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나 눈물을 삼키며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있는 여대생입니다. 20년간 포천에 작은 시골마을에서 젖소를 키우시는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지금은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11월 말부터 116일동안 축산업자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구제역'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겨울방학을 맞아 포천 집에 와 송아지 젖도 먹여주고 아빠를 도와 착유우(젖을 짜는 어른소)들의 배합사료도 만들어주며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경북 안동에서부터 발생한 구제역이 설마 여기 경기 북부까지 오겠어, 방역대처만 잘 하면 빨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초조해하며 유난히 추웠던 겨울, 부모님은 손이 부르트고 발이 깨어지도록 끼니도 떼우지 못한 채 소독에만 매달리셨습니다. 그렇지만,구제역은 우리 목장을 지나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살처분 전 날 태어난 핏덩어리 송아지부터 4~5년이상 그 큰 눈망울을 마주치며 엄마아빠의 자식처럼 살던 큰 젖소들까지 총 98마리가 울음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불쌍했습니다.
새벽 5시 시끄러운 알람소리와 부스럭 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부모님은 양말을 내복 위에 세겹씩 신으시며 하품을 하시며 "더 자, 우리 딸"이라고 말씀하신 후 피로와 일의 무거움으로 축 쳐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밖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웽! 하는 커다란 콤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착유가 시작됩니다.
아침 착유를 끝내고 엄마는 아빠보다 조금 더 일찍 들어와 아침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배고프다 못해 쓰라린 속으로 11시가 되서야 늦은 아침밥을 들여넣습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시간. 티비를 보시다가 깜빡 잠이 듭니다. 그리고 오후 한시. 단잠을 뿌리치고 아빠는 젖소가 생활하는 운동장에 분뇨를 치우시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가십니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안쓰러워 따라 나가셔서 또 일을 하십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다가 저녁 착유를 하려면 또 한끼 먹어야 하기에 세시반 늦은 점심을 드십니다.
부리나케 점심을 드시고 저녁착유를 준비하기 위해 부모님은 또 밖으로 나가십니다. 아빠는 착유우가 먹는 배합사료를 만들기 위해 작은 몸으로 자기의 5배나 되는 건초더미 위에 올라가 거대한 톱니가 돌아가는 배합기에 30kg짜리 건초를 몇번이나 던지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녁 착유. 착유가 끝나고 송아지 우유까지 주고 나면 밤 10시. 10시 30쯤 시작되는 저녁식사. 밤 12시나 되어야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잠을 청하십니다.
이런 패턴의 생활을 20년 가까이 매일매일. 소화하셨던 부모님... 10마리의 젖소로 시작한 목장은 부모님의 피땀으로 100마리의 젖소를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쉼을 모르는 성실함으로 청결한 목장을 유지하고, 1등급의 최고급 우유만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있으셨습니다.
- 저는 부모님이 미웠습니다.
철이 없던 저는 이렇게 매일매일을 젖소에만 매달리시는 미웠습니다. 자식보다 젖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셨으니까요. 밥 먹을 때도 엄마아빠의 대화는 젖소뿐였습니다. "땅다리(젖소 이름)가 밥을 제대로 안 먹더라, 영양제 좀 맞춰야하나, 운동장이 질어서 애들이 잘 걷지를 못한다. 발톱도 깎아주고 똥도 싹 치워서 톱밥 깔아줘야 좀 편할 텐데..." 항상 젖소 생각 뿐이셨습니다. 꽤 어렸을 때부터 저와 제 남동생은 일하러 나가신 부모님 없이 아침밥 해먹고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부모님이 저녁일을 끝내고 집문을 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른 애들처럼 주말에 부모님 손을 잡고 소풍을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저와 제 남동생은 빗자루와 삽을 들고 부모님을 도왔지요. 사춘기,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저는 엄마가 내 옷사는 돈은 아까워 하시면서도 젖소 먹일 비타민제와 영양제에는 당연하게 돈을 투자하시는 모습이 우리를 위해 뼈빠지게 일하시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했습니다. 그만큼 부모님에게는 젖소가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는 또 다른 자식이었습니다.
