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8호 태풍 지니가 빠른 속도로 북상을 하며 지금 현재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비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8호 태풍 지니의 현재 위치는 상하이 북동 200 킬로이지만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어 지금의 속도대로라면 내일 아침 5시 쯤엔 제주도 남서 150킬로까지 접근하여 본격적으로 전국이 태풍의 범주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태풍주의보가 내려졌고..... "
TV에선 연신 태풍 소식뿐이다.
" 야, 많이도 온다 시발. 아예 들이붓는구먼 그래. "
한참 창 밖을 바라보던 선임하사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영민은 한참 옛날 서류들을 끄집어내어서 꼼꼼히 수정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도 창밖을 본다. 그의 옆에 있던 도기석 병장도 일손을 멈추고 영민을 따라 창밖을 본다. 정말 거세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영민은 느닷없이 근무장 선임하사의 호출을 받고 야근을 하게 되었다. 원래 다음 주로 예정되었던 보안 감사팀이 느닷없이 스케줄을 변경시켜 이번 주로 날을 잡자 운영계는 갑자기 바빠질 수 밖에 없었다.
" 야, 너희들 미안하다. 어? 쉬지도 못하게 야근시켜서...... "
" 괜찮습니다. "
미안해하는 선임하사를 보며 싱긋 웃어보이는 영민과 도기석 병장. 도기석 병장의 속마음이야 모르겠지만 영민은 정말로 괜찮았다. 아니 야근을 하게 된 게 정말 기뻤다. 요즘 심정 같아선 정말 일분 일초도 B N Q에 머물러 있기가 싫었던 영민이었었다. 특히 오늘 오창우 하사가 눈앞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본 뒤론 더욱.....
" 젠장~ 군인들만 또 고생하겠네. "
선임하사가 내리는 빗줄기가 원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잠시 쓴 입맛을 다시다가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다.
" 야, 니들도 담배 피고 싶음 여기서 펴. 어? 괜찮으니까. "
선임하사는 예의 그 사람좋은 미소를 띄우며 영민과 도병장을 바라보았다.
" 그래도 되겠습니까? "
아무래도 군생활이 더 긴 도기석 병장이 먼저 선임하사의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영민에게로 슬쩍 향했다. 그리곤 눈짓. 한 대 피자는 신호다. 영민도 좋았다.
" 진짜, 내일은 아마 일조점호 끝나고 바로 배수로 작업 들어갈 거에요. "
도기석 병장이 영민에게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 그래? "
" 예. 진짜 여기 비오거나 눈오면 작살나요. 근무고 뭐고 뒷전으로 미루고 작업부터 들어가거든요. 완전 노가다가 따로 없지...... 어휴. "
도기석 병장은 생각만 해도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이 어깨를 떨며 연기를 내뿜었다. 영민은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한 걱정 따윈 머리속에 끼어들 틈도 없었다. 그는 지금처럼 잠시 일을 멈출 때마다 김대명 하사와 전빈영 하사의 생각으로 머리속이 사나웠다. 지금도 여지없이 피를 튀기며 쓰러지던 오창우 하사의 얼굴과 함께 김대명 하사와 전빈영 하사의 유령같은 모습들이 오버랩 되어졌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는 더욱 거칠게 퍼붓고 이따금씩 요동치는 번개와 폭음같은 천둥 소리는 순간순간 영민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번쩍. 꽈콰콰쾅!
" 야, 라면이나 끓여먹자 어? 기석아. "
" 예? "
도기석 병장과 영민이 놀란 눈으로 선임하사를 바라보았다.
" 선임하사님. 지금 뇌우 1단계 들어갔는데 쿠커 사용해도 괜챦겠습니까? "
뇌우 1단계가 발령되면 후방 지역 전원이 차단되고 각 근무장에서도 전기의 사용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고 있을 선임하사가 아니었다.
" 야, 괜찮아. 괜찮아. 2단계 걸리기 전에 후딱 먹어치우자. 시발 야근하는 것도 서러운데 배고픔까지 참을 수 있냐? "
그러자 도기석 병장이 빙긋 웃으며 어디론가로 가더니 큼지막한 쿠커 하나를 꺼내들곤 화장실로 갔다.
" 이야~ 힘들다. 그렇지 이영민? 넌 생생해 보인다? "
선임하사는 기지개를 쭉 키면서 영민을 바라보았다. 사실 영민은 별로 힘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일단 이 곳은 영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기에...... 선임하사는 또 하나의 담배를 피워 물며 빙글빙글 웃었다.
