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기에 앞서 안중근 열사에 대한 연극이라는 점에 다소 식상한 위인전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혹시나 위인의 일대기에 집중된 지루한 인물평전이진 않을까 걱정도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연극은 나의 그러한 막연한 편견을 아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약 90여분 간의 길다면 긴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연극 자체에 몰입되어 버렸다.
연극 ‘나는 너다’는 예술의 전당 명품 연극 시리즈 제 2편으로 ‘송일국’이라는 연기파 배우를 주연으로 앞세워 ‘박정자’, ‘배해선’ 등 굵직굵직한 연기파 연극배우들이 무대를 빛내주었다. 이 연극은 근대사 인물을 희극화 시키는 데 정평이 난 ‘정복근’ 작가가 원작을 하였으며, 이름만으로도 연극계에서 너무나 유명한 ‘윤석화’가 연출을 맡아 완성도를 높여주었고 이 외에도 내로라 하는 배우들과 스텝들이 정성 들여 만든 연극이다.
개인적으로 무대 장치나 조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연극이라는 장소적, 시간적인 제약을 가뿐히 뛰어넘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 무대장치와 조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웅장하고 장엄한 음악이 마음을 울려 감동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음향효과 역시 연극이라는 무대가 갖는 제약을 소거시켜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완벽할 정도로 세련되고 훌륭한 무대였다.
이 연극은 ‘안중근’이라는 열사에 대하여 단순히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불사했던 대한의군 참모총장이기에 앞서 한 남자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세 자녀의 아버지로서 그가 겪었던 인간적인 고뇌와 내적 갈등을 보여주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노모와 사랑하는 부인, 그리고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제 분신 같은 아이들을 두고 목숨까지 포기해야만 했던 그의 심정. 그리고 일본의 법치 아래 굴복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에 대한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남편 ‘안응칠’을 항소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끔 도와준 두 여인, 어머니 조 마리아와 부인 김아려의 애틋한 마음. 그 심정과 마음이 너무나 와 닿아 뜨거운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극은 또한 안의사 가족 중 생존자 둘째 아들 ‘안준생’에게도 극 전개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수미상관의 방식으로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헤매이는 안준생으로 극이 시작되어, 영웅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파, 변절자, 배신자로 퇴색되 어둠 속을 떠돌던 안중생은 결국 극의 마지막에 아버지로부터 깨달음을 얻으며 극이 막을 내린다. ‘영웅의 아들은 아들조차도 영웅이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며 자신과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찾기 위해 죽음을 마다 않던 아버지. 그의 자식으로 자라온 안중생이 당대에 생존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을 과연 수치스럽다며 지탄할 수만 있을까? 내가 그라도 자신을 버리고 나라를 택한 아버지를 원망하여 오히려 역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을까? 안준생이라는 인물이 사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면하고 싶은 부끄러운 사실인 것은 인정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놓고 본다면 그의 행동도 충분히 수긍이 갔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렇게 홀연히 목숨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대의명분보다도, 대한민국 참모총장으로서 의를 지키기 위해서 라기보다도, 국권탈환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도 결국 자신의 후예, 자신의 아들 준생을 위한 것이다. 애증에 가득 차 질문하는 아들에게 그가 계속 반복했던 그 말. “나는 너다”. 그 감동의 여운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막연히 ‘안중근’이라는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숱하게 봐왔던 그 인물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세상에서 살았던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연극을 통해 그도 결국 나와 같은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갑자기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그런 대단한 선택을 내린 것이 본인이라고 한들 일말의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나라면 과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쉬이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한 훌륭한 조상들의 숭고한 희생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오늘날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연극은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한 듯 하다.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지 100주년 되는 2011년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하여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는 것도 다 그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초석이 마련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을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일조하기 위해 우선 나부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해보았다.
[예술의전당] 뜨거운 감동. 송일국 주연의 '나는 너다'
연극 ‘나는 너다’를 보고..
연극을 보기에 앞서 안중근 열사에 대한 연극이라는 점에 다소 식상한 위인전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혹시나 위인의 일대기에 집중된 지루한 인물평전이진 않을까 걱정도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연극은 나의 그러한 막연한 편견을 아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약 90여분 간의 길다면 긴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연극 자체에 몰입되어 버렸다.
연극 ‘나는 너다’는 예술의 전당 명품 연극 시리즈 제 2편으로 ‘송일국’이라는 연기파 배우를 주연으로 앞세워 ‘박정자’, ‘배해선’ 등 굵직굵직한 연기파 연극배우들이 무대를 빛내주었다. 이 연극은 근대사 인물을 희극화 시키는 데 정평이 난 ‘정복근’ 작가가 원작을 하였으며, 이름만으로도 연극계에서 너무나 유명한 ‘윤석화’가 연출을 맡아 완성도를 높여주었고 이 외에도 내로라 하는 배우들과 스텝들이 정성 들여 만든 연극이다.
개인적으로 무대 장치나 조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연극이라는 장소적, 시간적인 제약을 가뿐히 뛰어넘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 무대장치와 조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웅장하고 장엄한 음악이 마음을 울려 감동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음향효과 역시 연극이라는 무대가 갖는 제약을 소거시켜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완벽할 정도로 세련되고 훌륭한 무대였다.
이 연극은 ‘안중근’이라는 열사에 대하여 단순히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불사했던 대한의군 참모총장이기에 앞서 한 남자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세 자녀의 아버지로서 그가 겪었던 인간적인 고뇌와 내적 갈등을 보여주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노모와 사랑하는 부인, 그리고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제 분신 같은 아이들을 두고 목숨까지 포기해야만 했던 그의 심정. 그리고 일본의 법치 아래 굴복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에 대한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남편 ‘안응칠’을 항소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끔 도와준 두 여인, 어머니 조 마리아와 부인 김아려의 애틋한 마음. 그 심정과 마음이 너무나 와 닿아 뜨거운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극은 또한 안의사 가족 중 생존자 둘째 아들 ‘안준생’에게도 극 전개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수미상관의 방식으로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헤매이는 안준생으로 극이 시작되어, 영웅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파, 변절자, 배신자로 퇴색되 어둠 속을 떠돌던 안중생은 결국 극의 마지막에 아버지로부터 깨달음을 얻으며 극이 막을 내린다. ‘영웅의 아들은 아들조차도 영웅이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며 자신과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찾기 위해 죽음을 마다 않던 아버지. 그의 자식으로 자라온 안중생이 당대에 생존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을 과연 수치스럽다며 지탄할 수만 있을까? 내가 그라도 자신을 버리고 나라를 택한 아버지를 원망하여 오히려 역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을까? 안준생이라는 인물이 사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면하고 싶은 부끄러운 사실인 것은 인정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놓고 본다면 그의 행동도 충분히 수긍이 갔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렇게 홀연히 목숨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대의명분보다도, 대한민국 참모총장으로서 의를 지키기 위해서 라기보다도, 국권탈환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도 결국 자신의 후예, 자신의 아들 준생을 위한 것이다. 애증에 가득 차 질문하는 아들에게 그가 계속 반복했던 그 말. “나는 너다”. 그 감동의 여운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막연히 ‘안중근’이라는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숱하게 봐왔던 그 인물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세상에서 살았던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연극을 통해 그도 결국 나와 같은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갑자기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그런 대단한 선택을 내린 것이 본인이라고 한들 일말의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나라면 과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쉬이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한 훌륭한 조상들의 숭고한 희생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오늘날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연극은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한 듯 하다.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지 100주년 되는 2011년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하여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는 것도 다 그 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초석이 마련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을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일조하기 위해 우선 나부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