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거이 부모님을 증오합니다. 집만큼 숨막히는 곳도 없고 집만큼 죽고 싶은 곳도 없습니다. 이런 제가 잘못됐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왜 집을 싫어하는 지에 대해서 짤막하게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톡커님들이 보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입니다. 저와 오빠를 위해서 고생하신 거니까요. 어린 시절에 저는 공부를 꾀나 잘하는 편이였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칭찬받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엄마한테 부탁을 드렸습니다.
학부모 참관일에 꼭 와달라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온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만 기다렸지요. 학부모 참관 당일에는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머리도 예쁘게 묶고. 아침에 나갈 때에는 다시 한번 당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때도 온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5교시가 돼고 부모님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시기 시작했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뒤를 돌아봤죠. 언제 오려나.
10분이 지나고. 조금 늦으려나보다. 20분이 지나고. 많이 늦네. 30분이 지나고. 온다고 했는데... 종이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혼자 울면서 비를 맞으면서 가는데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가 제게 우산을 주셨습니다. 둘이 같이 쓰고 작은 우산을 제게 주더군요. 부모님이 많이 바쁘셔서 못오시는 것 같다고. 난 이런거 기대한 거 아닌데. 친구의 어머니가 우산을 씌어주는 걸 원한 게 아닌데 나도... 엄마랑 같이 우산쓰고 가고 싶은데.
엄마의 가게로 가봤습니다. 잠시 한가했던지 웃으면서 티비를 보고 계시더군요. 엄마의 가게와 제 초등학교는 고작 10분 거리였습니다. 정말... 밉더군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물론 2학년때에도 3학년때에도 일어났던 일입니다.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부탁했었던 제가 병신같네요.
그 뒤로는 성적이 떨어지게 되니까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것도 쪽팔리더군요. 그래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고등학생인데 얼마전에 학부모 총회가 있었거든요. 4교시만 마치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가게에서 중간에 밥을 먹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왜 이리 빨리 왔냐고 묻더군요. 학부모 총회때문에 빨리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왜 말을 안했냐고 뭐라 하더군요. 어차피 올 것도 아닐텐데 왜 말을 하냐고 했습니다. 계속 뭐라 그러더군요. 못가지만 그런건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또 기대하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요. 계속 기대하게 하다가 실망시켰으면 됐지.
2
초등학교 저학년은 저렇게 보냈습니다. 뭐... 사실 저학년만 저렇게 보낸 것은 아니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고 계시고 아침 9시에 나가서 저녁 10시에 들어오십니다. 물론 중간중간 쉬기는 하시구요. 그럼 집에 오빠와 저만 남게 돼는데 저는 오빠가 끔찍하게도 싫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싫습니다. 아마 오빠는 평생 나한테 상처로 남아있을 것 같네요.
초등학교때에는 학교가 빨리 끝납니다. 학원도 끝나고 나면 고작 5~6시 쯤 되는데 그때 당시에 오빠는 저에게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학원을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무서워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들어가기 싫더군요.
시키는 대로 하고도 맨날 머리나 팔 다리를 때리고 뺨 때리는 일도 대수고 돈이나 뺏고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한테는 관심도 안쓰고 하인처럼 부리기만 하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 얼마 전에 오빠 심부름을 가다가 제가 정말 예뻐하며 기르던 개가 죽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었을 때라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째뜬 그 당시 집은 저에게 외롭고 무섭고 두렵기만한 곳이였습니다.
당시에 오빠는 중학생이였는데 항상 부모님이 들어오시기 10분 전에 독서실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항상 공부한 척을 하는거죠.
오빠가 정말 싫었습니다. 당시 복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오빠가 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5~6시에서 9시 50분까지요. 할 일도 없었습니다. 책을 보고 싶어도 어두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멍하니 문이 열리고 오빠가 나가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오빠가 나가면 집에 들어가는 일상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문을 잠그고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밖에는 모기도 많고 벌래도 많아서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용기 내서 오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날 죽도록 맞았습니다.
아빠가 오빠를 때릴 때에 쓰던 야구배트같은 매가 있었는데 그 두꺼운 몽둥이로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였던 제가 700대를 맞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그 떄 당시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네요. 엉덩이의 살가죽이 다 터지고 허벅지도 피멍이 들어서 푸르딩딩했습니다. 어머니가 제 모습을 보면서 울더군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나를 혼자둬서 이렇게 됀 거야. 당시 아빠가 제 모습을 확인하고 도망친 오빠를 죽여버리겠다고 칼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악몽도 여러번 꿨습니다. 그 때 이후로 오빠는 제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부모님은 증오의 대상이 됬네요. 아직까지도.
