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깁니다.요약해서 읽으실 분들은 보라색으로 표시해 둔 부분과밑줄친 부분만 읽어주세요.알렉수님의 사카키바라 사건에 관련된 글을읽고 생각난 일본의 살인사건이 있어,그에 관한 글을 적어보려고합니다.글을 읽으시면서 느끼시겠지만,이 사건의 특징은 1997년 일어난 고베 연쇄 살인사건(사카키바라 사건)과 무척 닮았다는 점입니다( 가가미 히로시 사건이 사카키바라 사건보다 일찍 일어난 사건입니다 )본 사건은, 책 "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쿠노 슈지) "으로도 출간되었으며저 또한 그 책을 가지고있기에,글에 적혀 있는 내용중에는 책에서 인용해 온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글을 쓰는 내내 참고한 블로그 주소 링크 걸어두겠습니다.이곳을 클릭해주세요.1969년 일본. 학교 뒷산에서 한 고등학생이 온몸이 칼로 난자 당하고,머리까지 잘려나간 후피투성이로 죽은 채 발견된다. 살해당한 고등학생의 이름은 " 가가미 히로시 (15세) "히로시를 살해한 범인은 놀랍게도 같은 반 친구인 소년 A였다.[이유는 동급생인 히로시가 자신을 왕따하고,괴롭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소년 A는 키가 겨우 150센티미터로,동생보다 작았다.게다가 목도 짧고 뚱뚱하며 눈까지 나빠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다녔다.이런 탓에 동급생뿐 아니라 여동생까지도 소년A를 꼬맹이나 새끼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렀다.반면에 히로시는 키가 170센티미터나 되었고 성격도 밝고 시원시원했으며 등산에 취미를 붙이기 전까지육상부에 속했던 스포츠 맨이었다.이런 소년A를 히로시와 히로시의 친구들이 종종 별명을 부르며 놀리자 소년A는 그것을자신을 왕따시킨다.괴롭힌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히로시를 살해한 것.-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中]가해자인 소년 A는 한 치의 뉘우침도 없었고,그 사건과 범인은 1997년 비닐봉지에 초등학생의머리가 발견된 "고베 연쇄 살인사건(사카키바라 사건)"과 꼭 닮아있다.더욱 놀라운 것은 고베 연쇄 살인사건(여기서부턴 사카키바라 사건이라 칭하겠다)의 범인인사카키바라 소년 또한 소년A와 비슷한 나이였던 15살이었던 것.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히로시의 가족들은 그 사건에서한 걸음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가족은 말이 없었고,어머니는 정신병까지 앓았으며 머리는 백발로 변했다.히로시의 동생 미유키는 자살시도까지 했으며,히로시의 가족들은 가해자를 원망할 여유마저 없어서단 한 번도 가해자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가해자(소년A)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소년법'의 보호를 받아 의료 소년원에서3년여만을 지내며 무료로 공부까지 마치고,전과도 없이 사회로 나옴.)을 받고,놀랍게도 성공한 변호사가 되었다. 후에 히로시의 어머니는 소년A와 어렵게 연락이 닿아 사죄의 말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단 한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은 채 모든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했으며, 그게 왜 나빴는지 자신이 왜 사과를 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며,뻔뻔스러운 태도와목소리로 일관했다.책 -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쿠노 슈지)에 적혀있는 사건의 자세한 내용입니다.히로시가 다니던 " 살레지오 고등학교 "는 선교재단 소속 남자 고등학교로,가톨릭 계열의 고등학교이다.당시 학생 수는 410명이었으며 1,2학년이 네 학급,3학년이 세 학급인 중간 규모의 학교였다.사건은 히로시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겨우 2주째 되는 날이었다.1969년 봄.처참한 사건이 일어난 그날은 진달래 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트린 화창한 초여름 같은 날씨였다.4월 23일 오후 4시 무렵 이미 수업이 끝난 교정에는 동아리 활동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만 남아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교정에 왼쪽 팔을 베어 피를 흘리는 학생이 실려왔다.지난 4월에 갓 입학한 소년A였다.