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저래 억울한것도 많지만 참 서러운것도 많지만 그냥 저냥 제 살아온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
열다섯에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서 정신병이 발발했습니다.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까지고 몇년이고 약물치료를 받는 중이기도 하구요. 물론 그때까진 저 작은 약봉지들이 어떻게 저를 이렇게 까지 달려오게 만들었는지 참 회의감이 드네요.
16살에 나름 명문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람 피말리는데는 인문계 학교라는 곳이 아직까지도 최고라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저는 도태되었죠.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앓는 병 자체가 일정한 수면패턴이 갑자기 깨지면 발작이 심해지는 경우라서. 그런요인도 있을것이고 결정적으로 그것때문에 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서 17살에 통신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죠.
하지만 지금도 통신고등학교에 간것을 꽤나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직업훈련소를 같이 다녔고. 그렇게 처음으로 직장을 얻었으니까요.
그렇게 다니던 그 회사. 하지만 그 일 자체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해야하는 일이라서 차마 제 있는곳을 떠날수가 없었던 저는 그렇게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일을 잘 잊을수 없는거는 첫직장이기도 했거니와 사람을 부려도 그렇게 부릴수가 있나 라고 들었던 생각때문이죠. 하루에 사진만 5000장씩 보면서 계속 단축키를 미친듯이 눌러댔던 사진편집일. 지금까지도 그때일이 제일 힘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아마도 제가 꼬이기 시작한거 같습니다.
여태까지 일했을때.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고생은 죽어라 해대는데 결국 받는돈은 절대 합당하지가 않더라구요 ㅋㅋ..
진짜 죽어라 일해서 한달에 60만원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최저임금이 시간당 3천원 갓 넘었을 때니까. 아마도 거기에 딱 맞게 받았던거 같아요.
그렇게 일을 해보고 이제 도시로 상경하게 되죠.
저와 같이 있었던 누나들과 굉장히 사소한것부터 시작해서 마찰이 참 많았던거 같습니다.
거기에 질리고 질려버린 나머지 어머니가 있었던 도시로 왔지만 결국 상황은 더 더럽게 된거 같네요. 지금 생각해 봐도 말이죠.
엄마라는 사람은 외간남자와 같이 살고있었고
그 남자라는 놈은 인간 말종에 쓰레기 였고
어머니라는 사람은 저를 그놈앞에 세우는 방패막이정도? 로 밖에 생각하지 않은거 같네요. 경찰서도 여러번 갔다오고 심지어는 어머니께서 몇번을 맞으셔서 심하게 입원한적도 있네요.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다가. 결국 저는 고등학교 공부도. 다니던 훈련소도 제대로 수료하지 못하게 된거같네요.
그렇게 헤어지라 헤어지라해도 안헤어지던 어머니가 그 개만도 못한 인간하고 헤어진게 근 2년만이었으니까.
그렇게 일이 대충 정리되었다 싶을때 기술학교를 들어가게 되요.
1년동안 공부를 하고. 자격증도 차곡차곡 쌓아서 4개정도 모이게 되고 이제 직장다운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똑같이 고생하는건 마찬가지더라구요 ㅋㅋㅋ..
뭐든지 자기일이 제일 힘들다고 하지만 회사안에서 제가 했던일이 트럭 한대정도의 물품을 포장해서 매일매일 출하시키는 일이어서 정말 육체적으론 최고조로 힘들었던거 같습니다.
사수라고 꼴에 붙어있는 대리라는 개놈의 새끼는 술먹고 자기는 이틀을 안나갈 지언정 저는 기어이 나가라고 택시비까지 주던 놈이었으니까요. 아직도 그 새끼 강아지인건 까도까도 계속 나올거 같습니다. 양파같이 말이죠. 뭐 그놈하고도 일화가 꽤나 여러가지 있지만 먹기도 싫은술 데려다니면서 먹이더니 술만먹이면 한다는 소리가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아냐." 그소리 할때마다 쥐어 패고 싶었습니다.
결국엔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던 그 강아지가 저보다 앞서 회사를 짤리게 되었을때 저는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죠. 나름 얄팍하게 살아온 지식이 있어서 그놈을 골탕먹이는 최종적인 계획이 성공한거니까요. 앞에서는 알았다고 말을한뒤에 뒤에서는 사원들을 통해서 그사람이 완전 쓰레기라는것만 증명시켜주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한 100개정도 말하면 두어개는 들어가기 마련인게 그건 그냥 그때 들으면 마는거고. 그렇게 과장을 거치고 부장을 거치고 사장귀에까지 들어가자 결국 회사를 짤리게 되더군요 ㅋㅋ..