3
이 일도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생각해보니 저에게 초등학교때의 기억은 좋은 기억이 없네요... 부모님이 안좋은 일을 당하고 온 날이였습니다. 그 때가 겨울방학이였는데 초등학생의 방학숙제는 엄청나죠. 독후감을 써야 됐었는데 쓰기 싫었던 저는 다 썼다고 거짓말을 쳤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건 제가 잘못한 일이네요.
집으로 돌아오시고 독후감을 검사한다고 하셨습니다. 제대로 써졌을 리가 없죠. 엄마가 이런식으로 말도 안듣고 거짓말 칠거면 집을 나가라고 날 내몰았습니다. 그 떄 서슬퍼런 목소리로 나가라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래서 뛰쳐나갔습니다. 그 겨울에 티 한장 입고. 온 가족이 저를 찾아나섰습니다. 숨어서 살펴보는데 엄마의 손에 매가 들려있었습니다. 지금 잡히면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도망쳐봤자죠. 결국 오빠한테 잡혀서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제 짐을 다 싸놓고 계셨습니다.
나가라고. 너 같은 애 필요없다고.
내가 잘못하면 쫒겨나는 구나. 난 이집에서 필요없는 존재구나... 그 당시에 무서워서 울고있던 저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웃고 계셨습니다. 웃기다는 듯이. 7년도 더 된 일인데 왜 어제일만큼 생생할까요...
4
이건 제가 중학교때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을 지낸후로 저는 점점 가족한테 무뚝뚝해졌고 애교도 없어졌습니다. 지금도 엄마가 습관처럼 예기합니다. 남들 하는거에 반만큼만 가족한테 해줘도 황송할거 같다고.
애교도 없고 무뚝뚝하고 공부도 못하는 저와 달리 오빠는 부모님한테 잘 대하고 공부도 잘하더군요. 그런 저를 보면서 엄마가 예기했습니다.
내 두눈을 보면서.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를 걸 그랬어. 그치 XX(나)야?
아직도 제 가슴 깊숙히 박혀있는 말이네요.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를 걸 그랬어. 이런데도 제가 엄마를 싫어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5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상처가 많아서 그런지 정신병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많이 괴로웠습니다. 매일 죽어버릴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초등학교때 이후로 저는 맞는것을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불면증과 그런 병이 오게 된 거라고. 제가 많이 힘들어해서 주저앉아 있으니까 평소의 부모님의 모습을 버리고 잘 일어날 수 있게 옆에서 계속 격려해주고 도와주어야 된다고.
솔직히 이 일로 어느정도 부모님이 변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나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을까. 오빠보다 나를 더 챙겨주지 않을까.
어떤 자식이 부모님의 관심을 받는걸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인데.
제가 중학교 때에는 아니 솔직히 제 평생동안 저보다 나이많은 오빠보다 관심을 많이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립적으로 자라서 이제 오히려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어색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기대했습니다.
병원을 계속 다니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게 됬습니다. 아침에 오랜만에 가족끼리 앉아서 밥을 먹는데 아빠가 뭐라고 하더군요.
니가 이상해서 그딴 병에 걸린거다. 공부도 못하면서 잘하는 게 도대체 뭐냐. 성격이라도 좋으면 말이라도 안한다. 노력도 안하고 대체 왜 살고 있는거냐...
사실 아버지가 굉장한 기분파십니다. 자신의 기분이 안 좋으면 언제나 화풀이 대상은 저였습니다. 중학교 때에 밤 낮이 뒤바뀌어 방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웃는 저더러 엄마랑 싸우셔서 기분이 많이 안좋았었는데 뭐라고 하더군요.
이 ㅆㅂ년이 어디서 지랄이야. ㅆ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빨리 불 끄고 쳐 안자?
너무 놀랐던지 딸꾹질이 나더군요. 15살 소녀한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럴 정도로 기분파이신데 저 소리를 듣고 너무 비참하고 눈물이 나서 방 침대에 누워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엄마는 그저 아빠가 뭐라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밥을 먹으면서.
