하는 스타일이었다.
"시간이 꽤 됐네."
"장하사님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영민은 또다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장하사를 재촉했다. 그런 영민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장하사.
"근데 말야, 중간에 일이 잘못 되어버린거지. 그 신임하사가 잘 하고 있는지 궁금도 하고, 또 겁도 좀 주려고 새벽 두시쯤에 중간 고참 두명이 귀신 분장을 하고는 살며시 4호실로 들어가 봤는데......"
"......?"
"BNQ 4호실...... 불꺼진 BNQ 4호실 문을 열고 가만히 들어서던 귀신 분장의 고참 둘이 오히려 비명을 질러댄거야."
"......?"
"그 비명소리에 놀란 나머지 고참들이 우르르 뛰어 가 봤지. 그리고 4호실 문을 박차고는 한꺼번에 뛰어들어갔는데...... 모두들 놀라 자빠졌지. 그 안 광경이 어떠했는지 아니?"
"어떠했습니까?
그러자 장하사는 갑자기 몸서리가 쳐진다는 듯 머리를 몇번 저었다.
"BNQ 4호실 안에...... 그 신임하사녀석이 어두운 침상 한 가운데 꼿꼿하게 앉아서는 문을 열고 들어선 고참들을 빠꼼이 노려보고 있었다는데...... 그 녀석의 두 눈이 사람의 눈이 아니었던 거야!"
"......!"
"부엉이 마냥 똥그랗게 치켜 뜬 두 눈엔 흰자위만 가득했고 그 한가운덴 빨간 동자하나가 박혀있었대. 마치 두 눈 한가운데를 가늘고 뾰족한 못으로 푹 찔러서 새빨간 핏방울이 살짝 맺혀 있는 것처럼 말야. 그리고 그 끔찍스런 두 눈과는 대조적으로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어쩌면 그 섬뜩한 눈동자에 기묘하게 어울리는 미소였겠지. 그리고 두 손... 녀석은 두손을 마치 똑똑히 보란 듯이 문 쪽으로 쫙 펴고 있었는데, 그 손바닥은 시뻘건 피칠로 가득했어. 그리고 녀석의 앞에는 귀신분장을 했던 두 고참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둘 다 목이 덜렁거릴 정도로 어떤 날카로운 것에 베여져 있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4호실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
영민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한 줄 흘러내리며 차가운 냉기를 온몸으로 퍼트린다. 그 덕에 지금이 더운 여름이란 사실을 잠시 잊게 되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 때 그 신임하사뒤에 놓인 거울이었지! 그 거울은 누가 붙잡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바닥에 꼿꼿이 서 있었던 거야. 마치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처럼 말야......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응당 그 거울에 비쳐져야할 신임하사녀석의 뒷모습이 전혀 비쳐지지 않고 있었다는 거지!"
<펌>B.N.Q1
B.N.Q
(Bachelor Noncommissioned officer' Quarters)
- < 1 > -
"야! 너 뭐야 임마?"
"예, 하사 이영민!"
"야 이 시발놈아 니가 병(兵)이냐? 어?"
"예, 하사 이영민! 아닙니다!"
"야 이 새꺄! 관등성명 빼고 말 안 해?"
"예, 하사 이영민! 예... "
"저 시발놈이... 그래도..."
영민의 심장은 금새라도 폭발할 듯이 두근거렸고, 식은땀은 온몸을 타고 축축히 흘러 내렸다. 도대체 이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그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앞에서 자신을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는 저 고참은 도대체 어떤 대답을 원하고 있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으니, 그저 답답하고 불안할 뿐이었다.
"야, 이영민! 니 이름이 뭐그리 대단하다고 꼬박꼬박 나불대고 지랄이야?"
"......"
"야, 니 이름이 그렇게 대단해? 어?"
"아, 아닙니다."
"근데 임마!"
바로 그 때 뒤에서 구원자가 나타났다.
