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시체싸이트 26

농구왕김타자2011.03.18
조회1,147

그리고 잠시 후 단상에 한 남자가 올라왔다. 경찰복은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남자가 경찰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알수 있었다. 얼굴에 아주 딱딱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매스컴의 제물이 되어버린 경찰의 난처한 입장이
그 얼굴에 여실하게 들어났다.

 

급조된듯한 수사결과발표는 기자들이 욕구를 전혀 만족시
키지 못했는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
졌다. 남자는 난처한 얼굴로 한명의 기자를 지목했다.

 

 

 

남자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언론이 그것에 알고 있는 것
에 대해 무척이나 당황스런 얼굴이었다. 계속 경찰의 위신
을 한층 깍는 일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남자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지
만 아무대답도 하지 못하고 다른 기자를 떨리는 손으로 지
목했다.

 

 

 

 

남자는 힘주어 말했다. 바로 그 남자가 말하는 오지혁인 나
를 겁주기 위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무능한 경찰들을 깎
아내리려고 노력하는 기자들을 구슬리기 위한 말인지는 분
간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겁이 났다.

방금 전 식사를 배달했던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과
여관 아주머니의 시선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들이 나를
알아본게 아닐까?

 

 

남자는 시계를 한번 힐끔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질문을 마
쳐야 한다는 표시를 미리 하는 모양이었다.

 

 

 

기자 회견장의 소란도가 더욱 커졌다. 갑자기 제보자에 대
한 의문으로 회견장이 소란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의
문에 나의 의문의 크기에는 비할바가 되지 못했다.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제보자가 있다니?
도데체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혹시 윤미??

TV의 남자는 단상에서 도망치듯 옆에 있는 문으로 나가버렸
다. 기자들은 쉴사이없이 의문의 제보자에 대해 질문했지만
어떤 답도 듣지는 못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납치되었다가 도망친 사람이 있다면.. 떠오르는 것은 윤미
뿐이었다. 혹시 또 다른 의 가입자가 있는 것
이 아닐까?

조금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납치되었다가 살아난 사
람이 있다면 나의 결백을 증명해줄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윤미라면.. 윤미가 아직 죽
지 않고 살아있을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제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나를 확실한 범인으로 몰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내가 은식의 집으로 갈것이라는 것을
어떡게 안 것일까?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살아남아 있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TV를 보면서 자리에 누웠다. TV는 계속해서 이 사건에
대해 떠벌리고 있었으며 결국에는 내 사진까지 화면에 내보
냈다.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사진이었지만 분명
히 내 사진이었다. 지금보나 훨씬 머리가 긴 것을 보니 군
대가기 전에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분명히 은식이나 화석
, 주완이 중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사진인 것 같았다.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
던 나머지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아직 여름이어서 아침은 빨리 왔다. 창
문을 열어보니 새벽의 어스름이 깔려 있어서 세상이 푸른빛
을 띠고 있었다. 어느새 엄청나게 퍼붓고 있던 비도 내리지
않고 하늘도 개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여관을 나왔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
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등교하는 고등학생이나 회사
원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제 TV에 계속적으로 나
왔던 내 사진이 신경쓰였다. 지금의 모습과는 꽤 많이 다르
게 찍힌 사진이지만 TV에서는 친절하게 컴퓨터로 처리한 머
리를 짧게 자른 사진까지 내보냈다. 역시 어설퍼 보이기 했
지만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비슷하다고 느낄만한
몽타주였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컵라면과 신문을 한장 샀다. 다행히도 점원은 졸린눈을 비
비느라 나를 별로 신경써서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계산한
컵라면을 들고 음식을 먹을수 있게 마련된 식탁쪽으로 와
서 앉았다. 라면을 뜯으면서 신문을 펼쳤다. 신문 첫면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
다. 그리고 조그맣게 내 사진이 그 글씨 옆을 장식하고 있
었다.

끓는 물을 컵라면에 부은 후 나는 신문을 대충 훑었다. 모
두 몇장이나 나에 대한 기사가 쓰여져 있는지 궁금했기 때
문이었다. 모두 8장이었다. 씁쓸한 웃음이 배어져 나왔다.
내가 이렇게 유명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나는 쭈삣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른 아침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초라한 행색의 젊은 남자에게 별
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익지도 않은 라면
을 거의 씹지도 않은 채 삼킨 후 편의점을 나왔다.

