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시간의 공포

짱미2011.05.26
조회8,721

글이 굉장히 길어요.. 으으 심심하실때 보셈 ㅋ

끙아 너를 위해 내가 올렸다ㅋㅋㅋㅋ 보낼수가 없어서... 뻐끔

 

 

 


168시간의 공포 [라시안]

-zero-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빠른 두뇌플레이와 강한 정신력을 가지신 분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세기의 대결!

 

승자에겐 최고의 값진 선물이 , 패자에겐 올 여름 오싹한 추억거리를 선사할 비문산장 이벤트가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무한한 상상력과 용기를 가진 신체건강한 남녀라면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

 

상금 천만원과 함께 멋진 여름을 보낼 분은 주저없이 신청 버튼을 누르고 응모해주세요.

 

잊지못할 추억이 될 5회 비문산장 여름 특별 이벤트!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재야. 우리 저거 참가해 보자. 재미있겠다."

 

"자식.. 호기심 많은건 여전하다니까? 이벤트 회사조차 분명하지 않은걸 왜 해?"

 

"그냥 따분해서.. 애인이 있어서 바닷가로 놀러갈수 있는것도 아니고 회사도 그만 뒀으니 할일이 없잖아"

 

"헤어진거냐? 니가 일방적으로 찬거잖아."

 

"그럼 세번이나 바람을 피우고 용서를 비는 애인을 받아주란 말이냐? 개나 줘라.

 

암튼 할꺼야 말꺼야?"

 

"난 그런거 안해. 뭔지도 모르고 머리쓰는건 딱 질색이거든. 권지용. 너도 신중하게 생각해라."

 

"생각하고 말게 어디있어. 너 안하면 나 혼자라도 해봐야겠다. 상금타면 내가 크게 한턱 쏠께!"

 

"상금이나 타고와서 말하지?"

 

"큭큭.."

 

 

 

 

 

 

그때.. 나는 친구의 말대로 조금더 신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 그 이벤트 광고는 따분하기만 했던 나에겐 빛 좋고 구미 당기는 미끼였으며

 

나는 아무런 주저없이 미끼를 덥썩 문 멍청한 생선에 불과했다.

 

한번의 클릭으로 인해 그 여름날은 숨쉴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공포로 물들게 된다.

 

 

 

 

 

 

"다 적었다. 근데 무슨 이벤트 신청서에 참가동기나 인적사항도 안적냐?"

 

"것봐. 좀 이상하다고 했잖아."

 

"정말 그러네? 신청자가 많으면 예심을 거처야 할텐데 이름하고 전화번호만으로 어쩌겠다는 거야? "

 

"제비뽑기라도 하나보지."

 

"나 확률싸움에는 약한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연기 자욱한 P.C방 구석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담배를 물고 모니터를 바라보던 지용의 핸드폰에

 

수신을 알리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아무생각 없이 핸드폰을 집어들고 문자를 확인했다.

 

 

 

 

 

 

"너한테도 문자라는게 다 오냐? 혹시 성인남녀 무료채팅. 오빠 나 한가해~ 이런거 아냐?"

 

"어? 아냐. 이벤트 신청 확인 문자야"

 

"정말? 어디 봐."

 

 

 

 

 

 

지용의 말에 믿기 힘들다는듯 성재가 핸드폰을 나꿔챘다.

 

그곳에는 분명히 지용의 이름과 함께 간단한 문자가 와있었다.

 

 

 

 

 

 

권지용님. 비문산장 이벤트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신청서에 남겨주신 메일주소로

 

접속하시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접수하자마자 바로 문자가 오냐? 신기하다."

 

"그러게? 이 회사 진짜 부지런하네."

 

"빨리 메일 열어봐."

 

 

 

 

 

 

조금전까지도 관심이 없다는듯 퉁명스러웠던 재성은 직접 도착한 문자를 보더니 신기하다는듯

 

메일 확인을 재촉했다. 지용도 궁금함에 재빨리 메일을 열어 도착한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권지용님. 비문 산장 이벤트에 응모를 해주시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접수마감은 내일 오후 6시 까지이며 신청자 수에 상관없이 7명을 선발하게 됩니다.

 

선발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틀뒤인 7월 15일 아침 8시. 참가자는 지시에 따라 서울역, 청량리역, 종로역, 동대문역, 시청 광장

 

영등포역 노량진역 등 7개의 장소 중 한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2. 권지용 님께서는 추첨 결과 서울역 광장 으로 선택 되셨습니다.

 

3. 정각 8시가 되면 주최측에서 각 장소마다 본선 장소를 적은 메모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내보내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이 될수도 있고 물건이 될수도 있으며 동물이 될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정한 심사를 위해 다른 장소를 적어놓은 함정 메모가 같이 섞여 있으니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제한 시간은 한시간이며 시간이 지나면 숨겨놓은 메모가 동시에 철수됩니다.

 

시간내에 메모를 찾지 못하거나 함정메모를 찾아 다른장소로 이동하신 분은 탈락입니다.

 

4. 메모를 발견하고 정확히 본선장소로 도착한 7명이 이벤트의 최종 참가자가 되는것입니다.

 

5. 장소를 7군대로 분류하는 이유는 같은 장소에 많은 인원이 몰릴 경우 불의의 사고나 본선지의

 

노출이 있음을 염려해서임을 양해바람니다. 참고로 4회때의 응모인원은 1500명 이상이였습니다.

 

6. 준비하실 물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간단한 세면도구. 7일동안 입을 속옷과 양말. 그밖의 부피가 적은 MP3나 화장품은 자유.

 

옷은 활동하기 편한 복장으로 하시되 여벌의 옷은 준비하실 필요 없습니다.

 

단. 핸드폰은 지참하셔도 관계없으나 최종 선발이 되어 산장에 도착하신 후에는 사용하실수 없습니다.

 

7. 그럼 권지용 님의 행운을 빕니다.

 

*메모의 힌트*

 

그것은 자유롭지만 늘 구속되어있다. 언제나 같은곳을 지키며 시간의 흐름을 읽고 있다.

 

외롭지만 즐겁고 항상 쫓기지만 변함없이 돌아온다. 여름은 그것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이거 너무 어렵지 않냐? 무슨 추점을 저딴식으로 해? 그리고 1500명 이상이면 200 : 1이 넘잖아?"

 

"아냐. 재미있어 보여.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데? 꼭 보물찾기 같잖아"

 

"미친놈. 난 인생 편하게 살란다. 잘 다녀오고 나중에 이야기나 들려줘."

 

"좋아. 일등하길 빌어다오 친구야!"

 

 

 

 

 

 

지용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작은 스포츠 백을 꺼내 주섬주섬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니 가방에 든 물건은 치약 칫솔 전자사전 mp3 등 몇가지가 전부였다.

 

이번에야말로 즐거운 여름이 되겠다는 부푼 기대를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15일 아침이 되었고

 

밤새 힌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 날을 지샌 지용은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서울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오니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힌트도 아직 이해 못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속에서 어떻게 메모를 찾지?"

 

 

 

 

 

 

지용은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막막해짐을 느꼈다. 서울역 광장이라면 우리나라 최고 규모의 인파가

 

몰리는곳이 아닌가. 시간에 쫓겨 아침도 먹지못한 그는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가지고 나와 홀짝홀짝

 

마시며 벽에 기대어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시계는 8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시커먼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지용의 팔목을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학생. 담배있으면 하나만 빌려줘."

 

 

 

 

 

 

화들짝 놀라 재빨리 손을 뿌리치고 아래를 바라보니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떡진 머리를 한 노숙자가

 

자신을 보며 담배를 구걸하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 앉자 하수구 냄새와 흡사한 악취가 진동한다.

 

 

 

 

 

 

"담배있으면 하나만 빌려줘. 응? 학생."

 

"제가 담배를 안피워서요.. 죄송합니다."

 

"그거 안타깝군.. 쩝.."

 

 

 

 

 

 

노숙자는 실망한 눈초리로 들고 있던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를 보니 지용은 왠지 짠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죽하면 어린 사람한테 담배를 구걸할까..

 

그냥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그의 눈빛이 마음에 걸린 지용은 편의점으로 달려가 디스 한갑을

 

사서 술을 마시고 있는 노숙자에게 건냈다.

 

 

 

 

 

 

"저 이거라도 괜찮다면 피우세요. 아저씨 드릴려구 사온거에요."

 

"거 학생.. 정말 마음이 곱구만.. 고맙네."

 

"아니에요. 기운내시고 술 조금만 드세요."

 

"정말 고마워. 오늘은 이 담배를 피우며 더이상 시계탑과 눈싸움을 안해도 되겠어. 껄껄껄.."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를 보며 내심 흐뭇해하던 지용은 잊고 있었던 메모 생각에 아차하며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꼭 자신처럼 메모를 찾는 응모자처럼 느껴졌다.

 

 

 

 

 

 

-대체 뭐지? 도무지 알수가 없어.. 생각이 안나도 장소에 오면 떠오를줄 알았는데 도무지 생각이 안나..

 

-자유롭지만 구속되어 있는것? 그건 너무 범위가 넓어..여름이 최고의 선물이라구?

 

 

 

 

 

 

지용은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힌트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야되. 메모라면 정말 보물 찾기처럼 숨겨놓았을까? 아냐.. 이 넓은 서울역 광장에서

 

-메모 하나를 찾자면 한시간이 아니라 하루로도 모자랄지 몰라.. 그럼 사람이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고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하나씩 물어볼수는 없잖아.. 물론 물어본다고 대답해주지도 않겠지만..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었다. 많은 기대를 가졌던 만큼 지용은 꼭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고 싶었다.

 

마음이 초초해지다보니 주변에서 조그만 탄성이 들려도 메모를 찾아서 기뻐하는 사람같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

 

 

 

 

 

 

-정말 모르겠다..외롭지만 즐거운거.. 같은 곳을 지키면서 변함없이 시간의 흐름을 읽는것..

 

-아! 맞다. 시계탑!!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필요로 하니까 즐겁고

 

-움직일수없이 고정되어 있으니까 외롭고 시간의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수 있잖아!

 

-아.. 왜 생각을 못했지?

 

 

 

 

 

 

해답을 찾은듯 했다. 시간은 8분전..

 

지용은 정신없이 시계탑을 향해 뛰어갔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누군가 먼저 메모를 발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도착해서 손을 집어 빙 한바퀴를 돌자 갈라진 틈새 사이로 하얀색의 종이 한장이 보였다.

 

지용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접어진 종이를 펼쳐들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메모를 발견하신 즉시 다음 장소로 이동하십시오*

 

9 :10 서울역 발 강릉행 기차탑승.

 

 

 

 

 

 

지용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6분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메모를 주머니에 대충 찔러넣고 가방을 움켜쥔채 뛰기 시작했다. 운좋으면 늦지않게 도착할터.

 

그는 알수없는 기대감에 부풀어 함박 웃음을 지었다. 뛰면서 바라보니 자신의 앞으로 담배를

 

건내받은 노숙자가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 고맙다는듯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기차표 예매하는 창구에 도착해 지갑을 꺼내던 지용은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마디에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고마워. 오늘은 이 담배를 피우며 더이상 시계탑과 눈싸움을 안해도 되겠어. 껄껄껄..

 

 

 

 

 

 

갑자기 돈을 꺼내려다 멈춘 지용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걸 느꼈다.

 

표를 건내주고 돈을 받으려던 창구 여직원은 그런 그를 보고 이상하단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다.

 

 

 

 

 

 

-아차! 이건 함정이구나!

 

 

 

 

 

 

지용은 자신이 들고 있는 메모가 함정임을 알아채고는 발걸음을 돌려 미친듯 뛰어가기 시작했다.

 

 

 

 

 

 

-정답은 그 노숙자였어! 자유롭지만 구속되어 있는건 돌아갈곳 없이 서울역에 죽치고 있는 그를 의미해

 

-외롭지만 많은 사람을 구경할수 있어 즐겁고 매번 단속에 걸려 쫓겨나지만 갈곳이 없는 그들은

 

-다시 서울역으로 모여들어..여름은 더우니까 노숙하기엔 더할나위 없는 조건이고..

 

-같은곳을 지키며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면 시계탑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 사람뿐이야.. 이런!

 

 

 

 

 

 

시계를 보니 종료까지는 3분전..

 

지용은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 노숙자를 만났던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는 어디론가 이동 하려는듯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고 있었다.

 

 

 

 

 

 

"겨우 찾았네요.. 헉헉.. 아저씨 메모 주세요..헉.."

 

"내가 학생 마음 씀씀이가 기특해 힌트를 알려줬더니 이제서야 눈치챈건가? 허허..

 

여기있네. 난 전해주기만 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이만 가겠네. 행운을 비네."

 

"감사합니다!"

 

 

 

 

 

 

땀이 잔뜩 밴 메모를 펼쳐보니 도착장소는 10시 종로5가역 1번 출구였다.

 

아직까지 한시간이나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안도한 지용은 땀을 닦으며 이동했다.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다들 모였으니 인사나 합시다."

 

"그래요. 며칠동안 같이 머물게 될껀데 우리 통성명이라도 하죠?"

 

 

 

 

 

 

종로5가역 1번 출구로 나오자 까만 봉고차 한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메모를 확인한후에

 

차에 올라보니 미리 도착한 6명의 맴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 순화 에요. 나이는 비밀이지만 직업은 에어로빅 강사에요.

 

이번 이벤트 참가때문에 휴가를 내서 짤릴지도 모르구요 호호.."

 

"저는 김 상훈 입니다. 나이는 25세 고시 준비를 하는 수험생입니다."

 

 

 

 

 

 

제일 문쪽에 있는 사람부터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했다. 자신을 소개하며 요란스럽게 웃는 최순화는

 

에어로빅 강사답게 건강하고 잘빠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단지 과도하게 노출한 복장이 흠이지만.

 

두번째로 소개한 김상훈이라는 남성은 한눈에 봐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것을 알정도로 두꺼운

 

검정색 뿔테를 착용하고 있었다. 간단한 체크무늬의 남방에 면바지를 입고 있는게 특징.

 

 

 

 

 

 

"제 차례인가요? 저는 본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냥 동팔이라고 불러주셥셔."

 

"동팔? 그건 아이디인가요?"

 

"네. 제 인터넷 아이디입니다.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서 특별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 중입니다."

 

"저는 니시키도 료 입니다. 국적은 일본이고 교포 2세입니다. 의대 재학중입니다."

 

 

 

 

 

 

동팔이라는 남성은 정말 제대한지 얼마 안된듯 짧은 머리에 구리빛으로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터질듯한 볼과 다이어트가 절실히 필요할만큼 뚱뚱한 몸집. 지나치게 큰 키가 특징이였다.

 

니시키도 료는 밝게 탈색한 상아색 머리에 웃을때 살짝 보이는 덧니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교포라 그런지 발음이 어색했지만 한국말도 잘했다. 단지 의사가 되려면 지나치게 탈색한

 

머리는 꼭 해결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김 진주. 직업은 소설가입니다. 이번 산장 체험이 작품에 도움이 될것같아 참가했습니다."

 

"저는 권지용 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잠시 무직 상태입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일하던 회사 역시 같은 계열이였습니다."

 

 

 

 

 

 

무표정에 여자치고는 날카로운 눈매와 인상을 풍기던 진주라는 여자와 지용까지 소개가 끝나자

 

모두의 시선은 지용의 옆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소년에게 집중되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쭈뼛거리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듯 헀다.

 

 

 

 

 

 

"아.. 저는 20살이구요. 꽃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작은 가게거든요.

 

어리버리하고 실수해도 잘 부탁드릴께요. 이름은 이승현 입니다. "

 

"어머! 진짜 귀엽게 생겼다. 남자애가 어찌 그렇게 뽀얗니? 여자인 나보다 더 예쁜것같네. 너무하다 너~"

 

 

 

 

 


하얀 얼굴에 작은 체구를 가진 승현은 뭐가 그리 불안한지 계속 주변을 살피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런 소극적인 행동으로 어떻게 메모를 찾았는지 의문이였으나 승현은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외모로는 판단할수 없는 아이큐 185의 천재 소년이였다.

 

승현은 소개를 마치자 지용의 팔에 팔짱을 끼고 가만히 기대며 말했다.

 

 

 

 

 

 

"느낌이 안좋아요.."

 

"무슨 소리니?"

 

"그냥 느낌이 안좋아요. 그러니 도착해서 무슨일이 생기면 절 좀 챙겨주세요. 부탁드려요.

 

저는 남자치고 힘도 없고 날렵하지도 못하거든요.. 대신 형에게 다른 도움을 드릴께요."

 

"불안해 하지마. 공포 체험 겸 추리 대결일텐데 뭐."

 

"그래두요.."

 

"좋아. 승현이라구 했지? 형만 믿어. 넌 내가 책임지고 챙길께."

 

"기뻐요 헤헤.. 고마워요."

 

 

 

 

 

 

3시간 남짓 달리던 봉고차는 점점 좁아지는 산길로 접어들더니 이윽고 거친 브레이크의 소음을 내며

 

멈췄다. 차에서 내리니 그들 앞에는 상상한것보다 낡고 크기만 큰 산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 꽃이 가득피어있고 동화속에 나올법한 그림같은 집을 꿈꾼건 아니였지만 흉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낡고 흉직한 산장은 왠지 기분이 나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일주일 후에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무사히

 

게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행운을 빕니다."

 

 

 

 

 

 

얼굴에 이리저리 긁힌 자국으로 가득한 운전사는 잔뜩 구부정한 등을 두드리며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들은 운전사가 차를 몰고 출발하자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산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흉직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고 보니 생각보다 깨끗했으며 비싸보이는 가구들과

 

영롱한 빛을 내는 크리스탈 장식이 가득했으며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탁자위에는 흰색의

 

옷 7벌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그들이 뜻밖에 상황에 재미있다는듯 이리저리 둘러보자 갑자기 넓은 산장을 가득 메우는

 

기계음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행운의 비문 산장 5기 맴버 여러분.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너무 이른시간부터

 

모인탓에 다들 피곤하고 허기가 질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탁자의 놓여진

 

옷으로 갈아입으신 후 식당으로 모여주십시오."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몰라 다들 수근수근 대고 있었지만 지용이 옷 하나를 집어들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서자 다들 앞 다투어 옷을 집어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2층으로 올라가니 1부터 8이라고 씌여져있는 방이 호텔처럼 4개씩 마주본채 있었으며 플라스틱으로

 

작게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최순화? 내 이름이잖아? 어떻게 이름이 새겨져 있는거지?"

 

"더 좋은방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것을 방지하려는것 아닐까요? 미리 번호를 정해줘서요."

 

 

 

 

 

 

별 이상할것 없다는 표정으로 동팔은 플리스틱 이름표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보았다.

 

너무 세게 힘을 주었는지 이름표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자 그는 황급히 주워 다시 붙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도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가 추첨으로 뽑혀 온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즉석에서

 

보물찾기를 해 운좋게 뽑힌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름까지 미리 새겨넣을 수 있었을까요?"

 

"그건 진주씨 말이 맞는것 같네요. 플라스틱 판에 이름을 새겨 넣자면 최소한 우리들의 명단을

 

한시간 이상 전에 알아야 하는것 아닐까요? 더군다나 여기가 깊은 산속이라는것을 감안한다면

 

그보다 훨씬 전에 알아야겠죠."

 

 

 

 

 

 

진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자 상훈이 맞장구 치며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는것은 이상했다.

 

다들 복도에 서서 들어갈 생각을 하지않자 동팔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뭐 아무렴 어때요. 봉고차 타기전에 메모 확인하면서 이름 물어봤었죠? 그때 알았거나

 

차안에서 자기소개 할때 도청이라도 했나보죠. 하하. 다들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배고프네요."

 

 

 

 

 

 

동팔은 배를 쓱쓱 문지르며 자신의 이름이 써있는 방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6명의 맴버는 각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요리사로 보이는 중년의 풍채좋은 여인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고 그들이 먹기엔 다소 과분할만큼 많은 양이 식탁으로 줄지어 날라졌다.

 

통째로 먹음직스럽게 구운 칠면조부터 세종류의 셀러드 두종류의 빵. 스테이크와 초밥등등..

 

그들이 감탄하며 자리에 앉자마자 넓은 식당을 울리며 기계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한 음식들을 즐기며 편한 마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이벤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먹을것에 정신이 팔려 아구같이 먹어대는 동팔이 시끄러웠던 진주는 그에 어깨를 치며 조금만

 

조용히 먹어줄것을 부탁했다. 료는 얌전히 나이프를 들어 칠면조을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으며

 

지용은 목이 탔는지 물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오늘밤 자정을 알리는 거실의 자명종 소리를 시작으로 168 시간동안 여러분들은 산장에 갇히게 됩니다.

 

물론 문밖으로 나갈수 있으나 반경 10m로 제한됩니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 탈출을 시도하는 분이

 

계시다면 탈락 처리와 동시에 목숨을 보장해드릴수 없게 됩니다.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뭐야? 목숨을 보장해줄수 없다니. 기계가 지금 협박하는거야?"

 

"조용히 좀 해봐요 동팔씨!"

 

"산장 내에는 7명의 참가자 여러분들 외에 음식과 세탁을 담당해주실 도우미 한분이 같이 생활하게

 

됩니다. 주최측에서 고용한 분이니 상금 경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풀어야할 7가지 문제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믿음이 가지않는 기계음 섞인 음성을 들으며 지용은 샐러드를 접시에 덜었다.

 

평소에 그가 제일 좋아하는 참치 샐러드였다. 포크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자 그의 옆에 않은 승현이

 

거칠게 그의 손을 잡아 채고 접시를 빼앗아들었다. 들고있던 샐러드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지용은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이야?"

 

"형. 이건 먹지 마세요. 샐러드가 먹고 싶다면 감자 샐러드나 치킨 샐러드를 드세요."

 

"왜?"

 

"약이 섞여져 있네요. 참치 샐러드에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치킨 샐러드와 참치 샐러드에 공통적으로 들어가있는 양상추와 오이를 자세히 보세요. 서로 드레싱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때에 만들어 졌으니 야채의 신선도는 비슷해야해요. 샐러드란게 원래 빠르게

 

만들어서 빨리 먹어야하는 것이라 두가지를 따로따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긴 어렵죠. 그런데 참치

 

샐러드를 자세히 보시면 양상추와 오이가 약간 갈색빛이 돌죠?"

 

"정말 그러네.. 이쪽이 조금 더 시든듯한 느낌이 들어."

 

"무슨 약을 섞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마도 가루낸 수면제 같은 걸꺼에요. 가루약들은 대부분 농도가

 

높아 삼투앞을 일으키거든요. 그래서 야채의 수분이 빠져나와 드레싱이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는데

 

바닥에 물이 많고 야채가 시든거에요."

 

 

 

 

 

 

승현이 초밥을 오물거리며 심각하게 설명하자 지용은 그 말을 납득했는지 참치 샐러드가 들어있는

 

볼을 들어 싱크대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약간 당황하는듯한 도우미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는 자리에

 

되돌아와 앉으며 손을 들어 승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는 표현이였다.

 

그러자 승현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더니 씨익 웃어보이며 초밥 하나를 입안으로 넣었다.

 

 

 

 

 

 

"오늘 자정이 되면 여러분들중 한분의 방에 미션을 적은 메모가 도착하게 됩니다. 7일동안 각자 한번씩

 

메모를 받게 될것이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잠이 든 저녁 산장 내에서 한가지의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쪽지에는 자신의 이름과 사건의 간략한 힌트.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하나 적혀 있을것입니다. 그 의미는 즉.. 사건을 풀어야 할 사람은 본인이며 자신이 풀지 못했을 경우

 

적혀있는 다른 사람이 대신 살해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정답을 결정했으면 8번 방에 놓여진 컴퓨터에

 

답을 입력하시면 됩니다."

 

"살해? 뭐야!"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다구?"

 

 

 

 

 

 

놀란 사람들은 일제히 식사를 멈추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서로 상의는 할수 있으나 직접적인 답은 본인이 제출해야하고 정답을 맞출경우 무사한 하루를 보내게

 

될것이고 만약 오답일 경우 메모에 적혀있는 다른사람이 12시간 내에 살해당하게 됩니다.

 

답을 못맞춰도 자신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동료를 아끼신다면 꼭 신중하시길 바랍니다.

 

7일후 종료시간까지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각각 천만원이 일괄 지급될것이며 5기 명예의 전당에

 

명단이 오르게 될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저것을 끝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다들 식사도 멈춘채 인상을 쓰며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진주가 접시가 깨질정도로 힘껏 포크를 내려놓더니 신경질적인 말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 어디 함부로 죽이겠다는 말을해! 전 방으로 돌아가겠어요!"

 

"갑자기 입맛이 없어지는군요. 저도 더이상은 못먹겠네요."

 

"다들 진정하세요. 이건 그저 공포체험일 뿐이라구요. 우릴 겁주려고 하는 소리란 말이에요."

 

 

 

 

 

 

순화와 진주가 먼저 자리를 뜨자 위화감을 느낀 다른 사람들이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용은 식당을 조용히 둘러보다 도우미와 눈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를 해보이고 자신의

 

방으로 걸어 올라갔다. 음산한 복도는 악마의 입처럼 알수없는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지용은 핸드폰을 들어 재성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메일의 내용처럼 산장은 통화권 외의

 

지역인듯했다. 할일도 없고 심심했던 그는 스포츠 백에서 mp3를 꺼내 듣기 시작했다.

 

눈감고 누워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몇곡을 들었을까..

 

무엇인가 차가운것이 자신의 팔을 움켜잡는 느낌에 지용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났다.

 

 

 

 

 

 

"형.. 놀라셨나요?"

 

"아..승현이구나? 무슨일 있어?"

 

"여기서 재워주시면 안될까요? 혼자 있기 싫어서요."

 

"나야 상관없지. 근데 아직 오후야. 벌써자려구?"

 

"어젯밤 잠을 못잤거든요. 피곤해서요."

 

"그래. 나도 사실 정답 생각하느라 어젯밤 날 샜거든. 같이자자. 밤 12시부터 시작한다니까

 

아직 시간 많아. 벽쪽에서 잘래? 아니면 바깥쪽?"

 

"벽쪽이요. 그나저나 앞으로 조심하세요. 뭔가 안좋은 기분이 들어요."

 

"살인 어쩌구 한거? 다 겁주려고 하는 말이야."

 

"그래두요. 조심하면 좋잖아요. 그럼 먼저 잘께요. 안녕~"

 

 

 

 

 

 

승현은 지용의 뺨에 살짝 키스하고는 금새 잠들어버렸는지 새근거리고 있었다.

 

지용은 산장의 모든것이 의문 투성이였지만 제일 알수없는건 승현일꺼라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푹신한 침대는 짧은 여행에 지친 그들에게 편하고 달콤한 휴식을 선사했다.

 

 

 

 

 

 

"꺄아아아아악 -"

 

 

 

 

 

 

저녁이 되고 자정이 되고 새벽이 될때까지 배고픔도 잊은채 정신없이 잠든 그들의 고막을

 

날카롭게 파고든 여자의 비명소리와 함께 첫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분명 돈많고 할일없는 작자기 꾸민 공포 체험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용의 눈에

 

양 팔이 잘려져 살해당한 도우미의 시체가 식당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으며 들어서는 순간

 

역하게 풍겨오는 비릿한 피 냄새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순화의 모습을 본 그는

 

그제서야 이것이 단순한 공포체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권지용 - 24세 컴퓨터 프로그래머. 현재 무직상태 181cm/69kg 신체적 특징 없음*

 

*최순화 - 29세 에어로빅 강사. 166cm/47kg 긴 팔다리와 균형잡힌 몸매가 특징*

 

*김상훈 - 25세 고시 준비중인 수험생. 176cm/65kg 두꺼운 뿔태를 쓰고 있으며 말수가 적음*

 

*동팔 - 26세 군 제대후 아르바이트중. 186cm/93kg 뚱뚱한 체구에 본명을 밝히는것을 꺼려함*

 

*니시키도 료 - 교포2세로 의대 재학중. 171cm/58kg 상아색의 머리와 덧니가 특징이며 교포2세*

 

*김진주 - 34세 소설가. 155cm/63kg 길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이승현 - 20세 유산으로 받은 꽃집 운영중.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며 아이큐가 185인 천재소년*

 

 

 

 

 

 

 

 

 

 

 

 

 

 

 

 

 

 

-one-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순화씨! 괜찮아요?"

 

"저것보세요..흐흑.. 사람이..도우미 아줌마가.."

 

 

 

 

 

 

지용은 순화의 안부를 살핀뒤 급히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료가 허리를 숙여

 

시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의대생이라서 그런지 그는 시체 앞에서 의외로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오른팔은 칼을 꽉 움켜쥔채 몸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고 그나마 왼팔은 아직 몸에

 

봍어있었지만 허연 뼈에 짖이겨져 너덜거리는 힘줄 몇가닥으로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완전히 떨어져 나간 오른팔이 미관상 더 나아보였다.

 

그리고 뒤에서 무언가에 얻어맞았는지 한쪽 머리가 심하게 함몰되어있는 상태였고 엎드린채

 

사후경직을 일으켜 똑바로 눕힐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지만 토막난 시체를 보는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력이 요구됬다.

 

 

 

 

 

 

"무슨일이에요?"

 

"까아아아악!!!!"

 

 

 

 

 


이른 아침이라 다들 잠들어 있었는지 부스스한 머리와 졸린눈을 하고 내려왔다가 도우미의 시체를

 

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주는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고 동팔은

 

입을 틀어막고 연신 구역질을 하다가 참지 못하겠는지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럼.. 살인이 일어날꺼라는 말이.. 사실이였단 말이에요?"

 

 

 

 

 

 

상훈은 잔뜩 질린 눈으로 안경을 벗어들어 옷에 대고 문질렀다. 침착하게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심하게 동요하는 눈동자와 안경을 쥐고있는 손의 경미한 떨림은 감출수 없는 모양이었다.

 

살인 장면을 목격한다는건 평생을 살아도 힘든 것이기에 모두에게 이 상황은 화가가 색맹이 되었을때

 

느낄법한 엄청난 쇼크가 아닐수 없었다.

 

 

 

 

 

 

"제가 보기엔 시신에 나타난 암적색의 시반으로 보아 적어도 살해당한지 4-5시간 이상은 된것

 

같은데요? 딱딱한 둔기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 그 다음 팔을 잘라낸것 같아요."

 

(주 - 시반 : 혈액침하 현상으로 시체가 고정되어 있으면 적혈구가 중력에 의해 낮은곳으로 흘러

 

아랫쪽 모세혈관에 모여 붉은 반점을 이룬다.)

 

"끔찍하군요.. 그런데 팔은 뭘로 잘라냈을까요? 잘라냈다기보다 뜯어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만요."

 

 

 

 

 

 

료의 말대로라면 도우미는 모두가 한창 잠들어 있는 밤중에 살해됬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고 사방에 접시가 깨져있고 양념통이 떨어져있는등

 

난장판이였는데도 전혀 소란스러운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지용은 자꾸 떨어져나간 팔이 신경쓰였다. 단면적이 깨끗하지 못하고 심하게 너덜거리는것이

 

베어냈다는 생각보다는 강한 힘으로 뜯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토악질이 좀 가라앉았는지 입을 닦으며 거실로 나타난 동팔은 식당근처는 얼씬도 하지않고

 

쇼파에 털썩 주저앉아 큰 소리로 말했다.

 

 

 

 

 

 

"뭐가 좋은 거라고 다들 구경하고 있는거요? 대충 덮어두고 경찰에 신고부터 합시다!"

 

"제가 어제 핸드폰을 사용해봤지만 산장내에서는 전파가 닿지 않는 모양인지 안걸리더라구요."

 

 

 

 

 

 

지용이 동팔의 질문에 대답하며 걸어나오자 주저앉아있는 순화와 진주는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마지막 까지 남아서 시신을 살펴보던 료가 쓰레기를 담는 까만색 비닐봉지를 잘라

 

시체를 대충 가리고 나왔고 모두가 쇼파에 모여 앉았을때 삐그덕 소리를 내며 승현이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잠이 덜 깼는지 계속 눈을 비비고 있었지만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척 차갑다는걸 느낀 승현은 재빨리 다가와 쇼파에 앉았다.

 

 

 

 

 

 

"왜 그래요.. 무슨일 있나요?"

 

"승현아. 놀라지말고 잘 들어라.. 오늘 아침 도우미 아주머니가 식당에서 시체로 발견됬다."

 

"형!"

 

"사실이야. 그래서 우리는 빨리 의논을 해서 상황을 수습해야만 해."

 

 

 

 

 

 

승현은 믿을수 없다는듯 손으로 입을 막으며 몸을 일으켰다. 직접 식당으로가 확인을 하려는 모양.

 

지용은 그런 그의 손을 끌어당겨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보낸뒤에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러자 그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지켜보고 있었던 상훈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처럼 정말 이게 첫날의 미션이라면 누군가에게 메모가 도착하지

 

않았을까요? 제 방에서는 못본것 같은데.. 혹시 가지고 계신분 있으신가요?"

 

"나도 못본것 같은데?"

 

"제 방에도 없었어요."

 

 

 

 

 

 

다들 메모는 보지 못했다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자 순화가 그들의 앞으로 조용히

 

팔을 내민후 쥐고있던 주먹을 펼쳐보였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위로 잔뜩 꼬깃꼬깃해진 하늘색의

 

메모지가 모습을 들어냈다.

 

 

 

 

 

 

"아직 안펴봤어요.. 펴보려고 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듯 인상을 찌푸리자 동팔은 잽싸게 메모를 나꿔채고 조심스럽게 펼쳐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메모의 내용을 읽어내려가는 동팔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그리고는 쿵- 소리를 내며 탁자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신발.. 말도안되!"

 

"동팔씨 왜 그래요? 무슨 내용인지 말해봐요!"

 

"뭐 이런 말도안되는 미션이 다 있어!!"

 

"뭔데 그래요?"

 

"궁금하면 직접들 보쇼!!"

 

 

 

 

 

 

그가 흥분하며 메모를 던지자 다들 궁금했던지 한곳으로 모여들어 머리를 맞대고 앞 다투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산장의 비밀. 제 1장*

 

첫번째 주인공은 최 순화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동반자로는 동팔 님이 선택되었습니다.

 

최 순화 님이 정답을 맞추지 못할경우 동팔 님께서는 12시간안에 살해당하게 될것입니다.

 

참고하시고 최선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 주십시오.

 

*Mission = 살해된 도우미의 이름을 맞춰라.

 

*Hint = 그녀의 이름은 한글자의 성에 두 글자의 이름입니다. 한글 이름이 아닌 한자 이름입니다.

 

성 = 그녀가 살아있을때는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름= 식탁 위의 음식.

 

정답 제출시간은 오후 11시 30분부터 30분간입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힌트와 설명을 드렸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마스터 H라구? 미친거 아냐? 어떻게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름을 맞춰? 그것도 죽은 사람을!"

 

"아.. 예선이랍시고 보물찾기 시킬때부터 진작에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첫번째 미션이라며 그들에게 도착한 메모는 둔탁한 쇠파이프로 뒷통수를 한대 맞은것처럼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 상황이 미션이라면 살인동기를 맞추라던가.. 살인자를

 

맞추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살인에 사용된 도구를 맞추라던가.. 그런쪽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건 동팔이였다. 이 어이없는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죽는건 자신이였기 때문이다.

 

 

 

 

 

 

"그딴거 다 필요없구! 어짜피 말려들었으니 제발 문제좀 풀어주십쇼.. 맞추지 못하면 제가 죽는단

 

말입니다.. 빌어먹을!"

 

"형. 진정하세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다같이 문제를 풀어봐요."

 

"너 아직 식당에 안들어가봤지? 그럼 어디 한번 들어가봐! 그 여자가 어떤 꼴로 죽어있는지!

 

보지도 못한주제에 어린놈이 뭘 안다고 시덥지 않은 위로를 하는거야!"

 

 

 

 

 

 

자신의 이름이 살인명단에 오른것 하나만으로도 동팔은 이성을 잃은듯 죄없는 승현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긴 했으나

 

두려움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순서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것이 아니므로.

 

한참을 혼자 미친사람처럼 날뛰던 동팔이 조금 잠잠해지자 펜뚜껑을 입으로 잘근잘근 씹고있던

 

료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야겠네요. 처음엔 저도 천만원이라는 상금때문에

 

참가했지만 상황을 보니 상금은 둘째치고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것이 우선일것 같아요."

 

"저도 료씨 말에 동감합니다."

 

"전 하지 않겠어요. 그 시체를 다시 보느니 차라리 방문을 걸어잠그고 소설이나 쓰는편이 낫겠네요."

 

"이 여자가 이 판국에 소설을 쓰겠다구? 어디 그러기만 해봐. 당신 이름이 올랐을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테니까.. 오늘 내가 죽는다면 당신도 무사하진 못할꺼야!"

 

"너 나보다 나이도 어린것 같은데 어디서 반말이야!"

 

"자자.. 다들 진정하시구요.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다 함께 들어가는걸로 해요. 그리고 이승현군?"

 

"네. 료형"

 

"승현군은 아직 상황을 모르는것 같은데 같이 들어가겠어? 원하지 않으면 이곳에

 

남아도 괜찮아. 어린 사람이 보기엔 너무 끔찍한 살인현장이니까."

 

"아니에요. 저도 들어갈래요. 저 이래뵈도 기억력은 좋으니까 뭔가 도움이 될꺼에요."

 

"네. 그럼 다같이 들어가서 살펴보도록 하죠."

 

"근데 료형은 우리나라 말을 참 잘하시네요? 발음이 약간 불안정한게 흠이긴 하지만

 

어려운 한자 섞인 단어도 잘 구사하시구요."

 

"난 국적이 일본이긴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할아버지께 한국말을 배웠어. 그리고 일본도

 

한국과 같이 한자 문화권임을 잊지말라구~"

 

 

 

 

 

 

료는 생긴것 답지않게 침착하고 어른스러웠다.

