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한번 벨이 울리길 기다린 후 전화기를 들었다. 버릇이다. 나는 벨이 울릴때만 전화를 받아야 되는 줄 알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여보세요?"
순간 화장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지혁아!! 화장실에 휴지 없어.. 휴지 좀 줘.."
나는 송화기부분을 얼른 손으로 틀어막고 조금만 기다리라 고 소리친 후 얼른 다시 전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하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말씀하세요."
나는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혹이나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 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말씀하세요를 할까 망설이다가 천천히 수화 기를 내려 놓으려 했다.
그 순간 온몸을 통해 소름끼치는 전율이 흘렀다. 나는 빠르 게 내려놓으려던 수화기를 다시 귀에다가 가져다 붙였다. 귀볼이 일그러질 정도로 거세게 붙였다.
온몸의 신경이 귀에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사~~사~~]
사사라니 나는 더욱 힘껏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 붙였다.
[사사살~~~려~~줘]
사사살려줘... 분명히 살려줘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거의 꺼져 가는 목소리의. 전화기 건너편의 구원을 요청하고 있 는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희미하고 힘없게 느껴졌다.
정말로 죽어가고 있는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누구?"
나는 전화기에 소리를 질러대다 말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머리속이 터질것처럼 복잡해졌다.
[지지~~~~]
소리는 더욱 멀어졌다. 그리고 더이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다시 화장실에서 주완이의 큰 소리가 들려 왔을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급한 나머지 아무 번호나 눌렀을까?'
나는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그렇게 꺼져 가는 목소리로 우 리집 전화번호를 눌렀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했다. 112나 119를 충분히 누를수 있었을텐데..
그게 아니라면..
나는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역시 전화는 끊어져 있 었다. 그렇다면 상대편은 전화기가 아닌 핸드폰인 모양이었 다. 전화기라면 저쪽에서 끊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는다.
죽어가는 사람이 전화기를 내려놓았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핸드폰이다.
"지혁아.. 휴지 좀 달라니깐.."
화장실에서 주완이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대 답도 하지 못했다. 머리속에 멍해진 느낌이었다. 온 뇌가 방금 걸려온 정체불명의 전화에 쏠려 있었다.
'화석!!'
나는 화석이가 떠올랐다. 화석이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그 녀석의 단축다이얼 1번은 우리집 전화번호였다. 그리고 화석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석이 부모님은 동 남아 여행중이었다.
'화석이에게 무슨일이??'
화석이는 전에도 한번 죽을뻔한 고비를 넘긴적이 있었다. 집에서 장난치다가 의자에서 바닥을 향해 등짝으로 넘어졌 는데 그 충격으로 폐가 찌그러져 숨을 못쉬다가 죽을뻔 했 었다. 우연히 화석이 집으로 놀러갔던 나와 은식이가 발견 해서 살릴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날뻔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화석이의 오른쪽 겨드랑이 부분에는 꼭 칼로 그은 듯한 수술자국이 있다.
이미 한번 생각한 불길한 느낌은 쉽게 떨칠수가 없었다. 나 는 현관으로 달려가 아무렇게나 놓여진 운동화를 신고 현관 신발장에 올려진 스쿠터열쇠를 빠르게 집어들었다. 몇개의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 내려갔다.
"야!! 오!! 지!! 혁!! 휴지!!"
[부르르르응]
화석이 집은 우리집에서 스쿠터로 약 5분거리이다. 하지만 사거리를 한번 건너야 했다. 나는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 리다 좌회전하려는 차와 부딪힐뻔 했다. 나는 거의 땅에 넘 어질 듯 하며 간신히 차와 비켜 나갔다. 살짝만 부딪혔어도 중심을 잃고 나는 공중에서 몇바퀴 돌아 바닥에 피떡이 되 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아이들이랑 어울려 스쿠터가 아닌 진짜 오토바이를 탔을때 빼고는 이렇게 달려본것이 몇년 만 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좌회전하던 승용차의 운전자는 나에게 막 욕을 해댔지만 나 는 최대한으로 달렸기 때문에 욕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화석이 집이 있는 골목으로 빠져 올라갔다. 평소에는 별로 멀어보지지 않던 거리가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멀게 느 껴졌다.
