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유...... 빨리 영외 거주를 나가삐야지 이놈의 삽자루를 놓지. 누가 보면 이거는 뭐, 군인들인지, 노가다 잡부들인지 분간이 안 간다 할거 아이가......"
"씨팔, 노가다 잡부라면 일당이라도 있지. 그리고 이렇게 비오는 날은 노가다판도 쉬어."
"저희도 있지 않습니까? 시간외 수당......"
"야 임마, 시급 이 천원도 안 되는 게 그게 어디 돈 이가? 비 쫄딱 맞고 몇 시간이나 일하는데...... 드러버서 그거 안 받고 말지......"
장병들을 태운 트럭은 부대 정문을 한참 지나 작전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불평을 늘어놓는 이들은 Q장과 그의 동기 박원 하사, 그리고 그들의 불평들에 적당히 대꾸를 해주는 오창우 하사였다. Q장기수들로선 이런 부대 사역은 정말 짜증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병들과 어울려 진창같은 곳에서 삽자루질을 한다는 것은 이제 삼개월이면 영외거주를 나가는 준영외자들인 그들에게는 꽤나 꼴사납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에. Q장 배승환 하사는 연신 투덜거리며 덜컹거리는 트럭 한쪽에서 줄담배를 피워 대고 있었다. 빗방울이 이따금씩 그의 담배위로 떨어져 담배는 쓴맛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더욱 인상을 그리는 Q장. 그러다가 문득 Q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튕겨 날리고선, 사방을 둘러보며 작업인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모두들 검푸른 우의를 걸친 채, 비에 젖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선 하나같이 죽상들이 되어 있었다. Q장의 눈길을 따라 별 생각없이 그런 모습들을 쭉 둘러보던 박원 하사가 냉소를 띄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맞다 그래. 누가 보면 노가다판 잡부가 아이라, 전부 무슨 죄수들처럼 보이겠네. 깜방에 처박혀 있다가 비오는 날 오랜만에 바깥에 기어 나오는 죄수들......"
그의 말에 오창우 하사를 비롯한 몇몇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Q장은 웃지 않고 점점 더 심각한 얼굴로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무언가 이상한 사실이라도 하나 발견 해 낸 듯, 잠시 생각에 몰두한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오창우 하사가 심상찮은 느낌을 감지했는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Q장님?"
Q장은 그런 오창우 하사의 얼굴을 예리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그러나 그의 눈은 오창우 하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점이 없는 동공은 아직 자신의 생각속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상태였었다. 올빼미같이 치켜 뜬눈으로 계속해서 Q장을 바라보면 대답을 기다리는 오창우 하사. 이윽고 Q장이 생각에서 빠져 나와 나직하고도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야, 빈영이 어디 있지?"
"예?"
흠칫 놀라는 오창우 하사. 그도 주위를 둘러 본다. 그러나 정말 전빈영 하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눈길로 다시 Q장을 바라보는 오창우 하사. Q장의 인상이 완전히 구겨진다.
"어떻게 된 거야? 걔 아까 트럭에 타지 않았었냐?"
"예...... 타셨습니다. 인원점검 할 때도 계셨고......"
Q장의 얼굴빛이 더욱 파래진다.
"정문 나갈때까지만 해도 트럭에 타고 있었잖아?"
"예......"
Q장의 음성이 조금씩 높아지자 옆에 있던 박원 하사가 눈치를 채고 끼여든다.
"어, 정말...... 빈영이 어디갔노? 좀 전까지만 해도 저쪽에 있던 것 같은데......?"
"에이 씨팔 새끼, 진짜......"
마침내 Q장의 울분이 터진다. 긴장하는 오창우 하사와 그 이하의 기수들.
"야, 창우 헌병대로 모토롤라 때려. 빈영이 씹새끼 탈영했다고!"
"예?"
"빨랑 임마!"
Q장의 호통에 어쩔 줄을 모르고 머뭇거리는 오창우 하사. 그러나 더 이상은 다그치지 않는 Q장. 씩씩거리면 거친 숨만 내쉰다. 박하사가 오창우 하사를 내밀며 Q장의 옆으로 가서 앉는다.
"걱정마라, 배하사. 빈영이 글마가 설마 탈영이야 했겠나? 트럭에 아예 안 탔던가 아니면 막 출발 하려고 할 때 몰래 내려서 BNQ로 갔을 끼다. 글마가 암만 그케도 이런 싸이트에서 갈 때가 어디 있겠나?"
박원 하사의 말에 조금 진정이 되는 듯, 인상이 펴지는 Q장. 그러나 여전히 표정은 어둡다. 끊임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은 정말로 조금씩 굵어지는 듯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영민의 가출도 끝나고, 그렇게 방학도 끝나 가면서 여름도 저물고 있었던 어느 저녁. 해진 후의 어스름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정도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한 영민은 다시 현실로 복귀했고, 그러면서 그동안 밀린 학업에 전념을 해야만 했다. 이제 다가올 고입시험도 그렇고, 그동안 떨어질 때로 떨어진 내신을 어느정도 선까지 끌어올리려면 다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영민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네 시립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했으며, 다니다 만, 영어 학원에도 다시 나가기 시작했었다.