죽 찢어진 왼쪽 어깨가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흘러나온 피는 이미 말라붙어 있었고,상처는 속살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었다.상처를 부여잡고 피투성이가 된 채 걷는 학생을 마친 근처를 지나던 마을 사람이 발견해차에 태워서 왔다고 했다. 교사들은 소년 A를 양호실로 옮긴 뒤,피로 물든 셔츠를 벗기고 침대에 눕히려했다. 그런데 소년 A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전 괜찮으니까 빨리 가보세요. 히로시가 위험해요. 미친 녀석들이 일본도를 가지고날뛰고 있어요. 선생님, 빨리 가 보세요. 히로시가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요."소년A의 말을 들은 교사가 범인은 몇 명인지 어디에 있는지 묻자," 세 명이었나,두 명이었나….그보다 어서 빨리 히로시를 살려주세요!"라고 소년 A는 얼버무리듯 대답했고,사건 현장도 분명히 기억하지 못했다.그러나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놀러 갈 곳은 학교 뒤편을 달리는 도메이 고속도로 너머의진달래 꽃밭밖에 없었다. 교사들은 소년 A에게 "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격려한 뒤,황급히 학교 뒤편으로 달려갔다. 당시 신문은 소년 A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보도했다.갑자기 흰 남자가 부딪혀 왔다. 푹 하는 소리가 들린 순간, 왼쪽에 앉아 있던 히로시가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나는 무작정 도망쳐 달렸고 도메이 고속도로 갓길에 서 있던승용차의 도움을 받았다.학교에 도착하고서야 왼팔을 다쳤다는 사실을 알았다.우리를 덮친 남자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1969년 4월 24일자 요미우리 신문.교사들과 몇몇 학생들은 단단히 벼르고 달려갔지만 터널에서 50미터 떨어진 진달래 꽃밭에는피투성이가 되어있는 히로시가 쓰러져있었다. 모두들 경직된 채 꼼짝도 하지않았다.히로시를 최초로 발견한 교사는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제 앞에 히로시의 시체가 있는겁니다.파리랑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꾀어들었고 와이셔츠는새빨갰습니다. 무엇보다도 끔찍했던 것은 머리가 몸통에서 대략 10미터 남짓 떨어진진달래 꽃밭 두렁길에 뒹굴고 있었던 겁니다."경찰이 발표한 부검 소견에 따르면 흉부 12군데,등 7군데,두부 12군데,안면 16군데 등 총 47군데가칼로 난자당해 있었다. 특히 왼쪽 가슴 부위의 상처는 깊이가 15센티미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치명상이었다. 쇄골 아래 동맥도 절단되어 거의 즉사 상태였다.경찰은 범인이 히로시를 찔러 죽인 뒤,왼손으로 머리를 세게 누르고 예리한 칼로어깨부터 수평으로 목 부분을 잘랐다고 단정 지었다.범행에 사용한 잭 나이프는 시체에서 3미터 떨어진 곳의 땅속에서 나중에 발견되었다.범행 시각에 소년 A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던 '남자'들을 목격한 사람은 없는 반면,"고등학생 두 명밖에 없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바로 사건현장이 된 진달래 꽃밭의 주인이다."이 일대에 진달래를 도난당하는 일이 자주있었다. 그때도 하얀 셔츠를 입은 고등학생 둘이 걷고 있기에어쩌면 진달래 꽃 도둑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켜보고 있었다. 그 둘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건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같이 있던 학생이 범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그날은 날씨가 맑았지만 전날 비가와서 땅이 젖어 있었다.발자국이 있으면 그게 범인인 것.그렇지만 쓰러져 있던 고등학생 주위에는 운동화 자국밖에 없었다.따로 범인이 있었다면 발자국이 없다는게 이상하지 않은가."그러나 소년A는 전혀 모르는 남자들의 범행이라고 끝까지 우겼다.소년A의 진술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고 미심쩍은 것도 너무 많았다.게다가 농가 주인의 증언이 있었기에 경찰은 마지막까지 그에게 혐의를 두고 있었다.소년A를 범인 취급하는 경찰에게 학교 측은 소년A의 말만 믿고 점점 반발의 강도를 더해갔다.이 때문에 소년A를 범인으로 압축해가던 경찰과 끝까지 소년A는 범인이 아니라고 버티는 학교 사이에한바탕 말썽이 일어나자,경찰은 학교측이 범인을 은닉하려는 것이아닌지 의심했을 정도였다.학교는 경찰의 거듭되는 사건 진술 요청을 '학생 보호'라는 이유로 거부.