"야, 창우임마. 고마해라. 응? 막 들어온 아한테 와그라노?"
그러자 창우의 험악했던 표정이 급격하게 풀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한 웃음까지 띤다.
"예? 아니 이 새끼가 자꾸 띨방하게 굴어서 말입니다."
"니는 옛날에 더 띨방했다 임마!"
"예? 에이~ 또 왜 그러십니까 박하사님."
창우의 표정이 훨씬 더 누그러지며 박하사의 눈치를 슬슬 본다. 언뜻 봐도 상당히 쩔쩔 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박하사는 런닝 차림으로 침상에 반쯤 누워 과자를 먹고 있었다. 아주 여유롭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바로 BNQ 최고참의 모습, 그것이었다.
그런 박하사가 영민을 슬쩍 본다.
"야, 니 그렇게 뻘쭘이 서 가지고 뭐하노? 앉아라."
그러나 그 순간 영민의 머릿속에서는 아침에 장하사가 자신에게 얘기 해 주었던 주의사항들이 새삼 상기되어졌다.
진땀이 나는 영민.
"와 안앉노?"
"괜찮습니다."
"앉아라카이!"
박하사의 목청이 조금 높아지자 망설여지는 영민. 앞에는 좀전에 자신을 닦달해 대던 오창우하사가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매서운 눈빛. 또다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영민. 문득 장하사가 나타나 자신을 도와줬으면 하는 헛된 기대를 한다.
말끔하게 약복을 다려입은 영민이 산꼭대기에 위치한 여기 공군 XXXX부대로 막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자신보다 한 기수 위인 장하사였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영민을 마중 나온 것이었다.
"야, 니가 이하사지? 이영민하사?"
"필승!"
"어 그래 됐고... 오느라 고생했다. 밥 안 먹었지?"
"...."
"나 따라와라 응? 긴장 풀고 임마."
장하사는 첫인상부터가 아주 좋았다. 그 편하고 밝은 인상이 영민의 칼날같던 긴장감을 조금 무디게 해 주었었다.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듬직한 체구의 장하사를 따라서 영민이 처음간 곳은 ´영외자 식당´ 이었다.
늦은 아침시간이었지만 식당안에는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 몇몇 장교와 하사관들이 있었다. 영민은 그들을 보고는 그만 바짝 얼어붙어 버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 영민의 등을 툭 치며 다시금 긴장을 풀어주는 장하사. 그가 대위를 향해 경계를 붙인다.
"필승! 많이 드십시오."
그러자 가볍게 목례로 장하사의 경례를 받아준 대위가 영민을 흘끔 바라본다.
"신임하산가 보네?"
"예! 하사 이영민! 그렇습니다!"
순간 식당안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영민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장하사가 움찔 놀랄 정도였다. 그러자 뒤쪽에서 중사하나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얌마! 여기가 훈련단 연병장이냐? 어디 식당에서 소릴 지르고 난리야?"
어쩔 줄 모르는 영민. 훈련단에선 무조건 목소리를 크게 내야만 했었다. 목소리 작다고 단체 얼차려를 받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여긴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얼른 장하사가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하하, 신임하사라 군기가 바짝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곤 영민을 돌아다 보며 나직히 입을 연다.
"이하사. 식당에서는 그렇게 고함 안 질러도 돼. 응?"
"예. 알겠습니다."
아까 보단 많이 힘이 빠진 영민의 목소리. 그러자 장하사가 바짝 다가오더니 다시한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야. 뒤에 ´알겠습니다´ 는 빼. 그건 임마 병들 말투야. 그냥 짧게 ´예´로 끝내라구."
"예......"
영민은 한껏 더 소리를 죽여 대답한다. 그러자 다시 장하사는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영민의 식판에다 밥과 반찬들을 이것저것 수북히 담는다. 그의 뒤를 강아지마냥 바짝 붙어 따라다니는 영민.