친구들끼리 같이 논다는 즐거움도 확 가라앉아 버리고 짐을 싸던 캐리어가방마져 미워지더군요. 그래서 그냥 이불을 덮고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니가 이렇게 주저앉아 있으니까 아빠가 뭐라고 하는거다. 솔직히 어느 부모가 딸이 이러고 있는데 뭐라 안 할 수 있냐. 빨리 일어나서 털고 평범한 애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가 정신병원에 다니는 미친년이 된 게 모두 제 탓이더군요. 사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많이 무뎌진 모양이네요...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사살해주더군요. 제 마음속에는 한가지 뿐이였습니다. 빨리 독립하자. 이 집을 떠나자.
6
그 후로 부모님한테 말도 잘 안걸고 제 내숭은 더 심해졌네요. 얼마전에 엄마가 예기하시더군요. 1년간 병원을 다니느라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고 공부도 안했으면서 지금도 그러면 어떻하냐고. 제가 병원을 다닌 일이 시간 낭비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그냥 제가 조금 힘들었던 시기에 당연히 뒤쳐졌던 것인데 그게 시간낭비입니까?
추석때의 일입니다. 알다시피 추석은 시험기간입니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하셔서 점심을 먹고 독서실에 가려고 잡채에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들어오시더니 말하시더군요.
니가 내 자식이라는게 쪽팔리다. 맨날 쳐먹기만 하면서 공부는 안하냐. 어디 나가서 아는척하기도 두렵다. 왜 그딴 식으로 사냐...
아파트에서 층수가 높은 곳에 사는데 아빠 앞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이딴 딸이 없는 게 더 편하면 죽어주겠다고.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두려워서 그렇게는 못했네요. 지금 생각하면 뛰어내리지 못한 게 천추의 한입니다.
7
이번에 아버지에 관한 일화입니다. 제가 오빠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엄마를 죽기보다 싫어 한다면 아버지는 같이 숨쉬기도 싫은 사람입니다. 아버지한테 받은 상처가 오빠나 엄마보다 훨씬 더 많네요...
저희 사촌오빠가 공부를 잘 합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런 사촌 오빠를 오빠나 저보다 더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에게 자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씨뿌려서 나온 존제일겁니다. 아마. 사촌 오빠를 자랑스러워 하시면서 저를 보며 말하더군요.
우리 XX(사촌오빠) 병원 차려줄 거라고. 그럼 저를 그 병원에 가둬버리겠다네요.
항상 함께 사는 제 존제는 일년에 두번 만나는 사촌오빠보다 못하네요.
제가 부모님을 싫어하는 게 이상한겁니까? 제가 잘못된 겁니까? 얼마전에도 엄마가 예기하시네요. 제발 엄마한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라고.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라고. 제가 꼴보기 싫데요. 저는 그러지도 못한 존재입니다. 집이 미치도록 싫습니다. 아직 학생 신분이라는 핑계로 나가지도 못하겠네요. 집에만 들어오면 숨이 막힙니다. 집이... 너무 싫어요.
근데도 제 잘못입니까? 전 부모님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매일 제 앞에서 이혼한다면서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서 저런 엄마는 안되야지. 매일 절 혼자두는 부모님을 두면서 내 아이는 외롭게 자라지 않게 해야지. 공부를 잘해야 얼굴이 이뻐야 성격이 좋아야 사랑을 주는 부모님을 보면서 난 내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해야지...
엄마가 예기하더군요. 넌 정말 부모한테 잔인한 딸이라고. 제가 잔인한겁니까 부모님이 저를 잔인하게 만든 겁니까? 생각이... 너무 많네요.
얼마 전에 진심으로 제 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집이 너무 싫다고. 엄마가 너무 밉다고. 바로 집 나갈거라고. 화나서 한 예기도 아니고 그냥 덤덤하게 제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러냐고. 엄마아빠가 죽으면 후회한다고. 넌 아직도 철이 없다고 하시네요. 아마 지금 제 마음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여전할 것 같은데 말이죠.
정말 제가 부모님의 앞에서 죽어버려야 정신을 차릴까요. 제가 죽더라도 생각을 하기는 할까요. 매번 상상합니다. 제가 부모님의 눈앞에서 죽어버리면 어떨까. 몇 번은 시도도 해봤어요. 정신나간 년 취급을 하더군요.