 

승현은 너무 정확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료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들이 닫혀져있던 식당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밀폐된 공간을 꽉 메우고 있던 비릿한 피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폭발하듯 밀려나왔다. 울렁거림이 다시 시작됬다.

 

모두들 선뜻 들어가지 않고 문 앞쪽에 몰려있자 지용이 앞장서 걸어들어갔고 뒤이어 들어온 료는

 

자신이 시체에 덮어놓은 까만 비닐봉지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승현은 흥건한 피와 시체를 보고 놀란듯 비틀거렸지만 잽싸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던 동팔보다는 훨씬 나은 반응이였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검을 눈물 글썽이며 바라보던 순화는 메모를 펼쳐들고 입을 열었다.

 

 

 

 

 

 

"우선 성부터 먼저 생각해봐요. 한글자니까 그나마 쉬울것 같네요."

 

"문제를 낸 인간도 정상이 아니라니까? 어떻게 이름을 맞춰!"

 

"동팔씨도 화만 낼게 아니라 어서 머리를 굴려봐요. 순화씨. 성의 힌트가 뭐였죠?"

 

"음.. 그녀가 살아있을때는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갖지 못한 것이라네요. 처음부터 막막하네...

 

이럴때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데.."

 

"순화씨. 그림은 왜죠?"

 

"상훈씨는 계속 저 시체와 같이 있고 싶어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그러니까 이곳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가지고 나가서 상의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요. 이중에서 그림좀 그려주실분 계신가요?"

 

 

 

 

 

 

순화의 제안에 상훈은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찾았으나 다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나 대충 그려가지고 나가면 될일이지만 정확히 해서 나쁠건 없다는 생각이였다.

 

그러자 시체의 팔이 신경쓰이는듯 뚫어지게 쳐다보던 지용이 말을 꺼냈다.

 

 

 

 

 

 

"그림이라면 제가 그려 드릴수 있지만 지금 여기에 종이가 없네요. 나가서 찾아볼까요?"

 

"지용형. 그럴 필요없어요. 제가 이곳의 상황은 다 기억했거든요. 그림은 나가서 그려요."

 

"이곳의 상황 전부?"

 

"네. 어제 우리가 식당에서 식사하던때에 물건의 위치. 그리고 지금 흩어진 물건의 위치.

 

식탁에 차려진 음식. 다 기억할수 있어요. 저도 여기 오래 있다보니 어지럽네요. 우리 나가서

 

상의해봐요."

 

"하지만 이곳에 중요한 힌트가 있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안되. 여기서 그려가지고 나가자."

 

"절 믿으세요. 전 마음먹고 외운걸 한번도 잊은적이 없어요. 그러니 절 믿고 나가요. 네?"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그럼 내가 식탁이나 싱크대 같은 가구를 먼저 그릴테니까 넌 옆에서 세부적인 물건들의 위치를 알려줘."

 

"네. 알겠어요."

 

 

 

 

 

 

도살장 같은 식당을 벗어나 다시 거실로 모인 그들은 그림을 그리는 지용과 승현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지용은 고급스러운 산장 내부에 어울리지 않게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달력을 찢어

 

뒷면에 식탁, 선반, 냉장고, 싱크대 같은 가구를 그려넣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건 아니였지만 그는 학창시절 애니메이션부의 서클장 이였을만큼 그림에 흥미가 많았다.

 

그가 팬을 바쁘게 움직여 대충 식당의 윤각을 잡아가자 승현이 바짝 다가앉아 물건의 위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식탁위에 있는 음식부터 말씀드릴께요. 각 자리마다 숟가락과 젓가락 물컵 북어국이 담긴 국그릇이

 

놓여있었어요. 겨자소스와 간장이 담긴 종지도 두개씩 있었구요. 제일 가운데에는 찌게가 담긴

 

전골 냄비가 있었고 냄비의 오른쪽에는 총각김치. 왼쪽에는 물김치가 있었어요. 근데..

 

왜 밤중에 음식을 차리고 있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또 다른 반찬은?"

 

"네. 총각김치 오른쪽에는 도미구이가 있었구요 그 옆에는 두부찜.. 그리고 왼쪽에는 콩나물 무침하고

 

콩자반이에요. 맞은편 물김치쪽에는 양옆으로 김하고..그게뭐였지? 하얀 흐물거리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거였는데.."

 

"아! 그건 아까 나도 봤어. 해파리 냉채였어."

 

"맞다! 해파리 냉채. 진주누나 고마워요. 해파리 냉채가 있었어요."

 

"이건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수도 없겠다. 그냥 접시를 그려놓고 글로 써놓는수밖에.."

 

 

 

 

 

 

시체의 위치는 지용이 대충 기억하고 그려넣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토막난 시체를 그린다는것이

 

불쾌했는지 손을 멈칫하고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시체에서 빠져나온 얼룩진 피를 그려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 어제 식사때까지는 선반에 유리접시들이 가득했거든요? 그런데 오늘보니 식탁에 놓여진

 

숫자만큼 비는것 같았어요. 그리고 더 이상한건 어제 식사때 보였던 식기들이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점이에요."

 

"잘 씻어서 어딘가에 넣어뒀을수도 있잖아? 오늘은 한식이고 어제는 양식이였으니까."

 

"그런가요? 하지만 제가 수납장마다 다 열어서 확인했는데 안보이더라구요."

 

"다른 것들이랑 착각했겠지. 그릇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잖아."

 

"하지만.. 어제 봤던 그릇들은 아무런 무늬없이 하얀 도자기들이였는데.."

 

 

 

 

 

 

대충 그림이 다 완성되고 그들은 그림앞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승현은 턱에 손을 괴고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지용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세세한것까지 기억을 하지?

 

 

 

 

 

 

지용은 평범하지 않아보이는 소년을 마음에 둔채 사람들의 대화속에 끼어들었다. 성부터 해결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상훈과 진주가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어짜피 성은 죽은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는것이라고 했죠? 그럼 피를 의미하는게 아닐까요?"

 

"피요?"

 

"네. 료씨에 말대로라면 아주머니가 죽은 결정적 이유는 팔이 잘려나가 과다출혈을 일으켰기 때문이

 

잖아요? 머리를 맞은건 죽을 정도는 아니였다고 하니까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피가 성과 무슨 관련이 있죠?"

 

"우리 나라에 피라는 성이 있잖아요."

 

"에이.. 설마요.."

 

"상훈씨는 공부만 하고 다른쪽에는 둔하신가보죠? 유명한 수필작가 피천득님도 모르세요?"

 

"네네~ 둔해서 죄송하네요."

 

 

 

 

 

 

진주는 생긴것 답게 말할때면 언제나 톡톡 쏘고 비아냥거렸다. 모두들 그녀의 말투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관심 없는듯했다. 단체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였다.

 

그때 동팔이 뭔가 떠올랐다는듯 손바닥을 마주치며 일어났다.

 

 

 

 

 

 

"피라는 성도 나름대로 말은 되지만 다른쪽으로도 생각해봅시다. 아주머니가 손에 칼을 쥐고

 

죽었잖아요. 살아있을때는 음식을 만드느라 칼을 쥐고있다가 그대로 팔이 잘려나간거구요.

 

그러니까 살아있을때는 들고있던 칼이 팔과 함께 잘려 나갔으니까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 거잖아요?"

 

정답은 칼이에요!"

 

"칼이 성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거죠?"

 

"순화씨도 묻지만 말고 생각을 해봐요. 칼을 한자로 하면 뭐가 되죠?"

 

"아! 칼 도(刀)!"

 

"네. 바로 그거에요. 아주머니의 성은 도씨가 되는거죠."

 

 

 

 

 

 

제법 머리를 굴린듯한 답이 나오자 모두들 일리가 있다는듯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런식으로 한자에 대입시키면 생각보다 쉽게 답에 접근할수 있어보였다.

 

하지만 상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동팔씨 의견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힌트를 보면 죽기전에 잠깐 가지고 있었던게 아니라

 

쭉 가지고 있다가 죽은후 잃은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음식을 만들고 있었으니 칼을 들고

 

있었던거지만 범인에게 저항하기 위해 일부러 집어든걸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상훈씨 의견은 뭐란 말입니까?"

 

"저는 칼이 함정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것으로 시선을 분산시켜 혼란을 주려는것 같다는 말이죠."

 

"그럼 빨리 다른 의견을 내봐요! 당신은 한가하겠지만 난 맞추지 못하면 죽는단 말요!"

 

"칼을 들고 있는 팔.. 잘려나간 팔.. 저는 그게 답이라고 예상해요."

 

"팔이요?"

 

"네. 팔이라는 성은 없으니까 성에 알맞게 대입해보면 그녀의 성은 손 이 아닐까요?"

 

"아!"

 

"손이라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고 잘려나갔기에 잃어버린 것이니까요."

 

 

 

 

 

 

상훈의 그럴듯한 의견에 다들 동감하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어려운 문제라 난감해하는듯 했으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니 조금씩이지만 실마리가

 

잡히는듯해 눈에 생기가 돌았다.

 

상훈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지은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짜피 답을 입력할수 있는 시간이 30분이나 있으므로 성은 도씨나 손씨로 결정하고 오답인 경우

 

바꿔 써넣는것으로 해요. 이제 이름이 문제인데..힌트가 식탁위에 있는 음식이였던가요?"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산장에 도착해서 들은 황당한 기계음때문에

 

다들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가 피곤함에 지쳐 밤새 잠만 잤고 아침에도 식당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까닭에 그들은 심한 허기를 느꼈다.

 

하지만 피로 얼룩진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기에 다들 잠자코 있었다.

 

승현은 지용이 쓰던 펜을 들어 음식의 이름을 이것저것 조합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이름과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시간은 벌써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아.. 배고파 돌아버리겠네!"

 

 

 

 

 

 

점심때를 넘기자 드디어 폭발한 동팔은 앉아있지 못하고 쿵쿵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자 순화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 가더니 가방속에 있던 감자칩 한봉지를 꺼내와 동팔에게

 

건냈다. 자신이 답을 맞추지 못하면 동팔이 피해를 입게 될꺼라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감자칩 한봉지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음식과 이름과의 연관성을 못찾겠어요. 성처럼 쉬운게 아닌가봐요."

 

"자꾸 시간은 가고 배고프니 집중은 안되고.. 미치겠네요."

 

"제가 들어가서 냉장고에 먹을만한게 있나 보고 올께요."

 

 

 

 

 

 

료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들어가더니 포도 쥬스 두병과 아이스크림 한통

 

사과 몇개를 가지고 나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배고팠던지 그가 가지고 나온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지용은 포도쥬스를 들이키며 쇼파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있는 승현에게 사과를 건냈다.

 

 

 

 

 

 

"먹어. 뭐라도 먹어야 살아."

 

"못먹겠어요.."

 

"그래도 먹어! 지켜달라며? 무슨일이 있어도 너 하나는 지킬테니까 굶어죽기전에 먹어!"

 

 

 

 

 

 

승현은 지용의 말에 가만히 사과를 받아들고 한입 베어물었다. 시큼한 과즙이 입안을 맴돈다.

 

다들 대충 허기를 달래고 다시 이름을 찾기위해 그림에 매달렸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나 정말 죽는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음식을 보고 이름을 맞추라는건지 모르겠네요."

 

"돌아버리겠네!'

 

"콩나물 무침. 북어국.. 이딴걸로 어떻게 이름을 맞추라는거야.."

 

 

 

 

 

 

다들 밑도 끝도 없는 문제 때문에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음식 이름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이였다. 그렇다고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에 도미나 북어같은

 

이름을 써넣을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두통이 일어나는지 양쪽 관자놀이를 계속 누르고 있던 료가 벌떡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잠깐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가 올께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러지말고 우선 다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시 쉬는게 어떨까요? 떠오르지도 않는

 

답을 억지로 생각하다간 머리부터 이상해지겠어요."

 

"그래요. 상훈씨 말대로 잠시 쉬면서 생각해봐요. 아직 시간은 남아있으니까요. 혹시 알아요? 조용히

 

생각해보면 떠오를지 말이에요."

 

 

 

 

 

 

다들 상훈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팔은 정신불안증을 보이며 초초해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을 계속 잡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순순히 그들의 말에 따랐다.

 

지용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다 포기했는지 머리맡에 놓여있는 mp3를 집어 이어폰을 귀에 대고 재생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이였다.

 

 

 

 

 

 

"이 손 놓고 천천히 이야기해요!"

 

 

 

 

 

 

귀에 익은 비명소리가 벽을 타고 뇌리에 직접 파고들어 옴을 느낀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달려나갔다. 소리가 나는곳은 승현의 방이였다. 안좋은 일을 직감한듯 심장은 거칠게 요동했다.

 

 

 

 

 

 

"이승현! 무슨일이야!"

 

 

 

 

 

 

지용이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반쯤 눈이 뒤집힌 동팔이 승현의 두 손을 잡고 침대에 밀어붙인뒤

 

상의를 벗기고 미친듯이 입술을 들이대고 있었다.

 

 

 

 

 

 

"어짜피 난 죽어! 오늘 밤에 죽을꺼야!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는데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형! 동팔씨가 이상해요!"

 

 

 

 

 

 

지용은 그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곧바로 뛰어가 동팔의 어깨를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그러자 동팔이 침대밑으로 나뒹굴어졌고 자유로워진 승현은 옷을 들어 상체를 가린채

 

재빨리 지용의 등뒤로 숨었다.

 

 

 

 

 

 

"동팔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네가 상관할일 아니잖아!"

 

"아무리 답을 모르겠다지만 어린 아이를 상대로 너무 하는거 아닙니까? 더군다나 이 녀석은

 

남자란 말입니다!"

 

"그게 어때서? 내가 보기엔 너도 이 녀석에게 관심이 있는것 같은데? 그러니 순서를 지켜.

 

내가 먼저 한다음에 너한테 넘길테니까."

 

"당신 한번만 더 그입 놀려봐!"

 

"좋잖아? 어짜피 우린 여기서 아무도 살아나갈수 없어. 그리고 난 오늘밤 분명 죽게 될꺼야..

 

저놈을 봐! 여자보다도 더 예쁜 얼굴을 하고.. 가는몸을 가지고있잖아.. 뭐가 부족해?

 

난 보면 알아. 꼬마! 너도 남자가 처음은 아니지?"

 

"........................."

 

"그러니 숨어있지말고 나와! 죽기전에 나와 한번만 하자는데 왜 그렇게 까탈이야!"

 

 

 

 

 

 

동팔의 눈은 정상이 아니였다. 마치 죽음의 사자라도 본듯 동공이 풀려있었고 뒤룩뒤룩 살이 오른

 

볼에 소름끼칠만한 웃음을 머금은채 몸을 일으켜 승현을 잡기 위해 다가왔다.

 

지용이 밀어내며 말려보았지만 그는 승현의 손목을 잡고 놓을 생각을 안했고 화가난 지용은

 

주먹을 들어 그의 턱을 힘껏 올려붙였다.

 

그러자 비틀거리며 몸의 중심을 잃은 동팔은 넘어지면서 지용의 다리를 걷어찼고 둘은 이내 정신없이

 

엉켜들면서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탁자가 쓰러지고 우탕탕 하는 소리가 나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서로에게 살기를 드러내고 있는 두 사람을 뜯어 말리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거에요! 두 사람다 멈춰요!"

 

 

 

 

 

 

료가 그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을 만들자 상훈과 순화가 지용과 동팔의 어깨를 잡고 매달렸다.

 

동팔은 입안이 터졌는지 검붉은피가 입술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지용은 동팔이 이성을 잃고

 

목을 조른 덕분에 손톱자국을 따라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쿨럭거리며 거친숨을 쉬고 있었다.

 

상황이 어느정도 진정되자 동팔은 정신을 차린듯 어리둥절한 눈으로 상훈에 의해 방으로 끌여들어갔고

 

지용은 순화의 부축을 차갑게 뿌리치고 승현의 팔목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승현은 말없이 옷을 주워입으며 침대 한켠에 걸터앉았지만 그때까지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지용은

 

방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목의 상처를 손으로 문질러대고 있었다.

 

 

 

 

 

 

"미친자식! 죽어도 문제의 답을 알려주지 않을꺼야!"

 

"형.. 답을 알고 있어요?"

 

"그게 중요한게 아냐! 넌 어째서 그런 놈을 방안에 들이고 그 지경이 될때까지 저항하지 않은거야!"

 

"불쌍해서요.."

 

"뭐라구? 너도 미친거 아냐? 어떻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이성을 잃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산장에는 여자가 두명이나 있는데

 

그분들에게 가지않고 저를 찾아온걸 보면 제가 더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잖아요.. 어쩌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깟 몸한번 내주는게 그렇게 대수는 아니잖아요.."

 

 

 

 

 

 

지용은 그의 말에 기가찬 표정을 지었다. 반쯤 미친 놈과 싸워가면서 구해주었더니 한다는말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그는 승현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몸을 내어주는게 대수가 아니라구? 너 제 정신이야? 미친건 혹시 너 아냐?"

 

".........................."

 

 

 

 

 

 

지용이 눈을 부릅뜨고 어깨를 흔들며 노려보자 승현은 고개를 떨군채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내 인생이 원래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은 늘 저에게 관심을 안보이고 관심없는

 

사람들만 절 원하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도 안을때 만큼은 절 원하고 기뻐하죠..

 

그게 잘못된건가요? 전 상처를 많이 받아봐서 잘 알아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날 거부했을때 느끼는

 

절망감 만큼이나 내가 거부하는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받겠죠.. 전 그게 싫을 뿐이에요..

 

외면 당한다는게 얼마나 가슴아픈지 알기 때문에 같은 상처를 주고싶지 않은거라구요!"

 

 

 

 

 

 

지용은 승현의 말에 잠시 할말을 잃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알수없는 녀석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감을 잡을수가 없었다.

 

늘 무언가를 생각하고 초초해 한다는건 알았지만 버려두면 굉장히 위험하다는것 역시 느낄수 있었다.

 

 

 

 

 

 

"그런 상처를 잘 안다치자! 그렇다구 자신은 어떻게 되던말던 상관하지 않는다는거야?"

 

"형도 어짜피 저따위는 아무런 관심 없잖아요.."

 

"뭐?"

 

"늘 그래와서 익숙해요. 제가 원하는건 한번도 이루어진적이 없었죠.. 그러니까 형도 저에 대에

 

상관하지 말아요.. 다치게 해드린점 미안해요. 사과할께요."

 

 

 

 

 

 

승현은 자신의 어깨를 잡고있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 묻고 싶은것이 있는 지용은 그의 팔을 움켜쥐고 다시 침대로 앉힌다.

 

 

 

 

 

 

"말을 꺼냈으면 똑바로 끝내야지! 내가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건 또 무슨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신경쓰지 마세요.."

 

"똑바로 말안해? 화내는거 보고싶어?"

 

"지금도 화내고 계신걸요?"

 

"아무튼.. 내 얼굴 보고 똑바로 말해. 무슨뜻이야?"

 

"형이 좋다구요! 처음 봉고차 안으로 들어설때부터.. 아니.. 형이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을때부터

 

첫눈에 반해버렸다구요.. 왜 저한테 이런 부끄러운 말까지 시키는거에요.. "

 

"..........................."

 

"지켜달라는말.. 그런거 아무한테나 하는 바보가 어디있어요! 정말 믿을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라도 그런말같은거 안할꺼에요.. 하지만 형은 그런말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죠?

 

그저 형의 눈에는 제게 어린 동생으로 밖에 안보일테니까요.."

 

"단정짓지마. 내가 너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그렇게 단정짓지 말라구."

 

"네?"

 

"너가 아무에게나 지켜달라는 말을 하지 않듯 나 역시 아무에게나 지켜준다는 약속은 안해."

 

"형.."

 

"그런눈으로 보지 말고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나 해봐. 무사히 나갈수 있다면 그 후에

 

우리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수 있을테니까.."

 

"형.."

 

"지금 네 방으로 가서 짐싸들고 와. 앞으로는 나와 같은 방을 써라. 불편하겠지만 그게 좋겠어.

 

그리고 또 알량한 동정심으로 아무에게나 그런짓을 하면 용서안한다! 그것만 약속한다면

 

내가 죽는한이 있어도 여기서 너 하나는 지킨다."

 

"고마워요.."

 

"빨리가서 짐 챙겨와! 어린놈의 자식아.."

 

"네..헤헷.."

 

 

 

 

 

 

승현이 물건을 대충 챙겨와 지용의 방으로 이동한뒤 둘은 말없이 침대에 누워서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산장은 흉흉한 회청색 빛을 일렁이며 어둠속에 묻여버렸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던 승현이 몸을 일으켜 지용을 내려다보았다.

 

 

 

 

 

 

"뭘 그렇게 봐?"

 

 

 

 

 

 

눈을 감고 있던 지용은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뜨고 손을 들어 승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승현은 그의 손을 양손으로 가만히 쥐고 뺨에 가져다대며 말을 꺼냈다.

 

 

 

 

 

 

"형. 아까전에 그랬죠? 답을 알고있다고.."

 

"난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아니에요. 아까 분명히 그랬잖아요. 미친놈! 죽어도 문제의 답을 알려주지 않을꺼야! 라고.."

 

"그랬었지."

 

"답을 알고 있는거죠?"

 

"그래. 알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거에요?"

 

"아니. 몰랐어. 갑자기 떠오는것 뿐이지."

 

"그럼 빨리 답을 알려줘야죠. 벌써 8시가 넘었어요."

 

"싫어. 그런 비상식적인 놈은 그냥 죽으라고 냅둬!"

 

"그래두요.. 형.."

 

 

 

 

 

 

승현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자 지용은 누운채로 그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속삭였다.

 

 

 

 

 

 

"정확한 답이 아닐지도 몰라..내가 원래 헛다리를 잘 집거든.."

 

"그래두요.. 답이 떠올랐다는것 자체가 의미있는거 아닌가요? 도저히 모르겠던데.."

 

"내 목에 이런 상처를 남긴 놈이 뭐가 좋다고 덥썩 답을 알려주겠어? 조금 놀려주려는것 뿐이야..

 

긴장하고 반성할때까지 지켜보다가 말해줄 작정이거든.. 그러니 조금만 이러고 쉬자."

 

 

 

 

 

 

전부터 남들이 못푸는 수수께끼나 소설속의 트릭들을 잘 맞춰오던 그였다. 그러므로 지용 스스로도

 

자신이 생각한 답이 오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괘씸죄를 물어 놀려주려는 의도일뿐..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쉬던 그들이 11시가 되어 방문을 나서자 다들 컴퓨터가 놓여있는

 

8번 방 앞에 모여있었다. 그가 승현의 어깨를 감싸앉고 천천히 걸어가자 동팔은 풀이죽은듯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궜다. 아마도 정말 자신의 죽음을 확신한 모양.

 

지용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모두들 그를 따라 들어오자 입을 열었다.

 

 

 

 

 

 

"다들 생각은 해보셨나요? 이름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무리야. 떠오르질 않아."

 

 

 

 

 

 

진주가 입술을 깨물며 자리에 앉자 다들 한숨을 쉬며 따라 앉았다.

 

동팔도 아까의 기세와는 달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구석에 자리를 잡고 기대어 앉았다.

 

 

 

 

 

 

"제가 나름대로 답을 생각해봤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정말요? 답을 알아낸거에요?"

 

"어서 말해봐요. 지용씨!"

 

 

 

 

 

 

그의 한마디에 다들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답을 알았다는 말에 놀란건 동팔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에 대한 힌트가 식탁의 음식이였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음식들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서

 

계속 동분서주 한거구요. 하지만 답은 음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어요."

 

"하긴.. 그 많은 음식에서 이름을 찾아낸다는건 너무 범위가 넓지.. 그럼 답이 뭔가요?"

 

"문제를 내면서 출제자는 의도적으로 자세한 힌트를 주어 모두의 정신을 교란시키고 있어요.

 

잘려져나간 팔에 칼을 쥐어놓은것처럼 식탁위에 음식도 마찬가지였던거죠. 우리가 음식의 이름을

 

조합하고 연관성을 찾기위해 매달리는 꼴을 보고 싶었던 거에요."

 

"좀더 자세히 설명해봐요. 지용씨."

 

"사실 정답은 식탁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라는 말이죠. 식사에 꼭 필요한 것임에도

 

식탁위에 없었던게 두가지가 있어요."

 

"뭐가 없었지.. 전 모르겠네요."

 

 

 

 

 

 

진주는 지용의 말에 일일히 끼어들면서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던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지용은 낮에 그렸던 그림을 펼쳐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식탁위에 빈 물컵이 있었죠? 그것도 사람수에 맞춰서 말이에요. 물컵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물이 담긴 물병도 있어야 해요. 하지만 식탁위에도 냉장고에도 물병은 없었죠.

 

그러므로 첫번째 글자는 물을 의미하는 수(水) 가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승현은 손뼉을 마주치며 지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승현에게 눈웃음을 보여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두번째는 모든게 완벽한 식탁에 제일 중요한 밥이 없었죠? 국그릇에도 북어국이 담겨져 있었는데

 

밥이 없다는건 말이 되질 않아요. 제가 살펴본 결과 밥통에도 밥은 되어있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밥을 차려놓을 생각이 없었던거죠. 이쯤 말하면 무슨말인줄 알겠니? 승현아?"

 

"형! 대단해요.. 이제야 알겠어요.."

 

"그럼 네가 직접 말해봐."

 

"밥은 쌀로 만드는거니까 쌀을 한자로 변환해보면 쌀 미(米)자가 되는거네요?"

 

"맞아. 그러므로 두번째 글자는 쌀을 의미하는 미 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 모두들 이해가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늘 쌀쌀맞았던 진주도 지용이

 

대단하다는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그럼 이름은 수미 가 되는거군요?"

 

"네. 우선 수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반대로 미수가 될수도 있어요. 상황에 맞춰서 이름의

 

앞뒤를 바꿔가며 입력해보면 될것 같아요."

 

"지용씨. 멋져요!"

 

 

 

 

 

 

다들 안도했다는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시 기다리자 정확히 11시 30분에 컴퓨터가 스스로 전원이

 

켜지며 작동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푸른 화면에 간략하게 질문이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왼쪽 하단에는 30분 부터 거꾸로

 

시간이 흐르며 카운트가 작동되고 있었다.

 

 

 

 

 

 

"순화씨. 어서 답을 입력하세요."

 

"네. 우선 내 이름부터 입력해야 되겠네? 성은 손 씨로 해볼께요."

 

 

 

 

 

 

정답자 이름 : 최 순화

 

정답 : 손 수미

 

[Enter]

 

 

 

 

 

 

-Not Clear-

 

 

 

 

 

 

"정답이 아니래요!"

 

"순화씨. 그럼 이름을 뒤집어봐요."

 

"네. 알겠어요."

 

 

 

 

 

 

정답자 이름 : 최 순화

 

정답 : 손 미수

 

 

[Enter]

 

 

 

 

 

 

-Not Clear-

 

 

 

 

 

강하게 확신하고 있던 두 가지의 답이 모두 오답이라고 나오자 다시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 마른침을 연신 삼켜대던 동팔은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나오며 외쳤다.

 

 

 

 

 

 

"그럼 아까 내가 말한대로 도 씨로 해봐요. 이름도 바꿔서 두가지 다 해봐요 빨리!"

 

 

 

 

 


정답자 이름 : 최 순화

 

정답 : 도 수미

 

[Enter]

 

 

 

 

 

 

-Not Clear-

 

 

 

 

 

 

정답자 이름 : 최 순화

 

정답 : 도 미수

 

[Enter]

 

 

 

 

 

 

-Not Clear-

 

 

 

 

 

 

"뭐야! 둘다 안되잖아!"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뭐가 틀린거지?"

 

 

 

 

 

 

강하게 확신하던 4가지의 이름이 다 틀리자 시간에 쫒긴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용은 자신이 생각한 이름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는 다시한번 시체를 떠올리며 곰곰히 생각했다.

 

그들의 타는 마음도 모른채 시간은 어느듯 9분대로 떨어져 있었다.

 

9분내에 입력하지 못하면 동팔은 살해되고 말터..

 

 

 

 

 

 

"으아아아악!! 나갈꺼야!! 여기서 나갈꺼야!!"

 

"동팔씨 진정해요! 우린 여기서 못 나간다구요!!"

 

"이거놔! 차라리 나가서 죽는게 낫지. 여기서 미쳐버리긴 싫단말야!!"

 

 

 

 

 

 

동팔은 산장밖으로 나가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지용은 그의 고합소리가

 

신경이 쓰이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큰 덩치에 동팔을 잡고 말리느라 그의 양 팔을 붙들고 매달려있는 상태였다.

 

 

 

 

 

 

"아!"

 

 

 

 

 

 

지용은 무언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는지 작은 탄성을 지르며 일어났고 소란을 부리고 있었던

 

그들도 일순간 그에게 집중하며 얼음처럼 행동을 멈췄다.

 

 

 

 

 

 

"알겠어요! 틀린건 성이였어요!"

 

"뭔데요? 시간이 없어요 빨리 말해봐요!"

 

"과다출혈을 일으키려면 힘들게 팔을 자르지 않아도 가슴을 찌르거나 등을 찌르면 간단하잖아요.

 

그런데 굳이 팔을 자른 이유는 그것을 보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제가 손이라고 말했잖아요."

 

"그게 아니라 양팔을 다 잘랐는데 오른쪽 팔은 완전히 잘려져있고 왼팔은 너덜거린채 몸에 붙어

 

있었잖아요. 그게 답이에요. 왼팔은 아직 몸에 이어져 있으니 그녀가 잃은건 오른팔 하나라고 봐야죠.

 

답이 손이라면 손이 아니라 손의 한자인 수(手)가 되야 맞는거잖아요. 결론은 오른쪽을 의미하는

 

우(右)가 그녀의 성이였던 거에요."

 

"그럼 손 수미가 아니라 우 수미가 되는거군요?"

 

"한번 해봐요. 어서요!"

 

 

 

 

 

 

남은 시간은 6분.

 

맘이 급해진 순화는 떨리는 손목을 부여잡고 급히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정답자 이름 : 최 순화

 

정답 : 우 수미

 

 

[Enter]

 

 

 

 

 

 

-Not Clear-

 

 

 

 

 

 

"이것도 아니래요! 어쩌죠?"

 

"그럼 이름을 반대로 바꿔 넣어보세요. 빨리!"

 

"네."

 

 

 

 

 

 

정답자 이름 : 최 순화

 

정답 : 우 미수

 

[Enter]

 

 

 

 

 

 

종료에 가까워지는 시간이 어지럽게 뇌리에 박히면서 그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숨을 멈춘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화의 손이 엔터를 치는 순간 다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two-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제발.."

 

 

 

 

 

 

 

 

 

 

 

 

-Not Clear-

 

 

 

 

 

 

 

 

 

 

 

 

"이것도 아닌가봐요!"

 

"어떻게해.. 난몰라.."

 

 

 

 

 

 

마지막 답까지 오답으로 나오자 정답을 써넣던 순화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엎드려버렸고

 

다들 넋이 나간듯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서서 지켜보던 지용이 헛웃음을 치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순화씨. 긴장하지 말고 다시 답을 적어요."

 

"네? 답이 없잖아요?"

 

"마지막게 정답입니다. 다시 천천히 써넣어보세요. 빨리!"

 

 

 

 

 

 

눈물을 글썽이던 순화는 지용의 말에 팔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다시 답을 써넣기 시작했다.

 

 

 

 

 

 

정답자 이름 : 최 순화

 

정답 : 우 미수

 

[Enter]

 

 

 

 

 

 

-Clear-

 

 

 

 

 

 

"아깐 이게 답이 아니었잖아요?"

 

"답은 맞는데요 순화씨가 긴장했는지 엔터를 치기전에 손이 미끄러지면서 /를 같이 쳐버렸어요.

 

그래서 오답처리가 된거죠."

 

"그렇구나! 다행이에요!"

 

 

 

 

 

 

지용이 차근차근 설명하자 모두 한시름 덜었다는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구보다 가장 기뻐해야할 사람은 동팔이였지만 그는 긴장하느라 기운을 다 써버린듯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자정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여상스럽게 온 산장을 메아리치자 기뻐하던것도 잠시.

 

다시 두번째 미션이 시작 되었다는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여기에요! 제 방에 메모가 있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들 복도로 나왔고 그곳에는 상훈이 메모지를 든채 서있었다.

 

그의 손바닥위에 얌전히 올려진 하늘색 메모지는 아무것도 몰랐던 처음 접했을때와는

 

전혀 다른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무서운건 자신이 정답자가 되는것이 아니다. 정답자는 최소한 목숨을 보장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두려운것은 정답자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상훈을 비롯한 사람들이 메모를 집어들기를 꺼리자 자신의 차례가 지난 동팔이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메모지를 펼쳐들고 큰 소리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장의 비밀. 제 2 장*

 

두번째 주인공은 김 상훈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동반자로는 김 진주 님이 선택되었습니다.

 

김 상훈 님이 정답을 맞추지 못할 경우 김 진주 님께서는 12시간 안에 살해당하게 될것입니다.

 

참고하시고 최선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 주십시오.

 

*Mission = 거실에 놓여있는 네 가지의 상자를 순서대로 열고 물건의 이름을 맞춰라.

 

상자는 가로 12cm / 세로 12 cm 의 정육면체로 청색/흰색/검정색/적색 으로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상자들은 모두 잠겨있으며 열수 있는 열쇠는 각각 다릅니다.

 

그중 열쇠 하나는 산장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며 그것이 첫번째 상자의 열쇠입니다.

 

상자를 개봉하게되면 그 안에는 다음 상자를 열수있는 열쇠가 들어있고 마지막 상자에는

 

미션의 정답인 물건이 들어있습니다. 그 물건의 이름을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Hint = 1. 각 상자의 열쇠가 모두 다르고 열쇠는 일회용이기 때문에 한번 열쇠구멍에 들어가면

 

두번다시 사용할수 없습니다. 참고하십시오.

 

2. 첫번째 열쇠 - 이것은 모두를 지켜주는 결계인 동시에 구속하는 사슬입니다.

 

3. 상자의 순서 - 첫번째 상자 : 세계 4대 종교

 

두번째 상자 : 세계 4대 뮤지컬

 

세번째 상자 : 세계 4대 문명

 

네번째 상자 : 세계 4대 살인마

 

정답 제출 시간은 오후 11시 30분 부터 30분간입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힌트와 설명을 드렸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하하.. 기가차서 말도 안나오네.. 저런 밑도 끝도 없는 문제를 맞추라구?"

 

 

 

 

 

 

메모를 읽던 동팔은 기가 막혀 너털웃음이 났다. 그건 그뿐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진주는 자신의 이름이 죽음의 명단에 오르자 아연실색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료가 메모지를 받아들고 자세히 읽는가 싶더니 통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른건 대충 알겠는데 열쇠 부분이 잘 이해가 안되요. 누가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료형. 제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드릴께요."

 

 

 

 

 

 

시종일관 지용의 옆에서 입술을 깨물고 있던 승현이 료의 곁으로 다가가 시선을 맞추고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역시 글을 읽는것 보다는 말로 듣는게 이해하기 편했다.

 

 

 

 

 

 

"상자를 색으로 구분하는건 헷갈리니까 숫자로 설명해볼께요."

 

"좋아. 편한대로 해."

 

"1 / 2 / 3 / 4 번의 상자가 있어요. 우리가 그 상자를 가지고 해야 할일은 상자의 순서를 맞추고

 

열쇠로 여는거죠. 순서대로 열지 않으면 열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것 같아요.

 

우선 첫번째 열쇠가 있어야 시작할수 있겠죠? 상자가 4개 다 잠겨있으니까요.

 

산장 어딘가에 열쇠 하나가 숨겨져 있는 모양이에요. 물론 어디 있는지는 아직 몰라요.

 

그 열쇠를 찾아 손에 넣으면 힌트를 풀어서 그 열쇠에 맞는 첫번째 상자를 찾아 내야해요.

 

첫번째 상자를 열면 그 안에 두번째 상자를 열수 있는 열쇠가 들어있다는 말이죠.

 

두번째 상자를 열면 세번째 상자의 열쇠가 있고, 세번째 상자를 열면 네번째 상자의 열쇠가 있고..

 

네번째 상자를 열면 정답을 맞출수 있는 물건 같은게 들어있다는 말이에요."

 

"그렇구나? 그럼 한가지만 더."

 

"뭔데요?"

 

"상자의 힌트같은거 필요없이 이것저것 다 열어보면 그중 하나는 열릴것 아냐?"

 

"힌트를 제대로 안들으셨군요? 열쇠는 한번밖에 사용할수 없데요. 열쇠구멍에 들어가면 망가지나봐요.

 

즉! 정확한 상자를 골라 한번에 열지 않으면 그대로 게임 오버라는 말이죠."

 

"정말 무서운 미션이군.."

 

"그러게요."

 

"그나저나 승현군. 상자의 힌트가 뭐라고 했지?"

 

"1번 상자는 세계 4대 종교, 2번은 4대 뮤지컬, 3번은 4대 문명, 4번은 4대 살인마였어요. 왜요?"

 

"너.. 한번듣고 이걸 다 외운거야?"

 

"네."

 

"내가 보기엔 한국말 잘하는 나보다 한번보면 모든걸 외워버리는 너의 머리가 더 대단하다.

 

식당 그림 그릴때도 느꼈지만 너처럼 기억력 좋은 사람은 처음봐."

 

 

 

 

 

 

료는 승현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들이 보기엔 머리 좋은 아이를 칭찬하는 손짓으로 보였지만 승현은 느낄수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료의 손에는 알게 모르게 강한 힘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밤을 샐순 없잖아요. 잠깐 눈이라도 붙인뒤에 상의하는게 어떨까요?"

 

"저도 동감이에요. 오늘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피곤해 죽겠네요."