피가 묻은 셔츠를 증거로 제출해주기를 바란다는 신청마저도 그럴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소년A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뿐이라고 믿는 학교 측과 범인임을 확신한 경찰 측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한것은 당연한 일이지만,너무나도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형사들을 보며학교 측은 한걸음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소년A의 사건 진술이 시작되었다. 소년A는 변함없이 세 남자가 범인이라고 주장했지만,정작 중요한 질문을 구체적으로 던지면 "기억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사건진술이 있던 그날 밤 소년 A는 결국 자신의 범행이었음을 자백했다.소년A가 입고있던 피로 물든 와이셔츠와 흉기인 잭나이프에서히로시와 소년A의 혈액이 검출되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증거였다.사건이 일어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다음은 소년A의 증언이다.(앞부분 중략…)히로시는 혼자 서쪽 둑으로 뛰어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 찔러버리겠다고 결심했는데,히로시가 정말 내려왔다. 그래서 뒤에서 잭나이프로 목덜미를 푹 찔렀는데,그가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덜컥 겁이났다. 그래서 마구 찔러댔다. 그가 쓰러진 뒤에도 몇 번을 더 찔렀다.히로시는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졌지만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이대로 두면 다시 살아날 것 같았고,그러면 내가 한 짓이 들통이 나 버린다. 그래서 완전히 죽여야겠다고 마음먹고 목 부분을 정신없이 잘랐다.(감식 결과 10분 남짓 소요된 것으로 보임.)소년A는 부유한 아버지를 둔 자식이었다.소년A의 아버지인 도시오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강요받았던 것처럼 아들의 삶을 강요한다는 것을도시오는 깨닫지 못했다. 그렇지만 소년A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아버지의 기쁨은 오로지 나 하나이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따라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사건 후 진술했다. 아버지의 기대가 소년A의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듯<소년조사표>에는이렇게 적혀있었다.[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함. 아버지의 뜻은 무조건 받아들임. 선악에 관한 사회규범 전무.아버지가 선이라면 선,악이라면 악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없음.]<감별 결과 통지표>는 소년A의 성격에 대해 "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혼자 있고 싶어 하며,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지극히 두려워한다"고 분석했다.성격 및 행동 상태에 대해서는," 자기 중심적이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다. 사디즘적인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때때로 동물적인 반응을 보이며 흥분하면 앞뒤 구별이 없어진다"라고 <소년조사표>에 기록되어있다.<정신 감정서>에는 소년A와 가정재판소 조사관이 나눈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었다.ㅡ언제 히로시를 찔러야겠다고 생각했다?"찌르기 바로 전이었습니다."ㅡ어떤식으로 찌를 생각이었나?"모르겠습니다."ㅡ정신을 차리고 보니 찌르고 있었나?"네,차라리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ㅡ어떤 생각?" 처음에 ' 돼지야 ' 라는 말을 듣고 화가 치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않았습니다.그는 5분 정도 투덜거렸습니다. 저는 뻔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혼자서 옛날 일…그러니까 계속 녀석에게 당했다는 생각…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굉장히 두근두근 거렸습니다."ㅡ사건을 전부 기억하는가?"네,대체로 다 기억합니다."ㅡ그동안 참았던 것에 대한 보복이었나?"그런 의식은 없었습니다."ㅡ그럼 뭐지? 심심풀이였나?"그건 아닙니다."ㅡ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폭발…."