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불교의 나라다. 불상을 만들고 그 뜻을 만나고 여기저기 물 가까이 그리고 도시 한 가운데 사찰이 있다. 수십, 수백의 불상이 그 안에 모셔져 있고 사람들은 끝도 없이 불상 앞에 무릎을 꿇어 향을 올린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불상을 섬기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존경하는 사람에게- 때론 소중한 벗에게 목을 낮춰 인사하는 것처럼 이들은 자신을 낮춰 부처의 뜻과 자신의 믿음을 높이는 것. 또한 연못 위로 고개를 비추는 것이 결국 자신을 보려는 이유인 것처럼 몸을 아래로 내려 불상을 거울로 자신의 마음을 보려는 것이다. 늦게 눈을 뜨고 늦은 아침을 먹고 선선하게 바람이 부는 가장 쾌적한 태국 날씨를 머리에 얹은 채 지하철과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를 건너 왓포에 이르렀다. 왕궁과 닿아있는 방콕에서 가장 큰 사찰. 거대한 와불로 유명한 곳. (사실 세계 최대의 와불은 한국에 있지만) 사찰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몸가짐을 점검했다. 치마가 짧은 사람은 사찰에서 옷을 빌려 걸쳤고 법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말을 신었다. 스스로 자신을 추스리는 사람들의 풍경은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마음의 가장 안쪽 문을 열고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깊은 곳으로 주뼛주뼛 발을 들이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뭘 안다고 얇은 무릎을 포개앉고 향을 피운다 두 손을 모아 입을 오물거리며 기도를 하고 있다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저 나이에도 빌어야 하는 소원이 있을까? 이유를 몰랐지만, 또 저 아이가 어느 날 개종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는 동안 어쨌든 그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생각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 앞에 단단하고 야무질 것이다. 와불은 생각보다 제법 컸다. 왓포의 와불 사진을 보면 거의 99%가 똑같은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법당 전체에 와불이 가득차있어서 다른 각도에서는 카메라 안에 와불이 한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워낙 비스듬한 각이어서 좀 작아보이지만 결코 만만한 크기는 아니다. 정보를 좀 찾아보니 이 와불의 길이만 대략 50미터. 사람들은 부처님의 얼굴을, 누운 어깨를, 발바닥을 찍기 위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결국 와불이 한 앵글에 들어오는 단 하나의 자리로 모여든다. 좀 버릇없는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의 불상 얼굴은 어느 순간 개구쟁이처럼 보인다. 태국의 불교는 상좌부 불교다. 한국의 대승불교와는 조금 다르다. 소승불교라는 말은 대승불교의 측면에서 상대를 낮춰부르는 경향이 있어 상좌부불교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들었다. (좀 더 파고들면 부문이 좀 더 나뉘는 것 같다) 그저 주워들은 것이니까 혹시 오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충 내가 아는 것은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시대의 전통불교가 시대적 조류, 대중과 호흡하며 변해온 것이라면 상좌부불교는 대승불교 보다는 조금 더 원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승불교는 기도와 불경 공부, 대중과의 소통 등도 중요시 하는 반면 상좌부불교는 석가모니 부처처럼 중요한 문제들을 스스로 궁구하는 것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커다란 와불을 돌아가면 사람들은 작은 카운터에 지폐를 내고 작은 철 그릇에 담긴 수십개의 동전과 교환한다. 그리고 그 동전을 벽면을 따라 길게 이어진 놋쇠 항아리에 한개 씩 집어넣으며 소원을 빈다. 저들의 등과 진지한 얼굴은 마치 마니차를 돌리는 것 같아 보였다. 미신이다. 아마도 돈을 벌기 위해 절의 누군가가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냈을. 