 

 

 

 

 

 

자신이 살인 명단에 오르자 사람들을 들들 볶아가며 안달을 하던 동팔과는 달리 침착한 태도로

 

쉴것을 권하는 진주와 그런 그녀를 보며 혀를 내두르던 사람들은 아침에 다시 의논하기로 결정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형. 안자요?"

 

 

 

 

 

 

지용이 방으로 돌아오자 마자 말없이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자

 

승현이 등 뒤에서 목을 끌어 안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지용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 끌어 침대로 데리고 갔다.

 

 

 

 

 

 

"빨리 자둬. 그래야 아침 일찍 일어나 문제풀지."

 

"형이야말로 주무세요. 얼굴이 까칠해보여요."

 

"신경을 많이 썼더니 그런가보다."

 

"오늘 멋있었어요."

 

"응?"

 

"답을 맞추던 형. 정말 멋졌어요. 최고에요~"

 

"갑자기 왜 그래? 쑥스럽게.."

 

"사실인걸요?"

 

"네가 자세히 기억하고 말해줘서 많은 도움이 됬어. 그리고 안좋은 일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정답이 떠오른거니까."

 

"저 때문에요?"

 

"그래. 보통 남자는 여자를 원하는게 정상이잖아? 그런데도 동팔씨가 너를 상대로 그런 일을

 

벌인걸 보고 문득 떠올랐어. 상식을 뒤집어 반대로 생각하라는것이 아닐까 하고.."

 

"아.. 그래서 식탁에 없는 무언가를 떠올린 거구나.."

 

"그런 셈이지."

 

 

 

 

 

 

승현은 엎드린 자세로 지용을 내려다 보며 씨익 웃었다.

 

지용은 팔을 들어 그의 머릿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승현은 아프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나저나 오늘 미션은 너무 복잡한것 같아요."

 

"그건 그래. 특히 세계 4대로 시작하는 힌트에서 질려버렸다니까?"

 

"그렇게 말해도 형은 미션에 대해서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죠?"

 

"아무래도 어려울수록 자극적이니까.. 하지만 어떻게 맞추라는거야? 아는것이라고 해봤자

 

4대 문명이나 종교정도? 컴퓨터라도 쓸수 있으면 좀더 수월할텐데 말야."

 


"너무 걱정마세요. 이래뵈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5기 멤버라구요. 잘해낼수 있을거에요."

 

"그래. 잘될거야. 어서 자자."

 

"네. 좋은꿈꿔요."

 

 

 

 

 

 

승현은 전날 잠들기 전에 했던것처럼 지용의 뺨에 입을 맞춘뒤 바로 돌아누웠다.

 

그러자 지용은 몸을 일으켜 승현의 얼굴을 감싸쥐고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자기 전 키스는 뺨이 아니라 여기야."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다들 모였으면 우선 열쇠부터 찾아봐요. 또 보물찾기를 해야겠군요?"

 

 

 

 

 

 

이른 아침부터 거실로 모여든 사람들은 쇼파 한가운데 놓여진 탁자를 빙 둘러쌌다.

 

그곳에는 메모지의 내용처럼 흰색 파란색 검정색 빨간색의 상자 4개가 있었다.

 

어려운 문제라 다들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이 목이 말랐던 료는 식당으로 들어갔다가

 

다급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식당으로 모인 사람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체 어디갔지?"

 

"모르겠어요. 목이 말라 음료수를 가지러 왔을뿐인데 들어와보니 이렇네요."

 

 

 

 

 

 

그들이 놀라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분명 하루전까지 모두를 경악시킬만큼 끔찍한 도우미의 시체가 있었는데

 

밤새 상황이 바뀌어 언제 그랬냐는듯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식탁위와 냉장고 안에는

 

음료수와 빵 인스턴트 요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승현은 식당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전자렌지가 새로 생겼네? 그리고 칼이 한자루 없어졌어.."

 

 

 

 

 

 

음식을 본 동팔과 순화는 굶주린 동물처럼 허겁지겁 배를 채우기 시작했고 모두가 놀라면서도

 

배가 고팠는지 많은 음식중 자신이 먹을만한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주는 음식엔 관심이 없다는듯 물을 집어들며 말했다.

 

 

 

 

 

 

"분명 사람이 있어.. 이 산장에 우리 말고도 사람이 있다구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러니 메모지를 가져다 놓기도 하고 음식을 가져다 놓기도 하고 그렇죠.

 

"순화씨.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7명이에요. 아무리 그들이 밤에 조용히

 

움직인다해도 우리들의 눈에 전혀 띄지 않는다는건 말도 안되요.

 

전 불면증이 있어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데 아무 기척도 못느꼈어요. 식당이 이정도로

 

깨끗해지려면 어느정도 소란스러워야 정상 아닌가요?"

 

 

 

 

 

 

진주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메모를 가져다놓고 살인을 하고 흔적을 지우고..

 

귀신이 아닌이상 그렇게 간단히 해치울수 있는게 아니었다.

 

진주가 불안에 떨자 상훈은 마음에 무거운 짐을 느끼며 화재를 돌렸다.

 

 

 

 

 

 

"이왕 이렇게 된거 어제처럼 힘을 모아 문제를 맞춰봐요. 첫번째 열쇠의 힌트는

 

-모두를 지켜주는 결계인 동시에 구속하는 사슬- 이었죠?"

 

"맞아요."

 

"어제도 의견을 모으던 도중에 한자로 변환하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오늘도 의견을 모아봐요."

 

"보호도 해줬다가 구속도 하는게 뭐지? 경찰인가?"

 

"전 의외로 쉬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쉽게 접근할수 있죠.

 

말 그대로 산장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딱딱한 바케트 빵이 목에 걸렸는지 물을 마시던 동팔이 그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상훈은 버릇적으로 안경을 손으로 밀어올리면서 대답했다.

 

 

 

 

 

 

지금 우리는 갈곳이 없잖아요. 잠을 잘수있는곳도 산장뿐이고 음식을 구할수 있는곳도 이곳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보호해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는 이벤트가 끝나는 날까지 여기서

 

나갈수가 없어요. 깊은 산속이고 차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구속이라고도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산장이 답이라면 열쇠를 찾기위해 여기를 다 뒤져야 한단 말입니까?"

 

"안타깝게두요.."

 

 

 

 

 

 

언제 이 넓디넓은 산장을 다 뒤진단 말인가..

 

힌트를 듣고 기쁜것보다 막막함이 우선이였던 그들은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지용이 승현에게 바나나를 집어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생각해봤는데 상훈씨 말처럼 산장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힌트에는 더 넓은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형. 어떤거요?"

 

"첫날 식사할때 나왔던말 기억해요? 기계음 섞인 남자목소리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잊을수 있겠어요. 끔찍해서 밥도 못먹었는데.."

 

"그럼 승현이 너도 기억하고 있을꺼야. 그 남자가 분명 이렇게 말했었지.

 

-문 밖으로 나갈수는 있으나 반경 10m 로 제한됩니다.- 라고 했을꺼야. 맞지?"

 

"네. 시간이 되기전에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은 탈락처리와 동시에 목숨보장도 못해준다고

 

말했어요. 그것때문에 진주누나 밥먹다 방으로 올라가버렸잖아요."

 

"모두 들으셨죠? 바로 이 부분이 힌트와 연결되어 있어요. 아무리 보이지 않는 눈이 감시하고

 

있다해도 24시간 어디로 도망갈지 모르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란 쉽지않죠. 실수할수도 있구요.

 

하지만 목숨까지 운운해가며 장담을 한걸로 보아 산장주변은 무언가로 둘러싸여 있는게 분명해요.

 

이를테면 가시달린 철조망 같은것 말입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도착했을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닙니다. 분명 무언가가 있을꺼에요. 나가서 다같이 확인해보죠."

 

 

 

 

 

 

말을 마친 지용이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가자 적당히 배를 채운 그들은 서둘러 지용을

 

따라나섰다. 육중한 산장문이 열리자 눈이 부실만큼 강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성한 나무들이 산장 주변을 울타리처럼 빙 둘러싸고 있었고 앞뜰에는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잔뜩 깔려있어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그들은 조심조심 주위를 살폈고 몇걸음 걸어나가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벽이 빛을 잔뜩

 

머금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새벽 이슬에 젖은 거미줄 같았다.

 

 

 

 

 

 

"정말 뭐가 있네요? 이게 뭐죠?"

 

"무슨 실 같은데요? 기계가 말했던게 이건가봐요. 엄청 높게 둘러쳐놨네? 이게 산장주변에

 

있는 구속의 결계인가.. 판타지같아 후후.."

 

 

 

 

 

 

바둑판 모양으로 얽혀 족히 3m는 넘어보이게 높이 둘러쳐저있는 반짝이는 실이 신기했던 순화는

 

손을 들어 가까히 다가갔다. 만져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갑자기 상훈이 사색이 되어 그녀에게 소리쳤다.

 

 

 

 

 

 

"순화씨! 물러서요! 만지지 말아요!"

 

 

 

 

 

 

그의 목소리에 놀란 순화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고 상훈은 재빨리 그녀의 옷을 잡아당겨

 

뒤로 밀어내버렸다.

 

 

 

 

 

 

"상훈씨 왜 그래요? 놀랐잖아요!"

 

"모두 만지지 말아요! 전기가 흐르고 있어요!"

 

"네?"

 

"처음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니.. 진작에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이게 뭔데 그래요?"

 

"은이에요. 은을 실처럼 가늘게 만들어서 담을 쳐놓은 거라구요. 그러니 숲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던거구요. 은은 전도체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큼 전류가 잘 통해요."

 

"헉.."

 

 

 

 

 

 

상훈이 설명하는 도중 들쥐 한마리가 후다닥 뛰어들었다.

 

팔뚝만한 쥐를 본 순화는 소리를 지르며 팔딱팔딱 뛰었지만 쥐가 거미줄같은 함정을 빠져나가려고

 

접근하자 순간 파지직- 소리와 함께 불꽃을 튀기며 전기를 내뿜는 은색의 실과 찍 소리한번 못내고

 

감전되어 풍선 터지듯 피섞인 내장을 쏟으며 바짝 타버린 쥐의 시체는 설명하지 못할 충격을

 

안겨주었다. 만약 손으로 만졌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순화는 자신의 손과 함정을 번갈아 보며 그대로 얼어버렸다.

 

 

 

 

 

 

"초기 반도체는 은으로 만들었어요. 전기가 잘통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은은 너무 가볍고 산화가

 

잘 되어서 수명이 짧아요. 그래서 지금의 반도체는 금을 사용하는거구요. 처음 근처에 왔을때

 

약하지만 타는 냄새가 났어요. 아마도 24시간 내내 전기를 흘리니까 얇게 만들어진 은이 버티질

 

못했던 모양이에요."

 

"상훈씨가 아니였으면 전 지금쯤.."

 

"그나마 은이라는것을 빨리 알아차려서 다행이네요. 잔인한놈들.. 이렇게까지 하다니.."

 

 

 

 

 

 

그들은 타는 냄새에 몸서리를 치며 은으로 된 함정을 따라 산장을 쭉 한바퀴 돌았다.

 

열쇠는 의외로 찾기 쉬운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이 열쇠라는 사실을 알아채기는 힘들었지만..

 

전기가 흐르는 은과 살짝 닿아있어서 진주는 나뭇가지를 꺾어 조심스럽게 열쇠를 끌어냈다.

 

열쇠 역시 은이였고 손잡이 부분에 반 나체의 여인의 모습이 새겨저 있는것이 특징이었다.

 

매우 가볍고 이쑤시게처럼 얇아서 세개 쥐면 뚝 부러져버릴것 같았다.

 

진주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뒤 조심스럽게 감싸쥐고 모두를 재촉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첫번째 상자부터 찾아봐요."

 

 

 

 

 

 

혹시나 무슨 소리가 나지 않을까 상자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던 료가 실망한듯 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무리 흔들어봐도 안이 비어있는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는 상자를 일렬로 줄맞춰 세우더니 모서리를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물건이 바로 있지 않으면 불안증세를 느끼는 결벽증 환자 같았다.

 

 

 

 

 

 

"첫번째 힌트가 세계 4대 종교였나요? 4대 종교와 상자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거지?"

 

아.. 그전에 세계 4대 종교가 뭐뭐였죠? 가톨릭하고 불교.."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입니다."

 

 

 

 

 

 

세계 4대 종교는 학생때 교과서에서 배우고 워낙 널리 알려진 종교들이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들 잘 알고있었다. 지용은 검지손가락을 들어 상자 윗부분을 긁으며 말을 꺼냈다.

 

 

 

 

 

 

"어젯밤 곰곰히 생각해봤는데요 세계 4대로 시작하는 힌트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될것 같아요.

 

어짜피 상자는 색으로 구분 되어지니까 힌트도 색과 관련이 있을겁니다. 그렇죠 상훈씨?"

 

"네. 지용씨 말이 맞아요. 힌트가 말해주는 공통적인 색을 찾아서 상자를 열면 될것 같습니다."

 

"그럼 누구 떠오르는 의견 있습니까?"

 

 

 

 

 

 

지용이 계속해서 상자 윗부분을 손톱으로 긁어대자 뭔가 있어보였는지 따라하던 동팔이 실증을

 

내더니 끼어들었다. 상자의 색은 의외로 허술하게 칠해져있어 살짝 벗겨져 손톱 사이에 끼어있었다.

 

 

 

 

 

 

"빨간색 아니에요? 왜 밤에보면 교회 십자가에 빨간색 불켜놓고 그럽디다. 절에서도 표시를(卍)

 

빨간색으로 하는것 같던뎁쇼? 그러니까 정답은 빨간색입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따지면 이슬람교는 녹색이잖아요."

 

"그건 내 알바 아니구요."

 

"동팔씨는 순서가 지났다고 대충 생각하나본데요! 이번에 죽는사람은 저에요!"

 

"거참.. 진주씨는 나 죽게 생겼을때 소설쓰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진주와 동팔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조금만 더 두면 욕과 주먹이 오고갈것 같아서 지용은 두 사람의 싸움을 막기위해 큰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의 말에 두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교리 아닐까요? 종교는 원래 죄를 씻고 수련을 하기위해 만들어진 곳이잖아요."

 

"그렇죠. 기도도 하고 수행도 하는 곳이니까요."

 

"기독교의 교리는 사랑과 믿음이고, 불교는 자비와 열반, 흰두교는 불교와 비슷하게 평온하고

 

해탈을 중시하는걸로 알고있고.. 이슬람교는 뭐지?"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비슷해요. 심판과 부활이에요 형."

 

"응. 고마워. 아무튼 종교라는것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곳이잖아요. 그러니 흰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외에는 공통되는 색이 없는것 같습니다."

 

"난 무조건 지용씨 의견에 찬성!"

 

 

 

 

 

 

순화가 지용의 말에 찬성하고 나서자 모두들 동감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는 손수건 위에 올려놓은 열쇠를 조심스럽게 집어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흰색 상자를 열었다.

 

조그맣게 딸각- 소리가 나더니 상자가 열리며 열쇠가 구멍안에서 부러져버렸다.

 

그 안은 스펀지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같은 모양의 열쇠가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료는 진주가 내려놓은 부러진 열쇠를 집어들고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래서 기회가 한번뿐이라고 했나보네? 돌리기만 했는데 부러져버리다니..이래서 열쇠를

 

가느다랗게 만든 모양이네요. 나쁜놈들.."

 

 

 

 

 

 

그는 기분이 나빴는지 부러진 열쇠를 바닥에 힘껏 던저버리고 상자안에 있는 새 열쇠를

 

조심히 집어들었다.

 

 

 

 

 

 

"두번째 힌트는 세계 4대 뮤지컬이죠? 근데 색을 알아맞추는것보다 4대 뮤지컬 뭐가 있는지

 

맞추는게 더 어려울것 같네요."

 

"그거라면 제가 알아요. 뮤지컬을 소재로 쓴 소설 덕분에 공부를 했었거든요."

 

"아! 진주씨는 소설가였지? 그럼 뭐가 있는지 말해줄래요?"

 

"네. 우선 가장유명한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 있어요. 두번째는 켓츠(Cats)

 

세번째는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 네번째는 미스 사이공(Miss Saigon) 이렇게 네가지에요."

 

"흠.. 오페라의 유령밖에 모르겠네요. 워낙 뮤지컬과는 거리가 멀어서.. 하하"

 

 

 

 

 

 

료가 멋쩍은듯 머리를 긁적이자 승현이 웃으며 말했다.

 

 

 

 

 

 

"누나가 말해준 네가지를 영어로 바꿔 적어봤거든요? 4가지중 흰색은 나왔으니까 빼고

 

빨강 검정 파랑이 남았죠? 알파벳을 이리저리 조합해보면 검정(Black)은 K라는 알파벳이 없어서

 

못만들고 빨강(Red)은 D라는 알파벳이 없어서 못만드네요. 답은 파랑(Blue)이 아닐까요?"

 

"꼬마야. 머리는 잘 굴렸는데 자세히 봐. U가 없어서 파랑(Blue)이란 단어도 못만들어."

 

"어? 정말이네? 비슷하게 갔나 했더니만.."

 

"너무 머리가 좋아도 안좋다니까? 쓸때없이 깊이 파고들잖아. 난 답을 알것같아."

 

"앗! 진주누나. 정말 답을 아세요?"

 

"그런것같아. 의외로 단순해."

 

 

 

 

 

 

늘 까탈스럽고 날카로워 모두에게 눈총을 받는 그녀도 답을 말함에 있어서는 진지했다.

 

모두 귀를 기울여 집중하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다들 내용 아시죠?"

 

"오페라 극장밑에 살던 남자가 무명 여 배우를 사랑해 그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려고 한명씩

 

죽이는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래서 그를 '어둠의 유령'이라 불렀었죠. 어둠이 의미하는 색은 검정이구요.

 

레 미제라블은 장발장을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이에요. 빵 하나를 훔쳐 감옥에 가게된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그 당시 장발장의 사정을 모르던 사람들은 그를 물건을 훔치는 '검은손' 이라고

 

수근거렸었죠. 미스사이공은 현대판 나비 부인이에요. 월남전 당시 베트남 여인이였던 킴은

 

미군장교를 사랑하게 되어 아이를 갖게되죠. 하지만 전쟁이 끝난후 미군장교는 본토로 철수한채

 

돌아오지 않았고 킴은 아이를 낳고 그를 애타게 기다리다 결국 자살하고 말아요. 굉장히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지만 나비부인은 자살한 나비. 속칭 '검은 나비' 라고 불리워졌죠.

 

마지막 켓츠는 말씀 안드려도 제목만으로 힌트가 되겠죠?"

 

"검은 고양이!"

 

"맞아요. 고양이 하면 보통 검은 고양이 네로가 생각나잖아요. 후후..그래서 저는 두번째 상자가

 

검은색이라고 생각해요."

 

"와우~!!"

 

 

 

 

 

 

그녀의 군더더기 없는 설명에 다들 감탄했고 료는 재빨리 검은색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열쇠가 부러지며 상자가 열렸고 또 다른 열쇠가 나왔다.

 

동팔은 누런 이빨을 씨익 드러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눈감고 찍어도 반은 성공한거네요! 생각보다 오늘 문제는 너무 잘 풀리는군요!"

 

"그러게요. 세번째만 풀면 끝이겠어요."

 

 

 

 

 

 

상훈도 덩달아 기뻐하면 메모지를 들여다 보았다.

 

세번째 힌트는 세계 4대 문명.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세계 4대 문명은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하 문명, 인더스 문명 이에요.

 

그럼 마지막 힌트인 세계 4대 살인마를 아는분 있나요?"

 

 

 

 

 

 

그의 질문에 승현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세계 4대 살인마는 기준이 모호해요. 저마다 알고있는게 다르니까요. 어떤 사람은 소설책에 나오는

 

살인마를 실존인물처럼 믿어버리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면도날 잭이 대표적인 경우죠.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를 최고 살인마로 손꼽기도 해요. 그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은 끔찍했죠.

 

고대 살인마인지, 국내의 살인마인지, 아니면 현대의 살인마인지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져요.

 

지금 생각나는건 세명 뿐이네요."

 

"면도날 잭은 실존 인물 아닌가?"

 

"면도날 잭이라기보다는 잭 더 리퍼가 정확하겠죠. 둘은 다르거든요."

 

"암튼 알고 있는 세명이라도 말해줄래?"

 

"네. 상훈형. 우선 엘리자베스 바토리에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피로 목욕을 했고 그 피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처녀들을 끔찍하게 죽였죠. 그래서 그녀를 피의 여왕, 또는 철의 여왕이라고 불렀어요.

 

두번째는 테페즈에요. 꼬챙이로 사람을 찔러죽이고 피를 마셨다는 그는 드랴큘라의 시초가 되기도해요

 

세번째는 질드레에요. 잔 다르크 아시죠? 질드레는 원래 잔 다르크의 경비병이였데요. 그는

 

잔 다르크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잖아요. 그 후에 사람들을

 

저주하고 어린아이들을 잡아다가 무차별적 살인을 저질렀나봐요. 세사람 다 죽인 사람이 500 이상으로

 

밝혀졌다죠? 방법이 잔인하고 끔찍하기 이를데 없었나봐요. 컴퓨터를 사용할수 있다면 다른 인물들도

 

알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 사람들 밖에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그래도 내 예상이 맞았어."

 

"마지막 상자가 빨간색일것라는 것 말이죠?"

 

"그래. 세번째 상자가 파란색이라고 생각했거든."

 

"이제 형의 의견을 말해줄래요?"

 

"세계 4대 문명의 공통점은 비옥한 토지와 발달된 문명이야. 하지만 그렇게 세부적인것 말고도

 

가장 큰 공통점이 있어. 그곳들은 큰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권이라는거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플라테스강, 황하 문명은 중국 황하강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과 겐지스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어. 강은 네 이름처럼 승현을 상징하잖아?

 

그래서 세번째 상자는 청색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아요. 딱 떨어지네요. 살인마가 완벽하지 않은게 흠이지만..아무튼 어서 열어봐요."

 

 

 

 

 

 

승현이 재촉하자 그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료는 파란색의 상자를 열었다.

 

답이 맞았는지 파란색 상자역시 손쉽게 열렸고 료는 그곳에서 얻은 열쇠를 들고 기뻐했다.

 

그때였다.

 

계속 빨간색 상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보던 지용의 얼굴이 갑자기 히얗게 질리더니

 

벌떡 일어나 료의 손에 들려있던 열쇠를 빠르게 나꿔챘다.

 

그리고는 양손 집게손가락으로 잡고 힘을주자 열쇠가 반으로 뚝 부러져버렸다.

 

 

 

 

 

 

"지용씨 미쳤어요? 그 열쇠를 부러뜨리면 어떻게 해요!"

 

"그 상자는 열면 안되요!"

 

"이 자식 너 뭐야? 죽고싶어!"

 

"비켜!"

 

"전부터 너 눈빛 마음에 안들었어. 재수없는 새끼! 오늘 나랑 결판을 내자!"

 

 

 

 

 

 

진주는 절망을 느끼며 주저앉아버렸고 그의 행동에 화가 난 동팔은 멱살을 잡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지용이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의 멱살을 잡은 동팔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자 동팔은 이성을 잃고

 

주먹을 들어 그의 턱을 힘껏 날렸다. 놀란 승현은 재빨리 다가가 지용의 얼굴을 감싸안고

 

하지 말라며 큰 소리로 악을 썼다. 순식간에 산장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열쇠가 당신들을 살리는 구원의 열쇠인줄 알아? 천만에! 잘봐!"

 

 

 

 

 

 

지용은 사람들을 무섭게 노려보며 빨간색 상자를 들고 성큼성큼 산장 밖으로 나갔다.

 

그의 행동에 화가난 사람들은 그를 따라 우르르 문밖으로 모여들었다.

 

지용은 다시 한번 상자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허공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콰쾅!!

 

 

 

 

 

 

공중에서 떨어진 상자는 지면에 닿기가 무섭게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짧은 진동과 함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시커먼 연기와 재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놀란 그들은 할말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야 알겠어요? 내가 왜 열쇠를 부러뜨린건지!"

 

"끔찍해.. 정말 이건.. 너무해.."

 

"진주씨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저 상자를 열었다면 우리 모두가 화상을 입거나 최악의 경우

 

몇명은 죽었을껍니다. H는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였다구요."

 

"답을 맞추면 살려준다고 하더니.. 왜.."

 

 

 

 

 

 

진주는 촛점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용은 그녀를 위로하듯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쉽게 문제를 풀어나갈 경우 모두가 살아남는것을 두려워한

 

H가 들어놓은 일종의 보험인것 같습니다. 문제를 못푼다면 예정대로 한명이 살해당할테고

 

문제를 풀고 상자를 연다면 최소한 여러명이 죽거나 다칠테니 그로써는 둘중 어느것이든

 

상관 없었던 모양입니다."

 

"지용씨는.. 저 상자가 폭발할꺼라는거.. 어떻게 알았죠?"

 

"가까히 가서 상자 뒷면에 새겨진 글귀를 읽어보세요. 그럼 이해가 갈껍니다."

 

 

 

 

 

 

지용의 말에 모두들 조심스럽게 상자로 다가갔다.

 

이미 폭발해버린 상자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지만 상자 뒷면에 새겨져있는 글귀는 또렷하게 남아

 

그들의 눈을 정신없이 파고들었다.

 

 

 

 

 

 

마지막 상자는 그대들 모두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할 것입니다.

 

불꽃의 축제를 기대해 주십시오.

 

-4번째 살인마 Master H로부터-

 

 

 

 

 

 

 

 

 

 

 

 

 

 

 

 

 

 

 

-three-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나 어떻게 해..흑..흑..이제 겨우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겼는데.. 흑.."

 

 

 

 

 

 

절망을 느낀 진주는 자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이 가슴아팠던 순화는 진주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보다 더 크게 통곡했다.

 

다들 고개를 떨구며 말없이 진주의 어깨위로 손을 올리며 위로했다.

 

어떻게 본인이 느끼는 절망감에 비하겠냐만은 그들도 같은 입장으로써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동팔은 늘 눈에 가시같던 그녀였지만 내심 안타까웠는지 멋쩍은 말투로 슬며시 말을 걸었다.

 

 

 

 

 

 

"울지마십셔.. 그래도 다들 무사하지 않습니까. 아직 정답을 틀린적이 없으니 꼭 죽는다고 보장할수도

 

없습니다. 기운내십셔.. 상자속에 폭탄이 들어있었으니 정답 목록에 써넣어 보도록 합시다."

 

 

 

 

 

 

진주는 그의 제안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것을 알기에 평소처럼 쏘아붙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가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승현은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본다.

 

 

 

 

 

 

"폭발할때 이상한거 못느끼셨나요?"

 

"그딴걸 느낄새가 어디있어! 심장마비 걸리는줄 알았구만.."

 

 

 

 

 

 

동팔은 그의 말엔 관심이 없다는듯 성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지용은 왠지 승현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동팔의 막을 막아섰다.

 

 

 

 

 

 

"왜? 뭔가 이상했어?"

 

"네. 형.. 폭발할때 재가 날리나요?"

 

"글쎄.. 나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서 잘 모르겠어. 하지만 폭발도 무언가가 타오르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니 재가 날리지 않을까?"

 

"그건 그런데요.. 뭐랄까 하늘하늘 거리는 느낌이였어요. 화학 반응에 의한 재라기보다는

 

또렷한 형태를 가진 무언가가 공중에서 나비처럼 타오르더니 사라져버렸거든요.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퇴마사들이 귀신쫓을때 부적에 불을 붙여 날리잖아요? 그와 비슷한 종이의 느낌이랄까?"

 

"종이?"

 

 

 

 

 

 

승현의 말에 지용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주변을 실피기 시작했다.

 

다들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간다는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눈치 빠른 승현은 팔을 걷어붙이고

 

그를 따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형! 이것보세요. 제가 뭔가를 찾은것 같아요!"

 

 

 

 

 

 

승현이 크게 손짓하자 지용은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낸뒤 빠르게 이동했다.

 

그의 손에는 타다 남은 듯한 작은 종이조각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제서야 눈치를 챈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승현을 빙 둘러싸고 모여들기 시작헀다.

 

 

 

 

 

 

"이게 뭐지? 사진인가?"

 

"네. 사진같아요. 그을려서 형태를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이것보세요. 사람의 팔같죠?"

 

"그래. 네말이 맞는것 같다."

 

 

 

 

 

 

우연하게 발견된 작은 종이조각은 절망에 빠져있던 그들에게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종이를 들고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지용이 그들에게 구미 당기는 제안을 했다.

 

 

 

 

 

 

"이건 아무래도 상자안에 들어있던 정답의 일부분 같네요. 큰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다같이 주변을 살펴보아 비슷한것 한두개라도 발견할수 있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고 봅니다. 어때요. 해보지 않을래요?"

 

"고민하고 자시고 할께 어디있어! 무조건 해야지. 우리가 보물찾기 한두번 해본것도 아니고

 

어디 한번 해봅시다!"

 

 

 

 

 

 

왠일로 동팔이 강한 의욕을 보이며 나섰다.

 

그들은 돌을 들춰내고 풀숲을 헤집어가며 정신없이 종이를 찾는데 열중했고 더이상은 타버려서

 

남아있지 않을것이라는 확신이 들때까지 한시간 남짓.

 

확인해보니 크기는 약간 달랐지만 승현이 발견한 종이 조각과 비슷한 것들이 4개나 더 발견되었다.

 

마음이 급했던 그들은 산장으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조약돌 위에 철퍼덕 주저앉은채

 

퍼즐 맞추기를 하는것처럼 집중하며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네요. 그런데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어요."

 

"어쩜 얼굴을 중심으로 그 주변만 절묘히 타버렸을까요? 폭발하면서 사진이 조각조각 날렸는데도

 

다른부분은 그을렸을뿐 형태는 살아있는데.."

 

 

 

 

 

 

얼굴부분이 타서 없어진 터라 그들은 반신 사진을 보고 남자라는것. 약간 마른 체형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는것 밖에 알아낼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조약돌 위에 얌전히 맞춰놓았던 사진이 날리기 시작했다.

 

애써 맞춰놓은 것이 흐트러지니 짜증이났던 료는 신경질을 내며 몸을 일으키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사진이라는것에 정신이 팔려 보지못한 뒷면에는 서투른 필체로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그들은 재빨리 날아간 종이를 수습해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스.............................................축하드립니다.

 

이 사진까지 발견해 내신 놀라................................탄을 금하지 못....

 

.....를 보내드립니다........................................알려드리겠습..다........

 

.........속에 모습은 실제................................의 실물 사진입니다. 참고

 

....시기 바랍니다.................................................은 제가 목에 걸고있는

 

..걸이의 모양을 알아 맞추는것이 바로 두번째 미션의 정답입니다.

 

부디 행운이 함께하시어 멋진 승리과 함께 좋은 추억 만드시길 바랍니다.

 

-Master. H-

 

 

 

 

 

 

"나 이 사람 한번 만나보고 싶어 완전 사이코 아냐?"

 

"얼굴 부분만 불타서 누군지 확인할수가 없네.."

 

"근데 자세히 보세요. 저 사람이 차고 있는 시계 료씨의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어? 정말 그러네.. 비슷한게 아니고 같은것 같은데요?"

 

 

 

 

 

 

사진속의 시계가 어렴풋이 료의 시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진주와 상훈은 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료는 같은 시계가 어디 한둘이냐며 버럭 화를 냈다.

 

뭐 갈색 가죽밴드로 된 시계는 흔히 볼수 있는것이지만 잔뜩 예민해있던 그들은 계속해서

 

료의 시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심 신경이 쓰였는지 그는 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괜히 기분 나쁘네요. 살인마와 같은 시계를 차고있다니.."

 

 

 

 

 

 

료가 불쾌한듯 인상을 찌푸리자 지용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돌렸다.

 

 

 

 

 

 

"사진이 타버리는 바람에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 내용은 알것같네요. 이 사진의 주인공은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마스터 H고 정답은 이 사람이 걸고 있는 목걸이의 모양이죠?"

 

"네. 그런것 같군요. 하지만 불에 그을리고 반쯤 찟겨져나가서 정확한 모양을 알수없어요."

 

"료씨가 보기엔 어떤 모양 같은가요?"

 

"글쎄요.. 정사각형의 무언가같은데.. 비스듬히 걸려있고 그위로 고리가 달려있으니까.."

 

"이게 뭐지?"

 

"아! 자물쇠! 자물쇠 아닌가요?"

 

 

 

 

 

 

그의 말에 모두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아무리봐도 그냥 정사각형의 팬던트였지만 그의 말대로 사각형 윗쪽에 고리가 달려있는걸로 보아

 

정말 자물쇠같기도 했다. 사람의 머리는 한번 떠올리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위험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진주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더이상은 방법이 없군요. 우선 답을 폭탄,아니면 자물쇠라고 정하고 들어가서 기다리죠.

 

모두들 허기가 질테니 간단하게나마 식사도 하시구요."

 

 

 

 

 

 

상훈의 제안해 모두 흔쾌히 응하며 산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식사라는 말에 동팔이 제일 먼저 달려나갔고 모두들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앗.. 아윽.."

 

 

 

 

 

 

조약돌을 밟고 지나려니 푹푹 꺼지는 느낌에 걸음하기 힘들었던 그들은 산장을 우회해 좁게

 

깔아놓은 길로 올라갔다. 그러나 꾸물거리며 뒤늦게서야 일행을 뒤쫓던 승현은 급히 달려오다

 

튀어나온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앞서 걸어가는 지용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뒤돌아 달려갔지만 승현은 넘어진채로 하얗게 질린채

 

정신없이 돌을 파해치고 있었다.

 

 

 

 

 

 

"이럴수가.."

 

"승현아! 너 괜찮아? 다친데 없어?"

 

"형.. 이건 말도 안되요!"

 

"왜그래?"

 

 

 

 

 

 

승현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열에 들뜬 사람처럼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지용은 영문을 몰라 허리를 숙여 그의 손바닥안을 보았으나 곧 할말을 잃고 침묵했다.

 

사람들은 두사람이 따라오지 않자 다시 되돌아왔고 그들을 통해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속이라도 편했을것을..

 

 

 

 

 

 

"이게 뭐야! 사진 조각이잖아?"

 

"같은 부분이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것과 같은 부분이라구!"

 

 

 

 

 

 

그것은 절망을 넘어선 전율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승현이 돌 사이에서 발견한 사진조각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각중 하나와 일치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이성을 잃은 동팔은 미친듯이 주변을 파해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넋을 잃고 멍하니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흩어져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같은 사진이야.. 찾는것 마다 모두 같은거야.. 맞춰봐도 얼굴 부분만 불타있는 같은 사진이라구!"

 

"더군다나 목걸이의 모양은 사진마다 달라요. 이건 하트 모양이구 이건 나비모양이에요.."

 

 

 

 

 

 

결국 그들은 마스터 H의 계략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것이다. 폭탄이라는걸 알아채고 누군가가 밖으로 던져 폭파시킬것을

 

대비해 이곳저곳에 같은 사진조각을 여러개 뿌려놓은것이다.

 

만약 폭탄이 터진곳이 산장 오른쪽 구석이라면 사람들은 그 주변만 뒤질테니 이곳저곳

 

구역을 정해놓아 띄엄띄엄 뿌려놓으면 중복되는 조각이 있을리 없을터..

 

그들은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계획에 치를 떨며 홀린 사람들처럼 산장안으로 들어갔다.

 

서로가 식사도 거른채 아무런 말없이 쇼파에 앉아있기를 몇시간..

 

드디어 11시를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모두들 저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포기할래요.."

 

"진주씨 무슨소리에요! 약한소리 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순화씨.. 더이상은 희망이 없어요.전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아요."

 

"그럴순 없어요! 뭐든지 써보면 되잖아요! 폭탄이든 자물쇠든 나비든 하트든 써보자구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번 문제에는 답이 없어요! 처음부터 답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게 아니면 왜 같은 사진속 목걸이 모양이 다 다르겠어요!"

 

"그래도 어떻게 손 놓고 있어요.. 뭐라도 해봐야죠. 네? 진주씨?"

 

"저도 살고 싶어요.. 흑.. 하지만 불가능하잖아요.. 이 문제는 죽으라고 만든 문제잖아요.. 흑..흑.."

 

 

 

 

 

 

진주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서러움에 눈물을 쏟았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희망은 없어보였다.

 

11시 반이 되고 8번방에 컴퓨터가 작동하자 정답자인 상훈은 정신없이 뛰어올라가 아무 답이나

 

막 입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오답일뿐 정말 그녀의 말대로 답은 없는것 같았다.

 

 

 

 

 

 

땡-땡--

 

 

 

 

 

 

12시. 자정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와 함께 2번째 미션은 끝이났다.

 

진주는 포기한듯 오히려 편해보이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번 메모지는 료의 방에 있었다.

 

 

 

 

 

 

"제방에 메모가 있네요. 이럴게 아니라 다음부터는 누가 메모지를 가져다놓는지 지켜봐야겠어요."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쭉 훓어보고는 천천히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장의 비밀. 제 3장*

 

세번째 주인공은 니시키도 료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동반자로는 정 지용 님이 선택되었습니다.

 

니시키도 료 님이 정답을 맞추지 못할경우 정 지용 님께서는 12시간안에 살해당하게 될것입니다.

 

참고하시고 최선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 주십시오.

 

*Mission = 12개의 디스켓중 6개의 정답 디스켓을 찾고 그 안에 저장 되어있는 글자를 조합하시오.

 

*Hint = 1. 각 디스켓에는 한글자의 한글이 적혀져있습니다. 12개중 6개가 정답 디스켓이고 그 안에

 

적혀져있는 글자를 조합하면 하나의 문장이 됩니다. 그것이 미션의 정답입니다.

 

나머지 6개의 디스켓중 2개는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도록 하여 입력 기회를 잃게하며

 

2개는 답 입력당시 화면의 역실행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2개는 실행즉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트려 더이상 컴퓨터를 사용할수 없게 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디스켓 내용 - 이것은 타국의 언어이며 동시에 우리와도 민첩한 관련이 있습니다.