그 날도 시립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학원 수업까지 끝낸 영민은 여지없이 반 녹초가 된 상태였었다. 시계는 저녁 7시를 넘기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영민의 집까지는 꽤 거리가 멀었다. 걸어서 약 20분 정도는 되었는데, 그 중에서 10분 정도는 상당히 좁고 가파른 계단을 계속 올라가야만 했었다. 이 계단이 영민에게는 그다지 기분 좋은 곳이 아니었다. 영민이 초등학교때에 이 계단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다. 남편의 보험금을 노린 아내의 청부살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영민은 살인이 있던 그 날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했었고, 그때문에 느닷없이 밖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었다. 다음날 계단은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고, 영민에게서 그 충격은 한동안 가시지를 않았었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밤에는 절대로 그 계단을 혼자서 다니지 못했을 정도이니. 영민에게 등뒤에서 누군가가 미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바로 그 계단을 올라서는 순간부터였다. 해가 진 지 얼마 되지 않은터라 주위는 아직 그리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 좁은 계단만은 시간을 한시간 정도 앞서가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때마침 그곳을 거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영민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인기척을 떨쳐내려고, 혹은 확인하려고 했었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미행자의 기분나쁜 느낌만은 여전히 감지되고 있었다. 그 미행자가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왔을 무렵부터었다. 어느순간 초등학교때의 그 살인 사건이 기억나게 되었고, 다음 순간, 한방중의 정막을 깨뜨리던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 그리고 그의 처절했던 몸부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계단의 핏자국들이 연상되어 졌고 그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기분나쁜 인기척이 ´인´기척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것의 기척...... 계단을 다 올라서는 순간부터 영민의 마음은 좀전보다 몇곱절이나 더 조급해 졌다. 본격적으로 공포가 밀려 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냅다 뛰었었다. 하지만 뛰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은 떨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그 무언가가 자신의 뒤가 아니라 자신의 등에 바짝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는 곧바로 시야에 들어오는 무엇인가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문을 여는 순간 그의 시선을 빼앗아 간 것은 다름아닌 마루에 걸려 있던 어머니의 영정이었다. 어머니의 영정은 항상 안방 벽에 높이 걸려 있었는데, 왠일인지 그것이 현관 바로 앞, 마루 벽에 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크기가 더 커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분명 어제까지 영민이 보아왔던 그 영정이 아니었다. 영정 액자 자체의 크기는 그대로 인 것 같았는데 그 속의 사진만이 어제 것 보다 두 배는 거 커져 있는 듯 했다. 물론 공포에 질려 이성이 어느 정도 마비된 영민의 잘못된 느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그 영정이 안방에서 마루로 나와 있었는지, 왜 그것의 크기가 변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왜 영민이 문을 열자마자 어머니의 영정으로 눈길을 쏟아졌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영정을 보는 순간 스위치가 ON되듯 전달되어지는 집안의 기운이 예전같 지 않다는 것이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차갑고, 야릇하게 변해있는 심상치 않은 집안의 기운. 분위기. 영민이 그런 기운들을 온몸으로 감지하며 마루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향하려는 찰나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 아뿔싸...... 집 밖, 계단에서부터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미행자가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소스라쳐 놀라며 재빨리 뒤돌아보는 영민의 시야에 일순간 크게 들어오는 것은 그 위치가 다시 바뀌어져 있는 어머니의 영정이었다.
"으헉!"
어머니의 영정은 바로 아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현관 앞에 걸려져 있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는 영민의 눈앞에 보이는 영정은 그곳이 아닌 식탁 테이블 위였다. 현관에서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그러나 지금 영민이 서 있는 위치와는 더 가까운 식탁 테이블 위에 비스듬이 놓여져 있는 어머니의 영정.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탄성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영민은 그러나 다음순간에 정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엄청난 공포를 맛보게 된다. 발이라도 달린 듯 현관앞에서 식탁으로 옮겨졌던 어머니의 영정이 이번엔 보란듯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무표정히 굳어있던 사자(死者)의 표정은 눈이 녹듯 스르르 풀리며 그 입가가 찢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얼굴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영정의 액자 자체의 크기가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좀 전에 느꼈던 영민의 느낌이 맞았다. 액자는 그대로인데 그 액자 속, 어머니의 얼굴만 점점 더 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흡사 사진속의 얼굴이 액자 밖으로 나올 것만 같은 기세였다. 아니 정말로 그 얼굴은 액자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사진속의 얼굴은 마치 살아있는 얼굴이라도 되듯이 섬뜩하리만큼 매서운 미소를 지으며 점점 입체감을 띄더니 결국에는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만큼 커져서 액자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으아악!"
