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은 B N Q 1호실로 들어서자마자 날아드는 축구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 별로 아프진 않았지만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돌아보면 오창우 하사가 찢어진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쳐댔다.
" 얌마! 빨랑 채련복 갈아입고 튀어나가 새꺄! "
B N Q에서 오랜만에 축구를 할 모양이었다. 모두들 이미 연병장(운동장)으로 나간 듯 1호실 안엔 오창우 하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오창우 하사도 벌써 체련복으로 갈아입고는 어디서 구했는지 어울리지도 않게 삐까번쩍한 축구화까지 신고 있었다.
" 예. "
영민은 목구멍가지 막 올라오려는 성질을 애서 죽이며 자신의 관물함으로 갔다. 원래 B N Q 인원 초과로 자신의 관물함과 침구는 없었는데 박기우 하사가 뜻밖의 의병제대를 하는 바람에 그의 관물함과 침구가 그대로 영민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영민이 체련복을 갈아입고 있는 도중에도 예의 그 축구공이 다시 날아들었다. 팅!
" 아압! "
영민은 아프다기보다도 느닷없는 충격에 놀라 저절로 소리를 질렀다. 다시 돌아다보니 역시 오창우 하사가 예의 그 찢어진 눈을 부릅뜨곤 노려보고 있었다. 딴에는 무섭게 보이려는 의도의 눈빛 같았으나, 영민은 그저 그가 더러운 성격 뿐만 아니라 그에 어울리게 상당히 작고 찢어진 눈까지 가졌구나 하는 생각만 새삼 들 뿐이었다.
정말 그 날따라 오창우 하사는 자신의 개떡같은 성질을 영민에게 제대로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있는데 비교적 고참인 오창우 하사만 이렇게 홀로 1호실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행동들은 영민에게 전에 없던 상당한 적개심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가뜩이나 요즘 영민은 김대명 하사와 전빈영 하사 때문에 신경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그것이 쫄병의 운명이고 비애인 것이었다.
" 예. "
다시 힘차게 대답을 한 영민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주전자를 들고 한 손엔 또다른 축구공을 들고는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1호실 문을 열려는 순간, 영민은 다시금 뒤에서 축구공이 자신의 머리로 날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정말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본능적으로 영민은 머리를 옆으로 피했고,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김대명 하사가 들어왔다. 퍽! 놀라는 영민과 그보다 더 놀라는 오창우 하사. 오창우 하사가 영민의 머리를 노리고 던진 축구공은 그대로 김대명 하사의 가슴에 적중했다. 퉁, 퉁...... 김대명 하사의 가슴을 맞고 바운드되어 바닥을 튀기는 축구공.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김대명 하사를 주목하는 영민과 오창우 하사.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축구공만을 바라보는 김대명 하사. 상황이 꼬였음을 알아챈 오창우 하사는 대번에 간사스런 웃음을 흘리며 김대명 하사에게 다가간다. 제 아무리 오창우 하사라지만 자기보다 두 기수나 위인 Q장 vice 김대명 하사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김대명 하사임을 알곤 조금 안도의 기색을 보이는 오창우 하사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영민.
" 괜찮으십니까? 김하사님. "
얼른 다가가면 한껏 죄송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오창우 하사.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던 오창우 하사는 이쯤에서 김대명 하사가 상황을 무마시켜줄 걸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오창우 하사를 무안할 정도로 무표정히 쳐다보기만 하는 김대명 하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오창우 하사의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김대명 하사가 계속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다시 불안해진 오창우 하사는 순식간에 화살을 영민에게로 돌린다.
" 새꺄! 공 잘 받았어야 지 임마! 너 일부러 공 안받은거지? 너 때문에 임마 이렇게 됐잖아 새꺄! "
어이가 없는 영민.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김대명 하사가 성큼성큼 몸을 움직이더니 이윽고 바닥에 정지해있던 축구공을 한 손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고 있던 오창우 하사의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축구공이 김대명 하사의 손을 떠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바로 앞에 있던 오창우 하사의 안면을 강타했다.
