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좀 깁니다. 공부하다가 잘 안 돼서 잠시 머리 식힐 겸 글 하나 남깁니다. 원래 여기서 서식하는 사람은 아닌데, '결혼/시집/친정' 카테고리 보니까 참 사연도 많아서 몇 개 읽다가 제 이야기도 여기다 풀면 어떨가 해서 글 쓰기 버튼을 눌렀는데 여자만 적을 수 있는 게시판이더군요. ^^; 그 사람을 만난 건 제 나이 스물 여덟, 여자 나이 스물 아홉 때였습니다. 좀 당찬 성격의 여자인 데다가 저보다 누나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가 좀 끌려다녔고 고백도 반 강제로 시켜서 했지요. ㅎㅎ 뭐, 제가 싫었으면 시켜도 안 했겠지만요. 일년 반 가량 사귀었는데, 성격도 잘 맞고 유머코드도 잘 맞고 죽이 잘 맞아서 서로 잘 사귀었습니다. 연애 초기에는 둘 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던 때였고 둘 다 지방 출신이라 자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기가 수월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자도 대학원을 졸업해서 집에 내려가게 되자 만나기가 힘들어지더군요. 저는 경상도, 여자는 충청도에 살았거든요. 고향은 둘 다 경상도이지만 여자 부모님께서 직장 때문에 충청도에 사셨어요. 차 몰고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립디다. 원래는 연애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게 2월이었는데 제가 8월부터 미국에 나가게 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호감은 있었지만 사귀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여자쪽에서 '그럼 어떠냐. 호감 있으면 사귀면 되지.' 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사귀게 됐습니다. 그리고 8월이 다가오자 예정된 이별을 했지요. 참 죽고 못 살 것 같이 잘 놀다가 떨어지려고 하니까 많이 슬프데요. 원래 8월 되면 서로 빠이빠이 하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리 안 됩디다. 그래서 태평양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장거리 연애를 했습니다. 1년 2개월 정도나요. 미국서 홀로 살아보니 참 외로웠습니다. 영어를 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백인들의 주류 생활에 아시아인 남자가 끼어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5세나 2세도 아닌 경우 더 하더군요. 게다가 20대 후반이 되니 장래도 거의 결정이 되어서 향후 몇 년 간 제가 뭘 하고 살 지에 대한 계획도 다 잡혔고요. 남자나이 스물 여덟이면 결혼하기에 조금 이른듯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향후 5, 6년간의 미래가 어느 정도 확정이 돼 있고(즉 불안정하지 않고) 여자도 공부 다 했겠다 스물 아홉이면 결혼 적령기라면 적령기이니 기회 닿는 대로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먼저 여자의 의사를 물었습니다. 좋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으로 따라오는 정해진 수순, 부모님께 말씀 드리기가 남습디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됐 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수성가하신 분입니다. 그리 유복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정말 같은 남자로서, 우와~ 할 정도로 잘 되셨습니다. '그래, 남자 인생 독고다이 하면 저 정도는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하지만 그 때문인지 놀 줄을 잘 모르세요. 매도 맞아본 놈이 잘 맞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우 리시대 아버지 상이 다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유흥 없이 그리 살아오신 분이라 그런가, 저녁 때 퇴근 하 시면 집에 곧장 돌아와 저녁을 반주 삼아 소주 한 병에서 한 병 반씩 매일 드시고 밤 열시 이전에 주무십니 다. 365일 그렇게 사시는 듯 해요. 아무래도 저랑 제 동생 다 서울로 올려 보내고 자식들 떠난 둥지에 남아 심심하셔서 한 잔 두 잔 하시다가 이렇게까지 술이 느셨나 봅니다. 어머니께선 이것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이십니다. 저녁 좀 회식도 좀 하고 나가서 술도 나가서 마시고 그 러지 매일같이 들어와서 점심 빼고 하루 두 끼 밥을 집에서 드시니 식사 차리기도 귀찮고, 또 애들도 없겠 다 나이 쉰도 넘은 마당에 이제 슬슬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때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 하셔서 그런 모양입니다. 