이윽고 액자밖으로 버젓이 나와버린 사진속의 얼굴. 변해버린 어머니의 미소 띈 얼굴. 그것은 영민의 기억속에서 전혀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영민은 예전에도 저 얼굴을 보고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전 날. 관이 놓여 있던 안방에서 보았던 그 얼굴. 유난히 하얀 얼굴에 붉은 빛이 감도는 둥그런 눈동자. 거기다가 서서히 입언저리가 찢어 올라가며 짓던 싸늘한 미소. 그 날 관 위에서, 천장에서 영민을 바라보며 엄마라고 말하며 흐느적 거리는 길다란 손을 내밀던, 바로 그 귀신. 그 귀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몸은 없고 얼굴만 동동 떠 있다는 것.
"영민아."
허공에 떠 있던 하얀 얼굴의 미소 띈 입이 그때처럼 다시 열리고 있었다.
"영민아, 엄마야...... 엄마가 왔어."
영민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도무지 현실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몽환적이고 답답한 기분에 머리가 빙빙 도는 듯 했다. 영민의 눈이 얼떨결에 다시 영정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무표정한 예전의 영정 사진 그대로...... 그렇다면 도대체 이 얼굴은 무엇이란 말인가...... 영민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이 얼굴은......
"어...... 엄마가 아냐......"
겨우 더듬거리며 영민이 입을 열었다. 식은 땀이 유령의 손길처럼 영민의 등과 옆구리를 훑으며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가 아냐...... 엄마가 아니라구......"
영민은 조금씩 언성을 높였지만 두 다리는 이미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이성은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하얀 그 얼굴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영민에게로 점점 더 가다왔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얼굴의 아래 부분(원래 손이 있을 법한 그 위치)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온다. 예전에 보았던 길고 흐물흐물한 손이었다. 다시 한번 기겁을 하며 몸을 떠는 영민. 손은 영민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영민아...... 엄마랑 같이 안 갈래?"
영민은 더 이상 정신을 붙들고 있을 힘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몽땅 쏟아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싫어! 난 아무데도 가기 싫다구!"
영민이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주위는 더욱 더 몽환적이고 괴이하게 뒤틀리더니 그만 어둠이 몰려왔고 영민은 정신을 잃어 버렸었다. 영민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아버지가 우울한 눈빛으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민은 어머니의 영정을 두 손에 꼭 쥔채 자신의 방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영민이 깨어나자 그의 손에 꼭 쥐어졌던 영정을 지그시 집어 들더니 방을 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손에 들려 방을 빠져나가는 어머니의 영정은 분명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더 커 보인다거나 표정이 바뀌어 져 있다거나, 조금도 이상스럽게 보이는 부분이 없는 예전 어머니의 모습. 이 후, 어머니의 귀신은 다시 영민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나타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두 번의 공포스러웠던 기억조차도 다시 상기되어 지지 않았었다. 영민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휴학을 하고, 입대를 하여 이 곳 공군 부대로 배치를 받을 때 까지......
영민은 큰 호흡과 함께 담배연기를 힘차게 빨아들이며 앞의 대형 유리문으로 바깥의 풍경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아까보다 조금씩 더 굵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니코틴의 기운은 영민의 폐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진 담배를 쳐다보는 영민. 왠일인지 영민의 담배는 꺼져 있었다. 영민은 꺼져버린 담배 끝에다가 다시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과거의 기억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다. 문득 기분이 우울했다. 그리고 그 우울한 기분의 원인은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문득 솟구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영민은 애써 축 처지는 기분을 떨쳐내려고 머리를 흔들며 다시금 깊게 담배연기를 한 모금 빨아 들였다. 이번엔 니코틴이 제대로 폐 속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을 새로이 지배해 버리는 영상들이 있었다. 김대명 하사. 그리고 전빈영 하사. 그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기억들...... 영민은 머리를 내저으며 그들의 모습을 떨쳐내려 했다. 이제 막 과거의 공포스런 기억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암담하고 무시무시한 상념들에 젖어 있긴 싫었다. 더구나 이번의 기억들은 예전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고, 기분 나쁜 것들이었다. 그러나 영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더욱 생생히 다가오는 영상들. 그것은 마치 영사기처럼 영민의 머릿속에서 촤르르 빠른 속도로 펼쳐진다. 바로 어제 밤의 일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몸서리쳐지는 일들뿐이었다. 더욱 짧게 타 들어가는 담배꽁초. 영사기처럼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던 지난날들이 이윽고 모두 사라지고 영민의 머릿속에 최후에 남은 것은 어제 전빈영 하사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들이었다. 영민은 곰곰이 그 말들을 되새겨 본다.
-이건 몽둥이야. -귀신잡는 몽둥이. -아까 니가 4호실에서 본 건 김대명이가 아냐. -물론 그 시각 3호실, 좀 전에 니가 봤던 그 자리에 김대명이는 없었어. 즉 우리가 4호실에서 김대명을 봤을 때 김대명은 3호실에 없었고, 4호실에서 우리가 봤던 김대명은 김대명이 아니었단 얘기야. -너라면 잘 알거야. 상황이 어떤지를 말야.
-너라면 잘 알거야. 상황이 어떤지를 말야.