나는 화석이 집앞에 멈추자 마자 스쿠터에서 뛰어내려 철문 으로 달려갔다. 화석이 집은 단독주택이다. 오래된 집이지 만 정원은 꽤 넓고 잘 꾸며 놓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손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초인종소리는 아주 느긋한 소리로 울렸다.
'누구야!!'라고 금방이라도 화석이가 소리를 칠것 같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제길.."
나는 철문을 흔들었지만 닫혀 있었다. 나는 철문사이로 안 을 들여다 보았다. 집 현관도 닫혀 있었다.
"화석아!!!"
나는 크게 외쳐보았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몇집 건너 개가 짖어댄것 뿐이었다. 나는 담을 넘기로 마음 먹었다. 담은 내 키보다 30CM정도나 높았고 나무가지가 담 밖으로 삐죽삐죽 나와 넘기가 쉽지는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 을 가릴때가 아니었다.
나는 담에서 도약할수 있을 만큼 몇 미터 떨어져 뛰어서 왼 발로 담을 한번 박차고 담벼락의 윗부분을 두 손바닥을 잡 았다.
손바닥이 무척이나 아팠다. 까진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두 팔에 힘을 주고 담벼락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빠른속도로 다시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화석아!!"
금방이라도 화석이가 나올것 같은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나는 현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덜컹~~ 덜컹~~]
헐거운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현관문 옆에 있는 거실 창으로 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화석이집 거실은 정원을 볼 수 있게끔 큰 유리로 되어 있었다. 거실에서 보면 정원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빛의 반사때문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기는 힘들었 다. 나는 다시 화석이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아주 거세게 요동쳤다. 심장에서는 아주 빠르게 깨끗한 공 기가 들어있는 신선한 피를 내 온몸으로 보내고 있는 모양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너무나 흥분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현관문으로 갔다. 열쇠구멍이 있는 바로 옆 유 리를 깨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문 을 열수 있을 것 같았다.
[쨍그랑]
일부러 유리창을 깬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먹으 로 너무 세게 친 나머지 유리가 깨지고 주먹이 건너편으로 쑥 넘어가 버렸다. 그 바람에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쭉 찢어 졌다. 나는 집어 넣은 오른손으로 자물쇠를 돌려서 문을 열 었다.
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피가 꽤나 많 이 배어나왔다. 나는 그냥 내가 입고 있던 흰면티에 닦아 버렸다. 금새 흰면티는 검붉게 물들어 버렸다.
"화석아~~~"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신 발도 벗지 않은채 화석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도 없 었다. 침대에는 이불이 개여지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이히히~~~~]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몸을 움추렸다. 온 몸의 신경이 곤 두서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는 컴퓨터쪽에서 들려왔다. 나는 컴퓨터쪽으로 다가갔다.
컴퓨터는 켜져 있는 상태였다. 모니터에서는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좀 전의 그 소리는 그 처녀귀신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전에도 본적이 있었다. 화 석이가 좋아하는 화면보호기였다. 화석이는 자신이 직접만 든 화면보호기라고 자랑했었다. 전에 볼때는 몰랐는제 신경 이 곤두선 지금보니 꽤나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나는 무심결에 컴퓨터를 꺼버렸다. 그리고 화석이 방을 뛰 쳐나갔다.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안방과 화장실과 다용도실까지 집안 곳곳을 뒤졌지만 화석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 밖으로 나와 지하실로 가 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실문은 녹슨 자물쇠로 굳게 닫 혀 있었고 먼지가 뿌옇게 묻어 있었다. 못해도 일주일동안 은 아무도 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올라와 집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착각한 것일까 ? 다소 안심이 되었다. 너무 신경과민이었던 모양이다. 나 는 화장실로 가서 피가 계속 나오는 오른팔을 물로 씻었다.
"이 녀석 어디 간거야? 컴퓨터까지 켜 놓고?"
나는 툴툴거렸다. 괴상한 전화때문에 흥분해서 피까지 보게 된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쳇~~ 라면이라도 사러 갔나?"
컴퓨터를 켜 놓고 나간것을 보면 멀리 가지는 않은 것 같 았다. 화석이가 와서 내가 집유리까지 깨고 팔까지 다친것 을 보면 재미있다고 웃을것이 뻔했다.
나는 피가 어느정도 멈추자 화장실에서 나왔다. 내가 흘린 피자국이 바닥에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쳇.. 이것도 치워야 겠군.."