생명을 키우는 목장의 특성 상,그 흔한 제주도 여행도 한 번 가보지 못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시간 일하고 유대(우유값)를 받지만 높아지는 사료값과 목장시설비를 충당하기 위해 빚은 늘어만가는 갔습니다. 당신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당신 목에 갑상선이 잘못되어 수술을 해야하는데도 입원하면 목장운영을 할 수 없어서 자꾸만 무력해지고 피곤한 몸을 안간힘으로 버티시며 일하시던 아빠, 명절 때면 친정집에 간다는 동서들을 서둘러 보내시며 엄마도 외할머니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쓸쓸한 웃음을 보이시던 엄마... 저의 부모님은 이렇게 매일매일 일만 하셨습니다. 낙농업이라는 것은 이런 일입니다.
그리고 구제역으로 젖소 98마리를 묻고 난 지금, 저의 부모님은 매일매일 쉬고 계십니다. 소는 죽었어도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시장에가 장을 보고 오시는 엄마는 불안한 얼굴로 "버는 것도 없이 쓰기만 하려니까 물건이 손에 안 잡히더라"며 깊은 한숨을 쉬십니다. 텅 빈 착유실에 콤프를 가끔씩 켜보기도 하시고, 바람에 흔들려 찰칵거리는 자동목걸이(소들이 사료를 먹기 위해 머리를 내밀면 고정시켜 주는 것)에 혹시 우리 소가 내는 소리는 아닐까 자꾸만 고개를 돌리십니다. 근 20년간 같은 일만 하다가 하루 아침에 일을 그만둠에서 오는 그 커다란 허탈감과 박탈감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목장 옆에 묻은 젖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마치 전쟁 때 내 옆에서 죽은 전우의 눈동자처럼 평생 기억에 남아 괴로울 것입니다.
-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여유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인생이지만, 쉬는 날 없이 계속되는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하지만, 구제역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걸리면 또 묻어야 하기에 겁이나고 무섭지만, 20여년간 하던 일이 낙농이니, 온통 젖소 키우는데에 열정과 꿈을 쏟았으니 그리고 둘이나 되는 대학생 자식 그 비싼 대학 학비 대주시려고 저의 부모님은 다시... 다시 젖소를 키우려고 합니다.
정부가 초동대처 실패로 인한 전국적인 구제역 확산을 인정한만큼, 이번 구제역 피해에 정부는 책임감있고 신뢰성있는 모습을 축산농가에게 보여야 합니다. 구제역 피해로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정부의 실질적인 도움 없이는 다시 일어설 수 없습니다. 644낙농가가 구제역 피해를 입어 전국 젖소 중 8.4%를 매몰처분하였고, 전년대비 우유 생산량은 18.3%나 감소되었습니다. 낙농가에게는 우유라는 소득원이 완전히 상실되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며 소비자에게는 안 그래도 치솟는 물가에 우유값까지 상승해 가계경제부담을 가중시켰습니다. 도대체 아이들의 키는 누가 키울것입니까.
구제역 피해 이후, 정부는 그나마 현행 보상제도로 100% 보상을 책임진다고 했으나 살처분 후 3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50% 선지급(마리당 100만원)만이 전부입니다. 또한 현행 구제역 보상제도는 전혀 현실성 없는 헛보상일 뿐입니다. 이는 슬픔에 빠진 낙농가가 다시는 새로 일어설 수 없게 내모는 일입니다.
우선 살처분 보상의 기준이‘살처분 시점의 시세'라는 점입니다. 젖소 매몰마릿수가 3만7,000여마리고, 그 가운데 착유소가 1만8,000~2만마리입니다. 입식 후 바로 착유가 가능한 젖소가 절대 부족한 형편이라서 최근 시세는 초임 만삭우(젖이 가장 많이 나오는 때)의 경우 500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 목장이 젖소를 일괄 구입할 경우에도 1마리당 평균 350만~400만원선입니다. 그것에 비해 현행 살처분 보상금 기준은 농협이 조사한 젖소 산지가격(초임 만삭 기준)으로 2월 평균 290만5,000원입니다. 290만원이라고 하지만 실제 우리 목장이 받을 보상금은 100% 지급할 경우 마리당 200만원입니다. 보상금과 시세는 약 300만원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300만원은 또 빚을 지라는 의미입니다. '입식 시점의 시세'로 보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한우,돼지 축산농가와는 다른 낙농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보상체계, 바뀌어야합니다. 젖소는 그 가치를 부여하는 가장 높은 기준이 우유생산능력입니다. 그러나 살처분 젖소에 대한 보상가를 고기값으로 기준 잡았기 때문에 고기의 질로 값을 매기는 한우와 비교할때 상대적으로 보상가가 낮게 책정된 것입니다. 또한 재입식을 할 경우 젖소는 우유를 짤 수 있을 때까지 키워야만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한우나 돼지는 상대적으로 피해농장의 회복이 빠를것입니다. 젖소는 송아지를 들여와 어미소로 키워 새끼를 낳아야 착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3~4년은 지나야 소득창출이 가능합니다. 이런 낙농업의 특성을 재고하지 않고 농협이 정한 가축 시세를 기준으로 100% 보상해봐야 피해액의 1/3에도 못 미친다는 겁니다. 재입식 후 3~4년간의 안정적이지 못한 생계는 정부의 책임권에서 벗어난 사항인지요.
