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Q장이 나가고 나자 조금 숨통이 트였는지 장하사가 영민의 옆 침상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좀 전의 Q장 못지 않은 긴 한숨을 내뿜는다.
" 시발, B N Q 요즘 왜 이 모양이냐 정말... 기우 녀석 사건 일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게 터지냐 그래..... 휴우~ "
그렇게 한탄을 해대는 장하사를 보고 있으니 영민은 괜히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기가 이런 사건들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도 되는 듯이. 사실 이상스럽게도 자신이 이 부대로 오자마자 이런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B N Q에서 연달아 터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영민 자신이 의도했던 것들은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조금 어두운 표정이 되어 기가 죽은 영민을 문득 바라보는 장하사.
" 야, 기운 내 임마. 괜찮으니까. 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
장하사는 성큼성큼 TV 쪽으로 다가가더니 그 앞에 놓인 주전자를 집어들곤 벌컥벌컥 마셔댄다. 그것은 B N Q 고참용 물이었다. 쫄병들은 감히 먹어선 안 될. 영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자 장하사가 영민을 휙 돌아보며,
" 너도 마실래? "
한다. 사실 상당히 갈증이 나는 영민이었다. 정말 장하사처럼 주전자채로 시원스레 벌컥벌컥 마셔대고 싶었다. 하지만......
" 괜찮습니다. "
그러자 장하사가 영민의 속을 들여다본 듯 주전자를 들고 온다.
" 마셔. 괜찮아. 시발 목마르면 물마시라고 있는게 주전잔데..... 맨날 떠오기도 우리가 떠오잖아. 마셔 아무도 없잖아. "
그러자 좀 망설이던 영민도 이윽고 주전자를 건네 받아 시원스레 물을 들이킨다. 피식 웃는 장하사.
" 맛있냐? "
영민은 입가에 흘러내리는 물을 훔쳐내며 자신도 같이 웃는다.
" 예. "
영민은 물을 모두 마시곤 장하사로부터 끊어졌던 시간의 상황들을 다 듣게 된다. 그리곤 새삼 놀랜다.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전빈영 하사는 처음부터 김대명 하사를 노리고 몽둥이를 날렸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김대명 하사의 옆머리를 가격했고 터져나온 피는 무의식적으로 돌아보려던 영민의 얼굴 위를 덮쳤었다. 비명 역시 김대명 하사가 질렀고 그 끔찍한 소리와 자신의 얼굴로 뿌려진 피를 보고 영민은 그만 기절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Q장과 1호실 하사들은 급히 전빈영 하사를 저지했고 쓰러진 영민과 김대명 하사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전빈영 하사의 의지는 꽤나 대단했었다. 순식간에 주위를 뿌리치고 다시 김대명 하사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를 날렸었다. 몽둥이는 김대명 하사의 등과 어깨를 연이어 강타했고 다시 달려든 한무리의 하사들이 가까스로 전빈영 하사를 1호실 밖으로 끌어내 버렸다. 김대명 하사는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놀랍게도 그때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생생하게 치켜 뜬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 거려댔다. 그러고 있는데 옆호실 병들의 신고를 받고 올라온 당직사관에 의해 상황은 종료가 된다. 당직사관은 곧바로 전빈영 하사를 사관실로 데려갔고 김대명 하사는 자고있던 의무병을 깨워 응급치료를 하게 한 다음 그곳 침대에 누워있게 했다. 김대명 하사의 상처는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머리가 터졌지만 출혈은 금방 멎고 상처도 외관상 드러나 보이진 않았다. 등과 팔, 어깨, 옆구리 등에 구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역시 대단히 희미한 경상이었고 정작 김대명 하사 자신이 그다지 그곳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상스러울 정도로 외상이 없었다.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피들이 다 어디서 쏟아졌던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부대장 보고를 하지 않고 그냥 넘길 수도 있을 법 했다. 당연히 Q장은 당직사관을 설득했고 평소 Q장과 꽤 친분이 있었던 당직사관은 고심 끝에 과감히 그러기로 결정했다. 사실 박기우 하사 사건에서 벗어난지도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었고, 그만큼 부대장의 신경 또한 날카로워져 있었다. 당직계열의 특별 근무 강화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고, 모든 부대원들은 작은 질책 하나라도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던 때였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부대장의 귀에 들어간다면 부대의 분위기가 그야말로 개판이 될 건 불을 보듯 뻔했고 뿐만 아니라 당직사관이었던 자신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B N Q는 완전히 찍혀버려 어떤 무시무시한 처벌이 내려질지 모를 일이었다. 부대장은 자신이 옷을 벗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B N Q를 완전히 짓밟아버릴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추측해볼 때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눈 딱 감고 조용히 넘어가 주는 것임을 당직사관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은 일요일이었다. 김대명 하사가 내일까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월요일에 그다지 흉측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근무 상번만 할 수 있게 된다면 일은 깨끗이 수습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김대명 하사의 모습으로 보아선 그렇게 될 가망이 높았다.
