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스압이네요. 이 아침이 밝아오는데 무슨 일인가..ㅠ- 네이트판은 소소히 읽어오던 올해......(아..) 올해로 25살 취직이 시급한데 아직 잉여짓중인.....; 한 녀...녀자입니다. 전 어머니와 동생 이렇게 세가족의 나름 가장인데 잉여네요.ㅠㅠㅠ 음슴체 쓰고싶은데..음슴체는 나중에 쓰겠사와요. 아무튼 이런 일로 글을 쓰는건 아니구요. 저희 엄마가 옛날부터 섭섭하게 생각한것부터 여태까지 일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억울하다기 보다는 엄마가 눈물로 보낸 시간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원래 엄마가 정말 어떻게든 복수.....(말이 그렇다는 겁니다.ㅠ)를 하고싶어하셨지만 엄마와 저의 결론은 그러면 친가(엄마 입장에서는 시댁이지만 일단 제 입장에서 쓰고자..)와 똑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판에서나마 한을 풀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막 꺼내자면 한도 끝도없이 전 중간에 이상한 이야기를 쓰고있을 것 같으므로, 하나씩 펼쳐보겠습니다. 첫번째,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섭섭하고 황당한 일들. 솔직히 말하면 저희 할머니는 엄마의 구박만 해당하지 정말 소쿨한... 틀니로 저의 모닝을 깜짝 놀라게 해주신 분입니다.-잊을수가 없는 초딩의 기억..- 그러니까 할머니부터.. 할머니는 아들만 5명을 나은 할아버지형제분들의 부인님들...(할머님들)과는 쨉이 안될정도로 기세가 등등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님들은 고모만 줄줄이 낳다가 겨우 마지막에 삼촌을 보신 분들이지요. 솔직히 아들 다섯중에 잘난 놈 하나 없어요..-_-; 저희 아버지 포함해서.. 어쨋든, 저희 엄마와 아빠는 중매결혼을 해서 저희 엄마의 파란만장한 시댁의 추억이 시작되었죠. 엄마는 나름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작은 도매상에서 회계업무를 보시던 사람이었죠. 그런 사람이 갑작스레 준비도 안된채 결혼을 해서, 시골에서 살림을 배웠습니다. 저도 엄마도 생각하지만, 시집살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는.. 솔직히 큰엄마, 작은엄마, 숙모들이 괴로웠을 나날이죠. 경남권이지만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고 특히 밭일, 집안일쪽 언어는 엄마에게 외국어나 마찬가지였다고합니다. 그런사람 가르치는 거 힘들잖아요..(저도 외국에서 일해봤지만 의사소통 중요합니다.ㅠㅠ) 근데 문제는 손주들이 태어나고지요. 걍 그냥 쓰면 저희 엄마만 딸 둘을 ... 그러니까 아들하나 못낳았습니다. 큰엄마부터 막내숙모까지 아들은 꼭 하나있고 딸, 그냥 외동아들인 반면, 저희엄마는...Aㅏ..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희 할머니 아들만 다섯입니다... 이때부터 시작된거죠. (솔직히 딸낳았다고 구박은 할머니가 많이했지만 미움은 할아버지가 더 받고있습니다..-_-킁) 쨋든 원래 저는 아들로 나올 계획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부터(..위법이지만 가르쳐주셨다고...할머니때문에)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새댁 아들낳겠다고... 근데 왠일 낳고보니 딸.. 아주 건장한.. 솔직히 지금 말하면 저도 왜 남자가 아닐까하지만(..ㅋ) 딸인 거였죠. 뭐 그냥 조금 무시당하고 명절에 가도 저흰 뭐 그냥 딸이니까... 대충 손주고 -물론 사촌 언니들도 딸이라고.......OTL- 시골집에 가면 사촌 오빠들 돌사진만 걸려있고 딸내미들은 없어요. -지금도 그럴려나..ㅋ- 이해합니다. 아들만 있던 집이고 중요하니까요.-가부장제도가 잘못되었다거나 하는게 아닙니다- 근데 아들...