" 젊어서 좋겠다 넌. 응? 니가 스물 두 살이라 했지? "
" 예. "
" 야~ 좋을 나이다. 하긴 나도 그 나이 땐 몇일 밤을 새어도 끄덕 없었지. 내가 B N Q 하사였을 땐 말야. 정말 매일 밤 술먹는게 일이었어. 그 땐 정말 대단했었지. 일주일 중에서 거의 사,오일을 그렇게 마셔댔으니...... 그러고도 다음 날 딱 제 시간에 근무상번해요. 그리고 할 일 다하고, 생생하게 B N Q 내려오지. 그러다가 또 점호 끝나면 술 퍼마시고...... "
조금 과장스런 얘기였지만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선임하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영민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는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르르르...... 기계적으로 영민의 손이 수화기를 재빨리 집었다.
" 예. 운영계, 이하삽니다. 통신보안...... 예. 필승!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예. 아닙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
영민이 심각한 표정이 되자 선임하사도 뭔 일인가 싶어 두 눈을 휘둥그래 떴다. 영민은 수화기를 막으며 선임하사에게 건넸다.
" 선임하사님, 대대장님이십니다. "
그러자 대번에 정색을 하고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내려 놓으며 수화기를 건내받는 선임하사.
" 예. 필승. 박상삽니다. 예. 뭐 큰 피해는 없습니다. 예...... "
따르르르르...... 선임하사가 대대장 전화를 받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전화벨이 울린다. 다시 잽싸게 수화기를 드는 영민. 선임하사가 한 번 흘끔 본다.
" 예. 운영계, 이하삽니다. 통신보안. "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다.
" 이하삽니다. "
영민이 다시 한번 자신을 밝혔으나 수화기 저편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쩔 줄 모르는 영민.
" 예. 예, 지금 여기 이하사랑 도병장 불러놓고 열심히 야근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예...... "
선임하사와 대대장의 통화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러나 영민의 수화기에선 계속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서서히 불안해지는 영민 ...... 그러나 자세히 들으니 무슨 소리가 난다.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 숨소리! 영민은 순식간에 등골이 오싹해지며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불길한 느낌.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 당장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하려는 순간, 싸늘하게 메마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영민의 귀속으로 전달된다. 조용히, 그러나 똑똑히......
" 넌 봤지? "
심한 한기가 영민을 감싼다. 그 목소리. 그것의 주인공은 전빈영 하사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영민.
" 창우...... 누가 그랬어? "
" ......! "
" 김대명이 짓이지? "
" ......! "
" 그렇지? "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주체할 수 없는 공포...... 영민의 전신은 얼어붙어 있었다. 창 밖을 번쩍 밝히는 번개빛! 그리고 갑자기 전빈영 하사의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 이영민! "
꽈광! 콰콰콰쾅!
그 소리와 동시에 밤하늘을 날려버릴 듯 엄청나게 커다란 천둥소리가 부대 전체를 뒤흔든다.
" 허억! "
영민은 그만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만다. 꽈콰콰쾅! 쾅! 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빗줄기도 뤌씬 두꺼워져 있었다. 쏴아아아......
" 야, 너 왜그래? "
부대장과의 통화가 끝난 선임하사가 영민의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놀라며 달려온다.
" 무슨 전화야? 어? "
영민이 놓친 수화기를 선임하사가 다시 집어든다.
" 여보세요. 누구야? 여보세요? "
그러나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다.
" 야, 왜 그래? "
넋이 나간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영민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선임하사. 영민은 얼른 정신을 차리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 아닙니다. 갑자기 천둥소리가 너무 커서...... "
" 뭐? 전화는 무슨 전화였어? "
" 예..... 장난전화 같았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
" 뭐야? 어떤 자식이 그딴 짓을 해? "
" 글쎄 말입니다. "
" 너 괜찮지? 응? "
" 예...... 괜찮습니다. "
영민은 식은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표정은 애써 꾸밀 수 있었지만 두근대는 심장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선임하사는 안심이 안된다는 눈빛으로 흘끔흘끔 영민을 쳐다보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 도기석 병장이 쿠커에 물을 받아왔다.
<펌>B.N.Q16
번쩍!
우르르 쾅, 쾅!
비가 쏟아진다. 엄청난 폭우였다.