" 그럼 이번 사건은 다 끝난겁니까? 그렇게 사관님과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으면... "
이야기를 한참 듣든 영민이 물었다. 그러자 장하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 근데 말야...... 전하사님이 문제였던 거야. "
" 예? 전하사님이......? "
" 아이...... 그...... "
하다가 1호실의 문을 힐끔 살피더니 목소리를 좀 더 낮추며,
" 그 십새끼가 자꾸 일을 어렵게 만드는 거야. "
" 예? 전하사님이 말입니까? "
" 그래...... 미친새끼...... "
" 어떻게 말입니까? "
영민은 의아해하며 다그쳐 물었다. 장하사는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는 듯이 찌푸린 인상이 되어 있었다.
" 사관님이 물어봤대. 왜 그랬냐고... 부대장에게 보고는 안할 테니까 자기에게만 말을 해보라고. 왜 그런 짓을 했냐고...... 그랬더니 전하사가 뭐랬는 줄 아냐? "
" 뭐라고 했습니까? "
장하사는 말하기에 앞서 먼저 기가 차다는 듯 비소를 흘렸다.
" 김대명 하사님이 기우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야. "
" 예? "
" 그리고 또 뭐라는 줄 알아? 김대명 하사가 악령이라는 거야. 그리고 그 자신은 그 악령을 처치하던 중이었고...... 햐~ 나 참 기도 안차지. 이러니 사관님이라고 봐주고 싶겠어? 대번에 미친새끼가 어디서 헛소리냐고 광분하시고 Q장님은 그런 사관님 진정시킨다고 고생하고......Q장님이 전하사 때문에 아주 죽을 상이 되어서는 돌아오시더라구. "
영민은 곰곰이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피묻은 몽둥이를 들었던 전빈영 하사의 그 눈빛을...... 그 눈빛은...... 매서웠지만 분명 상당히 진지했었다. 만약에 전빈영 하사가 미친 것이라면 정말 완벽하게 제대로 미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가 만에 하나 미치지 않았다면......?
" 그래서 전하사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
" 완전 미친놈인데 무슨 말이 통하겠어? Q장님이 그런 쪽으로 사관님을 잘 설득시켰었나봐. 사관님이 결국은 포기하고 반성문 30장 써오라고 하면서 돌려보냈지. 히히... 고생 좀 하겠네. 그 새끼. "
영민은 잠시 골몰히 생각에 빠졌다가, 별안간 고개를 치켜든다. 그리곤 장하사를 짐짓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 그럼 지금 2호실에 전하사님 계신 겁니까? "
" 뭐?...... 그, 그래. 그렇겠지 뭐. "
영민은 새삼 한기를 느낀다. 그리곤 1호실의 문을 쳐다본다. 휘둥그런 눈으로 영민의 시선을 무의미하게 쫓는 장하사. 1호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영민은 왠지 불안하다. 저 문 뒤...... 저 문 뒤에서 전빈영 하사가 지금의 이 이야기들을 죄다 엿듣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밀려든다. 언젠가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다시금 몸서리가 쳐지는 영민.
" 왜? "
영문을 모르는 장하사가 조금 불안한 모습이 되어 묻자 영민은 금새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둔다.
" 아닙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
" 어. Q장님이 너 안정 취하라고 모두 다 내쫓았어. 너도 기우처럼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건 아닐까 하고 얼마나 걱정했다고..... 오히려 김하사님보다 니가 더 걱정이 됐어. "
그랬구나. Q장의 배려였다. 막내인 영민이 최대한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그렇게 놀랬던 가슴이 정말 빠르게 진정되고 있음을 느꼈다. 영민은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 새벽 네 시 십 분...... 자신인 언제쯤 정신을 잃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길어봐야 두,세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민은 너무도 긴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일들이...... 영민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영민은 뒷덜미에서 예리한 통증을 느꼈다.
" 윽! "
영민이 인상을 찌푸리자 장하사가 다시 놀란 얼굴이 되어 영민을 살핀다.