ㅡ무슨 폭발?"(2,3분 침묵)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ㅡ목을 자른 이유는?"(30초 침묵)나중에,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찔렀습니다."ㅡ그 일을 기억하나?"예."(중략)ㅡ사건 후 우쭐한 기분이 들었나?"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절망에 빠지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ㅡ히로시를 해치우고 후련한 기분에 우쭐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아닌가?"…그런 기분도 있었습니다."ㅡ지금은 어떤가?"…지금이요?…지금도 그런…."이 글을 읽는 한,적어도 급우를 살해한 행동을 뉘우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반성이나 사죄하는 말도 찾을 수 없다.오히려 '절망에 빠지지 말자'며 스스로를 격려하고,범행 동기를 '과거의 인간'과 결부시켰으며,더욱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이긴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더구나 소년A는 조사관에게,"나는 앞으로 히로시의 몫까지 합해서 두 사람의 몫의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고한다.훗날 보도된 내용을 보면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째 되는 날 소년A는 일지에"1년 전 오늘은 투명했다"고 썼다.이 '투명'이라는 단어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현재를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는 뜻일까? 아니면 표면상이 아닌 깊은 곳에 자신의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 뜻일까?사카키바라 소년이<범행 성명문>에서 "언제까지나 투명한 존재로서의 나"라고 썼는데,그보다 28년 전 친구의 목을 자른 열다섯 살 소녀 역시 스스로 '투명'한 존재라고 표현했다.그리고 괴의하게도 사카키바라 소년도 관동 의료소년원으로 송치되었다.(히로시를 살해한 소년A는 중등 소년원인 토치기 현 기츠레가와 소년원에서 " 직원이 독살하려 한다"며석 달 동안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고,자살극을 벌이는 등의 행동으로인해관동 의료소년원으로 송치되었다.)이후 소년A가 어떤 생활을 보냈는지는 피해자 가족조차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다만 당시의 동급생이 소년A는 소년원에서 육법전서를 주문해 법률 공부를 했고,어떻게든 자신이 한 짓을 정당화 하려고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中 9
고베 연쇄 살인사건과 닮은 [가가미히로시 살인사건.]
내용이 깁니다.요약해서 읽으실 분들은 보라색으로 표시해 둔 부분과밑줄친 부분만 읽어주세요.
알렉수님의 사카키바라 사건에 관련된 글을읽고 생각난 일본의 살인사건이 있어,
그에 관한 글을 적어보려고합니다.글을 읽으시면서 느끼시겠지만,
이 사건의 특징은 1997년 일어난 고베 연쇄 살인사건(사카키바라 사건)과 무척 닮았다는 점입니다
( 가가미 히로시 사건이 사카키바라 사건보다 일찍 일어난 사건입니다 )
본 사건은, 책 "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쿠노 슈지) "으로도 출간되었으며
저 또한 그 책을 가지고있기에,
글에 적혀 있는 내용중에는 책에서 인용해 온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을 쓰는 내내 참고한 블로그 주소 링크 걸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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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일본. 학교 뒷산에서 한 고등학생이 온몸이 칼로 난자 당하고,머리까지 잘려나간 후
피투성이로 죽은 채 발견된다. 살해당한 고등학생의 이름은 " 가가미 히로시 (15세) "
히로시를 살해한 범인은 놀랍게도 같은 반 친구인 소년 A였다.
[이유는 동급생인 히로시가 자신을 왕따하고,괴롭힌다고 생각했기 때문.
소년 A는 키가 겨우 150센티미터로,동생보다 작았다.
게다가 목도 짧고 뚱뚱하며 눈까지 나빠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다녔다.
이런 탓에 동급생뿐 아니라 여동생까지도 소년A를 꼬맹이나 새끼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반면에 히로시는 키가 170센티미터나 되었고 성격도 밝고 시원시원했으며 등산에 취미를 붙이기 전까지
육상부에 속했던 스포츠 맨이었다.