담뱃재가 툭 떨어졌다. 이어서 필터까지 짧게 타 들어간 꽁초마저 영민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영민의 머릿속으로 칼날처럼 파고드는 생각하나! 어머니의 영정 사진. 그리고, 그 속에서 빠져 나왔던 또 다른 어머니의 하얀 얼굴...... 그렇다면...... 그렇다면 어제밤 영민이 보았던 그 끔찍한 모습의 김대명 하사도 어쩌면......? ´아하......!´ 영민은 고개를 들었다. 속으로 절로 탄성이 터졌다. 전빈영 하사의 말들이 이제야 이해가 된 것이다. 김대명 하사. 그의 몸속으로 무언가가 들어간 것이었다. 그래야만 의문이 풀린다. 진짜 김대명 하사와 가끔씩 나타나는 또다른 김대명 하사. 그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또다른 무엇......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또다른 그것은 아직 김대명 하사의 몸을 완전 지배하진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므로 김대명 하사는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창우 하사를 피투성이로 만들었을 때의 김대명 하사. 그리고 아무일 없다는 듯 곤히 자고 있던 김대명 하사. 하지만 둘 중 분명히 더 나쁜 쪽이 더 좋은 쪽을 지배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나쁜쪽의 모습은... ´어제 내가 4호실에서 보았던 그 끔찍한 얼굴이 그럼......´ 전빈영 하사는 자신의 몽둥이가 ´귀신´ 잡는 몽둥이라고 했었다. 그럼 그 끔찍한 얼굴은 정말 귀신이란 소린가...... 아니 그래야만 앞뒤가 맞는 것이다. 귀신이 아니고서는 어제의 상황을 연출해 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대명 하사의 몸 속엔 악귀가 들었고 그것을 알아챈 전빈영 하사는 그 악귀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 영민은 문득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예전에 자신이 처음 이 부대에 왔을 때 장하사가 밥을 사주면서 해 주었던 그 얘기였다.
"이건 귀신 얘긴데......" "이 부대엔 귀신이 있어."
과연 이 부대에는 귀신이 있단 말인가...... 영민은 새삼 몸서리가 쳐 진다.
질꺽 질꺽...... 그 시간 온통 진흙 투성이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전투화가 쉬지 않고 빗길을 성큼성큼 걷고 있다. 그가 걸어온 자취마다 발자국들이...... 질척거리는 흙바닥 위에 굳은 의지 같은 발자국들이 무수히 찍혀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그는 우의도 입고 있지 않고 있었다. 무표정하다 못해 오싹한 기운마저 감도는 얼굴에는 연신 빗물이 흘러내린다. 빗물을 따라 살기까지 흐르고 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성큼 성큼 주저 없이 걸어서 작전도로를 오르고 있는 그의 앞으로 공군 부대의 정문이 보인다.
영민은 대대본부를 나왔다. 첫 번째 순찰 코스인 식당 보일러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더뎠다. 시간이 꽤 지나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영민은 별로 개의치 않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그런 시간 따위나 생각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던 것이다. 김대명 하사의 몸에 귀신이 들어 간 것이라면 그 귀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이며 어떻게 김대명 하사의 몸 속으로 들어갔는지, 또 그 귀신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BNQ 4호실과 귀신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전빈영 하사는? 전빈영 하사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정말 귀신을 잡는 퇴마사라도 되는 것인가...... 혹시 그 또한 귀신은 아닌 것인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모든 것이 전빈영 하사의 잘 짜여진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영민은 어제밤 화장실에서 자신과 함께 담배를 피우던 전빈영 하사의 모습을 떠 올여 보았다. 그 때 그의 모습은 너무도 진지하고 솔직해 보였다. 물론 그는 예전부터 늘 그런 모습이었다. 그의 말이나 표정이 너무나 완벽해서 감히 그것이 거짓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것은 영민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차고 힘겨운 문제임이 틀림없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정중히 거절하고만 싶은 문제였었다. 보일러실을 나온 영민은 다음코스인 무기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좀 전에 떠올렸던 무수한 의문 중 하나가 다시금 머리를 스쳤다. BNQ 4호실. 정말 그곳은 과연 무엇인가! 무슨일이 일어났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인가? 그곳과 얼마간 영민의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영민의 발걸음이 자꾸만 갈피를 잃고 휘청거린다. 머릿속은 무겁고 어지러웠다. 자신의 뇌가 그 바닥을 모르는 구덩이 속으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BNQ 4호실. 그곳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BNQ 4호실. 그곳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BNQ 4호실. 그곳의......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영민은 머리에 상당한 통증을 느꼈다. 정수리가 뜨끈뜨끈 해 질 만큼 아팠다. 복잡다양한 사념들에 넋을 잃고 머리를 숙인 채 걷다가 그만 벽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영민의 눈앞엔 어느새 BNQ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
분명 무기고로 향했던 것 같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영민은 이곳으로 와 버린 것이었다. BNQ 건물 앞으로.
<펌>B.N.Q19
"야,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는 거 아냐?"
