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가 지난 밤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사람이었다. 동우의 앞을 막아서며 옷자락을 잡고 있는 남자는 꾀죄죄한 옷차림에 안경은 누가 봐도 더러워서 눈이 게슴츠레하게 보일 정도였다. 뿌리치고 갈까 하다가
“아내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나가는 이들의 흘깃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동우는 남자를 뿌리치지 못했다. 사실 이 말만 듣지 않았더라도 그는 남자를 밀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뭔가를 씹고 있었다. 바닥에는 얼굴이 뭉개진 시체가 있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가슴에 있는 검은 점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시체의 복부는 날카로운 것으로 찢고 헤집어 놓은 듯 한 모습이었다. 짙은 피 냄새도 날 법하건만 탁한, 역겨운 기름 냄새가 났다. 그러나 손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내가 했나?’ 바닥에 쓰러진 것은 아내다. 그 생각이 마치 감전된 듯, 이라기보다 전원을 키면 동작하듯 작동했다.
가슴에 점 세 개.
이것이 동우가 간밤에 꾼 꿈이었다.
낯선 남자와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집 근처 커피 전문점에 들러 앉아 있는 동안 동우는 오늘 내내 그렇듯 계속 꿈 생각을 했다.
“역사에 대해 아시나요?”
“역사라니요? 저는 아내에 대해 들으러 왔습니다만.”
“약 몇 백여 년 전 ‘남우’사에서 인간의 외형과 흡사한 로봇을 만들었죠.”
“그거야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적확한 용어는 따지지 말고, 그 로봇의 개발에 뒤이어 이른바 안드로이드, 사이보그들이 대량 생산 되었지요. 그 덕분에 이른바 그네들의 ‘권리’라는 것도 법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웃기게도 기계에도 권리가 있다는 거죠! 토스트 기계는 하루에 빵 10개 이상은 못 굽고, 커피자판기는 10잔 이상을 못 뽑는다! 뭐 이런 식의 최저 노동시간 권리 같은 권리 말입니다! 최대 노동시간인가?”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 동우는 후회했다. ‘뭐야 이 사람, 결국 ‘자연주의자’ 인가?‘
동우가 일어서려는 기색을 보이자 남자는 입술 앞으로 손가락을 세웠다.
“쉿. 함부로 떠들지 마십시오. 비밀을 알려드리죠.
당신 아내는 사이보그입니다.”
동우는 생각만큼 큰 아찔함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농담을 들은 기분이었다. 설명을 듣고서야, 아 그렇구나. 하고 피식 웃어버릴 농담.
그러나 설명을 듣고서야 웃을 수 있는 농담은 이미 농담이 아니다.
“뭐라고요.”
“놀라셨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진짜 인간이고 안드로이드며-사이보그인지 쉽게 구분하겠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우리...우리는.”
“아, 당연히 부부생활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라는 말씀이죠. 하지만 그런 것은 다 심어진 기억일 뿐입니다. 뚜렷하게 기억하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게다가 요즘에는 구식처럼 emp 리모컨을 사용해도 구별 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지요. 이른바 생체 사이보그 말입니다.”
“좋소, 내 아내가…….그렇다 칩시다. 그것을 내게 알려주는 이유가 뭐요?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았소?”
남자는 어느새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는 컵을 만지작거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권리가 생기니 등록을 할 필요가 생겼죠. 권리가 없다면 그것들이 그것이라는 등록을 할 필요가 없지요. 그저, 쓰다 버리면 그만이지요. 예전처럼 이 빌어먹을 컴퓨터가 어디에 ‘살·고’ 누구 손에 의해 ‘태·어·났·고’,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고 해체 시켜 버릴 수 없는 거죠.”
“지금 철학 강의 합니까?”
“잘 들으십시오. 권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기계입니다. 등록과 해체에 필요한...생성번호와 작동번호 등이 있죠.”
“뭐, 생일 같은 겁니까?”