다음으로 피해 낙농가의 생활 안정을 위해 지급하는 유대 보상금도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6개월 유대보상비도 현재까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1년 연장은 낙농가의 실정을 고려해보면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착유소가 없는 상황에서 낙농가가 비싼 값을 주고 착유소를 목장에 많이 들여올 수가 없기에 그 젖소들이 만드는 우유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 착유우로 키우기 전 단계인 송아지부터 육성우의 곡물값 상승으로 한없이 오르는 사료값도 충당해야 합니다.
이 글을 보는 분 중에는 낙농가의 부주의로 구제역에 걸린게 아니냐, 그런데도 정부가 보상해준다는데 감사하게 받아야지 무슨 요구사항이 그리 많냐는 생각을 가지신 분도 계실겁니다. 경북 안동 발 이번 구제역은 정부가 초동대처 실패에 따른 전국적 확산이라고 인정한 만큼, 한 낙농가의 처절한 구제역과의 사투로는 막을 수 없는 인재였습니다. 또한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획일적인 가축전염 병 대책에 따라 구제역에 감염되지 않은 멀쩡한 젖소까지 100% 보상해 줄 테니 걱정말라며 살처분했습니다. 정부에 정책이 그렇다기에 저항도 못해보고 자식같은 젖소를 가슴에 묻은 낙농가에게 이제와서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고 변명하며 축산인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묻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3월 29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 경기, 강원, 충남, 충북, 경북 등 전국의 낙농인 600여 명이‘구제역 살처분 보상 현실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며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로써 11일째지만 농촌관련언론사에서만 관심을 보이고 보도할 뿐 주요 언론은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되고 있는 법안을 바꾸기가 쉬운일이 아니라며 형식적인 위로만을 건넬뿐입니다.
아픈 기억을 딛고 그래도 다시 한번 일어나자!는 결의를 다지며 낙농업자들이 상경했습니다. 이 곳에 모인 낙농인이 바라는 바는 구제역이 휩쓸고간 텅 빈 목장에 젖소를 들여 다시 목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만 지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농촌에 무심한 정부를 향해, 아직은 따뜻한 정情,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민들에게,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 일본 쓰나미에 묻힌 구제역 대재앙 이웃나라의 천재지변만이 우리국민의 마음을 울린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제 몸에 들어오는 주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흰 끈에 다리 한쪽만 동여매진채 포크레인에 매달려 트럭에 포대를 쌓 듯 아무렇게나 쌓아올려진 후 땅속으로 영영 묻혀져야만했던 300만마리의 가축들은 오염침출수의 주범, 유해물에 불과한 것인가요. 질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그저 성실하게 땀 흘려 받은 대가에 감사하며 살던 낙농인이 돌연 겪은 구제역이라는 대참사로 인해 주인이 직접 수정을 시켜 생명을 탄생시키고 인공 젖꼭지를 물려 자식같이 사랑하며 키운 소를 한 순간에 잃게되었습니다. 이 고통은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위로받아야 하는건가요.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우리 엄마아빠를 생각하고 이틀 전 농성현장에 갔을 때 보았던 전국의 많은 낙농업자들을 생각하니 그 고통이 전해져 가슴이 쓰립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도 마음에서의 아주 조금이라도 동動함이 있다라면 구제역 피해 낙농인의 목장재건을 위한 울부짖음에 힘을 실어 주세요!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세요!
구제역 피해 낙농인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세요
구제역에 무너져버린 축산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관심입니다...