모든 장남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장손만 아들이면 된거 아니유?! 아니냐고요! 옛 시집살이들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 딱 집어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엄마만 조금 더 힘내야했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일은 저희 할머니가 위암 수술을 받을 때 쯤... 할머니가 썻던 병실에는 여러명의 아주머니들이 계셨구요. -병실은 못가봤습니다.;; 할매 죄송해요.ㅠㅠ- 할머니를 간병하려고 5명의 며느리중 시골 살림할 막내숙모빼고 모두가 하루하루 돌아가면 간병하던 날. 우연히 옆에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꺼내더랍니다 "할머니는 며느리 너무 잘두셨네요. 며느님 애들이 어떻게 되요?" -이런식의 흐름의 대화 "아이고 말도 마소~ 어쩌고 저쩌고"-할머니 "아 저는 딸만 둘입니더"-엄마 "아이고, 할머니가 며느리 손주 다 이뻐했나보네-"-아주머니 "우리 셋째인데, 딸만 둘이지만 내가 차별한 적 한번도 없다!"-할머니 "하하..."-엄마 저희엄마 표정 조금 상상이 되더군요.. 차별이요..뭐 힘든 시집살이 조금 있긴 했지만 남들 겪는거라 생각하고 일 처음배우는 거니까 당연하다생각하고 견뎠는데 엄마가 그 순간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쓰다보니 생각났는데.. 저 낳고 제 동생 가졌을때 딸이라고 중절수술하라고 하신 분입니다. 저희 막내숙모가 아직 막내삼촌과 결혼도 하기전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다 딸이어서 중절수술 시킨 분입니다. 그리고 겨우 마지막으로 버티고 버텨 낳은 아이가 지금의 제 사촌(남)이네요. 그 시대엔 다 그렇다고 하지만.. 전 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아들낳았다고 강요하는것 같지 느껴지기 떄문입니다. 할머니, 무서운 분입니다. 솔직히 우리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보다 세련되고 이쁘시고요, 성격도 소쿨하고, 매번 무슨일 있으면 물떠놓고 기도해줍니다. 고마워요. 근데 딸이 그렇게도 싫으셨나요.. 그런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나도 딸이 있었으면..'이었습니다. 여태 딸 가진 부모마음 조금씩 상처입혀놓고.. 돌아가실 떄 그런말이 나오십니까.. 아니, 아들들이 잘나지도 않고 참 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 들겠지요. 그래도 할머니는 양반. 그냥 커피. 그래도 엄마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할머니 曰 '내 나중에 재산 나눌때 6등분해서 하나씩 아들들 주고 내 하나 들고있다가 내 돌봐주는 아들있으면 그 아들집에서 살다가 내 몫 주고 갈거다'- <-이렇듯 매우 현명하심.. 하 아무튼, 여기서 할아버지로 자연스레 갈아타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아들, 손주 끔찍히 아끼는 분입니다. 밥먹을 때도, 아빠들이랑 사촌오빠 동생. 여자는 그냥 조그만 밥상에 숟가락 얹기도 비좁아 엄마들, 숙모들이 왠만하면 같이 못먹고 누가 다 먹고 일어나면 먹고 한 전형적인 가부장제도의 집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미안하지만 사촌설명을 잠깐. 사촌오빠는 A, B가 있고 C는 오빠인지 동갑인지(이부분은 나중에) 그리고 사촌 남동생하나 사촌 언니는 1, 2 그리고 저와 제 동생, 제 동생과 동갑인 사촌 여동생 입니다. 여담이지만 저 사촌 남자중에 B, C는 완전 사고뭉치, 개구쟁이입니다. 겨울에 비닐하우스 다 뚫어놓고.........그것도 돌 던져서 불장난 하려다가 걸리고.ㅋ.... 