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마 14:14) 연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 (Splanchnizomai)다. 의사로 일하거나 학교에서 내장학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면 이 단어를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내장학은 말 그대로 창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마태사도의 말은 무심코 느끼는 연민을 뜻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훨씬 더 시각적인 의미를 달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상처를 폐부 깊이 느끼셨다. 그분은 병자의 고통을 느끼셨다. 그분은 절름발이의 절뚝거림을 느끼셨다. 그분은 문둥병 환자의 외로움을 느끼셨다. 그분은 죄이느이 수치를 느끼셨다. 그리고 그분은 일단 아픔을 느끼신 이상. 치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으셨다. *********아침향기 중에서************* 5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마 14:14)
연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
(Splanchnizomai)다.
의사로 일하거나 학교에서 내장학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면 이 단어를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내장학은 말 그대로 창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마태사도의
말은 무심코 느끼는 연민을 뜻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훨씬 더 시각적인 의미를 달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상처를 폐부 깊이 느끼셨다.
그분은 병자의 고통을 느끼셨다.
그분은 절름발이의 절뚝거림을 느끼셨다.
그분은 문둥병 환자의 외로움을 느끼셨다.
그분은 죄이느이 수치를 느끼셨다.
그리고 그분은 일단 아픔을 느끼신 이상.
치유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으셨다.
*********아침향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