거실에 깔려 있는 카페트위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화석이 어머니께서 카페트를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걱정해 봐야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내 집에 있는 주완이가 생각났다.
"맞다!! 휴지!!"
나는 주완이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휴지를 외치며 절규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 어떻게 했을까?"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벨이 울 리자 마자 기다려다는 듯이 받아들었다.
"주완이냐?"
[야 너 뭐야?]
나는 주완이가 목소리가 너무나 커서 잠깐 귀에서 전화기를 때었다.
"야 조용조용 말해.."
[야!! 갑자기 어디 간거야.. 너 때문에 쑈 했잖아.. 물로 닦았다.. 물로..]
"잘했어.. 그게 더 깨끗해.. 니가 쓴 수건은 너희집에 가져 가라.."
[야 그건 그렇고 너 갑자기 어디 간거야?]
"응.. 여기 화석이 집이야.."
[화석이?]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주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내가 나중에 이야기해 줄께.. 나 화석이 집에 들어오면 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쳇.. 알았어. 빨리와 나 가게 가야해..]
"알았어.."
나는 전화기를 끊고 쇼파에 앉았다. 팔이 꽤 많이 쓰라렸다.
그럼 그 전화는 무엇이었을까? 장난전화.. 장난전화라고 하기에는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나 절박했다.
사사~~살려~~줘~~
아직까지 그 꺼져 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나는 그 전화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 하기로 했다. 더 생각해보았자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괜시 리 피까지 본게 화가 났다.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 는 옛말이 나같은 녀석을 두고 한말인 것 같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바닥에 떨어진 피를 휴지로 닦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누굴까? 나는 전화를 받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받아 들었다. 화석이 부모님이 아니면 주완이나 은식이일것 이라고 생각 되었다.
"여보~~ 엇.."
전화기를 들었는데도 벨이 울리고 있었다. 전화에서 나는 벨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다시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뭐야?"
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움직였다. 내가 좀전에 앉았다 일 어난 쇼파쪽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쇼파밑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나는 왼손을 밀어 넣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기가 왜 저 밑에 들어 있는 것일까? 갑자기 머리속이 다시 복잡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플립을 열었다. 플립안에는 나와 주완, 은 식, 그리고 화석이가 함께 찍은 스티커사진이 붙어 있었다. 얼마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여보세요?]
은식이 목소리였다. 나의 뇌는 엄청나게 빠르게 다시 움직 이고 있었다. 덩달아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있었다. 생물시 간에 배운 내용중에 뇌 어느 부분에서 호르몬을 내보내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는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나. 지혁인데.."
은식이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화석이의 전화를 받 자 이상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야. 너가 왜 받냐?]
"은식아.. 잠깐만.. 전화 끊어봐. 내가 다시 전화할께.."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불긴한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이 왜 저 밑에 떨어져 있는 것일가?
나는 조심스럽게 플립을 닫았다. 확인할것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플립을 열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써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통화버튼을 그냥 누르 면 방금 전에 걸었던 번호로 전화가 걸리는 것은 알고 있었 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분명히 액정화면에 숫 자가 보였다.
내집 번호였다. 두번 보았지만 확실했다.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다. 그 대신에 핸 드폰을 떨어트렸다. 핸드폰은 쇼파위에 떨어졌지만 여전히 신호가 가고 있었다.
확실해 졌다. 화석이였다. 그 죽어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
머리속이 멍해졌다. 금방까지 맹렬하게 몸을 돌던 피가 한 꺼번에 빠져 나가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떨어트렸던 핸드 폰을 집어 들었다.
[누구세요?]
내집에 있는 주완이의 목소리였다.
"응.. 나야 지혁이.."
"또 왜? 안오고 뭐해?"
"주완아!! 큰일났어.. 큰일! 빨리 화석이집으로 와!! 빨리!!"
주완이는 내 심각한 목소리에 안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금새 눈치챈 모양이었다. 금방 온다고 했다. 나는 힘없이 다시 플립을 닫았다.
도데체 화석이에게 무슨일이 벌어진걸까?
사사살려줘라는 전화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그 전 화가 화석이게 걸려온 것이라면 화석이게 무슨일이... 나 혼자서는 결론지을수 없었다. 나는 주완이가 오기를 기 다리기 위해 힘없이 쇼파에 걸터 앉았다.
