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드라이버한테 번호를 따였어요.

Taxi2011.05.14
조회347
안녕하세요.
저는 호주에서 유학하고 있는 스물한살 여자입니다.
호주 온 지는 3달정도 되었구요.
다름이 아니라 어제 좀 요상한 일이 있었기에 톡커님들의 의견을 듣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우선, 저는 트레인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1시간 반 동안 가량 가야하는
머나먼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제 아침, 보통때보다 늦게 일어난 저는,
좀 비싸긴 해도 갈아타는 불편함 없이 30분이면 갈 수 있는 "택시"를 잡아 탔어요.
택시가 유난히도 보이지 않던 아침이였기에, 급한 마음에 택시 번호도 보지않고 탔습니다.
(항상 택시 번호판을 보고 타는데 말이죠 - 만약에 생길지도 모르는 일을 위해서.)

택시기사는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고, (외국에서는 택시에서 말도 주거니받거니 하구,
또 저도 영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이기에 외국인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거든요.)
저도 말을 이었습니다. 대화내용은 별 것 없었어요.
택시 운전기사 치고 꽤 젊어보였고 (20대 후반이나 서른 초반정도),
아시안이였기에 더 쉽게 대화할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으며 지금 한 세달정도 되었다 했고,
그 택시드라이버가 호주에서 태어난 홍콩사람이라는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는 '원더걸스'를 아냐며, 제일 좋아하는 가수라고 하더라구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자기가 영어를 가르쳐줄테니 한국말을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택시에서의 30분동안 뭐 그냥 인사라던지 그런 간단한 거 가르쳐달라는 말인가보다 했죠 전.
어쨌든,
그 남자는 제 전공을 물었고, 저는 답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면서 자기 전여자친구도 같은걸 공부했었다고 그러더라구요.
하도 '전' 여자 친구라는걸 강조 하길래, 그럼 지금 여자친구는? 이라고 물었는데
(정말 그냥 아무 이유 없이요!)
지금은 여자친구가 없다고 씁쓸히 웃더라구요.
그러면서 저는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길래 사실대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뭐 그냥 그런가보다, 했어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정말 그냥 일상 대화. 누구와도 할 수 있는.)
저는 이 남자가 택시운전을 한지 1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운전면허를 딴 지는 10년정도 되었다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스무살정도에 면허를 따니까, 그렇다면 이 아저씨 나이는 제 예상대로 서른정도.
늦게 땄다면 나이가 더 많을수도.)

제 학교 근처까지 왔다는걸 제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왔는데,
(제가 굉장한 길치거든요. 그리구 항상 버스만 타고 다녀서 버스가 다니는 길만 알고 있지,
택시로 갔더니 아예 모르겠더라구요 ㅠㅠ)
이 사람 택시기사 맞는지, 도통 길을 못찾는거에요.
(1년정도 택시 운전을 하면 보통 대학교정도는 다들 찾지 않나요?
이름 없는 대학교도 아니고, 버스기사한테 물어봐도 다 알던데.)
어쨌든 그래서 저는 제 아이폰으로 지도를 찾아서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부터
어떻게 어떻게 가야 한다, 까지 알려주었습니다. 하도 돌고 도니까요. 늦을까봐 걱정 돼 죽겠는데.
돈은 계속 올라가고, 30달러정도면 되겠지 했는데 요금은 벌써 55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제가 미터기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걸 알아챘는지, 택시기사는 미안하다는 말투로
25달러만 달라고 하더라구요.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Can I get your number then?"

그렇습니다.
디스카운트를 해주는 대신 제 번호를 받고싶다고 합디다. 한국말도 가르쳐주기로 하지 않았냐며.
할인은 받고싶고, 제 프라이버시는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던 저는,
당연히.
번호를 아무렇게나 찍어줬습니다. 제가 나쁘긴 했죠....
그랬더니, 왜 우리 서로 번호 교환할때,
둘다 서로 찍어주는것보다는 한사람이 번호 찍어주면 저쪽사람이 바로 전화해서
이쪽 핸드폰에 번호만 찍히게 해서 번호 교환 하잖아요..
(횡설수설이네요.. ㅠㅠ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그 방법을 쓰는거에요!! 이 아저씨가!

"I will just call you now."

제 번호를 찍어주지 않았는데 제 핸드폰이 울릴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당황했어요.
자기를 나쁜사람으로 봤냐며 덤벼올까봐.... ㅠㅠ
핸드폰 밧데리가 나갔다는 거짓말도 못하는 상황
(계속 아이폰으로 지도를 검색하면서 왔으니까. 그리고 손에 들고 있었어요!)이였기에
이제 나는 죽었구나.. 했는데
다행히, 이 번호가 맞냐며 확인하라고 주길래, 다시 받아들고 제 번호를 찍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55달러 주고 말걸 그랬어요. 제 번호를 주다니!!
55달러면 5만 5천원정도인데, 2만 5천원으로 깎아준다는데에 넘어갔던거죠..

이렇게 번호 교환을 하고 25달러만 낸 저는 택시에서 내려서 학교에 갔습니다.
근데 학교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 나쁜 사람도 아니였구, 꽤 친절했구요,
25달러로 깎아준다는 것도 어쩌면 정말 순수하게,
자기가 길을 못찾았으니까 미안해서 일 수도 있잖아요.
그리구 대화할때도 꽤 흥미롭고 재밌었구요.
전화번호 교환은 좀 오바다 싶었지만 뭐 길거리에서도 요즘 번호따고,
톡 보니까 알바하다가도 많이 번호 따이는데,
택시기사라고 해서 제가 나쁘게만 생각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냥 친구하고 싶어서 번호 달라고 했던거 일수도 있는데
제가 괜히 혼자 위험했다고 느끼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정말 친구 해 보면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구요
(나이차가 많긴 해도 친군데요 뭐. - 반대하시는 분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하지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르는 사람한테 번호를 줬다' 라는 죄책감을 합리화 시키고 있던 차에,
친구들에게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화를 내면서,
넌 무슨 애가 택시기사한테 니 번호를 주냐고,
이제 그 택시기사가 너 사는 동네도 알고 니 번호도 알고 니 학교도 아는데,
스토킹 당하고 싶냐고, 무섭지도 않냐고 그러더라구요.
전 제가 스토킹 당할만큼 예쁘지도, 부자도 아닌데
그 사람이 저를 스토킹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친구들은, 스토킹 한다는것 자체가 벌써 머리가 이상한 사람인데,
얼굴이나 재력보고 달려들지 않는다고 그러더라구요.
물론 친구들 말도 일리가 있어요. 아니 정말 제 친구들이 맞는 말하는거잖아요.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당연히 화내실거 뻔히 아니까.
부모님들이 좋은 일 한 자식한테 화내시는거 아니잖아요..
친구들은 혹시라도 전화오면 받지 말거나 남자애한테 받아달라고 부탁하라고 하더라구요.
알았다고는 했는데.

근데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건 아닌지,
아니면 이 사람이 정말 나쁜 마음을 먹고 이러는건지.
모르겠네요.

대다수의 분들이 제가 틀렸다고 하실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여러분의 일리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 생각이 확고 해 질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부탁드릴게요.
악플 받기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욕이나 악플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