이런 소년A를 히로시와 히로시의 친구들이 종종 별명을 부르며 놀리자 소년A는 그것을
자신을 왕따시킨다.괴롭힌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히로시를 살해한 것.
-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中]
가해자인 소년 A는 한 치의 뉘우침도 없었고,그 사건과 범인은 1997년 비닐봉지에 초등학생의
머리가 발견된 "고베 연쇄 살인사건(사카키바라 사건)"과 꼭 닮아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베 연쇄 살인사건(여기서부턴 사카키바라 사건이라 칭하겠다)의 범인인
사카키바라 소년 또한 소년A와 비슷한 나이였던 15살이었던 것.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히로시의 가족들은 그 사건에서
한 걸음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은 말이 없었고,어머니는 정신병까지 앓았으며 머리는 백발로 변했다.
히로시의 동생 미유키는 자살시도까지 했으며,히로시의 가족들은 가해자를 원망할 여유마저 없어서
단 한 번도 가해자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해자(소년A)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
('소년법'의 보호를 받아 의료 소년원에서
3년여만을 지내며 무료로 공부까지 마치고,전과도 없이 사회로 나옴.)을 받고,
놀랍게도 성공한 변호사가 되었다. 후에 히로시의 어머니는 소년A와 어렵게 연락이 닿아
사죄의 말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단 한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은 채 모든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했으며, 그게 왜 나빴는지 자신이 왜 사과를 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뻔뻔스러운 태도와목소리로 일관했다.
책 -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쿠노 슈지)에 적혀있는 사건의 자세한 내용입니다.
히로시가 다니던 " 살레지오 고등학교 "는 선교재단 소속 남자 고등학교로,가톨릭 계열의 고등학교이다.
당시 학생 수는 410명이었으며 1,2학년이 네 학급,3학년이 세 학급인 중간 규모의 학교였다.
사건은 히로시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겨우 2주째 되는 날이었다.
1969년 봄.
처참한 사건이 일어난 그날은 진달래 꽃이 꽃망울을 활짝 터트린 화창한 초여름 같은 날씨였다.
4월 23일 오후 4시 무렵 이미 수업이 끝난 교정에는 동아리 활동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정에 왼쪽 팔을 베어 피를 흘리는 학생이 실려왔다.
지난 4월에 갓 입학한 소년A였다.
죽 찢어진 왼쪽 어깨가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흘러나온 피는 이미 말라붙어 있었고,상처는 속살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었다.
상처를 부여잡고 피투성이가 된 채 걷는 학생을 마친 근처를 지나던 마을 사람이 발견해
차에 태워서 왔다고 했다. 교사들은 소년 A를 양호실로 옮긴 뒤,
피로 물든 셔츠를 벗기고 침대에 눕히려했다. 그런데 소년 A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 선생님, 전 괜찮으니까 빨리 가보세요. 히로시가 위험해요. 미친 녀석들이 일본도를 가지고
날뛰고 있어요. 선생님, 빨리 가 보세요. 히로시가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요."
소년A의 말을 들은 교사가 범인은 몇 명인지 어디에 있는지 묻자,
" 세 명이었나,두 명이었나….그보다 어서 빨리 히로시를 살려주세요!"
라고 소년 A는 얼버무리듯 대답했고,사건 현장도 분명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놀러 갈 곳은 학교 뒤편을 달리는 도메이 고속도로 너머의
진달래 꽃밭밖에 없었다. 교사들은 소년 A에게 "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격려한 뒤,
황급히 학교 뒤편으로 달려갔다. 당시 신문은 소년 A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갑자기 흰 남자가 부딪혀 왔다. 푹 하는 소리가 들린 순간, 왼쪽에 앉아 있던 히로시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나는 무작정 도망쳐 달렸고 도메이 고속도로 갓길에 서 있던
승용차의 도움을 받았다.
학교에 도착하고서야 왼팔을 다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를 덮친 남자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 1969년 4월 24일자 요미우리 신문.
