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화 보기 : 루마니아 여행기 (1) 여행을 결심하다.루마니아 여행기 (2) 여행을 준비하다!루마니아 여행기 (3) 루마니아 가는 길루마니아 여행기 (4) 부카레스트에서의 첫 날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루마니아 여행기 (6) 안드레아를 만나다루마니아 여행기 (7) 고마워요, 안드레아!루마니아 여행기 (8) 바이아 마레, 뜻밖의 인연루마니아 여행기 (9) 시게투에서의 내 마음루마니아 여행기 (10) 시게투에서는 히치하이킹이 개념!루마니아 여행기 (11) 안녕, 시게투. 모두 안녕. ---------------------------------------------------------- 우선 다시 시게투에 돌아왔지만 당장 어디부터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어제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니까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은 박물관들도 많던데 그곳부터 천천히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간 곳은 Casa Mihalyi de Apsa. 사실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Muzeu (박물관) 이라는 글자만 보고 들어갔었다. 딱히 어딜 가야할지 정하기 귀찮아서 그런건 아니야... 하지만 막상 표지판을 따라서 골목에 들어가니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르겠다! 건물은 마치 단층 빌라 복도처럼 생겨서 누가 봐도 박물관 같지 않은 모습! 아무렇게 쌓인 장작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너무 이상하다 싶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지하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뜻밖의 손님이라는 눈치로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난 “Muzeu?" 라고 물었고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무작정 간판을 보고 따라간 미하이(Mihalyi) 박물관 시게투에는 미하이 (Mihalyi)의 이름으로 된 학교도 있다http://www.scoalamihalyi.ro/ 에 가면 학생들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사실 미하이 (Mihalyi)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쉽지는 않았다. Dr.Ioan Mihalyi 라고 불리는 그는, 시게투 마르마찌에 출신 학자인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이름을 한 학교도 남아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는 박물관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시관에 가까웠다. Mialyi의 생가를 그대로 보존하여서 그 시대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날 인도해준 관리인 아저씨도 맘껏 둘러보라는 듯 손짓 하고는 다시 내려갔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은 그 숨결이 그대로 묻어난다 같은 지구 위에서 같은 시간의 법칙 속을 살아갔을 나와 같은 사람들 루마니아뿐 아니라 애초에 살면서 서양의 역사 한 복판에 서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곳에서 느껴지는 진한 먼지 냄새에도 숨이 멎을 듯 했다. 가구 하나 하나, 벽지 하나 하나에도 이 곳을 스쳐지나간 그 흔적이 느껴져왔다. 이분법적으로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사실 난 서양식 판타지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보다 만화 3x3 eyes 같은 내용이 더 좋다. 기본적인 성향의 차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서양 여자’ 보다는 ‘동양 여자’를 많이 보고 자란 탓이기도 하겠다. 나의 만화책들...나를 욕하는건 참을 수 있지만 나의 취향을 욕하는 건 못 참아!!! 하지만 이 곳에 와서 서양 사람들의 예전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습을 보니 내가 서양식 상상력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에 좋아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였을까?’ 란 호기심을 유발하기 충분했다.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남녀가 마주 앉아서 투박하지만 황홀한 맛의 음식을 먹으며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으며 어떤 소설을 읽으며 어떤 눈물을 흘렸으며 함께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상상력도 훈련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경험해야 한다. 우리와 다른 사회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사랑 받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 이런 경험은 너무 값질 수밖에! 오우, 예~앞으로는 동양 여자 말고 서양 여자도 많이 보겠습니다.. 크지 않은 박물관이었기 때문에 방 몇 개를 구경하고 나니 로비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느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관리인 아저씨에게 감사하게 잘 봤다며 인사를 하고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박물관이 있다는 가이드북의 설명을 따라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 다음은 민속 박물관! 바이아 마레에서 가지 못 한 민속촌이 아닌 그냥 민속박물관. 온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눅눅해진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옮겨나가며 금방 도착했다. 