뭐 그땐 그게 다일줄 알았죠. 이 회사의 장애물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장이라는 작자가 쌍욕까지 해대면서 저한테 뭐라고 하더라구요.
사장이란 사람의 인품이 어떤가 하면 직원들의 월급을 10%씩 감하고 난 바로 한달뒤에 렉서스 LS600HL을 타고오는 그런 사람이죠. (물론 그 두달뒤 리콜사태가 터져서 다들 쾌재를 불렀습니다.)
회사자체에 한달이상 버티는 사람이 손에 꼽을정도인지라 몇번 욕을 듣다가 결국엔 그 회사마저 나와버렸네요. 그런기간이 딱 1년걸린거 같습니다.
그렇게 한 한달정도 훈련소를 갈까. 아니면 직장을 다닐까 고민하던 찰나에 그 강아지라는 대리놈에게 연락이 오게 되죠. 자기가 일하는곳에 사람이 필요한데 한번 와봐라. 잘해줄꺼다.
거기에 또한번 속게될줄이야! ㅋㅋㅋㅋ 어휴 믿은 제가 바보였죠.
366시간 일하고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순간 정말 멍하게 되더라구요. 넌 아직 수습이니까. 넌 아직 배우는 중이니까. 이렇게 받아야 된다. 그리고 제가 지겹게 들었던 그소리. 회사가 너한테 투자를 하는거야. 라는 소리를 듣고 그 회사도 나왔습니다. 어찌됐든 저찌됐든 최저임금은 주고서 일을 시키셔야죠. 제가 일을 삥땅친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하는일이라곤 물건나르는 일밖에 없었고 기술도 개뿔 배우지도 못했지만 힘들게 일은 했으니까요.
그리고서 또 다른 일자리를 찿다가 들어가게 된곳이 금형회사.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런회사가 아직까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네요. 이 회사를 다닌뒤로 금형을 배워볼까 라는 생각이 싸그리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3D가 괜히 3D가 아니었나봅니다.
흑연을 깎아서 전극(물건 만들때 틀이 필요하잖아요? 플라스틱이던 뭘 만들던간에요. 그틀에서 깎이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깎기위해선 꼭 흑연으로 깎은 물체가 필요하다네요.)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더럽기는 말도 못할정도로 더러웠습니다. 분진가루가 코고 귀고 들어가서 파도파도 계속나오고 매일매일 샤워를 해도 가루들이 온몸에 묻어서 구정물이 새어서 나올정도였으니까요. 검은색이 아닌 다른옷을 입으면 그옷을 버려야 할정도였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더러운일은(비위생적이라고 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일 자체가 더러웠습니다. 힘든게 아니라 위생적으로 말이죠)처음봤던거 같네요.
근무시간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아침 9시 출근. 보통 새벽 1시 퇴근. 심지어는 일요일날 쉬는데도 눈치봐야하는 아주 괴상망측한 회사였으니까요. 물론 다른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하긴 하더라구요. 하지만 막상 회사를 나와서 네다섯시간 잠만 자고 있더라구요. 결국 그렇게 어찌어찌 한달은 버텼습니다. 매일매일 계산해본 근무시간은 약 400시간. 근 2주일 동안은 바쁘다는 이유로 9시에 출근해서 새벽 3~6시에 끝났으니까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어느날은 너무나 힘들어서 늦잠을 잤는데 정확히 시간이 열시쯤이었을겁니다. 새벽 4시에 들어가서말이죠.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빠졌다고 하더라구요 ㅋㅋㅋㅋ 10시에 퇴근하신분이 말이죠 ㅋㅋㅋ 긴장감이 없다고. 너 그러면 안된다고. 정말 기가 찼습니다. 와 이렇게 일하는 것도 서러운데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어찌어찌 한달을 버티고 지옥같았던 400시간의 노고를 받을려고 하는순간 또 골을 때리더라구요.
100만원.
ㅋㅋㅋㅋ.. 그놈의 100만원이 뭔지.. 그리고 또 한다는 소리.
"우린 너에게 투자하는거야."
"넌 수습이니까."
캬.. 모든 회사가 저런지 몰라도 결국엔 젊은날에 회사들어가면 개같이 부려만 먹힌다라는 진리를 알게 되기까지 꽤나 오랜시간이 걸린거 같네요.
노동착취만 당한채로 어느새 21살이 되어버린거 같습니다.
결국에 제가 느낀건 대학의 필요성과 중소기업에게 젊은이들이란 그저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라는 사실이죠..
17살때부터 달려온 지난 시간. 그리고 21살의 후기.
