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B.N.Q17

농구왕김타자2011.03.17
조회845

새벽 세 시 삼십 분.
어느덧 서류 수정 작업은 마무리가 되어갔다. 볼륨을 낮게 틀어 놓은 TV에선 계속해서 새로운 기상속보가 들려왔다.

" ......지금으로부터 약 한시간 후면 전국은 제 8호 태풍 지니의 영향권 안에 듭니다. 현재 서해와 남해 전 해상에는 강한 비바람과 함께 엄청난 높이의 파도가 치솟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오늘 새벽 세 시 삼십분을 기점으로 하여 강원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에 태풍 주의보를 태풍 경보로 바꿨습니다...... "

선임하사는 하던 일을 마무리 짓더니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영민과 도기석 병장을 번갈아 바라본다.

" 자 니들 수고했어. 피곤하지? 대충 마무리하고 이제 숙소로 돌아가 쉬어라. "

" 예. "

도기석 병장은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대답을 하며 일을 재빨리 종료한다.

" 이쯤 했으니까. 이제 내일까지 마무리만 하면 되겠구나. 너희들은 가서 푹 쉬었다가 내일 12시까지 상번해라. 응? 피곤하더라도 며칠만 참자. "

" 예...... "

영민은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그는 B N Q로 돌아가기 싫은 것이었다. 그 곳엔 전빈영 하사가 있었다. 그리고 축구공으로 오창우 하사의 얼굴을 뭉개버렸던 김대명 하사도 있었다.
영민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눈치챈 선임하사가 걱정스래 다시 묻는다.

" 이하사. 넌 괜찮냐? 안색이 되게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무리한 거 아냐? "

" 정말입니다. 이하사님 어디 아프신거 아녜요? "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영민은 어두운 표정을 걷어내고 억지로 밝게 웃으며 일어섰다.

" 그래? 그럼 어서들 가봐. 정말 수고 많았다. 가서들 쉬어. "

" 예. 필승. 하번 하겠습니다. "

영민이 경례를 하곤 돌아서려는데, 선임하사가 다가왔다.

" 야, 지금 비 많이 오니까 조심해서 가라구. 응? 후래쉬 있지? "

" 예. "

벌써 시커먼 우의를 챙겨 입은 도기석 병장인 한 손에 큼지막한 후래쉬를 들어 보였다.

" 그래. 그럼 잘들 들어가. "

" 예. 수고 하십시오. 선임하사님. "

우의를 걸치고 운영계 건물 밖으로 나오자 비바람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강한 바람에 실려 멋대로 날려드는 빗줄기들이 영민과 도기석 병장의 몸을 사정 없이 두들겨댔다. 자못 아플 정도였다.
쏴아아아......
휘이이이잉~
번쩍!
우르르 꽈꽈쾅, 쿵쾅!
쏴아아아......
갖가지 굉음들이 가득한 밤이었다. 마치 오랜만에 상봉한 악령들이 밤의 축제라도 벌이듯이.
영민은 B N Q로 다가갈수록 다리가 후들거려 왔다. 그래서 자꾸만 뒤쳐지게 되었다.

" 이하사님. 빨리 오세요. "

도기석 병장이 몇 번이고 앞서가다가 뒤돌아보며 영민을 기다려주곤 했다. 질퍽거리는 군화엔 어느새 빗물이 가득했고 우의를 입었지만 온몸이 축축히 젖어왔다. 상당히 거북스러운 감촉이었다. 지금 영민의 기분 만큼이나......