툭하면 저와 사촌 여동생 괴롭히고-장난친거지만 전 그냥 웁니다..;ㅋㅋ;- 문제는 사촌 언니 2의 자취방 보증금이었습니다. 그 언니는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 Y대에 들어갔고 잠깐 휴학(?)인가 했다가 다시 복학을 하게 된 상황이었죠.-맞나..?;- 솔직히 다른 언니오빠들 보다 공부 완전 잘하고 사촌남자보다 더 기대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언니가 보증금이 없어 자취방도 못찾고 있는 와중에 작은엄마가 할아버지한테 말씀 드렸습니다. 500만원만 빌려주시면 안되냐고.. 하다못해 자기몫의 밭이라도 팔아서 돈 좀 어찌안되냐구요. 할아버지 딱잘라 돈없다고 지금 해도 돈 당장 못마련한다고 하셨다는 군요. 그래도 어찌어찌 방을 구해 학교를 다닌 언니. 근데 때마침 그때쯤 사촌오빠 A(장손)가 어학연수로 캐나다로 슝슝했습니다. 뭐 요즘 취직도 잘 안된다는데 영어는 잘해야지 뭐....라는 생각이 너도 나도 들고, 큰아빠 다니던 회사가 그래도 큰편이니까 어찌 돈을 모았나보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왠일. 몇년뒤 밝혀진 이야기. 사촌언니의 보증금 500만원 없어서 못준다고 했던 할아버지가 큰 손주 어학연수 갔다오라고 떡하니 천만원인가 2천만원인가(천만원같지만) 해줬답디다. 솔직히 스펙과 능력, 돈을 따지면 저희 사촌언니 500만원 마련 못해줄 돈도 아니고, 큰오빠.. (솔직히 오빠 미안한데 오빠 똑똑하진안잖.........) 장손 캐나다보낸다고 돈 후떡 줘버리고.. 사촌언니 그 방 얻는다고 식겁했다고 들었는데.. 내 참 어이가 없어지더군요. 그때 제나이 고등학교때인가 대학생때인가. 뭐 돈이 없었다고 칩시다. 어학연수가 당장 급한가!! 방이 당장 급한가!! 사촌언니 길바닥에서 자라고 그럽니까? 사촌언니 공부랑 이것저것 스트레스 받아서 탈모까지와서 저보다 많던 머리칼이 진짜 한순간 사라지고 얼굴도 안좋아집디다.ㅜㅜ...지금은 결혼했다고 합니다만.. 아 진정하고, 암튼 장손 캐나다 갔다 왔습니다. 근데 왠일!!! 이건또 뭐야! 캐나다가서 영어 배우고오랬더니 스위스여자만나고 왔습니다. 결혼할거랍니다. 스위스여자는 절대 못헤어진답니다.-뭐 올케나 오빠 잘못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에게 인연이란게 있으니- 처음에 외국여자 데려왔다고 할아버지랑 넷째삼촌 길길이 날뛰고 반대하셨습니다. 근데 우리 외쿡올케, 한국에 2년인가 있었나.. 엄청 고생하더니 할아버지 맘에 들려고 열심히 였지요. 저도 솔직히 올케 좋아했어요..진짜. 사람 완전 착함.ㅠㅠ 사촌오빠도 착하지만.. 그 노력인지 할아버지 어느샌가 풀렸습니다. 나라도 풀지리요. 하 근데 이 오빠가 스위스가서 올케랑 살겠답니다. ...저기 오빠..? 장손인데? 장난? 뭐... 이해해요. 올케가 워낙 힘들어했기도했고, 불편할테니까..하지만 자기가 여태 어떻게 컸는데... 근데 큰아빠와 작은아빠 싸우는걸 알면서도 결국은 스위스로 장손 보내셨습니다. 아예 제삿밥 얻어먹을 생각도 않나봐요.. 아니 요즘은 인터넷 화상으로 연결해서 하는 집도 있지만, 사촌오빠 영영 제사따위 모실 생각도 없어보였지요. 지금은 잘 사나 모르겠네요. 암튼 제사문제는 어른들 문제니까..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건 그렇게 장손장손, 하시더니 장손없으니까 참.... 어쩌다 보니 저희가족 얘기보다는 사촌이야기가 더 많네요..;;;; 저희가 친가와 연을 끊을지도 꽤 되어갑니다. 저희 아버지 제사때, 연락도 오지않고 가지않고, 할머님제사나 명절때 일체 안갑니다. 저희가 연을 끊을 당시. 할아버지는 찬밥신세였죠. 큰며느리는 자기 모시기 싫어, 넷째부부에게 아파트 쥐어주면 모시라고했지만 결국 할아버지 시골로 가셨다는 이야기만 듣고 모릅니다. 제 이야기에서 어디가 할아버지가 잘 못 되었냐 하는 분들 계실거라 봅니다만,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이 너무 가관이라 스포하는겁니다. 글이 너무 길어 담에 또 써보겠습니다. 그냥 저의 한풀이니까 편히(?) 봐주세요.