이래 저래 억울한것도 많지만 참 서러운것도 많지만 그냥 저냥 제 살아온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
열다섯에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서 정신병이 발발했습니다.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까지고 몇년이고 약물치료를 받는 중이기도 하구요. 물론 그때까진 저 작은 약봉지들이 어떻게 저를 이렇게 까지 달려오게 만들었는지 참 회의감이 드네요.
16살에 나름 명문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람 피말리는데는 인문계 학교라는 곳이 아직까지도 최고라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저는 도태되었죠.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앓는 병 자체가 일정한 수면패턴이 갑자기 깨지면 발작이 심해지는 경우라서. 그런요인도 있을것이고 결정적으로 그것때문에 휴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서 17살에 통신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죠.
하지만 지금도 통신고등학교에 간것을 꽤나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직업훈련소를 같이 다녔고. 그렇게 처음으로 직장을 얻었으니까요.
웹디자인계열에서 포토샵을 약간 배운 경험이 있어서 그걸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름 최연소 사진편집기사라고 자랑하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생각하면 참 부끄럽게도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다니던 그 회사. 하지만 그 일 자체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해야하는 일이라서 차마 제 있는곳을 떠날수가 없었던 저는 그렇게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때 일을 잘 잊을수 없는거는 첫직장이기도 했거니와 사람을 부려도 그렇게 부릴수가 있나 라고 들었던 생각때문이죠. 하루에 사진만 5000장씩 보면서 계속 단축키를 미친듯이 눌러댔던 사진편집일. 지금까지도 그때일이 제일 힘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아마도 제가 꼬이기 시작한거 같습니다.
여태까지 일했을때.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고생은 죽어라 해대는데 결국 받는돈은 절대 합당하지가 않더라구요 ㅋㅋ..
진짜 죽어라 일해서 한달에 60만원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최저임금이 시간당 3천원 갓 넘었을 때니까. 아마도 거기에 딱 맞게 받았던거 같아요.
그렇게 일을 해보고 이제 도시로 상경하게 되죠.
저와 같이 있었던 누나들과 굉장히 사소한것부터 시작해서 마찰이 참 많았던거 같습니다.
거기에 질리고 질려버린 나머지 어머니가 있었던 도시로 왔지만 결국 상황은 더 더럽게 된거 같네요. 지금 생각해 봐도 말이죠.
엄마라는 사람은 외간남자와 같이 살고있었고
그 남자라는 놈은 인간 말종에 쓰레기 였고
어머니라는 사람은 저를 그놈앞에 세우는 방패막이정도? 로 밖에 생각하지 않은거 같네요. 경찰서도 여러번 갔다오고 심지어는 어머니께서 몇번을 맞으셔서 심하게 입원한적도 있네요.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다가. 결국 저는 고등학교 공부도. 다니던 훈련소도 제대로 수료하지 못하게 된거같네요.
그렇게 헤어지라 헤어지라해도 안헤어지던 어머니가 그 개만도 못한 인간하고 헤어진게 근 2년만이었으니까.
그렇게 일이 대충 정리되었다 싶을때 기술학교를 들어가게 되요.
1년동안 공부를 하고. 자격증도 차곡차곡 쌓아서 4개정도 모이게 되고 이제 직장다운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똑같이 고생하는건 마찬가지더라구요 ㅋㅋㅋ..
뭐든지 자기일이 제일 힘들다고 하지만 회사안에서 제가 했던일이 트럭 한대정도의 물품을 포장해서 매일매일 출하시키는 일이어서 정말 육체적으론 최고조로 힘들었던거 같습니다.
사수라고 꼴에 붙어있는 대리라는 개놈의 새끼는 술먹고 자기는 이틀을 안나갈 지언정 저는 기어이 나가라고 택시비까지 주던 놈이었으니까요. 아직도 그 새끼 강아지인건 까도까도 계속 나올거 같습니다. 양파같이 말이죠. 뭐 그놈하고도 일화가 꽤나 여러가지 있지만 먹기도 싫은술 데려다니면서 먹이더니 술만먹이면 한다는 소리가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아냐." 그소리 할때마다 쥐어 패고 싶었습니다.
결국엔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던 그 강아지가 저보다 앞서 회사를 짤리게 되었을때 저는 속으로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죠. 나름 얄팍하게 살아온 지식이 있어서 그놈을 골탕먹이는 최종적인 계획이 성공한거니까요. 앞에서는 알았다고 말을한뒤에 뒤에서는 사원들을 통해서 그사람이 완전 쓰레기라는것만 증명시켜주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한 100개정도 말하면 두어개는 들어가기 마련인게 그건 그냥 그때 들으면 마는거고. 그렇게 과장을 거치고 부장을 거치고 사장귀에까지 들어가자 결국 회사를 짤리게 되더군요 ㅋㅋ..