남자는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더니 안경을 벗고 손가락을 들어 동우를 쿡 쿡 찌르며 말했다.
“절대, 절대, 인간처럼 비교하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절대.”
동우는 불쾌해 하며 남자의 손가락을 쳐냈다. ‘이 사람은 뼛속까지 자연주의자군’
그러면서 자문해 보았다. 자신에게도 자연주의자 기질이 있는지.
사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사이보그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스스로를 신경 쓰기에도 너무 바쁘지 않은가! 게다가 사이보그는 이제 너무나 많아져서(그래봐야 인간보다는 적겠지만) 사이보그가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우는 이 단어의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왔다.
남자도 동우를 보며 웃었다. 묘한 웃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내가 사이보그라니?
“이해하기 쉽게 번호라고 말했지만 사실 숫자 같은 게 아닙니다. 그랬다간 혹시 숫자를 듣고 멈출 수도 있죠. 워낙 비밀번호를 많이 정하는 세상 아닙니까.”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커피를 마시며 웃었다.
“듣는다기보다는 인식이라고 해두죠. 사이보그들에게 이렇게 해 놓은 이유는 앞에서 들으셨죠. 여러 개의 코드가 있지만 당신에게 확신을 드릴 코드를 알려드리죠. ‘옷이밖은끄집푸른물병삼키누뒤집어직웃대루리지’입니다.”
“뭐라고요?”
동우는 갑자기 한심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마치 웃길 줄 모르는 코미디언의 콩트 한편을 본 기분이었다. 둘은 서로를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에 조금 전에 보았던 묘한 웃음이 그려졌다. 남자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서 확인해 보시죠. 내일 뵙겠습니다.”
동우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 따위야 저 사람이 하라지.’ 그는 가게를 나왔다. 자꾸만 입에서 꿈에서 풍긴 냄새가 맴돌았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는 여전히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밀
처음의 끝.
“잠시만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시죠?”
동우가 지난 밤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사람이었다. 동우의 앞을 막아서며 옷자락을 잡고 있는 남자는 꾀죄죄한 옷차림에 안경은 누가 봐도 더러워서 눈이 게슴츠레하게 보일 정도였다. 뿌리치고 갈까 하다가
“아내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나가는 이들의 흘깃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동우는 남자를 뿌리치지 못했다. 사실 이 말만 듣지 않았더라도 그는 남자를 밀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뭔가를 씹고 있었다. 바닥에는 얼굴이 뭉개진 시체가 있었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가슴에 있는 검은 점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시체의 복부는 날카로운 것으로 찢고 헤집어 놓은 듯 한 모습이었다. 짙은 피 냄새도 날 법하건만 탁한, 역겨운 기름 냄새가 났다. 그러나 손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내가 했나?’ 바닥에 쓰러진 것은 아내다. 그 생각이 마치 감전된 듯, 이라기보다 전원을 키면 동작하듯 작동했다.
가슴에 점 세 개.
이것이 동우가 간밤에 꾼 꿈이었다.
낯선 남자와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집 근처 커피 전문점에 들러 앉아 있는 동안 동우는 오늘 내내 그렇듯 계속 꿈 생각을 했다.
“역사에 대해 아시나요?”
“역사라니요? 저는 아내에 대해 들으러 왔습니다만.”
“약 몇 백여 년 전 ‘남우’사에서 인간의 외형과 흡사한 로봇을 만들었죠.”
“그거야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적확한 용어는 따지지 말고, 그 로봇의 개발에 뒤이어 이른바 안드로이드, 사이보그들이 대량 생산 되었지요. 그 덕분에 이른바 그네들의 ‘권리’라는 것도 법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웃기게도 기계에도 권리가 있다는 거죠! 토스트 기계는 하루에 빵 10개 이상은 못 굽고, 커피자판기는 10잔 이상을 못 뽑는다! 뭐 이런 식의 최저 노동시간 권리 같은 권리 말입니다! 최대 노동시간인가?”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 동우는 후회했다. ‘뭐야 이 사람, 결국 ‘자연주의자’ 인가?‘
동우가 일어서려는 기색을 보이자 남자는 입술 앞으로 손가락을 세웠다.
