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은 새로이 연기를 빨아들이면서 좀 전에 들었던 도기석 병장의 말들을 반추해 보았다. 그리고 전빈영 하사에 대해서도...... 그는 나쁜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박기우 하사와 김대명 하사를 그렇게 심하게 구타했는데도? 그러나 박기우 하사는 그가 그랬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김대명 하사의 일 역시 의심의 여지가 많다. 정말 그가 김하사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 순간 절대 불을 켜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많은 B N Q 인원이 있는 가운데서 그를 죽이겠다는 시도 자체부터가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는 김대명 하사의 말처럼 4호실 귀신이 아닌 것이다. 그는 엄연한 사람이다. 단지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렇다면 그가 김대명 하사를 공격했을 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뭘까?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는 영민.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꽁초를 휴지통에 던지는데, 불똥이 사방으로 튀면서 동시에 영민의 머리속을 번뜩이는 사념 하나가 있다. '지금까지 너무 한가지 시선으로만 상황을 생각했었구나.' 김대명 하사..... 그는 어떤가? 그는 정말 영민이 예전부터 느껴왔던 것처럼 좋은 사람이 맞는가? 만일 정말 그렇다면 앞뒤가 안맞는다. 전빈영 하사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김대명 하사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 누가 누구를 특별히 공격할 이유가 없다. 특이한 예는 집어치우자. 모두를 일직선상에 동일하게 놓고 단순히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공격한다. 그런데 둘은 모두 정상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공격을 당하는 자가 공격을 가하는 자에게 뭔가 나쁜 행동이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김대명 하사가 전빈영 하사에게 뭔가 좋지 않은, 그것도 상당히(죽이고 싶을 만큼의) 나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전빈영 하사가 그에 응징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영민은 그날 밤,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던 김대명 하사의 모습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그러자 순간 무의식적인 전율이 영민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영민도 깜짝 놀랬다. 왜 이런 전율이 느껴지는 건지?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물이 스며들 듯이 몸속으로 조금씩 침투해오는 이 공포감은?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치켜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생각 하나! 그것들은 영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그의 머릿속에서 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김... 대... 명... 하... 사... 는... 누... 구... 인... 가... ? 그... 는... 정... 말... 예... 전... 에... 내... 가... 알... 던... 김... 대... 명... 하... 사... 가... 맞... 나... ?' '아냐. 왜 이런 생각까지...!' 그러나, 영민이 어느 순간 인기척을 느끼며 뒤를 홱 돌아보았을 때, 그 곳엔 유령보다도 더 무서운 모습의 김대명 하사가 거짓말처럼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노려다보고 있었다.
" 허억! "
저도 모르게 나직한 비명을 토하며 영민은 그만 뒷걸음질까지 친다. 상대가 B N Q 고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경례 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영민의 눈에 비친 김대명 하사의 모습은 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다. 슬슬 뒷걸음을 치며 운영계 쪽으로 향하는 영민. 그러나 김대명 하사가 마침내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이며 다가온다.
" 야, 이영민. 새꺄 너 지금 뭐하냐? 어? "
다가오는 김대명 하사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냉기. 영민은 그에게서 강한 거부감과 함께 본능적인 위기의식을 느낀다.
" 이영민! "
어느새 바짝 다가온 김대명 하사가 목청을 높인다. 순간 화들짝 놀라며 새삼 김대명 하사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영민. 정신을 수습한다. 정신 차려라 이영민, 정신차려......
" 피, 필승! "
그제서야 영민의 떨리는 손이 올라갔다. 김대명 하사는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아니 어쩜 그냥 미소였을지도 모른다. 단지 영민에게만이 그것이 차갑게 느껴졌을 것이다.
" 장난치냐? 지금. 어? "
" 아, 아닙니다. "
" 너 좀 전에 나보고는 왜 도망가려 했어? "
" 예? "
" 금방 도망가려 했었잖아? "
" 아, 아닙니다. "
" 뭐야? "
김대명 하사는 가소롭다는 듯 다시 한번 냉소를 띤다. 영민의 심장이 요동을 친다. 너무 소리가 커서 김대명 하사가 듣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까지 들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 야, 이영민. 너 내가 겂나냐? "
김대명 하사는 영민의 속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 했다. 애써 부인하려는 영민.
" 아, 아닙니다. "
그러나 상당히 떨리고 있는 영민의 음성이 이미 자신의 대답에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입으론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몸으론 그것을 강하게 시인하고 있으니......