입장료는 4레이! (약 1,600원) 하지만 아침에 잔돈을 바꿨음에도 5레이짜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10레이를 내는 것이 그다지 번거로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매표소 직원이 당황하다가 이내 묘안을 찾았다는 듯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직원 : 학생이에요? (Are you a student?) 용석 : 네! 근데 국제 학생증 없는데요... 루마니아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학생이란 신분은 저렴한 요금 혜택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학생 신분을 증명하려면 여행 오기 전에 국제 학생증을 발급 받았어야 하는데 그런게 있을리 없는 나는 그냥 어디를 가든 그냥 일반 요금을 내고 관람을 해왔었다. 직원 : 괜찮으니까 학생 요금인 2레이 (약 800원)만 내요! 용석 : 헐.. 감사합니다. 마침 5레이짜리는 없었어도 1레이짜리 두 장을 갖고 있던 내게는 좋은 제안이었다. 뒤늦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처음에 당황한 모습이나 그냥 할인해준 것을 보면 잔돈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해준 것 같다. 내가 다른 데 가서 바꿔 와도 괜찮은데... 이런식의 세일만 아니라면!! 애초에 시게투 마르마찌에에 관광을 오는 사람 - 더욱이 동양인은 흔하지는 않을 텐데 성수기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기에 여기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박물관도 내가 입장하고 나니까 부랴부랴 전시실 조명을 하나 둘씩 켜주기 시작한다.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과 동시에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보랴! 라는 마음으로 관람을 즐겼다. 민속 박물관답게 루마니아나 시게투의 역사보다는 옛 사람들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농기구들부터 시작해서 그릇, 옷까지... 소박한 그 흔적에 내 맘도 소탈해지는 것 같았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라면 호전적인 무기의 모습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생활과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하는 게 목적이라면 무기가 배치될 이유는 없었겠지만 삶을 가꾸고 일구는 번영으로 이해하고 전쟁과 핍박으로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탓 아닐까? 평화롭고 조용하게 이 땅 위에서 수 천년동안 살아왔을 사람들을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평화롭고 한적해 보이는 소박한 물품들.이 땅 위에서 전쟁과 폭력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슬슬 거리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박물관만 연달아 가다보니 조금 지루한 감도 생긴다. 많을 곳을 가고 많은 것을 보려고 하는 여행은 아니지만 어느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자꾸만 한 곳만 더 가보자, 여기까지만 가자는 미련이 스물 스물 스며들기 시작해온다. 날들을 헤아려보니 어느새 지내온 날보다 남은 날이 짧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부터였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보기로 했다. 근처에 자연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솔깃해졌다. 역사박물관, 민속박물관이야 어떤 게 있을지 이제는 눈에 선하지만 자연 박물관이라니! 지도를 따라서 조심스레 들어간 건물은 박물관보다는 사무실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다. 이 시즌에 관광객이라니! 라는 표정으로 놀라며 벌떡 일어나는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남자 : (악수를 청하며) 어서오세요, 관람하러 오셨나요? 용석 :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아, 네. 지금 구경할 수 있나요? 남자 : (호탕하게 웃으며)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이 남자도 자리에서 열쇠 꾸러미를 갖고 온다. 아까와 같은 경우인 모양이다. 사무실 안에는 세 명이 더 일을 하고 있었고 사무실 구석에는 한 꼬마 아이도 있었다. 부모님 따라 일터에 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닌지 자연스럽게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보다 많은 학생들이 좀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 남자는 열쇠를 든 채 나에게 다가와 함께 가자면서 나를 전시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 박물관의 유래부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 솜씨에 주눅 들었지만 어느새 나도 루마니아식 영어에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루마니아의 생태계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조류부터 시작해서 네발 달린 짐승들까지. 다양한 박제들로 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늑대털을 직접 만져보기도, ‘이 동물 한국에도 있나요?’ 라고 물으며 서로를 알아나갔다. 루마니아 생태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연 박물관 안내를 해주던 그 남자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도 살면서 루마니아 사람 하나 못 만나볼 수도 있듯 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다가 꿩 박제 앞에 멈춰 서서는 마침 재밌는 게 떠올랐다는 듯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남자 : 한국은 시베리아 근처에 있지요? 아마 이 꿩은 한국 근처에서 왔을 거에요. 용석 : 정말 이건 한국에서 본 꿩이랑 똑같이 생겼네요! 남자 : 정확히 시베리아를 거쳐서 어떻게 루마니아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루마니아에서 살고 있다는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겠지요. 