" 악! "
얼굴을 감싸는 오창우 하사. 다시금 축구공은 바운드 되어 바닥을 튀긴다. 그러자 김대명 하사는 다시 성큼성큼 다가가 축구공을 움켜쥔다. 그리고 다시 오창우 하사의 앞으로 간다.
" 손 치워라. "
나직하지만 무시무시한 목소리. 영민은 소름이 끼쳤다. 정말 김대명 하사가 맞나 싶었다. 오창우 하사가 마지 못해 손을 치웠다. 그러자 여지없이 다시 축구공이 날아들었다. 오창우 하사의 안면이 금새 피로 물들었다.
" 으윽! "
다시 김대명 하사의 손아귀에 쥐어지는 축구공. 그것은 다시 오창우 하사의 얼굴로 날아간다. 퍽! 그리고 다시...... 그것들은 반복이 된다. 휙~ 퍽! 윽...... 휙~ 퍽! 아악...... ......
피는 사방으로 튀었다. 오창우 하사의 얼굴을 맞고 튀어나온 축구공이 바닥과 벽과 천장을 요동치며 피를 뿌려대고 있었다. 오창우 하사는 어느새 코가 뭉개진 듯 끊임없이 쌍코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입술과 눈자위도 찢어지고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부어오른 부위가 다시금 날아드는 축구공에 날계란이 터지듯 터지며 피를 내뿜어 댔다.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축구공 하나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흉기로 둔갑할 수 있다는 걸 똑똑히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오창우 하사가 바닥에 꼬꾸라졌다. 영민은 반항 한 번 못한 채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오창우 하사가 오히려 안되 보일 정도였다. 그때까지 영민은 이가 딱딱거릴 정도로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김대명 하사를 말려야 되나? 아니면 그저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빨리 다른 고참을 불러와야 하나? 아니면......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감히 행동에 옮기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공포에 떨며 망설이고 있는 사이 오창우 하사는 이미 피범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오창우 하사가 처참히 나가 떨어지고 나자, 김대명 하사가 그제야 영민을 바라본다. 기겁을 하는 영민. 김대명 하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손아귀에 아직 쥐어져 있는 피묻은 축구공. 영민의 시선이 축구공에 집중된다. 그것은 마치 오창우 하사의 피를 흠뻑 빨아먹은하나의 흉칙한 생물체 같았다.
" 데려가서 씻겨줘. "
축구공이 마침내 그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퉁퉁 튀기며 아쉽다는 듯 그 움직임을 멈춰 가는 축구공. 그것이 튀는 자리마다, 오창우 하사의 피도장이 찍혔다. 다시 한번 몸서리를 치는 영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는 김대명 하사.
" 야, 이영민! 창우는? "
영민이 주전자와 축구공을 들고 연병장으로 달려가자 한참 슛연습을 하고 있던 Q장 배승환 하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 예,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
둘러대는 영민. 그러나 그것은 오창우 하사가 시킨 거짓말이었다. 영민의 부축을 받으며 세면장에서 얼굴을 씻은 오창우 하사는 정신을 차린 후 그렇게 말했었다. 피를 씻어냈으나 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코뼈는 부서지지 않은 듯 했지만 찢어진 입술과 부어오른 눈언저리는 퍽 처참한 몰골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손으로 오창우 하사의 얼굴을 마구 구겨 놓은 것 같았다.
" 뭐? "
영민의 말에 사뭇 놀라는 Q장.
" 어디가 아프데? "
" 예, 아까 나오기 전에 B N Q에서 공을 좀 차다가 미끄러져서 문 손잡이에 얼굴을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
" 뭐? 그래, 많이 다쳤어? "
Q장이 다가오자 영민은 식은 땀이 등줄기로 흘러내림을 느낀다. 자신의 거짓말이 너무 엉성한 것만 같아 불안하고 떨려왔다.
