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청춘이라는 이름은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시련의 대상이었습니다. 청춘이 살아가기에 쉬운 시대는 얼마나 존재했을까요. 사실 어느 시대나 청춘은 돈과 지위, 영향력이 적다는 걸 생각한다면 '날로 먹는' 시대는 별로 없었을 겁니다. 우리가 청춘인 이 시대도 산다는 게 그리 쉽진 않은 듯합니다. 기분 같아선 '우리가 제일 빡세' 하고 싶지만 모든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그렇게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당장 '1,2차 세계 대전'이라든지 '일제 시대', '6.25 시절'에 살아남아야 했던 당시의 청춘 선배들을 생각해보아도 '우리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청춘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분명 우리도 역사 앞에서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간다고 감히 말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급변하고 있고 '선배들이 했던 식'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시대인 듯합니다. 우리도 최소한 선배들 했던 만큼은 공부한 것 같은데 그들이 누렸던 만큼의 일터는 사라졌고 선배들 했던 만큼은 노력한 것 같은데 그들이 맞이했던 시기에 결혼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절망의 울음도 분노의 절규도 우리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아 보이는 미래 이대로 끝장내야 할까요. 이제 우리 청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함께 만나 삶을 끝내는 것밖에 없는 걸까요. 아니면 증오에 붉어진 눈으로 세상을 다 폐허로 만들어버려야 할까요. 인생에는 두 가지 타입의 위기가 있다 시도하는 데 따르는 위기와 시도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위기다 간단히 말해서 제아무리 요리조리 피하려 해도 어짜피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닉 부이치치(Nicholas James Vujicic) 증오, 분노, 절망, 좌절 위기의 시대를 맞을 때 사람은 이러한 힘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우린 단호하게 그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파괴하니까요. 청춘이 지닌 가장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열정입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품는 열정입니다. 이 힘은 파괴하고 죽이는 힘과 달라서 살리고 회복시키고 새롭게 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세상은 이 힘을 선택한 이들을 통해 부흥과 재건의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당신 청춘이신가요. 당신이 누군지 알고 계시나요. 위기의 시대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걸 알고 계시나요.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섣불리 당신을 파괴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나이와 학력, 지위에 관계 없이 자기 욕심으로 사는 '아이'가 있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이 있습니다. 아이는 항상 방을 어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른은 항상 그 방을 치우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는다면 그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었겠지요. 역사는 항상 철없는 '아이'들을 통해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지만 항상 책임감 있는 '어른'들을 통해 더 나은 시대를 열어왔습니다. '살기 쉬운 시대'는 자라지 않는 '아이'들을 낳고 결국 그들을 통해 '살기 어려운 시대'가 오게 됩니다. 그럼 다시 그 시대를 새롭게 할 '어른'이 나오고 그들을 통해 다시 '좋은 시대'를, 후손들에게 다시 '쉬운 시대'를 만들어 줍니다. 시대를 탓하는 건 쉽습니다. 세상을 욕하는 건 당신과 내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럴 수 있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군가는 폐허속에서 묵묵히 회복의 벽돌을 하나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 앞에서 폐만 잔뜩 끼치고 가는 건 쉽습니다. 무책임하고 욕심껏 살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 시대의 아까운 청춘, 당신 당신마저 그래야 하나요. 그 길이 쉽다고 해서 당신도 그들처럼 빵점으로 살다 가기엔 단지 '또 하나의 시대의 희생물'로 살기엔 당신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요. 당신마저 그러는 건 솔직히 비극입니다. 지금 당장 출구가 보이지 않고 답이 보이지 않아도 모두가 끝장인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답을 찾을 것이고 새 시대를 열고야 말 겁니다. 그것이 당신이 되면 안 되겠습니까. 당신이 이 '더럽게 힘든 시대'를 바꾸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기엔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이 마침 '아이'들로 가득한 시대이니까요. 당신, 혼자 아닙니다. 당신 혼자 걷게 두지 않겠습니다. 함께 걷는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들이 시대의 무게를 배워가며 성장하는 청년들이 당신과 함께 갑니다. 우리 죽지 맙시다. 때려치지 맙시다. 서로 잡아주고 등 두드려주면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갈 수 있습니다. 청춘은 그럴 수 있습니다. 청춘은, 증오와 파괴의 힘을 내려놓고 사랑과 열정의 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바로 당신이 그리고 내가 응원합니다, 청춘. 당신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사랑합니다, 청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당신을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고형원, [우리 함께 보리라]에서
위기의 청춘들에게, 청춘이 드림
어느 시대나
청춘이라는 이름은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시련의 대상이었습니다.