" 야, 이영민. 너 왜그러냐? 어? "
" ...... "
" 너 눈엔 나까지도 귀신으로 보이냐? "
" 예? "
" 그런거냐? 내가 귀신같이 보여? "
" ...... "
" 임마 아냐! 너 진짜 귀신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 "
진짜 귀신......? 과연 그게 누구인가? 영민은 정말 모를 일이었다. 누가 귀신인가......? 누가 진짜 귀신인가......? 형언할 수 없는 싸늘한 전율에 뒤덮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영민과 그 전율의 원천같은 김대명 하사의 무시무시한 눈빛이 한동아 숨이 막히도록 암담한 침묵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결국 김대명 하사가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 이영민...... 넌 알잖아. 그렇지? "
" ...... "
한층 누그러든 분위기에 영민은 일단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안심이 좀 되자 다시 한번 김대명 하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영민. 그의 얼굴엔 뿔같은 것도 없고 입가에 피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김대명 하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얼굴에 귀신티를 내지 않고 나타나는 귀신이 진짜 무서운 법이다. 그러자 다시 그의 마음을 읽은 듯 김대명 하사의 조금 다급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임마...... 전빈영 하사야. 그 자식이 진짜 귀신이란 말야. 몰라? "
" ...... "
" 아직 아무도 눈치를 못 채고 있어. 그렇다고 내가 진실을 말할 수도 없어. 그렇잖아? 누가 내 말을 믿겠어? 오히려 미친 놈 취급만 받지. 내가 그 일 이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과 같이 행동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
김대명 하사의 말에 영민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갈 법도 했다. 그러나 왠지 그의 말에도 백프로 믿음이 가진 않는다.
" 하지만 넌 알고 있잖아? 너만은 날 믿고 따라줘야 해. 난 지금 기회를 노리고 있어. 놈을 처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단 말야. 너도 날 좀 도와줘야 해. 응? 이영민! 너하고 난 한편이야. 알아? "
" ...... "
" 응? "
" 예..... "
성화같은 김하사의 재촉에 영민이 겨우 열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할 무렵, 뒤에서 누군가가 영민을 부른다.
" 야, 이하사. 너 담배 몇 대나 피는거야? 어? "
놀라 돌아보니 근무장 선임하사가 슬슬 다가오고 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걸 봐선 그도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모양이다. 아닌게 아니라 근무장을 떠나고 너무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전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임하사로선 꽤나 건방진 행동일 수도 있었다.
" 아, 죄송합니다. 선임하사님. 곧바로 들어가겠습니다. "
그러나 영민을 평소 마음에 들어하던 선임하사는 빙글빙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불을 붙인다.
" 너랑 얘기하던 그 놈은 누구냐? "
" 예? 아, 여기... "
그러나 영민이 돌아보면 김대명 하사는 없다.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후다. 그저 더운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만이 그 자리를 내리쬐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둥절한 모습의 영민. 좀 전까지 옆에 있었던 사람이...
" 걔 아까 갔어. 내가 나오자마자 가던데? 니 쫄병이냐? "
" 예? 아닙니다. 제 쫄병이 어디 있습니까? "
" 그럼 너 괴롭히는 고참이냐? "
" 아닙니다. "
영민이 과장스런 표정으로 부인하자, 알았다는 듯 선임하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 그 놈 상판때기 보니까 되게 심각하던데..... 뭔 일 있냐? "
" 예? "
영민은 순간 선임하사를 잠깐 바라본다. 그렇다. 어쩌면 그에게 다 털어놓고 정말 심각하게 면담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B N Q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 신임하사인 영민이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도 힘들었다. 그리고 이 일은 어느 정도의 연장자가 나서서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이었다. 아직 철부지나 다름 없는 영민이나 B N Q 고참들이 해결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 왜? "
선임하사가 계속 자신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영민을 의아해한다. 번뜩 정신을 차리는 영민.
" 아, 아닙니다. 그냥 근무 열심히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
" 그래? "
" 예. 그럼, 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
영민은 좀 지친 발걸음이 되어 운영계로 향했다. 그리고 좀 전의 생각으로 돌아가 끝을 맺어 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선임하사가 과연 이 말을 믿어줄까? 아니 부대 내에서 이 말을 믿어줄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김대명 하사의 말이 맞는 것이다.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기에 영민으로선 더욱 무서운 일인 것이다. 근무장에 돌아오니 도기석 병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영민을 흘끔 본다. 영민은 도기석 병장이 아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머리가 정말로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도무지 정리가 안되었다. 누구를 믿어야 하나......