저희 친가 이야기를 풀어봅니다..-하소연-
-쓰다보니 스압이네요. 이 아침이 밝아오는데 무슨 일인가..ㅠ-
네이트판은 소소히 읽어오던 올해......(아..)
올해로 25살 취직이 시급한데 아직 잉여짓중인.....; 한 녀...녀자입니다.
전 어머니와 동생 이렇게 세가족의 나름 가장인데 잉여네요.ㅠㅠㅠ
음슴체 쓰고싶은데..음슴체는 나중에 쓰겠사와요.
아무튼 이런 일로 글을 쓰는건 아니구요.
저희 엄마가 옛날부터 섭섭하게 생각한것부터 여태까지 일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너무 억울해서.. 억울하다기 보다는 엄마가 눈물로 보낸 시간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원래 엄마가 정말 어떻게든 복수.....(말이 그렇다는 겁니다.ㅠ)를 하고싶어하셨지만
엄마와 저의 결론은 그러면 친가(엄마 입장에서는 시댁이지만 일단 제 입장에서 쓰고자..)와 똑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판에서나마 한을 풀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막 꺼내자면 한도 끝도없이 전 중간에 이상한 이야기를 쓰고있을 것 같으므로, 하나씩 펼쳐보겠습니다.
첫번째,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섭섭하고 황당한 일들.
솔직히 말하면 저희 할머니는 엄마의 구박만 해당하지 정말 소쿨한...
틀니로 저의 모닝을 깜짝 놀라게 해주신 분입니다.-잊을수가 없는 초딩의 기억..-
그러니까 할머니부터..
할머니는 아들만 5명을 나은 할아버지형제분들의 부인님들...(할머님들)과는 쨉이 안될정도로 기세가 등등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님들은 고모만 줄줄이 낳다가 겨우 마지막에 삼촌을 보신 분들이지요.
솔직히 아들 다섯중에 잘난 놈 하나 없어요..-_-; 저희 아버지 포함해서..
어쨋든, 저희 엄마와 아빠는 중매결혼을 해서 저희 엄마의 파란만장한 시댁의 추억이 시작되었죠.
엄마는 나름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작은 도매상에서 회계업무를 보시던 사람이었죠.
그런 사람이 갑작스레 준비도 안된채 결혼을 해서, 시골에서 살림을 배웠습니다.
저도 엄마도 생각하지만, 시집살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는.. 솔직히 큰엄마, 작은엄마, 숙모들이 괴로웠을 나날이죠.
경남권이지만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고 특히 밭일, 집안일쪽 언어는 엄마에게 외국어나 마찬가지였다고합니다. 그런사람 가르치는 거 힘들잖아요..(저도 외국에서 일해봤지만 의사소통 중요합니다.ㅠㅠ)
근데 문제는 손주들이 태어나고지요.
걍 그냥 쓰면 저희 엄마만 딸 둘을 ... 그러니까 아들하나 못낳았습니다.
큰엄마부터 막내숙모까지 아들은 꼭 하나있고 딸, 그냥 외동아들인 반면, 저희엄마는...Aㅏ..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희 할머니 아들만 다섯입니다...
이때부터 시작된거죠. (솔직히 딸낳았다고 구박은 할머니가 많이했지만 미움은 할아버지가 더 받고있습니다..-_-킁)
쨋든 원래 저는 아들로 나올 계획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부터(..위법이지만 가르쳐주셨다고...할머니때문에)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새댁 아들낳겠다고...
근데 왠일 낳고보니 딸.. 아주 건장한.. 솔직히 지금 말하면 저도 왜 남자가 아닐까하지만(..ㅋ) 딸인 거였죠.
뭐 그냥 조금 무시당하고 명절에 가도 저흰 뭐 그냥 딸이니까... 대충 손주고
-물론 사촌 언니들도 딸이라고.......OTL-
시골집에 가면 사촌 오빠들 돌사진만 걸려있고 딸내미들은 없어요. -지금도 그럴려나..ㅋ-
이해합니다. 아들만 있던 집이고 중요하니까요.-가부장제도가 잘못되었다거나 하는게 아닙니다-
근데 아들...모든 장남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장손만 아들이면 된거 아니유?! 아니냐고요!
옛 시집살이들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 딱 집어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엄마만 조금 더 힘내야했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일은 저희 할머니가 위암 수술을 받을 때 쯤...