" ...... 제 8호 태풍 지니가 빠른 속도로 북상을 하며 지금 현재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비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8호 태풍 지니의 현재 위치는 상하이 북동 200 킬로이지만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어 지금의 속도대로라면 내일 아침 5시 쯤엔 제주도 남서 150킬로까지 접근하여 본격적으로 전국이 태풍의 범주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태풍주의보가 내려졌고..... "
TV에선 연신 태풍 소식뿐이다.
" 야, 많이도 온다 시발. 아예 들이붓는구먼 그래. "
한참 창 밖을 바라보던 선임하사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영민은 한참 옛날 서류들을 끄집어내어서 꼼꼼히 수정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도 창밖을 본다. 그의 옆에 있던 도기석 병장도 일손을 멈추고 영민을 따라 창밖을 본다. 정말 거세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영민은 느닷없이 근무장 선임하사의 호출을 받고 야근을 하게 되었다. 원래 다음 주로 예정되었던 보안 감사팀이 느닷없이 스케줄을 변경시켜 이번 주로 날을 잡자 운영계는 갑자기 바빠질 수 밖에 없었다.
" 야, 너희들 미안하다. 어? 쉬지도 못하게 야근시켜서...... "
" 괜찮습니다. "
미안해하는 선임하사를 보며 싱긋 웃어보이는 영민과 도기석 병장.
도기석 병장의 속마음이야 모르겠지만 영민은 정말로 괜찮았다. 아니 야근을 하게 된 게 정말 기뻤다. 요즘 심정 같아선 정말 일분 일초도 B N Q에 머물러 있기가 싫었던 영민이었었다. 특히 오늘 오창우 하사가 눈앞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본 뒤론 더욱.....
" 젠장~ 군인들만 또 고생하겠네. "
선임하사가 내리는 빗줄기가 원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잠시 쓴 입맛을 다시다가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다.
" 야, 니들도 담배 피고 싶음 여기서 펴. 어? 괜찮으니까. "
선임하사는 예의 그 사람좋은 미소를 띄우며 영민과 도병장을 바라보았다.
" 그래도 되겠습니까? "
아무래도 군생활이 더 긴 도기석 병장이 먼저 선임하사의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영민에게로 슬쩍 향했다. 그리곤 눈짓. 한 대 피자는 신호다. 영민도 좋았다.
" 진짜, 내일은 아마 일조점호 끝나고 바로 배수로 작업 들어갈 거에요. "
도기석 병장이 영민에게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 그래? "
" 예. 진짜 여기 비오거나 눈오면 작살나요. 근무고 뭐고 뒷전으로 미루고 작업부터 들어가거든요. 완전 노가다가 따로 없지...... 어휴. "
도기석 병장은 생각만 해도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이 어깨를 떨며 연기를 내뿜었다. 영민은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한 걱정 따윈 머리속에 끼어들 틈도 없었다. 그는 지금처럼 잠시 일을 멈출 때마다 김대명 하사와 전빈영 하사의 생각으로 머리속이 사나웠다. 지금도 여지없이 피를 튀기며 쓰러지던 오창우 하사의 얼굴과 함께 김대명 하사와 전빈영 하사의 유령같은 모습들이 오버랩 되어졌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는 더욱 거칠게 퍼붓고 이따금씩 요동치는 번개와 폭음같은 천둥 소리는 순간순간 영민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번쩍.
꽈콰콰쾅!
" 야, 라면이나 끓여먹자 어? 기석아. "
" 예? "
도기석 병장과 영민이 놀란 눈으로 선임하사를 바라보았다.
" 선임하사님. 지금 뇌우 1단계 들어갔는데 쿠커 사용해도 괜챦겠습니까? "
뇌우 1단계가 발령되면 후방 지역 전원이 차단되고 각 근무장에서도 전기의 사용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고 있을 선임하사가 아니었다.
" 야, 괜찮아. 괜찮아. 2단계 걸리기 전에 후딱 먹어치우자. 시발 야근하는 것도 서러운데 배고픔까지 참을 수 있냐? "
그러자 도기석 병장이 빙긋 웃으며 어디론가로 가더니 큼지막한 쿠커 하나를 꺼내들곤 화장실로 갔다.
" 이야~ 힘들다. 그렇지 이영민? 넌 생생해 보인다? "
선임하사는 기지개를 쭉 키면서 영민을 바라보았다. 사실 영민은 별로 힘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일단 이 곳은 영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기에......