뭐, 말은 안 하지만 집에 내려가서 옆에서 보면 느끼잖아요. 뭐, 그렇긴 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하자 없는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자수성가하신 것 때문에 그런가, 제가 사귀는 여자의 학력을 좀 유심히 보세요. 이것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명 박이 없이 컸다고 해서 지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닌 것 같이요.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요.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어머니께서 한 번씩 올라오셔서 청소도 해 주시고 반찬도 만들어 주시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넌지시 만나는 아가씨는 없냐고 물어도 보시고요. 제가 집에 다 그런 소리를 잘 안 하는 편인데다가 타지에서 자취하는 처지이다 보니 어머니께서 먼저 다른 경로로 이 런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없으셔서 제가 말씀 안 드리면 모르십니다. 당시에 만나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때는 저도 20대 중반이었고 결혼 생각하고 만나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 에만 들어서 그냥 만나던 여자였습니다만 학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지방 사립대 나와서(솔직히 지 금도 그 대학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서울에 작은 사무실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여자였지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몹시 언짢으신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제가 집을 나설 때 어머니께서 잡고 계셨던 진공청소기가 그 자리에 그대로 내팽겨 쳐져 있고 집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하던 일 올 스톱 하고 집에 가셨더군요. ㅡ.ㅡ; 밤에 아버지 께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고속도로 운전해 내려오면서 차 안에서 울고 불고 난리 났다. 그 여자 만나지 마 라. 평소에 절대 먼저 전화하시는 일이 없는 아버지께서 먼저 전화를 다 하시고, 상황이 심각하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어이가 없습디다.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간 여자도 아니고 그냥 좋은 시절 20대 중반에 연애하는 사이인데 거기다 대고 만나지 말라고 할 건 뭐며 울고 불고 할 건 뭡니까. 게다가 싫다는 이유가 여자 학력 때문이라 니... 기분 나빠서 대충 둘러대고 끊었습니다. 그 후로 거의 1주일 동안 아버지께 거의 매일 전화가 왔습니다. 참 사람 기분 더러워지데요. 부모님께 참 많이 실망했습니다. 그 때 이야기 하면 책 한 권 씁니다. 그러니 이 정도로 줄이고요, 뭐, 결국 헤어졌다고 거짓말 하고 계속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헤어졌지요. 부모님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고 그냥 보통 남녀가 연애하다가 이별하듯이 그렇게 이별했습니다. 이런 전적이 있는지라 부모님께 여자친구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안 좋아 할 것 같았 거든요. 그 때는 부모님의 '학력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실치가 않았거든요. 작년 여름에 이 문제로 다투다가 한 번 물어봤습니다. 어디까지 데려오면 되겠냐고. 이대랍디다. ㅎㅎ ㅡ.ㅡ; 어쨌든, 여자한테 결혼하자는 얘기는 꺼내놨는데, 여름에 잠깐 한국 들어왔을 때, 부모님께 말씀 드릴 타이밍을 못 잡겠습디다.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소리를 해야 하는데 어떤 반응이 나올 지를 몰라 거의 3주를 전전긍긍만 하다가 결국 제가 운전해서 어머니와 같이 마트 갔다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이틀인가 후에 가족회의가 열렸지요. 그 사이, 거실에서 TV보고 있으면 옆에서 마늘 까시면서 한숨 푹 푹 쉬시는 등의 비언어적 압박 을 넣으시는 등, 저를 정신적으로 좀 피폐하게 만드는 신공이 있었습니다. 안 좋은 결과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예상은 맞았습니다. 