할머니가 썻던 병실에는 여러명의 아주머니들이 계셨구요. -병실은 못가봤습니다.;; 할매 죄송해요.ㅠㅠ-
할머니를 간병하려고 5명의 며느리중 시골 살림할 막내숙모빼고 모두가 하루하루 돌아가면 간병하던 날.
우연히 옆에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꺼내더랍니다
"할머니는 며느리 너무 잘두셨네요. 며느님 애들이 어떻게 되요?" -이런식의 흐름의 대화
"아이고 말도 마소~ 어쩌고 저쩌고"-할머니
"아 저는 딸만 둘입니더"-엄마
"아이고, 할머니가 며느리 손주 다 이뻐했나보네-"-아주머니
"우리 셋째인데, 딸만 둘이지만 내가 차별한 적 한번도 없다!"-할머니
"하하..."-엄마
저희엄마 표정 조금 상상이 되더군요..
차별이요..뭐 힘든 시집살이 조금 있긴 했지만 남들 겪는거라 생각하고 일 처음배우는 거니까 당연하다생각하고 견뎠는데 엄마가 그 순간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쓰다보니 생각났는데..
저 낳고 제 동생 가졌을때 딸이라고 중절수술하라고 하신 분입니다.
저희 막내숙모가 아직 막내삼촌과 결혼도 하기전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다 딸이어서 중절수술 시킨 분입니다. 그리고 겨우 마지막으로 버티고 버텨 낳은 아이가 지금의 제 사촌(남)이네요.
그 시대엔 다 그렇다고 하지만.. 전 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아들낳았다고 강요하는것 같지 느껴지기 떄문입니다.
할머니, 무서운 분입니다.
솔직히 우리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보다 세련되고 이쁘시고요, 성격도 소쿨하고, 매번 무슨일 있으면 물떠놓고 기도해줍니다. 고마워요. 근데 딸이 그렇게도 싫으셨나요..
그런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나도 딸이 있었으면..'이었습니다.
여태 딸 가진 부모마음 조금씩 상처입혀놓고.. 돌아가실 떄 그런말이 나오십니까..
아니, 아들들이 잘나지도 않고 참 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 들겠지요.
그래도 할머니는 양반. 그냥 커피. 그래도 엄마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할머니 曰 '내 나중에 재산 나눌때 6등분해서 하나씩 아들들 주고 내 하나 들고있다가 내 돌봐주는 아들있으면 그 아들집에서 살다가 내 몫 주고 갈거다'- <-이렇듯 매우 현명하심..
하 아무튼, 여기서 할아버지로 자연스레 갈아타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아들, 손주 끔찍히 아끼는 분입니다.
밥먹을 때도, 아빠들이랑 사촌오빠 동생. 여자는 그냥 조그만 밥상에 숟가락 얹기도 비좁아 엄마들, 숙모들이 왠만하면 같이 못먹고 누가 다 먹고 일어나면 먹고 한 전형적인 가부장제도의 집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미안하지만 사촌설명을 잠깐.
사촌오빠는 A, B가 있고 C는 오빠인지 동갑인지(이부분은 나중에) 그리고 사촌 남동생하나
사촌 언니는 1, 2 그리고 저와 제 동생, 제 동생과 동갑인 사촌 여동생 입니다.
여담이지만 저 사촌 남자중에 B, C는 완전 사고뭉치, 개구쟁이입니다.
겨울에 비닐하우스 다 뚫어놓고.........그것도 돌 던져서
불장난 하려다가 걸리고.ㅋ.... 툭하면 저와 사촌 여동생 괴롭히고-장난친거지만 전 그냥 웁니다..;ㅋㅋ;-
문제는 사촌 언니 2의 자취방 보증금이었습니다.
그 언니는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 Y대에 들어갔고 잠깐 휴학(?)인가 했다가 다시 복학을 하게 된 상황이었죠.-맞나..?;-
솔직히 다른 언니오빠들 보다 공부 완전 잘하고 사촌남자보다 더 기대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언니가 보증금이 없어 자취방도 못찾고 있는 와중에 작은엄마가 할아버지한테 말씀 드렸습니다.
500만원만 빌려주시면 안되냐고.. 하다못해 자기몫의 밭이라도 팔아서 돈 좀 어찌안되냐구요.