그 날 저녁, 영민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식판을 들고 그의 앞에 앉는다. 흠칫 놀라 바라보니 전빈영 하사다. 숨이 콱 막혀오는 영민.
" 필승. "
경직된 목소리로 경례를 하고 잠시 식사를 멈추는 영민. 언제나처럼 영민의 경례따윈 무시하고 묵묵히 밥을 퍼먹는 전빈영 하사. 영민은 그만 식욕이 싹 달아난다. 슬슬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전빈영 하사가 기분 나빠할 것이다. 아직 영민의 밥은 반도 안먹은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영민도 다시 꾸역꾸역 밥을 떠먹기 시작했다. 딱딱하고 불안한 침묵 속의 식사. 마침내 영민은 도저히 더이상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들어갔다간 지금까지 먹은 것들이 모조리 다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영민은 남은 밥을 모조리 국에다가 말아버리고는 그대로 식판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시종 침묵하던 전빈영 하사가 드디어 말문을 연다.
" 김대명이가 뭐라고 하더냐? "
" 예? "
하마터면 식판을 떨어뜨릴 뻔한 영민. 그대로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전빈영 하사의 시선은 계속 자신의 식판을 향해 있었다. 그는 영민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연신 입속으러 음식들을 집어넣고는 씹어대고 있었다. 그런 전빈영 하사의 모습에서 더욱 섬뜩한 기운을 느끼는 영민.
" 내 말을 못알아 듣겠냐? "
" 예? 아, 아닙니다. 저...... "
급히 어떻게 대답할지를 생각하는 영민. 그러나 머리 속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순간 전빈영 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나보고 귀신이니 조심하라고 하더냐? "
" 예에? "
숨이 넘어갈 듯 호흡이 가빠지는 영민. 전빈영 하사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나? 나직하고도 위협적인 전빈영 하사의 목소리에 영민은 극도의 한기를 느끼며 정신이 흐려진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야했다. 그가 누구인가? B N Q 최고참 하사가 아닌가! 그의 질문에 이렇게 많은 인터벌을 둘 수는 없었다. 더러운 성격의 오창우 하사나 부 Q장인 백동수 하사 같았으면 벌써 욕설이 난무한 윽박이 터져 나왔을 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전빈영 하사가 아까 영민과 김대명 하사가 같이 있는 걸 보았단 말인가? 영민은 망설여졌다. 바른데로 말할 수도 없고, 둘러댈 자신도 없고...... 그런데 그 때 뜻밖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밝은 표정의 장유정 하사가 식판을 들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 필승. 많이 드십시오. 전하사님. "
장하사의 우렁찬 경례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전빈영 하사는 식판에서 눈을 떼고 장하사를 한번 바라보았다가 이어서 영민을 바라본다. 얼른 시선을 외면해버리는 영민. 전빈영 하사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 이하사 밥 다먹었냐? "
아무것도 모르는 장하사는 영민의 옆에 앉으며 자신의 유일한 B N Q 쫄병을 기분 좋게 바라본다.
" 예...... "
가까스로 대답하는 영민. 그런 영민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전빈영 하사가 다시 시선을 거두며 밥을 퍼먹는다.
" 아직 남았네. 왜? 그만 먹게? "
장하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영민. 그런데 그의 안색을 살피던 장하사의 표정이 굳어진다.
" 왜? 너 어디 아픈거냐? "
"아...... 아닙니다. "
그도 그럴 것이 영민의 지금 얼굴은 병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백지같은 안색에 비오듯 식은 땀이 흐르고 미세한 경련까지...... 그러자 순간, 전빈영 하사가 나직히 입을 열었다.
" 아프면 의무실 가봐. 죽치고 앉았지 말고. "
" 예?...... 예. 많이들 드십시오. "
영민에게 이 한 마디는 출옥을 알리는 간수의 한마디와 같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잔반통에 남은 음식물을 버리고 식당을 떠나는 영민. 병자같았던 그의 안색은 식당을 떠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원상태로 돌아갔다. 식당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안정을 되찾아갔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영민. 그러나 가슴 한 쪽에 끈끈하게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어두운 불안감만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펌>B.N.Q14
영민은 새로이 연기를 빨아들이면서 좀 전에 들었던 도기석 병장의 말들을 반추해 보았다.