“쉿. 함부로 떠들지 마십시오. 비밀을 알려드리죠.
당신 아내는 사이보그입니다.”
동우는 생각만큼 큰 아찔함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농담을 들은 기분이었다. 설명을 듣고서야, 아 그렇구나. 하고 피식 웃어버릴 농담.
그러나 설명을 듣고서야 웃을 수 있는 농담은 이미 농담이 아니다.
“뭐라고요.”
“놀라셨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진짜 인간이고 안드로이드며-사이보그인지 쉽게 구분하겠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우리...우리는.”
“아, 당연히 부부생활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라는 말씀이죠. 하지만 그런 것은 다 심어진 기억일 뿐입니다. 뚜렷하게 기억하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게다가 요즘에는 구식처럼 emp 리모컨을 사용해도 구별 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지요. 이른바 생체 사이보그 말입니다.”
“좋소, 내 아내가…….그렇다 칩시다. 그것을 내게 알려주는 이유가 뭐요?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았소?”
남자는 어느새 나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는 컵을 만지작거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권리가 생기니 등록을 할 필요가 생겼죠. 권리가 없다면 그것들이 그것이라는 등록을 할 필요가 없지요. 그저, 쓰다 버리면 그만이지요. 예전처럼 이 빌어먹을 컴퓨터가 어디에 ‘살·고’ 누구 손에 의해 ‘태·어·났·고’,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고 해체 시켜 버릴 수 없는 거죠.”
“지금 철학 강의 합니까?”
“잘 들으십시오. 권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기계입니다. 등록과 해체에 필요한...생성번호와 작동번호 등이 있죠.”
“뭐, 생일 같은 겁니까?”
남자는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더니 안경을 벗고 손가락을 들어 동우를 쿡 쿡 찌르며 말했다.
“절대, 절대, 인간처럼 비교하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절대.”
동우는 불쾌해 하며 남자의 손가락을 쳐냈다. ‘이 사람은 뼛속까지 자연주의자군’
그러면서 자문해 보았다. 자신에게도 자연주의자 기질이 있는지.
사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사이보그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스스로를 신경 쓰기에도 너무 바쁘지 않은가! 게다가 사이보그는 이제 너무나 많아져서(그래봐야 인간보다는 적겠지만) 사이보그가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우는 이 단어의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왔다.
남자도 동우를 보며 웃었다. 묘한 웃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내가 사이보그라니?
“이해하기 쉽게 번호라고 말했지만 사실 숫자 같은 게 아닙니다. 그랬다간 혹시 숫자를 듣고 멈출 수도 있죠. 워낙 비밀번호를 많이 정하는 세상 아닙니까.”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커피를 마시며 웃었다.
“듣는다기보다는 인식이라고 해두죠. 사이보그들에게 이렇게 해 놓은 이유는 앞에서 들으셨죠. 여러 개의 코드가 있지만 당신에게 확신을 드릴 코드를 알려드리죠. ‘옷이밖은끄집푸른물병삼키누뒤집어직웃대루리지’입니다.”
“뭐라고요?”
동우는 갑자기 한심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마치 웃길 줄 모르는 코미디언의 콩트 한편을 본 기분이었다. 둘은 서로를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에 조금 전에 보았던 묘한 웃음이 그려졌다. 남자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서 확인해 보시죠. 내일 뵙겠습니다.”
동우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 따위야 저 사람이 하라지.’ 그는 가게를 나왔다. 자꾸만 입에서 꿈에서 풍긴 냄새가 맴돌았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는 여전히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베르의 '나무'를 읽고 모티프로 삼아 써본 글입니다.
뻔한 결말 같지만 나름 대로의 전개와 표현에 중점을 두고
써 봤습니다. 읽기가 힘들지는 않으신지 모르겠네요.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썼으니 하루에 한 부분씩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