"어유...... 빨리 영외 거주를 나가삐야지 이놈의 삽자루를 놓지. 누가 보면 이거는 뭐, 군인들인지, 노가다 잡부들인지 분간이 안 간다 할거 아이가......"
"씨팔, 노가다 잡부라면 일당이라도 있지. 그리고 이렇게 비오는 날은 노가다판도 쉬어."
"저희도 있지 않습니까? 시간외 수당......"
"야 임마, 시급 이 천원도 안 되는 게 그게 어디 돈 이가? 비 쫄딱 맞고 몇 시간이나 일하는데...... 드러버서 그거 안 받고 말지......"
장병들을 태운 트럭은 부대 정문을 한참 지나 작전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불평을 늘어놓는 이들은 Q장과 그의 동기 박원 하사, 그리고 그들의 불평들에 적당히 대꾸를 해주는 오창우 하사였다. Q장기수들로선 이런 부대 사역은 정말 짜증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병들과 어울려 진창같은 곳에서 삽자루질을 한다는 것은 이제 삼개월이면 영외거주를 나가는 준영외자들인 그들에게는 꽤나 꼴사납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에.
Q장 배승환 하사는 연신 투덜거리며 덜컹거리는 트럭 한쪽에서 줄담배를 피워 대고 있었다. 빗방울이 이따금씩 그의 담배위로 떨어져 담배는 쓴맛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더욱 인상을 그리는 Q장.
그러다가 문득 Q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튕겨 날리고선, 사방을 둘러보며 작업인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모두들 검푸른 우의를 걸친 채, 비에 젖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선 하나같이 죽상들이 되어 있었다. Q장의 눈길을 따라 별 생각없이 그런 모습들을 쭉 둘러보던 박원 하사가 냉소를 띄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맞다 그래. 누가 보면 노가다판 잡부가 아이라, 전부 무슨 죄수들처럼 보이겠네. 깜방에 처박혀 있다가 비오는 날 오랜만에 바깥에 기어 나오는 죄수들......"
그의 말에 오창우 하사를 비롯한 몇몇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Q장은 웃지 않고 점점 더 심각한 얼굴로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무언가 이상한 사실이라도 하나 발견 해 낸 듯, 잠시 생각에 몰두한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오창우 하사가 심상찮은 느낌을 감지했는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Q장님?"
Q장은 그런 오창우 하사의 얼굴을 예리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그러나 그의 눈은 오창우 하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점이 없는 동공은 아직 자신의 생각속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상태였었다.
올빼미같이 치켜 뜬눈으로 계속해서 Q장을 바라보면 대답을 기다리는 오창우 하사. 이윽고 Q장이 생각에서 빠져 나와 나직하고도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야, 빈영이 어디 있지?"
"예?"
흠칫 놀라는 오창우 하사. 그도 주위를 둘러 본다. 그러나 정말 전빈영 하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눈길로 다시 Q장을 바라보는 오창우 하사. Q장의 인상이 완전히 구겨진다.
"어떻게 된 거야? 걔 아까 트럭에 타지 않았었냐?"
"예...... 타셨습니다. 인원점검 할 때도 계셨고......"
Q장의 얼굴빛이 더욱 파래진다.
"정문 나갈때까지만 해도 트럭에 타고 있었잖아?"
"예......"
Q장의 음성이 조금씩 높아지자 옆에 있던 박원 하사가 눈치를 채고 끼여든다.
"어, 정말...... 빈영이 어디갔노? 좀 전까지만 해도 저쪽에 있던 것 같은데......?"
"에이 씨팔 새끼, 진짜......"
마침내 Q장의 울분이 터진다. 긴장하는 오창우 하사와 그 이하의 기수들.
"야, 창우 헌병대로 모토롤라 때려. 빈영이 씹새끼 탈영했다고!"
"예?"
"빨랑 임마!"
Q장의 호통에 어쩔 줄을 모르고 머뭇거리는 오창우 하사. 그러나 더 이상은 다그치지 않는 Q장. 씩씩거리면 거친 숨만 내쉰다. 박하사가 오창우 하사를 내밀며 Q장의 옆으로 가서 앉는다.
"걱정마라, 배하사. 빈영이 글마가 설마 탈영이야 했겠나? 트럭에 아예 안 탔던가 아니면 막 출발 하려고 할 때 몰래 내려서 BNQ로 갔을 끼다. 글마가 암만 그케도 이런 싸이트에서 갈 때가 어디 있겠나?"
박원 하사의 말에 조금 진정이 되는 듯, 인상이 펴지는 Q장. 그러나 여전히 표정은 어둡다. 끊임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은 정말로 조금씩 굵어지는 듯 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영민의 가출도 끝나고, 그렇게 방학도 끝나 가면서 여름도 저물고 있었던 어느 저녁. 해진 후의 어스름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정도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한 영민은 다시 현실로 복귀했고, 그러면서 그동안 밀린 학업에 전념을 해야만 했다. 이제 다가올 고입시험도 그렇고, 그동안 떨어질 때로 떨어진 내신을 어느정도 선까지 끌어올리려면 다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영민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네 시립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했으며, 다니다 만, 영어 학원에도 다시 나가기 시작했었다.