드디어 B N Q 건물로 들어섰다. 2층이 숙소인 도기석 병장을 먼저 보내고 홀로 3층으로 향하는 영민. 발걸음이 천 근 만 근 무겁다.이처럼 B N Q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적이 없었다. 정말 이대로 탈영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만약에 날씨만 좋았다면 어쩌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새 영민의 발걸음은 3층에 도착해 있었다. 길게 늘어선 3층 복도. 불꺼진 복도.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 것도 없을 것만 같은 완벽한 암흑 속. 그러나 그 암흑 속엔 마치 마귀의 성으로 향하는 무시무시한 다리 같은 시커먼 복도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마귀의 주둥이같은 B N Q가 버티고 있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영민은 어쩔 수 없이 B N Q로 향하는 그 어두운 복도를 내딛었다.
질꺽 질꺽......
빗물을 가득 머금은 군화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흡혈귀가 사람의 피를 빨아댈 때 나는 소리 같이 끔찍하게 들린다. 단번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러나,
질꺽 질꺽......
영민의 군화는 계속 그 섬뜩한 소리를 내며 B N Q 1호실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 어서 1호실로 가자. 그리고 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아 버리자. 혹시 누가 내 이름을 불러도 못 들은 척 계속 누워있자.'
영민은 이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임을 깨닫고 한걸음 한걸음 조용히, 그러나 조금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질꺽 질꺽......
드디어 어둠 속에서 1호실의 문고리가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조금만 더......
영민은 한껏 숨을 죽이고 1호실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문고리를 잡았다.
'됐다.'
문고리가 돌아갔다.
1호실 문이 열리려는 찰나......
영민은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것은 마치 조건반사 같은 그런 힘이었다. 그저 1호실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가 뒤로 돌아간 것이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이. 혹은 문고리를 돌림과 동시에 불현듯 발동된 영민의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돌아본 영민의 시선은 마치 수많은 연습이라도 해왔듯이 정확하게 B N Q 4호실로 고정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번개가 친다. 느닷없이 시체처럼 어두웠던 장막이 확 걷히면서 B N Q 4호실이 똑똑히 보여진다.
B N Q 4호실!
문이 열려 있다. 흠칫 놀라는 영민. 그리고 그러면서도 B N Q 4호실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다시 한번 놀라고 있다.
'왜, 왜 내가 지금 저리로 가고 있는 건가? 안돼. 이영민. 정신차려.'
그러나 이미 영민은 열린 4호실 문 앞에 우뚝 서 있다. 그리고 어느새 올라간 한 쪽 손이 4호실의 문을 마저 활짝 열고 있다.
어둠! 안에는 지독한 어둠으로 인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가 있는 느낌...... 무언가 불길하고 몸서리가 쳐지는 나쁜 것이 어둠 속에서 가만히 영민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러한 느낌이 영민을 완전히 지배해갈 무렵, 그 느낌을 제대로 확인이라도 시켜 주겠다는 듯 다시 한번 번쩍, 번개가 친다.
B N Q 4호실이 순간 확, 밝아진다. 그리고 영민의 시선에 똑똑히 포착되어지는 B N Q 4호실의 광경.
누군가의 뒷모습!
그 곳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창가를 바라보며 등진 채 우두커니 서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소스라치는 영민. 영민은 첫 눈에 그 뒷모습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아챈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김대명 하사의 뒷모습이었던 것이다.


" 으아악! "


드디어 비명이 터져 나오는 영민. 그러나 순간,
콰콰쾅!
번개 다음엔 천둥이었다. 그것은 기막힌 타이밍으로 영민의 적지 않은 비명 소리를 넙죽 삼켜 버렸다. 놀란 영민의 성대가 더 이상의 비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찰나...... 4호실 안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그것은 마치 목이 완전히 쉬어터진 사람이 입안에 무엇인가를 가득 물고서 얘기할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영민의 어린 시절, 동네에 입이 양쪽으로 찢어졌던 미친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고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였는데, 학교는 다니지 않는 아이였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양부의 손에 키워졌었는데, 아무튼 그 미친 사람의 목소리가 꼭 이러했었다. 그 자세한 원인이야 잘 모르겠지만 미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 애가 양부에게 너무나 많이 맞아서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라고들 수근거렸었다. 입이 양쪽으로 찢어진 것도 손버릇 나쁜 양부의 짓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찢어진 입가의 상처는 대충 아물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 때부터 누구도 알아듣지를 못하게 되었었다.
어쩌다가 영민이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그가 뭐라고 웅얼대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것이 마치 외계인의 말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허공을 향해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을 내뱉는 그 모습이 바로 외계인과 소통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아니면 유령과의 소통이었던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소리를 한동안 가만히 듣고 있자면 결국 끔찍하리만큼 기분이 나빠졌었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을 만큼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
지금 B N Q 4호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김대명 하사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꼭 그렇다. 마치 외계인의 목소리같은, 혹은 유령의 목소리같은, 끔찍하게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

