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하얀손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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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화창한 봄날의 햇살이 가득한 정오의 시간. 보도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동대문 역사박물관을 지나서, 청계천을 향하는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들 가벼운 나들이 옷차림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는 봄꽃처럼 밝은 표정들이었다. 두타건물 앞의 노상커피판매점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흑백의 외국인들도 자주 눈에 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기념사진을 찍거나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다. 큰 가방을 바닥에 털썩 내려놓고, 그 가방 위에 걸터앉아 있는 중년의 러시아 남자는 피곤한 표정으로 먹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들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는데, 며칠 동안 깍지 않은 짧은 흰 수염이 까칠까칠해 보였다. 만약 그가 수염을 길게 기른다면 톨스토이와 닮은 모습이 될까. 아니, 그는 톨스토이처럼 지식인다운 고뇌보다는 육체노동으로 인한 피곤함이 뼛속까지 배어 있어보였다.


  지하계단을 따라서 지상으로 올라가니, 청계천의 풍경과 마주한다. 청계천의 물줄기는 햇빛을 반짝반짝 반사시키며 흘러가고, 그 물줄기를 따라서 사람들도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중고서적간판을 찾았다. 모처럼 내가 서울나들이를 한 목적은 중고서적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겨우내 집안에 박혀 방치되어 있던 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읽다보니,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데 중고서적간판이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중고책장사가 잘 안 되지요.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인터넷으로 책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곳에서 장사하던 많은 사람들이 손을 털고 떠나갔지요. 나이든 사람들이나 이곳에 가끔씩 찾아오지,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 주문으로 책을 구입하고 있죠. 전문적인 서적이 필요한 경우에 가끔씩 찾아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나마 명목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나도 이 장사를 계속할지.......”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장사는 돈벌이로 꽤 좋았지만, 시대의 변화로 중고책방도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중고책방에 들리면, 낡고 오래된 책에서 묻어나는 구수한 냄새를 맡게 된다. 누군가 열심히 그 책을 읽었을 눈동자와 정겨운 호흡도 느껴진다. 그래서 예상보다 더 많은 책들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고책방의 책들은 그냥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고객들이 많이 찾는 책들을 주인들은 정확히 알고 있다. 책제목이 잘 보이도록 전시해 놓는다. 중고책방에서 책을 구입하는 또 다른 재미는 책값의 흥정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단골로 다녔던 중고책방 주인은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나는 그를 통해 괴테와 서머셋 모음을 알게 되었고, 레마르크와 존 그린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단골고객에게 면박을 주는 아주 고약한 책장수였다.   


  “아직도, 루소의 ‘애밀’도 안 읽었어? 한국문학만 고집하지 말고, 외국문학과 인문서적도 읽어봐. 여기 책이 있네. 이 책 가져가!”


  내가 구입한 책 위에, 그는 덤으로 ‘애밀’을 얹어 놓았다. 물론 그는 그 책값을 받지 않았다. 당신은 자신이 죽으면, 이 책을 어떻게 처분해야 될지 걱정이라고 했었다. 어느 날, 내가 책을 구입하러 그곳에 들렸을 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출입문엔 ‘상중(喪中)’란 글씨가 붙어 있었다. 그 중고책방 앞으로 대형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오가고 있었다. 이 지역의 재개발이 본격화 되고 있었다. 포크레인이 괴물처럼 큰 소리를 내며 낡은 집들을 사정없이 부수고 있었다. 그 중고책방도 그의 운명처럼 헐려나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존 버거의 작품을 읽어 보시죠?”


  책을 건네는 중고책방의 주인남자의 얼굴에서, 그 옛날 고약한 책방주인의 얼굴이 겹친다. 나는 그 책을 받아들었다. 책의 표지엔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노라>라고 적혀 있다. 첫 장을 펼치고 읽는다. ‘아들은 암소의 얼굴에 검은 가죽 가리개를 씌운다. 그러고는 암소의 뿔에 가리개를 끈으로 고정시킨다. 가죽의 검은 빚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용하는 동안 생긴 색깔이다. 암소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난생 처음으로 암소는 밤이 돌연히 눈 위에 와서 덮치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1분도 못 가서 가리개는 벗겨질 것이다. 즉, 암소가 죽는 즉시로 말이다.’. 나는 책을 덮고서, 그 책의 값을 지불했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충동구매로 농촌소설을 읽게 될 것이다. 중고책방을 찾는 재미와 맛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자식아! 그 따위로 운전을 해서 밥 빌어먹고 살겠냐?”   

  

  어디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서 고개를 돌려보니, 좁은 도로에서 두 대의 차량이 나란히 붙어서, 택시운전사들끼리 욕설과 삿대질을 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노란택시의 운전사는 얼굴이 시커멓고 깡마른 체구로 고집이 사나와 보였고, 은색택시의 운전자는 머리가 백발이었지만 건장한 체구였다. 금방이라도 두 사람은 차량의 문을 열고 뛰쳐나와서 멱살잡이를 할 것만 같았다. 그 두 대의 택시 앞뒤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야, 내 차량을 따라와, 저 쪽에서 차 세워!”


 신호가 바뀌자, 깡마른 체구의 운전자가 차량을 이동시키며 악을 썼다. 백발의 건장한 체구의 사내도 욕으로 대거리를 하면서 따라간다. 저쪽 사거리 신호등에서, 상대의 차량 앞으로 누군가 끼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두 차량의 접촉사고는 없었다. 두 사람 중에, 먼저 누군가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면, 욕을 하면서 서로 고함을 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된 노동과 삶의 고단함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도록 만든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 하루 일과를 미니홈피에 정리해서 작성해 두려고 컴퓨터의 전원스위치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런데 자극적인 뉴스의 제목이 시선을 붙잡는다.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신공항 건설 사업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야당은 거짓공약으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반발했다. 다국적군이 리비아의 대통령인 카다피의 관저에 폭격을 가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리비아는 남북한처럼, 한 나라가 동서로 양분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도는 자신들의 영토라고 일본정부가 노골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했다. 일본대지진으로 일본이재민을 돕기에 팔을 걷었던, 대한국민의 국민들이 일본의 배신감에 분노하고 있었다. 댓글에 정부와 여당에 친일파들이 많아서,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함부로 떠들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두타 건물 앞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중년의 러시아 남자와 청계천의 도로 위에 싸우고 있었던 택시 운전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서로 힘이 없고 약자인 사람들끼리는 거칠게 멱살잡이를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자들에게는 순한 양처럼 복종하거나 부당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들은 분노할 때와 참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반드시 필요한 분노를 사랑하고, 불필요한 분노를 멀리해야 된다. 무조건 참는 것도 위선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오줌을 눈다.

  눈과 얼음 위에

  시냇물이 녹아내리도록

                       - 존 버거,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의 삽입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