그리고 전빈영 하사에 대해서도......
그는 나쁜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박기우 하사와 김대명 하사를 그렇게 심하게 구타했는데도?
그러나 박기우 하사는 그가 그랬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김대명 하사의 일 역시 의심의 여지가 많다. 정말 그가 김하사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 순간 절대 불을 켜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많은 B N Q 인원이 있는 가운데서 그를 죽이겠다는 시도 자체부터가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는 김대명 하사의 말처럼 4호실 귀신이 아닌 것이다.
그는 엄연한 사람이다. 단지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렇다면 그가 김대명 하사를 공격했을 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뭘까?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는 영민.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꽁초를 휴지통에 던지는데, 불똥이 사방으로 튀면서 동시에 영민의 머리속을 번뜩이는 사념 하나가 있다.
'지금까지 너무 한가지 시선으로만 상황을 생각했었구나.'
김대명 하사.....
그는 어떤가?
그는 정말 영민이 예전부터 느껴왔던 것처럼 좋은 사람이 맞는가?
만일 정말 그렇다면 앞뒤가 안맞는다.
전빈영 하사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김대명 하사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 누가 누구를 특별히 공격할 이유가 없다.
특이한 예는 집어치우자. 모두를 일직선상에 동일하게 놓고 단순히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공격한다. 그런데 둘은 모두 정상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공격을 당하는 자가 공격을 가하는 자에게 뭔가 나쁜 행동이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김대명 하사가 전빈영 하사에게 뭔가 좋지 않은, 그것도 상당히(죽이고 싶을 만큼의) 나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전빈영 하사가 그에 응징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영민은 그날 밤,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던 김대명 하사의 모습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그러자 순간 무의식적인 전율이 영민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영민도 깜짝 놀랬다. 왜 이런 전율이 느껴지는 건지?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물이 스며들 듯이 몸속으로 조금씩 침투해오는 이 공포감은?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치켜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생각 하나!
그것들은 영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그의 머릿속에서 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김... 대... 명... 하... 사... 는... 누... 구... 인... 가... ? 그... 는... 정... 말... 예... 전... 에... 내... 가...
알... 던... 김... 대... 명... 하... 사... 가... 맞... 나... ?'
'아냐. 왜 이런 생각까지...!'
그러나, 영민이 어느 순간 인기척을 느끼며 뒤를 홱 돌아보았을 때, 그 곳엔 유령보다도 더 무서운 모습의 김대명 하사가 거짓말처럼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노려다보고 있었다.
" 허억! "
저도 모르게 나직한 비명을 토하며 영민은 그만 뒷걸음질까지 친다. 상대가 B N Q 고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경례 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영민의 눈에 비친 김대명 하사의 모습은 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다.
슬슬 뒷걸음을 치며 운영계 쪽으로 향하는 영민. 그러나 김대명 하사가 마침내 어이없다는 표정을 보이며 다가온다.
" 야, 이영민. 새꺄 너 지금 뭐하냐? 어? "
다가오는 김대명 하사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냉기. 영민은 그에게서 강한 거부감과 함께 본능적인 위기의식을 느낀다.
" 이영민! "
어느새 바짝 다가온 김대명 하사가 목청을 높인다.
순간 화들짝 놀라며 새삼 김대명 하사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영민. 정신을 수습한다.
정신 차려라 이영민, 정신차려......
" 피, 필승! "
그제서야 영민의 떨리는 손이 올라갔다.
김대명 하사는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아니 어쩜 그냥 미소였을지도 모른다. 단지 영민에게만이 그것이 차갑게 느껴졌을 것이다.
" 장난치냐? 지금. 어? "
" 아, 아닙니다. "
" 너 좀 전에 나보고는 왜 도망가려 했어? "
" 예? "
" 금방 도망가려 했었잖아? "
" 아, 아닙니다. "
" 뭐야? "
김대명 하사는 가소롭다는 듯 다시 한번 냉소를 띤다. 영민의 심장이 요동을 친다. 너무 소리가 커서 김대명 하사가 듣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까지 들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 야, 이영민. 너 내가 겂나냐? "
김대명 하사는 영민의 속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 했다. 애써 부인하려는 영민.
" 아, 아닙니다. "
그러나 상당히 떨리고 있는 영민의 음성이 이미 자신의 대답에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입으론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몸으론 그것을 강하게 시인하고 있으니......