기분과 상관없이 밥맛은 엄청 좋았다. 처음엔 주위의 눈치를 보느라 깨작거렸지만 맘놓고 편안히 먹어라는 장하사의 말이 떨어지고 좀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있는 영민이었다. 그렇게 먹어대니 금방 식판 바닥이 드러났다.
"야, 너 좀 더 먹을래?
"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더 먹어도 돼. 너보고 돈내라구 안 할 테니까 더 먹고 싶음 더 먹어."
솔직히 더 먹고 싶었고 자신이 더 먹어도 장하사가 기분 나빠하진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영민은 그만먹기로 했다. 아무리 잘해 주더라도 초반부터 빠진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아닙니다.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
그러자 장하사는 어디론가 가더니 손수 물 한 컵을 떠온다.
"저... 제가..."
당혹스러운 영민.
"아니 됐어. 자 이거 마셔."
영민은 너무 잘해주는 장하사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받는 영민. 그러자 장하사가 피식 웃는다.
"너 이렇게 맛난밥은 앞으로 먹기 힘들 거다."
"......?"
"여긴 영외자 식당이야. 영외자들이 식사하는 곳이라구. 영내 하사들은 요 아래 사병식당에서 영내 병들이랑 같이 먹어."
"그렇습니까?"
어쩐지 밥맛이 너무 좋았었다. 흰 쌀밥에 훈련단 음식들과는 완전히 맛이 틀린 반찬들...... 그러나 이건 영외자들을 위한 식사였던 것이다.
"담배 피니?"
"예? 예......"
그러자 주저없이 담배하나를 건내는 장하사. 놀라는 영민. 얼떨결에 손까지 저으며,
"괜찮습니다."
"아냐. 담배 펴도 괜찮아. 받아."
"......"
"어서받아."
어쩔 수 없이 하나를 건네 받는 영민. 그러자 바로 라이터를 켜주는 장하사. 영민, 황송스럽다는 듯이 얼른 다가가 불을 붙인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장하사는 별거 아니란 표정으로 자신도 담배하나를 물고는 불을 당긴다.
"편하게 펴. 응? 앞으로도 내 앞에서는 긴장할 것 없어. 딱딱하게 굴지도 말고 목소리도 크게 하지마. 응?"
"예."
영민은 정말로 맘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건 비단 담배연기의 훈훈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장하사는 정말로 남을 편하게 만드는 남다른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둘이서 잠시간 말없이 담배를 피워대다가 이윽고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장하사가 입을 열었다.
"몇 가지만 주의 깊게 들어라. 이하사."
"예!"
영민은 다시금 정색을 하고는 담배를 끈 후, 들을 자세를 완벽히 갖춘다.
"우선 말이다. 절대로 다른 고참들 앞에선 웃지마라. 응? 특히 BNQ안에선 누가 뭐라고 해도 이빨 보여선 안돼. 어디서 짱구같은 놈이 튀어나와서 개지랄을 떨어대도 절대 웃지말란 말야. 알았지?"
"예."
"그래. 그리고 또하나 BNQ안에선 고참들 볼때마다 무조건 필승 때려. 금방 봤던 고참이 또 지나가도 또 경례하는 거야. 무슨말인지 알겠어? 무조건 대성박력으로 필승 때려. 넌 지금 제일 쫄병이지? 그러니까 누구든지 하사만보면 필승 때리면 되겠지?
"예."
"그리고 혹시라도 고참들이 편히 쉬라고 한다던지 TV를 보라고 한다던지 한번 웃어보라고 슬슬 분위기 잡아도 절대 거기에 속지마. 쉬라고 윽박을 질러대도 끝까지 버텨야 돼. 알았지? 나를 제외한 다른 고참들 앞에선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된단 말야. 나도 다른 고참들과 같이 있으면 내앞에서도 긴장 해야돼. 절대 BNQ안에서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마."
"예......"
장하사의 주위사항을 하나하나 듣고 있자니 영민은 절로 긴장이 되어 버렸고 좀전에 맛있게 먹었던 밥도 전혀 소화가 안 될 것 같았다.