" 야, 왜그래? 어디 아프냐? "
그러나 대단치는 않았다. 영민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 아닙니다. 그냥 뒷목이 좀 쑤셔서 말입니다. "
" 어디 좀 보자. "
장하사가 영민의 뒷목을 살핀다. 그러더니 깜짝 놀라는 장하사.
" 힉, 야, 너 목이 왜이래? 너 누구한테 맞았었냐? "
" 예? 왜그러십니까? "
" 온통 피멍이야 임마.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랬어? "
영민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입대 후 지금껏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맞아 본 적은 없었던 영민이었다. 물론 오가면서 성질 사나운 고참들에게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힌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피멍이 들 정도로 대놓고 맞은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어깨도 쑤셔왔다. 영민은 반소매 셔츠를 어깨위로 완전히 걷어올려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양쪽 어깨 부근에도 시뻘건 피멍이 들어 있었다.
" 헉! "
장하사도 곧 그것을 보곤 놀란다.
" 야, 너 뭐야 이것들... 누구한테 맞았어? 어? "
똑똑한 손가락 자국들까지 남아있는 피멍. 이것들은... 그 순간, 영민의 머리속으로 재빨리 끼어 드는 플래시백 하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김대명 하사. 전빈영 하사가 1호실로 뛰어들었을 때 뒤에서 자신의 뒷목을 움켜쥐었던 김대명 하사. 김대명 하사. 그의 짓이었다! 그 때 그의 손아귀에는 정도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었고 영민은 공포 속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플래쉬백이 끝나자 영민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는 문득 장하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영민의 표정을 보며 흠칫 놀라는 장하사.
" 왜? "
" 장하사님. "
" ......? "
" 만약에 말입니다. "
" 만약에 뭐? "
" 만약에 전빈영 하사님이 미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
" ......! "
" 전하사님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 땐 어떻게 되는 겁니까? "
" 뭐야? "
장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의외로 심각한 영민의 눈빛을 보면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그리고는 이내 장하사마저도 심각해진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 사이에 대화는 없다. 납덩이같은 침묵만이 1호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린 미등 아래서. 그리고 그 시각, B N Q 1호실 문 밖. 누군가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안의 얘기를 죄다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안에서 말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자 그는 슬며시 자리를 뜬다. 시커먼 실루엣만 보이는 그의 발걸음은 의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무실로......
<펌>B.N.Q12
그렇게 Q장이 나가고 나자 조금 숨통이 트였는지 장하사가 영민의 옆 침상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좀 전의 Q장 못지 않은 긴 한숨을 내뿜는다.
" 시발, B N Q 요즘 왜 이 모양이냐 정말... 기우 녀석 사건 일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게 터지냐 그래..... 휴우~ "
그렇게 한탄을 해대는 장하사를 보고 있으니 영민은 괜히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기가 이런 사건들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도 되는 듯이. 사실 이상스럽게도 자신이 이 부대로 오자마자 이런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B N Q에서 연달아 터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영민 자신이 의도했던 것들은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조금 어두운 표정이 되어 기가 죽은 영민을 문득 바라보는 장하사.
" 야, 기운 내 임마. 괜찮으니까. 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
장하사는 성큼성큼 TV 쪽으로 다가가더니 그 앞에 놓인 주전자를 집어들곤 벌컥벌컥 마셔댄다. 그것은 B N Q 고참용 물이었다. 쫄병들은 감히 먹어선 안 될. 영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자 장하사가 영민을 휙 돌아보며,
" 너도 마실래? "
한다.
사실 상당히 갈증이 나는 영민이었다. 정말 장하사처럼 주전자채로 시원스레 벌컥벌컥 마셔대고 싶었다. 하지만......
" 괜찮습니다. "
그러자 장하사가 영민의 속을 들여다본 듯 주전자를 들고 온다.
" 마셔. 괜찮아. 시발 목마르면 물마시라고 있는게 주전잔데..... 맨날 떠오기도 우리가 떠오잖아. 마셔 아무도 없잖아. "
그러자 좀 망설이던 영민도 이윽고 주전자를 건네 받아 시원스레 물을 들이킨다. 피식 웃는 장하사.
" 맛있냐? "
영민은 입가에 흘러내리는 물을 훔쳐내며 자신도 같이 웃는다.