" 어? 많이 다쳤어? "
" 아, 아닙니다. 눈주위가 좀 부었는데 오하사 말로는 괜찮답니다. "
" 그래서 지금 누워있어? "
" 예...... 머리도 좀 어지럽다고 해서 말입니다. "
" 머리까지? "
그 말은 영민이 순수하게 지어낸 말이었다. 그리고 즉시 자신의 거짓말을 수습해 나갔다.
" 그것도 심하진 않습니다. 오하사가 괜히 Q장님께 걱정 끼쳐드리기 싫다면서 그냥 누워 있겠다고 했습니다. "
" 너 보기에도 괜찮아 보였어? "
물론 진실은 아니었다. 결코 괜찮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 예. 뭐 심한 것 같진 않았습니다. "
" 그래? "
" 글마 그거 괜히 엄살 피우는 거 아이가? 축구하기 싫어서...... "
언제 다가왔는지 Q장의 동기인 박원 하사가 끼어들었다. 돌아보는 Q장.
" 아냐, 걔가 축구 얼마나 좋아하는데..... 오늘도 자기가 하자고 한 거였어. "
" 맞나? 그럼 진짜 마이 다친나? "
잠시 심각해지는 Q장. 어쩔줄 모르며 마른 침만 삼키고 있는 영민. 금방이라도 Q장이 자신의 모가지를 잡아 채며 거짓말을 한 대가로 너댓번 비틀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외쳤다.
" Q장님! 빨리 시작하시죠? 예? 애들도 다 나왔는데. "
돌아보는 Q장. 영민도 같이 돌아본다. 그리곤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그곳엔 언제 나왔는지 김대명 하사가 체련복까지 입고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미세하게 떨고 있는 영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하게 섬뜩한 얼굴로..... 김대명 하사.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영민은 치가 떨렸다. 들고 있던 주전자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영민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도 눈치는 못채고 있었다.
" 자, 시작하자. 고참 대 쫄병이다. 지는 팀이 삼겹살 사는 거다. "
마침내 Q장도 오창우 하사의 일은 잊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영민은 여전히 불안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열심히 연병장을 돌아다니며 축구공을 차대는 김대명 하사의 모습. 자신이 그 축구공으로 좀 전에 오창우 하사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김대명 하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전빈영 하사가 일전에 당직사관에게 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이어서 서서히 영민의 머리속을 파고드는 끔찍한 상상 하나가 있었다. 바로 오창우 하사와 같은 방법으로 박기우 하사를 구타하고 있는 김대명 하사의 모습이었다. 역시 축구공으로 박기우 하사의 얼굴을 사정없이 강타하고 있을 김대명 하사의 악마같은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리고 쓰러진 박기우 하사의 가슴과 배를 무엇인가로 긋는 김대명 하사. 순식간에 날카롭게 찢어진 가슴과 배의 상처에선 피가 샘솟고, 유유히 B N Q 1호실을 나서는 김대명 하사.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깨진 거울 조각! 영민은 여기까지 상상이 미치자 김대명 하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까지 섬뜩한 전율이 일었다. 전빈영 하사. 그가 정상인지 아닌지는 이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김대명 하사.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영민은 어지러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무심결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좀 전까지 쨍쨍거리던 태양은 어느 사이엔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대신 하늘 저 편에서 시커먼 먹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검은 먹물이 퍼지듯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하늘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아니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인다. 마치 기필코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맹수의 살기 어린 의지처럼 보였다.
" 느낌이 안 좋아....... "
영민은 저도 모르게 나직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 야 새꺄, 영민이! 공 나갔잖아 임마. 빨랑 주워오지 않고 뭐해? "
느닷없는 누군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바라보는 영민. 누군가가 힘껏 찬 축구공이 시원스래 골대를 빗나가 연병장 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급히 공을 향해 뛰어가는 영민. 먹구름은 여전히 빠르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펌>B.N.Q15
영민은 B N Q 1호실로 들어서자마자 날아드는 축구공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 별로 아프진 않았지만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돌아보면 오창우 하사가 찢어진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쳐댔다.