손에는 신문이 들려 있었다. 신문의 어느 면에도 내가 범인
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사회 각계
의 명사가 나의 심리상태를 분석까지 해 놓는 친절을 보였
지만 말이다.

자신과 매우 친했던 친구들을 서슴없이 죽인 나를 무슨 괴
물처럼 만들고 그것을 즐기면서 세기말적 현상을 들먹거리
는 기사도 있었다. 나는 잠시 스포츠면을 펼쳐 내가 좋아
하는 야구 선수가 또 다시 홈런을 추가했는지 잠시 살펴본
후에 쓰레기통에 신문을 쳐 박았다. 역시 신문이라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쓸모가 없는 물건이라는 생각은 확실해
졌다.

한가지 기사를 빼놓고는 말이다. 어제 TV발표에서 나왔던
제보자라는 인물에 대한 기사는 나에 관심을 끌었다. 철저
하게 출입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납치당했다가 도망쳤다
고 알려진 그 인물에 대해서는 아직 거의 아무것도 밝혀내
지 못했다는 기사였지만 그가 XX대 부속병원에서 치료중일
거라는 내용은 눈에 들어왔다.

결백을 주장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결정적으로 필
요했다. 그가 어쩌면 나의 결백을 밝혀 줄지도 모르는 일이
었다. 아직 정신적 쇼크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치료중이
라고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그가 진짜 범인을 밝혀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그 인물이 윤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납치되었다가 도망쳤다면 윤미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윤미가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시체사이트에 등록했
던 사람들이 당했다면 화석, 주완, 은식, 윤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중에서도 이 들과 똑같이 납치되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시체사이트를 보았을때도 다른 사람의
사진도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의 모습이..

그 저주스런 사이트는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사이트를 만든 녀석은 도데체 무엇하는 녀석일까?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 녀석이 누구더라도 꼭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는 결심은.. 꼭...

나는 허리춤에 꽂아 넣은 총을 한번 매만진후 편의점앞 편
도 2차선 도로를 건넜다. 나는 편의점 앞에 있는 상가로 향
했다.

3층으로 되어 있는 상가의 1층은 아이스크림 가게였고 2층
은 미용실이었다. 나는 상가의 계단으로 올라가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창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창으로 편의점을 내
려다 보았다. 다행히 2층에 있는 미용실은 오후에나 문을
여는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나의 결백을 주장할 방법은 전혀 없었지만 일단은 경찰이
보호하고 있다는 그 제보자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 밖에 없
었다. 그리고 기대는 하지 않지만 이미 부서버린 화석의 전
화기로 왔었던 그 녀석의 전화.. 경찰이 그 전화에 대해 조
금만 알아내준다면 어쩌면 손쉽게 그 녀석의 정체를 알아낼
나는 천천히 번호를 눌렀다. 전에 화석이가 최초로 실종되
었을때 몇 번 걸었던 번호를 그냥 눌렀다. 그냥 경찰서 아
무번호나 누르면 될 것 같았다. 번호는 통화중이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여전히 창문을 길거리를 둘러보았다.

1분 후 쯤 나는 다시 플립을 열고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는
신호가 갔다. 침을 한번 삼켰다. 신호가 정확하게 3번 떨어
지자 누군가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굵직한 목소리의 남
자였다.

[예. XX경찰서 강력계 김장호형사입니다.]

전에 그 형사였다. 화석의 실종때문에 두번 보았지만 정말
로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는 인물이라는 것은 한번 보았
을때 충분히 알수 있었다. 전화기를 통해 경찰서의 소리가
건네져 왔다. 나는 잠시동안 입을 열지 않고 그 소리에 귀
를 기울였다. 시끌벅적한 소리였다. 누군가의 호통소리도
들려왔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나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김형사님.. 저 지혁입니다.."

[예?]

무척이나 놀라는 목소리가 분명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 오지혁입니다.."