마치 당신이 시베리아를 거쳐서 이 곳 루마니아에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곳 역시 몇 개 안 되는 방으로 이뤄져있었지만 그 남자가 하나하나 설명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꽤 오래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친절함 때문에 더 값진 것을 얻었지만! 남자는 설명을 마치고 입장료는 받지 않으나 소정의 기부금은 받는다며 상자를 가리켰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박물관 관리인 중에서 가장 친절하고 너무 고마웠던 분이셨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정도면 입장료를 받아도 이상할 게 전혀 없기도 했을 것이고... 보통 입장료쯤 되는 5레이를 (약 2,000원) 쾌척해도 무언가 더 해주고 싶은 맘이 들었다. 2006년에 어머니랑 네팔을 갔었는데, 그곳에서도 이런 마음씨를 지닌 관리인을 만났었다. 너무나 친절히 안내해주고 멋있게 사진도 찍어주고 입장료 대신 기부금만 받겠다는 말에 기부금은 기부금대로, 또 감사의 마음에 시원한 음료수를 사서 건네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경험이 어렴풋이 떠올라서 이 아저씨에게 무언가 더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근래 자주 내 꿈에 아른거리는 2006년 네팔의 한 마을 그때 마침 항상 가방에 넣어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가 떠올랐다. 한국을 알고 있고, 또 그런 나를 자신의 땅에 살고 있는 생물과 연관시켜준 그에게 하나!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부모님 책상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꼬마에게도 하나! 나의 작은 성의에 두 사람 모두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한 사람은 이미 어린아이었지만. 거리가 이미 많이 어두워지기도 했고,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는 조금 무리한 것 같았다. 얼른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숙소로 향했다, 물론 맥주를 사는 것은 잊지 않고... 그리고 그 날은 쓰러져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기장에 아무 것도 안 적혀 있으니! 하루의 마무리는 언제나! 그렇게 곤하게 자고 있는데 밤 10시! 어디서인가 익숙하지 않은 전화벨소리가 들린다. 몽롱한 정신을 간신히 추스르며 벨소리를 들으니 승완이가 빌려준 휴대폰 벨소리였다. 수신자를 보니, 앗! 다음 여행지인 클루즈 나포카에서 만나기로 한 안드레이 전화였다! 무슨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통화를 했다. 안드레이의 용건은, 내가 다음날인 14일 밤에 클루즈 나포카에 도착한다고 했었는데 예정대로 잘 도착하는 것인지, 또 정확히 몇 시에 오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한다. 아, 벌써부터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친절함! 벌써부터 보고 싶어진다. 예정대로 14일 밤 10시에 클루즈 나포카에 도착하며, 출발 전에 또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 후 만나게 될 21살의 여대생 안드레이에 대한 소개와 그녀와의 이야기는 다음화에! 유쾌한 루마니아 소녀Andreea Necsulescu 늘어지게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에도 아침 7시. 역시 슬슬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듯!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계속 타이르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바이아 마레에서 가려다가 못 간 민속촌을 꼭 가야지! 기회는 바로 오늘뿐이다! 때마침 어제 바이아 마레의 안드레아로부터 문자가 왔었다, 여행은 잘 하고 있느냐면서. 그래서 나는 ‘내일은 꼭 민속촌에 가고 말거에요!’ 라고 답했으니 그 책임을 다해야겠지? 정확한 교통편도 모르지만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나에게는 히치하이킹이 있었기에. 출발하기 전, 그래도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지도를 보면서 체크해두었다. 그리고 저번처럼 일껏 갔는데 오픈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미리 전화를 해봤는데... 받지 않는다...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인 거지? 그런 거지? 오빠가 뭐 그리 잘 못 한거니..전화 좀 받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이 곳이 아니면 더 이상 루마니아 민속촌은 구경하기 힘들다! 모가 되든 도가 되든 일단 가야하지 않겠는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전화를 안 받는 거면 조금 천천히 가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긔~♩♪(카라의 정상 복귀를 기원합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고 예상과 달리 엄청 멀 수도 있다. 하지만 어그 부츠에서 벗어난 뒤로는 나를 방해하는 녀석이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걷는다, 걷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여행에서 히치하이킹의 이점이란 적은 돈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시간에 좇기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딱히 길을 몰라서 그러는 것은 맞지만, 아무튼 이번에는 좀 걸어가고 싶었다. 덕분에 길 고양이도 만날 수 있었고... 돈도 주웠다!5바니 (0.05레이, 즉 4원) 어디 가느냐고, 태워주겠다고 손짓까지 해주신 아저씨 중간에 도저히 감이 안 와서 때마침 보이는 여관에 들어가 물으니 근처라고 했다. 그리하여 약 1시간 정도 걸어서 마침내 도착한 시게투 마르마찌에의 작은 민속촌. 비록 바이아 마레의 있는 민속촌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다고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이 곳 역시 관광객은 나뿐인 것 같았다. 