 

동사 형용사를 가리지 않으며 어느 누구나 만들어 낼수 있고 어떤 뜻이든

 

담아낼수 있습니다. 그것의 경우의 수는 대략 8만 5천의 4제곱입니다.

 

3. 디스켓 순서 - 저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순위권 안에는

 

들었으면 좋겠군요. 만년 후보선수는 지겹습니다. 빨리 실력을 키워

 

대표선수 대열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정답 제출시간은 오후 11시 30분부터 30분간입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힌트와 설명을 드렸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것으로 예상합니다.

 

아.. 두번째 미션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여러분의 추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앞으로의 문제 출제시 참고할수 있으니까요. 다시는 그와 같은 미션이 나오지 않을 예정이니

 

너무 심려 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형 이름이 올라갔어.. 싫어!"

 

"승현아. 진정해. 우선은 나보다도 진주씨가 먼저야. 12시간 안에 살해당한다고 했으니

 

우리가 지켜야해."

 

 

 

 

 

 

살인 명단에 지용의 이름이 오르자 승현은 지용의 옷자락을 세게 부여잡았다.

 

지용은 떨고있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누가 진주씨와 같이 있어주세요. 혼자 두는건 위험해요."

 

"제가 같이 잘께요."

 

"하지만 순화씨는 여자라 버거울지도 몰라요. 무슨일이 생기면 같이 위험해질수도 있구요."

 

"아니에요. 진주씨 성격 몰라요? 남자가 같이 있어준다고 하면 방문 걸어잠그고 혼자있겠다고

 

할 사람이라구요. 차라리 제가 있는게 나아요. 절대 잠 안잘테니까 믿어주세요. 무슨일이 생기면

 

바로 소리지를께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조금 긴장하고 있어주세요."

 

"좋아요. 그럼 어서 진주씨를 데리고 들어가세요. 우리도 잠시 쉬고 내일 미션 준비해야하니까요."

 

 

 

 

 

 

순화는 아랫층에 있는 진주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한밤중이 살인이 일어나기엔 가장 적당한 시간인지라 남자들도 최대한 잠을 피하며

 

대기하기로 했다. 양쪽에서 강하게 잡아당겨진 실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승현아. 먼저자. 형이 깨어있을게."

 

"싫어요! 지금 어떻게 잠을 잘수 있겠어요. 형의 이름이 메모에 올랐는데.."

 

"아직 시작도 안해봤잖아. 문제만 잘 풀면 무사할꺼야. 걱정마."

 

"그 살인마를 어떻게 믿어요! 또 정답없는 문제일수도 있잖아요!"

 

 

 

 

 

 

승현이 앉지도 못한채 손톱을 깨물고 불안해하자 지용은 그의 뒤로 돌아가서 가만히 안아주었다.

 

많이 긴장한듯 승현의 작은 어깨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메모지에도 적혀있었잖아. 다시는 정답 없는 문제 안내겠다고."

 

"믿을수가 없어요.. 전 그사람 못믿겠어요."

 

"자. 진정하고 심호흡을 해봐. 너 지금 너무 긴장했어."

 

 

 

 

 

 

지용은 승현을 쉬게 하기위해 억지로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내리자 승현이 그 손을 붙잡고 뺨에 부벼댔다.

 

 

 

 

 

 

"만약 형이 죽는다면 저도 죽을꺼에요.."

 

"뭐?"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버렸는데.. 형과 같이 이 산장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그편이 나아요."

 

"너 말뿐이라도 그런말 하지마! 분명히 말한다.. 다시 한번 그런말 하면 혼날줄 알아!

 

나는 네 생각 안하는줄 알아? 만약 미션에 네 이름이 오른다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생각하느라

 

밤새 뜬눈으로 지샜어! 사람들이 미션에 대해 생각할때 난 너를 지킬 궁리만해. 알아?

 

잠시라도 네가 시야에 없으면 불안한데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해?"

 

"...........미안해요.."

 

"넌 내가 지켜. 살인자든 뭐든 아무도 손 못대."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제가 멋대로 형을 좋아해버린거니까 저때문에 그러실 필요는 없..."

 

 

 

 

 

 

말하던 도중 예고없이 지용의 입술이 말을 막고 강하게 파고 들어오자 승현은 문득 두려움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에게서 알수없는 중압감이 느껴지자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왜울어."

 

"..........."

 

"울지마. 미안해.."

 

"안아주세요..불안해서 견딜수가 없어요.. 절 두고 먼저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안아주세요.."

 

"그거면 편해지겠어?"

 

"네.."

 

"널 아프게 할지도 모르는데?"

 

"상관없어요.. 지금요.."

 

 

 

 

 

 

지용은 가만히 승현의 눈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친 투명한 갈색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용 역시 승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살면서 존재만으로 그렇게 강하게 자신을 잡아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감정에 치우쳐 그에게 손을 댄다면 왠지 후회할것만 같았다.

 

지용은 허리를 숙여 승현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지금은 싫어.. 나는 네가 좀더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와주었으면 좋겠어.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서 나에게 안긴다면 너 역시 기쁘지 않을거야. 나는 너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으니까

 

불안해하지마.. 돌아가신 부모님들처럼 나도 그렇게 갑자기 떠나버릴까 걱정되는거지?"

 

"흑..."

 

"약속했잖아. 난 그렇게 약하지 않아.. 믿어봐."

 

 

 

 

 

 

지용은 승현의 눈물을 닦아주고 짧은 키스를 해주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승현은 잠이 들었고 그런 그를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바라도던 지용은 정신을 집중하여 미션의 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순화씨! 진주씨는 어때요? 무사한거에요?"

 

 

 

 

 

 

다섯명의 남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거실 쇼파에 모여 있었다.

 

밤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진주의 방이 굳게 잠겨있는 바람에

 

확인도 못한 그들은 진주와 순화가 깨어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자 순화가 하품을 하며 계단을 내려왔고 상훈은 다급히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네. 아무일도 없었어요.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진주씨는요?"

 

"아. 언니는 옷 갈아입고 곧 내려올꺼에요."

 

 

 

 

 

 

같이 하룻밤을 잤다고 친해졌는지 호칭이 진주씨에서 언니로 바뀌어 있었다.

 

순화가 쇼파위로 털썩 주저앉자 그들은 미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탁자위에는 까만색의 디스켓 12개가 일렬로 놓여져 있었다.

 

상훈은 그중 한개를 집어들더니 안경을 밀어올리며 말했다.

 

 

 

 

 

 

"디스켓마다 글이 써있군요? 이 글이 답이란 말이네요. 근데 경우의 수가 8만 5천의

 

4제곱이라면 그 많은것중에 어떻게 찾죠?"

 

"8만 5천의 4제곱이 얼마나 많은 숫자인거요?"

 

"계산해보니 대충 5220경 개가 넘어가더라구요."

 

"경이요?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십억..백억..천억..조..십조..백조..천조..경..

 

십경..백경..천경...........헉!!"

 

 

 

 

 

 

동팔은 경이라는 숫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손으로 스스로의 목을 조였다.

 

사실 정치권의 비리자금 때문에 조단위까진 익숙하다해도 경이라는 단위는 누구에게나 낯설었다.

 

그때 그들의 등뒤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숫자는 그냥 참고하라고 붙여준거지 계산할 필요까진 없어요."

 

"앗! 진주누나!"

 

 

 

 

 

 

진주가 차분하게 계단을 내려오자 승현이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고 사람들도 그녀를 반겼다.

 

그녀는 쇼파 근처로 다가와 디스켓을 집어들며 말했다.

 

 

 

 

 

 

"생각해봤는데요. 디스켓 내용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모두가 흔히 알고있는것이에요.

 

역시 헷갈리는건 디스켓 순서인것 같아요."

 

"순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내용부터 말해볼래요?"

 

 

 

 

 

 

료는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펴고 말했다. 그러자 진주는 들고 있던 디스켓을 료에게 넘겨주며

 

탁자위에 있던 메모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웃의 언어. 동시의 우리의 언어. 정답은 사....윽...컥!!!"

 

"까악!!!! 진주언니!!!!!"

 

 

 

 

 

 

숨도 쉴수 없을 만큼 강하고 소름끼치는 파공음이 울리더니 진주는 말을 잊지 못하고 시커먼 피를

 

울컥 토하며 무너지듯 그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손쓸 새도없이 정확히 그녀의 등을 관통해 심장을 꿰뚫은 화살은 그녀의 살풋한 가슴을 헤집고

 

시커먼 피와 살점을 터트리며 작렬했다.

 

쓰러진 그녀의 입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희미하게 달싹이고 있었다.

 

 

 

 

 

 

"정신차려요! 진주씨!!"

 

"언니! 일어나요! 빨리 일어나!!!! 흑... 일어나란 말야!!!!"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주는 가늘게 눈을 뜨고 그들을 향해 눈동자를 굴리더니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눈 밖으로 밀어내며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순화는 그녀의 싸늘한 주검을 끌어안고 오열했고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은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료는 뭔가를 발견한듯 창가로 달려갔고 큰 창을 가득 덮고 있는 연보라색의 커튼을 재끼자

 

원격 조종기가 달린 크로스 보우가 흉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크로스 보우는 일명 석궁이라고도 하며 사거리가 짧고 장전 시간이 길다는것이 단점이지만

 

철을 뚫어버릴 정도로 파괴력이 뛰어났다. 실제로 잔 다르크가 백년전쟁 당시 화살이 적군의

 

철갑옷을 뚫지 못하자 크로스 보우를 사용해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승리로 이끌었던 적도 있다.

 

그들은 진주의 죽음앞에서 망연자실하였지만 곧 미션을 풀지못하면 새로운 희생자가

 

나올것이라는것을 직감했다. 그녀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방으로 올려 침대에 눕히고 짧은 명복을

 

빌어준후에 문을 나선 그들은 우연히 책상위에 놓여있던 종이 한장을 발견하게 된다.

 

 

 

 

 

 

한자는 대략 8만 5천개. 중국의 언어.

 

동사 형용사를 무시하고 만들수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에게 익숙한 무언가라면

 

답은. 사자성어.

 

 

 

 

 

 

진주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중요한 힌트는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희생자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밤새 고민하며 풀었을 문제의 해답은

 

그녀의 목숨과도 바꾼 값진 선물이었다.

 

사전에 명시되어 있는 한자는 8만 5천여개. 그것으로 사자성어를 만들고 한글자가 1개에서 4개까지

 

겹치기로 출연할수 있다면 8만 5천개의 4제곱..

 

순화는 그녀의 메모를 끌어안으며 또 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동훈은 입술을 깨물며 순화를 부축하여 1층 거실로 내려갔고 그들은 12개의 디스켓 앞면에

 

적혀있는 글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Disk1 - 난 어렸을때 부터 복습따윈 하지 않았다. 한번 들으면 그 이상의 것을 유추할수 있었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고 불렀다.

 

*Disk2 - 우리집은 대대로 독실한 불교집안이다. 나는 향 냄새가 싫어 매번 절에서 도망쳤지만

 

어머니는 수련만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독을 풀어낼수 있다고 하셨다. 이해가 안간다.

 

*Disk3 - 늘 가난했던 우리집은 한번도 여름휴가를 가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달동안 용돈을

 

모아 복권 두장을 샀다. 이것이 당첨된다면 마음껏 놀고 먹을수 있겠지? 기쁘다.

 

*Disk4 - 우리학교는 집에서 멀기때문에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아침만 되면 아저씨들때문에 숨이

 

막인다. 참을수가 없어서 오늘은 새벽같이 나왔다. 길도 막히지 않고 너무 좋다.

 

*Disk5 - 옆집 영희랑 숨바꼭질을 했다. 나쁜계집..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수가 없다. 갈만한곳은

 

다 찾아봤지만 아무데도 없다. 다시는 영희랑 놀지 않을것이다.

 

*Disk6 - 드라마에서 보니 조인성이 15살에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었다. 난 너무 불쌍해서 그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는데 알고보니 조인성은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기분나쁘다.

 

*Disk7 - 오늘부터 새로운 드라마를 보기로 결심했다. 머리에 갓을 쓴 선비들이 종이에 글을 쓰고

 

서로 지가 잘났다며 우기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빨리 쓴 사람이 장땡인것 같은데..

 

*Disk8 - 난 우리집이 제일 가난한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짝 정미는 먹을것이 없어서 이틀에 한끼를

 

먹을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난 하루 두끼는 먹으니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Disk9 - 선생님은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낙이 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먹는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사내로 태어났으면 더 큰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Disk10 - 우리 이모의 딸은 너무 예쁘다. 난 첫눈에 반해버려 꼭 그 아이랑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누나는 나를 비웃으며 꿀밤을 주었다. 친척하고 결혼하면 어때서 흑..

 

*Disk11 - 우리집 뒷산은 가을이 되면 밤이 많이 열린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주으러

 

올라갔다가 엄마한테 죽도록 맞았다. 비탈이 심해서 굴러떨어지면 위험한 곳이란다.

 

*Disk12 - 중학생인 우리 누나는 같은 학교 잘생긴 형아를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누나의

 

얼굴로는 택도 없을것 같은데 누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간 자신에게 넘어올꺼라나?

 

 

 

 

 

 

"이거 일기같은데? 초등학생 일기."

 

"그래도 꽤 자세한 힌트인걸요? 전 몇가지 알겠어요."

 

"지용씨도 그래요? 저도 대충 감이 오네요."

 

 

 

 

 

 

지용과 료는 서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사자성어라는 결정적 힌트를 대입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료는 자신이 알것 같다는 디스켓을 집어들었다.

 

1번과 3번이였다.

 

 

 

 

 

 

"우선 1번요. 한번 들으면 그 이상의 것을 유추할수 있었고 절대 잃어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천재라고

 

불렀다. 이건 문일지십(聞一知十)같네요. 한가지를 알려주면 10가지를 깨우칠만큼 총명함을 뜻하죠.

 

그리고 3번은 집이 가난해서 휴가를 못갔기때문에 꼬마아이가 복권을 샀잖아요. 두장이 맞을 확률은

 

거의 제로인데 말이죠. 그래서 이건 일장춘몽(一場春夢)같아요. 한때의 헛된 꿈을 뜻하죠."

 

 

 

 

 

 

료가 설명을 끝내자 이번엔 지용이 디스켓을 집어 들었다. 그가 집어든건 10번 12번이었다.

 

 

 

 

 

 

"10번은 이모의 딸이 좋아 결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어린아이라면 충분히 생각할수 있는 일이지만

 

아시다시피 피로 이어진 친척끼리는 근친이라고 해서 결혼이 불가능 하잖아요. 그게 규칙이니까.

 

그래서 10번은 서로 모순되어 어울릴수 없다는 뜻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12번은 잘생긴 형을 보고 누나가 포기하지 않는 내용이잖아요? 꼬마는 누나의 외모로는 어림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언젠간 자신에게 넘어올꺼라고 하죠? 옛부터 내려오는 말중에 '10번 찍으면 안넘어올

 

나무 없다' 라는 말이 있듯 그말의 사자성어인 십벌지목(十伐之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요. 지용씨. 벌써 4개는 해결되었군요?"

 

 

 

 

 

 

료가 기뻐하며 해결된 디스켓을 한쪽으로 치워놓자 승현이 다가와 2번과 9번 디스켓을 집어들었다.

 

 

 

 

 

 

"헤헷..이건 좀 어려워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떠오른거 있죠? 2번에 보면 아이는 불교신자인데

 

불공드리기 싫어 도망치고 어머니는 몸을 수련을 해야 독을 풀수 있다고 했어요. 이건 불교용어인

 

백팔번뇌(百八煩惱)인것 같네요. 불교에서는 '욕심,성냄,어리석음' 이 세가지의 괴로움을 일컬어

 

독이라고 표현해요. 불교 경전에서는 사람의 인식기관인 눈,귀,코,혀,몸 등을 통해 마음의 갈등을

 

느낀다고 말하고 그것을 일컬어 번뇌라고 하죠. 수련을 통해서 백팔번 번뇌를 해야만 깨달음을

 

얻을수 있다는 뭐 그런뜻이에요. 그리고 9번은 아이가 먹는게 낙이라고 하자 선생님이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큰 포부를 지녀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이건 군자삼락(君子三樂) 같아요.

 

군자라면 지녀야할 세가지 낙이라는 뜻인데요 첫째는 부모가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 할것이 없는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것을 뜻해요.

 

어떤가요? 이거 맞겠죠?"

 

"맞겠죠가 아니라 정확한것 같은데?"

 

 

 

 

 

 

승현이 손목을 긁적거리며 말을 마치자 상훈이 그를 칭찬하며 다가와 11번 디스켓을 집어들었다.

 

 

 

 

 

 

"저는 이거 하나밖에 모르겠네요. 밤을 따러 올라간 아이가 험한 산에 올라갔다가 어머니한테

 

죽도록 맞았다잖아요? 하하.. 이건 양의 창자처럼 꼬불거리고 매우험한 길을 뜻하는 사자성어인

 

구절양장(九折羊腸)같아요. 험한 산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죠."

 

 

 

 

 

 

상훈이 말을 마치자 순화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8번 디스켓을 집어들었다.

 

 

 

 

 

 

"저는 먹는것에만 강한가봐요. 다른건 하나도 모르겠고 8번 하나만 알겠어요."

 

"어떤거든 강한게 중요한거죠. 말해봐요."

 

"네. 상훈씨. 8번에보면 자신의 짝 정미가 너무 가난해서 이틀에 한끼를 먹을때도 있다고 했잖아요?

 

어린아이가 끼니를 거르는게 너무 불쌍해요. 내가 데려다 키우고 싶네.."

 

"저기.. 순화씨..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다시 말해봐요."

 

"아.. 난 너무 감상적이라 탈이라니까? 후후.. 이건 삼순구식(三旬九食)같아요. 한달에 아홉끼를

 

먹을 정도로 끼니를 거른다는.. 뭐 그런 뜻이죠."

 

 

 

 

 

 

 

다들 의견을 내놓고 나자 해결된 디스켓은 8개. 실로 굉장한 수확이였다.

 

이것저것 고민하던 그들은 심한 허기를 느끼고 식당으로 가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이제 남은것은 4,5,6,7번의 디스켓.

 

하지만 그들의 머리가 사전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이상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자 그들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방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날이 저무는 오후가 되었다.

 

 

 

 

 

 

"더 이상은 안되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4가지는 모르겠어요. 우선 순서 힌트를 보고 6개를 추려

 

내도록 하죠. 시간이 얼마 없네요."

 

"이번 문제는 왜 죄다 일기 형식인거야? 월드컵을 하는데 우승했으면 좋겠고 순위권 안에 들었으면

 

좋겠다구? 지가 후보선수면 열심히 공이나 찰것이지 왜 이런문제를 내고 난리야."

 

 

 

 

 

 

산 넘어 산이였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음것이 걸렸고 또 다시 해결하면 다음 문제가 나타났다.

 

승현은 가만히 답을 종이에 써넣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그때였다.

 

이리저리 글자를 조합해보며 연관성을 찾으려고 애쓰던 도중 무언가가 하나로 좁혀지는 느낌이 들더니

 

머릿속에 불이 반짝이며 답이 떠올랐다.

 

 

 

 

 

 

"아! 알았어요. 이 사자성어들의 공통점을 알아냈어요!"

 

"정말?"

 

 

 

 

 

 

이리저리 흩어져 자신의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승현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재빨리 모여들었다.

 

승현은 그들이 이해할수 있도록 종이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사자성어에 1부터 12를 뜻하는 숫자가 들어있네요. 1을 담고있는 일장춘몽 , 2를 담고있는 이율배반

 

3은 군자삼락 , 8은 백팔번뇌 , 9는 구절양장 , 10은 십벌지목..그리고"

 

"백팔번뇌는 8이 아니라 108 아니야?"

 

"에이.. 동팔형도.. 잘 나가다가 백 단위의 숫자가 나오는건 웃기잖아요. 그냥 백자는 버리고 8만

 

생각해야죠. 그래야 순서도 맞구요."

 

"근데 10까지는 그렇다 치고 11이나 12는 어떻게 해?"

 

"잘보세요. 문일지십을 보면 1과 10이 같이 들어있죠? 이걸 더하면 11이 되구요. 삼순구식에는

 

3과 9가 같이 들어있으니 이걸 더하면 12라는 숫자가 되요."

 

"그렇구나.. 꼬맹이가 대단한걸?"

 

"헤헷.."

 

 

 

 

 

 

동팔은 승현이 기특한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듯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사실 제가 한자에는 통 무식해서 한문제도 맞추지 못한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또 축구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 아닙니까! 하하하."

 

"앗! 동팔씨. 그 축구 문제 푼거에요?"

 

"제가 축구하면 자다가도 벌떡 깨는 사람이거든요. 한자는 솔직히 잘 몰라 처음부터 관심없었지만

 

축구문제는 풀수 있겠다 싶어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와~ 대단해요. 답이 뭔가요?"

 

"처음에는 별별 생각을 다했어요. 4강진출,16강 진출 이딴거요.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문제 안에

 

바로 정답이 있더라구요. 우선 우승했으면 좋겠다라는건 1등했으면 좋겠다는거 아닙니까?

 

그리고 순위권안에 들려면 최소 3등안에 들어야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저 망할넘이 대표선수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축구는 11명이 하는 게임이죠. 즉 대표선수가 되려면 11명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1과 3과 11.. 이 세숫자의 연관성은 한가지 뿐이에요. 홀수라는 말이죠.

 

즉 12개의 디스켓중 1, 3, 5, 7, 9, 11에 해당하는 것이 답인 것입니다."

 

 

 

 

 

 

늘 화만 내고 정작 답을 맞출때는 도움이 안되었던 동팔이었지만 오늘 그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버린것 같다. 모두들 동팔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는 기분이 좋은지 우쭐해져있었다.

 

디스켓을 한손 가득 집어든 료는 대충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결론은 홀수의 해당하는 디스켓이 정답이고 우리가 풀지못한 디스켓은 4, 5, 6, 7 번이죠?

 

디스켓의 숫자와 사자성어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으니 만약 정답시간까지 문제를 풀지 못하면

 

두개는 찍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중 함정 디스켓이 있을 확률은 50%가 되구요."

 

"위험한데요.. 그러다 만약 바이러스 디스켓을 골라 컴퓨터를 못쓰게 된다면 우린 다 죽는다구요."

 

"지용씨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니 바이러스는 해결할수 있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는 백신이 필요한데 인터넷조차 쓸수없는 이곳에서 백신을

 

구할수 있을리 없으므로 제가 할수 있는건 없습니다. 남은시간안에 최선을 다하는수밖에요."

 

 

 

 

 

 

그들은 남은 4장의 디스켓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고 한개도 풀지 못한채

 

정답 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비장한 각오로 8번 방의 문을 열었다.

 

어둠속에서 빛나고 있는 푸른화면은 소름이 돋을만큼 오싹했다.

 

 

 

 

 

 

 

 

 

 

 

 

 

 

 

 

 

 

-four-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천천히 정리해봅시다. 지금까지 밝혀진 디스켓은 8개. 숫자를 대입해보면 일장춘몽에 해당되는

 

3번 디스켓이 1번. 군자삼락에 해당되는 9번 디스켓이 2번. 모르는 3,4번은 건너뛰고 구절양장에

 

해당되는 11번 디스켓이 5번. 마지막 문일지십에 해당하는 1번 디스켓이 6번이 되는겁니다.

 

디스켓 번호를 순서대로 적어보면 3Disk - 9Disk - ? - ? - 11Disk - 1Disk 순입니다."

 

"우선 시간이 없으니 밝혀진 것만이라도 먼저 넣어봐요. 문장이 한글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4개

 

만으로 답을 유추 해낼수 있을지 몰라요."

 

 

 

 

 

 

료가 디스켓을 들고 서서 시간을 지체하자 순화는 답답하다는듯 가슴을 치며 그를 재촉했다.

 

그녀의 말에 료는 3번 디스켓을 집어 조심히 본체에 밀어넣었다.

 

그러자 눈이 아플정도로 밝은 형광 노랑색의 바탕이 화면을 가득 물들이며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축하드립니다. 정답입니다*

 

- 모(M) -

 

 

 

 

 

 

첫번째 글짜가 모라는 것을 확인하자 승현은 재빨리 들고 있던 종이에 적기 시작했고 지독할만큼

 

자극적인 형광색 바탕에 눈을 찌푸리던 료는 9번 디스켓을 집어들고 3번과 교체하였다.

 

 

 

 

 

 

"뭐야? 이번엔 형광 분홍이네?"

 

"아..눈아파.. 이사람 취향이 왜 이따구야!"

 

 

 

 

 

 

이번에는 형광 분홍색의 화면이 눈을 자극하며 화면을 물들였다.

 

그러나 바탕색이 바뀌어도 글자의 크기와 탁한 빨간색의 글씨는 변함이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정답입니다*

 

- 두(U) -

 

 

 

 

 

 

료는 눈이 아픈지 빠르게 디스켓을 꺼내며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느끼는 의문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고 있는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승현은 들고 있던 펜의 끝을 잘근잘근 물면서 말을 꺼냈다.

 

 

 

 

 

 

"한글만 한글자 적혀 있을줄 알았는데 옆에 알파벳이 붙어있네요?"

 

"그러게 말이야.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는건 이거죠?"

 

"네. 두 글자를 합치면 '모두' 가 되잖아요. 모 자만 봤을때는 옆에 있는 알파벳이 단순히 자음 ㅁ을

 

영어로 바꿔서 M 으로 표시한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두 자 옆에 있는 알파벳이 D가 아니라 U인걸

 

보니 뭔가 다른 힌트가 아닐까 싶어요."

 

"승현이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료와 승현은 의견이 서로 일치하자 웃으며 마주 보았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풀리지 않은 4개의 디스켓을 집어들고 만지작 거리던 동팔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화면색이 자꾸 바뀌는것도 힌트 아닐까요? 형광색이라 눈이 아프긴 하지만

 

자극적인건 그만큼 주목하라는 뜻인것 같은뎁쇼?"

 

"네. 마스터 H 는 이곳저곳에 함정을 숨겨둔만큼 힌트도 많이 숨겨놓은것 같아요. 마치 자신과의

 

두뇌 싸움을 유도하고 있는것처럼 말이에요. 화면 색도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될것 같아요.

 

승현아. 종이에 같이 적어줄래? 순서대로 화면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야."

 

"걱정마세요~ 이미 적고 있어요. 적기전에 외우고 있었지만요."

 

"그래. 잘했다."

 

 

 

 

 

 

료는 자신이 정답자인만큼 적극적으로 나섰다. 승현은 그의 옆에 서서 펜을 끄적여가며 깊은생각에

 

빠졌고 지용은 그런 료와 승현을 번갈아 바라보며 관찰하고 있었다.

 

사실 산장에 들어온 7명의 사람중 가장 지능을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료와 승현이였기 때문이다.

 

료는 그런 지용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않은채 5번째에 해당되는 11번 디스켓을 본체에 밀어넣었다.

 

이번에는 형광 주황의 화면이 나타났다.

 

 

 

 

 

 

*축하드립니다. 정답입니다*

 

- 된(E) -

 

 

 

 

 

 

이번 글자는 된 자였고 옆에 붙은 알파벳은 E 였다. 점점 더 관련없는 알파벳이 붙어나오자

 

사람들의 의문은 증폭되었고 료는 마지막 6번째인 1번 디스켓을 밀어넣었다.

 

마지막 화면은 형광 연두색 화면이였다.

 

 

 

 

 

 

*축하드립니다. 정답입니다*

 

- 다(R) -

 

 

 

 

 

 

디스켓을 집어넣고 글자를 확인한것 뿐인데 시간을 보니 5분이나 흘러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25분.

 

나머지 4개의 디스켓중 두개를 추려내야 하는데 정답을 맞추던 50%의 확률을 믿고 찍던..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상훈이 시계를 바라보며 1분 간격으로 시간을 말해주자 초초해진 사람들은 다시 침묵에 들어갔다.

 

4개중 하나라도 생각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대충 내용을 파악하고 어떤뜻인지 짐작할 뿐 머릿속으로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사자성어로 표현할수 없으니 정말로 답답할 따름이였다.

 

계속 시간은 흐르고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던 상훈이 안되겠다 싶었던지 모두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4개의 글자만을 가지고 답을 맞출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범위가 너무 넓네요.

 

모두 ( ) ( ) 된다. 와 옆에붙은 MU ( ) ( ) ER 을 가지고는 도저히 맞출수가 없어요."

 

"모두 어떻게 된다는거지?"

 

"모두 친구 된다. 이런거 아닌가?"

 

"동팔씨~ 그건 너무 다정한 말이잖아요. 마스터H 가 낸 문제와는 안어울려요."

 

"그럼 이건 어때요? 모두 개털 된다."

 

"풉.. 장난치지마세요~"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동팔의 말에 순화는 웃음을 터트렸다.

 

동팔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낸 의견이였는데 순화가 깔깔대고 웃어버리니 조금은 민망했던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느낀 지용이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어요. 20분 전이네요."

 

"어쩌죠? 찍을까요?"

 

"확률이 50% 일때가 제일 위험한것 같아요. 운좋으면 두개 다 맞는거고 운나쁘면 두개가 다

 

틀리게 될테니까요. 가장 최악의 상황은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디스켓이 걸렸을 경우에요.

 

입력 기회를 잃는 디스켓을 고른다면야 저만 살해당하고 끝날일이지만 앞으로 계속 컴퓨터를 쓰지

 

못하게 된다면 곤란하잖아요."

 

"형! 그런말 하지 말아요!"

 

 

 

 

 

 

그의 말에 승현이 발끈하고 나서자 말실수했다고 느낀 지용은 미안한듯 승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웃음으로 대신했고 그의 볼을 쓸어내리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지금 결정해야해요. 남은 시간동안 4글자만을 가지고 여러가지 답을 써넣어보느냐..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디스켓을 열어보느냐 하는거죠. 둘중 한가지를 정해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시간이 모자라요. 12시가 되면 컴퓨터는 꺼지고 말테니까요."

 

"디스켓을 열어보는건 너무 위험한데.. 그냥 답을 생각해보는것이 어떻까요?"

 

"동팔형! 너무 비겁해요!"

 

"뭐라구?"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탄 사람들 아닌가요? 왜 최악의 상황만을 생각하세요? 운이 좋아서

 

정답 디스켓을 뽑을수도 있는거잖아요. 그 기회마저 포기하고 네글자만으로 정답을 맞춰보다가

 

답을 못맞추면 어떻게 해요? 그럼 정말 지용형이 위험해 진다구요!"

 

"이 꼬마가 왜 이렇게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한번만 더 의견 말했다가는 날 죽이겠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전 단지.."

 

 

 

 

 

 

동팔의 제안은 그의 성격대로 즉흥적이였을뿐 악의는 없어보였지만 승현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나섰다.

 

머리가 좋아서인지 그냥 넘길수도 있는말을 그는 깊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었다.

 

지용은 승현을 바라보며 어깨를 툭툭치고는 입술을 귓바퀴에 바짝 붙이고 작게 속삭였다.

 

 

 

 

 

 

"진정해. 이승현.. 깊게 호흡하고 편안히 생각해."

 

 

 

 

 

 

승현이 유난히 까칠하게 나오자 동팔은 말문이 막혀 헛웃음을 쳤고 시간도 모자란 판에 두사람이

 

싸우기라도 할까봐 상훈은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오며 양쪽의 시선을 막았다.

 

 

 

 

 

 

"두사람다 진정하세요. 시간도 얼마없는데 서로 싸우기만 하면 어떻게 해요?"

 

"전 단지 의견을 낸 것이였단 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지용씨 마누라라도 되냐? 왜 그렇게 난리야?"

 

"형!"

 

"동팔씨 마음 잘 알아요. 하지만 승현이 말에도 일리는 있어요. 이렇게 된거 한사람이라도 살리려면

 

최대한 주워진 상황을 활용해야해요. 우선 한가지만 열어보죠. 그리고 결정해요.

 

그대로 손놓고 있다가 죽나 부딪혀보고 죽나 결과는 마찬가지에요. 해봅시다."

 

"그런데 누가 디스켓을 고르죠?"

 

"전 지용씨가 고르는게 가장 좋을것 같아요. 저희가 골랐다가 잘못된다면 그야말로 지용씨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지용씨 스스로 선택하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가요 지용씨? 제 의견에 동의 하시나요?"

 

"네. 상훈씨.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디스켓을 뽑는다면 정답 디스켓이 걸리지 않는 이상

 

모두 저에게 피해가 될테지만 제가 뽑는다면 바이러스 디스켓을 제외한 디스켓은 여러분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 것입니다. 반전 디스켓이나 종료 디스켓은 오늘 하루에만 해당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너무 걱정 마세요. 어쩌면 짝수로 밝혀져서 정답에서 제외된 네개의 디스켓에 바이러스 디스켓

 

두장이 모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절망적으로 나쁜 확률만은 아니에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요.. 지용씨"

 

"아닙니다.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우선 한장 뽑아볼께요."

 

 

 

 

 

 

지용은 잠시 네장의 디스켓을 쭉 훑어보더니 자신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 6번 디스켓을

 

집어들었다. 조인성이 어렸을때 부모를 잃었는데 알고보니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다 라는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디스켓을 본체에 밀어넣었다.

 

 

 

 

 

 

*죄송합니다. 오답입니다*

 

-inversion-

 

 

 

 

 

 

디스켓을 넣자마자 검은색 화면이 뜨며 경고음이 울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섯번이나 크게 울린 경고음과 함께 화면에는 붉은 글씨로 inversion 이란 글자가

 

떠올랐다. 그러자 승현이 탄식하듯 말을 내뱉었다.

 

 

 

 

 

 

"아! 반전..(inversion)"

 

"반전 디스켓을 뽑은거야? 그런데 어떤식으로 화면이 반전된다는거지?"

 

 

 

 

 

 

영어의 뜻을 몰랐던 순화는 승현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반전 디스켓임을 알아버렸고 초조한듯

 

엄지 손톱을 깨물었다. 그러자 지용이 재빨리 디스켓을 꺼내고 화면을 종료시켰다.

 

그러자 푸른빛의 정답화면이 글씨조차 알아볼수 없게 깨져있었다. 마치 수십개의 조각으로 흩어진

 

퍼즐같이 제각각 다른 위치였고 더군다나 글자는 뒤집혀 있었다.

 

믿을수 없다는듯 한참을 들여다보던 료가 화면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반전이라고 해서 뭔가 했더니 이런거였어? 난감하네.. 화면이 조각조각 깨져버렸는데 어쩌지?"

 

 

 

 

 

 

바이러스 디스켓에 너무 연연했던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 디스켓이 나오자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확한 답은 물론 띄어쓰기까지 바로 입력해야 답을 맞출까말까인데 이래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지용은 깨진 화면은 신경 조차 쓰지않고 디스켓 하나를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상훈은 그런 그에게 다가가 팔을 잡으며 물었다.

 

 

 

 

 

 

"7번 디스켓이네요? 이것으로 결정하신 건가요?"

 

"아니요.. 저 이 문제.. 알것 같아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것 같습니다.."

 

"정말요?"

 

"네.. 알것같아요.. 그렇지만 정확한 사자성어가 생각이 안나요..아..뭐였지?"

 

 

 

 

 

 

그가 집어든 7번 디스켓의 문제는 '오늘부터 새로운 드라마를 보기로 결심했다. 머리에 갓을 쓴 선비들

 

이 종이에 글을 쓰고 서로 지가 잘났다며 우기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빨리 쓴 사람이 장땡인것 같은데..'

 

였다. 지용은 아무말 없이 무표정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굴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 답답하다는듯 사람들은 마음을 졸이며 지용이 입을 열때까지 기다렸다.

 

부디 하나만이라도 알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왜.. 옛날에는 선비들이 모여앉아서 시를 짓고 자신의 학식을 뽐내지 않았습니까? 그 기준이 시의 내용

 

도 훌륭해야했지만 무엇보다도 다른사람보다 빨리 지어야 이기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그 뜻인것

 

같은데.. 도저히 생각이 안나네요.."

 

"한글자라도 생각나는것이 없나요?"

 

"그게.. 칠보... 칠보...아...뭐지?"

 

"그렇게 말하니 저도 대충 알것같긴 한데..."

 

"분명 알았던 한자성어인데 억지로 떠올리려니까 생각이 안나네요.. 칠보.."

 

"아! 지용씨! 칠보지재! (七步之才)"

 

"맞아요! 상훈씨! 칠보지재에요! 일곱걸음에 시를 짓는다..시를 빨리 잘 짓는다라는뜻!"

 

 

 

 

 

 

상훈이 지용의 힌트를 발판삼아 정답을 떠올려내자 모두들 환호성을 질러댔다.

 

더군다나 그 사자성어는 홀수인 숫자 7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였다. 정답 디스켓이였던 것이다.

 

료는 밝아진 얼굴로 디스켓을 받아들어 빠르게 본체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4글자와 5글자의 차이는 확연하게 다르다. 어쩌면 5글자만으로 정답을 알수 있을지 몰랐다.

 

잠시 기다리자 이번에는 형광 보라색 화면이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정답입니다*

 

- 게(D) -

 

 

 

 

 

 

그들의 예상대로 정답 디스켓이였다. 남은시간은 10분남짓..남은 디스켓은 두장이였다.

 

순화는 발을 동동 구르며 조급한듯 중얼거렸다.

 

 

 

 

 

 

"2장 남았는데 한장은 정답이고 한장은 오답이니.. 아직도 확률은 50%네.. 아.."

 

"누나. 그래도 한글자 더 알게되었잖아요."

 

"승현아. 지금 나온것을 순서대로 적어줘봐."

 

"네. 잘보세요. 한글은 모 두 ( ) 게 된다. 그 옆에 붙은 알파벳은 M U ( ) D E R. 우선은 이래요."

 

"모두 하게된다.. 모두 떨게된다.. 모두 떨게된다? 이거 뭔가 말이 되지 않나요? 우리가 지금 무섭게

 

떨고 있는줄 알테니까. 대충 이런 느낌의 말이 아닐까요?"

