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부분적으로 압니다. 다 알수 없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그렇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예언의 내용을,
'개인적인 - 개인적인' 면으로 의사소통하여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언은 여러사람들에게 공유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 속에는 그 예언이 제시하는 면 속에 '각자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언자가 말한 내용 속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사실을 예언의 영 자체 - 예언이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성령으로 된 예언 자체가 내는 영 자체가 - 갖는 영향력이, 어떤 '감명이나 감동'을 주고, 그것은 '어떤 나름의 개인적인 각자에게 메세지'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자 자신이 자신의 은사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그것을 '개인에게 향한 - 모든 것인줄로' 인식하고서 '강요하거나, 함부로 자신의 예언을 강요하여서 대하면' 그것은 사탄의 일입니다.
그런 태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망치고, 자신의 상급도 빼앗기며, 그런식의 예언을 하는 자는 예언자 자신의 인격이 헐리고, 정체성도 망가집니다.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양심을 아프게 합니다. '예언'이 공적으로 예언 선언되었을 때에 그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각자에게 메세지를 하나님께로부터, 양심으로부터 듣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개인에게 지독하게 적용시키려 일부러 예언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언은 분별하는 자와 함께 하라는 말씀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예언자들을 존중합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예언자들의 태도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인격' 자체가 '예언의 내용'에 영향을 끼치며, 그 인격이 나쁘면, 예언 - 영향 자체도 악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이 참으로, 참으로 올바른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예언자들은 언제나 '천국'에 대하여서 '그 소망을 버리는 방향'으로 예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그렇습니까?
'책망하는 것' 과 '은사자라는 사실때문에 갖는 교만' 때문입니다. 자신은 위에 있고 상대를 향한 '심판자로서의 선언'자로서의 정체성 안에서 예언하기 때문에, 그것은 예언의 내용 자체에 그대로 뇌로부터 연결된 어떤 면이 있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해야 하고 사탄을 미워해야 합니다. 세상과 단절해야 하고, 원리 원칙 즉 언어로 표현된 의에 대하여서 순종하는 인격과 정신을 갖춰야 합니다.
또한, 예언 은사자들의 어떤 면모들의 한가지는, '워낙 정죄'하는 말만 해대고 '죄를 드러내는 말만 하기 때문에' 정작, "하나님"이 안계신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런데 이것을 "어떤 영상"처럼 인지하는 뇌가 발달한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 인지하기보다는 '언어' '문자'로 인지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행동과 말과 정신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과,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의 인격, 그리고 '온유 - 보호하고자 하는 맘'도 중요한 것입니다. 보호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가짜 예언이지요. 보호하고 싶은 맘이 없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어쩌면 이 발언은 너무 '내 스타일만 옳다'는 발언으로 들립니까?
행동하는 신앙과, 공의는, 중대합니다. 그런데, 공의가 '죄를 미워함과 사탄을 미워함'을 위한 공의이지 '심판 자체를 위한 공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아직 주여주여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진실로, 천국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그런식으로 하기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이셨는가를 - 그가 이땅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일들에 대한 깊은 참으로 깊은 묵상과 온전함을, 행함 안에서, 절제 안에서, 인내안에서 배워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원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교만하면 배울 수 없습니다. 상대를 비판하면, 그 비판때문에, 상대에게 더 집중하게 되어서 잘 배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예언으로 비판하는 상대가, 자기는 하나님의 영을 예언하고 상대가 비판되었다면 그가 틀렸고 자신은 옳다는 믿음 안에 있기 때문에, 정작 상대에게서는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신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신. 그리고, '죄를 미워하는 것' 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음란'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비판한 상대에게서는 배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하는 자들이 갇혀 있는 틀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이 틀은 그들이 우습게 여기는 종교라는 틀과도 같이 내가 우습게 여기는 그들의 틀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없는 사랑' 안에서 우릴 부르셨지, '교만과 악의'속에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언 은사자들의 예언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
예언은 예언하는 자들의 영에 제어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언의 은사를 갖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허락하시면, 감사히 예언의 은사를 갖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감사한 일입니다.