그 날도 시립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학원 수업까지 끝낸 영민은 여지없이 반 녹초가 된 상태였었다. 시계는 저녁 7시를 넘기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영민의 집까지는 꽤 거리가 멀었다. 걸어서 약 20분 정도는 되었는데, 그 중에서 10분 정도는 상당히 좁고 가파른 계단을 계속 올라가야만 했었다. 이 계단이 영민에게는 그다지 기분 좋은 곳이 아니었다.
영민이 초등학교때에 이 계단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다. 남편의 보험금을 노린 아내의 청부살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영민은 살인이 있던 그 날 밤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했었고, 그때문에 느닷없이 밖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었다. 다음날 계단은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고, 영민에게서 그 충격은 한동안 가시지를 않았었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밤에는 절대로 그 계단을 혼자서 다니지 못했을 정도이니.
영민에게 등뒤에서 누군가가 미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바로 그 계단을 올라서는 순간부터였다. 해가 진 지 얼마 되지 않은터라 주위는 아직 그리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 좁은 계단만은 시간을 한시간 정도 앞서가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때마침 그곳을 거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영민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인기척을 떨쳐내려고, 혹은 확인하려고 했었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미행자의 기분나쁜 느낌만은 여전히 감지되고 있었다.
그 미행자가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왔을 무렵부터었다. 어느순간 초등학교때의 그 살인 사건이 기억나게 되었고, 다음 순간, 한방중의 정막을 깨뜨리던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 그리고 그의 처절했던 몸부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계단의 핏자국들이 연상되어 졌고 그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기분나쁜 인기척이 ´인´기척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것의 기척......
계단을 다 올라서는 순간부터 영민의 마음은 좀전보다 몇곱절이나 더 조급해 졌다. 본격적으로 공포가 밀려 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냅다 뛰었었다. 하지만 뛰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은 떨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그 무언가가 자신의 뒤가 아니라 자신의 등에 바짝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는 곧바로 시야에 들어오는 무엇인가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문을 여는 순간 그의 시선을 빼앗아 간 것은 다름아닌 마루에 걸려 있던 어머니의 영정이었다. 어머니의 영정은 항상 안방 벽에 높이 걸려 있었는데, 왠일인지 그것이 현관 바로 앞, 마루 벽에 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크기가 더 커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분명 어제까지 영민이 보아왔던 그 영정이 아니었다. 영정 액자 자체의 크기는 그대로 인 것 같았는데 그 속의 사진만이 어제 것 보다 두 배는 거 커져 있는 듯 했다. 물론 공포에 질려 이성이 어느 정도 마비된 영민의 잘못된 느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 그 영정이 안방에서 마루로 나와 있었는지, 왜 그것의 크기가 변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왜 영민이 문을 열자마자 어머니의 영정으로 눈길을 쏟아졌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영정을 보는 순간 스위치가 ON되듯 전달되어지는 집안의 기운이 예전같 지 않다는 것이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차갑고, 야릇하게 변해있는 심상치 않은 집안의 기운. 분위기.
영민이 그런 기운들을 온몸으로 감지하며 마루를 지나 자신의 방으로 향하려는 찰나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 아뿔싸...... 집 밖, 계단에서부터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미행자가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소스라쳐 놀라며 재빨리 뒤돌아보는 영민의 시야에 일순간 크게 들어오는 것은 그 위치가 다시 바뀌어져 있는 어머니의 영정이었다.
"으헉!"
어머니의 영정은 바로 아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현관 앞에 걸려져 있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는 영민의 눈앞에 보이는 영정은 그곳이 아닌 식탁 테이블 위였다. 현관에서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그러나 지금 영민이 서 있는 위치와는 더 가까운 식탁 테이블 위에 비스듬이 놓여져 있는 어머니의 영정.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탄성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영민은 그러나 다음순간에 정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엄청난 공포를 맛보게 된다.
발이라도 달린 듯 현관앞에서 식탁으로 옮겨졌던 어머니의 영정이 이번엔 보란듯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무표정히 굳어있던 사자(死者)의 표정은 눈이 녹듯 스르르 풀리며 그 입가가 찢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얼굴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영정의 액자 자체의 크기가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좀 전에 느꼈던 영민의 느낌이 맞았다. 액자는 그대로인데 그 액자 속, 어머니의 얼굴만 점점 더 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흡사 사진속의 얼굴이 액자 밖으로 나올 것만 같은 기세였다. 아니 정말로 그 얼굴은 액자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사진속의 얼굴은 마치 살아있는 얼굴이라도 되듯이 섬뜩하리만큼 매서운 미소를 지으며 점점 입체감을 띄더니 결국에는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만큼 커져서 액자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으아악!"