어디서나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가! 그렇게 우쭐거리며 민속촌을 어슬렁거리니 멀리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신다. 관리인인 것 같아서 정중하게 인사하고 입장료 4레이를 (약 1,600원) 지불하였다. 예전 형태의 건물들로 가득 찬 민속촌.몇몇 집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일상적인 물품들로 채워진 집 내부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데 필요한 기구들도 볼 수 있다 아무리 바이아 마레보다는 규모가 작다고 하지만전부를 둘러보기에 버거울 정도로 하나의 마을이었다. 그렇게 민속촌 구경을 마치고 나니 아침을 굶어서인지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민속촌 근처에 무슨 식당이라고 있었으면 좋았을련만 아쉽게도 그런게 보이지 않아서 얼른 시게투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당당하게 또 한번 히치하이킹에 도전! 시게투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간다는 운전수는 처음부터 2레이 (약 800원)을 요구했다. 처음부터 가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긴 했지만 언짢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도 시간과 기름이 남아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이런 요구쯤은 당연한 거겠지. 히치하이킹 경험치가 5 상승하였다!이제는 서슴치 않고 히치하이킹을 즐긴다! 어디서 밥 먹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시게투에서의 마지막 식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오후 4시 기차로 클루즈 나포카에 가는 것이니 식사뿐만 아니라 모든게 마지막. 우선 급한대로 첫날 만난 조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호를 받아두길 천만 다행이지. 용석 : 조르지, 안녕? 나 용석이야. 기억하지? 조르지 : 물론이지, 친구! 뭐해? 아직 시게투에 있는 거지? 용석 : 응, 근데 오늘 4시에 클루즈 나포카로 떠나? 조르지 : (놀라며) 뭐? 근데 왜 그걸 지금 말해? 너 지금 어디야? 용석 : 민속촌 갔다가 지금 막 시게투 시내에 도착했어. 조르지 : 그래? 그럼 바로 David's pub으로 와. 나 거기 있어. 조르지 이 친구는 아무래도 하루종일 David's pub에서 죽을 치고 사는 모양이다. 어쨌든 마치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기 때문인지 떠나기 전 든든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David's pub으로 향했다. 올리브가 잔뜩 들어간 피자! 가격은 10레이 (약 4,000원)이 맛있는 것을 조르지와 함께 나눠먹지...는 않고 내가 다 먹었다!!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조르지와 그 친구들 조르지와 마지막으로 놀 수 있는 기회였기에 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서른살이었지만 영국에서 공부 중인 학생이라고 한다. 무얼 배운다고 했더라? 지금은 방학을 맞아서 고향인 시게투에 놀러왔지만 조만간 다시 영국으로 간다고 했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나의 다음 목적지인 클루즈 나포카에서 탄다고는 하였으나 아쉽게도 내가 클루즈 나포카에 오래 머물지 않아서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이 되었다. 조르지는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일까? 그냥 발이 넓은 것뿐일까? 조르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어떤 분이 적선을 부탁하셨다.흔쾌히 1레이 (약 400원) 드리니 이 카드를 선물로 주셨다. 용석 : 조르지, 여행 첫날부터 너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조르지 : 나도 이런 곳에 너같은 동양인이 오는 건 처음 봤어. 솔직히 놀랐어. 용석 : (조르지 친구들을 보며) 다른 친구들하고도 친해졌으면 더 재밌었을텐데... 조르지 : (웃으며) 이 새끼들은 영어 못 해 ㅋㅋㅋ 그리고 다 쓰레기야 ㅋㅋㅋ 용석 : (같이 웃으며) 왜 ㅋㅋㅋㅋ 그래도 네 친구들이잖아 ㅋㅋㅋ 조르지 : (조롱하듯) 지금도 이 새끼들, 여자 못 꼬셔서 안달이잖아 ㅋㅋ 사실 조르지 친구들은 나와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는 계속 창밖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여자가 지나가면 창문을 두드리며 추파를 던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관심을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당장 뛰쳐나가 얘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받기도 했다. 여자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수컷들의 모습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저 남자들이란...그래도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조르지는 나와 얘기를 하다가 친구들과 얘기하기도 하고... 사람을 참 좋아하는구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느새 맥주를 한 병, 두 병, 세 병째 비워내고 있었고 조르지는 날 보면서 괜찮냐며 걱정해준다. 마시는건 괜찮은데 떠나야하는건 안 괜찮아. 이제는 3일도 너무 짧은 것 같다. 너무나 쉽고 빠르게 루마니아에 정이 들고 만다.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정 많은 사람들과 정이 들었는데 정답게 떠나지 못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처량해보였다. 모두 다 보고 싶을 것이다.조르지도, 그 친구들도, 이 거리도 모두... 모두가 웃고 떠들고 있는 술집 속에서, 그렇게 즐거워하는 나의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이제 떠나야하는 여행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안녕, 시게투 마르마찌에. 안녕, 조르지. 안녕, 사푼차. 난 이제 클루즈 나포카로 떠나.