1000인 서명운동이 빨리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06133
몇번이나 눈물을 삼키며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 있는 여대생입니다.
20년간 포천에 작은 시골마을에서 젖소를 키우시는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지금은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11월 말부터 116일동안 축산업자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구제역'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겨울방학을 맞아 포천 집에 와 송아지 젖도 먹여주고 아빠를 도와 착유우(젖을 짜는 어른소)들의 배합사료도 만들어주며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경북 안동에서부터 발생한 구제역이 설마 여기 경기 북부까지 오겠어, 방역대처만 잘 하면 빨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초조해하며 유난히 추웠던 겨울, 부모님은 손이 부르트고 발이 깨어지도록 끼니도 떼우지 못한 채 소독에만 매달리셨습니다.
그렇지만,구제역은 우리 목장을 지나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살처분 전 날 태어난 핏덩어리 송아지부터 4~5년이상 그 큰 눈망울을 마주치며 엄마아빠의 자식처럼 살던 큰 젖소들까지 총 98마리가 울음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불쌍했습니다.
새벽 5시 시끄러운 알람소리와 부스럭 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부모님은 양말을 내복 위에 세겹씩 신으시며 하품을 하시며
"더 자, 우리 딸"이라고 말씀하신 후
피로와 일의 무거움으로 축 쳐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밖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웽! 하는 커다란 콤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착유가 시작됩니다.
아침 착유를 끝내고 엄마는 아빠보다 조금 더 일찍 들어와 아침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배고프다 못해 쓰라린 속으로 11시가 되서야 늦은 아침밥을 들여넣습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시간. 티비를 보시다가 깜빡 잠이 듭니다.
그리고 오후 한시. 단잠을 뿌리치고 아빠는 젖소가 생활하는 운동장에 분뇨를 치우시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가십니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안쓰러워 따라 나가셔서 또 일을 하십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다가 저녁 착유를 하려면 또 한끼 먹어야 하기에 세시반 늦은 점심을 드십니다.
부리나케 점심을 드시고 저녁착유를 준비하기 위해 부모님은 또 밖으로 나가십니다.
아빠는 착유우가 먹는 배합사료를 만들기 위해 작은 몸으로 자기의 5배나 되는
건초더미 위에 올라가 거대한 톱니가 돌아가는 배합기에 30kg짜리 건초를 몇번이나 던지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녁 착유. 착유가 끝나고 송아지 우유까지 주고 나면 밤 10시.
10시 30쯤 시작되는 저녁식사. 밤 12시나 되어야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잠을 청하십니다.
이런 패턴의 생활을 20년 가까이 매일매일. 소화하셨던 부모님...
10마리의 젖소로 시작한 목장은 부모님의 피땀으로 100마리의 젖소를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쉼을 모르는 성실함으로 청결한 목장을 유지하고, 1등급의 최고급 우유만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있으셨습니다.
- 저는 부모님이 미웠습니다.
철이 없던 저는 이렇게 매일매일을 젖소에만 매달리시는 미웠습니다. 자식보다 젖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셨으니까요.
밥 먹을 때도 엄마아빠의 대화는 젖소뿐였습니다. "땅다리(젖소 이름)가 밥을 제대로 안 먹더라, 영양제 좀 맞춰야하나, 운동장이 질어서 애들이 잘 걷지를 못한다. 발톱도 깎아주고 똥도 싹 치워서 톱밥 깔아줘야 좀 편할 텐데..." 항상 젖소 생각 뿐이셨습니다.
꽤 어렸을 때부터 저와 제 남동생은 일하러 나가신 부모님 없이 아침밥 해먹고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부모님이 저녁일을 끝내고 집문을 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른 애들처럼 주말에 부모님 손을 잡고 소풍을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저와 제 남동생은 빗자루와 삽을 들고 부모님을 도왔지요.
사춘기,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저는 엄마가 내 옷사는 돈은 아까워 하시면서도 젖소 먹일 비타민제와 영양제에는 당연하게 돈을 투자하시는 모습이 우리를 위해 뼈빠지게 일하시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했습니다. 그만큼 부모님에게는 젖소가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는 또 다른 자식이었습니다.
생명을 키우는 목장의 특성 상,그 흔한 제주도 여행도 한 번 가보지 못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시간 일하고 유대(우유값)를 받지만
높아지는 사료값과 목장시설비를 충당하기 위해 빚은 늘어만가는 갔습니다.