" 야, 이영민. 너 왜그러냐? 어? "
" ...... "
" 너 눈엔 나까지도 귀신으로 보이냐? "
" 예? "
" 그런거냐? 내가 귀신같이 보여? "
" ...... "
" 임마 아냐! 너 진짜 귀신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 "
진짜 귀신......?
과연 그게 누구인가? 영민은 정말 모를 일이었다.
누가 귀신인가......?
누가 진짜 귀신인가......?
형언할 수 없는 싸늘한 전율에 뒤덮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영민과 그 전율의 원천같은 김대명 하사의 무시무시한 눈빛이 한동아 숨이 막히도록 암담한 침묵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결국 김대명 하사가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 이영민...... 넌 알잖아. 그렇지? "
" ...... "
한층 누그러든 분위기에 영민은 일단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안심이 좀 되자 다시 한번 김대명 하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영민. 그의 얼굴엔 뿔같은 것도 없고 입가에 피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김대명 하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얼굴에 귀신티를 내지 않고 나타나는 귀신이 진짜 무서운 법이다. 그러자 다시 그의 마음을 읽은 듯 김대명 하사의 조금 다급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임마...... 전빈영 하사야. 그 자식이 진짜 귀신이란 말야. 몰라? "
" ...... "
" 아직 아무도 눈치를 못 채고 있어. 그렇다고 내가 진실을 말할 수도 없어. 그렇잖아? 누가 내 말을 믿겠어? 오히려 미친 놈 취급만 받지. 내가 그 일 이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과 같이 행동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
김대명 하사의 말에 영민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갈 법도 했다. 그러나 왠지 그의 말에도 백프로 믿음이 가진 않는다.
" 하지만 넌 알고 있잖아? 너만은 날 믿고 따라줘야 해. 난 지금 기회를 노리고 있어. 놈을 처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단 말야. 너도 날 좀 도와줘야 해. 응? 이영민! 너하고 난 한편이야. 알아? "
" ...... "
" 응? "
" 예..... "
성화같은 김하사의 재촉에 영민이 겨우 열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할 무렵, 뒤에서 누군가가 영민을 부른다.
" 야, 이하사. 너 담배 몇 대나 피는거야? 어? "
놀라 돌아보니 근무장 선임하사가 슬슬 다가오고 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걸 봐선 그도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모양이다. 아닌게 아니라 근무장을 떠나고 너무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전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임하사로선 꽤나 건방진 행동일 수도 있었다.
" 아, 죄송합니다. 선임하사님. 곧바로 들어가겠습니다. "
그러나 영민을 평소 마음에 들어하던 선임하사는 빙글빙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불을 붙인다.
" 너랑 얘기하던 그 놈은 누구냐? "
" 예? 아, 여기... "
그러나 영민이 돌아보면 김대명 하사는 없다.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후다. 그저 더운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만이 그 자리를 내리쬐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둥절한 모습의 영민. 좀 전까지 옆에 있었던 사람이...
" 걔 아까 갔어. 내가 나오자마자 가던데? 니 쫄병이냐? "
" 예? 아닙니다. 제 쫄병이 어디 있습니까? "
" 그럼 너 괴롭히는 고참이냐? "
" 아닙니다. "
영민이 과장스런 표정으로 부인하자, 알았다는 듯 선임하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 그 놈 상판때기 보니까 되게 심각하던데..... 뭔 일 있냐? "
" 예? "
영민은 순간 선임하사를 잠깐 바라본다.
그렇다. 어쩌면 그에게 다 털어놓고 정말 심각하게 면담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B N Q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 신임하사인 영민이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도 힘들었다. 그리고 이 일은 어느 정도의 연장자가 나서서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이었다. 아직 철부지나 다름 없는 영민이나 B N Q 고참들이 해결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 왜? "
선임하사가 계속 자신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영민을 의아해한다. 번뜩 정신을 차리는 영민.
" 아, 아닙니다. 그냥 근무 열심히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
" 그래? "
" 예. 그럼, 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
영민은 좀 지친 발걸음이 되어 운영계로 향했다. 그리고 좀 전의 생각으로 돌아가 끝을 맺어 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선임하사가 과연 이 말을 믿어줄까?
아니 부대 내에서 이 말을 믿어줄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김대명 하사의 말이 맞는 것이다.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기에 영민으로선 더욱 무서운 일인 것이다.