루마니아 여행기 (11) 안녕, 시게투.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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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여행기 (1) 여행을 결심하다.루마니아 여행기 (2) 여행을 준비하다!루마니아 여행기 (3) 루마니아 가는 길루마니아 여행기 (4) 부카레스트에서의 첫 날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루마니아 여행기 (6) 안드레아를 만나다루마니아 여행기 (7) 고마워요, 안드레아!루마니아 여행기 (8) 바이아 마레, 뜻밖의 인연루마니아 여행기 (9) 시게투에서의 내 마음루마니아 여행기 (10) 시게투에서는 히치하이킹이 개념!루마니아 여행기 (11) 안녕, 시게투.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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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다시 시게투에 돌아왔지만 당장 어디부터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어제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니까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은 박물관들도 많던데 그곳부터 천천히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에 처음 간 곳은 Casa Mihalyi de Apsa. 사실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Muzeu (박물관) 이라는 글자만 보고 들어갔었다.
하지만 막상 표지판을 따라서 골목에 들어가니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르겠다! 건물은 마치 단층 빌라 복도처럼 생겨서 누가 봐도 박물관 같지 않은 모습! 아무렇게 쌓인 장작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너무 이상하다 싶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지하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뜻밖의 손님이라는 눈치로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난 “Muzeu?" 라고 물었고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사실 미하이 (Mihalyi)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쉽지는 않았다. Dr.Ioan Mihalyi 라고 불리는 그는, 시게투 마르마찌에 출신 학자인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이름을 한 학교도 남아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는 박물관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시관에 가까웠다. Mialyi의 생가를 그대로 보존하여서 그 시대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날 인도해준 관리인 아저씨도 맘껏 둘러보라는 듯 손짓 하고는 다시 내려갔다.
루마니아뿐 아니라 애초에 살면서 서양의 역사 한 복판에 서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곳에서 느껴지는 진한 먼지 냄새에도 숨이 멎을 듯 했다. 가구 하나 하나, 벽지 하나 하나에도 이 곳을 스쳐지나간 그 흔적이 느껴져왔다.
이분법적으로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사실 난 서양식 판타지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보다 만화 3x3 eyes 같은 내용이 더 좋다. 기본적인 성향의 차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서양 여자’ 보다는 ‘동양 여자’를 많이 보고 자란 탓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이 곳에 와서 서양 사람들의 예전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모습을 보니 내가 서양식 상상력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에 좋아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였을까?’ 란 호기심을 유발하기 충분했다.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남녀가 마주 앉아서 투박하지만 황홀한 맛의 음식을 먹으며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으며 어떤 소설을 읽으며 어떤 눈물을 흘렸으며 함께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 마치 내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상상력도 훈련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경험해야 한다. 우리와 다른 사회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사랑 받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 이런 경험은 너무 값질 수밖에!