" 얌마! 빨랑 채련복 갈아입고 튀어나가 새꺄! "
B N Q에서 오랜만에 축구를 할 모양이었다.
모두들 이미 연병장(운동장)으로 나간 듯 1호실 안엔 오창우 하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오창우 하사도 벌써 체련복으로 갈아입고는 어디서 구했는지 어울리지도 않게 삐까번쩍한 축구화까지 신고 있었다.
" 예. "
영민은 목구멍가지 막 올라오려는 성질을 애서 죽이며 자신의 관물함으로 갔다. 원래 B N Q 인원 초과로 자신의 관물함과 침구는 없었는데 박기우 하사가 뜻밖의 의병제대를 하는 바람에 그의 관물함과 침구가 그대로 영민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영민이 체련복을 갈아입고 있는 도중에도 예의 그 축구공이 다시 날아들었다.
팅!
" 아압! "
영민은 아프다기보다도 느닷없는 충격에 놀라 저절로 소리를 질렀다.
다시 돌아다보니 역시 오창우 하사가 예의 그 찢어진 눈을 부릅뜨곤 노려보고 있었다. 딴에는 무섭게 보이려는 의도의 눈빛 같았으나, 영민은 그저 그가 더러운 성격 뿐만 아니라 그에 어울리게 상당히 작고 찢어진 눈까지 가졌구나 하는 생각만 새삼 들 뿐이었다.
" 새꺄, 빨리빨리 안해? 신발, 주전자 물도 뜨고, 어서 내려가서 연병장 시다바리 해야할 것 아냐? "
정말 그 날따라 오창우 하사는 자신의 개떡같은 성질을 영민에게 제대로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있는데 비교적 고참인 오창우 하사만 이렇게 홀로 1호실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행동들은 영민에게 전에 없던 상당한 적개심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가뜩이나 요즘 영민은 김대명 하사와 전빈영 하사 때문에 신경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그것이 쫄병의 운명이고 비애인 것이었다.
" 예. "
다시 힘차게 대답을 한 영민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주전자를 들고 한 손엔 또다른 축구공을 들고는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1호실 문을 열려는 순간, 영민은 다시금 뒤에서 축구공이 자신의 머리로 날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정말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본능적으로 영민은 머리를 옆으로 피했고, 그 순간 문이 열리며 김대명 하사가 들어왔다.
퍽!
놀라는 영민과 그보다 더 놀라는 오창우 하사.
오창우 하사가 영민의 머리를 노리고 던진 축구공은 그대로 김대명 하사의 가슴에 적중했다.
퉁, 퉁......
김대명 하사의 가슴을 맞고 바운드되어 바닥을 튀기는 축구공.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김대명 하사를 주목하는 영민과 오창우 하사.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축구공만을 바라보는 김대명 하사.
상황이 꼬였음을 알아챈 오창우 하사는 대번에 간사스런 웃음을 흘리며 김대명 하사에게 다가간다. 제 아무리 오창우 하사라지만 자기보다 두 기수나 위인 Q장 vice 김대명 하사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김대명 하사임을 알곤 조금 안도의 기색을 보이는 오창우 하사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영민.
" 괜찮으십니까? 김하사님. "
얼른 다가가면 한껏 죄송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오창우 하사.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던 오창우 하사는 이쯤에서 김대명 하사가 상황을 무마시켜줄 걸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오창우 하사를 무안할 정도로 무표정히 쳐다보기만 하는 김대명 하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오창우 하사의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김대명 하사가 계속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다시 불안해진 오창우 하사는 순식간에 화살을 영민에게로 돌린다.
" 새꺄! 공 잘 받았어야 지 임마! 너 일부러 공 안받은거지? 너 때문에 임마 이렇게 됐잖아 새꺄! "
어이가 없는 영민.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김대명 하사가 성큼성큼 몸을 움직이더니 이윽고 바닥에 정지해있던 축구공을 한 손으로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고 있던 오창우 하사의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축구공이 김대명 하사의 손을 떠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바로 앞에 있던 오창우 하사의 안면을 강타했다.