아무튼, 예언의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예언의 영의 성격은,
그 내용을 '구체적인 어떤 사람'이나 '구체적인 사건'에 그대로,
있는 그대로, 갖다 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부분적으로 압니다.
다 알수 없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그렇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예언의 내용을,
'개인적인 - 개인적인' 면으로 의사소통하여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언은 여러사람들에게 공유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 속에는
그 예언이 제시하는 면 속에 '각자 사람들에게 통찰을 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예언자가 말한 내용 속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사실을
예언의 영 자체 - 예언이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성령으로 된 예언 자체가 내는 영 자체가 - 갖는 영향력이, 어떤
'감명이나 감동'을 주고, 그것은 '어떤 나름의 개인적인 각자에게 메세지'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자 자신이 자신의 은사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그것을 '개인에게 향한 - 모든 것인줄로' 인식하고서 '강요하거나, 함부로 자신의 예언을 강요하여서 대하면' 그것은 사탄의 일입니다.
그런 태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망치고, 자신의 상급도 빼앗기며, 그런식의 예언을 하는 자는 예언자 자신의 인격이 헐리고, 정체성도 망가집니다.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양심을 아프게 합니다.
'예언'이 공적으로 예언 선언되었을 때에 그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각자에게 메세지를 하나님께로부터, 양심으로부터 듣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개인에게 지독하게 적용시키려 일부러 예언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언은 분별하는 자와 함께 하라는 말씀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예언자들을 존중합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예언자들의 태도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인격' 자체가 '예언의 내용'에 영향을 끼치며, 그 인격이 나쁘면,
예언 - 영향 자체도 악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이 참으로, 참으로 올바른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예언자들은 언제나 '천국'에 대하여서 '그 소망을 버리는 방향'으로
예언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그렇습니까?
'책망하는 것' 과 '은사자라는 사실때문에 갖는 교만' 때문입니다.
자신은 위에 있고 상대를 향한 '심판자로서의 선언'자로서의
정체성 안에서 예언하기 때문에, 그것은 예언의 내용 자체에
그대로 뇌로부터 연결된 어떤 면이 있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해야 하고 사탄을 미워해야 합니다.
세상과 단절해야 하고, 원리 원칙 즉 언어로 표현된
의에 대하여서 순종하는 인격과 정신을 갖춰야 합니다.
또한, 예언 은사자들의 어떤 면모들의 한가지는,
'워낙 정죄'하는 말만 해대고 '죄를 드러내는 말만 하기 때문에'
정작, "하나님"이 안계신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런데 이것을 "어떤 영상"처럼 인지하는 뇌가 발달한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 인지하기보다는 '언어' '문자'로 인지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행동과 말과 정신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과,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의 인격,
그리고 '온유 - 보호하고자 하는 맘'도 중요한 것입니다.
보호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가짜 예언이지요.
보호하고 싶은 맘이 없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어쩌면 이 발언은 너무 '내 스타일만 옳다'는 발언으로 들립니까?
행동하는 신앙과, 공의는, 중대합니다.
그런데, 공의가 '죄를 미워함과 사탄을 미워함'을 위한 공의이지
'심판 자체를 위한 공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아직 주여주여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진실로, 천국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그런식으로 하기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이셨는가를 - 그가 이땅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일들에 대한 깊은 참으로 깊은 묵상과 온전함을,
행함 안에서, 절제 안에서, 인내안에서 배워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원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교만하면 배울 수 없습니다. 상대를 비판하면, 그 비판때문에,
상대에게 더 집중하게 되어서 잘 배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예언으로 비판하는 상대가,
자기는 하나님의 영을 예언하고 상대가 비판되었다면
그가 틀렸고 자신은 옳다는 믿음 안에 있기 때문에,
정작 상대에게서는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신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신. 그리고, '죄를 미워하는 것' 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음란'하지 않아야 합니다.
즉, 비판한 상대에게서는 배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하는 자들이 갇혀 있는 틀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이 틀은 그들이 우습게 여기는 종교라는 틀과도 같이
내가 우습게 여기는 그들의 틀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없는 사랑' 안에서 우릴 부르셨지, '교만과 악의'속에 부르지
않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