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고 3 수험생입니다 ..; 내일모레가 시험인데 잠이 하도 안와서 네이트 판 이것저것 보다가 난생 처음으로 톡에 글을 올려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는 기독중창동아리 A가 있습니다. 원래 음악에도 관심있고 10여년 동안 개신교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별 다른 이유 없이 이 동아리에 들었습니다. 이 동아리는 다른 남학교와 연합을 맺어 이번까지 20년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여러가지 활동을 매년 같이 해오는 탓인지라 동아리원들끼리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단지, 저희는 남자와 여자이기 때문에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감정을 억제시키기 위해 전통적으로 모임내에 이성교제는 엄격히 금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17살이 되던 해 11월에 23살의 시니어(senior) 선배님에게 관심의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동아리 내에서 혼자 있고 고립되는 걸 좋아했던 저를 보고 안타까웠는지 그 선배님도 저에게 신경써 주시고 잘 챙겨주셨습니다. 그 관심이 대체 언제부터 점점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가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저희 둘은 비밀스런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이 차, 동아리의 규율, 그리고 그를 좋아했던 다른 동아리 친구와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작은 사랑의 씨앗을 차츰차츰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일단은 그 친구와의 문제가 제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모든 고민을 동아리 선배들에게 터놓는 그 친구와는 달리 저는 항상 아무말없이 갈등이나 고통을 짖누르며 지내온 탓일까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동아리의 모든 사람들은 다 그 친구의 입장에 서 있었고 제 곁에는 오로지 '그'뿐만이 지지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저는 약 1년동안 동아리 안에서 다른 선배들, 동기들에게 갖가지 욕을 먹고, 차가운 눈초리와 심리적 압박을 당했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그를 저보다 먼저 좋아했지만 그에게 무시당했다는 상처와 제가 고민을 말하지 못해서 오해를 샀다면, 그 친구는 고민을 다 말해버려서 받았을 스트레스와 상처도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저에게 '동아리'라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찬 기억이 되어버렸고, 엄마와의 의견과 부딪치면서 또 다시 고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연지사 부모님의 눈에는 18살의 귀한 딸이 6살 차이가 나는 24살 아저씨와 만난다는 것이 충격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실 겁니다. 저는 저희 엄마를 설득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전했고, 결국 엄마는 저의 순수하디 어린 마음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작과 만남이었어서 였을까요 ..? 저희 둘은 정말 이 세상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 할 정도로 서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말입니다. 제가 18살이 되던 해 3월에 ROTC 장교로 최전방에 군입대를 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너무나도 사랑했고, 그는 어릴 적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저에게 새로운 관심과 사랑, 보살핌을 줌으로써 항상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다 되도록 사랑했던 두 남녀는 사람들이 '권태기'라고 부르는 시기에 맞닥쳤었나 봅니다. 그 사람이 단순히 나이가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만나고 난 뒤로는 한번도 싸워본적이 없는 저희에게도 권태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아니, 저의 일방적인 권태기였습니다. 군대를 기다린지 5개월쯤 되었을까요..? 18살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100일 훈련을 떠나면서 연락이 잘 안되고, 장교로써 신참인 소위신분의 그는 하루하루 더 지쳐갈 뿐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여러 말도 안되는 말들과 저에게 관심있다는 남자들의 유혹에 못이겨 결국 그에게 이별을 선고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별을 전화 통화로 고했을 때, 그는 ... 아무 질문도..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OO이가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잘 지내요..."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혼자 웅크려 1시간을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아파할 것을, 그렇게 힘들어할 것을 ... 그리고 이렇게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저는 고3이 되고 그는 '중위'라는 계급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그 1년 사이에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기도 했었고, 나름 그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사람의 소식을 찾게 되는 건 저였습니다. 헤어진지 한 달 째에는 그 사람의 미니홈피를 매일 들려 다이어리를 읽었고 헤어진지 세 달 째에는 0000으로 번호를 바꿔 그 사람을 위한 문자를 보냈고, 1004로 답장이 오는 그 사람의 문자에 또 한번 가슴아파 했고 헤어진지 반년 째에는 동아리에서 탈퇴한 뒤 다른 동아리 친구에게 그 사람이 시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휴가를 나왔다던 그 사람을 찾아 시내의 온 구석구석을 혼자서 돌아다녔고 헤어진지 1년 째 되는 오늘 날까지는 ...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은 노래를 들으며 가끔씩 행복했던 추억에 물들어 눈물을 감추지 못하곤 합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저를 잊은 것 같은데, 저는 자꾸만 옛 기억에 젖어들어 아파하고 아쉬워하는지를.......
