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7은 역대 최고의 레이싱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포르쉐가 내구 레이스의 최강자라는 인식을 낳기도 했죠. 917은 1969년의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식 데뷔한 이후 각종 레이스에서 수많은 우승을 챙겼습니다. 그야말로 레이싱카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917 프로젝트의 시작은 1968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4월, FIA의 CSI(Commission Sportive Internationale)가 ICM(International Championship of Makes, 차후 WSC로 바뀜)의 스포츠카 클래스를 위한 규정을 발표합니다. 포르쉐는 이 규정 발표 이후 3달 만에 프로젝트 917을 결정하죠.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엔진 배기량 5리터, 차체 최소 중량 800kg의 규정에 맡게 개발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제네바 모터쇼에 나왔던 양산형 917의 가격은 14만 마르크로 911 보다 10배는 비쌌지만 개발비도 건지기 힘든 수준이었죠.
이듬해 4월, 새 규정에 맞는 25대의 917이 완성됐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습니다. 917은 첫 3번의 레이스에서 기계적인 트러블 때문에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곧 두각을 나타냅니다. 917이 남긴 수많은 우승의 시작은 그해 8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1천 km 레이스부터였습니다.
이듬해부터 포르쉐는 917과 908/03 모델을 앞세워 RSWC(Racing Series World Championship)을 휩쓸었습니다. 10번의 레이스에서 9번의 승리를 거둔 압도적인 성능이었죠. 거기다 그해의 르망 24시를 석권하기까지 했습니다. 917이 두각을 나타낼 즈음 페라리도 움직입니다. 1969년, 엔초 페라리는 피아트에게 지분 절반을 판 금액으로 5리터 V12 엔진의 레이싱카 25대를 제작했습니다. 이 레이싱카가 바로 페라리 512고 917에 눌려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917의 기세는 1971년에도 이어졌습니다. RSWC 10번의 레이스에서 8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한편 르망 24시도 2연패를 달성했고 평균 최고 속도라는 기록까지 수립했습니다. 1971년의 르망 24시에서 917이 기록한 평균 속도 222km(5,335km)는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거기다 롱 테일 917은 라 사르트 서킷의 뮬잔느 직선 주로에서 387km/h라는 최고 속도 기록까지 세웠죠.
1971년 시즌을 끝으로 FIA의 5리터 스포츠카 규정이 만료되자 포르쉐는 무대를 캔앰(CanAm, Canadian American Challenge Cup)으로 옮깁니다. 1972년 6월, 최초의 917/10 스파이더가 펜스키 팀에 공급됐고 엔진의 출력은 1천 마력까지 올라갑니다. 917 스파이더는 그해의 캔앰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이듬해에 나타난 1,200마력의 917/30 스파이더 역시 무적의 성능을 보인 건 마찬가지였죠. 917 스파이더에 적용된 터보 기술은 양산형 911 터보에 이전 됐습니다.
917은 최고의 성능을 위해 트랙에 맞는 여러 개의 보디 타입이 나왔습니다. 굴곡진 커브가 많은 서킷에서는 숏 테일, 최고 속도가 중요한 서킷에서는 롱 테일, 캔앰과 인터시리즈에서는 오픈 보디 타입인 917 스파이더로 최상의 효과를 노리죠. 초기의 917은 고속 영역에서 대단히 불안정 했으며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롱 테일 보디입니다.
917은 총 65대가 제작됐고 이중 44대는 숏 테일과 롱 테일, 캔앰과 인터시리즈에 투입된 스파이더가 19대입니다. 스파이더 중에서는 1,400마력 모델이 2대가 포함돼 있죠. 가장 중요한 모델은 1970과 71년 르망 24시 2연패를 달성한 7대의 917/30 모델로 현재 포르쉐의 새 슈트트가르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레이싱카의 레전드, 포르쉐 917
포르쉐 917은 역대 최고의 레이싱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포르쉐가 내구 레이스의 최강자라는 인식을 낳기도 했죠. 917은 1969년의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식 데뷔한 이후 각종 레이스에서 수많은 우승을 챙겼습니다. 그야말로 레이싱카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듬해 4월, 새 규정에 맞는 25대의 917이 완성됐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습니다. 917은 첫 3번의 레이스에서 기계적인 트러블 때문에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곧 두각을 나타냅니다. 917이 남긴 수많은 우승의 시작은 그해 8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1천 km 레이스부터였습니다.
이듬해부터 포르쉐는 917과 908/03 모델을 앞세워 RSWC(Racing Series World Championship)을 휩쓸었습니다. 10번의 레이스에서 9번의 승리를 거둔 압도적인 성능이었죠. 거기다 그해의 르망 24시를 석권하기까지 했습니다. 917이 두각을 나타낼 즈음 페라리도 움직입니다. 1969년, 엔초 페라리는 피아트에게 지분 절반을 판 금액으로 5리터 V12 엔진의 레이싱카 25대를 제작했습니다. 이 레이싱카가 바로 페라리 512고 917에 눌려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917의 기세는 1971년에도 이어졌습니다. RSWC 10번의 레이스에서 8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한편 르망 24시도 2연패를 달성했고 평균 최고 속도라는 기록까지 수립했습니다. 1971년의 르망 24시에서 917이 기록한 평균 속도 222km(5,335km)는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거기다 롱 테일 917은 라 사르트 서킷의 뮬잔느 직선 주로에서 387km/h라는 최고 속도 기록까지 세웠죠.
1971년 시즌을 끝으로 FIA의 5리터 스포츠카 규정이 만료되자 포르쉐는 무대를 캔앰(CanAm, Canadian American Challenge Cup)으로 옮깁니다. 1972년 6월, 최초의 917/10 스파이더가 펜스키 팀에 공급됐고 엔진의 출력은 1천 마력까지 올라갑니다. 917 스파이더는 그해의 캔앰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이듬해에 나타난 1,200마력의 917/30 스파이더 역시 무적의 성능을 보인 건 마찬가지였죠. 917 스파이더에 적용된 터보 기술은 양산형 911 터보에 이전 됐습니다.
917은 최고의 성능을 위해 트랙에 맞는 여러 개의 보디 타입이 나왔습니다. 굴곡진 커브가 많은 서킷에서는 숏 테일, 최고 속도가 중요한 서킷에서는 롱 테일, 캔앰과 인터시리즈에서는 오픈 보디 타입인 917 스파이더로 최상의 효과를 노리죠. 초기의 917은 고속 영역에서 대단히 불안정 했으며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롱 테일 보디입니다.
917은 총 65대가 제작됐고 이중 44대는 숏 테일과 롱 테일, 캔앰과 인터시리즈에 투입된 스파이더가 19대입니다. 스파이더 중에서는 1,400마력 모델이 2대가 포함돼 있죠. 가장 중요한 모델은 1970과 71년 르망 24시 2연패를 달성한 7대의 917/30 모델로 현재 포르쉐의 새 슈트트가르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