할아버지 딱잘라 돈없다고 지금 해도 돈 당장 못마련한다고 하셨다는 군요.
그래도 어찌어찌 방을 구해 학교를 다닌 언니.
근데 때마침 그때쯤 사촌오빠 A(장손)가 어학연수로 캐나다로 슝슝했습니다.
뭐 요즘 취직도 잘 안된다는데 영어는 잘해야지 뭐....라는 생각이 너도 나도 들고, 큰아빠 다니던 회사가 그래도 큰편이니까 어찌 돈을 모았나보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왠일. 몇년뒤 밝혀진 이야기.
사촌언니의 보증금 500만원 없어서 못준다고 했던 할아버지가 큰 손주 어학연수 갔다오라고 떡하니 천만원인가 2천만원인가(천만원같지만) 해줬답디다.
솔직히 스펙과 능력, 돈을 따지면 저희 사촌언니 500만원 마련 못해줄 돈도 아니고, 큰오빠.. (솔직히 오빠 미안한데 오빠 똑똑하진안잖.........) 장손 캐나다보낸다고 돈 후떡 줘버리고..
사촌언니 그 방 얻는다고 식겁했다고 들었는데.. 내 참 어이가 없어지더군요.
그때 제나이 고등학교때인가 대학생때인가.
뭐 돈이 없었다고 칩시다. 어학연수가 당장 급한가!! 방이 당장 급한가!!
사촌언니 길바닥에서 자라고 그럽니까? 사촌언니 공부랑 이것저것 스트레스 받아서 탈모까지와서 저보다 많던 머리칼이 진짜 한순간 사라지고 얼굴도 안좋아집디다.ㅜㅜ...지금은 결혼했다고 합니다만..
아 진정하고, 암튼 장손 캐나다 갔다 왔습니다.
근데 왠일!!! 이건또 뭐야!
캐나다가서 영어 배우고오랬더니 스위스여자만나고 왔습니다. 결혼할거랍니다. 스위스여자는 절대 못헤어진답니다.-뭐 올케나 오빠 잘못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에게 인연이란게 있으니-
처음에 외국여자 데려왔다고 할아버지랑 넷째삼촌 길길이 날뛰고 반대하셨습니다.
근데 우리 외쿡올케, 한국에 2년인가 있었나.. 엄청 고생하더니 할아버지 맘에 들려고 열심히 였지요. 저도 솔직히 올케 좋아했어요..진짜. 사람 완전 착함.ㅠㅠ 사촌오빠도 착하지만..
그 노력인지 할아버지 어느샌가 풀렸습니다. 나라도 풀지리요.
하 근데 이 오빠가 스위스가서 올케랑 살겠답니다. ...저기 오빠..? 장손인데? 장난?
뭐... 이해해요. 올케가 워낙 힘들어했기도했고, 불편할테니까..하지만 자기가 여태 어떻게 컸는데...
근데 큰아빠와 작은아빠 싸우는걸 알면서도 결국은 스위스로 장손 보내셨습니다.
아예 제삿밥 얻어먹을 생각도 않나봐요..
아니 요즘은 인터넷 화상으로 연결해서 하는 집도 있지만, 사촌오빠 영영 제사따위 모실 생각도 없어보였지요. 지금은 잘 사나 모르겠네요.
암튼 제사문제는 어른들 문제니까..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건 그렇게 장손장손, 하시더니 장손없으니까 참....
어쩌다 보니 저희가족 얘기보다는 사촌이야기가 더 많네요..;;;;
저희가 친가와 연을 끊을지도 꽤 되어갑니다.
저희 아버지 제사때, 연락도 오지않고 가지않고, 할머님제사나 명절때 일체 안갑니다.
저희가 연을 끊을 당시. 할아버지는 찬밥신세였죠.
큰며느리는 자기 모시기 싫어, 넷째부부에게 아파트 쥐어주면 모시라고했지만 결국 할아버지 시골로 가셨다는 이야기만 듣고 모릅니다.
제 이야기에서 어디가 할아버지가 잘 못 되었냐 하는 분들 계실거라 봅니다만,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이 너무 가관이라 스포하는겁니다.
글이 너무 길어 담에 또 써보겠습니다.
그냥 저의 한풀이니까 편히(?)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