학교는 어디 나왔냐기에 어디 나왔다고 하니, 뭐, 그 후로의 반응은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다'였습니다. 저를 다그치기도 하시고, 어르기도 하시고, 왜 그런 거 있죠?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사람의 학벌과 집안이 사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느 냐. 결혼이라는 건 둘이 마음만 맞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안도 어느 정도 동등해야 하고, 지식 수준 도 비슷해야 하고, 교양 수준, 사회 경제적 수준이 다 비슷해야 할 수 있는 거다. 어떻게 사랑만 가지고 결 혼을 하려고 하느냐." 뭐 이런 거. 여자 집안 무슨 일 하는 지 물어보지도 않아놓고, 부모님 무슨 일 하시는 지 물어보지도 않아 놓고는 뭔 헛소리를 하시는지... ㅡ.ㅡ; 오기가 생깁디다. 여지껏 부모님께 한 번 대든 적 없이 살았는데, 이런 식으로 몇 주 동안 볶이다 보니 성 질이 뻗칩디다. 그래도 같이 놀러 갈 때 트러블 만들기 싫어서 다른 사람 만난다고 하고 거짓말 하고 나갔 는데, 그게 거짓말인 줄 다 보이지요. 예 저도 압니다. 그래도 그렇게 얘기 해야 더 이상 안 물어보고 놓아 줄테니까 거짓말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버스 타고 여자친구 만나러 가고 있는데 전화가 옵디다. 받 으니 어머닙니다. 어디 가는지 사실대로 불라고 윽박을 지르십니다. 여자친구 만나러 가노라고 얘기했습 니다. 그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왜 계속 만나느냡니다. 그리고는 뭐라고 뭐라고 막~ 땍땍거리는데 그냥 끊어버렸습니다. 태어나서 다른 사람 말 하는 도중에 듣기 싫어서 전화 끊은 거 그게 처음이었습니 다. 대상이 어머니라니 참 기구하네요. ㅎㅎ 아버지께 또 전화 오고. 내일 아침에 얘기좀 하자시더군요. 그러나 내일 아침엔 전 예비군 훈련을 가야 했기 때문에 훈련갔다 오겠습니다 하고는 군복 입고 또 내 뺐 지요. 그날 밤에 또 대판 싸우고요. ㅋㅋ 피 말린다면 피 말리지만 돌이켜 보니 참 다이나믹했네요. 5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집에서 들들 볶이다 보니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그놈의 학벌이 뭔지, 이건 뭐 나중에 제 혼기가 꽉 차면 아주 정승집 규수를 뫼셔다가 정략결혼이라도 시킬 생각인가봅니다. 다 때려치 우라고 하고는 별 소득 없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여자도 그 사이에 많이 지쳤지요. 우리 집 에서 이러는 걸 알았으니 마음에 받은 상처는 또 오죽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잘 어루만저준 것도 아니고요. 저 또한 저 나름대로 집에서 전쟁 치른다고 정신 없었거든요. 정말이지 제 인생에서 가장 불편한 3개월이었습니다. 다시 한국과 미국 사이에 폰팅만이 오갔습니다. 그리고는 작년 10월 말쯤, 사소한 말다툼 후 연락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저도 안 했고, 여자도 안 하더군요. 다시 전화를 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뭐, 우리끼리 화해 해서 푼다고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전 미국에 몇 년간 계속 있을 거고, 여자를 책임질 만큼 벌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 둘이 밀월 도피를 할 수 있을 처지도 안 되고... 이성이 감정을 이기고 나니 답은 헤어지는 것 밖에는 없습디다. 그렇게 5개월 가량이 흘렀네요. 부모님과는 작년 여름에 미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로 전화 두 번 했습니다. 추석이랑 설. 생각같아서는 돈 좀 벌리기 시작하면 여자 데려오고 그냥 둘이서 미국서 살아버리겠는데 또 그게 말같이 쉽겠습니까.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아 그 생각도 접고, 이러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모두에게 안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집안과는 의 상하고, 여자도 상처 받을 대로 받고. 한국 드라마 중 '부모님의 반대' 나오는 드라마 절대 안 봅니다. 기분 더러워져요. 시크릿가든도, 그 주원이 엄마 정말 묶어놓고 패고 싶습디다. 감정이입이 어찌나 잘 되는지. ㅋ 보다가 컴퓨터 끄고, 막 그러네요. 낙이 없습니다 낙이. 나중에 잘 되려고 이러나, 서서히 망해가는 중인가... 답도 안 나오고. 오늘도 이렇게 지나갔군요. 1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하려 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내용이 좀 깁니다.