" 악! "
얼굴을 감싸는 오창우 하사.
다시금 축구공은 바운드 되어 바닥을 튀긴다. 그러자 김대명 하사는 다시 성큼성큼 다가가 축구공을 움켜쥔다. 그리고 다시 오창우 하사의 앞으로 간다.
" 손 치워라. "
나직하지만 무시무시한 목소리. 영민은 소름이 끼쳤다. 정말 김대명 하사가 맞나 싶었다.
오창우 하사가 마지 못해 손을 치웠다. 그러자 여지없이 다시 축구공이 날아들었다. 오창우 하사의 안면이 금새 피로 물들었다.
" 으윽! "
다시 김대명 하사의 손아귀에 쥐어지는 축구공.
그것은 다시 오창우 하사의 얼굴로 날아간다.
퍽!
그리고 다시......
그것들은 반복이 된다.
휙~
퍽!
윽......
휙~
퍽!
아악......
......
피는 사방으로 튀었다.
오창우 하사의 얼굴을 맞고 튀어나온 축구공이 바닥과 벽과 천장을 요동치며 피를 뿌려대고 있었다.
오창우 하사는 어느새 코가 뭉개진 듯 끊임없이 쌍코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입술과 눈자위도 찢어지고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부어오른 부위가 다시금 날아드는 축구공에 날계란이 터지듯 터지며 피를 내뿜어 댔다.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축구공 하나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흉기로 둔갑할 수 있다는 걸 똑똑히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오창우 하사가 바닥에 꼬꾸라졌다. 영민은 반항 한 번 못한 채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오창우 하사가 오히려 안되 보일 정도였다.
그때까지 영민은 이가 딱딱거릴 정도로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김대명 하사를 말려야 되나?
아니면 그저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빨리 다른 고참을 불러와야 하나?
아니면......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감히 행동에 옮기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공포에 떨며 망설이고 있는 사이 오창우 하사는 이미 피범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오창우 하사가 처참히 나가 떨어지고 나자, 김대명 하사가 그제야 영민을 바라본다. 기겁을 하는 영민. 김대명 하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손아귀에 아직 쥐어져 있는 피묻은 축구공. 영민의 시선이 축구공에 집중된다. 그것은 마치 오창우 하사의 피를 흠뻑 빨아먹은하나의 흉칙한 생물체 같았다.
" 데려가서 씻겨줘. "
축구공이 마침내 그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퉁퉁 튀기며 아쉽다는 듯 그 움직임을 멈춰 가는 축구공. 그것이 튀는 자리마다, 오창우 하사의 피도장이 찍혔다. 다시 한번 몸서리를 치는 영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는 김대명 하사.
" 야, 이영민! 창우는? "
영민이 주전자와 축구공을 들고 연병장으로 달려가자 한참 슛연습을 하고 있던 Q장 배승환 하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 예,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
둘러대는 영민. 그러나 그것은 오창우 하사가 시킨 거짓말이었다.
영민의 부축을 받으며 세면장에서 얼굴을 씻은 오창우 하사는 정신을 차린 후 그렇게 말했었다.
피를 씻어냈으나 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코뼈는 부서지지 않은 듯 했지만 찢어진 입술과 부어오른 눈언저리는 퍽 처참한 몰골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손으로 오창우 하사의 얼굴을 마구 구겨 놓은 것 같았다.
" 뭐? "
영민의 말에 사뭇 놀라는 Q장.
" 어디가 아프데? "
" 예, 아까 나오기 전에 B N Q에서 공을 좀 차다가 미끄러져서 문 손잡이에 얼굴을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
" 뭐? 그래, 많이 다쳤어? "
Q장이 다가오자 영민은 식은 땀이 등줄기로 흘러내림을 느낀다. 자신의 거짓말이 너무 엉성한 것만 같아 불안하고 떨려왔다.