" 예. "
영민은 물을 모두 마시곤 장하사로부터 끊어졌던 시간의 상황들을 다 듣게 된다. 그리곤 새삼 놀랜다.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전빈영 하사는 처음부터 김대명 하사를 노리고 몽둥이를 날렸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김대명 하사의 옆머리를 가격했고 터져나온 피는 무의식적으로 돌아보려던 영민의 얼굴 위를 덮쳤었다. 비명 역시 김대명 하사가 질렀고 그 끔찍한 소리와 자신의 얼굴로 뿌려진 피를 보고 영민은 그만 기절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Q장과 1호실 하사들은 급히 전빈영 하사를 저지했고 쓰러진 영민과 김대명 하사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전빈영 하사의 의지는 꽤나 대단했었다.
순식간에 주위를 뿌리치고 다시 김대명 하사에게 달려들어 몽둥이를 날렸었다. 몽둥이는 김대명 하사의 등과 어깨를 연이어 강타했고 다시 달려든 한무리의 하사들이 가까스로 전빈영 하사를 1호실 밖으로 끌어내 버렸다. 김대명 하사는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놀랍게도 그때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더 생생하게 치켜 뜬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 거려댔다.
그러고 있는데 옆호실 병들의 신고를 받고 올라온 당직사관에 의해 상황은 종료가 된다. 당직사관은 곧바로 전빈영 하사를 사관실로 데려갔고 김대명 하사는 자고있던 의무병을 깨워 응급치료를 하게 한 다음 그곳 침대에 누워있게 했다.
김대명 하사의 상처는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머리가 터졌지만 출혈은 금방 멎고 상처도 외관상 드러나 보이진 않았다. 등과 팔, 어깨, 옆구리 등에 구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역시 대단히 희미한 경상이었고 정작 김대명 하사 자신이 그다지 그곳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상스러울 정도로 외상이 없었다.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피들이 다 어디서 쏟아졌던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부대장 보고를 하지 않고 그냥 넘길 수도 있을 법 했다.
당연히 Q장은 당직사관을 설득했고 평소 Q장과 꽤 친분이 있었던 당직사관은 고심 끝에 과감히 그러기로 결정했다.
사실 박기우 하사 사건에서 벗어난지도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었고, 그만큼 부대장의 신경 또한 날카로워져 있었다. 당직계열의 특별 근무 강화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고, 모든 부대원들은 작은 질책 하나라도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던 때였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부대장의 귀에 들어간다면 부대의 분위기가 그야말로 개판이 될 건 불을 보듯 뻔했고 뿐만 아니라 당직사관이었던 자신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B N Q는 완전히 찍혀버려 어떤 무시무시한 처벌이 내려질지 모를 일이었다. 부대장은 자신이 옷을 벗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B N Q를 완전히 짓밟아버릴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추측해볼 때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눈 딱 감고 조용히 넘어가 주는 것임을 당직사관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은 일요일이었다.
김대명 하사가 내일까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월요일에 그다지 흉측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근무 상번만 할 수 있게 된다면 일은 깨끗이 수습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김대명 하사의 모습으로 보아선 그렇게 될 가망이 높았다.
" 그럼 이번 사건은 다 끝난겁니까? 그렇게 사관님과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으면... "
이야기를 한참 듣든 영민이 물었다. 그러자 장하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 근데 말야...... 전하사님이 문제였던 거야. "
" 예? 전하사님이......? "
" 아이...... 그...... "
하다가 1호실의 문을 힐끔 살피더니 목소리를 좀 더 낮추며,
" 그 십새끼가 자꾸 일을 어렵게 만드는 거야. "
" 예? 전하사님이 말입니까? "
" 그래...... 미친새끼...... "
" 어떻게 말입니까? "
영민은 의아해하며 다그쳐 물었다. 장하사는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는 듯이 찌푸린 인상이 되어 있었다.
" 사관님이 물어봤대. 왜 그랬냐고... 부대장에게 보고는 안할 테니까 자기에게만 말을 해보라고. 왜 그런 짓을 했냐고...... 그랬더니 전하사가 뭐랬는 줄 아냐? "
" 뭐라고 했습니까? "
장하사는 말하기에 앞서 먼저 기가 차다는 듯 비소를 흘렸다.
" 김대명 하사님이 기우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야. "
" 예? "
" 그리고 또 뭐라는 줄 알아? 김대명 하사가 악령이라는 거야. 그리고 그 자신은 그 악령을 처치하던 중이었고...... 햐~ 나 참 기도 안차지. 이러니 사관님이라고 봐주고 싶겠어? 대번에 미친새끼가 어디서 헛소리냐고 광분하시고 Q장님은 그런 사관님 진정시킨다고 고생하고......Q장님이 전하사 때문에 아주 죽을 상이 되어서는 돌아오시더라구. "
영민은 곰곰이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피묻은 몽둥이를 들었던 전빈영 하사의 그 눈빛을...... 그 눈빛은......