이번에는 놀라는 목소리는 없었다. 대신 전화기를 통해 전
해져오던 경찰서의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아마도 전화기 건
너편의 김형사는 송화기를 손으로 틀어막고 경찰서안에 용
의자의 전화가 걸려왔음을 큰소리로 외쳤을 것이다.

잠시 침묵이 이어진후 다시 조금 전보다 약간 떨리는 목소
리가 들려왔다. 경찰서의 소란스런 소리도 완전히 사라졌
다. 아마도 녹음이 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어디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도 윗대
가리는 김형사가 나를 되도록이면 자극하지 않고 길게 통화
하게 다그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전화를
끊을 마음은 없었다.

[오지혁!! 자수해!! 그게 사는 길이야..]

농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목소리였다. 농담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그런게 아닙니다."

나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그들이 믿어줄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오지혁 자수해.. 이미 끝났어..]

"몇번을 말해도 소용없겠군요. 자수를 할수는 없습니다. 그
녀석을 찾아내기 전에는..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화석의 핸드폰 번호로 마지막에 걸려온 전화가 어디서 누
가 걸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화석의 핸드폰은 지금 기억에
는 은식의 집에서 부셔버렸던거 같군요.. 현장에서 발견하
셨겠지요? 그 핸드폰으로 마지막에 통화했던 기록을 알아낼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가능한가요?"

[글쎄...]

김형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이 형사들이 신문에 실린 기사
를 믿는다면 나를 아마도 다중인격을 아직 정신분열증 환자
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오지혁은 그 다중인격중 어떤 인격인지 궁금해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에서처럼 전화
추적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이 핸드폰을 추적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부탁입니다. 그 전화를 건 녀석이 진짜 범인입니다. 이것
만은 확실히 말해두고 싶군요.. 이건 정말입니다. 당신들이
믿던 안믿던 상관없습니다. 분명히 그 녀석이 나에게 전화
를 걸었습니다."

[오지혁!! 정신차려!!]

갑자기 전화 목소리가 바뀌었다. 무척이나 걸걸하고 쉰 듯
한 목소리였다.

"누구십니까?"

[난 이번 사건의 총지휘관인 강경록이다. 자수를 하지 않
으면 너에게는 죽음뿐이야. 이건 장난이 아니다..]

총지휘관이런 녀석이 이렇게 흥분을 잘하는 놈이라는 사실
이 놀라웠다. 어떡게 그런 지휘에 올라갈수 있는지 알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나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납치되었다가 도망쳤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윤
미입니까?"

[수작 부리지마! 너가 모르면 누가 알고 있다는 거야? 벌써
모든것은 밝혀졌어.. 증인도 있단 말야.. 자수해.. 그러면
사형은 면할거야..]

"윤미가 아니군요.. 증인이라니.. 그 사람이 내가 범인이라
고 했단 말입니까?"

경찰들이 나를 헤깔리게 하느라 거짓말을 하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 살아남았다는 자가 나를 범인이라고 했는
지 알길이 없었다.

[자수해.. 자수..]

이 걸걸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짜증을 매우 유발하는 목
소리였다. 나는 한마디하려다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곰곰히 생각했다.

경찰이 말한 증인이라면 아마도 납치되었다가 도망친 사람
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납치되었다가 도망쳤다면 모르긴 몰
라도 진짜 범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았으리라 생각되었
다. 얼굴이 아니라도 목소리라도..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나를 완벽한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
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남자가 나를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길..."

나는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괜히 전화를 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정말로 경찰이 나의 위치를 추적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도시를 벗어나기
로 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나는 창을 통해 길을 내려다 보았다. 편의점 앞에 한대의
승용차가 멈추어 섰다. 흰색 쏘나타 3 처럼 보였다. 썬그
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는 편의점에 잠시 물건을 사기위해서
차에서 내렸다. 차장도 반쯤 열려 있었고 마후라에서 연기
가 조금이나마 나오는 것을 보니 시동을 그대로 걸어놓은
상태였다.

나는 빠른 몸놀림으로 계단을 뛰어내려가 주위를 둘러보며
길을 건넜다. 편의점안을 한번 힐끔 바라보면서 나는 시동
이 걸려 있는 차의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기어를
넣고 악셀을 밟았다. 기계라는 것은 주인이든 아니든 조작
하면 움직이는 물건이다. 차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쳇~~"

점점 죄를 불려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까짓 차량절도쯤
이야 내가 지금 뒤집어쓴 죄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것 같아
알수 없는 웃음이 배어져 나왔다.