장하사는 다시 담배하나를 권하며 자신도 한 대 피워 가면서 그 밖에 나머지 주위사항들과 BNQ 생활규칙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다.
이윽고 마지막 주위사항을 얘기하려는 장하사. 그런데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말야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장하사는 다시 새로운 담배하나를 꺼내 물었다. 꽤나 해비스모크였다.
인상이 점점 굳어지는 장하사. 그의 그런 표정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영민은 단번에 감지할 수 있었다.
"이건 귀신 얘긴데..."
귀신?
영민은 의아하면서도 솔깃한 표정을 짓는다.
"이 부대엔 말야...... 귀신이 있어."
"예?"
더욱 의아해지는 영민. 그는 지금 장하사의 말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안됐다. 장하사는 조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말야. 정말 있어. 그런데 넌 말야...... 그 귀신얘기와 관련해서 조심해야 될게 세가지가 있거든."
"......?"
"여기 BNQ는 총 3호실까지 있는데 원래는 4호실까지 있었어. 그 4호실이 지금은 보급반 간이창고로 사용되어지고 있지. 즉 사람이 생활하진 안는다는 거야. 나중에 차차 알게 되겠지만 4호실은 3층 복도 오른쪽 맨 끝방이야. 즉 3호실 바로 옆이지. 근데 그게 왜 창고로 사용되어지는 줄 알아?"
"왜 그렇습니까?"
그러자 장하사는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말을 잇는다.
식판대 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음을 영민은 눈치챘다.
"그 BNQ 4호실 말야......"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던 장하사가 갑자기 머리를 젓는다.
"아냐, 그 얘기 다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데......"
하면서 영민의 표정을 한번 살핀다. 영민은 정말 듣고 싶어 죽겠다는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궁금했다. 그 귀신얘기가......
그런데,
"너 대대장 신고 요령 아냐?"
"예? 예...... 대충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얘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것 같은 분위기 였다.
"너 좀 있다 신고하려면 그거 연습해 둬야돼. 귀신 얘기와 관련된 세 가지 주의 사항은 나중에 얘기 해줄게."
영민은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중간에서 그만 둘거면 처음부터 얘길 꺼내질 말았어야지...... 자신의 위치가 BNQ 최고 쫄병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장하사가 잠시 야속하게 느껴지는 영민. 그런데 그런 영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장하사가 피식 웃는다.
"너 무서운 얘기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얘기 계속 듣고 싶냐?"
"예?...... 예. 사실은 되게 궁금합니다."
영민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고참앞에선 웃으면 안된다는 불문율을 자신도 모르게 어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전혀 게의치 않는 장하사였다.
"그래? 그럼 마저 얘기 해 줄까?"
"예. 왜 창고가 된 겁니까?"
그러자 장하사도 얘기를 매듭짓고 싶어진 듯 다시금 예의 나직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돌아간다.
"BNQ 4호실 말야......"
"......?"
"그곳에서 사람이 세명이나 죽어나갔기 때문이야."
"예?"
적이 놀라는 영민. 그런 영민을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음 말을 잇는 장하사의 주위엔 사뭇 냉기까지 흐르고 있는 듯 했다.
"불과 2년 전의 일인데, 그 당시엔 신임하사가 들어오면 꼭 그 날 밤에 담력 테스트를 시키는 무시무시하고 엿같은 전통이 하나 있었거든. 그 날도 신임하사가 하나 들어오자 어김없이 고참들은 그를 불러 그 전통을 이행하게끔 했지."
전통?
담력 테스트?
영민은 점점 장하사의 얘기에 흥미가 간다.