공부하다가 잘 안 돼서 잠시 머리 식힐 겸 글 하나 남깁니다.
원래 여기서 서식하는 사람은 아닌데, '결혼/시집/친정' 카테고리 보니까 참 사연도 많아서 몇 개 읽다가
제 이야기도 여기다 풀면 어떨가 해서 글 쓰기 버튼을 눌렀는데 여자만 적을 수 있는 게시판이더군요. ^^;
그 사람을 만난 건 제 나이 스물 여덟, 여자 나이 스물 아홉 때였습니다.
좀 당찬 성격의 여자인 데다가 저보다 누나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가 좀 끌려다녔고
고백도 반 강제로 시켜서 했지요. ㅎㅎ 뭐, 제가 싫었으면 시켜도 안 했겠지만요.
일년 반 가량 사귀었는데, 성격도 잘 맞고 유머코드도 잘 맞고 죽이 잘 맞아서 서로 잘 사귀었습니다.
연애 초기에는 둘 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던 때였고 둘 다 지방 출신이라 자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기가 수월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자도 대학원을 졸업해서
집에 내려가게 되자 만나기가 힘들어지더군요. 저는 경상도, 여자는 충청도에 살았거든요.
고향은 둘 다 경상도이지만 여자 부모님께서 직장 때문에 충청도에 사셨어요. 차 몰고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립디다.
원래는 연애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여자를 처음 만난 게 2월이었는데 제가 8월부터 미국에 나가게
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호감은 있었지만 사귀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여자쪽에서 '그럼 어떠냐. 호감 있으면 사귀면 되지.' 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사귀게 됐습니다.
그리고 8월이 다가오자 예정된 이별을 했지요. 참 죽고 못 살 것 같이 잘 놀다가 떨어지려고 하니까
많이 슬프데요. 원래 8월 되면 서로 빠이빠이 하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리 안 됩디다. 그래서 태평양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장거리 연애를 했습니다. 1년 2개월 정도나요.
미국서 홀로 살아보니 참 외로웠습니다. 영어를 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백인들의 주류 생활에
아시아인 남자가 끼어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5세나 2세도 아닌 경우 더 하더군요.
게다가 20대 후반이 되니 장래도 거의 결정이 되어서 향후 몇 년 간 제가 뭘 하고 살 지에 대한
계획도 다 잡혔고요. 남자나이 스물 여덟이면 결혼하기에 조금 이른듯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향후 5, 6년간의 미래가 어느 정도 확정이 돼 있고(즉 불안정하지 않고) 여자도 공부 다 했겠다
스물 아홉이면 결혼 적령기라면 적령기이니 기회 닿는 대로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먼저 여자의 의사를 물었습니다. 좋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으로 따라오는 정해진 수순, 부모님께 말씀 드리기가 남습디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됐
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수성가하신 분입니다. 그리 유복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정말 같은 남자로서, 우와~
할 정도로 잘 되셨습니다. '그래, 남자 인생 독고다이 하면 저 정도는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하지만 그 때문인지 놀 줄을 잘 모르세요. 매도 맞아본 놈이 잘 맞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우
리시대 아버지 상이 다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유흥 없이 그리 살아오신 분이라 그런가, 저녁 때 퇴근 하
시면 집에 곧장 돌아와 저녁을 반주 삼아 소주 한 병에서 한 병 반씩 매일 드시고 밤 열시 이전에 주무십니
다. 365일 그렇게 사시는 듯 해요. 아무래도 저랑 제 동생 다 서울로 올려 보내고 자식들 떠난 둥지에 남아
심심하셔서 한 잔 두 잔 하시다가 이렇게까지 술이 느셨나 봅니다.
어머니께선 이것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이십니다. 저녁 좀 회식도 좀 하고 나가서 술도 나가서 마시고 그
러지 매일같이 들어와서 점심 빼고 하루 두 끼 밥을 집에서 드시니 식사 차리기도 귀찮고, 또 애들도 없겠
다 나이 쉰도 넘은 마당에 이제 슬슬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때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
하셔서 그런 모양입니다. 뭐, 말은 안 하지만 집에 내려가서 옆에서 보면 느끼잖아요.