뭐 그땐 그게 다일줄 알았죠. 이 회사의 장애물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장이라는 작자가 쌍욕까지 해대면서 저한테 뭐라고 하더라구요.
사장이란 사람의 인품이 어떤가 하면 직원들의 월급을 10%씩 감하고 난 바로 한달뒤에 렉서스 LS600HL을 타고오는 그런 사람이죠. (물론 그 두달뒤 리콜사태가 터져서 다들 쾌재를 불렀습니다.)
회사자체에 한달이상 버티는 사람이 손에 꼽을정도인지라 몇번 욕을 듣다가 결국엔 그 회사마저 나와버렸네요. 그런기간이 딱 1년걸린거 같습니다.
그렇게 한 한달정도 훈련소를 갈까. 아니면 직장을 다닐까 고민하던 찰나에 그 강아지라는 대리놈에게 연락이 오게 되죠. 자기가 일하는곳에 사람이 필요한데 한번 와봐라. 잘해줄꺼다.
거기에 또한번 속게될줄이야! ㅋㅋㅋㅋ 어휴 믿은 제가 바보였죠.
366시간 일하고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순간 정말 멍하게 되더라구요. 넌 아직 수습이니까. 넌 아직 배우는 중이니까. 이렇게 받아야 된다. 그리고 제가 지겹게 들었던 그소리. 회사가 너한테 투자를 하는거야. 라는 소리를 듣고 그 회사도 나왔습니다. 어찌됐든 저찌됐든 최저임금은 주고서 일을 시키셔야죠. 제가 일을 삥땅친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하는일이라곤 물건나르는 일밖에 없었고 기술도 개뿔 배우지도 못했지만 힘들게 일은 했으니까요.
그리고서 또 다른 일자리를 찿다가 들어가게 된곳이 금형회사.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런회사가 아직까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네요. 이 회사를 다닌뒤로 금형을 배워볼까 라는 생각이 싸그리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3D가 괜히 3D가 아니었나봅니다.
흑연을 깎아서 전극(물건 만들때 틀이 필요하잖아요? 플라스틱이던 뭘 만들던간에요. 그틀에서 깎이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깎기위해선 꼭 흑연으로 깎은 물체가 필요하다네요.)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더럽기는 말도 못할정도로 더러웠습니다. 분진가루가 코고 귀고 들어가서 파도파도 계속나오고 매일매일 샤워를 해도 가루들이 온몸에 묻어서 구정물이 새어서 나올정도였으니까요. 검은색이 아닌 다른옷을 입으면 그옷을 버려야 할정도였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더러운일은(비위생적이라고 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일 자체가 더러웠습니다. 힘든게 아니라 위생적으로 말이죠)처음봤던거 같네요.
근무시간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아침 9시 출근. 보통 새벽 1시 퇴근. 심지어는 일요일날 쉬는데도 눈치봐야하는 아주 괴상망측한 회사였으니까요. 물론 다른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하긴 하더라구요. 하지만 막상 회사를 나와서 네다섯시간 잠만 자고 있더라구요. 결국 그렇게 어찌어찌 한달은 버텼습니다. 매일매일 계산해본 근무시간은 약 400시간. 근 2주일 동안은 바쁘다는 이유로 9시에 출근해서 새벽 3~6시에 끝났으니까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어느날은 너무나 힘들어서 늦잠을 잤는데 정확히 시간이 열시쯤이었을겁니다. 새벽 4시에 들어가서말이죠.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빠졌다고 하더라구요 ㅋㅋㅋㅋ 10시에 퇴근하신분이 말이죠 ㅋㅋㅋ 긴장감이 없다고. 너 그러면 안된다고. 정말 기가 찼습니다. 와 이렇게 일하는 것도 서러운데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어찌어찌 한달을 버티고 지옥같았던 400시간의 노고를 받을려고 하는순간 또 골을 때리더라구요.
100만원.
ㅋㅋㅋㅋ.. 그놈의 100만원이 뭔지.. 그리고 또 한다는 소리.
"우린 너에게 투자하는거야."
"넌 수습이니까."
캬.. 모든 회사가 저런지 몰라도 결국엔 젊은날에 회사들어가면 개같이 부려만 먹힌다라는 진리를 알게 되기까지 꽤나 오랜시간이 걸린거 같네요.
노동착취만 당한채로 어느새 21살이 되어버린거 같습니다.
결국에 제가 느낀건 대학의 필요성과 중소기업에게 젊은이들이란 그저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라는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