" 영민아...... "

" ...... "

" 영민아...... 나, 김하사야...... 알겠지? 어어?...... "

영민은 상황이 여기서 더 진척되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니 그것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어서 1호실로 도망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왠지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는, 아니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시험삼아 발끝을 조금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역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뿌리라도 내린 듯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더욱 힘을 주어 보아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영민은 계속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써댔고 그러면서도 시선은 김대명 하사의 뒤통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번개가 없어도 김대명 하사의 뒷모습이 어느 정도 보였다. 김대명 하사의 끔찍하게 쉰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 이영민~ 이리로 들어와라...... "

영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쉰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 곧...... 곧 놈이 올거야...... 곧...... "

" ......! "

정말 들을수록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보다도 놈이 온다니?
순간 영민의 머리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영상 하나. 그것은 다른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전빈영 하사의 어두침침한 얼굴 외엔......
상상만으로도 그의 얼굴은 영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기 충분했다. 오싹한 한기를 끊임없이 내뿜어대는 그 얼굴. 그 눈빛. 영민은 치가 떨린다.
전빈영 하사까지? 이 어둠 속에서 결코 전빈영 하사와 마주치긴 싫었다.

" 영민아...... 어서 들어와라...... 놈이 그 문으로 들어올거야. 이제 시간이 없어...... 놈이 널 보면 그냥 안 둘거야. 넌 비밀을 알아버렸으니 말야, 어어...... "

영민은 김대명 하사의 목소리가 여전히 소름끼쳤으나 점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전빈영 하사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떠올리고 있노라니 그래도 전엔 자신이 정말로 좋아했었던 김대명 하사의 존재가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 초 한 초 시간이 흐를수록 김대명 하사의 목소리는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영민은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얼어붙은 두 다리는 여전히 움직여지질 않고 있었다.

" 이영민, 어서 들어오라니까...... 거기 계속 서 있다간 언제 놈한테 당할지 몰라. 느닷없니 놈이 니 뒤에 우뚝 서 있을지도 몰라.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니 머리를 씹어 먹겠지. 와그작, 와그작...... "

소름끼치는 김대명 하사의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영민. 뒤를 본다. 그러나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어둠 뿐.
다시 한 번 번개가 치고, 번쩍이는 그 빛으로도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영민은 다시 고개를 돌려 김대명 하사를 본다. 그리곤 드디어 용기를 내어 입을 연다.

" 김...... 김하사님...... 정말 김하사님 맞으시죠? 그런 거죠? "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묻는 영민.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자가 예전의 김대명 하사가...... 영민이 가장 좋아했던 그 예전의 김대명 하사이기를, 자신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바로 그이기를......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김대명 하사의 뒤통수가 서서히 위아래로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그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영민의 말이 맞다는 뜻이다.

" 뭘 의심하는 거냐? 너 아직도 날 확신 못하는 거니? 정말...... "

김대명 하사의 목소리가 이젠 완전히 예전의 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한결 더 안심이 되는 영민.
그의 머리 속엔 오창우 하사를 피투성이로 만들던 김대명 하사의 모습 따윈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둘 중 하나를 완전히 버리고 나머지 하나를 완전히 믿어야만 했다. 그리고 영민의 의식은 그 중 김대명 하사를 믿기로 하는데 동의를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이 확실히 서자 서서히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쩔꺼억......
빗물이 찬 군화에서 다시 물소리가 난다. 영민의 다리가 움직인다.
그런데 막상 영민의 다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다시 망설여졌다. 누굴 믿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1호실로 도망가 버릴지, 아니면 4호실 김대명 하사의 곁으로 갈지를......
그런데 그 순간 영민의 귓가를 울리는 또 다른 나지막한 소리가 있었으니......
삐이이익......