선임하사는 또 하나의 담배를 피워 물며 빙글빙글 웃었다.
" 젊어서 좋겠다 넌. 응? 니가 스물 두 살이라 했지? "
" 예. "
" 야~ 좋을 나이다. 하긴 나도 그 나이 땐 몇일 밤을 새어도 끄덕 없었지. 내가 B N Q 하사였을 땐 말야. 정말 매일 밤 술먹는게 일이었어. 그 땐 정말 대단했었지. 일주일 중에서 거의 사,오일을 그렇게 마셔댔으니...... 그러고도 다음 날 딱 제 시간에 근무상번해요. 그리고 할 일 다하고, 생생하게 B N Q 내려오지. 그러다가 또 점호 끝나면 술 퍼마시고...... "
조금 과장스런 얘기였지만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선임하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영민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는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르르르......
기계적으로 영민의 손이 수화기를 재빨리 집었다.
" 예. 운영계, 이하삽니다. 통신보안...... 예. 필승!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예. 아닙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
영민이 심각한 표정이 되자 선임하사도 뭔 일인가 싶어 두 눈을 휘둥그래 떴다. 영민은 수화기를 막으며 선임하사에게 건넸다.
" 선임하사님, 대대장님이십니다. "
그러자 대번에 정색을 하고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내려 놓으며 수화기를 건내받는 선임하사.
" 예. 필승. 박상삽니다. 예. 뭐 큰 피해는 없습니다. 예...... "
따르르르르......
선임하사가 대대장 전화를 받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전화벨이 울린다. 다시 잽싸게 수화기를 드는 영민. 선임하사가 한 번 흘끔 본다.
" 예. 운영계, 이하삽니다. 통신보안. "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다.
" 이하삽니다. "
영민이 다시 한번 자신을 밝혔으나 수화기 저편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쩔 줄 모르는 영민.
" 예. 예, 지금 여기 이하사랑 도병장 불러놓고 열심히 야근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예...... "
선임하사와 대대장의 통화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러나 영민의 수화기에선 계속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서서히 불안해지는 영민
......
그러나 자세히 들으니 무슨 소리가 난다. 미세한 공기의 움직임. 숨소리!
영민은 순식간에 등골이 오싹해지며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불길한 느낌.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 당장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하려는 순간, 싸늘하게 메마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영민의 귀속으로 전달된다. 조용히, 그러나 똑똑히......
" 넌 봤지? "
심한 한기가 영민을 감싼다.
그 목소리. 그것의 주인공은 전빈영 하사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영민.
" 창우...... 누가 그랬어? "
" ......! "
" 김대명이 짓이지? "
" ......! "
" 그렇지? "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주체할 수 없는 공포......
영민의 전신은 얼어붙어 있었다. 창 밖을 번쩍 밝히는 번개빛! 그리고 갑자기 전빈영 하사의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 이영민! "
꽈광! 콰콰콰쾅!
그 소리와 동시에 밤하늘을 날려버릴 듯 엄청나게 커다란 천둥소리가 부대 전체를 뒤흔든다.
" 허억! "
영민은 그만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만다.
꽈콰콰쾅! 쾅!
천둥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빗줄기도 뤌씬 두꺼워져 있었다.
쏴아아아......
" 야, 너 왜그래? "
부대장과의 통화가 끝난 선임하사가 영민의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놀라며 달려온다.
" 무슨 전화야? 어? "
영민이 놓친 수화기를 선임하사가 다시 집어든다.
" 여보세요. 누구야? 여보세요? "
그러나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다.
" 야, 왜 그래? "
넋이 나간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영민을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선임하사. 영민은 얼른 정신을 차리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 아닙니다. 갑자기 천둥소리가 너무 커서...... "
" 뭐? 전화는 무슨 전화였어? "
" 예..... 장난전화 같았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
" 뭐야? 어떤 자식이 그딴 짓을 해? "
" 글쎄 말입니다. "
" 너 괜찮지? 응? "
" 예...... 괜찮습니다. "
영민은 식은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표정은 애써 꾸밀 수 있었지만 두근대는 심장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선임하사는 안심이 안된다는 눈빛으로 흘끔흘끔 영민을 쳐다보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 도기석 병장이 쿠커에 물을 받아왔다.
" 야, 좀 전에 그 소리 들었습니까? 난 무슨 대포가 터지는 소린 줄 알았습니다. "
도병장은 머리를 내저으며 쿠커 코드를 꼽고 이내 라면을 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