크지 않은 박물관이었기 때문에 방 몇 개를 구경하고 나니 로비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느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관리인 아저씨에게 감사하게 잘 봤다며 인사를 하고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박물관이 있다는 가이드북의 설명을 따라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 다음은 민속 박물관! 바이아 마레에서 가지 못 한 민속촌이 아닌 그냥 민속박물관. 온종일 내리는 비 때문에 눅눅해진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옮겨나가며 금방 도착했다. 입장료는 4레이! (약 1,600원) 하지만 아침에 잔돈을 바꿨음에도 5레이짜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10레이를 내는 것이 그다지 번거로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매표소 직원이 당황하다가 이내 묘안을 찾았다는 듯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직원 : 학생이에요? (Are you a student?) 용석 : 네! 근데 국제 학생증 없는데요...
루마니아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학생이란 신분은 저렴한 요금 혜택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학생 신분을 증명하려면 여행 오기 전에 국제 학생증을 발급 받았어야 하는데 그런게 있을리 없는 나는 그냥 어디를 가든 그냥 일반 요금을 내고 관람을 해왔었다.
직원 : 괜찮으니까 학생 요금인 2레이 (약 800원)만 내요! 용석 : 헐.. 감사합니다.
마침 5레이짜리는 없었어도 1레이짜리 두 장을 갖고 있던 내게는 좋은 제안이었다. 뒤늦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처음에 당황한 모습이나 그냥 할인해준 것을 보면 잔돈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해준 것 같다. 내가 다른 데 가서 바꿔 와도 괜찮은데...
애초에 시게투 마르마찌에에 관광을 오는 사람 - 더욱이 동양인은 흔하지는 않을 텐데 성수기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기에 여기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박물관도 내가 입장하고 나니까 부랴부랴 전시실 조명을 하나 둘씩 켜주기 시작한다.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과 동시에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보랴! 라는 마음으로 관람을 즐겼다.
민속 박물관답게 루마니아나 시게투의 역사보다는 옛 사람들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농기구들부터 시작해서 그릇, 옷까지... 소박한 그 흔적에 내 맘도 소탈해지는 것 같았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라면 호전적인 무기의 모습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생활과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하는 게 목적이라면 무기가 배치될 이유는 없었겠지만 삶을 가꾸고 일구는 번영으로 이해하고 전쟁과 핍박으로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탓 아닐까?
슬슬 거리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박물관만 연달아 가다보니 조금 지루한 감도 생긴다. 많을 곳을 가고 많은 것을 보려고 하는 여행은 아니지만 어느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자꾸만 한 곳만 더 가보자, 여기까지만 가자는 미련이 스물 스물 스며들기 시작해온다. 날들을 헤아려보니 어느새 지내온 날보다 남은 날이 짧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부터였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보기로 했다. 근처에 자연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솔깃해졌다. 역사박물관, 민속박물관이야 어떤 게 있을지 이제는 눈에 선하지만 자연 박물관이라니! 지도를 따라서 조심스레 들어간 건물은 박물관보다는 사무실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웠다.
이 시즌에 관광객이라니! 라는 표정으로 놀라며 벌떡 일어나는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남자 : (악수를 청하며) 어서오세요, 관람하러 오셨나요? 용석 :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아, 네. 지금 구경할 수 있나요? 남자 : (호탕하게 웃으며)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이 남자도 자리에서 열쇠 꾸러미를 갖고 온다. 아까와 같은 경우인 모양이다. 사무실 안에는 세 명이 더 일을 하고 있었고 사무실 구석에는 한 꼬마 아이도 있었다. 부모님 따라 일터에 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닌지 자연스럽게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 남자는 열쇠를 든 채 나에게 다가와 함께 가자면서 나를 전시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 박물관의 유래부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 솜씨에 주눅 들었지만 어느새 나도 루마니아식 영어에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루마니아의 생태계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조류부터 시작해서 네발 달린 짐승들까지. 다양한 박제들로 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늑대털을 직접 만져보기도, ‘이 동물 한국에도 있나요?’ 라고 물으며 서로를 알아나갔다.