근무장에 돌아오니 도기석 병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영민을 흘끔 본다. 영민은 도기석 병장이 아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머리가 정말로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도무지 정리가 안되었다.
누구를 믿어야 하나......
그 날 저녁,
영민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식판을 들고 그의 앞에 앉는다. 흠칫 놀라 바라보니 전빈영 하사다.
숨이 콱 막혀오는 영민.
" 필승. "
경직된 목소리로 경례를 하고 잠시 식사를 멈추는 영민. 언제나처럼 영민의 경례따윈 무시하고 묵묵히 밥을 퍼먹는 전빈영 하사.
영민은 그만 식욕이 싹 달아난다. 슬슬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전빈영 하사가 기분 나빠할 것이다. 아직 영민의 밥은 반도 안먹은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영민도 다시 꾸역꾸역 밥을 떠먹기 시작했다. 딱딱하고 불안한 침묵 속의 식사. 마침내 영민은 도저히 더이상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들어갔다간 지금까지 먹은 것들이 모조리 다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영민은 남은 밥을 모조리 국에다가 말아버리고는 그대로 식판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시종 침묵하던 전빈영 하사가 드디어 말문을 연다.
" 김대명이가 뭐라고 하더냐? "
" 예? "
하마터면 식판을 떨어뜨릴 뻔한 영민. 그대로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전빈영 하사의 시선은 계속 자신의 식판을 향해 있었다. 그는 영민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연신 입속으러 음식들을 집어넣고는 씹어대고 있었다. 그런 전빈영 하사의 모습에서 더욱 섬뜩한 기운을 느끼는 영민.
" 내 말을 못알아 듣겠냐? "
" 예? 아, 아닙니다. 저...... "
급히 어떻게 대답할지를 생각하는 영민. 그러나 머리 속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순간 전빈영 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나보고 귀신이니 조심하라고 하더냐? "
" 예에? "
숨이 넘어갈 듯 호흡이 가빠지는 영민. 전빈영 하사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나?
나직하고도 위협적인 전빈영 하사의 목소리에 영민은 극도의 한기를 느끼며 정신이 흐려진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야했다. 그가 누구인가? B N Q 최고참 하사가 아닌가! 그의 질문에 이렇게 많은 인터벌을 둘 수는 없었다. 더러운 성격의 오창우 하사나 부 Q장인 백동수 하사 같았으면 벌써 욕설이 난무한 윽박이 터져 나왔을 터였다.
하지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전빈영 하사가 아까 영민과 김대명 하사가 같이 있는 걸 보았단 말인가?
영민은 망설여졌다. 바른데로 말할 수도 없고, 둘러댈 자신도 없고......
그런데 그 때 뜻밖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밝은 표정의 장유정 하사가 식판을 들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 필승. 많이 드십시오. 전하사님. "
장하사의 우렁찬 경례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전빈영 하사는 식판에서 눈을 떼고 장하사를 한번 바라보았다가 이어서 영민을 바라본다. 얼른 시선을 외면해버리는 영민. 전빈영 하사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 이하사 밥 다먹었냐? "
아무것도 모르는 장하사는 영민의 옆에 앉으며 자신의 유일한 B N Q 쫄병을 기분 좋게 바라본다.
" 예...... "
가까스로 대답하는 영민. 그런 영민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전빈영 하사가 다시 시선을 거두며 밥을 퍼먹는다.
" 아직 남았네. 왜? 그만 먹게? "
장하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영민. 그런데 그의 안색을 살피던 장하사의 표정이 굳어진다.
" 왜? 너 어디 아픈거냐? "
"아...... 아닙니다. "
그도 그럴 것이 영민의 지금 얼굴은 병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백지같은 안색에 비오듯 식은 땀이 흐르고 미세한 경련까지......
그러자 순간, 전빈영 하사가 나직히 입을 열었다.
" 아프면 의무실 가봐. 죽치고 앉았지 말고. "
" 예?...... 예. 많이들 드십시오. "
영민에게 이 한 마디는 출옥을 알리는 간수의 한마디와 같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잔반통에 남은 음식물을 버리고 식당을 떠나는 영민.
병자같았던 그의 안색은 식당을 떠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원상태로 돌아갔다. 식당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안정을 되찾아갔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영민.
그러나 가슴 한 쪽에 끈끈하게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어두운 불안감만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