<펌> 시체싸이트 6
[삐리리리~~~]
나는 다시 한번 벨이 울리길 기다린 후 전화기를 들었다.
버릇이다. 나는 벨이 울릴때만 전화를 받아야 되는 줄 알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여보세요?"
순간 화장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지혁아!! 화장실에 휴지 없어.. 휴지 좀 줘.."
나는 송화기부분을 얼른 손으로 틀어막고 조금만 기다리라
고 소리친 후 얼른 다시 전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하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말씀하세요."
나는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혹이나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 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말씀하세요를 할까 망설이다가 천천히 수화
기를 내려 놓으려 했다.
그 순간 온몸을 통해 소름끼치는 전율이 흘렀다. 나는 빠르
게 내려놓으려던 수화기를 다시 귀에다가 가져다 붙였다.
귀볼이 일그러질 정도로 거세게 붙였다.
온몸의 신경이 귀에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사~~사~~]
사사라니 나는 더욱 힘껏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 붙였다.
[사사살~~~려~~줘]
사사살려줘... 분명히 살려줘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거의
꺼져 가는 목소리의. 전화기 건너편의 구원을 요청하고 있
는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희미하고 힘없게 느껴졌다.
정말로 죽어가고 있는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누구?"
나는 전화기에 소리를 질러대다 말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머리속이 터질것처럼 복잡해졌다.
[지지~~~~]
소리는 더욱 멀어졌다. 그리고 더이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다시 화장실에서 주완이의 큰 소리가 들려
왔을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급한 나머지 아무 번호나 눌렀을까?'
나는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그렇게 꺼져 가는 목소리로 우
리집 전화번호를 눌렀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했다.
112나 119를 충분히 누를수 있었을텐데..
그게 아니라면..
나는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역시 전화는 끊어져 있
었다. 그렇다면 상대편은 전화기가 아닌 핸드폰인 모양이었
다. 전화기라면 저쪽에서 끊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는다.
죽어가는 사람이 전화기를 내려놓았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핸드폰이다.
"지혁아.. 휴지 좀 달라니깐.."
화장실에서 주완이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대
답도 하지 못했다. 머리속에 멍해진 느낌이었다. 온 뇌가
방금 걸려온 정체불명의 전화에 쏠려 있었다.
'화석!!'
나는 화석이가 떠올랐다. 화석이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그 녀석의 단축다이얼 1번은 우리집 전화번호였다.
그리고 화석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석이 부모님은 동
남아 여행중이었다.
'화석이에게 무슨일이??'
화석이는 전에도 한번 죽을뻔한 고비를 넘긴적이 있었다.
집에서 장난치다가 의자에서 바닥을 향해 등짝으로 넘어졌
는데 그 충격으로 폐가 찌그러져 숨을 못쉬다가 죽을뻔 했
었다. 우연히 화석이 집으로 놀러갔던 나와 은식이가 발견
해서 살릴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날뻔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화석이의 오른쪽 겨드랑이 부분에는 꼭 칼로
그은 듯한 수술자국이 있다.
이미 한번 생각한 불길한 느낌은 쉽게 떨칠수가 없었다. 나
는 현관으로 달려가 아무렇게나 놓여진 운동화를 신고 현관
신발장에 올려진 스쿠터열쇠를 빠르게 집어들었다. 몇개의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 내려갔다.
"야!! 오!! 지!! 혁!! 휴지!!"
[부르르르응]
화석이 집은 우리집에서 스쿠터로 약 5분거리이다. 하지만
사거리를 한번 건너야 했다. 나는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
리다 좌회전하려는 차와 부딪힐뻔 했다. 나는 거의 땅에 넘
어질 듯 하며 간신히 차와 비켜 나갔다. 살짝만 부딪혔어도
중심을 잃고 나는 공중에서 몇바퀴 돌아 바닥에 피떡이 되
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아이들이랑 어울려 스쿠터가 아닌
진짜 오토바이를 탔을때 빼고는 이렇게 달려본것이 몇년 만
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좌회전하던 승용차의 운전자는 나에게 막 욕을 해댔지만 나
는 최대한으로 달렸기 때문에 욕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화석이 집이 있는 골목으로 빠져 올라갔다. 평소에는
별로 멀어보지지 않던 거리가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멀게 느
껴졌다.