교사들과 몇몇 학생들은 단단히 벼르고 달려갔지만 터널에서 50미터 떨어진 진달래 꽃밭에는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히로시가 쓰러져있었다. 모두들 경직된 채 꼼짝도 하지않았다.
히로시를 최초로 발견한 교사는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 제 앞에 히로시의 시체가 있는겁니다.파리랑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꾀어들었고 와이셔츠는
새빨갰습니다. 무엇보다도 끔찍했던 것은 머리가 몸통에서 대략 10미터 남짓 떨어진
진달래 꽃밭 두렁길에 뒹굴고 있었던 겁니다."
경찰이 발표한 부검 소견에 따르면 흉부 12군데,등 7군데,두부 12군데,안면 16군데 등 총 47군데가
칼로 난자당해 있었다. 특히 왼쪽 가슴 부위의 상처는 깊이가 15센티미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치명상이었다. 쇄골 아래 동맥도 절단되어 거의 즉사 상태였다.
경찰은 범인이 히로시를 찔러 죽인 뒤,왼손으로 머리를 세게 누르고 예리한 칼로
어깨부터 수평으로 목 부분을 잘랐다고 단정 지었다.
범행에 사용한 잭 나이프는 시체에서 3미터 떨어진 곳의 땅속에서 나중에 발견되었다.
범행 시각에 소년 A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던 '남자'들을 목격한 사람은 없는 반면,
"고등학생 두 명밖에 없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사건현장이 된 진달래 꽃밭의 주인이다.
"이 일대에 진달래를 도난당하는 일이 자주있었다. 그때도 하얀 셔츠를 입은 고등학생 둘이 걷고 있기에
어쩌면 진달래 꽃 도둑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켜보고 있었다. 그 둘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건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같이 있던 학생이 범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그날은 날씨가 맑았지만 전날 비가와서 땅이 젖어 있었다.발자국이 있으면 그게 범인인 것.
그렇지만 쓰러져 있던 고등학생 주위에는 운동화 자국밖에 없었다.
따로 범인이 있었다면 발자국이 없다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소년A는 전혀 모르는 남자들의 범행이라고 끝까지 우겼다.
소년A의 진술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고 미심쩍은 것도 너무 많았다.
게다가 농가 주인의 증언이 있었기에 경찰은 마지막까지 그에게 혐의를 두고 있었다.
소년A를 범인 취급하는 경찰에게 학교 측은 소년A의 말만 믿고 점점 반발의 강도를 더해갔다.
이 때문에 소년A를 범인으로 압축해가던 경찰과 끝까지 소년A는 범인이 아니라고 버티는 학교 사이에
한바탕 말썽이 일어나자,경찰은 학교측이 범인을 은닉하려는 것이아닌지 의심했을 정도였다.
학교는 경찰의 거듭되는 사건 진술 요청을 '학생 보호'라는 이유로 거부.
피가 묻은 셔츠를 증거로 제출해주기를 바란다는 신청마저도 그럴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소년A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뿐이라고 믿는 학교 측과 범인임을 확신한 경찰 측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너무나도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형사들을 보며
학교 측은 한걸음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년A의 사건 진술이 시작되었다. 소년A는 변함없이 세 남자가 범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을 구체적으로 던지면 "기억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건진술이 있던 그날 밤 소년 A는 결국 자신의 범행이었음을 자백했다.
소년A가 입고있던 피로 물든 와이셔츠와 흉기인 잭나이프에서
히로시와 소년A의 혈액이 검출되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사건이 일어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다음은 소년A의 증언이다.
(앞부분 중략…)
히로시는 혼자 서쪽 둑으로 뛰어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 찔러버리겠다고 결심했는데,
히로시가 정말 내려왔다. 그래서 뒤에서 잭나이프로 목덜미를 푹 찔렀는데,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덜컥 겁이났다. 그래서 마구 찔러댔다. 그가 쓰러진 뒤에도 몇 번을 더 찔렀다.
히로시는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졌지만 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다시 살아날 것 같았고,그러면 내가 한 짓이 들통이 나 버린다.
그래서 완전히 죽여야겠다고 마음먹고 목 부분을 정신없이 잘랐다.