청춘이 살아가기에
쉬운 시대는 얼마나 존재했을까요.
사실 어느 시대나 청춘은
돈과 지위, 영향력이 적다는 걸 생각한다면
'날로 먹는' 시대는 별로 없었을 겁니다.
우리가 청춘인 이 시대도
산다는 게 그리 쉽진 않은 듯합니다.
기분 같아선 '우리가 제일 빡세' 하고 싶지만
모든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그렇게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당장 '1,2차 세계 대전'이라든지
'일제 시대', '6.25 시절'에 살아남아야 했던
당시의 청춘 선배들을 생각해보아도
'우리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청춘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분명 우리도 역사 앞에서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간다고
감히 말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세상이 급변하고 있고
'선배들이 했던 식'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시대인 듯합니다.
우리도 최소한
선배들 했던 만큼은 공부한 것 같은데
그들이 누렸던 만큼의 일터는 사라졌고
선배들 했던 만큼은 노력한 것 같은데
그들이 맞이했던 시기에 결혼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절망의 울음도
분노의 절규도
우리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아 보이는 미래
이대로 끝장내야 할까요.
이제 우리 청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함께 만나 삶을 끝내는 것밖에 없는 걸까요.
아니면 증오에 붉어진 눈으로
세상을 다 폐허로 만들어버려야 할까요.
인생에는 두 가지 타입의 위기가 있다
시도하는 데 따르는 위기와
시도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위기다
간단히 말해서 제아무리 요리조리 피하려 해도
어짜피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닉 부이치치(Nicholas James Vujicic)
증오, 분노, 절망, 좌절
위기의 시대를 맞을 때
사람은 이러한 힘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우린 단호하게 그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파괴하니까요.
청춘이 지닌
가장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열정입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품는 열정입니다.
이 힘은 파괴하고 죽이는 힘과 달라서
살리고 회복시키고 새롭게 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세상은 이 힘을 선택한 이들을 통해
부흥과 재건의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당신
청춘이신가요.
당신이 누군지 알고 계시나요.
위기의 시대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걸 알고 계시나요.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섣불리 당신을 파괴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나이와 학력, 지위에 관계 없이
자기 욕심으로 사는 '아이'가 있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이 있습니다.
아이는 항상 방을 어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른은 항상 그 방을 치우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는다면 그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었겠지요.
역사는 항상
철없는 '아이'들을 통해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지만
항상 책임감 있는 '어른'들을 통해
더 나은 시대를 열어왔습니다.
'살기 쉬운 시대'는 자라지 않는 '아이'들을 낳고
결국 그들을 통해 '살기 어려운 시대'가 오게 됩니다.
그럼 다시 그 시대를 새롭게 할 '어른'이 나오고
그들을 통해 다시 '좋은 시대'를,
후손들에게 다시 '쉬운 시대'를 만들어 줍니다.
시대를 탓하는 건
쉽습니다.
세상을 욕하는 건
당신과 내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럴 수 있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군가는 폐허속에서
묵묵히 회복의 벽돌을
하나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 앞에서
폐만 잔뜩 끼치고 가는 건 쉽습니다.
무책임하고 욕심껏 살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 시대의 아까운 청춘, 당신
당신마저 그래야 하나요.
그 길이 쉽다고 해서
당신도 그들처럼 빵점으로 살다 가기엔
단지 '또 하나의 시대의 희생물'로 살기엔
당신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요.
당신마저 그러는 건 솔직히 비극입니다.
지금 당장 출구가 보이지 않고
답이 보이지 않아도
모두가 끝장인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답을 찾을 것이고
새 시대를 열고야 말 겁니다.
그것이 당신이 되면 안 되겠습니까.
당신이 이 '더럽게 힘든 시대'를
바꾸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기엔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이 마침 '아이'들로 가득한 시대이니까요.
당신, 혼자 아닙니다.
당신 혼자 걷게 두지 않겠습니다.
함께 걷는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들이
시대의 무게를 배워가며 성장하는 청년들이
당신과 함께 갑니다.
우리 죽지 맙시다.
때려치지 맙시다.
서로 잡아주고 등 두드려주면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 갈 수 있습니다.
청춘은 그럴 수 있습니다.
청춘은, 증오와 파괴의 힘을 내려놓고
사랑과 열정의 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바로 당신이 그리고 내가
응원합니다, 청춘.
당신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사랑합니다, 청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당신을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고형원, [우리 함께 보리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