나는 화석이 집앞에 멈추자 마자 스쿠터에서 뛰어내려 철문
으로 달려갔다. 화석이 집은 단독주택이다. 오래된 집이지
만 정원은 꽤 넓고 잘 꾸며 놓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손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초인종소리는 아주 느긋한 소리로 울렸다.
'누구야!!'라고 금방이라도 화석이가 소리를 칠것 같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제길.."
나는 철문을 흔들었지만 닫혀 있었다. 나는 철문사이로 안
을 들여다 보았다. 집 현관도 닫혀 있었다.
"화석아!!!"
나는 크게 외쳐보았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몇집 건너
개가 짖어댄것 뿐이었다. 나는 담을 넘기로 마음 먹었다.
담은 내 키보다 30CM정도나 높았고 나무가지가 담 밖으로
삐죽삐죽 나와 넘기가 쉽지는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
을 가릴때가 아니었다.
나는 담에서 도약할수 있을 만큼 몇 미터 떨어져 뛰어서 왼
발로 담을 한번 박차고 담벼락의 윗부분을 두 손바닥을 잡
았다.
손바닥이 무척이나 아팠다. 까진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두
팔에 힘을 주고 담벼락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빠른속도로
다시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화석아!!"
금방이라도 화석이가 나올것 같은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나는 현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덜컹~~ 덜컹~~]
헐거운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현관문 옆에 있는 거실
창으로 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화석이집 거실은 정원을 볼
수 있게끔 큰 유리로 되어 있었다. 거실에서 보면 정원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빛의 반사때문에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기는 힘들었
다. 나는 다시 화석이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아주 거세게 요동쳤다. 심장에서는 아주 빠르게 깨끗한 공
기가 들어있는 신선한 피를 내 온몸으로 보내고 있는 모양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너무나 흥분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현관문으로 갔다. 열쇠구멍이 있는 바로 옆 유
리를 깨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문
을 열수 있을 것 같았다.
[쨍그랑]
일부러 유리창을 깬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먹으
로 너무 세게 친 나머지 유리가 깨지고 주먹이 건너편으로
쑥 넘어가 버렸다. 그 바람에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쭉 찢어
졌다. 나는 집어 넣은 오른손으로 자물쇠를 돌려서 문을 열
었다.
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피가 꽤나 많
이 배어나왔다. 나는 그냥 내가 입고 있던 흰면티에 닦아
버렸다. 금새 흰면티는 검붉게 물들어 버렸다.
"화석아~~~"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신
발도 벗지 않은채 화석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도 없
었다. 침대에는 이불이 개여지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이히히~~~~]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몸을 움추렸다. 온 몸의 신경이 곤
두서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는 컴퓨터쪽에서 들려왔다.
나는 컴퓨터쪽으로 다가갔다.
컴퓨터는 켜져 있는 상태였다. 모니터에서는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좀 전의 그 소리는 그
처녀귀신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전에도 본적이 있었다. 화
석이가 좋아하는 화면보호기였다. 화석이는 자신이 직접만
든 화면보호기라고 자랑했었다. 전에 볼때는 몰랐는제 신경
이 곤두선 지금보니 꽤나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나는 무심결에 컴퓨터를 꺼버렸다. 그리고 화석이 방을 뛰
쳐나갔다.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안방과 화장실과 다용도실까지 집안 곳곳을 뒤졌지만
화석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 밖으로 나와 지하실로 가
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실문은 녹슨 자물쇠로 굳게 닫
혀 있었고 먼지가 뿌옇게 묻어 있었다. 못해도 일주일동안
은 아무도 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올라와 집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착각한 것일까
? 다소 안심이 되었다. 너무 신경과민이었던 모양이다. 나
는 화장실로 가서 피가 계속 나오는 오른팔을 물로 씻었다.
"이 녀석 어디 간거야? 컴퓨터까지 켜 놓고?"
나는 툴툴거렸다. 괴상한 전화때문에 흥분해서 피까지 보게
된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쳇~~ 라면이라도 사러 갔나?"
컴퓨터를 켜 놓고 나간것을 보면 멀리 가지는 않은 것 같
았다. 화석이가 와서 내가 집유리까지 깨고 팔까지 다친것
을 보면 재미있다고 웃을것이 뻔했다.
나는 피가 어느정도 멈추자 화장실에서 나왔다. 내가 흘린
피자국이 바닥에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쳇.. 이것도 치워야 겠군.."