매서웠지만 분명 상당히 진지했었다.
만약에 전빈영 하사가 미친 것이라면 정말 완벽하게 제대로 미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가 만에 하나 미치지 않았다면......?
" 그래서 전하사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
" 완전 미친놈인데 무슨 말이 통하겠어? Q장님이 그런 쪽으로 사관님을 잘 설득시켰었나봐. 사관님이 결국은 포기하고 반성문 30장 써오라고 하면서 돌려보냈지. 히히... 고생 좀 하겠네. 그 새끼. "
영민은 잠시 골몰히 생각에 빠졌다가, 별안간 고개를 치켜든다. 그리곤 장하사를 짐짓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 그럼 지금 2호실에 전하사님 계신 겁니까? "
" 뭐?...... 그, 그래. 그렇겠지 뭐. "
영민은 새삼 한기를 느낀다. 그리곤 1호실의 문을 쳐다본다. 휘둥그런 눈으로 영민의 시선을 무의미하게 쫓는 장하사.
1호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영민은 왠지 불안하다. 저 문 뒤...... 저 문 뒤에서 전빈영 하사가 지금의 이 이야기들을 죄다 엿듣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밀려든다. 언젠가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다시금 몸서리가 쳐지는 영민.
" 왜? "
영문을 모르는 장하사가 조금 불안한 모습이 되어 묻자 영민은 금새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둔다.
" 아닙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
" 어. Q장님이 너 안정 취하라고 모두 다 내쫓았어. 너도 기우처럼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건 아닐까 하고 얼마나 걱정했다고..... 오히려 김하사님보다 니가 더 걱정이 됐어. "
그랬구나.
Q장의 배려였다. 막내인 영민이 최대한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그렇게 놀랬던 가슴이 정말 빠르게 진정되고 있음을 느꼈다.
영민은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
새벽 네 시 십 분......
자신인 언제쯤 정신을 잃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길어봐야 두,세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민은 너무도 긴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일들이......
영민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영민은 뒷덜미에서 예리한 통증을 느꼈다.
" 윽! "
영민이 인상을 찌푸리자 장하사가 다시 놀란 얼굴이 되어 영민을 살핀다.
" 야, 왜그래? 어디 아프냐? "
그러나 대단치는 않았다. 영민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 아닙니다. 그냥 뒷목이 좀 쑤셔서 말입니다. "
" 어디 좀 보자. "
장하사가 영민의 뒷목을 살핀다. 그러더니 깜짝 놀라는 장하사.
" 힉, 야, 너 목이 왜이래? 너 누구한테 맞았었냐? "
" 예? 왜그러십니까? "
" 온통 피멍이야 임마.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랬어? "
영민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입대 후 지금껏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맞아 본 적은 없었던 영민이었다. 물론 오가면서 성질 사나운 고참들에게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힌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피멍이 들 정도로 대놓고 맞은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어깨도 쑤셔왔다. 영민은 반소매 셔츠를 어깨위로 완전히 걷어올려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양쪽 어깨 부근에도 시뻘건 피멍이 들어 있었다.
" 헉! "
장하사도 곧 그것을 보곤 놀란다.
" 야, 너 뭐야 이것들... 누구한테 맞았어? 어? "
똑똑한 손가락 자국들까지 남아있는 피멍.
이것들은...
그 순간, 영민의 머리속으로 재빨리 끼어 드는 플래시백 하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김대명 하사. 전빈영 하사가 1호실로 뛰어들었을 때 뒤에서 자신의 뒷목을 움켜쥐었던 김대명 하사. 김대명 하사. 그의 짓이었다! 그 때 그의 손아귀에는 정도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었고 영민은 공포 속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플래쉬백이 끝나자 영민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는 문득 장하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영민의 표정을 보며 흠칫 놀라는 장하사.
" 왜? "
" 장하사님. "
" ......? "
" 만약에 말입니다. "
" 만약에 뭐? "
" 만약에 전빈영 하사님이 미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
" ......! "
" 전하사님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 땐 어떻게 되는 겁니까? "
" 뭐야? "
장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의외로 심각한 영민의 눈빛을 보면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그리고는 이내 장하사마저도 심각해진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 사이에 대화는 없다. 납덩이같은 침묵만이 1호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린 미등 아래서.
그리고 그 시각, B N Q 1호실 문 밖.
누군가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안의 얘기를 죄다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안에서 말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자 그는 슬며시 자리를 뜬다.
시커먼 실루엣만 보이는 그의 발걸음은 의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무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