나는 차를 몰고 신문에서 떠들어댄 XX대 부속병원으로 향했
다. 그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말
한 증인이라는 그 사람을 만나면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
실을 밝힐수 있을것 같았다.

XX대 부속병원은 내가 도망쳐 나온 도시의 서쪽외곽에 있는
병원이다. 나도 전에 2번 가본 적이 있었다. 한번은 화석이
가 폐수술을 했을 때 였고 한번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였다. 그 때 이후로 한번도 가볼 기회가 없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부속병원은 나의 기억에 뚜렷히 각인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달려갔었
었다. 꽤 넓어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겨우 찾아내었지만
이미 시간은 늦었었다.

두번 다시 가보고 싶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다
시 향하게 되다니 약간은 씁쓸했다.

훔친 차에는 차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이 있었다. 회사
원인 모양이었다. 손으로 드는 서류가방을 살짝 열어보았
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꽤나 많은 서류가 들어있었다. 어
쩌면 오늘 상사에게 내야하는 서류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동차의 뒷시트 위에는 야구모자 하나 놓여져 있었
다. 미국 메이저리그팀 모자였다. 나는 가는 도중 잠깐 차
를 세우고 그 모자를 집어 들고 머리에 눌러썼다.

라디오에서 혹시 새로운 사건 소식이 나오는지 주파수를 이
리저리 돌리는 동안 이미 차는 병원으로 들어서는 오르막길
을 향하고 있었다. 보도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차를 정문으로 몰았다. 주차증을 받아야만 하는 모양
이었다. 앞서가던 차가 차단기 앞에서 멈추어 서서 차장을
통해 주차증 기계에서 주차증을 뽑고 있었다. 주차증을 뽑
아들자 차단기가 올라갔다. 그 모습을 주차실에 앉아 있는
경비원이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룸미러로 다시 한
번모자를 쓴 나의 모습을 힐끗 살펴보았다. 그리고 모자창
을안쪽으로 조금 구부려 조금이라도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
려고 노력해보았다.

앞차가 전진했다. 내 차례였다. 천천히 정문으로 차를 몰았
다. 나는 주차증 기계에서 종이로 되어 있는 주차증을 뽑아
들었다. 주차실에서 앉아 있던 경비원이 창으로 얼굴을 내
밀오 빼꼼히 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나는 태연히 앞만 주시
했다.

주차증을 뽑아들자 차단기가 올라갔다. 나는 천천히 기어를
바꾸고 천천히 크런치를 때면서 악셀을 밟았다. 경비원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원래 그렇게 쳐다보는게
직업인지 아니면 혹시 나를 알아보았는지 알수 없었다. 하
지만 나는 무사히 정문을 통과해 주차장은 왼쪽이라는 화살
표방향을 따라 차를 몰아 나갔다.

나는 차가 별로 없는 주차장 구석까지 일부러 차를 몰아 주
차를 시켰다. 이곳까지 오긴 왔지만 그 다음은 막막했다.
신문에서는 그 사람이 그냥 이 큰 병원 어딘가에 있다고 했
지 정확히 어디인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찾
기 위해서는 안내데스크에 가서 직접 물어보는 수 밖에 없
었다.

하지만 TV와 신문에 약간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사진이긴
하지만 내 사진으로 도배를 한 이상 뻔뻔하게 물어볼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1층 로비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이 약을 타거나 접수를 하기 위해서 붐길것 같았다. 그 중
에 한명이라도 나를 알아보면 끝장이었다.

나는 잠시 차안에서 고민했다. 이대로 그냥 도망치는게 나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예 먼 곳으로 도망쳐서
숨어버리면 어떨까?

하지만...
이대로 도망쳐버린다면 그 녀석들이 어떡게 생각할까?
죽은 그 녀석들이..

그리고 나를 비웃던 그 놈은..
화석, 주완, 은식을 죽인 그 놈은..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나는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을 나와 병원의 대합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