안내를 해주던 그 남자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도 살면서 루마니아 사람 하나 못 만나볼 수도 있듯 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다가 꿩 박제 앞에 멈춰 서서는 마침 재밌는 게 떠올랐다는 듯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남자 : 한국은 시베리아 근처에 있지요? 아마 이 꿩은 한국 근처에서 왔을 거에요. 용석 : 정말 이건 한국에서 본 꿩이랑 똑같이 생겼네요! 남자 : 정확히 시베리아를 거쳐서 어떻게 루마니아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루마니아에서 살고 있다는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겠지요. 마치 당신이 시베리아를 거쳐서 이 곳 루마니아에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곳 역시 몇 개 안 되는 방으로 이뤄져있었지만 그 남자가 하나하나 설명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꽤 오래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친절함 때문에 더 값진 것을 얻었지만! 남자는 설명을 마치고 입장료는 받지 않으나 소정의 기부금은 받는다며 상자를 가리켰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박물관 관리인 중에서 가장 친절하고 너무 고마웠던 분이셨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정도면 입장료를 받아도 이상할 게 전혀 없기도 했을 것이고... 보통 입장료쯤 되는 5레이를 (약 2,000원) 쾌척해도 무언가 더 해주고 싶은 맘이 들었다.
2006년에 어머니랑 네팔을 갔었는데, 그곳에서도 이런 마음씨를 지닌 관리인을 만났었다. 너무나 친절히 안내해주고 멋있게 사진도 찍어주고 입장료 대신 기부금만 받겠다는 말에 기부금은 기부금대로, 또 감사의 마음에 시원한 음료수를 사서 건네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경험이 어렴풋이 떠올라서 이 아저씨에게 무언가 더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항상 가방에 넣어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가 떠올랐다. 한국을 알고 있고, 또 그런 나를 자신의 땅에 살고 있는 생물과 연관시켜준 그에게 하나!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부모님 책상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꼬마에게도 하나! 나의 작은 성의에 두 사람 모두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한 사람은 이미 어린아이었지만.
거리가 이미 많이 어두워지기도 했고,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는 조금 무리한 것 같았다. 얼른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숙소로 향했다, 물론 맥주를 사는 것은 잊지 않고... 그리고 그 날은 쓰러져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기장에 아무 것도 안 적혀 있으니!
그렇게 곤하게 자고 있는데 밤 10시! 어디서인가 익숙하지 않은 전화벨소리가 들린다. 몽롱한 정신을 간신히 추스르며 벨소리를 들으니 승완이가 빌려준 휴대폰 벨소리였다. 수신자를 보니, 앗! 다음 여행지인 클루즈 나포카에서 만나기로 한 안드레이 전화였다!
무슨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통화를 했다. 안드레이의 용건은, 내가 다음날인 14일 밤에 클루즈 나포카에 도착한다고 했었는데 예정대로 잘 도착하는 것인지, 또 정확히 몇 시에 오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한다.
아, 벌써부터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친절함! 벌써부터 보고 싶어진다. 예정대로 14일 밤 10시에 클루즈 나포카에 도착하며, 출발 전에 또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 후 만나게 될 21살의 여대생 안드레이에 대한 소개와 그녀와의 이야기는 다음화에!
늘어지게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에도 아침 7시. 역시 슬슬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듯! 조바심을 내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계속 타이르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바이아 마레에서 가려다가 못 간 민속촌을 꼭 가야지! 기회는 바로 오늘뿐이다!
때마침 어제 바이아 마레의 안드레아로부터 문자가 왔었다, 여행은 잘 하고 있느냐면서. 그래서 나는 ‘내일은 꼭 민속촌에 가고 말거에요!’ 라고 답했으니 그 책임을 다해야겠지? 정확한 교통편도 모르지만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나에게는 히치하이킹이 있었기에.
출발하기 전, 그래도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지도를 보면서 체크해두었다. 그리고 저번처럼 일껏 갔는데 오픈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미리 전화를 해봤는데... 받지 않는다...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인 거지? 그런 거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이 곳이 아니면 더 이상 루마니아 민속촌은 구경하기 힘들다! 모가 되든 도가 되든 일단 가야하지 않겠는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전화를 안 받는 거면 조금 천천히 가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고 예상과 달리 엄청 멀 수도 있다. 하지만 어그 부츠에서 벗어난 뒤로는 나를 방해하는 녀석이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걷는다, 걷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여행에서 히치하이킹의 이점이란 적은 돈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시간에 좇기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딱히 길을 몰라서 그러는 것은 맞지만, 아무튼 이번에는 좀 걸어가고 싶었다.