 

 

 

 

 

 

순화의 말도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는 말이였다.

 

뭔가 다른말이 있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하던 상훈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남은 시간은 8분..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왔다.

 

 

 

 

 

 

"어쩌죠 지용씨? 디스켓이 두장 남았어요. 하나 더 열어보실래요?"

 

"저도 고민중입니다만 아무래도 열어봐야할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고르세요. 시간이 없어요."

 

 

 

 

 

 

지용은 한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집중했다. 잘 고른다면 그에게는 천국 잘못 고른다면 지옥..

 

그때 동팔이 디스켓을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팔을 뻗고 있었다.

 

그의 행동이 궁금했던 순화는 그를 따라다니며 높게 올려진 디스켓을 들여다보았다.

 

 

 

 

 

 

"동팔씨? 지금 뭐하는 거에요?"

 

"정답화면에 색깔이 모조리 형광색이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나 디스켓을 형광등에 비춰보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요..쩝.."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이긴했다. 불투명한 디스켓이 불빛에 비춘다고 무언가가 보일리 없질 않은가.

 

순화는 동팔의 엉뚱한 생각에 한숨을 쉬고는 다시 돌아왔고 동팔은 계속해서 형광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 사이 지용은 남은 4번과 5번 디스켓중 5번을 집어들고 천천히 컴퓨터로 다가갔다.

 

모두들 긴장한듯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승현이 들고있던 펜이 떨어졌고 그는 있는 힘껏 소리질렀다.

 

 

 

 

 

 

"형! 그 디스켓 넣지 말아요!"

 

"왜그래?"

 

"답을 알아냈어요!"

 

"정말?"

 

"한글은 한글자씩 대입하기에 너무 범위가 넓어서 대신 영어힌트에 알파벳을 한글자씩 대입해봤어요!

 

정답은 -모두 죽게 된다- 에요!"

 

 

 

 

 

 

승현이 내뱉은 정답에 모두 할말을 잃고 침묵했다. 온몸에 쏴하는 소름이 돋았다.

 

그러자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동팔은 신경질을 내며 디스켓을 던져버리고 승현에게 다가가 어깨를

 

움켜쥐고 있는 힘껏 흔들어댔다.

 

 

 

 

 

 

"모두 죽게 된다니! 너 이자식! 우리한테 감정있어?"

 

"동팔씨! 어깨 빠져요! 이손 놓지 못하겠습니까?"

 

"많고 많은 말중에 하필 왜 그거야! 왜 모두 죽게된다가 정답이야! 설명해!"

 

"동팔형은 왜 그렇게 화부터 내시는거에요! 아파요 이거 놓으세요!"

 

"정확히 설명해! 왜 그런 재수없는 답이 나왔는지 납득이 가게 설명해!"

 

 

 

 

 

 

가뜩이나 죽음이란 단어에 예민해있던 동팔은 앞뒤 안가리고 무식하게 승현을 윽박질렀다.

 

사람들이 그를 말려 겨우 떨어뜨려놓았고 승현은 어깨가 아픈지 손으로 문지르면서 종이에 급하게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잘 보세요. A부터 Z중에서 중간에 끼워넣었을 경우 그럴듯한 말이 되는 알파벳이 몇가지 있어요.

 

D 나 L , 그리고 R.. 이렇게 세가지죠. 우선 D를 넣어보면 MUDDER 가 되죠? 이건 경마에서 쓰는

 

용어로 험한 진창길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말이나 선수등을 의미해요. 그리고 L을 넣어보면 MULDER

 

가 되는데 이건 다들 아실꺼에요. X파일에 스컬리와 호흡을 맞추던 남자주인공 멀더."

 

"멀더는 나도 누군지 알겠다. 하지만 별 관련은 없어 보이는데?"

 

"맞아요. 제가 말한 두가지는 지금 상황에선 힌트가 될수 없어요. 그래서 중간에 들어갈 알파벳은

 

R 이에요. MURDER 가 정답인거죠. 상황에도 딱 들어맞구요."

 

"아.. MURDER(살인)..."

 

"네. 뜻이 살인이에요. 이것이 힌트라면 모두 죽게 된다. 밖에 답이 없지 않을까요?"

 

 

 

 

 

 

승현의 설명은 너무나 정확했고 더이상 할말이 없어진 동팔은 목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더이상 좋은 의견은 없어보였다. 료는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재빨리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나저나 어쩌죠? 화면이 깨진데다가 뒤집혀지기까지 해서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어요."

 

"화면이 뒤집어졌으니까 글도 거꾸로 써야하는거 아닐까요?"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따지면 글을 거꾸로 써야할뿐만 아니라 글자까지 뒤집어야하는데 어떻게

 

뒤집어요.. 반전 디스켓.. 생각보다 난감하네요.."

 

"그럼 퍼즐맞추기를 해가며 글자를 입력해야 하는거에요?"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할것 같아요."

 

 

 

 

 

 

료가 선뜻 손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순화가 끼어들어 이 방법 저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자 지용이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걱정마세요. 이건 함정일 뿐입니다."

 

"네?"

 

"깨진 화면은 우리로 하여금 혼란을 겪게 하려는 마스터 H의 함정이란 말이죠. 원래 컴퓨터란 각각의

 

기능이 달라요. 모니터는 답을 입력할때 오타는 없는지 띄어쓰기는 정확히 했는지..등의 여부를

 

확인할수 있는 일종의 눈이란 말입니다."

 

"저는.. 잘 이해가 안되요.."

 

"순화씨. 잘생각해보세요. 순화씨가 저를 보면서 이 사람이 정 지용이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정 지용인줄 어떻게 아는거죠?"

 

"그거야.. 눈으로 보고 지용씨인줄 아는거죠."

 

"그렇죠. 하지만 눈이 저라고 판단할까요?"

 

"아! 머리!"

 

"네 맞습니다. 눈은 저를 보기만 할뿐 직접적인 판단은 머리. 즉 뇌가 합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지요.

 

모니터는 일종의 눈 역활을 하고 있지만 답을 입력하면 답을 인식하는 곳은 모니터가 아닌 본체 내의

 

CPU(중앙처리장치)가 하게 됩니다. 즉 정확한 답만 적을수 있다면 모니터쯤은 상관없다는 말이죠."

 

"와- 지용씨 멋져요. 역시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은 다르구나~"

 

"그러니 료씨. 이제부터 모니터는 보지 마세요. 키보드만 보면서 오타가 나지 않게 정확히 입력하세요.

 

띄어쓰기도 주의하시구요. 첫날처럼 손이 미끌어져서 다른 키를 누르지 않게 조심하세요.

 

아! 그리고 줄을 바꿀때는 꼭 텝(TAP) 키를 사용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료는 땀이 잔뜩 밴 손을 허벅지에 쓱쓱 문지르고는 호흡을 가다듬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긴장한듯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니시키도 료 , 정 지용 , 모두 죽게 된다 라는 글을 한자 한자 되새기며 정확히 입력하였고

 

엔터를 눌렀다. 그러자 사람들은 눈이 사시가 될정도로 집중하며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맞았다면 - Clear- 라고 뜰테고 틀렸다면 -Not Clear- 라고 뜰테니 그들이 찾아야할 단어는

 

Not 이라는 단어였다.

 

하지만 들여다본지 30초도 안되어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정전이 된듯 팍- 소리와 함께

 

전원이 꺼지고 컴퓨터가 종료됬다.

 

 

 

 

 

 

"찾아봤어요? Not 라는 글자?"

 

"이번엔 다행이 성공한것 같아요. N이라는 글지만 집중적으로 찾았는데 안보이더라구요."

 

"정말 다행이에요! 지용씨!"

 

"아! 그나저나 다음 미션!"

 

 

 

 

 

 

순화가 지용의 팔을 흔들며 기뻐하자 료가 다음 미션이 시작되었음을 알렸고 그들은 일제히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승현이 큰소리로 자신의 방에 메모가 있음을 알리며 뛰어나왔다.

 

사람들은 우르르 복도로 모여들었다.

 

 

 

 

 

 

"제방에 있네요. 읽어볼까요?"

 

"아..문제 푸는데 정신팔려서 지켜보지 못했어.. 메모를 가져다놓는 사람이 분명 있을텐데.."

 

 

 

 

 

 

료는 자신이 지키고 서서 범인의 얼굴을 보고싶어했는데 아쉽다는 얼굴로 벽을 세게 한번 쳤다.

 

승현은 조심스럽게 메모지를 펼쳐들고 또박또박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장의 비밀. 제 4장*

 

네번째 주인공은 이승현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동반자로는 최 순화 님이 선택되었습니다.

 

이승현 님이 정답을 맞추지 못할경우 최 순화 님께서는 12시간안에 살해당하게 될것입니다.

 

참고하시고 최선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 주십시오.

 

*Mission = 거실의 시계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5개의 방을 통과해 정답을 입력하라.

 

*Hint = 1.시계 뒷편에는 산장 지하와 연결되는 계단이 있습니다. 그 계단으로 내려가면 다섯개의 방이

 

있고 각 방마다 다른 비밀번호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각각 하나의 함정이 존재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힌트에 대해 나와있는 책 하나를 선물하겠습니다. 부디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전원이 힘을 합쳐 5개의 방을 통과하고 나면 정답을 입력할수 있는 공간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공간으로 들어서면 10분의 시간이 주워집니다. 10분내에 정답을 맞추고 입력하는것이 이번

 

미션입니다. 단. 10분 안에 빠져나오지 못할경우 돌아가는 입구가 자동 폐쇠되며 성공하고

 

다시 5개의 방을 되돌아올때는 처음과는 다른 문제와 함정으로 변환됨을 알려드립니다.

 

5개의 방은 모두가 같이 통과해야하나 정답을 입력할수 있는 공간은 정답자 혼자 들어가도

 

무방합니다. 이정도면 자세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거실로 내려가보십시오.

 

2. 시계의 열쇠 -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오늘 미션은 정답 제출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미션 시작 시간으로부터 24시간 안에 정답으로 맞추고

 

되돌아오면 되는 것입니다. 단 이번 미션은 동반자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위험한 미션인만큼 미션

 

자체를 피하고 산장내에 남아계시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미션 시작 시간으로부터

 

9시간 이후까지 산장내에 남아계시는 분이 있다면 그분의 목숨은 제가 직접 거두어 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숙지하시고 행동을 같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왜 점점 미션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운거지? 통 이해가 안가네. 승현아."

 

"네. 료형."

 

"네가 다시한번 정리를 해줘야겠다. 나 문제만 읽으면 정신을 못차린다."

 

"네. 그럴께요. 오늘 미션은 전혀 다른 방식이네요. 24시간이 주워진건 같지만 전에는 힌트를 주고

 

충분히 푼다음 30분안에 컴퓨터에 입력했잖아요? 그러나 오늘은 좀 복잡한것 같아요.

 

우선 거실의 자명종에 대한 힌트를 풀면 뒷편에 숨겨져있는 공간이 나타나나봐요. 그곳으로 들어가면

 

방이 하나 나오는데 방 입구에 힌트가 적혀져 있다네요. 그 힌트를 풀고 비밀번호를 입력한후에

 

방 안으로 들어가면 뭔가 위험한 함정이 있는것같아요. 그것을 통과하면 두번째 방이 나타나고

 

그 다음은 세번째방.. 이런식으로 다섯개의 방을 통과하면 제일 끝에 정답을 입력할수 있는 공간이

 

나타나나봐요. 그 방문을 연순간 10분이라는 시간이 주워지구요.. 방안에 정답을 입력할수있는 기계와

 

힌트가 같이 존재하는 모양이에요. 즉 미리 생각하고 답을 입력할수가 없다는 말이죠. 10분안에 문제를

 

풀고 나와 성공을 하던지 아니면 실패를 하던지 무조건 그 방을 빠져나와야 한데요. 안그러면 돌아가는

 

길이 폐쇠되니까요. 그리고 산장까지 되돌아오려면 다시 5개의 방을 지나야 하잖아요? 그런데 처음

 

들어갈때와는 다른 비밀번호랑 장애물로 바뀌어 나타나게 된데요. 결론은 답을 맞추던 못맞추던

 

우리는 10 가지의 방을 지나야 한다는 소리죠."

 

"잠깐만! 그런게 어디있어? 정답 하나를 맞추자고 그런 고생을 하란말이야? 장애물이 있다면 누가

 

다치거나 죽을수도 있다는 거잖아?"

 

"네. 이번 미션은 너무 어려울것 같아요."

 

"마스터 H 가 이딴문제 다시 안내겠다고 했잖아!"

 

"그가 말한건 답이 없는 문제는 두번다시 내지 않겠다는 것이였어요. 이번에는 확실한 답이 있나보네요."

 

 

 

 

 

 

료가 광분한듯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자 벽에 기대어서서 파르르 떨고있던 순화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살인 명단에 오르자 충격을 받은 모양이였다.

 

 

 

 

 

 

"저..저기요.. 저는 괜찮아요.. 정말 무섭긴.. 하지만요.. 괜히 들어..갔다가 .. 모두 무슨일이.. 생기면

 

어떻게..해요.. 그러니 ..우리.. 들어가지.. 말아요.. 위험할것 같아요.."

 

 

 

 

 

 

순화는 진심인지 아닌지 조차 파악할수 없을만큼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승현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그건 안되요. 누나."

 

"내가..살겠다고.. 다른..사람들.. 위험에.. 빠트릴수는.. 없잖아.."

 

"누나. 사실은 무서운거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미션을 포기하고 산장에 남아버릴까

 

두려운거잖아요.. 그러니 그런말 하지 마세요."

 

".........................."

 

"그리고 어짜피 들어가야해요. 지금부터 9시간후.. 그러니까 오전 9시까지 지하로 내려가지 않고

 

산장에 남아있는 사람은 살해당할테니까요."

 

"너무해.. 흑.. 정말 너무해.."

 

 

 

 

 

 

유달리 마음이 여리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순화는 진주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감당할수 없을만큼 큰 벽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소리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고 승현이 그녀를 달래주는 사이 동팔이 잽싸게 거실로

 

내려가 무언가를 들고 올라왔다.

 

 

 

 

 

 

"이것이 이번 힌트 인가봐요."

 

"성경책이네?"

 

 

 

 

 

 

동팔이 들고 올라온건 다름 아닌 성경책이였다.

 

모든 힌트가 성경책 안에 존재한다는 말인듯했다. 지용은 그에게서 책을 받아들더니 쭉 넘기며 말했다.

 

 

 

 

 

 

"큰일이군요.. 전 성경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어서 도움이 못될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내용들 속에서 어떻게 정답을 찾죠? 한권을 다 읽는것 만으로도 족히 3~4일은 걸릴텐데 말입니다."

 

"성경이라.. 거참.. 가지가지 하는군.."

 

"지금은 우선 생각을 접고 잠시 쉬어야겠어요. 오전 9시까지라고 했으니까 그 전에만 지하로 진입하면

 

되는것 아닙니까? 얼마나 오래걸릴지도 모르는데 당장 들어갈수는 없습니다. 우선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아침 7시에 거실로 모이는걸로 합시다.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될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식당에서 음식을 조금 싸가지고 들어가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지용씨.. 성경책 저 주세요. 저 종교가 기독교라 성경은 익숙한 편이에요. 제가 신약과 구약별로

 

나누어서 각 서별로 표시해놓을께요. 그래야 시간을 절약할수 있구요."

 

"네. 고마워요 순화씨. 너무 걱정마시고 조금이라도 잠을 청해보세요. 아셨죠?"

 

 

 

 

 

 

순화는 지용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아침 7시에 식당에서 모이자는

 

약속을 한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승현은 더웠는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욕실로 향했고 한참을 씻더니 윗옷을 벗은채 머리를 털며

 

걸어나왔다. 대충 머리에 물기를 제거하자 곧바로 침대로 누웠고 지용은 한참 메모지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빠져있다가 기지개를 켜고는 침대로 다가와 앉았다.

 

 

 

 

 

 

"무슨 생각으로 내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거야?"

 

"더워서요. 여긴 에어컨도 없고 씻어도 끈적거려요. 어짜피 남자끼리인데 뭐 어때요?"

 

"아니? 그렇지 않아."

 

 

 

 

 

 

지용은 고개를 숙여 허공을 바라보던 승현의 눈에 시선을 맞추더니 귓바퀴를 살짝 물었다.

 

그러자 승현은 화들짝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아기같아. 피부가 부드러워."

 

"형?"

 

"잠시만 이대로 있어줄래?"

 

 

 

 

 

 

지용은 승현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는 목으로 내려갔다.

 

고운 비단처럼 부드러운 살결에 취해 그는 조심스럽게 이곳저곳을 핥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승현은 그의 행동에 어쩔줄 몰라하며 다리를 웅크리고 목을 끌어안았다.

 

 

 

 

 

 

"형.. 나 느낌이.. 이상해요.."

 

"심하게 괴롭히지는 않을께.. 잠시만 참아.. 오늘 내 편을 들어준것에 대한 상이야."

 

"하..아..."

 

 

 

 

 

 

지용의 눈길을 사로잡는것은 그의 몸중에서도 일자로 가늘게 잘빠진 쇄골뼈였다.

 

지용은 손으로 쇄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혀를 굴려 왼쪽 가슴을 이곳저곳 핥았다.

 

사람의 체온의 근원..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심장의 박동은 그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경의롭게 생각하는 유일한 곳이였다.

 

그는 한참을 승현의 가슴에 귀를 기울이고 심장 소리를 들었다.

 

점점 박동이 빨라지며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거세지자 승현은 민망하다는듯 두손으로 눈을 가려버렸고

 

지용은 입을 가져가 핏줄이 가장 도드라져나온 가슴 가장 자리를 강하게 끌어당기며 진한 자국을

 

남겼다. 성감대를 자극받은 승현에게서 듣기 좋은 신음성이 터져나오자 지용은 멈추지 않고 자신이

 

남긴 표식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려가며 자극시켰다.

 

 

 

 

 

 

"형.. 저 생각보다 예민해요.. 이제 그만하세요..아..윽.."

 

"그냥.. 보다보니 예뻐서.. 기분이 안좋은거니?"

 

"그게 아니라요..자극이.. 앗!!!! "

 

"왜그래? 이승현?"

 

 

 

 

 

 

승현이 몸을 지탱하느라 침대 가장자리에 손을 뻗었을때 차가운 감촉과 함께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의 비명 소리에 놀란 지용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승현의 손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손목을 눌러 지혈하며 침대의 가장자리를 살펴보았다.

 

 

 

 

 

 

"식칼..이잖아? 이런게 왜 내방에 있는거지?"

 

"형! 이거.. 전에 식당에서 없어진.."

 

"뭐?"

 

"전에 도우미 아줌마 시체 없어지고 음식이 배달되어 있었던날 아침.. 식당에 들어가보니 전자렌지가

 

새로 생겼었잖아요. 알고 계시죠?"

 

"그건 알아. 나도 음식을 데우기 위해 몇번 사용했었으니까."

 

"그때 식칼 한자루가 사라졌었어요. 전날엔 5자루가 있었는데 그날 아침엔 한자루가 없었어요."

 

"그런데 왜 말 안했어?"

 

"그날 상자열쇠 찾느라고 모두 바빴잖아요. 말씀드린다고 하다 잊고 있었어요..그런데 왜.. 이게

 

여기 와있는거죠?"

 

"우리가 없을때 이 방에 누군가 들어왔다는 건가?"

 

"그런가봐요.."

 

"이승현. 여기서 형에게 솔직히 말해.. 정말 내가 널 믿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거지?"

 

"네?"

 

"나에게 조금이라도 거짓을 말하거나 숨기는게 있느냐는 말이야. 우리 사이에 작은 비밀이라도 있다면

 

서로를 신뢰할수 없어. 이 칼에 대해서 넌 정말 모르는거지?"

 

"그럼요! 죽는다 해도 맹세해요. 정말 몰라요."

 

"그럼 됬어. 서랍에 구급약품 있더라. 어서 치료하자."

 

 

 

 

 

 

지용은 구급약을 찾아 승현의 손을 치료해준다음 피묻은 칼을 잘 닦아 조심스럽게 식당으로 되돌려놨다

 

그리고 승현의 옷을 정리해준 다음 불을 끄고 잠 자리에 들었다.

 

자신의 품에 안겨서 새근새근 잠들어버린 승현을 조용히 바라보던 그는 감기는 눈을 억지로 참아가며

 

생각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생각이 하나로 모여지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의식이 암흑속으로 묻혀들어갔다.

 

 

 

 

 

 

-너와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다들 일찍 일어나셨나봐요?"

 

"순화씨가 가장 늦게 일어났어요~"

 

"죄송해요..후후.."

 

 

 

 

 

 

가장 늦게 식당에 도착한 순화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들고 식탁에 앉았다.

 

이미 간단한 식사를 마친 지용은 자신의 스포츠백에 이것저것 음식을 담기 시작했고 모두들 식사와

 

세면을 마친 오전 8시.. 그들은 2M가 넘는 커다란 자명종 앞에 모여들었다.

 

 

 

 

 

 

"이제 시작이군요.. 잘 할수 있겠죠?"

 

"여지껏 잘 해왔잖아요. 걱정마세요."

 

 

 

 

 

 

료와 상훈은 서로를 위로하며 시계를 나뭇결 방향으로 쓸어내리고 있었고 승현은 메모지를 펼쳐들고

 

힌트를 크게 읽었다. 료는 붕대를 감고 있는 승현의 손을 유심히 살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이게 시계를 여는 첫번째 힌트라고 했어요.

 

뭐 어쩌라는 거죠? 저는 성경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승현아 걱정마. 이 누나가 또 한 성경 하잖니~ 후후 .. 학창 시절에도 성경 읽는거 좋아해서 교회에서

 

성경 구절 찾기 대회가 열리면 늘 일등했었다구 내가~"

 

"와! 다행이에요. 누나!"

 

 

 

 

 

 

승현이 그녀의 말을 듣고 기뻐하자 순화는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성경구절은 셀수없을만큼 많아요. 제일 크게는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 수십개의 서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지만 이번 힌트는 정말 쉽네요. 후후.. 그 많은 말씀구절 가운데 끝이 '아멘' 으로

 

끝나는건 한 구절 뿐이에요. 성경 가장 끝 부분인 요한계시록(신약)의 마지막 구절이죠."

 

"그게 시계 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는거요?"

 

"음.. 힌트의 구절은 요한계시록 22장 21절 말씀이에요. 어젯밤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것이 시간을

 

나타내는게 아닐까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것 처럼 22시 21분에 시계를 맞추고 밀면 열리지 않을까

 

해서요.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린가?"

 

"아니에요. 순화씨. 그 생각 맞는것 같아요. 22시라면 10시니까 10시 21분에 맞춰볼께요."

 

"잠깐.. 우선 시계가 어떤 식으로 열리나 확인해보구요."

 

 

 

 

 

 

동팔은 자신의 키보다도 큰 육중한 시계를 끙끙대며 이리저리 밀어보았다.

 

그러다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밀자 덜컹- 소리와 함께 조금씩 밀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힘으로는 쉽게 열리지 않자 남자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시계를 밀었고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상훈은 그곳의 벽을 주먹으로 톡톡 쳐가며 말했다.

 

 

 

 

 

 

"역시 속이 비어있군요? 순화씨 말대로 시계를 돌려봐요. 이 벽이 열려야 들어갈수 있을것 같네요."

 

 

 

 

 

 

상훈의 말에 그들은 다시 시계를 원위치 시키고 8시10분을 향하고 있는 시계를 조금 돌려 10시 21분

 

으로 맞춘뒤 다시 시계를 옆으로 밀어 재꼈다. 하지만 벽은 변함없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자 승현이 벽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시계에도 오전 오후가 있잖아요. 그러니 바늘을 크게 회전시켜서 오후 10시 21분으로 해봐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동팔은 다시 시계를 원위치로 밀어놓고 시계 바늘을 조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오차라도 날까 정신을 기울여가며 바늘을 돌리자 10시 21분을 알리는 지점에서 열쇠가

 

들어맞듯 탁- 소리와 함께 기분좋은 떨림이 전해지며 벽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혹 시계가 넘어질까 염려되 벽이 진동하는동안 시계를 붙잡고 있었고 어느정도 잠잠해지자

 

다시 시계를 옆으로 밀어 확인했다.

 

 

 

 

 

 

"콜록.. 아오.. 먼지봐!"

 

"열리지 않은지 꽤 오래된것 같은데요? 컥.."

 

"나 먼지 알레르기 있는데.. 숨을..콜록.. 못쉬겠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온통 빛이 바래 버린듯 뿌연 공기와..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지독한 먼지..

철거된 낡은 건물을 연상시키는 그을린 자국들과 여기저기 벗겨진 페인트칠..

 

그들은 곰팡이가 피어있는 벽에 옷이 닿지 않게 신경쓰면서 아래로 내려갔고

 

제일 뒤에 서 있던 순화는 기관지가 약한 탓에 연신 콜록거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계단이 많고 깊었으며 어두운 계단을 다 내려가자 흉물스러운 철문 옆으로 녹색빛을 내며

 

비밀번호를 입력할수 있는 작은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화면에는 작은 글씨로 간단한 힌트가 씌여 있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비밀번호를 입력하시오 : - - - -

 

 

 

 

 

 

힌트를 읽던 료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거리자 코를 문지르며

 

기침과 재채기를 번갈아가며 하던 순화는 그들을 밀치고 서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 이 말씀은 모세의 기적을 말하는것 같네요."

 

"모세의 기적이요? 그게 뭐죠?"

 

"료씨. 우리나라의 홍해의 기적을 아시나요?"

 

"아뇨. 저는 한국에 대해 잘 몰라요. 지식은 익혔지만 여행을 다녀본적도 없구요.."

 

"다른분들도 모르시나요? 홍해의 기적에 대해?"

 

"전 알아요. 일년에 한번 바닷물이 갈라지면서 길이 생기는것이죠? 모세의 기적이라고 하니 몰랐지만

 

홍해의 기적이라고 하니 알것 같네요."

 

"네. 지용씨 말이 맞아요. 우리나라의 홍해에는 일년에 한번씩 바닷물이 열려요.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자신의 백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때 이뤄냈던 기적이죠."

 

"그럼 이건 성경책 어디에 있는 말씀인가요?"

 

"잠시만요.. 출애굽기(구약) 인것까지는 알겠는데.. 저도 찾아봐야 할것 같아요.."

 

 

 

 

 

 

순화는 손에 들고있던 성경책을 펼쳐들고 손으로 집어가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곳이라 화면의 녹색 불빛에 의지할수 밖에 없었던 터라 가뜩이나 깨알같이 적혀있는 성경구절은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림자라도 생길까 멀찌감치 벗어나있는 상태였다.

 

눈을 가늘게 떠가며 한참을 읽던 순화는 책을 덮으며 밝게 웃었다.

 

 

 

 

 

 

"찾았어요! 모세의 기적. 출애굽기 14장 16절 말씀이네요."

 

"누나. 그럼 비밀번호가 1416 이겠군요?"

 

"아마도 그럴꺼야. 승현아 네가 정답자니까 이제부터는 직접 입력해."

 

"네."

 

 

 

 

 

 

승현은 그녀가 알려준대로 1416 을 누르고 엔터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굳게 닫혀있었던 문이 열리고 방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밝은 형광등은 아니였지만 벽을 둘러싸고 녹색 불이 촘촘히 켜져 있었고 약 10평 남짓으로 보이는

 

방안에는 어떠한 물건도 놓여져 있지 않았다. 바닥은 장판이 깔려있다거나 평범한 시멘트바닥이 아닌

 

알루미늄같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방에 함정이 있다고 알고 있던 그들은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방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문득 상훈은 예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큐브' 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큐브안에서 함정을 피해 다른방으로 이동하여 입구를 찾아내는 내용의 영화였는데 이곳역시

 

비슷한 구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단전에 힘을주어 짧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팔이 기겁하며 화를냈다.

 

 

 

 

 

 

"상훈씨! 심장 마비 걸리는줄 알았잖습니까!"

 

"아.. 미안해요. 동팔씨.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이 나서 혹시 음성을 인식해서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테스트 해보던 중이였어요. 많이 놀랐나요?"

 

"앞으로는 예고 하고 해주십셔! 저 생각보다 심장이 약합니다.."

 

"하하.. 미안합니다. 주의할께요~"

 

 

 

 

 

 

동팔은 의외로 겁이 많았다. 그의 울상을 지켜보던 상훈은 웃음이 터져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지용은 그들이 말한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며 손에 들고있던 스포츠백을 내려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부스럭 거리면서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그의 손을 따라 빨갛게 잘 익은 사과 하나가 올라왔다.

 

 

 

 

 

 

 

"지용씨. 벌써 배고파요? 왜 사과를 꺼냈어요?"

 

"방에 아무것도 없다는것..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전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지용은 말을 마치자마자 허리를 숙여 바닥으로 사과를 힘껏 굴렸다.

 

가끔 엉뚱한 행동을 잘 하는 그였기에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강한 힘을 받은 사과가 데구르르 굴러 반대편 문에 도달할것이라고 당연스럽게 생각했던 사람들앞에서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같에 바닥으로 사라져버렸다.

 

순화는 믿을수 없는 장면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모세의 기적!"

 

"이럴수가.."

 

"모세의 기적이에요! 함정은 힌트로 주워진 성경 구절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사과가 바닥을 진동시키자 얇은 쇠로 된 바닥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문이 열리듯 갈라져버렸고

 

그 안에는 발 디딜틈도 없이 촘촘한 가시들이 박혀있었다. 쇠로 만들어진 가시는 어림잡아도 한뼘

 

이상의 길이였으며 끝이 얼마나 뾰족한지 어둠속에서도 소름끼치게 반짝이고 있었다.

 

사과는 이래로 곤두박질쳐 쇠가시에 보기좋게 관통당해있었고 열려진 바닥은 잠시 공포를 조성하고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지용은 다시 손을 들어 바닥을 내리쳤고 진동을 감지한 바닥은 변함없이 열렸다가 닫혔다.

 

 

 

 

 

 

"여길 어떻게 지나가죠? 불가능 한거 아닐까요?"

 

"첫번째 방도 이러면 앞으로의 방은 어떻게 지나가! 그나저나 마스터 H 라는 놈 돈 많네? 돈이 남아돌아

 

감당이 안되나보지? 그러니까 이런 함정까지 만들어가며 사람들을 괴롭히지!"

 

 

 

 

 

 

동팔이 또 다시 흥분하며 날뛰자 승현은 그를 보며 한심하단듯 작게 혀를 차고는 지용에게 부탁해

 

한번 더 바닥을 쳐줄것을 부탁했다.

 

지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바닥을 울렸고 승현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눈을 굴렸다.

 

 

 

 

 

 

"바닥이 열리고 닫히는 간격이 일정하네요. 형. 이번에는 한번 열렸다가 닫히면 바로 이어서 다시

 

쳐주실래요? 한 3~4번쯤 반복해서 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승현의 부탁을 받은 지용은 그의 요구대로 바닥을 진동시켰고 승현은 시계와 바닥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틈이 있네요. 진동이 느껴지면 그와 동시에 바닥이 열려요. 열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3초.

 

그리고 완전히 열리면 10초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네요. 그리고 닫히는데 걸리는 시간도 3초.

 

그리고 완전히 닫혔을때 진동을 받으면 바로 반응하는게 아니라 약간의 틈이 있어요. 그걸 노려야해요."

 

"그 틈이라는게 얼마나 되지?"

 

"1초요."

 

"1초라.."

 

"결론은 한번 바닥을 연후에 닫힐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진동을 시키고 반응대기시간인 1초 동안에

 

저 문앞까지 도달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와요."

 

"방이 꽤 넓은 편이니 가속력을 받는 상태에서 한걸음 딛고 바로 문앞까지 뛰어야 한다는 거군?"

 

"아마도 그래야 할것 같아요."

 

"남자들은 가능하다고 치자. 하지만 순화씨는 힘들지 않을까?"

 

"형도 참.. 순화 누나 직업을 잊으셨어요? 에어로빅 강사인데 그정도 운동신경이 없을리가 없잖아요.

 

어쩌면 저보다 누나가 더 잘 뛸지도 몰라요."

 

"어머. 승현이 너.. 그거 내 칭찬인거지?"

 

"헤헤~ 그럼요~"

 

 

 

 

 

 

순화가 승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밝게 웃자 승현은 멋쩍은듯 얼굴을 붉혔다.

 

그들은 계단을 이용해 뛰어내려와 건너가는 방법으로 입을 맞추고 여러번의 확인 작업을 거쳤다.

 

지용은 바닥을 쳐줘야하므로 가장 늦게 출발하기로 했고 처음으로 상훈이 방을 건너갔다.

 

 

 

 

 

 

"휴..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요? 꼭 멀리뛰기 하는것같아요. 오싹하네요."

 

"할만한가요? 상훈씨?"

 

"네. 시간만 정확하게 맞으면 충분히 할만해요.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쪽 문앞에

 

안전한 공간이 좁기때문에 중심을 잃으면 그대로 뒤로 넘어져버릴꺼에요."

 

"다음은 순화씨 가세요."

 

"네!"

 

 

 

 

 

 

순화는 계단위로 올라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지용이 신호를 보내자 재빨리 튀어나가 방을 건너갔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승현이 감탄을 하며 박수를 쳤다.

 

 

 

 

 

 

"이야! 누나 멋져요! 에어로빅이란게 굉장히 유연한 운동이군요?"

 

"그럼! 내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데. 피눈물을 흘릴뻔했다구~"

 

 

 

 

 

 

그들이 걱정하던 순화가 무사히 건너가자 료와 승현도 같은 방식으로 뛰었고 먼저 건너간 상훈과

 

순화는 그들이 안전히 착지할수있게 손을 내밀어 끌어주었다.

 

 

 

 

 

 

"이번엔 동팔씨 차례에요. 제가 신호를 보내면 뛰는거에요. 아셨죠?"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어째 영 시원치 않아 보였다.

 

그가 계단위에서 대기하자 지용은 같은 방식으로 바닥을 진동시켰고 동팔은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나름대로 발을 굴러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시작부터 반응을 늦게한데다 육중한 체격으로 인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휘청했고

 

당황한 그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발을 내딛으며 손을 뻗었다.

 

 

 

 

 

 

"동팔씨!!!!!!!!!"

 

"아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온 방안을 가득 울리며 슬로우 모션처럼 동팔의 몸이 기울어졌고 그를 향해

 

손을 내민 사람들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five-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살좀 빼요! 우리 단체로 다 넘어갈 뻔했잖아요!"

 

"헉헉.. 죽는줄 알았네.."

 

 

 

 

 

 

동팔이 괴성을 지르며 허공에서 허우적 거리는 사이 재빨리 상훈과 료가 그의 손을 잡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였으면 정말 그는 등부터 꿰뚤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지도 모른다.

 

순화는 료와 상훈이 넘어지지 않도록 옷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왼손 검지손톱이 반쯤 깨져 피를 흘리며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승현 역시 그들을 돕느라 애써 멈춘 피가 붕대를 적시며 배어나왔다.

 

동팔은 겨우 안전지대로 진입해 바닥에 엎드린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저..도저히 못가겠습니다.. 계속 이런 함정만 나올것 아닙니까.."

 

"동팔씨. 기운내요. 무사했잖아요."

 

"괜히 저는 짐만 되는것 같지 말입니다. 문제도 못풀고 할줄 아는것도 없으니.."

 

 

 

 

 

 

동팔은 정말 위기라고 느꼈는지 한번도 내보인적 없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늘 눈치없고 험악하기만 하던 그가 울상을 지으며 침울해하자 마음씨 좋은 순화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해주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지용뿐. 그들중 가장 타이밍에 익숙한 승현이 반대편에서 진동을 주었다.

 

지용은 예상대로 별 어려움없이 가볍게 뛰었다. 도달해서 멈추지 못해 상훈과 머리를 박았지만..

 

모두 모이자 그들 앞에는 별로 반갑지 않은 두번째 방문과 녹색 화면이 불을 반짝이고 있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비밀번호를 입력하시오 : - - - -

 

 

 

 

 

 

"이번에는 왠 포도주 타령이야? 순화씨 뭔지 알겠어요?"

 

"흠.. 생각보다 성경구절은 유명한 것만 나오네요? 쉬운편이에요. 함정을 통과하기가 어려우니

 

일부러 잘 알려진 성경구절만 골라 문제를 만들었나봐요."

 

"그건 아니에요. 순화씨가 다행히 성경에 대해 잘 아니 망정이지 저희들끼리만 있었다면 아마 손도

 

못댔을껄요? 백과사전에서 목차없이 내용찾기 처럼 말이에요."

 

"그렇구나~ 아무튼 이것도 찾아보면 금방 나올꺼에요. 예수님이 연회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에

 

대한 구절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계속 기적에 대해 나오고 있네.. 잠시만요.."

 

 

 

 

 

 

순화는 연속으로 기적에 대한 구절이 나오자 마음에 걸린듯 눈을 굴리며 성경책을 뒤적거렸다.

 

방안의 불이 밝아서인지 그녀는 고생하지않고 몇분만에 답을 찾아냈다.

 

 

 

 

 

 

"요한복음 2장 9절이네요. 요한복음 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20장 막 이러면 찾기 힘들거든요.후후"

 

"그럼 비밀번호는 0209겠네요?"

 

"아마도 그럴꺼에요. 승현아. 어서 눌러봐."

 

"네 누나"

 

 

 

 

 

 

승현은 다친 손의 붕대를 매만지며 인상을 쓰더니 순화의 말에 큰 소리로 대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역시 비밀번호는 0209가 맞는 모양이다. 엔터를 누르자 어렵지 않게 손잡이가 돌아갔다.

 

방으로 들어서자 강렬하게 쏟아져나오는 자주색 조명에 눈살을 찌푸릴 지경이였다.

 

그들앞에는 1m남짓의 공간과 건너편 방문 앞에도 비슷해보이는 넓이의 공간만이 존재했다.