부모님이 너무 싫습니다......
저는 거이 부모님을 증오합니다. 집만큼 숨막히는 곳도 없고 집만큼 죽고 싶은 곳도 없습니다. 이런 제가 잘못됐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왜 집을 싫어하는 지에 대해서 짤막하게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톡커님들이 보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맞벌이를 하셨습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입니다. 저와 오빠를 위해서 고생하신 거니까요. 어린 시절에 저는 공부를 꾀나 잘하는 편이였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칭찬받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엄마한테 부탁을 드렸습니다.
학부모 참관일에 꼭 와달라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온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만 기다렸지요. 학부모 참관 당일에는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머리도 예쁘게 묶고. 아침에 나갈 때에는 다시 한번 당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때도 온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5교시가 돼고 부모님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시기 시작했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뒤를 돌아봤죠. 언제 오려나.
10분이 지나고. 조금 늦으려나보다.
20분이 지나고. 많이 늦네.
30분이 지나고. 온다고 했는데...
종이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혼자 울면서 비를 맞으면서 가는데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가 제게 우산을 주셨습니다. 둘이 같이 쓰고 작은 우산을 제게 주더군요. 부모님이 많이 바쁘셔서 못오시는 것 같다고. 난 이런거 기대한 거 아닌데. 친구의 어머니가 우산을 씌어주는 걸 원한 게 아닌데 나도... 엄마랑 같이 우산쓰고 가고 싶은데.
엄마의 가게로 가봤습니다. 잠시 한가했던지 웃으면서 티비를 보고 계시더군요. 엄마의 가게와 제 초등학교는 고작 10분 거리였습니다. 정말... 밉더군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물론 2학년때에도 3학년때에도 일어났던 일입니다.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부탁했었던 제가 병신같네요.
그 뒤로는 성적이 떨어지게 되니까 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것도 쪽팔리더군요. 그래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고등학생인데 얼마전에 학부모 총회가 있었거든요. 4교시만 마치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가게에서 중간에 밥을 먹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왜 이리 빨리 왔냐고 묻더군요. 학부모 총회때문에 빨리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왜 말을 안했냐고 뭐라 하더군요. 어차피 올 것도 아닐텐데 왜 말을 하냐고 했습니다. 계속 뭐라 그러더군요. 못가지만 그런건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또 기대하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요. 계속 기대하게 하다가 실망시켰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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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은 저렇게 보냈습니다. 뭐... 사실 저학년만 저렇게 보낸 것은 아니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고 계시고 아침 9시에 나가서 저녁 10시에 들어오십니다. 물론 중간중간 쉬기는 하시구요. 그럼 집에 오빠와 저만 남게 돼는데 저는 오빠가 끔찍하게도 싫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싫습니다. 아마 오빠는 평생 나한테 상처로 남아있을 것 같네요.
초등학교때에는 학교가 빨리 끝납니다. 학원도 끝나고 나면 고작 5~6시 쯤 되는데 그때 당시에 오빠는 저에게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학원을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무서워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들어가기 싫더군요.
시키는 대로 하고도 맨날 머리나 팔 다리를 때리고 뺨 때리는 일도 대수고 돈이나 뺏고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나한테는 관심도 안쓰고 하인처럼 부리기만 하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 얼마 전에 오빠 심부름을 가다가 제가 정말 예뻐하며 기르던 개가 죽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었을 때라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째뜬 그 당시 집은 저에게 외롭고 무섭고 두렵기만한 곳이였습니다.
당시에 오빠는 중학생이였는데 항상 부모님이 들어오시기 10분 전에 독서실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항상 공부한 척을 하는거죠.
오빠가 정말 싫었습니다. 당시 복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오빠가 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5~6시에서 9시 50분까지요. 할 일도 없었습니다. 책을 보고 싶어도 어두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멍하니 문이 열리고 오빠가 나가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오빠가 나가면 집에 들어가는 일상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문을 잠그고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밖에는 모기도 많고 벌래도 많아서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용기 내서 오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날 죽도록 맞았습니다.