" 어? 많이 다쳤어? "
" 아, 아닙니다. 눈주위가 좀 부었는데 오하사 말로는 괜찮답니다. "
" 그래서 지금 누워있어? "
" 예...... 머리도 좀 어지럽다고 해서 말입니다. "
" 머리까지? "
그 말은 영민이 순수하게 지어낸 말이었다. 그리고 즉시 자신의 거짓말을 수습해 나갔다.
" 그것도 심하진 않습니다. 오하사가 괜히 Q장님께 걱정 끼쳐드리기 싫다면서 그냥 누워 있겠다고 했습니다. "
" 너 보기에도 괜찮아 보였어? "
물론 진실은 아니었다. 결코 괜찮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 예. 뭐 심한 것 같진 않았습니다. "
" 그래? "
" 글마 그거 괜히 엄살 피우는 거 아이가? 축구하기 싫어서...... "
언제 다가왔는지 Q장의 동기인 박원 하사가 끼어들었다. 돌아보는 Q장.
" 아냐, 걔가 축구 얼마나 좋아하는데..... 오늘도 자기가 하자고 한 거였어. "
" 맞나? 그럼 진짜 마이 다친나? "
잠시 심각해지는 Q장. 어쩔줄 모르며 마른 침만 삼키고 있는 영민. 금방이라도 Q장이 자신의 모가지를 잡아 채며 거짓말을 한 대가로 너댓번 비틀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외쳤다.
" Q장님! 빨리 시작하시죠? 예? 애들도 다 나왔는데. "
돌아보는 Q장. 영민도 같이 돌아본다. 그리곤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그곳엔 언제 나왔는지 김대명 하사가 체련복까지 입고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미세하게 떨고 있는 영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하게 섬뜩한 얼굴로.....
김대명 하사.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영민은 치가 떨렸다.
들고 있던 주전자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영민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도 눈치는 못채고 있었다.
" 자, 시작하자. 고참 대 쫄병이다. 지는 팀이 삼겹살 사는 거다. "
마침내 Q장도 오창우 하사의 일은 잊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영민은 여전히 불안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열심히 연병장을 돌아다니며 축구공을 차대는 김대명 하사의 모습. 자신이 그 축구공으로 좀 전에 오창우 하사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김대명 하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전빈영 하사가 일전에 당직사관에게 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이어서 서서히 영민의 머리속을 파고드는 끔찍한 상상 하나가 있었다.
바로 오창우 하사와 같은 방법으로 박기우 하사를 구타하고 있는 김대명 하사의 모습이었다. 역시 축구공으로 박기우 하사의 얼굴을 사정없이 강타하고 있을 김대명 하사의 악마같은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리고 쓰러진 박기우 하사의 가슴과 배를 무엇인가로 긋는 김대명 하사. 순식간에 날카롭게 찢어진 가슴과 배의 상처에선 피가 샘솟고, 유유히 B N Q 1호실을 나서는 김대명 하사.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깨진 거울 조각!
영민은 여기까지 상상이 미치자 김대명 하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까지 섬뜩한 전율이 일었다.
전빈영 하사. 그가 정상인지 아닌지는 이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김대명 하사.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영민은 어지러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무심결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좀 전까지 쨍쨍거리던 태양은 어느 사이엔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대신 하늘 저 편에서 시커먼 먹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검은 먹물이 퍼지듯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하늘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아니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인다. 마치 기필코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맹수의 살기 어린 의지처럼 보였다.
" 느낌이 안 좋아....... "
영민은 저도 모르게 나직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 야 새꺄, 영민이! 공 나갔잖아 임마. 빨랑 주워오지 않고 뭐해? "
느닷없는 누군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바라보는 영민. 누군가가 힘껏 찬 축구공이 시원스래 골대를 빗나가 연병장 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급히 공을 향해 뛰어가는 영민.
먹구름은 여전히 빠르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