 

조명이 은근히 어둡고 눈에 부담을 주어 자세히는 알수 없었지만 그 방은 바닥이 뚫려있는듯 했다.

 

지용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낭떠러지같은 바닥을 들여다 보다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아래로 떨어뜨려보면 소리가 나는 시간으로 미루어 대충 깊이를 짐작할수 있으리라.

 

지용은 손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동전을 세게 꽉 쥐었다가 주먹을 펴고 동전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의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료가 시선을 아래로 향한채 급히 말했다.

 

 

 

 

 

 

"방금 전 동전 소리 들으셨나요?"

 

"살짝 들었어요. 귀가 이상한가?"

 

"귀가 이상한게 아니라 바닥이 깊은거에요. 제가 귀하나는 밝다고 자부하는데도 겨우 들릴까 말까

 

했으니까요. 그리고 소리가 울리지 않았어요. 바닥에 뭔가 있는 거에요.

 

"형 대충 4초정도 걸렸어요. 소리가 나기까지."

 

"승현이 넌 역시 놓치지 않는구나? 그걸 재고 있었어?"

 

"네. 동전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에 깊이를 측정할수는 없지만 가속도가 붙었다고 가정하면 이 바닥은

 

아주 깊은거에요. 떨어지면 나오지 못하겠는데요?"

 

"난감하네.. 여긴 뛰지도 못하겠는걸.."

 

"어? 저기좀 보세요!"

 

 

 

 

 

 

승현이 손으로 벽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왼쪽 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큰 종이에 문제로 보이는 글귀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1. 제사가 끝난후 사람들은 이것이라고 하여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데 이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활을 한다.

 

2. 세계에서 제일 독한 술은 보드카로 도수가 최고 97도에 이르는것도 있다. 국내로 공식 수입되는

 

술중에는 이것이 최고의 도수를 자랑하는데 보드카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입맛엔 여전히 독하다.

 

3 숙취에는 단연 해장이 최고다. 특히 콩나물로 끓인 국이 좋은데 콩나물 안에는 숙취 해소에 필요한

 

알콜 분해와 배출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5. 진 토닉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만들기 쉬운 칵테일이며 어느 파티에나 부담없이 어울린다.

 

이것의 재료로는 드라이 진 1온스에 이것과 레몬을 첨가하여 만들며 특히 여름에 잘 어울린다.

 

6. 맥주의 색깔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져 가지만 기본적인 색은 보통 갈색이다. 그 이유는 이것을

 

건조시킬때 볶는 시간과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황금빛부터 마호가니의 색까지 다양한

 

색과 맛이 나올수 있는 것이다.

 

7. 브랜디는 숙성 년도에 따라 여러가지 등급으로 표시된다. 다음은 1865년 헤네시사 발표 기준이다.

 

* V.O => Very Old(15년)


* V.S.O => Very Superior Old(15~25년)


* V.S.O.P => Very Superior Old Pale(15~30년)


* X.O => Extra Old(45년 이상)


그렇다면 가장 최상 등급인 70년 이상된 브랜디는 무엇이라고 표기하는가.

 


8. 동동주는 청주를 걸러내지 않아 밥알이 동동 떠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주중

 

대표적인 것으로 멥쌀과 이것을 발효시켜 만든다.

 

9. 위스키는 독하기 때문에 마시는 방법이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위스키에 와인이나 쥬스

 

등을 첨가해 칵테일로 마시는 방법이고 둘째는 스트레이트인데 길고 작은 잔에 소량을 따라 한번에

 

마시는 방법이다. 하지만 스트레이트는 한잔을 단숨에 비우는 습성을 가진 동양사람들은 피해야

 

한다. 셋째가 이것이며 얼음을 4-5개쯤 넣어 위스키 1온스와 함께 마시는 방법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고급 술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순화는 도무지 뭔소린지 몰라 난감해하며 성경책을 만지작 거렸다.

 

 

 

 

 

 

"전 술에 대해선 아는게 없는데 죄다 술문제네요? 아는건 소주뿐인데.. 이걸 어떻게 맞추지?"

 

"그것보다 뭔가 보상이 있어야 문제를 맞출텐데 왜 이런문제를 적어 놨을까요?"

 

"그러게요. 지용씨는 술에 대해 좀 아시나요?"

 

"많이 아는건 아니지만 문제를 보아하니 대충 몇가지는 알것같아요."

 

 

 

 

 

 

그들은 뻥 뚫린 방을 마주하며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적어도 틈이 4-5m 는 되어 보이는데 그곳을 뛰어 건넌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도약할 거리가 충분히 되고 모래가 깔려있는 운동장이였다면 넓이뛰기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고작 양쪽 1m의 안전공간에 서서 뭘 어찌할수 있단 말인가.

 

승현은 너덜거리는 붕대의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뱅뱅 돌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사때 술과 음식을 나누어먹는 행위? 들어본것 같기도 한데.. 영 모르겠단 말이야.."

 

 

 

 

 

 

그는 머리 끝자락에서 잡힐듯 애만 태우며 잡히지 않는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낼때 늘 이빨로 자신의

 

입술을 물어 뜯는다.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심취해 피가 나도록 물어뜯기도 하지만.

 

지용은 그런 그의 버릇을 알고 있기에 승현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깊은 생각에 빠지며 입술을

 

물어뜯자 재빨리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입술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억지로 물려버린다.

 

 

 

 

 

 

"이승현. 또 입술 물어뜯을래?"

 

"제가 그랬나요?"

 

"버릇이라 자신의 행동도 모르는건가? 넌 뭘 생각할때 꼭 입술을 물어뜯더라?"

 

"아.. 저 1번문제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희집 제사때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것 같은데 생각이 안나네요."

 

"난 알아. 뭔지."

 

"정말요? 알려주세요!"

 

"입술 깨물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알려줄께."

 

"네. 앞으로 노력 할테니까 얼른 말해줘요. 저 궁금한건 못참는단 말이에요."

 

"그거잖아. 술을 나눠 마시는것. 음복"

 

"아!"

 

 

 

 

 

 

쿠광쾅-

 

 

 

 

 

 

지용이 음복이라는 말을 함과 동시에 바닥에서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놀란 그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바닥도 무너지는것이 아닐까 싶어 벽을 잡고 벌벌 떨었지만 잠시후

 

기계의 마찰음과 함께 뚫려있는 바닥으로부터 무언가가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수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앞으로 나섰고 승현과 동팔은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톡톡 치며 대화했다.

 

 

 

 

 

 

"와- 밑에서 바닥이 올라왔어요!"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일이 생긴거지?"

 

"제가 지용형한테 1번문제를 물어 봤었고 형이 답을 말해준것 뿐인데.."

 

"그럼 답을 말하자 마자 바닥이 올라왔다는 말이야?"

 

"아! 키워드! 이곳으로부터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를 불러올리는 키워드는 문제의 정답인거에요!

 

방금 전 지용형이 1번 답을 '음복' 이라고 했더니 바로 올라왔거든요!"

 

"그럼 9개의 문제를 다 풀면 건너갈수 있단 소리군?"

 

 

 

 

 

 

바닥은 폭 50cm 정도의 쇠로 되어 있었으며 강한 힘에 의해 밀려 올라온듯 보였다.

 

음성을 인식할수 있는 기계가 입력된 키워드에 반응하는것 같았다.

 

순화와 승현은 신기하다는듯 그곳에 올라섰다.

 

지용은 마냥 어린 아이같은 승현을 귀엽다는듯 바라보며 웃었다.

 

 

 

 

 

 

"두번째 문제는 가장 독한 술이네요? 우리나라에도 보드카가 들어와있지 않나요?"

 

"보드카는 종류가 매우 다양해요. 칵테일에 쓰는 비교적 약한것부터 눈에 묻어두고 마시는 독한것까지

 

여러가지가 있죠. 제가 보드카중에서도 가장 독한 것을 알고 있는데 한번 불러볼까요?"

 

"확실하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상훈씨"

 

"네. 그럼 불러볼께요. 2번 답은 스피리타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또 다시 땅이 흔들렸다.

 

하지만 두번째 바닥이 올라오기는 커녕 순화와 승현이 서있던 바닥이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아래로

 

푹 꺼져버렸다. 당황한 두 사람은 소리를 질러댔고 료는 쪼그리고 앉아 아래를 향해 외쳤다.

 

 

 

 

 

 

"순화씨! 승현아! 괜찮아?"

 

"저흰 괜찮아요! 그나저나 여기 너무 어두워요. 냄새도 지독하구요! 빨리 답을 생각해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우리도 고민중이야!"

 

 

 

 

 

 

그들이 다행히 무사한걸 확인하자 남은 4명의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답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첫번째 바닥이 내려간것이니 첫번째 답을 외치면 올라오겠다고 생각한 동팔이 다시 큰 소리로

 

음복 이라고 외쳤지만 키워드는 한번의 기회로 소멸되는지 바닥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답을 외쳤던 상훈은 당황한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열을 식히기 위해 손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스피리타스가 오답인가봐요! 분명 97도로 제일 높은 도수의 술이란 말이에요."

 

"상훈씨. 문제를 보면 국내로 공식 수입된 술중에.. 라고 되어있네요. 스피리타스 라는 술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은것 아닐까요? 그래서 답이 오답일지도 몰라요."

 

"그런가보네요. 그런데 함정은 정답에만 반응하는게 아니라 오답에도 반응하는군요?

 

어떻게 오답에도 반응하는 것일까요?"

 

"문제가 전부 술 문제잖아요. 술에 대한 정보는 죄다 오답으로 입력해놓은것 아닐까요? 그럼 정답을

 

제외한 술이름이나 기타 정보를 외쳤을때는 자동 오답처리 되니까요."

 

"마스터 H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요.. 아니 어떤면에서는 천재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의 마음을 읽고

 

생각까지 미리 예지하니 말이에요."

 

"상훈씨. 답은 맞추면 되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지용은 상훈을 위로했다.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상훈은 순화를 마음에 두고있는것 같았다.

 

늘 상훈의 시선은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 때문에 그녀가 내려가 버렸으니 나름대로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때 계속해서 음복을 외치던 동팔은 영 신통치 않자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아무말이나 툭 내뱉었다.

 

 

 

 

 

 

"바카디!"

 

 

 

 

 

 

가끔 소도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모양이다.

 

동팔의 바카디라는 단어는 두번째 바닥의 키워드로 큰 진동과 함께 두번째 바닥은 물론 순화와 승현이

 

서있는 첫번째 바닥까지 같이 올라왔다.

 

올라온 그들은 몸을 숙여 자신의 다리를 정신없이 때리고 있었다.

 

 

 

 

 

 

"아악! 정말 싫어! 저 밑에 벌레가 득실득실 거려요!"

 

"누나! 옷 뒤에요!"

 

"난몰라! 미쳐 ! 빨리 떼어줘!"

 

 

 

 

 

 

벌레를 잘 만지지 못하는 승현이 멈짓하자 상훈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가 다리에 붙은 벌레를

 

떼어주었다. 그것은 미국산 바퀴벌레처럼 손가락 두마디는 되어보이는 날개달린 까만색 벌레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순화는 질겁하며 다리를 쾅쾅 구르며 걸어나왔고 승현은 계속 옷을 털어대며 지용에게 달려와 안겼다.

 

바닥이 두개가 올라오자 신기했던 료는 감정사처럼 바닥을 두드리며 동팔에게 물었다.

 

 

 

 

 

 

"동팔씨. 어떻게 정답을 아셨나요? 놀랬어요."

 

"제가 정답을 알아서 맞춘건 아니구요. 바카디라는 술을 먹고 위 경련이 일어나서 병원에 실려간적이

 

있거든요.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저라도 그 술은 견디기 힘든 독한 술이였습니다. 그래서 한번 불러

 

봤는데 이게 정답일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렴 어때요. 답을 맞췄잖아요. 훌륭합니다."

 

"갑자기 그런 칭찬을 하니 쑥쓰럽군요."

 

 

 

 

 

 

동팔은 짧은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며 멋쩍어했다.

 

료는 가끔 동팔이 보여주는 곰같은 포즈에 미소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정답을 맞추면 바닥이 하나씩 올라오네요. 1번을 맞추니까 1번 바닥이 올라오고 2번을 틀리니까 1번

 

바닥이 내려앉아 버렸어요. 다시 2번을 맞추니까 1번과 2번 바닥이 동시에 올라왔구요. 그럼 문제를

 

다 맞춰야 저곳까지 도달할수 있다는 것이군요?"

 

"꼭 다 맞출 필요 있나요? 어느정도 거리가 좁혀지면 뛰어도 될것 같은데요?"

 

"그래도 되겠네요. 그럼 우리 다같이 이동해요."

 

"꼭 그래야하나요?"

 

"바닥이 언제 내려갈지도 모르는데 나눠서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동팔씨는 같이 이동하기

 

싫으면 나중에 오셔도 되요. 하지만 1번 바닥이 내려 앉았을때 동팔씨가 1번 키워드를 계속 외쳤지만

 

반응하지 않았죠? 그건 키워드가 일회성임을 의미해요. 즉 한번 불리워진 키워드는 소멸되고 그 다음

 

키워드에 모든 바닥이 동시 지배 받는단 말이죠. 그래도 이동하기 싫으면 남으세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게 야박하게 나와야겠수!"

 

 

 

 

 

 

날이 갈수록 성질 나쁜 곰처럼 무너져가는 이미지의 동팔은 결국 가장 먼저 2번 바닥위에 올라섰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킥킥거린뒤 그를 중심으로 양옆에 일렬로 섰다.

 

고정되어 있을때는 괜찮지만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위험할만큼 좁은 폭이니 중심을 잘 잡아야했다.

 

3번째문제는 콩나물에 관한 문제였다. 역시 콩나물하면 나름대로 애주가인 순화씨 분야.

 

 

 

 

 

 

"저 3번 답 알아요. 후후.."

 

"오~ 누나"

 

"콩나물국만 5년째 끓여 왔다구요~ 성분을 모를리가 없지요."

 

"누나. 솔직히 말해요. 콩나물의 성분을 아는건 많이 끓여봐서 아는게 아니죠? "

 

"어머! 지금 승현이 네가 누나를 의심하는거니?"

 

"의심이 가잖아요. 쿡쿡.. 그럼 자주 끓이는 국마다 성분을 다 알고 계시겠네요?"

 

"가끔 이 녀석은 너무 예리해서 얄밉다니까? 흥! 그래! 사실은 술 많이 먹어서 술병났을떄 인터넷으로

 

알아보다가 외운거다! 꼭 그렇게 과거를 밝혀야하겠니? 흑흑.."

 

"누나~ 안우는거 알아요. 어서 답을 외쳐주세요~"

 

"얄미워 이승현!"

 

"헤헤~"

 

"3번 답은 아스파라긴산 입니다!"

 

 

 

 

 

 

키워드가 정확히 일치하자 그들앞으로 광장한 진동과 함께 세번째 바닥이 올라왔다.

 

다음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었다.

 

이 문제는 지용이 잘 알고 있어 답을 외치려고 입을 벌리는 찰나 동팔이 말을 막고 자신있게

 

외쳤다. 대책이 없었다.

 

 

 

 

 

 

"헤네시!"

 

 

 

 

 

 

그의 외침과 함께 바닥이 덜컹거리더니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엄청난 진동에 혹시나 떨어질까 염려된 사람들은 서로의 팔에 팔짱을 끼며 버티고 있었고

 

순화가 답답하다는듯 열변을 토했다.

 

 

 

 

 

 

"내가 못살아.. 헤네시가 어째서 와인이에요! 양주지!"

 

"포도주로 만들었다길래 한번 말해본것 뿐입니다."

 

"어떻게해.. 저 밑에 벌레 많은데.. 미쳐.."

 

 

 

 

 

 

순화는 내려가는 내내 동팔을 탓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길래 정확하지 않은 답은 함부로 말하는게 아니거늘..

 

동팔은 고개를 숙여 반성하고 있었다. 다시는 답을 말하지 않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다.

 

바닥으로 완전히 내려가자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가뜩이나 예민한 그들의 귓가에 스물스물

 

벌레 기어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지용은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로마네 꽁띠! ((Roman'ee Conti)"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은 다시 위로 솟아올랐고 방안의 모습이 보이자 모두들

 

팔을 풀고 안도했다.

 

그때 우연히 뒤를 돌아보던 료가 놀란듯 말했다.

 

 

 

 

 

 

"1번 바닥이 올라오지 않았어요."

 

"네?"

 

"1번 바닥이 올라오지 않았다구요. 올라온건 2, 3, 4 번 바닥뿐이에요."

 

"그게 어때서요? 우린 건너가기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순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하자 료는 답답하다는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1번 바닥이 안올라온 이유는요 두번 내려갔기 때문이에요.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한번 이상 내려간

 

바닥은 다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즉 우리가 한문제를 더 틀리게 된다면 2번바닥도 작동을

 

멈추게 되요. 틀리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오도가도 못하고 중간에 갇히게 되는거에요."

 

"그건 안좋은 소식이군요. 그럼 최대한 정답을 맞춘 다음 어느정도 거리가 좁혀졌을때 뛰어 넘어야

 

겠어요. 오늘 넓이뛰기 여러번 하네.. 젠장.."

 

 

 

 

 

 

동팔은 넓이뛰기라면 치를 떨었다.

 

한번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뻔한 넓이뛰기를 어찌 잊을수 있단 말인가..

 

료는 문제가 적힌 벽을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하다 승현에게 말했다.

 

 

 

 

 

 

"승현아. 혹시 모르니까 문제들을 좀 외워줄래? 우리가 바닥에 내려가게 되면 문제를 보지 못하잖아."

 

"네. 알겠어요. 외워볼께요."

 

"그럼 다음 문제는.. 진 토닉에 관한거네? 이건 쉽다."

 

"료형. 답을 아세요?"

 

"나 일본에 있을때 웨스턴 바에서 잠깐 일한적 있거든. 진토닉이야 워낙 흔한 칵테일이니까..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 헤헤~"

 

"여기서 살아 나가게 되면 내가 만들어줄께. 승현군~"

 

"와! 정말요?"

 

"그럼! 기대해도 좋아."

 

"네. 고마워요~ 그럼 어서 답을 말해보세요."

 

"토닉 워터!"

 

 

 

 

 


자신있는 답이여서 그런지 료는 힘있는 목소리로 외쳤고 5번째 바닥이 올라왔다.

 

이정도면 순탄한 편이였다.

 

6번 문제는 맥주에 관한 문제였다. 문제들은 비교적 쉬운편이였다.

 

상훈은 팔짱을 끼며 처음으로 이빨을 보이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이 문제는 너무 쉽다. 맥주의 원료가 뭔지는 학생들도 다 알잖아요."

 

"저는 모르는데요?"

 

"동팔씨.. 실례가 많았네요. 맥주는 보리로 만드는 술입니다."

 

"실례랄것 까지야 있나요. 제가 무식한게 죄죠."

 

"그렇게 말하면 제가 미안하지 않습니까."

 

"미안하면 어서 답을 외치세요."

 

 

 

 

 

상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을 짓자 동팔은 괜찮다며 답을 재촉했다.

 

상훈은 조용한 목소리로 짧게 끊어 외쳤다.

 

 

 

 

 

 

"보리!"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몸이 휘청거릴만큼 세차게 진동한 바닥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채 그들은 또 다시 서로의 팔을 잡을수밖에 없었다.

 

 

 

 

 

 

"꺄악! 벌레가 다리를 건드렸어!"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나는군요?"

 

"이상하다.. 분명 맥주는 보리가 주원료 아닙니까?"

 

 

 

 

 

 

어둠속에서 서로의 목소리만으로 안부를 확인한 그들은 다시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상훈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수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용이 아차 싶은 마음이 들어 말을 꺼냈다.

 

 

 

 

 

 

"보리가 아니라 맥아 라고 표현을 해야 맞는것 같습니다."

 

"어짜피 보리나 맥아나 같은 말이잖아요?"

 

"마스터 H 는 쉽게 넘어가는 문제는 만들지 않아요. 분명 한자어로 키워드를 입력시켜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락일겁니다."

 

"개같은놈.. 정말 죽이고 싶다!"

 

 

 

 

 

 

얌전하기 그지없는 상훈의 입에서 드디어 욕이 터져나왔다.

 

동팔은 몸이 간지러운지 팔을 벅벅 긁어대다가 옆에 있는 승현의 엉덩이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지용이 아님을 금방 알아챈 승현은 또 다시 발끈하며 대들었다.

 

 

 

 

 

 

"만지지 마세요!"

 

"뭐?"

 

"내 몸에 손대지 말라구요!"

 

"이 꼬맹이 또 시작이네? 어둠속에서 실수로 만진것도 죄란말야?"

 

"어둠속이든 빛속이든 싫어요! 건드리지 마세요!"

 

"아니..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승현이 계속해서 까칠하게 나오자 성질을 이기지 못한 동팔은 급기야 폭발했다.

 

승현이 유난히 동팔을 못미더워하는 까닭은 며칠전에 있었던 성폭행사건.

 

지용이 재빨리 승현을 반대편으로 옮기고 두사람 사이를 막아서자 두사람은 씩씩거리며 거친숨을

 

내몰아쉬고 있었다.

 

순화는 벌레가 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문제 뭐죠!"

 

"승현아. 다음 문제 알려줄래?"

 

"다음 문제는요.."

 

 

 

 

 

 

승현이 기억을 떠올려 말을 꺼내려고 하자 배알이 뒤틀렸던 동팔은 콧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제까짓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걸 어떻게 외워? 말더듬는것을 보아하니 모르는게지"

 

"형! 제가 형인줄 알아요?"

 

"그럼 어서 말해보시지?"

 

"싫어요! 동팔형 때문이라도 죽어도 말 안해!"

 

 

 

 

 

 

승현이 화를내며 입을 굳게 다물어버리자 순화가 애원하듯 말했다.

 

애원하는건 필시 그녀뿐만이 아니였다.

 

 

 

 

 

 

"승현아.. 누나를 생각해서라도 말해주라. 나 벌레 정말 무섭단말야.."

 

"........................."

 

"무슨 술 년도 어쩌구였는데.. 우린 생각이 안나. 그러니 말해주라 응?"

 

"........................."

 

"동팔씨! 빨리 승현이한테 사과하세요!"

 

"제가 왜요?"

 

"그럼 동팔씨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서 벌레 밥이 되란 말이에요? 난 그럴수 없어요!"

 

"마음대로 하쇼!"

 

 

 

 

 

 

동팔도 오기를 부리며 절대 사과할수 없다고 배짱을 부렸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실수하고 있는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승현의 고집으로 보아 자신이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 입을 열지 않을것은 불 보듯 뻔한일.

 

동팔은 처음으로 자존심을 굽히며 건성건성 승현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승현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답을 외쳤다.

 

 

 

 

 

 

"엑스트라! (Extra)"

 

 

 

 

 

 

다시 바닥은 방으로 올라왔고 순화는 바지에 붙어있는 벌레를 떼어내기 위해 발을 동동구르며 말했다.

 

몸짓은 다급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승현이 너 답까지 알고 있었어?"

 

"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브랜디를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등급에 대해 들은적이 있어요.

 

전부를 아는건 아니지만 최고 등급이 엑스트라인건 알아요."

 

"잘했어! 역시 똑똑해!"

 

 

 

 

 

 

순화는 승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7번 바닥까지 올라오자 남은 거리는 대략 1m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뛰어넘을수 있을것 같았다.

 

순화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폴작 뛰어 건너가자 모두들 그녀를 따라 건너편으로 뛰었다.

 

3번 방 문앞에 서니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초록색 화면이 그들을 반겼다.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시오 : - - - -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모르겠어요..이 성경 구절은 어디있는 말씀인지 짐작이 안가요.."

 

"순화씨가 모르면 어떻게 해요? 책을 다 뒤져볼수도 없는데.."

 

 

 

 

 

 

어느 전서에 속해 있는지만 알아도 수월하게 풀련만 그것마저 모르겠다고

 

순화가 주저앉아버리자 다들 망연자실했다.

 

상훈은 성경책을 집어들고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겼지만 그 많은 글중에 한절을

 

찾는다는건 모래밭에서 좁쌀한톨 찾기와 다를바 없었다.

 

동팔은 신경질을 내며 혼자 흥분하다가 문이라도 부실 요량으로 힘껏 차더니

 

거칠게 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뭐야 이거! 처음부터 열려 있었잖아?"

 

 

 

 

 

 

그들이 비밀번호에 집착해 미리 손잡이를 돌려보지 않은것이 실수였다.

 

3번째 방문은 비밀번호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듯 간단히 열리며 그들을 조롱했다.

 

분개한 사람들은 처음으로 입에 쌍자음이 가득 담긴 욕지기를 내뱉었다.

 

마스터 H는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는 악마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수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정신이 몽롱해질만큼 어둡고 푸른 조명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양쪽 벽에는 열자루의 칼이 제 각각 다른 길이와 모양을 뽐내며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지용은 한발로 바닥을 굴러가며 확인했지만 별다른 함정은 없어보였다.

 

그때 옆에 서있던 승현이 한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비틀거렸다.

 

 

 

 

 

 

"느낌이 이상해.. 형.. 무슨 소리 안들려요?"

 

"무슨 소리가 난다고 그래? 이승현? 너 왜그래?"

 

 

 

 

 

 

승현은 지용의 팔을 잡고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놀란 그는 허리를 숙여 승현을 안아 올렸지만 그는 통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료가 소리쳤다.

 

 

 

 

 

 

"지용씨! 이상해요!"

 

"료씨. 왜그래요?"

 

"사람들이 이상해요!"

 

 

 

 

 

 

지용이 고개를 돌리니 순화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미친듯이 손톱을 세우고 바닥을

 

긁어대고 있는 장면이 포착됬다.

 

깨진 손톱의 멈췄던 출혈이 다시 시작된듯 바닥에 검붉은 피가 자국을 내며 번져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을 계속했다.

 

고양이가 용변을 보기위해 뒷발로 흙을 파해치는 행동과 흡사했다.

 

지용은 쓰러진 승현을 안아올려 빠르게 4번 방문앞으로 옮겨 놓은뒤 순화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 료는 방 중앙을 계속 뱅글뱅글 도는 상훈을 따라다니며 말리고 있었다.

 

 

 

 

 

 

"길이 없어..흐흐.. 계속 같은 길이 반복되고 있어.. 흐흐흐.."

 

 

 

 

 

 

상훈의 눈은 촛점없이 동공이 반쯤 풀려있었다.

 

언제나 바른 자세로 일관하던 그는 허리를 노인네처럼 구부정하게 구부린채 한손을

 

허공에 뻗고 행동을 반복했다.

 

그 행동은 지팡이를 든 노인네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그때. 삐- 하는 고음이 언뜻 귓가를 스쳤다.

 

지용은 흠칫 놀라 료에게 물었다.

 

 

 

 

 

 

"료씨. 혹시 무슨 소리 들리나요?"

 

"별다른 소리는 모르겠지만 가끔 삑 하는 소리는 들려요. 손톱으로 쇠를 긁어내리는

 

소리같달까요?"

 

"저도 뭔가 들려요.. 혹시 사람들이 이 소리에 반응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멀쩡한거죠?"

 

"우리가 저들보다 예민하지 못한게 아닐까요? 전 어릴때부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들어 버릇해서 살짝 소리에 둔하거든요."

 

"지용씨도 그래요? 저 역시 약간의 난청이 있어요. 이유는 같구요."

 

"이런.. 빨리 이방을 벗어나야겠어요!"

 

"상훈씨! 정신차려요!"

 

 

 

 

 

 

그들의 예상대로 방안에는 자극적인 전파가 흐르고 있었다.

 

최면 효과를 동반한 소리는 가청 주파수의 영역과 가까운 고음의 소리를 냈다.

 

이것을 예민한 사람이 듣는다면 심한 발작과 구토를 일으킬수도 있었다.

 

그 예로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중 하나인 마루타에서 고음의 전파를 내보낸 방에

 

두 사람을 가두어놓고 실험을 벌인 장면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은 온몸이 찢어져 피와 내장을 쏟으며

 

죽게 된다. 실제로도 전파는 신진 대사를 방해하는 큰 위력이 있다.

 

청각에 유난히 예민한 승현은 그 소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버렸고

 

이유는 알수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듯 각자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료가 고집을 피우며 계속 제자리에서 맴도는 상훈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지용은

 

미친 사람처럼 웃고있는 순화의 뺨을 후려쳤다.

 

감정이 실리진 않았으나 남자의 손은 꽤 힘이 센지라 순화는 힘이 실린 방향으로

 

맥없이 쓰러져버렸다.

 

지용은 그녀를 안아올려 최대한 문쪽으로 바짝붙여 승현과 같이 눕혀놓았다.

 

그때 료의 비명이 강하게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지용씨! 피해요!"

 

 

 

 

 

 

반사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지용은 몸을 틀어 옆으로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번쩍이는 물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더니 4자가 적혀진 방문에 그대로 박혀버렸다.

 

 

 

 

 

 

"동팔씨! 왜 이러세요!"

 

"악마같은 놈! 죽어라!"

 

 

 

 

 

 

동팔의 눈은 정상이 아니였다.

 

광기와 원망을 가득담은 눈은 정확히 지용을 향해있었고 타겟을 놓친 동팔은 칼을 빼내기

 

위해 끙끙거리더니 안되겠다 싶었는지 벽으로 달려가 다른 칼을 빼들고 거꾸로 쥔채

 

뒤뚱거리며 달려들었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지용은 피하지도 못하고 팔을 잡고 정면으로 맞섰으며 료도 상훈을

 

버린채 동팔의 허리를 잡고 매달렸다.

 

지용도 키가 크고 마른 편이지만 운동으로 인해 잘 다져진 체구였다.

 

하지만 집채만한 동팔의 힘에는 역부족이였다.

 

그는 맹목적으로 살기를 품고 달려드는 동팔의 양손을 붙잡고 버텼지만 이미 칼날은

 

뺨을 스치고 날카로운 고통을 주며 파고들었다.

 

이대로 버티지 못한다면 그대로 얼굴을 관통당할터.

 

뺨으로부터 끈적한 액체가 볼을 간지럽히며 흘러내렸다.

 

 

 

 

 

 

"동팔씨! 제발 정신 차리세요!"

 

"이 자식! 마스터 H! 내가 죽여버리겠어!"

 

"미쳤어요? 빨리 그손 놔요! 지용씨를 죽일 셈이에요?"

 

"너 나를 죽일꺼지? 그러니 내가 먼저 죽여주겠다구! 으하하하!"

 

"지용씨! 괜찮아요?"

 

"료씨! 뒤를 봐요!"

 

 

 

 

 

 

지용이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료는 문뜩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의 뒤에선 여전히 등을 구부린채 자신을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고있는 상훈이 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웃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공포가 느껴졌다.

 

 

 

 

 

 

"료씨! 내 가방 열면 MP3 있어요. 플레이 버튼 누르고 이어폰 음량 최대로 열고 상훈씨 귀에 들려줘요!"

 

"하지만 지용씨는요!"

 

"저 힘빠지기 전에 어서요! 상훈씨마저 덤벼들면 큰일.. 윽!"

 

 

 

 

 

 

지용이 또 한군데를 다쳤는지 나지막한 비명을 질렀다.

 

료는 그의 비명을 듣고는 망설임 없이 가방을 향해 뛰어갔다.

 

상훈은 여전히 미소를 띄우며 한발한발 걸어 오고 있었다.

 

긴장한 료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지용씨! 플레이 안되요!"

 

"그..그럴리가요!"

 

"작동안해요! 어떻게 하죠?"

 

"아! 홀드! 홀드 걸려있어요! 푸세요!"

 

 

 

 

 

 

료는 침착하려 애쓰며 MP3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노래가 흘러나오자 이어폰의 음량을 최대로 올린다음 상훈에게 달려들어

 

귀에 억지로 이어폰을 꽂았다.

 

처음에는 상훈이 간지러운듯 고개를 흔들어서 애를 먹었지만 등 뒤로 돌아가서

 

억지로 쑤셔넣자 더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잠시 시끄러운 음악을 멍하니 감상하던 상훈은 어느 순간 정신이 들었는지 휘청하더니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2번 방문을 열고 토악질을 해댔다.

 

상훈이 돌아왔음을 확인한 료는 곧장 동팔에게로 달려들어 허리를 잡고 세게 끌어당겼다.

 

이미 지용은 얼굴에 여러개의 상처가 나있는 상태였고 동팔은 여전히 강한힘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료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허리를 잡을 손을 놓고 다리를 들어 있는 힘껏 동팔의 종아리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동팔이 한쪽 무릎을 꿇며 칼을 떨어뜨렸고 곧 분노의

 

눈은 지용을 벗어나 료를 향했다.

 

동팔이 괴성과 함께 마스터 H를 외치며 칼을 고쳐쥐자 지용은 그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찼다. 그의 발에 정확히 급소가 작렬되어지자 동팔은 컥-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거꾸러졌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손을 더듬어 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용은 서있는 자세 그대로 그의 등을 짓밟았다.

 

동료에게는 못할 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할것 같았다.

 

힘없이 방 한구석에 대자로 뻗어버린 동팔을 보며 지용은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료는 상훈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며 이어폰이 빠지지 않게 잡아주었고

 

대충 수습되자 두 사람은 4번방의 문을 열었다.

 

그 안은 붉은 피빛 조명의 암실같았다.

 

벽 한가득 사진들이 붙어있었지만 둘러본 결과 별다른 위험 요소가 없어보여

 

상훈을 들여보내고 쓰러진 승현과 순화를 안아올렸다.

 

그리고 동팔은 두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들수없다고 판단.

 

다리를 한쪽씩 나눠들고 질질 끌어 방안으로 옮겼다.

 

지용과 료는 방문을 완전히 닫고서야 안심한듯 벽에 기대어 쉴수 있었다.

 

그들은 가방속에 넣어온 미적지근한 물을 나눠마시며 숨을 돌렸고 한참을 기다리자

 

하나 둘씩 정신을 차렸다.

 

 

 

 

 

 

"형! 얼굴이 왜 이래요!"

 

 

 

 

 

 

승현은 깨어나자마자 지용을 찾아댔고 칼날에 스쳐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보자

 

이유를 묻기도 전에 굵은 눈물방울을 쏟아냈다.

 

 

 

 

 

 

"왜 울어? 죽은것도 아닌데.."

 

"얼굴 왜이래요? 아프지 않아요?"

 

"괜찮아.. 울지마.."

 

"누구 짓이에요? 함정에 걸린거에요?"

 

"이리와.."

 

 

 

 

 

 

승현은 피 맺힌 얼굴에 손대는것조차 두려워 만지지도 못하고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더니 지용이 팔을 뻗어 안아주자 급기야 서러운듯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을 유심있게 살펴보던 료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용씨. 제말 오해없이 들어 주세요."

 

"네. 말씀하세요."

 

"승현이와 지용씨 두사람.. 도대체 무슨 사이에요?"

 

"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까운 형 동생으로는 생각되어지지 않아요. 승현이 지용씨에게

 

보이는 눈빛도 그렇고 지용씨가 보이는 행동도 평범해 보이지 않아요. 마치 연인사이 같은.."

 

"맞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요."

 

"네?"

 

"료씨는 이해할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두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럼 산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인가요?"

 

"아닙니다. 감정을 느낀건 분명 산장으로 오기 전 차안에서 였지만 원래부터 알던 사이는 아닙니다."

 

 

 

 

 

 

지용이 승현의 눈물을 닦아주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자 료는 피식 웃으며 지용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턱을 올린채 조용히 말했다.

 

 

 

 

 

 

"이해 못할리가요..저도 그쪽이거든요.. 하지만 아쉽네요.. 저 아이는 저 역시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까요.."

 

"........................"

 

"분발합시다.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 정정당당히 페어플레이 하자구요.

 

그러니 그전에 죽지마세요. 지용씨."

 

 

 

 

 

 

료는 뭔가 의미있는 눈빛으로 웃어 보이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벽에 붙은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용은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투가 꼭 승현을 두고 내기를 하자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승현은 귓말의 내용도 모른채 겨우 울음을 그치고 지용의 품에 쓰러지듯 기대어

 

안겨있었고 상훈은 막 정신을 차린 순화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간단한 먹을 거리로 배를 채우자 동팔이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자신의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호소했다.

 

 

 

 

 

 

"아으윽! 왜 이래? 옆구리 아파 죽겠네..썅.."

 

"동팔씨. 시끄러워요! 동팔씨가 지용씨 죽일뻔한거 아세요?"

 

"그게 뭔 소리요?"

 

"눈 있으면 지용씨 얼굴을 좀 봐요. 동팔씨가 칼들고 덤비는 바람에 다친거잖아요!"

 

"정말요?"

 

 

 

 

 

 

료의 비난섞인 말을 들은 동팔은 피투성이가 된 지용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놀라

 

거구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정말 내가 이런 겁니까?"

 

"괜찮아요..제 정신으로 그런것도 아닌데요.."

 

"도대체 어떻게 된거요? 이해할수가 없네.."

 

"3번방에 강한 최면 효과를 일으키는 전파가 흐르고 있었어요. 청각에 예민한

 

동팔씨가 그 이유로 정신을 놓은거죠.. 신경쓰지 마세요."

 

"벌써 들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씁니까? 생각은 나지 않지만 정말 미안하게 됬습니다.. 지용씨.."

 

 

 

 

 

 

동팔은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의외의 모습에 지용도 화를 누그러뜨리고 미소로 답했다.

 

료는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을 쭉 훑어보더니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은 별 의미 없어보이네요. 같은 인물이 반복되어 찍혀있는

 

가족 사진이에요. 하지만 여기 집게로 집혀있는 6장의 사진이 좀 이상해요."

 

 

 

 

 

 

그의 말이 끝나자 상훈은 몸을 일으켜 앞으로 걸어나갔다.