아빠가 오빠를 때릴 때에 쓰던 야구배트같은 매가 있었는데 그 두꺼운 몽둥이로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였던 제가 700대를 맞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그 떄 당시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네요. 엉덩이의 살가죽이 다 터지고 허벅지도 피멍이 들어서 푸르딩딩했습니다. 어머니가 제 모습을 보면서 울더군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나를 혼자둬서 이렇게 됀 거야. 당시 아빠가 제 모습을 확인하고 도망친 오빠를 죽여버리겠다고 칼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악몽도 여러번 꿨습니다. 그 때 이후로 오빠는 제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부모님은 증오의 대상이 됬네요. 아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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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도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생각해보니 저에게 초등학교때의 기억은 좋은 기억이 없네요... 부모님이 안좋은 일을 당하고 온 날이였습니다. 그 때가 겨울방학이였는데 초등학생의 방학숙제는 엄청나죠. 독후감을 써야 됐었는데 쓰기 싫었던 저는 다 썼다고 거짓말을 쳤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건 제가 잘못한 일이네요.
집으로 돌아오시고 독후감을 검사한다고 하셨습니다. 제대로 써졌을 리가 없죠. 엄마가 이런식으로 말도 안듣고 거짓말 칠거면 집을 나가라고 날 내몰았습니다. 그 떄 서슬퍼런 목소리로 나가라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래서 뛰쳐나갔습니다. 그 겨울에 티 한장 입고. 온 가족이 저를 찾아나섰습니다. 숨어서 살펴보는데 엄마의 손에 매가 들려있었습니다. 지금 잡히면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도망쳐봤자죠. 결국 오빠한테 잡혀서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제 짐을 다 싸놓고 계셨습니다.
나가라고. 너 같은 애 필요없다고.
내가 잘못하면 쫒겨나는 구나. 난 이집에서 필요없는 존재구나... 그 당시에 무서워서 울고있던 저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웃고 계셨습니다. 웃기다는 듯이. 7년도 더 된 일인데 왜 어제일만큼 생생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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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중학교때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을 지낸후로 저는 점점 가족한테 무뚝뚝해졌고 애교도 없어졌습니다. 지금도 엄마가 습관처럼 예기합니다. 남들 하는거에 반만큼만 가족한테 해줘도 황송할거 같다고.
애교도 없고 무뚝뚝하고 공부도 못하는 저와 달리 오빠는 부모님한테 잘 대하고 공부도 잘하더군요. 그런 저를 보면서 엄마가 예기했습니다.
내 두눈을 보면서.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를 걸 그랬어. 그치 XX(나)야?
아직도 제 가슴 깊숙히 박혀있는 말이네요.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를 걸 그랬어. 이런데도 제가 엄마를 싫어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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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상처가 많아서 그런지 정신병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많이 괴로웠습니다. 매일 죽어버릴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초등학교때 이후로 저는 맞는것을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불면증과 그런 병이 오게 된 거라고. 제가 많이 힘들어해서 주저앉아 있으니까 평소의 부모님의 모습을 버리고 잘 일어날 수 있게 옆에서 계속 격려해주고 도와주어야 된다고.
솔직히 이 일로 어느정도 부모님이 변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나한테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을까. 오빠보다 나를 더 챙겨주지 않을까.
어떤 자식이 부모님의 관심을 받는걸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인데.
제가 중학교 때에는 아니 솔직히 제 평생동안 저보다 나이많은 오빠보다 관심을 많이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립적으로 자라서 이제 오히려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어색하게 되더군요. 그래도 기대했습니다.
병원을 계속 다니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게 됬습니다. 아침에 오랜만에 가족끼리 앉아서 밥을 먹는데 아빠가 뭐라고 하더군요.
니가 이상해서 그딴 병에 걸린거다.
공부도 못하면서 잘하는 게 도대체 뭐냐.
성격이라도 좋으면 말이라도 안한다.
노력도 안하고 대체 왜 살고 있는거냐...
사실 아버지가 굉장한 기분파십니다. 자신의 기분이 안 좋으면 언제나 화풀이 대상은 저였습니다. 중학교 때에 밤 낮이 뒤바뀌어 방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웃는 저더러 엄마랑 싸우셔서 기분이 많이 안좋았었는데 뭐라고 하더군요.
이 ㅆㅂ년이 어디서 지랄이야.
ㅆ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빨리 불 끄고 쳐 안자?
너무 놀랐던지 딸꾹질이 나더군요. 15살 소녀한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럴 정도로 기분파이신데 저 소리를 듣고 너무 비참하고 눈물이 나서 방 침대에 누워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엄마는 그저 아빠가 뭐라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밥을 먹으면서.