" 헛! "
소리나는 쪽으로 재빨리 돌아보는 영민.
그것은 문이 조금씩, 조심스레 열리는 소리임에 틀림 없었다.
조금씩, 조심스레.
그리고 그 문은......
영민의 시선은 곧장 B N Q 2호실로 향한다.
B N Q 2호실.
그 곳은 전빈영 하사가 있는 곳!
그 문이 지금 조금식 열리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에 잘 보이진 않지만 틀림없었다.

삐이이이익......
소리가 분명 그 곳에서 나고 있는 것이었다. 2호실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

" 어헉! "

영민은 외마디 비명을 터뜨리며 2호실 문이 있을 어둠 속을 주시한다. 삐익거리던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순간,
번쩍!
번개가 어둠을 강타하고, 그 찰나에 영민은 조금 열린 2호실 문틈 사이로 드러난 누군가의 반쪽 얼굴을 보게 된다.
바로 전빈영 하사의 반쪽 얼굴!

" 으왁! "

꽈광, 쾅!
역시 이번에도 영민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린 굉음에 묻혀 버린다.
여전히 열린 2호실 문틈을 바라보고 있는 영민. 그리고 그런 영민을 부엉이 마냥 치켜 뜬 눈으로 2호실 어둠 속에서 노려보고 있는 전빈영 하사. 그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일고 있다.
그 불꽃 때문인지 전빈영 하사의 모습이 이제 확실히 보인다. 그 반쪽 얼굴의 형상이 똑똑히 영민의 시야에 잡힌다.그리고 그의 이글거리는 한 쪽 눈동자와 영민의 겁에 질린 두 눈이 마주친다.
영민은 즉시 4호실을 바라본다. 여전히 뒤돌아선 김대명 하사.
그리고 2호실엔......
이 쪽을 노려보고 있는 전빈영 하사의 얼굴. 영민은 그만 머리가 핑 돈다. 그리고 정신이 어지러워질 순간 다급한 김대명 하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 이영민. 어서...... 어서 안으로 들어와! "

영민은 가까스로 휘청거리는 전신을 지탱하며 김대명 하사를 바라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2호실의 문이 활짝 열린다.
또다시 번개가 요동을 치고......
돌아보는 영민.
전빈영 하사가 2호실을 나서며 온전한 모습을 다 드러냈다. 영민은 그의 눈빛이 살인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강한 살기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엔......
그의 오른손엔 몽둥이가 쥐어져 있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그 피묻은 나무 몽둥이! 김대명 하사를 향해 거침없이 휘둘러졌었던 그것!

" 으악! "

콰콰쾅!

" 이영민, 안으로 어서 들어와! "

저벅 저벅 저벅......
번쩍!
다시 번개가 치면 어느새 영민의 코앞까지 바짝 다가와 있는 전빈영 하사의 얼굴!

" 으왁! "

꽈광, 쿠콰쾅!
영민이 기겁을 하며 4호실 안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악스런 전빈영 하사의 손아귀가 영민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 으윽! "