거실에 깔려 있는 카페트위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화석이
어머니께서 카페트를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걱정해 봐야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내 집에 있는 주완이가 생각났다.
"맞다!! 휴지!!"
나는 주완이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휴지를 외치며 절규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 어떻게 했을까?"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벨이 울
리자 마자 기다려다는 듯이 받아들었다.
"주완이냐?"
[야 너 뭐야?]
나는 주완이가 목소리가 너무나 커서 잠깐 귀에서 전화기를
때었다.
"야 조용조용 말해.."
[야!! 갑자기 어디 간거야.. 너 때문에 쑈 했잖아.. 물로
닦았다.. 물로..]
"잘했어.. 그게 더 깨끗해.. 니가 쓴 수건은 너희집에 가져
가라.."
[야 그건 그렇고 너 갑자기 어디 간거야?]
"응.. 여기 화석이 집이야.."
[화석이?]
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주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내가 나중에 이야기해 줄께.. 나
화석이 집에 들어오면 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쳇.. 알았어. 빨리와 나 가게 가야해..]
"알았어.."
나는 전화기를 끊고 쇼파에 앉았다. 팔이 꽤 많이 쓰라렸다.
그럼 그 전화는 무엇이었을까? 장난전화..
장난전화라고 하기에는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나 절박했다.
사사~~살려~~줘~~
아직까지 그 꺼져 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나는 그 전화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
하기로 했다. 더 생각해보았자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괜시
리 피까지 본게 화가 났다.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
는 옛말이 나같은 녀석을 두고 한말인 것 같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바닥에 떨어진 피를 휴지로 닦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누굴까? 나는 전화를 받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받아 들었다.
화석이 부모님이 아니면 주완이나 은식이일것 이라고 생각
되었다.
"여보~~ 엇.."
전화기를 들었는데도 벨이 울리고 있었다. 전화에서 나는
벨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다시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뭐야?"
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움직였다. 내가 좀전에 앉았다 일
어난 쇼파쪽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쇼파밑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나는 왼손을 밀어 넣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기가 왜 저 밑에 들어 있는 것일까? 갑자기 머리속이
다시 복잡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플립을 열었다. 플립안에는 나와 주완, 은
식, 그리고 화석이가 함께 찍은 스티커사진이 붙어 있었다.
얼마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여보세요?]
은식이 목소리였다. 나의 뇌는 엄청나게 빠르게 다시 움직
이고 있었다. 덩달아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있었다. 생물시
간에 배운 내용중에 뇌 어느 부분에서 호르몬을 내보내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는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나. 지혁인데.."
은식이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내가 화석이의 전화를 받
자 이상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야. 너가 왜 받냐?]
"은식아.. 잠깐만.. 전화 끊어봐. 내가 다시 전화할께.."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불긴한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이
왜 저 밑에 떨어져 있는 것일가?
나는 조심스럽게 플립을 닫았다. 확인할것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플립을 열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써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통화버튼을 그냥 누르
면 방금 전에 걸었던 번호로 전화가 걸리는 것은 알고 있었
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분명히 액정화면에 숫
자가 보였다.
내집 번호였다. 두번 보았지만 확실했다.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다. 그 대신에 핸
드폰을 떨어트렸다. 핸드폰은 쇼파위에 떨어졌지만 여전히
신호가 가고 있었다.
확실해 졌다. 화석이였다. 그 죽어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
머리속이 멍해졌다. 금방까지 맹렬하게 몸을 돌던 피가 한
꺼번에 빠져 나가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떨어트렸던 핸드
폰을 집어 들었다.
[누구세요?]
내집에 있는 주완이의 목소리였다.
"응.. 나야 지혁이.."
"또 왜? 안오고 뭐해?"
"주완아!! 큰일났어.. 큰일! 빨리 화석이집으로 와!! 빨리!!"
주완이는 내 심각한 목소리에 안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금새 눈치챈 모양이었다. 금방 온다고 했다. 나는 힘없이
다시 플립을 닫았다.
도데체 화석이에게 무슨일이 벌어진걸까?
사사살려줘라는 전화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그 전
화가 화석이게 걸려온 것이라면 화석이게 무슨일이...
나 혼자서는 결론지을수 없었다. 나는 주완이가 오기를 기
다리기 위해 힘없이 쇼파에 걸터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