 

5번 방을 연결하는 문앞에는 투명한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유리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같은 질감의 유리 액자가 걸려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액자 옆에는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던 승현은 조용히 사진을 집어들었다.

 

 

 

 

 

 

"사진을 시간의 흐름대로 순서에 맞게 액자에 넣는 것인가 보네요."

 

 

 

 

 

 

승현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모두의 귀에는 그럴듯한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사진은 6장. 순서를 무시하고 대충 내용은 이러했다.

 

 

 

 

 

 

1번째 사진. 7살에서 10살 사이로 추정되는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처럼 보이는

 

남녀가 다정히 쇼파에 앉아 찍은 사진. 탁자 위에는 케잌이 놓여져 있다.

 

2번째 사진. 아이가 케잌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3번째 사진. 창가에서 아이의 부모가 다정하게 어깨 동무를 하고 서있다.

 

4번째 사진. 아이가 엄마와 침대에서 자고 있다. 가장자리에 누군가의 손이 살짝 찍혀있다.

 

5번째 사진. 창가에서 내려다 보이는 밤 야경이 찍혀있다.

 

6번째 사진. 대낮 거리에서 케잌상자를 든 아빠와 아이가 즐거운듯 웃고 있다.

 

 

 

 

 

 

순화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이가 마음에 드는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요? 부모님은 평범한 외모인데 아이는 마치 인형같아요. 나도 이런

 

아이를 낳아야 할텐데.."

 

 

 

 

 

 

그녀가 삼천포로 빠져들며 생글거리자 상훈은 조용히 다가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원래 부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유전자라는 놈들이 워낙 변수가 심해서 간혹 다른 아이가

 

나오기도 해요. 아마 순화씨도 예쁜아이를 낳을수 있을껄요? 얼굴이 워낙 미인이니까요."

 

"어머! 정말요? 아.. 기쁘네요"

 

 

 

 

 

 

순화는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상훈의 말에 마냥 기분이좋았다.

 

하지만 상훈이 그녀를 보며 상대가 자신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아마 꿈에도 모를것이다.

 

그녀는 입이 마르도록 아이를 칭찬하며 말을 꺼냈다.

 

 

 

 

 

 

"이건 쉽네요. 아이 생일날 놀이공원에 다녀와서 파티를 한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처음이 엄마와 아이가 자고있는 아침이고 그 다음이 벽에 잔뜩 붙어있는

 

놀이공원 사진. 그 다음은..케잌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사진. 집에서 케잌을 꺼내들고

 

기뻐하는 사진! 그 다음이 탁자위에 케잌을 올려놓고 찍은 가족사진이구 다음이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 마지막이 자기전 찍은 야경 사진일거에요. 어때요?"

 

 

 

 

 

 

사람들이 조용히 수긍하는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며 사진을

 

집어들고 액자로 다가가 순서대로 사진을 넣었다.

 

유리 액자는 윗부분이 뚫여있어 쉽게 사진을 넣었다 뺐다 할수 있게끔 되어있었다.

 

그녀가 마지막 사진을 넣자 갑자기 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다란 유리벽이 스르르

 

움직이며 1M쯤 전진했다.

 

놀란 순화는 후다닥 뒷걸음질치며 외쳤다.

 

 

 

 

 

 

"어떻게해..틀렸나봐!"

 

"벽이 이동하네요? 영화도 아니고 원.."

 

 

 

 

 

 

상훈이 재빨리 그녀를 막아서고 앞으로 나섰다.

 

의기소침해진 순화는 말없이 벽에 기대어 앉았고 상훈은 안경을 손으로 밀어올리며

 

뚫어지게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제 생각에는 부모님 사진이 틀린것 같네요. 순화씨는 이 사진을 5번에 넣었잖아요?

 

하지만 보세요. 케잌을 꺼내며 웃고있는 3번 사진을 보면 옆으로 그림자가 져있죠?

 

거실에서 그림자가 졌다는건 실내에 불이 켜져있다는 뜻이에요. 쇼파에 앉아있는

 

가족사진을 봐도 확실히 불이 켜져있죠?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이들 사진을 보면 등 뒤로 창이 보이잖아요. 날이 밝은 것으로 보아

 

이건 낮에 찍은 사진이에요. 그러므로 이 사진이 3번이 되고 나머지 사진들이 하나씩 뒤로

 

밀려나야 된다는 말이죠."

 

"와~ 정말 그렇구나!"

 

 

 

 

 

 

상훈의 그럴듯한 추리에 힘이 난 순화는 다시 벌떡 일어나 사진의 순서를 바꿨다.

 

하지만 또 다시 유리벽이 움직이더니 큰 폭으로 전진했다.

 

거대한 벽이 전진하자 벽에 걸린 사진들도 우수수 떨어져내렸고 가구들이 드르륵거리며

 

밀려났다. 이에 동팔이 나섰다.

 

 

 

 

 

 

"혹시 낮과 밤이 바뀐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자고 있는게 시작이 아니라 케잌을 사들고

 

걸어오는게 시작인거죠. 그 다음에는 상훈씨의 말대로 창가에서 찍은 부모사진. 케잌을

 

들고 있는 아이사진. 다음엔 가족사진. 야경. 그리고 자고있는사진.. 이렇게요."

 

 

 

 

 

 

동팔이 자신의 말을 토대로 순서를 바꾸려고 하자 승현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어쩌면 우리가 케잌이라는것에 너무 집착하는지도 몰라요. 저 케잌이 꼭 사가지고

 

들어왔다고는 볼수 없잖아요? 집에서 엄마와 아이가 만들어서 기념사진을 찍은다음

 

자고 일어나서 다음날 케잌을 가지고 놀이공원에 놀러간걸수도 있어요."

 

"흠.. 듣고보니 그것도 말이 되네? 그럼 둘다 해보자."

 

"잠깐만요! 형! 천천히 더 생각해봐요!"

 

"자식..긴장하기는.. 좋아! 내가 특별히 네 의견을 먼저 실행시켜보지."

 

"그 말이 아닌데.."

 

 

 

 

 

 

동팔은 선심쓰듯 크게 웃으며 승현이 말한대로 사진의 순서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시 벽은 전진했으며 물건과 가구들이 밀려 난장판이 되었다.

 

이제 남은 공간이 얼마 없어서 잘못했다가는 끔찍한 3번 방으로 되돌아가야 할판이였다.

 

동팔은 은근슬쩍 짜증을 내며 있는 힘껏 유리를 찼지만 유리는 꿈쩍도 하지않고

 

오히려 발이 통증을 느끼며 튕겨져 나갔다.

 

그때 지용은 동팔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유리의 비친 그의 모습을 보더니

 

사진과 대조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무릎을 있는 힘껏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팔씨! 그렇게 친다구 깨지지 않아요. 방탄유리에요."

 

"제기랄!"

 

"화내지마세요. 동팔씨가 말한 순서가 정답이니까요."

 

"정말요?"

 

 

 

 

 

 

동팔은 발을 부여잡고 욕을 하던것도 잠시.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는 지용에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팔씨가 말한대로 케잌을 들고 걸어오는게 시작이에요. 놀이공원에서 돌아오는것이죠."

 

"와..살다살다 내가 별걸 다 맞추네."

 

"하하.. 하지만 기뻐하긴 일러요. 해석이 틀렸거든요."

 

"아무렴 어때요! 맞추면 장땡이지..그럼 정확한 해석을 말해주세요."

 

"네. 우선 놀이공원에 다녀온 가족이 케잌을 사들고 돌아오는것부터 시작되요.

 

그 다음에는 아까 상훈씨 말대로 낮에 찍은 부모의 사진이 두번째가 되죠.

 

아이가 기뻐하는것이 세번째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주목하세요. 벽에 걸려있던 놀이공원

 

사진들과 케잌을 꺼내는 사진까지는 공통점이 있어요. 뭔지 아시겠어요?"

 

"그야.. 가족사진이라는 점.."

 

"물론 가족사진입니다. 하지만 사진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저때까지는 세명의 가족들만

 

등장하고 있어요. 서로가 서로를 찍어주다보니 하나 또는 두명의 사람만 등장하는거죠.

 

하지만 가족사진부터는 한사람이 더 등장합니다."

 

"세사람이 모두 모여 사진을 찍었기 때문입니까? 그건 자동으로 카메라를 설정해놓으면

 

간단히 찍을수 있지 않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해서 아무생각없이 넘겼는데 확실히 이때부터 제 3자가 등장했습니다.

 

다음 야경사진을 보면 알수있을 것입니다."

 

"야경사진이 왜요? 그냥 사진인데.."

 

"아니에요. 자세히 보세요. 야경말고 창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보십시오."

 

"헉.."

 

 

 

 

 

 

지용의 말에 아무생각없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동팔은 외마디의 비명을 질렀다.

 

언뜻보면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의 형상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동팔은 눈을 비비고 힘을 주었다.

 

 

 

 

 

 

"조금전 유리를 차던 동팔씨가 유리벽에 비추어졌어요. 그래서 떠올린건데요..

 

창가에 분명 세 사람이 있습니다. 남자 둘은 서로의 멱살을 잡은것같고 긴머리의

 

여자는 옆모습이 찍혀있는것으로 보아 아마 그들을 말리고 있을겁니다. 그날밤

 

그곳에선 싸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니 가족 사진을 찍어준것이 제 3자였을

 

가능성이 생겨난거지요. 아이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내려다보다 우연히

 

찍게 된것 같아요."

 

"그럼 마지막 사진은.."

 

"네..보통 그런 싸움이 있은후에 태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마 드물겁니다.

 

사진 구석에 사람 손이 하나 나와있죠? 각도로 보아 사진을 찍은 사람의 손은 아닌듯 합니다.

 

사진속에서 엄마와 아이가 자고 있는데 만약 그 아이의 아버지라면 이런 사진을 찍지는

 

않았을거에요. 추측하건데.. 이 사진은 일가족 살해사건이 아닐가 싶습니다."

 

"그럼 사진옆에 팔은 죽은 아이의 아버지이고 사진을 찍은 사람은 범인이란 말인가요?"

 

"확실하진 않지만 제 예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지용이 말을 마치자 동팔은 어울리지 않는 어둡고 무거운 표정으로 사진의 순서를 바꿔넣었다.

 

그러자 유리벽이 덜컹- 하더니 천장으로 스스르 올라갔다.

 

그들은 5번째 방문을 앞에두고 모여들었지만 살인사건의 사진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순화는 사진속 아이 얼굴이 눈에 밟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방이군요.."

 

 

 

 

 

 

문 앞에는 여전히 녹색 화면이 반짝였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곳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문 손잡이를 거칠게 올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 중앙에는 또다른 방문 두개가 일렬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방문은 여지껏 거쳐온 차가운 쇠의 느낌이 아니라 따뜻한 느낌의 월넛빛의 나무문이였고

 

손잡이 또한 꽃이 세공된 동그란 금색이었다.

 

방문앞에는 큰 글씨로 채워진 종이가 붙어있었다.

 

문위에 나무로 새겨져 있는 액자의 타이틀은 삶과 죽음이었다.

 

왼쪽 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었다.

 

 

 

1. 비단 1kg을 얻기 위해서는 누에 6000마리가 필요하다.

 

2. 재채기를 너무 세게 하면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재채기를 참으려고 하면

 

목이나 머리에 있는 혈관이 터져 죽을 수도 있다. 또 재채기를 할때 억지로 눈을 뜨려고 하면

 

눈이 빠질 수 있다.

 


3. 사람은 평생동안 자면서 자신도 모르게 70여종의 벌레들과 10마리의 거미를 먹는다고 한다.

 

4. 고양이는 7층보다 10층에서 떨어졌을 때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

 

5. 파티가 잦은 미국에서는 독거미에 물려 죽을 확률보다 펑 튀는 샴페인 마개에 맞아 죽을

 

확률이 더 높다.

 

6.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양말을 신을 것이 아니라 모자를 써야 한다. 몸의 열기 중 80%가

 

머리를 통해서 빠진다.

 

7. 바닷물 속에 있는 염분은 육지를 150m 두깨로 덮을 양이 들어있다

 

 

 

 

 


오른쪽 문의 내용이다.

 

 

 

 

 

 

1. 흰수염고래 새끼는 한시간에 4.5kg 하루에 1백kg 한달에 3 ton씩 체중이 늘어난다.

 

2. 세계 인구의 50%가 넘는 사람들이 여태껏 한번도 전화를 받거나 걸어본 적이 없다.

 

3. 한 시간 동안 헤드폰을 끼고 있으면 자신의 귀에 있는 박테리아의 수가 무려 700배나 증가한다.

 

4.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는 'Happy birthday to you' 로 1936년 밀드레드와 패티힐이

 

작곡했는데 현재까지 로열티를 받는다.

 

5. 오리가 꽥꽥거리는 소리는 절대 메아리치지 않는다.

 

6. 사람이 8년7개월6일간 계속 소리를 지를 때 나오는 음파의 에너지를 이용하면 커피 한잔을

 

끓일 수 있다.

 

7.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에 비해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7.5배 높다.

 

 

 

 

 


"이거 완전 믿거나 말거나 같은 내용이네요?"

 

"그러니까 방을 잘 선택해서 들어가면 정답방이 있는 삶의 통로이고 잘못 들어가면 죽음의 방이라

 

이말이죠? 한번 들여다 볼까요?"

 

"순화씨는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몰라요? 마스터 H가 두번의 기회를 줄리 없잖아요."

 

"하긴.."

 

"문제가 아리송하네요. 다 정답같기도 하고 다 오답같기도 해요. 이건 다수결로 선택해보죠.

 

우선 저는 오른쪽 방이에요."

 

 

 

 

 

 

료가 오른쪽으로 다가서자 동팔이 은근슬쩍 그를 따라 묻어갔다.

 

지용은 망설임없이 왼쪽으로 다가섰고 승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화는 눈치를 보다 자신이 아는 문제가 더 많은 오른쪽을 선택했다.

 

남은 사람은 상훈뿐이었다. 료는 상훈을 재촉했다.

 

 

 

 

 

 

"빨리빨리 정하고 여길 빠져나갑시다. 지겨워 죽겠어요."

 

 

 

 

 

 

그의 한숨섞인 푸념을 들은 상훈은 자신이 처음부터 생각한 왼쪽방의 문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동점이 되자 빠른 결정을 하기위해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결과는 지용과 승현을 제외한 4명의 선택으로 오른쪽 결정.

 

 

 

 

 

 

"내 생각에는 왼쪽이 맞는것 같은데.."

 

 

 

 

 

 

승현은 아쉽다는듯 중얼거렸지만 단체생활에서 무시할수 없는게 다수결아닌가.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없이 자신을 위로하는 지용의

 

미소에 힘을 내어 사람들을 따라 오른쪽 방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습하고 비좁은 복도였다.

 

거미줄을 걷어가며 한참을 걸어들어가자 어둠속에 푸른 화면을 빛내고 있는 컴퓨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어린 아이처럼 환호하며 서로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을때까지 알아낼수 있을까?

 

이곳은 삶의 방이 아니라 죽음의 방이라는 사실을..

 

왼쪽의 방으로 나갔다면 컴퓨터가 있는 어두운 방이 아니라 아무런 함정없이 바로

 

산밑으로 내려갈수 있는 산장의 유일한 탈출구인 지름길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 혼자 들어갈께요. 다들 여기에 계세요."

 

"승현아. 들어서자마자 카운트가 시작될거야. 긴장하지말고 잘해. 모르면 큰 소리로 질문하고.. 알겠지?"

 

"걱정마세요. 지용형."

 

 

 

 

 

 

승현은 모두의 기대와 걱정을 어깨에 가득 짊어진채 천천히 문도 없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붉은색의 체온 감지기가 그를 감지함과 동시에 벽에 걸려있는 전자 화면이 켜지며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심호흡을 하며 곧장 컴퓨터로 걸어들어간 승현은 문제 화면에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미처 형상화되지 못한 말은 허공을 맴돌았고 충격에 휩싸인 머리는 침묵했다.

 

화면에는..

 

죽은 진주를 포함한 7명의 사진이 나란히 올라와있었다.

 

 

 

 

 

 

*Mission = 사진속 인물 가운데 마스터 H 를 찾아 이름을 적어 넣으시오.

 

 

 

 

 

 

 

 

 

 

 

 

 

 

 

 

 

 

-six-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말도 안되.. 어떻게 이런 문제가..

 

 

 

 

 

 

카운트가 벌써 7분대로 떨어져 있었지만 승현은 다리에 족쇄라도 채워진것처럼 꼼짝없이 서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지용은 이상한 낌새를 채고 한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지만 발소리가 울려퍼지자 승현은 질색을 하며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아무도 들어오지 마세요! 방해되요!"

 

"이승현? 문제가 뭐길래 그래?"

 

"수학 문제에요.. 생각보다 복잡한.."

 

"그런데 왜 그래? 왜 그렇게 서 있어?"

 

"종이가 없잖아요.. 암산 중이에요.. 그러니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래. 알았다."

 

 

 

 

 

 

지용은 승현의 반응이 못내 미더웠지만 그가 날카롭게 반응하자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넓은 방안을 진동하는 목소리가 공기중에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는건 알고 있었다.

 

 

 

 

 

 

-이 문제를 말 할수 없어.. 만약 모두에게 말했다가는 큰 혼란을 초래할거야..

 

-어쩜 좋지?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이마에 식은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남은 시간은 어느덧 5분 남짓..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승현은 못견딜만한 고통이 느껴질때까지 아랫 입술을 꼭 깨물고는 천천히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8번방에 있던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정답자의 이름과 정답을 적을수 있는 빈 공간이 있었다.

 

구석에는 작은 글씨로 친절히 설명까지 되어 있었다.

 

 

 

 

 

 

*답을 입력할수 있는 기회는 세번*

 

세번 안에 답을 맞추지 못하거나 시간이 초과 될 경우 컴퓨터는 자동 종료 됩니다.

 

 

 

 

 

 

7 명 가운데 도대체 누구의 이름을 써 넣어야 한단 말인가..

 

승현은 빠르게 눈을 굴려 화면 속에 사진을 훑어보았다.

 

 

 

 

 

 

-이상해.. 죽은 진주 누나까지 명단에 올라있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해..

 

-하지만 정말 답이 있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어..

 

-우리 중에 마스터 H가 존재 한다는것.. 혹시 서로 불신을 하게끔 유도 하려는게 아닐까?

 

 

 

 

 

 

기회는 단 세번.

 

승현은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자세를 바꿀때마다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가 무서워하는건 정답을 맞추지 못하는것이 아니다.

 

정말 일행중에 마스터 H가 있다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엄습 해오고 있어서다.

 

그는 들리지도 않는 초침 소리에 괴로워하며 귀를 막은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은 손을 모으거나 서로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 잡으며 승현의 행동을 주시했다.

 

 

 

 

 

 

-해보자.. 이런 기분으로 포기하면 내가 먼저 미쳐 버릴지도 몰라.. 잘 생각하자.. 기억을 되돌려..

 

 

 

 

 

 

승현은 천천히 키보드에 손을 가져갔다.

 

3분 이하로 시간이 떨어지자 30초 간격을 두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우선 죽은 진주는 제외. 자신은 당연히 제외.

 

5분의 3 .. 운만 좋다면 60%의 확률을 잡을수 있을 터..

 

 

 

 

 

 

"승현아! 문제 풀었으면 어서 답을 적어! 3분도 안남았어!"

 

 

 

 

 

 

우선 처음 답은 저 목소리의 주인공.

 

자신이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람.. 권지용..

 

아닐꺼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

 

 

 

 

 

 

정답자 이름 : 이승현

 

정답 : 정 지용

 

 

[Enter]

 

 

 

 

 

 

-Not Clear-

 

 

 

 

 

 

눈에 핏줄이 불거져 붉게 물들만큼 화면에 집중하자 지용은 오답으로 판명되었다.

 

승현은 한번의 기회를 잃었다는 실망 보다는 기쁨에 안도했다.

 

두번째 답의 주인공은 그가 첫날부터 가장 많은 의혹을 품었던 료였다.

 

 

 

 

 

 

정답자 이름 : 이승현

 

정답 : 니시키도 료

 

 

[Enter]

 

 

 

 

 

 

-Not Clear-

 

 

 

 

 

 

료 역시 오답이었다.

 

두번째까지는 동료들이 오답이라는 사실에 기뻐했던 그였지만 막상 마지막 기회와 맞닥들이자

 

승현은 심각하게 고민 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은 사람은 순화. 동팔. 상훈. 세 사람.

 

뇌가 명령을 내린것 같지도 않은데 그의 사고는 벌써 다른 가능성에 몰입하고 있었다.

 

 

 

 

 

 

-순화 누나는 유일한 여성이다. 만약 그녀가 H 라면 남자들 사이에서 간섭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가장 큰 이점으로 작용하겠지? 씻을때도 혼자. 잠잘때도 절대 남자들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녀가 답이라면 자신 외의 유일한 여성인 진주 누나를 살해한건 그 이점을 활용하기 위한 수단.

 

-동팔형이 H 라면.. 엉뚱할 만큼 돌발적인 행동과 다혈질의 성격은 모두 가면이 된다.

 

-모두가 생각하는 H는 목숨을 벌레보다 못하게 여기는 잔인한 사람이니..

 

-만약 그가 조커라면 그야말로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수 없다.

 

-상훈형은.. 어떻게 보면 가장 H 와 가까운 사람이다.

 

-그의 지식은 오랜 시간 습득한 노력의 결정체처럼 구체적이고 정확해.

 

-하지만 감춰진 이면은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승현은 울고 싶어졌다.

 

의심이 깊어질수록 모두가 H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승현은 다 포기하고 '없다' 라는 답을 써볼까 하는 생각 마저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1분의 경고음이 잘 갈려진 칼날처럼 귓구멍을 후비듯 파고들자 그의 손은

 

반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정답자 이름 : 이승현

 

정답 : 최 순화

 

 

 

 

 

 

막상 엔터를 누르자니 심한 갈등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10개의 눈동자가 뒷머리를 따갑게 후려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승현은 고개를 돌려 순화를 한번 바라보고는 그녀의 이름을 지우고 대신 상훈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그리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눈을 질끈 감고 키보드가 부서질 정도로 세게 엔터를 눌렀다.

 

 

 

 

 

 

팍-

 

 

 

 

 

 

순간 눈 앞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컴퓨터가 동작을 멈춰버렸다.

 

눈을 감느라 답을 확인하지도 못한채로 말이다.

 

컴퓨터는 정확한 절차를 밟고 윈도우를 종료하는게 아닌듯 했다.

 

정전이 난것처럼 일부러 손을 대어 조작하는것 같은 강제 종료였다.

 

모든 전기가 꺼진듯 방 안이 어두워지자 승현은 손을 더듬거리며 서둘러 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가 나온지 몇초 지나지 않자 입구에 두꺼운 철로 짜여진 셔터가 내려졌다.

 

 

 

 

 

 

"승현아! 어떻게 되었니? 맞췄어?"

 

 

 

 

 

 

순화가 손을 잡으며 급하게 물었지만 승현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입력과 동시에 컴퓨터가 꺼졌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하지만 그때 친절하게도 그의 대답을 대신 할만한 목소리가 복도 가득 울려 퍼졌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름끼치는 기계음이었다.

 

 

 

 

 

 

 

"축하합니다. 정답을 맞추셨군요. 이제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 산장으로 가십시오."

 

 

 

 

 

 

정답이라는 음성이 들려오자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환호했다.

 

하지만 승현에게는 형용할수 없는 엄청난 공포이며 전율이었다.

 

그 말은 곧 상훈이 마스터 H 라는 말이 아닌가.

 

말문이 막힌채 얼어 붙어있는 승현에게 다가간 상훈이 잘했다고 칭찬하며 어깨에 손을 올리자

 

순간적으로 어때가 움찔하며 그를 피해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상훈은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승현에게는 그 웃음조차 가식으로 느껴졌다.

 

 

 

 

 

 

-어쩌지?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지용 형에게는 말을 해줘야 하나?

 

 

 

 

 

 

승현이 상훈을 경계하자 지용은 가만히 승현의 표정을 살피더니 그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사람들이 어서 돌아가자고 재촉하자 뭔가 귓속말을 하려고 했던 지용은 귓속말 대신 볼을 쓰다듬어

 

주며 어깨동무를 하고 승현을 데리고 나갔다.

 

긴 복도를 빠져나가 문을 열자 그 방은 여전히 두개의 문이 있는 텅 빈 공간이었다.

 

모두들 다른 함정이 있는것은 아닌가 신경을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걸어나갔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믿거나 말거나를 연상시키던 문제가 적혀있던 종이도 이미 떼어져 있었다.

 

승현은 아무래도 왼쪽문이 마음에 걸려 살짝 열어보고자 했지만 역시 기회는 한번뿐인지 굳게

 

잠겨있었다. 그가 문앞에서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을때 료가 다음 방으로 연결된 문 앞에 서서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방문이 잠겨있어요. 올때 처럼 열리지 않아요."

 

"앗! 어쩌지? 정답방에 성경책 두고 왔는데.. 누가 저와 같이 가주세요. 무서워서 혼자 못가겠어요."

 

"순화씨. 어짜피 그 방으로는 못돌아가요. 이미 폐쇠 되었잖아요."

 

"아..맞다.. 그럼 어째요! 성경책 없는데.."

 

"울것같은 표정 하지 말아요. 이제 성경책은 필요 없는것 같아요. 성경 구절도 적혀있지 않구요.

 

화면을 보세요. 문제가 바뀌었죠? 액정도 더 커졌어요. 글을 화면에 직접 입력할수 있는 전자 펜도

 

달려있어요. 방은 같지만 함정의 내용은 바뀐거에요."

 

 

 

 

 

 

료의 말대로 순화는 문 옆에 달려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전과는 다른 기계인듯 액정이 훨씬 컸고 옆에는 초인종 같은 녹색 버튼이 하나 달려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위험할까봐 일부러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었지만 순화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해석했는지 검지를 들어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귀를 귀울였다.

 

분명 음악이었지만 소음이라고 표현해야 어울릴만큼 정신 없고 요란스러웠다.

 

상훈은 귀를 양손으로 막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노래가 여러곡 섞여 있어요. 제대로 소음이군요?"

 

"정말 그러네요? 자세히 들어보니까 아는 곡도 들려요."

 

 

 

 

 

 

순화는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했다. 그러자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음표들이 하나로 집중되는가

 

싶더니 그 음악중 자신이 아는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타이타닉 주제가가 들려요! 셀린 디온이 부른 노래있잖아요. 배 위에서 양팔을 벌릴때 나오는 음악!"

 

 

 

 

 

 

순화는 신기한듯 허밍으로 음을 따라부르더니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1부터 7까지 정답을 써 넣을수 있는 칸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 노래가 7 가지 인가봐요. 그 노래를 찾아 제목을 써넣으면 문이 열리는거구요."

 

"아..."

 

"근데 타이타닉 주제가 제목이 뭐죠? 전 가수밖에 모르겠어요."

 

"가수는 셀린 디온. 제목은 'My Heart Will Go On' 이에요."

 

 

 

 

 

 

승현은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보이며 전자 펜을 들었다.

 

하지만 혹시나 노래에도 순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답을 적지 않고 망설였다.

 

그러자 상훈이 엄지와 중지를 마주쳐 딱- 소리를 내며 급히 팬을 빼앗아 들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도 있어요. 집중하니까 정말 하나씩 들리는군요?"

 

 

 

 

 

 

펜을 빼앗긴 승현은 기분 나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훈은 승현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듯 서둘러 정답 화면 1번에 월광이라고 써 넣었다.

 

 

 

 

 

 

타악-

 

 

 

 

 

"윽...!!"

 

"지용씨!!"

 

"형!!"

 

 

 

 

 

 

그가 화면에 월광이라고 써 넣자 마자 벽 어딘가에서 휙-하고 뭔가 날아들더니 지용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문에 박혀버렸다.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지용에게 다가가니 다행히 관통 당하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찢어져

 

금새 흰 옷이 끈적한 피로 붉게 물들었다.

 

료는 의사 지망생이라 그런지 서둘러 지혈을 하며 자신의 상의를 벗어 이빨로 찢은 다음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어깨를 감싸기 시작했다.

 

지용은 고통이 심한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지만 결코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승현은 그의 상태를 보고는 상훈을 향해 무섭게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 답을 적으면 어떻게 해요! 전 답을 몰라서 안적은줄 아세요? 혹시 노래에 순서라도 있을까

 

망설였던 거라구요!"

 

"미안해.. 미안합니다 지용씨.. 저는 그저 아는 노래가 나와서 기쁜 마음에.."

 

"승현아. 상훈씨 너무 몰아세우지마. 월광 소나타는 내 귀에도 들렸어. 네 말대로 노래에 순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훈씨는 잘 해보려고 한 일이잖아. 진정해."

 

 

 

 

 

 

료는 어깨에 두른 옷의 매듭을 단단히 조여 매며 승현을 진정시켰다.

 

지용은 문옆에 벽에 기댄채 숨을 고르고 있었고 승현은 그와 마주보고 앉아 이마에 땀을 닦아주었다.

 

문에 박힌 물체를 뽑아 확인해보니 바람개비처럼 4면이 칼날로 되어있는 작은 표창이었다.

 

그들이 소란을 피우는 사이 음악은 끝났는지 멈춰있었고 순화는 다시 한번 녹색 버튼을 꾹- 눌렀다.

 

 

 

 

 

 

"우선 노래가 들리는 대로 기억해뒀다가 끝나면 상의해보죠."

 

 

 

 

 

 

동팔은 왠일로 얌전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며 음악에 집중했다.

 

음악의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각각의 노래가 클라이막스를 맞으며 더욱 복잡해졌지만 그래도

 

여러가지의 노래를 구분 해낼수 있었다.

 

음악이 다시 멈추자 순화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제가 아까 말했다시피 타이타닉 OST가 있구요.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도 들렸어요..그 영화가.."

 

"순화씨! 저도 그 노래 들었어요. 영화 보디가드 OST 말씀하시는거죠? 왠 다이아~ 라고 하는"

 

"쿡쿡.. 맞아요. 어렸을때 많이 따라 했었잖아요. 왠 다이아~ 하구요. 알고보니 And I 였지만요."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동팔과 순화는 서로 일치하는 의견에 배를 잡고 킥킥거렸다.

 

그러자 상훈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저는 아무리 들어도 '월광 소나타' 만 들리네요. 청음이 약해서 그런지 다른 노래는 통 모르겠어요."

 

 

 

 

 

 

-당신.. 정말 가식적으로 보여.. 그런 표정 짓지마.

 

 

 

 

 

 

승현은 속으로 상훈을 비웃으며 말을 꺼냈다. 시간이 갈수록 상훈의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전 다른 노래를 하나 듣기는 했는데요.. 오페라 곡 있잖아요. '날 울게하소서' 였던가?"

 

"그냥 '울게 하소서' 야. 헨델의 곡이지."

 

"형! 말하지 말아요. 피가 자꾸 새어 나오잖아요."

 

"괜찮아. 그리고 한곡 더 있어. 탱고 음악으로 유명한거 있지? '여인의 향기' 였던가?"

 

"아! 그 노래 알아요."

 

 

 

 

 

 

대충 다섯곡 정도가 밝혀진듯 했다.

 

하지만 정확한 노래 제목을 몰라 다들 난감해하고 있자 지용이 직접 몸을 일으켜 펜을 집어들었다.

 

 

 

 

 

 

"어짜피 답을 써넣어서 찾아내야해요. 시간도 없는데 표창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순 없어요."

 

"하지만 지용씨.."

 

"분명 표창은 문을 향해서 날아들게끔 설치되어 있을거에요. 사람이 직접 날리지 않는 이상 그 방법

 

밖에는 없어요. 만약 모두가 그것을 알고 피한다 하더라도 답을 입력하는 사람은 표창에 맞을테니까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잠시 옆으로 피해 계세요."

 

"지용씨는 어쩌구요? 상처가 심해서 또 맞았다가는 큰일 난다구요!"

 

"답을 쓰자마자 피할거에요. 등 뒤에서 맞는 표창에 목숨을 잃지는 않을거구요."

 

 

 

 

 

 

승현과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지용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지용에게는 절대 꺾지 못할 고집 같은게 있었다.

 

사람들은 한참동안 지용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두손두발 다 들고 벽으로 물러나 있었다.

 

 

 

 

 

 

"'월광' 은 우선 오답으로 나왔으니까 제외하구요 '보디가드' 주제가는 아무도 제목을 알지 못해요.

 

그러니 '타이타닉' 주제가와 '울게하소서' 그리고 '여인의 향기' 를 차례대로 써 넣어 볼게요."

 

"형.. 조심해요.. 제발.."

 

"그래. 승현아."

 

 

 

 

 

 

지용은 마음을 가다듬고 펜을 들어 타이타닉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 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타악-

 

 

 

 

 

 

그가 마지막 스펠링을 쓰고 바로 몸을 숙이자 번개같이 날아든 표창은 문 한가운데로 정확히 박혔다.

 

그대로 맞았으면 척추를 파고 들었으리라.

 

지용은 몸을 일으켜 다시 '울게 하소서' 라는 답을 써넣고 옆으로 몸을 피하자 또 다시 날아든 표창은

 

그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벽으로 곤두박질 쳤다.

 

지용의 말대로 표창은 문을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며 랜덤하게 쏘아지고 있는듯 했다.

 

 

 

 

 

 

"형! 위험해요. 그만 하면 안되요?"

 

"이상해.. 아무것도 답이 들어맞지 않아..한글자도 틀리지 않았는데 답이 없어."

 

"그만해요.. 못보겠단말에요!"

 

"알겠어. 승현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고.."

 

 

 

 

 

 

그의 고집을 누가 막을쏜가.

 

지용은 여전한 통증히 느껴지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더니 힘겹게 답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민첩한 그라도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계속 몸을 굴리기는 힘들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답란에 '여인의 향기' 라고 써넣었다.

 

 

 

 

 

 

삐..삐삐삐-

 

 

 

 

 

 

지용은 답을 써 넣자마자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계속해서 날아들던 은빛 물체 대신 기계가 작은 소리를

 

내며 깜박이고 있었다. 처음 듣는 소리가 나자 모두들 화면 근처로 모여들었다.

 

 

 

 

 

 

"정답인가봐요! 오답일때는 입력한 답이 자동으로 사라졌는데 지금은 그대로 있죠? 표창도

 

날아들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동팔이 뛸듯이 기뻐하자 디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승현은 같이 기뻐하지 않았다. 말없이 또 무엇인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순화가 다시 음악을 듣기 위해 버튼으로 손을 가져가자 그제서야 승현은 순화의 손을 잡고

 

강한 힘으로 잡아당기며 말을 시작했다.

 

 

 

 

 

 

"승현아? 왜그래?"

 

"이제야 알았어요. 멍청하게.."

 

"뭘 알았다는 거야?"

 

"잘 들으세요. 누나가 들은 타이타닉 주제가는 저도 좋아하던 노래라 정확한 제목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정확히 스펠링을 입력 했음에도 오답으로 나왔죠. 울게 하소서도 마찬가지에요. 물론 원곡의

 

제목은 한글이 아니겠지만 번역하면 울게 하소서니 그것 역시 정답으로 인정되어야 해요."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제가 마음에 걸려 하던 여인의 향기 라는 답이 정답으로 확인되니 이제서야 확실히 알것같아요.

 

이 문제는 노래의 제목이 아니라 이 노래들이 OST로 삽입된 영화의 제목이에요."

 

"뭐?"

 

"생각해보세요. 탱고의 음악은 제목이 여인의 향기가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제목은 분명히 다를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여인의 향기라는 답이 맞아들었다는건 노래의 제목이

 

아니라 영화의 제목이라는 결론이 나오죠."

 

"와- 여인의 향기 생각난다. 알파치노가 여 주인공과 탱고를 추는 장면.. 정말 멋있었는데.."

 

"헤헷.. 저도 그 영화 봤어요. 정말 최고의 명장면 이죠."

 

"물론이지! 얼마나 멋졌다구~ 그럼 다른 답도?"

 

"네. 'My Heart Will Go On' 이 답이 아니라 '타이타닉' 이 답이 되는거에요. 아까 동팔형이랑

 

순화누나가 웃던 노래도 답이 '보디가드' 가 되는거죠."

 

 

 

 

 

 

승현은 정답을 확신한듯 재빨리 펜을 움켜쥐고 타이타닉과 보디가드를 써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계가 작게 소리를 내며 2번과 3번에 답이 새겨졌다.

 

지용은 승현에게 대견하다는듯한 미소를 보이더니 말을 꺼냈다.

 

 

 

 

 

 

"그럼 내가 말한 '울게 하소서' 가 삽입된 영화는 '파리넬리' 니까 한번 써넣어봐."

 

"H 가 영화 보는 안목은 있나봐요? 주옥같은 영화들만 쏙쏙 골라놓은것좀 보세요."

 

"파리넬리인지 모기넬리인지는 뭡니까? 지용씨?"

 

"카스트라토에 대한 일생을 담은 영화에요. 주인공이 부른 '울게 하소서' 는 정말 최고죠."

 

"카스트라토가 뭐지?"

 

 

 

 

 

 

동팔이 처음 듣는 낯선 단어에 의문을 갖자 승현은 왠일로 그에게 친절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카스트라토(castrato)' 란 거세된 남성 가수를 뜻해요."

 

"헉.. 뭐라구?"

 

"16 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던 건데요. 그 당시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는것을 천하게 여겼던 교회에서

 

그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남성들에게 행했던 방법이에요. 여성의 소프라노와 같은 음역을

 

갖기 위해서 변성기 이전에 거세를 하면 성대의 순(脣)이 자라지 않아서 소년 목소리는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가슴과 허파는 계속 성장하여 어른의 힘을 지니기 때문에 맑고 힘있는 목소리를 낼수 있어요.

 

18 세기에 가장 흥했했고 대표적인 카스트라토가 '파리넬리' 나 '카파렐리' 같은 인물이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거세를.."