친구들끼리 같이 논다는 즐거움도 확 가라앉아 버리고 짐을 싸던 캐리어가방마져 미워지더군요. 그래서 그냥 이불을 덮고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니가 이렇게 주저앉아 있으니까 아빠가 뭐라고 하는거다.
솔직히 어느 부모가 딸이 이러고 있는데 뭐라 안 할 수 있냐.
빨리 일어나서 털고 평범한 애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제가 정신병원에 다니는 미친년이 된 게 모두 제 탓이더군요. 사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많이 무뎌진 모양이네요...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사살해주더군요. 제 마음속에는 한가지 뿐이였습니다. 빨리 독립하자. 이 집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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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부모님한테 말도 잘 안걸고 제 내숭은 더 심해졌네요. 얼마전에 엄마가 예기하시더군요. 1년간 병원을 다니느라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고 공부도 안했으면서 지금도 그러면 어떻하냐고. 제가 병원을 다닌 일이 시간 낭비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그냥 제가 조금 힘들었던 시기에 당연히 뒤쳐졌던 것인데 그게 시간낭비입니까?
추석때의 일입니다. 알다시피 추석은 시험기간입니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하셔서 점심을 먹고 독서실에 가려고 잡채에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들어오시더니 말하시더군요.
니가 내 자식이라는게 쪽팔리다.
맨날 쳐먹기만 하면서 공부는 안하냐.
어디 나가서 아는척하기도 두렵다.
왜 그딴 식으로 사냐...
아파트에서 층수가 높은 곳에 사는데 아빠 앞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이딴 딸이 없는 게 더 편하면 죽어주겠다고.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두려워서 그렇게는 못했네요. 지금 생각하면 뛰어내리지 못한 게 천추의 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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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버지에 관한 일화입니다. 제가 오빠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엄마를 죽기보다 싫어 한다면 아버지는 같이 숨쉬기도 싫은 사람입니다. 아버지한테 받은 상처가 오빠나 엄마보다 훨씬 더 많네요...
저희 사촌오빠가 공부를 잘 합니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런 사촌 오빠를 오빠나 저보다 더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에게 자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씨뿌려서 나온 존제일겁니다. 아마. 사촌 오빠를 자랑스러워 하시면서 저를 보며 말하더군요.
우리 XX(사촌오빠) 병원 차려줄 거라고. 그럼 저를 그 병원에 가둬버리겠다네요.
항상 함께 사는 제 존제는 일년에 두번 만나는 사촌오빠보다 못하네요.
제가 부모님을 싫어하는 게 이상한겁니까? 제가 잘못된 겁니까? 얼마전에도 엄마가 예기하시네요. 제발 엄마한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라고.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라고. 제가 꼴보기 싫데요. 저는 그러지도 못한 존재입니다. 집이 미치도록 싫습니다. 아직 학생 신분이라는 핑계로 나가지도 못하겠네요. 집에만 들어오면 숨이 막힙니다. 집이... 너무 싫어요.
근데도 제 잘못입니까? 전 부모님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매일 제 앞에서 이혼한다면서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서 저런 엄마는 안되야지. 매일 절 혼자두는 부모님을 두면서 내 아이는 외롭게 자라지 않게 해야지. 공부를 잘해야 얼굴이 이뻐야 성격이 좋아야 사랑을 주는 부모님을 보면서 난 내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해야지...
엄마가 예기하더군요. 넌 정말 부모한테 잔인한 딸이라고.
제가 잔인한겁니까 부모님이 저를 잔인하게 만든 겁니까? 생각이... 너무 많네요.
얼마 전에 진심으로 제 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집이 너무 싫다고. 엄마가 너무 밉다고. 바로 집 나갈거라고. 화나서 한 예기도 아니고 그냥 덤덤하게 제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러냐고. 엄마아빠가 죽으면 후회한다고. 넌 아직도 철이 없다고 하시네요. 아마 지금 제 마음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여전할 것 같은데 말이죠.
정말 제가 부모님의 앞에서 죽어버려야 정신을 차릴까요. 제가 죽더라도 생각을 하기는 할까요. 매번 상상합니다. 제가 부모님의 눈앞에서 죽어버리면 어떨까. 몇 번은 시도도 해봤어요. 정신나간 년 취급을 하더군요.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