"우선 일석 점호가 끝나자 고참 몇명이 그 신임하사를 BNQ 4호실로 불러 그 방에 얽힌 무시무시한 전설을 얘기 해 주었어. 그 내용인 즉, 그 4호실에서 밤 12에서 3시 사이에 혼자 거울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 거울 속에 비치던 자신의 모습이 밖으로 튀어나온다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지. 다 그 고참들이 지어낸 이야기였어.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임하사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 전설에 신경이 쓰였겠지. 아무튼 그 전설을 얘기 해준 후, 사색이 되어버린 신임하사를 혼자 4호실에 남겨 두고는 모두들 나와 버렸던 거야. 절대 자지말고 거울을 계속 보고 있다가 거울속의 녀석이 튀어나오면 놓치지 말고 꼭 잡고 있으란 협박어린 명령까지 내린 후 커다란 거울 하나를 놓고선 말야."
장하사는 그러고는 잠깐 시계를 본다. 시간은 꽤 흘러 있었다. 그러나 영민은 시간이야 어찌 되었건 얼른 다음 얘기를 계속 듣고 싶었다. 장하사는 이야기를 정말 실감나게 잘 하는 스타일이었다.
"시간이 꽤 됐네."
"장하사님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영민은 또다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장하사를 재촉했다. 그런 영민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장하사.
"근데 말야, 중간에 일이 잘못 되어버린거지. 그 신임하사가 잘 하고 있는지 궁금도 하고, 또 겁도 좀 주려고 새벽 두시쯤에 중간 고참 두명이 귀신 분장을 하고는 살며시 4호실로 들어가 봤는데......"
"......?"
"BNQ 4호실...... 불꺼진 BNQ 4호실 문을 열고 가만히 들어서던 귀신 분장의 고참 둘이 오히려 비명을 질러댄거야."
"......?"
"그 비명소리에 놀란 나머지 고참들이 우르르 뛰어 가 봤지. 그리고 4호실 문을 박차고는 한꺼번에 뛰어들어갔는데...... 모두들 놀라 자빠졌지. 그 안 광경이 어떠했는지 아니?"
"어떠했습니까?
그러자 장하사는 갑자기 몸서리가 쳐진다는 듯 머리를 몇번 저었다.
"BNQ 4호실 안에...... 그 신임하사녀석이 어두운 침상 한 가운데 꼿꼿하게 앉아서는 문을 열고 들어선 고참들을 빠꼼이 노려보고 있었다는데...... 그 녀석의 두 눈이 사람의 눈이 아니었던 거야!"
"......!"
"부엉이 마냥 똥그랗게 치켜 뜬 두 눈엔 흰자위만 가득했고 그 한가운덴 빨간 동자하나가 박혀있었대. 마치 두 눈 한가운데를 가늘고 뾰족한 못으로 푹 찔러서 새빨간 핏방울이 살짝 맺혀 있는 것처럼 말야. 그리고 그 끔찍스런 두 눈과는 대조적으로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던 거야. 아니 어쩌면 그 섬뜩한 눈동자에 기묘하게 어울리는 미소였겠지. 그리고 두 손... 녀석은 두손을 마치 똑똑히 보란 듯이 문 쪽으로 쫙 펴고 있었는데, 그 손바닥은 시뻘건 피칠로 가득했어. 그리고 녀석의 앞에는 귀신분장을 했던 두 고참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둘 다 목이 덜렁거릴 정도로 어떤 날카로운 것에 베여져 있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4호실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
영민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한 줄 흘러내리며 차가운 냉기를 온몸으로 퍼트린다. 그 덕에 지금이 더운 여름이란 사실을 잠시 잊게 되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 때 그 신임하사뒤에 놓인 거울이었지! 그 거울은 누가 붙잡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바닥에 꼿꼿이 서 있었던 거야. 마치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처럼 말야......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응당 그 거울에 비쳐져야할 신임하사녀석의 뒷모습이 전혀 비쳐지지 않고 있었다는 거지!"
"예?... 그, 그럼..."
영민은 말까지 더듬거린다.
"저... 정말로 거울 속의 녀석이......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겁니까?"
장하사는 싸늘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