전빈영 하사의 손에 이끌려 영민의 몸은 쉽게 뒤로 밀려난다. 김대명 하사의 뒷모습이 영민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멀어진다.
그리곤 이내 차디 찬 복도 바닥 위로 영민의 몸이 팽개쳐 진다.
쿵!
영민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속으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난...... 죽, 는, 구, 나......'
그 때 다시 한 번 주위가 확, 밝아진다.
어슴푸레한 영민의 시선 속에 전빈영 하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영민을 팽개치곤 즉시 돌아선 모양이었다.
전빈영 하사의 앞으로 B N Q 4호실의 내부도 보인다. 뒤돌아 서 있는 김대명 하사의 모습까지. 감겨질 듯 감겨지지 않고 있는 영민의 눈. 마치 뭔가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
연달아 내리치는 번개는 형광등이 점등되는 순간을 연출하고, 깜빡이는 빛의 혼란 속에서 계속 영민의 시선을 붙들고 있는 B N Q 4호실.
전빈영 하사의 비장한 발걸음이 4호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몽둥이를 쥐고 있는 오른손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 몽둥이가 부르르 떨리고 있다.
그러나 알아채지 못한 듯, 여전히 뒤돌아선 채로 꼼짝을 않고 있는 김대명 하사. 영민은 다시 속으로 중얼거린다.
'김하사님...... 위험해요...... 뒤...... 뒤를 보세요...... 뒤를...... '
콰콰쾅!
들리지 않는 영민의 중얼거림마저도 성가신 듯 또한번 B N Q를 뒤흔드는 천둥소리.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번개빛.
전빈영 하사는 계속해서 김대명 하사의 등뒤로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몽둥이를 쥔 그의 오른손이 치켜 올라가 있다.
점점 더 흐려지는 영민의 시야.
'김하사님...... 뒤...... '
더 흐려지는 시야.
'김, 하, 사...... '
그러나,
어느 순간, 흐려지던 영민의 시야가 다시 밝아진다. 감기려던 눈이 다시 휘둥그레 떠진다. 가물거리던 정신이 다시 돌아온다.
김대명 하사가 돌아섰던 것이다. 180도로 몸이 돌아가는 김대명 하사. 그의 얼굴이 영민의 눈 속에 똑똑히 들어온 것이다.

" ......! "

김대명 하사!
그러나 돌아서는 그는 김대명 하사가 아니었다. 영민의 눈에 비친 그는 분명 김대명 하사의 얼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한 번 천둥의 고함이 터져나오고, 전빈영 하사의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며 휘둘러졌다.
퍽!
둔탁한 마찰음.
그러나 그것은 매트리스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였다. 사람의 신체를 가격할 때 나는 마찰음이 아니었다.
놀란 눈을 치켜 뜨고 어느새 몸을 반쯤 일으킨 영민.
전빈영 하사가 휘두른 몽둥이는 그대로 옆에 쌓여 있던 매트리스를 내리쳤고, 김대명 하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조금 놀란 듯 전빈영 하사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김대명 하사는 보이질 않았다.
아니 4호실 어느 구석에 숨어있는 지도 몰랐다. 그러나 전빈영 하사의 눈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여전한 어둠.
가끔식 번쩍이는 번개와 뒤따르는 천둥소리들......
그리고 비소리.
영민은 그야말로 귀신에 홀린 듯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전빈영 하사가 김대명 하사의 등뒤로 바짝 다가가던 어느 순간 홱, 뒤를 돌아다 본 김대명 하사.
그리고 그의 얼굴. 그 끔찍했던 얼굴이 영민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 막 부패가 시작된 시체의 얼굴과 같았다.
썩어 들어가는 검은 눈자위에 뻥 뚫린 눈동자. 너덜거리는 볼과 그 사이로 삐죽이 드러나 보이는 광대뼈, 그리고 떡 벌어진 입은 귀 밑까지 찢어져 있었던 그 몰골!
그것은 전혀 김대명 하사의 얼굴이 아니었다. 정말로 외계인이나 유령의 몰골이 그러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뒷모습은 분명 김대명 하사였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김대명 하사의 몸을 옆으로 정확히 이등분 내어 얼굴이 있는 앞쪽을 떼어 내 버리고는 대신 썩은 시체의 그것을 억지로 갖다 붙여 놓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아니면......
다시 한번 번개가 친다.

" 으헉! "

영민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비명도 이제 지친 듯 크게 나오질 못했다. 언제 왔는지 전빈영 하사가 영민의 바로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위협을 느끼며 방어자세를 취하는 영민. 그의 눈은 전빈영 하사의 무서운 눈초리와 더 무서운 몽둥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콰콰콰쾅!
말없이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는 영민과 전빈영 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