이윽고 액자밖으로 버젓이 나와버린 사진속의 얼굴. 변해버린 어머니의 미소 띈 얼굴. 그것은 영민의 기억속에서 전혀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영민은 예전에도 저 얼굴을 보고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 전 날. 관이 놓여 있던 안방에서 보았던 그 얼굴. 유난히 하얀 얼굴에 붉은 빛이 감도는 둥그런 눈동자. 거기다가 서서히 입언저리가 찢어 올라가며 짓던 싸늘한 미소. 그 날 관 위에서, 천장에서 영민을 바라보며 엄마라고 말하며 흐느적 거리는 길다란 손을 내밀던, 바로 그 귀신. 그 귀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몸은 없고 얼굴만 동동 떠 있다는 것.
"영민아."
허공에 떠 있던 하얀 얼굴의 미소 띈 입이 그때처럼 다시 열리고 있었다.
"영민아, 엄마야...... 엄마가 왔어."
영민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도무지 현실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몽환적이고 답답한 기분에 머리가 빙빙 도는 듯 했다.
영민의 눈이 얼떨결에 다시 영정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무표정한 예전의 영정 사진 그대로...... 그렇다면 도대체 이 얼굴은 무엇이란 말인가...... 영민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이 얼굴은......
"어...... 엄마가 아냐......"
겨우 더듬거리며 영민이 입을 열었다. 식은 땀이 유령의 손길처럼 영민의 등과 옆구리를 훑으며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가 아냐...... 엄마가 아니라구......"
영민은 조금씩 언성을 높였지만 두 다리는 이미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이성은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하얀 그 얼굴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영민에게로 점점 더 가다왔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얼굴의 아래 부분(원래 손이 있을 법한 그 위치)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온다. 예전에 보았던 길고 흐물흐물한 손이었다. 다시 한번 기겁을 하며 몸을 떠는 영민. 손은 영민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영민아...... 엄마랑 같이 안 갈래?"
영민은 더 이상 정신을 붙들고 있을 힘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몽땅 쏟아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싫어! 난 아무데도 가기 싫다구!"
영민이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주위는 더욱 더 몽환적이고 괴이하게 뒤틀리더니 그만 어둠이 몰려왔고 영민은 정신을 잃어 버렸었다.
영민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아버지가 우울한 눈빛으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민은 어머니의 영정을 두 손에 꼭 쥔채 자신의 방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영민이 깨어나자 그의 손에 꼭 쥐어졌던 영정을 지그시 집어 들더니 방을 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손에 들려 방을 빠져나가는 어머니의 영정은 분명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더 커 보인다거나 표정이 바뀌어 져 있다거나, 조금도 이상스럽게 보이는 부분이 없는 예전 어머니의 모습.
이 후, 어머니의 귀신은 다시 영민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나타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두 번의 공포스러웠던 기억조차도 다시 상기되어 지지 않았었다. 영민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휴학을 하고, 입대를 하여 이 곳 공군 부대로 배치를 받을 때 까지......
영민은 큰 호흡과 함께 담배연기를 힘차게 빨아들이며 앞의 대형 유리문으로 바깥의 풍경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아까보다 조금씩 더 굵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니코틴의 기운은 영민의 폐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진 담배를 쳐다보는 영민. 왠일인지 영민의 담배는 꺼져 있었다.
영민은 꺼져버린 담배 끝에다가 다시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과거의 기억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다.
문득 기분이 우울했다. 그리고 그 우울한 기분의 원인은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문득 솟구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영민은 애써 축 처지는 기분을 떨쳐내려고 머리를 흔들며 다시금 깊게 담배연기를 한 모금 빨아 들였다. 이번엔 니코틴이 제대로 폐 속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을 새로이 지배해 버리는 영상들이 있었다.
김대명 하사.
그리고 전빈영 하사.
그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기억들......
영민은 머리를 내저으며 그들의 모습을 떨쳐내려 했다. 이제 막 과거의 공포스런 기억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암담하고 무시무시한 상념들에 젖어 있긴 싫었다. 더구나 이번의 기억들은 예전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고, 기분 나쁜 것들이었다.
그러나 영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더욱 생생히 다가오는 영상들. 그것은 마치 영사기처럼 영민의 머릿속에서 촤르르 빠른 속도로 펼쳐진다. 바로 어제 밤의 일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몸서리쳐지는 일들뿐이었다.
더욱 짧게 타 들어가는 담배꽁초. 영사기처럼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던 지난날들이 이윽고 모두 사라지고 영민의 머릿속에 최후에 남은 것은 어제 전빈영 하사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들이었다.
영민은 곰곰이 그 말들을 되새겨 본다.
-이건 몽둥이야.
-귀신잡는 몽둥이.
-아까 니가 4호실에서 본 건 김대명이가 아냐.
-물론 그 시각 3호실, 좀 전에 니가 봤던 그 자리에 김대명이는 없었어. 즉 우리가 4호실에서 김대명을 봤을 때 김대명은 3호실에 없었고, 4호실에서 우리가 봤던 김대명은 김대명이 아니었단 얘기야.
-너라면 잘 알거야. 상황이 어떤지를 말야.
