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부탁해

다솜마미 2011.05.07
조회29
아버지도 부탁해 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퇴원하는 길로 찾아간 아버지는 일주일 전과 딴판이었다. “나 왔어! 왜 아무 말 안 해?” 투정부리는 딸에게 가까스로 눈빛으로만 반가움을 표시한 아버지는 바로 그날 세상과 작별했다. 자식이 수술 받고 무사히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가려고 병들고 지친 몸으로 먼 길 미루고 버티었나 보다.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바뀐 지 한참 지났어도 일상에서 또는 문학과 영화에서도 많은 자식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가깝게 편안하게 생각한다. 가족의 생계를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중압감을 자식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지금 젊은 세대야 조금 다를 테지만 중년 이후 세대에 있어 아버지는 어머니에 비해 강하고 권위적 존재였다. ‘실패도 패배도, 죽을 것 같지도 않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마음엔 애틋한 추억보다는 오히려 같이 있으면 좀 서먹할 정도로 애정표현이 서툴렀던 어른으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진실된 모습을 깨닫는 순간은 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는 비로소/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손택수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

탯줄로 이어진 어머니의 사랑과 그 빛깔이 다르다고 아버지의 마음도 무채색일까. “그저께 너의 편지를 보고서, 너의 병세가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염려스럽고 염려스럽구나! 어제는 어떠하였는지 알지 못하겠구나. 대개 너는 혈기가 본래 약한 데다가 이전에 추운 곳에서 잠을 자게 해서 마음에 걸린다.”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은 이렇듯 자상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아들에게 보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재임 시절 아픈 아이들을 매일 밤 보살피느라 노심초사했으나 한 아들을 잃었다. 링컨은 “이 아이는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 착한 아이였다”고 한탄하면서 장례를 치른 한참 후에도 방문을 걸어놓고 홀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고미석 전문기자 -

 

 

캐나다는 아직도 5월 8일은  Mother's Day '어머니의 날' 이다.

임신을 하고 나는 가장 먼저 좋은 부모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먼저 좋은 자식이 되어야 했고,

좋은 자식이 되려니 먼저 부모님을 이해했어야 했다.

'내 성격이 이렇게 둥글지 못한데엔 다 엄마탓이야.'

'내가 이렇게 예민한건 아빠 성격을 닮아서야.'

라고 늘상 생각하고 말해왔다.

한 인간이 자라오며 자아를 형성하는데 부모들의 정서적 교육이

중요하며 성인이 되어 한 가정을 꾸린 나로서, 20년 넘게

다른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난 성인 남녀가 함께 사는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생각의 꼬리를 물고 올라가다 보니 우리의 부모는 또 그

부모의 영향을 받았겠구나.. 하고 부모님의 인생을 엿보게 되었다.

 

이번 임신을 계기로 좋은 부모가 되고자 나의 성장기를 돌아보고,

남편의 성장기 또한 매일밤 이야기 했다.

우리가 성장해오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부모님께 작은것 하나까지 영향을 받아왔고, 아기를 교육하는데 있어서도 우리가 받았던

교육과 좋은 추억들 중에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점을  닮자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것이 '아빠의 역할' 이다-

우리세대의 아버지들은 물론 위의 사설처럼 많이 보수적인 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어려워 하는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늘상, 나도 못하면서 남편에게 매일 아버님께 전화 좀

드리라고 잔소리한다. 어머니와는 하루가 멀다하고 통화를 하는데,

아버님껜 특별한 날이나 되어야 전화를 드리는 무뚝뚝한 아들 모습이 싫어서..

 

하루는 각자 아빠에게 받은 좋은 기억들을 이야기하던 밤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들의 공통점은 두분 다 우리가 어릴적 다닌 여행과 필요한 장난감들을 고물을 주어다 뚝딱 뚝딱 만들어 준 기억이었다.

"나는 겨울에 아빠가 만들어준 썰매가 기억나. 리원이랑 나랑

엄마가 떠준 스웨터를 똑같이 입고 뒷산에 썰매를 끌고 올라갔더니

고작 쌀포대를 탔던 애들이 막 부러워 하며 한번만 타보겠다고

부탁했거든, 난 정말 으쓱해하며 빌려줄때마다 갖은 생색을 냈지."

했더니 남편은 "난 아빠가 만들어준 자동차. 누가 버린 패달밟으면

가능 자동차를 주워갔더니 아빠가 뚝딱 고쳐줘서 나는 그 자동차

타고 학교 등교했었어" 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한국의 아빠들은 피곤하다.

아내의 성화에 자녀 영어학원 보내고,장난감에 좋은옷 입힐 때

써야 할 돈을 버느라 바빠 죽겠는데 아이와 놀아 줄 시간은

절대 없는거다.

그러나 캐나다 아빠들은 정작 좋은 옷, 좋은 차에, 좋은 장난감은

못사줄 망정 낡디 낡은 야구 방망이에 글러브 하나

들고 초록의 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주말 온종일 뛰놀아 준다.

 

나는 남편에게 그런 아빠가 되어달라고 말했다.

우리들의 아버지 같은.. 아빠.

어릴적 부유하지 못해서 남들 신는 나이키 운동화를 척 사주는

아빠는 못되어도 고물을 주워다 우리들 장난감을 함께 만들고, 여름이면 개천에 그물쳐서 낚시를 하고, 가을이면 산에가서 밤나무에서 밤을 털어 밤까기도 하는... 그런 추억을 선물할 줄 아는 소박한 아빠.

우리는 그런 점에서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빠에게서 받은

정서 함양과 소질이 지금의 글쓰는 나와, 만능 수리공 남편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아기가 더 크고 우리가 돈을 좀 더 모으면 밴쿠버 외곽으로 나가

낡은 주택을 하나 사자고 했다. 그리고 마당 딸린 그곳에서 큰 개를

한마리 키우고 텃밭에 야채를 가꾸고 아이는 무조건 놀리자고 했다.

여름이면 낚시대와 텐트를 들고 캠핑을 하러가고, 고물상에서

주워온 낡은 턴테이블에 LP판을 틀어놓고 아날로그의 음악도

들려주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최신식 게임기나 티비를 끼고있는

모습말고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비싼 수영장 말고 강가나 호숫가

에서 수영을 하며 자연을 일깨워 주자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우리도 이미 편리하고 신속한 생활에 익숙한 인공지능 세대다.

하지만 내가 캐나다에 온 데엔, 내 2세의 교육을 위한 거였고

그 교육이 선진문화와 사립학교의 상류층문화가 아니라 정형화되지

않은 교육방식과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는 순수한 사람으로

커가길 바래서였다. 만약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 아기를 키운다면

귀농하자고 매일 이야기 하니까....

다행히도 그 부분에서 촌스러운 우리는 닮아있다.

아직까지는 소박한 엄마가 되기로 한 나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으니,

부디 아이가 커서도 이모습 그대로 변색하지 않는 내가,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