당신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당신 목에 갑상선이 잘못되어 수술을 해야하는데도 입원하면 목장운영을 할 수 없어서 자꾸만 무력해지고 피곤한 몸을 안간힘으로 버티시며 일하시던 아빠,
명절 때면 친정집에 간다는 동서들을 서둘러 보내시며 엄마도 외할머니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쓸쓸한 웃음을 보이시던 엄마...
저의 부모님은 이렇게 매일매일 일만 하셨습니다.
낙농업이라는 것은 이런 일입니다.
그리고 구제역으로 젖소 98마리를 묻고 난 지금,
저의 부모님은 매일매일 쉬고 계십니다.
소는 죽었어도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시장에가 장을 보고 오시는 엄마는 불안한 얼굴로 "버는 것도 없이 쓰기만 하려니까 물건이 손에 안 잡히더라"며 깊은 한숨을 쉬십니다.
텅 빈 착유실에 콤프를 가끔씩 켜보기도 하시고, 바람에 흔들려 찰칵거리는 자동목걸이(소들이 사료를 먹기 위해 머리를 내밀면 고정시켜 주는 것)에 혹시 우리 소가 내는 소리는 아닐까 자꾸만 고개를 돌리십니다.
근 20년간 같은 일만 하다가 하루 아침에 일을 그만둠에서 오는 그 커다란 허탈감과 박탈감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목장 옆에 묻은 젖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마치 전쟁 때 내 옆에서 죽은 전우의 눈동자처럼 평생 기억에 남아 괴로울 것입니다.
-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여유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인생이지만, 쉬는 날 없이 계속되는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하지만,
구제역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걸리면 또 묻어야 하기에 겁이나고 무섭지만,
20여년간 하던 일이 낙농이니, 온통 젖소 키우는데에 열정과 꿈을 쏟았으니
그리고 둘이나 되는 대학생 자식 그 비싼 대학 학비 대주시려고
저의 부모님은 다시... 다시 젖소를 키우려고 합니다.
정부가 초동대처 실패로 인한 전국적인 구제역 확산을 인정한만큼, 이번 구제역 피해에 정부는 책임감있고 신뢰성있는 모습을 축산농가에게 보여야 합니다.
구제역 피해로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정부의 실질적인 도움 없이는 다시 일어설 수 없습니다.
644낙농가가 구제역 피해를 입어 전국 젖소 중 8.4%를 매몰처분하였고, 전년대비 우유 생산량은 18.3%나 감소되었습니다.
낙농가에게는 우유라는 소득원이 완전히 상실되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며 소비자에게는 안 그래도 치솟는 물가에 우유값까지 상승해 가계경제부담을 가중시켰습니다. 도대체 아이들의 키는 누가 키울것입니까.
구제역 피해 이후, 정부는 그나마 현행 보상제도로 100% 보상을 책임진다고 했으나 살처분 후 3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50% 선지급(마리당 100만원)만이 전부입니다.
또한 현행 구제역 보상제도는 전혀 현실성 없는 헛보상일 뿐입니다.
이는 슬픔에 빠진 낙농가가 다시는 새로 일어설 수 없게 내모는 일입니다.
우선 살처분 보상의 기준이‘살처분 시점의 시세'라는 점입니다.
젖소 매몰마릿수가 3만7,000여마리고, 그 가운데 착유소가 1만8,000~2만마리입니다. 입식 후 바로 착유가 가능한 젖소가 절대 부족한 형편이라서
최근 시세는 초임 만삭우(젖이 가장 많이 나오는 때)의 경우 500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 목장이 젖소를 일괄 구입할 경우에도 1마리당 평균 350만~400만원선입니다.
그것에 비해 현행 살처분 보상금 기준은 농협이 조사한 젖소 산지가격(초임 만삭 기준)으로 2월 평균 290만5,000원입니다.
290만원이라고 하지만 실제 우리 목장이 받을 보상금은 100% 지급할 경우 마리당 200만원입니다.