(감식 결과 10분 남짓 소요된 것으로 보임.)
소년A는 부유한 아버지를 둔 자식이었다.
소년A의 아버지인 도시오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강요받았던 것처럼 아들의 삶을 강요한다는 것을
도시오는 깨닫지 못했다. 그렇지만 소년A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아버지의 기쁨은 오로지 나 하나이다. 나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따라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사건 후 진술했다. 아버지의 기대가 소년A의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듯<소년조사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버지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함. 아버지의 뜻은 무조건 받아들임. 선악에 관한 사회규범 전무.
아버지가 선이라면 선,악이라면 악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없음.]
<감별 결과 통지표>는 소년A의 성격에 대해
"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혼자 있고 싶어 하며,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지극히 두려워한다"고 분석했다.
성격 및 행동 상태에 대해서는,
" 자기 중심적이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다. 사디즘적인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때때로 동물적인 반응을 보이며 흥분하면 앞뒤 구별이 없어진다"
라고 <소년조사표>에 기록되어있다.
<정신 감정서>에는 소년A와 가정재판소 조사관이 나눈 대화가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었다.
ㅡ언제 히로시를 찔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찌르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ㅡ어떤식으로 찌를 생각이었나?
"모르겠습니다."
ㅡ정신을 차리고 보니 찌르고 있었나?
"네,차라리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ㅡ어떤 생각?
" 처음에 ' 돼지야 ' 라는 말을 듣고 화가 치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않았습니다.
그는 5분 정도 투덜거렸습니다. 저는 뻔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혼자서 옛날 일…
그러니까 계속 녀석에게 당했다는 생각…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ㅡ사건을 전부 기억하는가?
"네,대체로 다 기억합니다."
ㅡ그동안 참았던 것에 대한 보복이었나?
"그런 의식은 없었습니다."
ㅡ그럼 뭐지? 심심풀이였나?
"그건 아닙니다."
ㅡ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폭발…."
ㅡ무슨 폭발?
"(2,3분 침묵)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ㅡ목을 자른 이유는?
"(30초 침묵)나중에,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찔렀습니다."
ㅡ그 일을 기억하나?
"예."
(중략)
ㅡ사건 후 우쭐한 기분이 들었나?
"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절망에 빠지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ㅡ히로시를 해치우고 후련한 기분에 우쭐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아닌가?
"…그런 기분도 있었습니다."
ㅡ지금은 어떤가?
"…지금이요?…지금도 그런…."
이 글을 읽는 한,적어도 급우를 살해한 행동을 뉘우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반성이나 사죄하는 말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절망에 빠지지 말자'며 스스로를 격려하고,범행 동기를 '과거의 인간'과 결부시켰으며,
더욱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이긴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더구나 소년A는 조사관에게,
"나는 앞으로 히로시의 몫까지 합해서 두 사람의 몫의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고한다.
훗날 보도된 내용을 보면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째 되는 날 소년A는 일지에
"1년 전 오늘은 투명했다"고 썼다.
이 '투명'이라는 단어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현재를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는 뜻일까? 아니면 표면상이 아닌 깊은 곳에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 뜻일까?
사카키바라 소년이<범행 성명문>에서 "언제까지나 투명한 존재로서의 나"라고 썼는데,
그보다 28년 전 친구의 목을 자른 열다섯 살 소녀 역시 스스로 '투명'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괴의하게도 사카키바라 소년도 관동 의료소년원으로 송치되었다.
(히로시를 살해한 소년A는 중등 소년원인 토치기 현 기츠레가와 소년원에서 " 직원이 독살하려 한다"며
석 달 동안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고,자살극을 벌이는 등의 행동으로인해
관동 의료소년원으로 송치되었다.)
이후 소년A가 어떤 생활을 보냈는지는 피해자 가족조차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다만 당시의 동급생이 소년A는 소년원에서 육법전서를 주문해 법률 공부를 했고,
어떻게든 자신이 한 짓을 정당화 하려고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