19살 여고생과 25살 장교의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고 3
수험생입니다 ..;
내일모레가 시험인데 잠이 하도 안와서
네이트 판 이것저것 보다가
난생 처음으로 톡에 글을 올려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는 기독중창동아리 A가 있습니다.
원래 음악에도 관심있고 10여년 동안 개신교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별 다른 이유 없이 이 동아리에 들었습니다.
이 동아리는 다른 남학교와 연합을 맺어 이번까지 20년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여러가지 활동을 매년 같이 해오는 탓인지라
동아리원들끼리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단지, 저희는 남자와 여자이기 때문에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감정을 억제시키기 위해
전통적으로 모임내에 이성교제는 엄격히 금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17살이 되던 해 11월에
23살의 시니어(senior) 선배님에게 관심의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동아리 내에서 혼자 있고 고립되는 걸 좋아했던 저를 보고 안타까웠는지
그 선배님도 저에게 신경써 주시고 잘 챙겨주셨습니다.
그 관심이 대체 언제부터 점점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가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저희 둘은 비밀스런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이 차, 동아리의 규율, 그리고 그를 좋아했던 다른 동아리 친구와의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작은 사랑의 씨앗을 차츰차츰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일단은 그 친구와의 문제가 제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모든 고민을 동아리 선배들에게 터놓는 그 친구와는 달리
저는 항상 아무말없이 갈등이나 고통을 짖누르며 지내온 탓일까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동아리의 모든 사람들은 다 그 친구의 입장에 서 있었고
제 곁에는 오로지 '그'뿐만이 지지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저는 약 1년동안 동아리 안에서 다른 선배들, 동기들에게 갖가지 욕을 먹고,
차가운 눈초리와 심리적 압박을 당했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그를 저보다 먼저 좋아했지만 그에게 무시당했다는 상처와
제가 고민을 말하지 못해서 오해를 샀다면,
그 친구는 고민을 다 말해버려서 받았을 스트레스와 상처도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저에게 '동아리'라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찬 기억이 되어버렸고,
엄마와의 의견과 부딪치면서 또 다시 고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연지사 부모님의 눈에는 18살의 귀한 딸이 6살 차이가 나는 24살 아저씨와 만난다는 것이
충격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실 겁니다.
저는 저희 엄마를 설득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전했고,
결국 엄마는 저의 순수하디 어린 마음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작과 만남이었어서 였을까요 ..?
저희 둘은 정말 이 세상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 할 정도로
서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말입니다.
제가 18살이 되던 해 3월에 ROTC 장교로 최전방에 군입대를 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너무나도 사랑했고,
그는 어릴 적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저에게
새로운 관심과 사랑, 보살핌을 줌으로써
항상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다 되도록 사랑했던 두 남녀는
사람들이 '권태기'라고 부르는 시기에 맞닥쳤었나 봅니다.
그 사람이 단순히 나이가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만나고 난 뒤로는 한번도 싸워본적이 없는 저희에게도
권태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아니,
저의 일방적인 권태기였습니다.
군대를 기다린지 5개월쯤 되었을까요..?
18살 어린 소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100일 훈련을 떠나면서 연락이 잘 안되고,
장교로써 신참인 소위신분의 그는 하루하루 더 지쳐갈 뿐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여러 말도 안되는 말들과
저에게 관심있다는 남자들의 유혹에 못이겨
결국 그에게 이별을 선고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별을 전화 통화로 고했을 때,
그는 ...
아무 질문도..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OO이가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잘 지내요..."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혼자 웅크려 1시간을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아파할 것을,
그렇게 힘들어할 것을 ...
그리고 이렇게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저는 고3이 되고 그는 '중위'라는 계급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그 1년 사이에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기도 했었고,
나름 그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사람의 소식을 찾게 되는 건 저였습니다.
헤어진지 한 달 째에는 그 사람의 미니홈피를 매일 들려 다이어리를 읽었고
헤어진지 세 달 째에는 0000으로 번호를 바꿔 그 사람을 위한 문자를 보냈고,
1004로 답장이 오는 그 사람의 문자에 또 한번 가슴아파 했고
헤어진지 반년 째에는 동아리에서 탈퇴한 뒤 다른 동아리 친구에게
그 사람이 시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휴가를 나왔다던 그 사람을 찾아 시내의 온 구석구석을 혼자서 돌아다녔고
헤어진지 1년 째 되는 오늘 날까지는 ...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은 노래를 들으며
가끔씩 행복했던 추억에 물들어 눈물을 감추지 못하곤 합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왜 이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저를 잊은 것 같은데,
저는 자꾸만 옛 기억에 젖어들어 아파하고 아쉬워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