보상금과 시세는 약 300만원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300만원은 또 빚을 지라는 의미입니다. '입식 시점의 시세'로 보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한우,돼지 축산농가와는 다른 낙농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보상체계, 바뀌어야합니다. 젖소는 그 가치를 부여하는 가장 높은 기준이 우유생산능력입니다. 그러나 살처분 젖소에 대한 보상가를 고기값으로 기준 잡았기 때문에 고기의 질로 값을 매기는 한우와 비교할때 상대적으로 보상가가 낮게 책정된 것입니다. 또한 재입식을 할 경우 젖소는 우유를 짤 수 있을 때까지 키워야만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한우나 돼지는 상대적으로 피해농장의 회복이 빠를것입니다. 젖소는 송아지를 들여와 어미소로 키워 새끼를 낳아야 착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3~4년은 지나야 소득창출이 가능합니다.
이런 낙농업의 특성을 재고하지 않고 농협이 정한 가축 시세를 기준으로 100% 보상해봐야 피해액의 1/3에도 못 미친다는 겁니다. 재입식 후 3~4년간의 안정적이지 못한 생계는 정부의 책임권에서 벗어난 사항인지요.
다음으로 피해 낙농가의 생활 안정을 위해 지급하는 유대 보상금도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6개월 유대보상비도 현재까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1년 연장은 낙농가의 실정을 고려해보면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착유소가 없는 상황에서 낙농가가 비싼 값을 주고 착유소를 목장에 많이 들여올 수가 없기에 그 젖소들이 만드는 우유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 착유우로 키우기 전 단계인 송아지부터 육성우의 곡물값 상승으로 한없이 오르는 사료값도 충당해야 합니다.
이 글을 보는 분 중에는 낙농가의 부주의로 구제역에 걸린게 아니냐, 그런데도 정부가 보상해준다는데 감사하게 받아야지 무슨 요구사항이 그리 많냐는 생각을 가지신 분도 계실겁니다.
경북 안동 발 이번 구제역은 정부가 초동대처 실패에 따른 전국적 확산이라고 인정한 만큼, 한 낙농가의 처절한 구제역과의 사투로는 막을 수 없는 인재였습니다.
또한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획일적인 가축전염 병 대책에 따라 구제역에 감염되지 않은 멀쩡한 젖소까지 100% 보상해 줄 테니 걱정말라며 살처분했습니다.
정부에 정책이 그렇다기에 저항도 못해보고 자식같은 젖소를 가슴에 묻은 낙농가에게 이제와서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고 변명하며 축산인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묻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3월 29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 경기, 강원, 충남, 충북, 경북 등 전국의 낙농인 600여 명이‘구제역 살처분 보상 현실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며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로써 11일째지만 농촌관련언론사에서만 관심을 보이고 보도할 뿐 주요 언론은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되고 있는 법안을 바꾸기가 쉬운일이 아니라며 형식적인 위로만을 건넬뿐입니다.
아픈 기억을 딛고 그래도 다시 한번 일어나자!는 결의를 다지며 낙농업자들이 상경했습니다. 이 곳에 모인 낙농인이 바라는 바는 구제역이 휩쓸고간 텅 빈 목장에 젖소를 들여 다시 목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만 지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농촌에 무심한 정부를 향해, 아직은 따뜻한 정情,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민들에게,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 일본 쓰나미에 묻힌 구제역 대재앙
이웃나라의 천재지변만이 우리국민의 마음을 울린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제 몸에 들어오는 주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흰 끈에 다리 한쪽만 동여매진채 포크레인에 매달려 트럭에 포대를 쌓 듯 아무렇게나 쌓아올려진 후 땅속으로 영영 묻혀져야만했던 300만마리의 가축들은 오염침출수의 주범, 유해물에 불과한 것인가요.
질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그저 성실하게 땀 흘려 받은 대가에 감사하며 살던 낙농인이 돌연 겪은 구제역이라는 대참사로 인해
주인이 직접 수정을 시켜 생명을 탄생시키고 인공 젖꼭지를 물려 자식같이 사랑하며 키운 소를 한 순간에 잃게되었습니다. 이 고통은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위로받아야 하는건가요.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우리 엄마아빠를 생각하고 이틀 전 농성현장에 갔을 때 보았던 전국의 많은 낙농업자들을 생각하니 그 고통이 전해져 가슴이 쓰립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도 마음에서의 아주 조금이라도 동動함이 있다라면
구제역 피해 낙농인의 목장재건을 위한 울부짖음에 힘을 실어 주세요!
서명운동에 동참해 주세요!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1000인 서명운동이 빨리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06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