뭐, 그렇긴 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하자 없는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자수성가하신
것 때문에 그런가, 제가 사귀는 여자의 학력을 좀 유심히 보세요. 이것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명
박이 없이 컸다고 해서 지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닌 것 같이요.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요.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어머니께서 한 번씩 올라오셔서 청소도 해 주시고
반찬도 만들어 주시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넌지시 만나는 아가씨는 없냐고 물어도 보시고요. 제가 집에
다 그런 소리를 잘 안 하는 편인데다가 타지에서 자취하는 처지이다 보니 어머니께서 먼저 다른 경로로 이
런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없으셔서 제가 말씀 안 드리면 모르십니다.
당시에 만나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때는 저도 20대 중반이었고 결혼 생각하고 만나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
에만 들어서 그냥 만나던 여자였습니다만 학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지방 사립대 나와서(솔직히 지
금도 그 대학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서울에 작은 사무실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여자였지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몹시 언짢으신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제가 집을 나설 때 어머니께서 잡고 계셨던 진공청소기가 그 자리에 그대로 내팽겨
쳐져 있고 집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하던 일 올 스톱 하고 집에 가셨더군요. ㅡ.ㅡ; 밤에 아버지
께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고속도로 운전해 내려오면서 차 안에서 울고 불고 난리 났다. 그 여자 만나지 마
라. 평소에 절대 먼저 전화하시는 일이 없는 아버지께서 먼저 전화를 다 하시고, 상황이 심각하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어이가 없습디다.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간 여자도 아니고 그냥 좋은 시절 20대 중반에 연애하는 사이인데
거기다 대고 만나지 말라고 할 건 뭐며 울고 불고 할 건 뭡니까. 게다가 싫다는 이유가 여자 학력 때문이라
니...
기분 나빠서 대충 둘러대고 끊었습니다. 그 후로 거의 1주일 동안 아버지께 거의 매일 전화가 왔습니다.
참 사람 기분 더러워지데요. 부모님께 참 많이 실망했습니다. 그 때 이야기 하면 책 한 권 씁니다. 그러니
이 정도로 줄이고요, 뭐, 결국 헤어졌다고 거짓말 하고 계속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헤어졌지요. 부모님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고 그냥 보통 남녀가 연애하다가 이별하듯이
그렇게 이별했습니다.
이런 전적이 있는지라 부모님께 여자친구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안 좋아 할 것 같았
거든요. 그 때는 부모님의 '학력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실치가 않았거든요. 작년 여름에 이 문제로
다투다가 한 번 물어봤습니다. 어디까지 데려오면 되겠냐고. 이대랍디다. ㅎㅎ ㅡ.ㅡ;
어쨌든, 여자한테 결혼하자는 얘기는 꺼내놨는데, 여름에 잠깐 한국 들어왔을 때, 부모님께 말씀 드릴
타이밍을 못 잡겠습디다.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소리를 해야 하는데
어떤 반응이 나올 지를 몰라 거의 3주를 전전긍긍만 하다가 결국 제가
운전해서 어머니와 같이 마트 갔다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이틀인가 후에 가족회의가
열렸지요. 그 사이, 거실에서 TV보고 있으면 옆에서 마늘 까시면서 한숨 푹 푹 쉬시는 등의 비언어적 압박
을 넣으시는 등, 저를 정신적으로 좀 피폐하게 만드는 신공이 있었습니다. 안 좋은 결과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예상은 맞았습니다.
학교는 어디 나왔냐기에 어디 나왔다고 하니, 뭐, 그 후로의 반응은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다'였습니다.
저를 다그치기도 하시고, 어르기도 하시고, 왜 그런 거 있죠?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사람의 학벌과 집안이 사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느
냐. 결혼이라는 건 둘이 마음만 맞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안도 어느 정도 동등해야 하고, 지식 수준
도 비슷해야 하고, 교양 수준, 사회 경제적 수준이 다 비슷해야 할 수 있는 거다. 어떻게 사랑만 가지고 결
혼을 하려고 하느냐."
