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전거

남복동과장201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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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썼던 글인데...다른글을 원하시는 톡커님을 위해서 올려요.)
 
아버지껜 낡은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아버지 곁엔 항상 이 자전거가 있었죠. 제가 태어나기도전에
 
이 자전거를 장만하셨고, 제가 스무살 되던 해 더 이상 타지
 
못하겠다며 낡아버린 고물자전거를 아버진 화장실 앞에 고이
 
세워두셨어요.
 
아버진 이 자전거를 타고 들에 나가셨고, 이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나가 마을일을 보셨어요. 하지만 전 이 자전거가 싫었죠
 
너무 낡은데다가 친구들에게 부끄럽기도 했어요.
 
혹시 지각이라도 할 땐, 아버지께서 이 자전거로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는데, 다른 친구들은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고
 
오기도 했거든요. 어린 마음에 그랬지만, 아버지께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서 내려 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겨울날 눈이 밤새도록 내렸는지 눈이 제 발목을
 
덮을정도까지 쌓였어요. 전 그날 주번이었고, 일찍나가서
 
청소와 선생님께서 시키신 일을 해야했지요.. 그 때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겨울이라 여섯시가 넘었음에도 어둑어둑 했어요.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먹고, 집을 나섰어요. 학교까지 40분이 넘게
 
걸렸는데, 그날은 한시간도 넘게 걸은 것 같아요.. 이미 눈이 녹아
 
신발은 거의 젖어들었고, 발가락도 조금씩 얼얼한 상태가 되었어요
 
눈은 계속 내렸고, 독한 남복동이는 어느새 학교까지 가게 되죠.
 
그런데 벌써 학교 현관문을 열어놓고 차를 드시고 계실
 
주사 아저씨께서 보이시지 않았어요. 문도 잠겨있고.. 한참을
 
기다려도 하얗게 눈이 쌓인 학교 운동장엔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죠. 눈이 얼마나 더 오려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굵은 눈이 내렸고, 얼얼했던 발가락이 이젠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느낌에..눈을 피해 털썩 주저 앉았어요. 작은 입에서 나오는
 
입김으로 얼어붙은 발을 녹이려고 애썼지만, 추웠던 그날의 겨울은
 
제 입김을 받아주지 않았죠.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요.. 드디어
 
누군가가 교문안으로 들어오네요. 얼마나 눈을 맞았는지 머리 위에
 
눈이 하얗게 쌓여서 저 사람이 눈사람인지 사람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어요.눈이 많이 오긴 왔나보다..라고 생각하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우리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끌고 오고
 
계셨어요.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으시고, 커다란 검정 잠바를
 
입으시고 자전거를 끌고 오고 계시네요.. 전 깜짝놀라서
 
아버지께 달려갔어요..
 
아버진 저를 보시자마자 커다란 여벌의 옷을 입혀주시고
 
안도의 한숨을 눈빛으로 대신 하고 계셨어요.  아버진 그렇게
 
자전거와 저를 그렇게 세워놓고 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
 
담배 한개피를 태우기 시작하셨어요. 쉴새없이 쏟아지는 굵은
 
눈발에 아버지의 담배연기가 묻혀 보이지도 않았지만 아버지의
 
한숨속에 베어나왔던 근심덩어리가 눈 대신 녹는 건 느낄 수
 
있었어요.  아버진 저를 뒤에 태우시고 천천히 자전거를
 
끌기 시작했어요. 길이 미끄럽기도하고,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아버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었거든요.. 혹시라도 제 발이
 
눈에 젖을까 발을 높이 들라 말씀하시고 그렇게 한없이 쏟아지는
 
눈속을 걸었어요. 핸들을 잡고 계시는 아버지 손등에  눈이
 
쌓였어요. 많이 너무 많이 차갑고 추우셨을텐데 아버진 한번도
 
손등에 눈을 치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집에 오셨어요..
 
그땐 멍청이 같이 왜 몰랐을까요... 아무것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했어요.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어머닌 뜨거운 국물을
 
아버지와 제게 내밀었어요. 그리고 그때서야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지요.. 눈이 너무 많이와서  선생님들도 출근 못하시고
 
아이들도 등교하기 어려우니 하루 임시휴교를 한다고 말이죠.
 
뒤늦게 연락을 받은 아버진, 제 걱정에 그렇게 학교까지
 
절 찾으러 오신거였어요. 제가 부끄러워하고 싫어했던
 
그 낡은 자전거로 말이죠..   그 일이 있고나서 전 그 자전거로
 
자전거를 배웠어요.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던 그때.. 폐달이 발에
 
닿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그 자전거를 익혔지요.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께서 태워주시는 자전거를 탈 일은
 
없었지만, 그 자전거를 타고 심부름을 다녀오는 건 제 몫이 되었죠
 
밤늦게까지 아버지께서 오시지 않으면 엄마와 손을 잡고 깜깜한
 
오솔길까지 마중을 나갔어요.. 늘상 나가는 마중이라 아버지도
 
아셨는지.. 사람 소리가 들리면 자전거벨을 눌러주셨죠
 
"띠링띠링띠링" ㅎㅎ
 
 
아버진 그게 참 행복하다고 말씀셨는데.. 행복이란게 다른게
 
있냐고... 돈이 많아 넉넉하게 사는 것 보다.. 일상생활에
 
이뤄지는 소소한 행복들이 아버지를 기운나게 하시는 일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아침부터 조카와 언니가 싸워요.. 자전거를 새로 사달라고
 
떼를 쓰는 조카를 보면서.. 아버지의 자전거가 생각났지 뭐에요?
 
요샌, 다들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서.. 저런 작은 추억을
 
아이들은 모르겠죠? 아버지의 자전거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개인별로 자전거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도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ㅎㅎ  이들만이 만들어 낼
 
추억도 있겠지만.. 모르겠어요..전  그때만큼 아이들이
 
소중하게 생각 할 만한 추억들을 간직하며 유년시절을 보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