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순수열정201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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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많은 학창시절, 요즘과는 달리 핸드폰도 삐삐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때, 우리또래 소녀들의 중요한 소통 수단은 "편지"였다.

 

그리고 또한 요즘과는 달리, 편지지의 그림과 디자인은 아름다운 자연풍경사진이나, 해지는 도시의 풍경 그림등이었고 그런 편지지는 무척이나 감수성을 자극하고 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쓰고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지는 도시에 가로등이 켜져있는 풍경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지만 나에게 특히 다가왔던 것은 어느 바다 한가운데 커다란 배가 구름속에 비치는 태양의 빛을 받고 어디론가 항해하는 듯한 그림혹은 사진이었다. 아직 인생의 목적지에 대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그것은 내가 가야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단편을 우연히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을때 왠지 모르게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주문을 해 놓고 기다리며 내 마음에 떠오른 심상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마 지금 그 사진을 보아도 여전히 나는 넘실거리는 바다와, 구름속에 비치는 태양을 보고 있는 배안의 누군가이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다.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에 가는 것이 어려서부터 꿈이고, 목표였던 주인공은 무슨 이유인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결혼식 직후 곰스크로 가는 차표를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르고 사서 특급열차에 오른 후, "인생의 목표가 다가온다는 예감에 사로잡혀 전율과도 같은 쾌감을 느끼는" 주인공과 달리 이제 막 인생의 동반자가 된 아내는 시큰둥하기만 하다.

 

항상 그렇듯이 아내는 익숙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고 안정된 것을 원한다. 여행 둘째날 두시간을 정차하게 된 어느 마을에서, 부부는 아름다운 풍경에 끌려 특급열차를 놓치고 만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다시 곰스크로 가는 열차를 타려고 하지만 혼자만의 노력일 뿐, 아내는 어느덧 아름다운 시골마을에 급속도로 적응하고 있었다.

마을 간이역에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언제 오는지 아무도 몰랐고 또 그냥 지나칠지, 얼마동안 정차할지도 몰랐다.

 

결국 시간이 흘러 어렵게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할때, 아내의 임신을 알게 되고 긴 기차여행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 공석이었던 마을학교의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과 집을 얻게 되면서 이제는 거의 마을에 눌러있게 된듯하다. 그러면서 아이를 셋낳고, 아기자기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마음 한곳에 "곰스크"라는 단어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곰스크로 가는 특급열차가 저 멀리 돌진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찢어지는 듯 슬픈 기적소리가 초원을 뚫고 울리다가 멀리 사라질 때면, 갑자기 뭔가 고통스러운 것이 솟구쳐 나는 쓸쓸한 심연의 가장자리에 놓인것 처럼 잠시 서 있곤 한다.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말없이 아내와 아이들 곁을 지나쳐 내 전임자가 죽을 때까지 묵었던 바로 그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나는 문을 잠그고 침대에 몸을 던진 채 그 나머지 시간을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고 숨어서 보내곤 하는 것이다" 라는 주인공의 고백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독문과 재학시절 중간시험 대신으로 이 소설을 일부 번역하는 과제를 하다가 모두 번역하게 되었다는 안광복씨의 해설이 마음에 다가왔다.

 

"모든 끌림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때는 몰랐다. 곰스크가 왜 그토록 절절하게 다가왔는지를. 돌이켜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 삶의 메타포였다. 아니, 어떤 누구의 인생이라도 삶은 '곰스크로 가는 기차'와 비슷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에게 다가오는 곰스크의 의미는 이루지 못한 꿈-하지만 섣불리 시도하기에는 모험같은 일 로 여겨진다.

나에게 있어서의 곰스크들이 떠오른다.

아주 작은 실례로, 나는 대학의 과를 선택하는 데 있어 사실 국문학과가 무척 가고 싶었지만 취업이 저조하고, 전망이 좋지않다는 이유때문에 중문학과를 선택했다. 물론 그 이후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놀랍고 감사한 일들이 많았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국문학과를 갔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체육시간 선택종목에 나는 윈드서핑 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수영을 잘해야 한다, 한강물이 더럽다 등등의 두려움들이 결국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택하는 볼링을 선택하게 했다.

 

사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으며 - 말씀을 묵상할 때도 그렇듯이 - 무척이나 감정이입이 되는 대상은 주인공이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아내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답답해하고 있었고, 나의 꿈을 방해하고 발목을 잡는 것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무언가를 이루고 싶을때 경제적인것, 앞으로의 전망, 안락함 등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현실에 안주하게 하지는 않는지...

 

그러나 작가는 소설속에 이 한마디를 넣었다.

 

"보시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했던 것이지요."

 

간절히 갈망했다면 그것을 행했을 것이다. 나역시 마찬가지이다.

곰스크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지금의 삶에 불평하고, 충실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나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내가 선택한 삶에 책임을 져야 하고, 삶은 목표만이 전부가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내의 상태나 마음을 진심으로 동감하지 못하고 곰스크만을 바라보았던 주인공의 태도에서 한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면 "이기심"이 아닐까 싶다...

 

삶은 목표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도 중요하다.. 함께 마음을 모으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걷는것이 중요하다...

라는 생각도 들게한, 좋은 소설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나의 자녀만은 꼭 자신만의 곰스크행을 타게 하고 싶다. 어떤 방해나 이유들에 얽매이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곰스크에 도착하는 것에 성공하기를 기도하고 싶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