혹은 대대로 기복신앙에 의지해온 어느 신도가 밋밋한 자신의 믿음에 극적인 뭔가를 부여하고 싶어 꾸민 것일지도. 그러나 내 어머니가 아마도 부질 없을 것을 알면서도 도심 한 복판 사찰에 등을 켜고 일년에 몇 번 기도를 다니는 것처럼 나는 이 미신을 위해 기꺼이 지폐를 내고 동전을 받았다. 나는 빌고 싶은 소원이 아주 많았고 가슴 안에 온통 바람과 기원으로 가득 차있다. 어쩌면 만의 하나라도-하는 기적과 반전에 대한 미약한 기대심리 때문에, 혹은 어떤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들에 대하여 때론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외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다했었다고 마음을 놓아주는 그 포기와 용서의 순간을 좀 더 빨리 갖기 위해 쨍그랑 동전을 저 안으로 떨어트린다, 물론 우리는 조만간 저기에 던져 넣은 동전을 가마득하게 잊은 채 살겠지만. 그래서 이 법당을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멈추지 않는 쨍그랑 쨍그랑 소리 무슨 쉬지 않고 이어지는 목탁소리나 염불소리처럼 사람들의 작은 기대와 한숨이 가득히 떨어지는 소리다. 그 소리가 온통 와불이 누운 법당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가뭄에 콩나듯이 혼자 절에 들러 한참동안 불상을 쳐다보다가 돌아서는 때는 내 안에 있는 자신이 너무 무거워서 정말 숨을 쉴 수도 없을만큼 크고 힘에 부쳐서 대책을 불상과 토론하고, 호소하고, 부탁하거나 혹은 단념해야 할 때다. 맞다. 카잔차키스가 말한 것처럼 종교란 무슨 약과 같아서 건강할 때는 관심도 없다가 아프고 힘드는 순간에야 비로소 찾게 되는 것이라고. 이 많은 사람 대부분이 사실은 기껏해야 유명한 절을 둘러 볼 생각으로 왓포에 발을 들인 것이겠지만 한참동안 절의 구석구석에 머무는 사람들은 가끔씩 꽤 오래되어 간당간당한 소원과 기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젊던 시절을 가득 채울만큼 절박하고 커다란 것이었다. Bangkok 당신과 나의 더 많은 이야기, www.kyome.com
★★사진★★여행에세이★★두근두근 방콕 왓포를 가다!
태국은 불교의 나라다. 불상을 만들고 그 뜻을 만나고
여기저기 물 가까이 그리고 도시 한 가운데 사찰이 있다.
수십, 수백의 불상이 그 안에 모셔져 있고
사람들은 끝도 없이 불상 앞에 무릎을 꿇어 향을 올린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불상을 섬기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존경하는 사람에게- 때론 소중한 벗에게 목을 낮춰 인사하는 것처럼
이들은 자신을 낮춰 부처의 뜻과 자신의 믿음을 높이는 것.
또한 연못 위로 고개를 비추는 것이 결국 자신을 보려는 이유인 것처럼
몸을 아래로 내려 불상을 거울로 자신의 마음을 보려는 것이다.
늦게 눈을 뜨고 늦은 아침을 먹고
선선하게 바람이 부는 가장 쾌적한 태국 날씨를 머리에 얹은 채
지하철과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를 건너 왓포에 이르렀다.
왕궁과 닿아있는 방콕에서 가장 큰 사찰. 거대한 와불로 유명한 곳.
(사실 세계 최대의 와불은 한국에 있지만)
사찰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몸가짐을 점검했다.
치마가 짧은 사람은 사찰에서 옷을 빌려 걸쳤고
법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양말을 신었다.
스스로 자신을 추스리는 사람들의 풍경은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마음의 가장 안쪽 문을 열고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깊은 곳으로 주뼛주뼛 발을 들이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뭘 안다고 얇은 무릎을 포개앉고 향을 피운다
두 손을 모아 입을 오물거리며 기도를 하고 있다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저 나이에도 빌어야 하는 소원이 있을까?
이유를 몰랐지만, 또 저 아이가 어느 날 개종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는 동안 어쨌든 그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생각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 앞에
단단하고 야무질 것이다.
와불은 생각보다 제법 컸다.
왓포의 와불 사진을 보면 거의 99%가 똑같은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법당 전체에 와불이 가득차있어서
다른 각도에서는 카메라 안에 와불이 한번에 들어오지 않는다.