-너라면 잘 알거야. 상황이 어떤지를 말야.
담뱃재가 툭 떨어졌다. 이어서 필터까지 짧게 타 들어간 꽁초마저 영민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영민의 머릿속으로 칼날처럼 파고드는 생각하나!
어머니의 영정 사진. 그리고, 그 속에서 빠져 나왔던 또 다른 어머니의 하얀 얼굴......
그렇다면......
그렇다면 어제밤 영민이 보았던 그 끔찍한 모습의 김대명 하사도 어쩌면......?
´아하......!´
영민은 고개를 들었다. 속으로 절로 탄성이 터졌다. 전빈영 하사의 말들이 이제야 이해가 된 것이다.
김대명 하사. 그의 몸속으로 무언가가 들어간 것이었다. 그래야만 의문이 풀린다. 진짜 김대명 하사와 가끔씩 나타나는 또다른 김대명 하사. 그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또다른 무엇......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또다른 그것은 아직 김대명 하사의 몸을 완전 지배하진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므로 김대명 하사는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창우 하사를 피투성이로 만들었을 때의 김대명 하사.
그리고 아무일 없다는 듯 곤히 자고 있던 김대명 하사.
하지만 둘 중 분명히 더 나쁜 쪽이 더 좋은 쪽을 지배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나쁜쪽의 모습은...
´어제 내가 4호실에서 보았던 그 끔찍한 얼굴이 그럼......´
전빈영 하사는 자신의 몽둥이가 ´귀신´ 잡는 몽둥이라고 했었다. 그럼 그 끔찍한 얼굴은 정말 귀신이란 소린가...... 아니 그래야만 앞뒤가 맞는 것이다. 귀신이 아니고서는 어제의 상황을 연출해 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대명 하사의 몸 속엔 악귀가 들었고 그것을 알아챈 전빈영 하사는 그 악귀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
영민은 문득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예전에 자신이 처음 이 부대에 왔을 때 장하사가 밥을 사주면서 해 주었던 그 얘기였다.
"이건 귀신 얘긴데......"
"이 부대엔 귀신이 있어."
과연 이 부대에는 귀신이 있단 말인가......
영민은 새삼 몸서리가 쳐 진다.
질꺽 질꺽......
그 시간 온통 진흙 투성이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전투화가 쉬지 않고 빗길을 성큼성큼 걷고 있다. 그가 걸어온 자취마다 발자국들이...... 질척거리는 흙바닥 위에 굳은 의지 같은 발자국들이 무수히 찍혀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그는 우의도 입고 있지 않고 있었다. 무표정하다 못해 오싹한 기운마저 감도는 얼굴에는 연신 빗물이 흘러내린다. 빗물을 따라 살기까지 흐르고 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성큼 성큼 주저 없이 걸어서 작전도로를 오르고 있는 그의 앞으로 공군 부대의 정문이 보인다.
영민은 대대본부를 나왔다. 첫 번째 순찰 코스인 식당 보일러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더뎠다. 시간이 꽤 지나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영민은 별로 개의치 않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그런 시간 따위나 생각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던 것이다.
김대명 하사의 몸에 귀신이 들어 간 것이라면 그 귀신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이며 어떻게 김대명 하사의 몸 속으로 들어갔는지, 또 그 귀신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BNQ 4호실과 귀신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전빈영 하사는?
전빈영 하사는 과연 누구일까?
그는 정말 귀신을 잡는 퇴마사라도 되는 것인가...... 혹시 그 또한 귀신은 아닌 것인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모든 것이 전빈영 하사의 잘 짜여진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영민은 어제밤 화장실에서 자신과 함께 담배를 피우던 전빈영 하사의 모습을 떠 올여 보았다. 그 때 그의 모습은 너무도 진지하고 솔직해 보였다. 물론 그는 예전부터 늘 그런 모습이었다. 그의 말이나 표정이 너무나 완벽해서 감히 그것이 거짓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것은 영민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차고 힘겨운 문제임이 틀림없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정중히 거절하고만 싶은 문제였었다.
보일러실을 나온 영민은 다음코스인 무기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좀 전에 떠올렸던 무수한 의문 중 하나가 다시금 머리를 스쳤다.
BNQ 4호실.
정말 그곳은 과연 무엇인가!
무슨일이 일어났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인가? 그곳과 얼마간 영민의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영민의 발걸음이 자꾸만 갈피를 잃고 휘청거린다. 머릿속은 무겁고 어지러웠다. 자신의 뇌가 그 바닥을 모르는 구덩이 속으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BNQ 4호실.
그곳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BNQ 4호실.
그곳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BNQ 4호실.
그곳의......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영민은 머리에 상당한 통증을 느꼈다. 정수리가 뜨끈뜨끈 해 질 만큼 아팠다. 복잡다양한 사념들에 넋을 잃고 머리를 숙인 채 걷다가 그만 벽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영민의 눈앞엔 어느새 BNQ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
분명 무기고로 향했던 것 같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영민은 이곳으로 와 버린 것이었다.
BNQ 건물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