뭐 이런 거. 여자 집안 무슨 일 하는 지 물어보지도 않아놓고, 부모님 무슨 일 하시는 지 물어보지도 않아
놓고는 뭔 헛소리를 하시는지... ㅡ.ㅡ;
오기가 생깁디다. 여지껏 부모님께 한 번 대든 적 없이 살았는데, 이런 식으로 몇 주 동안 볶이다 보니 성
질이 뻗칩디다. 그래도 같이 놀러 갈 때 트러블 만들기 싫어서 다른 사람 만난다고 하고 거짓말 하고 나갔
는데, 그게 거짓말인 줄 다 보이지요. 예 저도 압니다. 그래도 그렇게 얘기 해야 더 이상 안 물어보고 놓아
줄테니까 거짓말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버스 타고 여자친구 만나러 가고 있는데 전화가 옵디다. 받
으니 어머닙니다. 어디 가는지 사실대로 불라고 윽박을 지르십니다. 여자친구 만나러 가노라고 얘기했습
니다. 그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왜 계속 만나느냡니다. 그리고는 뭐라고 뭐라고 막~ 땍땍거리는데
그냥 끊어버렸습니다. 태어나서 다른 사람 말 하는 도중에 듣기 싫어서 전화 끊은 거 그게 처음이었습니
다. 대상이 어머니라니 참 기구하네요. ㅎㅎ 아버지께 또 전화 오고. 내일 아침에 얘기좀 하자시더군요.
그러나 내일 아침엔 전 예비군 훈련을 가야 했기 때문에 훈련갔다 오겠습니다 하고는 군복 입고 또 내 뺐
지요. 그날 밤에 또 대판 싸우고요. ㅋㅋ 피 말린다면 피 말리지만 돌이켜 보니 참 다이나믹했네요.
5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집에서 들들 볶이다 보니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그놈의 학벌이 뭔지, 이건 뭐
나중에 제 혼기가 꽉 차면 아주 정승집 규수를 뫼셔다가 정략결혼이라도 시킬 생각인가봅니다. 다 때려치
우라고 하고는 별 소득 없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여자도 그 사이에 많이 지쳤지요. 우리 집
에서 이러는 걸 알았으니 마음에 받은 상처는 또 오죽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잘 어루만저준 것도
아니고요. 저 또한 저 나름대로 집에서 전쟁 치른다고 정신 없었거든요. 정말이지 제 인생에서 가장
불편한 3개월이었습니다.
다시 한국과 미국 사이에 폰팅만이 오갔습니다. 그리고는 작년 10월 말쯤, 사소한 말다툼 후 연락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저도 안 했고, 여자도 안 하더군요. 다시 전화를 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뭐, 우리끼리 화해
해서 푼다고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전 미국에 몇 년간 계속 있을 거고, 여자를 책임질 만큼 벌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 둘이 밀월 도피를 할 수 있을 처지도 안 되고... 이성이 감정을 이기고 나니 답은 헤어지는 것
밖에는 없습디다.
그렇게 5개월 가량이 흘렀네요. 부모님과는 작년 여름에 미국으로 돌아오고 난 후로 전화 두 번 했습니다.
추석이랑 설. 생각같아서는 돈 좀 벌리기 시작하면 여자 데려오고 그냥 둘이서 미국서 살아버리겠는데
또 그게 말같이 쉽겠습니까.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너무 많을 것 같아 그 생각도 접고, 이러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모두에게 안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집안과는 의 상하고, 여자도 상처 받을 대로 받고. 한국 드라마 중 '부모님의 반대' 나오는 드라마 절대 안
봅니다. 기분 더러워져요. 시크릿가든도, 그 주원이 엄마 정말 묶어놓고 패고 싶습디다. 감정이입이
어찌나 잘 되는지. ㅋ 보다가 컴퓨터 끄고, 막 그러네요.
낙이 없습니다 낙이. 나중에 잘 되려고 이러나, 서서히 망해가는 중인가... 답도 안 나오고. 오늘도 이렇게
지나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