중간에 도저히 감이 안 와서 때마침 보이는 여관에 들어가 물으니 근처라고 했다. 그리하여 약 1시간 정도 걸어서 마침내 도착한 시게투 마르마찌에의 작은 민속촌. 비록 바이아 마레의 있는 민속촌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다고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이 곳 역시 관광객은 나뿐인 것 같았다. 어디서나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가! 그렇게 우쭐거리며 민속촌을 어슬렁거리니 멀리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신다. 관리인인 것 같아서 정중하게 인사하고 입장료 4레이를 (약 1,600원) 지불하였다.
그렇게 민속촌 구경을 마치고 나니 아침을 굶어서인지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민속촌 근처에 무슨 식당이라고 있었으면 좋았을련만 아쉽게도 그런게 보이지 않아서 얼른 시게투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당당하게 또 한번 히치하이킹에 도전!
시게투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간다는 운전수는 처음부터 2레이 (약 800원)을 요구했다. 처음부터 가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긴 했지만 언짢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도 시간과 기름이 남아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이런 요구쯤은 당연한 거겠지.
어디서 밥 먹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시게투에서의 마지막 식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오후 4시 기차로 클루즈 나포카에 가는 것이니 식사뿐만 아니라 모든게 마지막. 우선 급한대로 첫날 만난 조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번호를 받아두길 천만 다행이지.
용석 : 조르지, 안녕? 나 용석이야. 기억하지? 조르지 : 물론이지, 친구! 뭐해? 아직 시게투에 있는 거지? 용석 : 응, 근데 오늘 4시에 클루즈 나포카로 떠나? 조르지 : (놀라며) 뭐? 근데 왜 그걸 지금 말해? 너 지금 어디야? 용석 : 민속촌 갔다가 지금 막 시게투 시내에 도착했어. 조르지 : 그래? 그럼 바로 David's pub으로 와. 나 거기 있어.
조르지 이 친구는 아무래도 하루종일 David's pub에서 죽을 치고 사는 모양이다. 어쨌든 마치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기 때문인지 떠나기 전 든든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David's pub으로 향했다.
조르지와 마지막으로 놀 수 있는 기회였기에 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서른살이었지만 영국에서 공부 중인 학생이라고 한다. 무얼 배운다고 했더라? 지금은 방학을 맞아서 고향인 시게투에 놀러왔지만 조만간 다시 영국으로 간다고 했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나의 다음 목적지인 클루즈 나포카에서 탄다고는 하였으나 아쉽게도 내가 클루즈 나포카에 오래 머물지 않아서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이 되었다. 조르지는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일까? 그냥 발이 넓은 것뿐일까?
용석 : 조르지, 여행 첫날부터 너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 조르지 : 나도 이런 곳에 너같은 동양인이 오는 건 처음 봤어. 솔직히 놀랐어. 용석 : (조르지 친구들을 보며) 다른 친구들하고도 친해졌으면 더 재밌었을텐데... 조르지 : (웃으며) 이 새끼들은 영어 못 해 ㅋㅋㅋ 그리고 다 쓰레기야 ㅋㅋㅋ 용석 : (같이 웃으며) 왜 ㅋㅋㅋㅋ 그래도 네 친구들이잖아 ㅋㅋㅋ 조르지 : (조롱하듯) 지금도 이 새끼들, 여자 못 꼬셔서 안달이잖아 ㅋㅋ
사실 조르지 친구들은 나와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는 계속 창밖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여자가 지나가면 창문을 두드리며 추파를 던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관심을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당장 뛰쳐나가 얘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받기도 했다. 여자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수컷들의 모습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조르지는 나와 얘기를 하다가 친구들과 얘기하기도 하고... 사람을 참 좋아하는구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느새 맥주를 한 병, 두 병, 세 병째 비워내고 있었고 조르지는 날 보면서 괜찮냐며 걱정해준다. 마시는건 괜찮은데 떠나야하는건 안 괜찮아.
이제는 3일도 너무 짧은 것 같다. 너무나 쉽고 빠르게 루마니아에 정이 들고 만다.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정 많은 사람들과 정이 들었는데 정답게 떠나지 못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처량해보였다.
모두가 웃고 떠들고 있는 술집 속에서, 그렇게 즐거워하는 나의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이제 떠나야하는 여행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안녕, 시게투 마르마찌에. 안녕, 조르지. 안녕, 사푼차. 난 이제 클루즈 나포카로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