워낙 비스듬한 각이어서 좀 작아보이지만 결코 만만한 크기는 아니다.
정보를 좀 찾아보니 이 와불의 길이만 대략 50미터.
사람들은 부처님의 얼굴을, 누운 어깨를, 발바닥을 찍기 위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결국 와불이 한 앵글에 들어오는 단 하나의 자리로 모여든다.
좀 버릇없는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의 불상 얼굴은 어느 순간 개구쟁이처럼 보인다.
태국의 불교는 상좌부 불교다. 한국의 대승불교와는 조금 다르다.
소승불교라는 말은 대승불교의 측면에서 상대를 낮춰부르는 경향이 있어
상좌부불교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들었다.
(좀 더 파고들면 부문이 좀 더 나뉘는 것 같다)
그저 주워들은 것이니까 혹시 오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충 내가 아는 것은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시대의 전통불교가 시대적 조류, 대중과 호흡하며 변해온 것이라면
상좌부불교는 대승불교 보다는 조금 더 원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승불교는 기도와 불경 공부, 대중과의 소통 등도 중요시 하는 반면
상좌부불교는 석가모니 부처처럼 중요한 문제들을 스스로 궁구하는 것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커다란 와불을 돌아가면 사람들은 작은 카운터에 지폐를 내고
작은 철 그릇에 담긴 수십개의 동전과 교환한다.
그리고 그 동전을 벽면을 따라 길게 이어진 놋쇠 항아리에 한개 씩 집어넣으며 소원을 빈다.
저들의 등과 진지한 얼굴은 마치 마니차를 돌리는 것 같아 보였다.
미신이다.
아마도 돈을 벌기 위해 절의 누군가가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냈을.
혹은 대대로 기복신앙에 의지해온 어느 신도가
밋밋한 자신의 믿음에 극적인 뭔가를 부여하고 싶어 꾸민 것일지도.
그러나 내 어머니가 아마도 부질 없을 것을 알면서도
도심 한 복판 사찰에 등을 켜고 일년에 몇 번 기도를 다니는 것처럼
나는 이 미신을 위해 기꺼이 지폐를 내고 동전을 받았다.
나는 빌고 싶은 소원이 아주 많았고
가슴 안에 온통 바람과 기원으로 가득 차있다.
어쩌면 만의 하나라도-하는 기적과 반전에 대한 미약한 기대심리 때문에,
혹은
어떤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들에 대하여
때론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외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다했었다고 마음을 놓아주는
그 포기와 용서의 순간을 좀 더 빨리 갖기 위해
쨍그랑 동전을 저 안으로 떨어트린다,
물론 우리는 조만간 저기에 던져 넣은 동전을 가마득하게 잊은 채 살겠지만.
그래서 이 법당을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멈추지 않는 쨍그랑 쨍그랑 소리
무슨 쉬지 않고 이어지는 목탁소리나 염불소리처럼
사람들의 작은 기대와 한숨이 가득히 떨어지는 소리다.
그 소리가 온통 와불이 누운 법당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가뭄에 콩나듯이 혼자 절에 들러 한참동안 불상을 쳐다보다가 돌아서는 때는
내 안에 있는 자신이 너무 무거워서
정말 숨을 쉴 수도 없을만큼 크고 힘에 부쳐서
대책을 불상과 토론하고, 호소하고, 부탁하거나 혹은 단념해야 할 때다.
맞다. 카잔차키스가 말한 것처럼 종교란 무슨 약과 같아서
건강할 때는 관심도 없다가
아프고 힘드는 순간에야 비로소 찾게 되는 것이라고.
이 많은 사람 대부분이 사실은 기껏해야 유명한 절을 둘러 볼 생각으로
왓포에 발을 들인 것이겠지만
한참동안 절의 구석구석에 머무는 사람들은 가끔씩
꽤 오래되어 간당간당한 소원과 기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젊던 시절을 가득 채울만큼 절박하고 커다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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