 

"'울게 하소서' 라는 곡을 지은 것은 헨델이에요. 그는 카스트라토를 위해서 여러 곡을 만들었어요.

 

남성의 신체적 장점에 소년의 맑은 목소리의 결합은 많은 성악적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의 아이돌 만큼이나 사랑을 받았었죠. 결국 20세기 교황청에 의해 공식 폐지 되었지만요.

 

지금은 카스트라토 대신 특별 발성 훈련을 받은 카운터 테너들만 존재해요. 실제로도 파리넬리 라는

 

영화를 만들때 그의 목소리를 도저히 재연해 낼수가 없어서 여성 소프라노와 남성 테너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만들었다고 해요. 지금도 생각나지만 영화속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는 정말 환상적이죠."

 

 

 

 

 

 

승현은 영화의 장면을 상상하며 씨익 웃더니 화면에 '파리넬리' 라고 써넣었다.

 

그의 예상대로 역시 답이 맞았다.

 

동팔은 상훈이 했던 월광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상훈씨가 월광 소나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나요? 그 노래의 영화는 뭐죠?"

 

"영화 폰(Phone) 이요. 하지원이 나왔던 국내 영화 있잖아요. 그곳에 등장하는 핸드폰의 벨소리가

 

월광 소나타 였어요."

 

"아.. 그렇군요?"

 

 

 

 

 

 

동팔은 상훈의 말에 펜을 집어들고 자신있게 화면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승현은 상훈의 말에 반박한다는듯 큰 소리를 질러 동팔의 행동을 저지했다.

 

 

 

 

 

 

"상훈형은 왜 폰이라는 답을 알려주세요?"

 

"응?"

 

"일부러 그러는거 아닌가요?"

 

"일부러..라니?"

 

"지금 나온 영화들을 보세요. 전부 작품성을 인정받은 최고의 영화라구요. 그 사이에 우리나라 공포

 

영화가 끼어있을리 없잖아요! H 의 문제에는 언제나 연관성이 있었던거 모르시나요?"

 

"왜 그래? 오늘따라 너 이상하다? 나는 월광이 삽입된 영화가 폰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

 

"동팔형. 답을 적지 마세요. 폰은 답이 아니에요."

 

"그럼 뭔데?"

 

"답은 '불멸의 연인' 이에요. 그 유명한 영화를 두고 폰을 말해주다니.. 이상한건 형 아닌가요?"

 

"이승현!"

 

 

 

 

 

 

상훈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날을 세우는 승현의 태도에 더 이상 참을수 없었던지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중간에 끼어 난감했던 동팔은 그들을 다독거리며 순화에게 영화에 대해 물었다.

 

왠일로 계속 얌전한 태도를 보이는 동팔은 진정제를 복용한 한마리의 곰 같았다.

 

아마도 지용에게 칼을 들이댔던 일이 원인인듯.

 

순화는 불멸의 연인 이라는 말을 듣자 반가운듯 자신있게 설명해주었다.

 

 

 

 

 

 

"영화 '불멸의 연인' 은 베토벤에 대한 영화에요. 월광 소나타를 작곡한 음악가이기도 하죠.

 

베토벤이 임종 당시 자신의 전 재산을 자신의 불멸의 연인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했어요. 그의 일생에는

 

세명의 여인이 있었거든요. 아직까지 그 불멸의 연인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 영화에서는 베토벤의

 

동생의 아내이자 베토벤의 연인인 요한나를 불멸의 연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아이고.. 무슨 이야기인지 통 모르겠군요.."

 

"어머! 제 설명이 너무 정신 없었나요? 후후.. 하지만 영화속에서 베토벤이 월광을 피아노로 연주하던

 

장면은 정말 멋졌어요. 청력이 약해지기 시작해서 잘 들리지 않을 때였거든요. 피아노에 귀를 대고

 

희미한 음과 진동을 느끼며 연주하던 베토벤.. 너무 멋져.. 영화 다시 보고싶다."

 

 

 

 

 

 

순화가 황홀한 표정을 짓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자 동팔은 썩은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고는 화면에

 

불멸의 연인이라는 답을 써넣었다. 역시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들은 다시 버튼을 눌러서 음악을 들었고 어렵사리 'Shape Of My Heart' 라는 노래를 발견했다.

 

또 다시 순화는 그 노래에 감탄했다.

 

 

 

 

 

 

"와- 영화 레옹의 주제가! 마틸다 너무 예뻤어."

 

 

 

 

 

 

노래의 제목을 하나하나 알아갈때마다 감탄을 반복하던 순화는 버려둔채 동팔은 레옹이라는 답을

 

써넣었다. 이제 남은 답은 단 하나..

 

벌써 3번이나 반복해서 들은것 같은데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숨겨진 마지막 노래는 다른곡에 비해 굉장히 소리가 작았다.

 

벌써 시간은 오후 7시였다.

 

 

 

 

 

 

"마지막 노래가 사람 열받게 하네!"

 

 

 

 

 

 

동팔은 급기야 자신의 귀를 때려가며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섞인 노래들이 일제히 간주부분으로 들어갔을때 희미하게 들려오는 7번째 노래를 집어내자

 

그는 거구를 흔들어 대며 팔짝팔짝 뛰었다.

 

 

 

 

 

 

"아하하- 알아냈다. 로미오와 줄리엣!"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마지막 답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Kissing You' 였다.

 

워낙에 잔잔한 노래라 들리지 않았던게 당연한듯.

 

7개의 정답이 모두 일치하자 문은 철컥-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곳은 처음 오던 길에 사진과 씨름했던 붉은 조명의 암실. 지금도 여전히 내부의 구조는 같았다.

 

그들은 깨끗하게 치워진 사진과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입구가 철컥- 하고 잠기더니 천장에서 앞 뒤로 동시에 유리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뭐여? 이번엔 앞 뒤에서 누르겠다는거야? 우리가 폐차장에 자동차야 뭐야!"

 

 

 

 

 

 

동팔이 신경질을 내며 줄에 걸려있는 사진을 집어들었다.

 

여전히 6장의 사진이었다. 하지만 사진의 내용은 달랐다.

 

방식은 같은지 3번방 입구쪽 유리에 붙어있는 유리 액자도 그대로였다.

 

사진에는 개구리 - 카멜레온 - 병아리 - 뱀 - 무당벌레 - 제비꽃 이 찍혀져 있었다.

 

 

 

 

 

 

"이젠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일세? 자연의 신비인가?"

 

 

 

 

 

 

동팔이 사진을 바닥으로 던져버리자 료는 동팔의 팔뚝을 꼬집으며 사진을 다시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있게 말했다.

 

 

 

 

 

 

"이런 사진이 있을때는 한가지 밖에 더있어요? 먹이 사슬이죠."

 

"아!"

 

"더 이상 뭘 생각할수 있겠어요. 초등학교 실험관찰도 아니구."

 

"이번건 쉽네? 순서가 제비꽃 - 무당벌레 - 개구리 - 병아리 - 카멜레온 - 뱀 이죠?"

 

"이 뱀은 뭐지?"

 

 

 

 

 

 

료는 뱀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주황색 바탕에 드문드문 가로로 검은색과 흰색의 얇은줄이

 

있는 가느다란 몸을 가진 뱀이었다.

 

그러자 승현이 사진을 받아들어 쳐다보더니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했다.

 

 

 

 

 

 

"이건 '넬슨 밀크 뱀' 이에요. 색소 부족으로 온 몸이 주황색을 띄고 있죠. 행동이 민첩하지만 활동성이

 

떨어져 작은 들쥐나 벌레들을 먹고 살아요."

 

"승현이 너는 어째 그렇게 모르는게 없지?"

 

"뭐.. 여러가지 방면으로 관심이 많아서 그렇죠. 공부도 꾸준히 하는 편이구요."

 

"흠.."

 

 

 

 

 

 

료가 승현을 바라보며 눈을 치켜뜨자 동팔은 그의 눈을 손으로 가린채 꽃뱀이라고 명칭을 바꿨다.

 

뭐.. 정확한 학명을 모르는 이상 화려한 뱀은 모두 꽃뱀이라 칭하니까.

 

그 사이 아무에게도 의견을 확인하지 않은채 동팔은 자신이 말한대로 사진을 들어 액자에 넣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유리벽이 움직이며 큰 폭으로 전진했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유리벽은 양쪽에서 그들을 압박해왔다. 한면에서 다가오는것보다 훨씬 큰 데미지.

 

상훈은 안경을 벗어 옷에 쓱쓱 문지르더니 조용히 말했다.

 

 

 

 

 

 

"동팔씨. 아무리 먹이 사슬이라고 해도 너무 이상한 순서 아닙니까?"

 

"이게 어때서요?"

 

"제비꽃은 식물이니까 제일 처음 온다고 쳐도 병아리가 개구리 뒤에 오는 이유는 뭡니까?"

 

"병아리는 나중에 커서 닭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닭이 몸이 부실할때 개구리를

 

잡아서 뒷다리를 말려 줬단 말입니다. 그러니 뒤에 오는게 당연한거 아닙니까?"

 

"하지만 자랐을때를 가정한다면 너무 억지 아닐까요?"

 

"그럼 상훈씨 의견은 뭔데요?"

 

"료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먹이 사슬이 아니에요. 개구리가 황소 개구리라고 가정할 경우에는

 

뱀까지 잡아먹는데 그렇게 되면 사슬이 엄청 꼬일것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무당벌레가 꽃을 먹고

 

산다고 생각할수도 없구요."

 

 

 

 

 

 

-또 딴지를 거는군? 그럼 어디 당신의 생각을 말해봐..

 

 

 

 

 

 

승현은 여전히 상훈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시선이 꽤나 따가웠는지 상훈은 승현을 한번 쳐다본뒤 무표정으로 말했다.

 

 

 

 

 

 

"무지개 인것 같습니다. 사진을 가만히 보면 몸 색깔이 빨- 주- 노 - 초 -파(남) -보 의 6가지

 

색을 띄고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그의 말은 그럴듯 했다.

 

제비꽃은 보라색. 무당 벌레는 빨간색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개구리는 초록색. 병아리는 노란색.

 

꽃뱀이라 칭했던 뱀의 몸 색은 분명 주황색이었다.

 

료는 그의 제안을 인정한다는듯 자신의 생각을 접어버리고는 사진을 바꿔넣기 시작했다.

 

무당벌레 - 뱀 - 병아리 - 개구리 - 제비꽃 - 카멜레온 순이었다.

 

그가 마지막 사진을 넣자마자 사방에서 우르릉- 소리가 진동하더니 유리벽은 멈추지 않고 다가와

 

그들의 몸을 양쪽에서 짖누르기 시작했다.

 

조여드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몸이 금방이라도 풍선처럼 터져 버릴것만 같았다.

 

 

 

 

 

 

"순서가 틀렸잖아요! 카멜레온하고 제비꽃의 순서가 바뀌어야해요. 카멜레온은 장소에 따라

 

몸 색깔을 변화하는 파충류이기 때문에 그것을 파랑 또는 남색으로 생각해야 한다구요."

 

"이런.. 미안해요.."

 

 

 

 

 

 

서있는 자세가 제 각각이라 압박 받는 위치도 달랐지만 제일 괴로운건 동팔이었다.

 

그의 큰 덩치가 양쪽 유리벽에 꽉 짖눌린채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자 괴로운듯 비명을 질러댔다.

 

모두 틈이 얼마 없어서 손도 올리지 못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다행이도 체구가 작은 순화와 승현이 동팔의 양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동팔의 몸이 끼어있는

 

틈 사이로 작은 공간을 확보할수 있었다.

 

순화는 팔을 뻗어 카멜레온의 사진을 꺼내들었고 승현은 제비꽃의 사진을 뺀후 서로 사진을 바꿔

 

액자에 끼워넣었다. 그러자 유리벽이 처음의 상태로 스스르- 뒤로 밀려나더니 천장위로 밀려 올라갔다.

 

동팔은 뼈가 부러진것 같다며 말도 안되는 호들갑을 떨었다.

 

승현은 상훈이 정답을 맞추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자 더욱 깊은 의심을 품었다.

 

차라리 답을 몰랐던게 위험하더라도 더 인간적으로 보였을것이다.

 

그는 결심을 한듯 지용의 옷자락을 잡아 당겨 귀에 입술을 바짝 붙힌후 은밀하게 속삭였다.

 

 

 

 

 

 

"형.. 제 말 잘 들으세요.. 상훈형을 조심하세요.."

 

"무슨 소리니?"

 

"자세한 이야기는 산장으로 돌아가서 할게요. 하지만 상훈형은 분명 마스터 H 와 민첩한 관련이 있어요.

 

그러니 저 형이 하는 말에 특별히 귀 기울이세요."

 

"네 말.. 이해가 안간다.."

 

"지금은 길게 말할수 없어요.. 아무튼 조심하세요."

 

 

 

 

 

 

승현이 그에게 의미있는 눈짓을 하며 물러나자 지용은 상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번도 그에게 의심을 가져본적이 없었는데 승현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오히려 그의 눈에는

 

승현이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선 이 지옥 같은곳을 빠져나가 산장으로 돌아가는게 우선이었기에 생각은 잠시 접어두었다.

 

다음방은 끔찍한 전파가 흘러나오던 3방의 문이었다.

 

지용이 문을 열고 료와 함께 진입하자 긴장한 나머지 사람들은 검지손가락으로 양쪽 귀를 꽉 틀어막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별 다른 점은 없었지만 오늘길에 벽에 붙어있던 10 자루의 칼 대신 10 자루의 총이 걸려있었다.

 

2번방으로 돌아가는 문은 여전히 잠겨있었고 사슬이 달린 자물쇠까지 달려있었다.

 

 

 

 

 

 

우드득-

 

 

 

 

 

 

그때 갑자기 천장에서 폭우같이 모래와 돌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들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이리저리 방황했다.

 

전파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자욱한 먼지를 날리며 떨어지는 모래에 이미 씻겨져 내린지

 

오래였다. 지용은 걸음을 옮기던 도중 어깨의 상처위로 돌이 떨어지자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동팔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재빨리 근처에 있는 총을 하나 집어들고 자물쇠를 향해서

 

쏘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려온 총성에 모두들 이성을 잃었다.

 

 

 

 

 

 

"동팔씨! 뭐하는거에요!"

 

"보면 몰라요? 자물쇠를 부숴야지 나가죠! 이대로 깔려 뒤지고 싶어요?"

 

 

 

 

 

 

어찌나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지 벌써 돌 섞인 모래는 허벅지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동팔은 총을 쥐고 군 시절 사격훈련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물쇠를 향해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썩 좋지 않은 사격실력이었지만 지금은 마음까지 불안한 상태인지라 작은 자물쇠가

 

쉽게 맞아주지 않았다. 총에 총알은 한발씩 장전되어 있는지 한번 발사되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동팔은 괴력을 발위해서 가득 쌓인 모래를 뚫고 총을 집어들어 계속 문을 향해 쏘았다.

 

근처로 다가가면 정확히 표적을 맞출수 있지만 만약 탄피가 문에 반동해 튕겨져 나온다면 더없이

 

위험하기 때문에 그는 멀찌감치 서서 한쪽눈을 감고 미친듯이 총을 쏘아댔다.

 

사람들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총성에 진저리가 쳐질만큼 귀가 울렸지만 물 밀듯 떨어져 내리는

 

이물질과 자욱한 연기때문에 격한 기침을 해가며 몸을 낮출수 밖에 없었다.

 

불행중 다행이 동팔이 8번째 사격으로 자물쇠를 맞췄고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앞 다투어 모래를

 

손으로 파해치며 필사적으로 2번방으로 빠져나갔다.

 

동팔은 믿음직스럽게 사람들을 모두 이동시키고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모래가 자꾸 문을 비집고 세어나와 닫기 어려웠지만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겨우 문을 닫고 2번방으로

 

들어선 그들은 온몸에 먼지를 털며 괴로워했다.

 

 

 

 

 

 

"아악! 너무해! 입속에 까지 모래가 들어갔어!"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동팔씨.. 온몸이 상처 투성이에요.. 괜찮아요?"

 

"아하하.. 저는 맷집이 무척 셉니다! 이깟걸로 쓰러질 사람이 아니죠!"

 

 

 

 

 

 

동팔 역시 온몸이 쑤시고 아파왔지만 모두가 무사한것에 큰 위안을 삼으며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처음으로 모두의 목숨을 구해줬던지라 나름대로 그에게 있어서는 의미가 컸다.

 

모두들 듬직했던 동팔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번방은 여전히 바닥이 없는 뻥 뚫린 공간이었으며 다시금 벌레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또 어떤 문제가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하며 벽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처음과는 달리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대신 맞은편 방문에 커다랗게 '기억력 테스트' 라고 씌여 있었다.

 

그들은 호흡이 원활해지고 기침이 멈추자 다들 조심스레 일어서서 뻥 뚫린 바닥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조용한 음악이 잠깐 흘러 나오더니 뒤 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1부터 40 까지의 숫자를 떠올리십시오. 7 - 16 - 21 - 6 - 8 - 27 - 11 - 15 - 39 순서대로 부르세요."

 

"뭐라구?"

 

 

 

 

 

 

순식간에 지나간 숫자를 기억하고 부르라는 말에 상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몇개의 숫자가 불리워졌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기억할수 있단 말인가?

 

그가 작은 소리로 기억나는 몇개의 숫자를 되새기자 승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승현 역시 느끼지 못했으리라.

 

그런 자신의 얼굴을 말없이 관찰하는 또 다른 두개의 눈이 있다는 사실을..

 

승현은 아무도 나서지 않고 망설이자 자신이 앞으로 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7 - 16 - 21 - 6 - 8 - 27 - 11 - 15 - 39 "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이 진동하며 전과 마찬가지로 50Cm 남짓 되는 폭의 바닥이 밀려올라왔다.

 

처음 미션 메모에 함정이 전환 된다기에 전혀 다른 방을 예상했었는데 방은 변하지 않고 함정의

 

내용이나 문제만 바뀌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숫자를 기억하는게 끝인가봐요. 함정의 규칙은 같은 모양이네요."

 

 

 

 

 


승현이 바닥에 먼저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자 사람들은 빠른 동작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잠시 대기하자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부터 40 까지의 숫자를 떠올리십시오. 13 - 35 - 1 - 19 - 4 - 21 - 33 - 22 - 17 순서대로 부르세요."

 

 

 

 

 

 

처음과는 달리 집중하고 듣자 생각보다 문제는 쉬워보였다.

 

그 만큼 이곳에는 지능이 좋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상훈이 숫자를 외워 답을 불렀다.

 

 

 

 

 

 

"13 - 35 - 1 - 19 - 4 - 21 - 33 - 22 - 17"

 

 

 

 

 

 

그의 목소리가 멈추자 또 다시 2번째 바닥이 밀려 올라왔다. 상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1부터 40 까지의 숫자를 떠올리십시오. 16 - (Red) 19 - 40 - (Red) 12 - 8 - 10 - 1 - (Red) 24 - 31

 

순서대로 부르세요."

 

"레드? 레드는 또 뭐야?"

 

 

 

 

 

 

도저히 답을 외울수 없었던 순화는 레드 라는 단어를 듣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했다.

 

누구 못지않게 기억력이 좋았던 료는 목소리에서 나온대로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답을 외쳤다

 

 

 

 

 

 

"16 - (Red) 19 - 40 - (Red) 12 - 8 - 10 - 1 - (Red) 24 - 31"

 

 

 

 

 

 

하지만 답이 정확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은 요란하게 진동하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고

 

또 다시 벌레와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화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러댔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바닥에 내려 앉자 승현은 료에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형 답이 정확했는데도 바닥이 내려앉은걸 보면 레드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겠죠?"

 

"아마도.. 그런것 같아.."

 

"갑자기 떠오른게 있는데요.. 이거.. 말이 안되려나?"

 

"뭔데?"

 

"제가 평소에 즐겨했던 '오디션' 이라는 온라인 게임이 있거든요? 음악을 듣고 화살표를 입력하면

 

그대로 케릭터가 춤을 추는거요."

 

"헉.. 너도 그 게임 알아?"

 

"형도 아세요?"

 

"그럼! 내가 그 게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와~ 그럼 설명하기 편하겠네요. 왜 찬스모드 있죠? Del 키를 누르면 화살표중 일부가 빨간색으로

 

표시되고 플레이어가 빨간색으로 표시된 화살표를 반대로 입력해야 하는것 말이에요."

 

"아.. 그러니까 네 말은.."

 

"네. 왜 갑자기 오디션이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레드라고 표시되어 있는 숫자는 반대로 불러야

 

하는것 아닐까요?"

 

"반대라면 대칭되는 숫자를 불러야 한다는거지?"

 

 

 

 

 

 

그들이 뭔가를 열심히 속삭이고 있을때 머리위로 다시 한번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번 내려가 버린 바닥은 키워드를 잃기 때문에 다음 문제를 맞춰야 올라갈수 있었다.

 

 

 

 

 

 

"1부터 40 까지의 숫자를 떠올리십시오. 33 - (Red) 6 - 37 - (Red) 19 - 25 - 4 - 27 - (Red) 22 - 11

 

순서대로 부르세요."

 

 

 

 

 

 

 

표로 1부터 40 까지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그러니까 1의 대칭되는 수는 40. 2에 대칭되는 수는 39 인것처럼 레드라고 표시된 수는 반대로

 

불러보는거죠. 한번 해볼까요?"

 

"그래. 해보자. 일리있다."

 

 

 

 

 

 

레드라고 표시된 숫자는 3개.

 

첫번째가 6 두번째가 19 세번째가 22 였다.

 

료와 승현은 어둠속에서 집중하며 머릿속으로 숫자를 떠올려 조합하기 시작했다.

 

6에 대칭되는 수는 35. 19에 대칭되는 수는 22. 22 는 19 가 되는 것이었다.

 

료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답을 외쳤다.

 

 

 

 

 

 

"33 - 35 - 37 - 22 - 25 - 4 - 27 - 19 - 11"

 

 

 

 

 

 

 

답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는지 그들이 서있던 2번 바닥과 함께 3번 바닥까지 동시에 올라왔다.

 

아무리 서로를 의심한다 해도 그들은 최고의 두뇌를 자랑하는 이들임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레드의 비밀을 알아버린 료와 승현과 상훈은 답을 외워

 

함정을 통과해내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밤 10시가 가까워져 있었고 허기와 피곤에 지친 순화와 동팔은 말없이 그들에게

 

묻어가고 있었으며 상처에서 심한 열이 나는 지용은 미간을 찌푸린채 바닥에 앉아있었다.

 

힘이 없고 상처가 쑤신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순간적인 기억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방은

 

세사람에게 맡기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빨리 돌아가 상처를 치료해야 할것 같았다.

 

6번째 바닥까지 무사히 건너오자 다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1부터 40 까지의 숫자를 떠올리십시오. 28 - (Yellow) 3 - 13 - (Red) 26 - 14 - 9 - 36 - (Yellow) 21 -

 

23 순서대로 부르세요."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7번째 바닥만 올라와준다면 다들 무사히 건너 뛰겠지만 또 한번의 예상을

 

깨고 엘로우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오자 다들 기운이 빠진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머리의 한계를 시험할 작정인가.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 그들은 그 자리에서 뛰어보려 했으나 착지하는 곳에 보폭이 워낙 좁아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대로 20분이라는 시간을 까먹자 눈을 감고 작게 신음하던 지용이 말을 꺼냈다.

 

 

 

 

 

 

"글자를 반전 시켜보세요."

 

"네? 여지껏 대칭되는 숫자를 넣었잖아요. 이번에는 레드가 아니라 엘로우라구요."

 

"제 말은 대칭이 아니라.. 반전입니다. 숫자의 앞 뒤를 바꿔보라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24 라면 42 가

 

되는 것 처럼 말이에요."

 

"아.."

 

"노랑색은 경고를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지만 반전을 의미하기도 해요. 한번 해보세요."

 

"네. 지용씨."

 

 

 

 

 

 

료는 순순히 그의 생각을 받아들여 머릿속으로 엘로우에 해당하는 숫자를 떠올렸다.

 

숫자는 두개. 3 하고 21. 그의 말대로 반전시키자면 3은 03으로 표시하여 30 이 되는것이고 21은

 

12 가 되는 것이다. 중간에 레드로 표시된 숫자 26는 대칭시켜 15로 표시.

 

료는 마지막 답이 맞길 간절하게 바라며 천천히 숫자를 외쳤다.

 

 

 

 

 

 

"28 - 30 - 13 - 15 - 14 - 9 - 36 - 12 - 23 "

 

 

 

 

 

 

그가 부른 9개의 숫자는 정확한 키워드로 작용해 7번째 바닥을 불러 일으켰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예감한 그들은 서둘러 폴짝 뛰어 건너갔다.

 

몸이 점점 둔해지던 지용이 하마트면 사이로 빠질 뻔했지만 다행히 먼저 건너간 동팔이 손을

 

잡아주는 바람에 무사할수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1번 방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멈추세요. 처음 모세의 기적을 본따 바닥이 갈라지던 방이에요. 제가 먼저 두드려 볼께요."

 

"아.. 또 멀리 뛰기는 아니겠죠? 이번에는 저 정말 못뛰어요. 전에는 발 돋움을 할수 있는 계단이

 

있었음에도 죽을 뻔했는데 지금은 그럴만한 여유도 없잖습니까..젠장.."

 

"안심하세요. 동팔씨. 다행히 바닥은 반응하지 않는것 같군요."

 

"그래요?"

 

 

 

 

 

 

처음 기억이 떠올랐는지 동팔은 어느때보다도 몸을 사렸지만 지용이 바닥을 확인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말해주자 동팔은 혹여나 또 다시 바닥이 열릴까 두려워 잽싸게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그곳은 이상할만큼 조용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함정 같은것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둘러보다 11시가 넘었음을 인식하고 다들 방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 문만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면 지긋지긋한 지하를 무사히 벗어날수 있으리라.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방문은 굳게 잠겨 있었으며 마지막을 알리는 화면의 글이 한줄 덩그라니

 

떠올라 깜박이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나가십시오. 고생하셨습니다*

 

 

 

 

 

 

방안에 열쇠가 있다는 말에 그들은 흩어져서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이라 숨길곳도 없었는데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벽에 찰싹 붙어서 손으로 훑어가며 빙빙 돌던 순화가 벽의 색과 같은 빛으로 위장 되어있는

 

열쇠를 발견하고 그것을 떼어다가 문을 열었다.

 

정말 이게 끝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쉽게 문이 열렸고 곰팡이가 피어있는 허름한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먼지 알레르기가 있다고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왔던 그녀도 새삼 계단이

 

반가웠는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남은 시간은 30분. 올라가서 시계문을 열고 산장으로 들어서면 지옥같던 하루를 마칠수 있다.

 

동팔은 계단으로 올라가 벽을 밀어 재꼈고 힘에 부친듯 낑낑 거리자 모두들 달라 붙어 그를 도왔다.

 

하지만 상훈은 뭔가를 발견한듯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밀면 열리겠어요! 상훈씨! 뭐해요! 어서 와서 도와주세요!"

 

 

 

 

 

 

순화는 꾸물거리는 상훈에게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는 그녀의 말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듯

 

오히려 방 반대편 구석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지?"

 

"상훈씨! 빨리 와요!"

 

"아악!!!!!!!!!!!!!!"

 

 

 

 

 

 

땀에 가득젖은 사람들의 등뒤로 날카로운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방안으로 가득 퍼지는

 

연기 사이로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상훈의 모습이 슬로우 영상처럼 눈을 스쳤다.

 

 

 

 

 

 

"상훈씨!!!!!!"

 

 

 

 

 

 

사람이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 대신 유리가 깨지는 듯한 맑은 소리가 났다.

 

상훈은 그들의 눈앞에서 조각처럼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믿을수 없는 장면에 순화는 그대로 기절했고 사람들은 할말을 잃은채 하얗게 질렸다.

 

 

 

 

 

 

"질소 가스...상훈 형은 급속으로 얼어버린 다음 깨진거야.."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채 유리처럼 부서진 상훈에 모습에 질색한 동팔은 젖먹던 힘을 다해 시계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서둘러 기절한 순화를 들쳐업고 지옥같은 지하를 빠져나왔다.

 

그들이 모두 모습을 감추고 쾅- 하며 문이 닫히자 다시금 어두워진 적막의 방안으로 정체 모를

 

검은 그림자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다들 머리는 좋은데 시력은 엉망이로군? 모든 방에는 버튼 하나로 함정을 무효화 시킬수 있는 장치가

 

되어있는데.. 하긴.. 처음 3번 방에서 돼지같은 놈이 싸우다 넘어져서 그 장치를 건들였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4번방의 문을 열기도 전에 열 센서가 작동되어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었을텐데..

 

아쉽단말이야.. 에구.. 헛소리 그만하고 죽은 녀석 시체나 치워야겠다. 이 녀석이 그래도 가장

 

쓸만했는데.. 장치를 너무 늦게 발견해 함정이 발동한게 안타깝네.. 후후..

 

우선 함정을 멈추고 일을 시작 해야겠다."

 

 

 

 

 

 

검은 그림자는 뭐가 그리 재미 있는지 어둠속에서 킬킬 거리며 방 왼쪽 구석 바닥에 튀어나와있는

 

흰색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쿠궁- 소리와 함께 모든 함정이 일제히 멈춰 더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seven-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상훈씨.. 상훈씨.."

 

"순화씨. 진정하세요."

 

 

 

 

 

 

시계문을 빠져 나왔다기 보다는 지독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데 뒤엉켜 말려나온 그들은

 

생생하게 각인되어 잡념처럼 떠나지 않는 상훈의 죽음에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사람이 눈 앞에서 유리처럼 부서져 버렸으니 정말 자신의 눈이라도 의심해봐야 할 판이였다.

 

상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피곤에 지친 그들의 머릿속에는 슬픔의 감정보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그토록 보기 싫었던 산장의 쇼파가 왜 그리도 반가워 보이는건지 새삼 놀라웠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동료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단지 죽음의 방법이 너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에 쉽게 현실이라 인정 되어지지 않을 뿐이다.

 

순화가 상훈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자 모두들 안타까워 했다.

 

상훈이 순화를 맘에 두고 있어 늘 뒤에서 그녀 모르게 이것 저것 도움이 되었다는걸 눈치빠른

 

그들이 모르리 없었다.

 

순화 역시 상훈의 친절과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가슴 깊히 담아두고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식사라곤 점심 나절에 지용이 챙겨온 간단한 빵과 음료가 다였기 때문에 몹시 허기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 누구도 식욕을 느끼지 않았다.

 

며칠째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게임 속에서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던지라 모두들 눈두덩이에

 

짙은 그늘이 지고 헬쓱한 얼굴이었다.

 

지용과 동팔은 울음을 멈추지 않는 순화를 억지로 부축해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동팔이 소란스럽게 바닥을 울리며 둔한 걸음으로 뛰어나왔다.

 

 

 

 

 

 

"미션 메모! 제 방에 있습니다!"

 

 

 

 

 

 

다들 미션이란 말에 치를 떨었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던 단어였다.

 

하지만 내용이 궁금했던 머리는 재빨리 다리에 명령을 내려 몸을 복도로 끌고 나갔다.

 

동팔은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메모를 펼쳐 들었다.

 

 

 

 

 

 

*산장의 비밀. 제 5장*

 

네번째 주인공은 동팔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동반자로는 니시키도 료 님이 선택되었습니다.

 

동팔 님이 정답을 맞추지 못할경우 니시키도 료 님께서는 12시간안에 살해당하게 될것입니다.

 

참고하시고 최선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 주십시오.

 

*Mission = 산장내 감춰져 있는 8개의 그림을 찾아내고 그림에 있는 힌트를 조합하여 정답을 맞춰라.

 

*Hint = 1. 찾으실 그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켈란젤로 - 천지창조

 

2) 밀레 - 만종

 

3) 이중섭 - 흰 소

 

4) 피카소 - 꿈

 

5) 레니 - 베아트리체

 

6) 달리 - 기억의 연속

 

7) 레오나드로 다빈치 - 최후의 만찬

 

8) 뭉크 - 절규

 

2. 그림의 순서 - 그들의 그림을 묶어 한권의 책으로 낸다면 이렇게 표기할 것입니다.

 

3. 답 - 답인 이것은 현대 사회의 문명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체에 이롭기도 하지만 해롭기도 합니다. 때로는 과거의 사람을 기억하는

 

매개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정답 제출시간은 오후 11시 30분부터 30분간입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힌트와 설명을 드렸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이번엔 그림이네.. 썅.. 우리 머리가 컴퓨터여!"

 

 

 

 

 

 

동팔이 화를 내며 메모를 구겨 던져버리자 료가 아무말 없이 메모를 집어 들었다.

 

그는 태연해 보였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두 사람의 죽음을 생생히 목격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름이 살인 명단에 올랐으니 괜찮은게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잠시 적막이 감돌자 동팔이 괜히 짜증을 내며 주먹으로 벽을 툭툭 쳤다.

 

 

 

 

 

 

"미션이고 지랄이고 우선 우리도 살고 봐야 할것 아닙니까. 지금은 자고 내일 생각합시다. 눈이 아파

 

죽겠네요. 유격 훈련할때보다 더 몸이 쑤십니다."

 

 

 

 

 

 

아무래도 지하실에서의 하루는 머리만 쓰던 처음 3일과는 다르게 육체적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영양섭취도 제대로 못한 그들에게는 엄청난 피로를 가져다 주었다.

 

동팔이 먼저 방문을 쾅 닫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모이자는 허술한 약속을 하고는

 

다들 방으로 돌아갔다.

 

승현이 먼저 지용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벌렁 누워버리자 지용이 침대 맡으로 다가와 앉으며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이제 말해줘야지?"

 

"뭘요?"

 

"네가 상훈씨를 조심하라고 했던 이유."

 

"아.. 그건 말이죠.. 사실 정답방에서 풀었던 문제는 수학문제가 아니었어요."

 

"나도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단순한 수학문제라고 하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네 모습 말야.

 

아무리 문제가 어렵다고 해도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으니까."

 

"사실.. 문제가 마스터 H 의 이름을 맞춰라 였어요."

 

"뭐?"

 

"정답 화면에 죽은 진주누나까지 포함한 산장 멤버 전원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중에서

 

마스터 H 를 고르라고 했어요."

 

"말도 안되.."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 상황에서 모두에게 말해버리면 큰 혼란을 겪을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하실에서는 서로를 믿고 도와야 빠져나갈수 있으니까요. 저도 엄청난 충격이었다구요."

 

"그랬구나.. 하지만 우리중에 H가 있단 말이야?"

 

"답을 입력할 수 있는 기회는 3번이었어요. 3번안에 맞추지 못하거나 시간이 초과되면 컴퓨터가

 

종료된다고 했어요. 그때 제가 제일 처음 누구의 이름을 써 넣었는줄 아세요?"

 

"누구?"

 

"형이에요."

 

"나?"

 

"네. 확인하고 싶었어요. 형이기 때문에 꼭 아니라는 답을 듣고 싶었어요."

 

"나라고 나올리가 없잖아."

 

"네. 역시 오답이더라구요. 형의 이름을 써넣은건 정말 미안하지만 저 기뻤어요. 오답이라는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사실.. H 가 우리중에 있을지 모른다고 계속 생각했었거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냥요. H 가 너무 치밀하다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한발 앞서 가잖아요

 

사실 료 형을 제일 많이 의심했어요. 우리말을 할때 발음이 부정확하긴 하지만 어휘력이 너무 뛰어나요.

 

마치 일부러 발음을 어눌하게 하는 것이라고 느껴질 만큼요.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점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두번째 답을 료형이라고 적었어요. 역시 아니더라구요."

 

"그럼.. 마지막 답을 상훈씨로 적은거구나?"

 

"맞아요. 자포자기였죠.. 하지만 막상 정답으로 나오니 자꾸 의심하게 되더라구요. 특히 음악방에서의

 

상훈형 행동은 평소의 침착한 모습과는 달리 충동적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거에요.

 

조심하라구.."

 

"이상하네.. 답이 맞았는데 왜 상훈씨가 죽은거지?"

 

"그러니까요. 그것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 죽겠어요. 이해하시죠?"

 

"네 말을 들으니까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의 말을 두가지로 해석할수 있어.

 

첫째는 문제 자체가 모두의 믿음을 깨도록 유도했다는것. 예를 들어 세번째에 써넣은 이름은 무조건

 

정답으로 나온다던가 하면 그것 하나만으로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수 있어. 그리고 두번째는.."

 

"이 모든게 저의 거짓일 경우.. 겠죠?"

 

"미안하지만.. 맞아."

 

"미안해할것 없어요. 저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요.."

 

"난 문제에만 너무 집착해서 그런지 몰라도 최대한 희생자를 줄이고 함께 살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한번도 일행중에 H가 섞여 들었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어. 최소한 문제를 푸는 모습에는

 

거짓이 없었으니까."

 

"네. 죄송해요. 저도 상훈형이 죽고 나서 그 생각을 접기로 했어요. 역시 형 말이 맞아요."

 

"나도 한 가지만 묻자. 너 원래 기억력이 그렇게 좋니?"

 

"네. 선천적으로 기억력이 좋아요. 아이큐도 높구요."

 

"아이큐가 몇이나 되길래?"

 

"고등학생때 마지막으로 측정한게 185였어요. 어렸을때는 조금 더 높았구요."

 

"아! 그렇구나? 굉장하다."

 

"기억력이 좋다는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요. 잊고 싶은게 있어도 쉽게 잊을수가 없거든요."

 

 

 

 

 

 

승현이 약간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지용은 그의 갈색머리를 정성스럽게 쓸어 내려주었다.

 

승현은 머리를 쓸어주는것을 좋아했다.

 

사람의 체온을 그리워하는 버릇 때문이다.

 

 

 

 

 

 

"나도 사실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지만 네가 뜬금없이 상훈씨를 의심하니까 나도 널 잠시 이상하게

 

생각했었어. 하지만 전 후 사정을 들어보니 네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말은.. 저를 믿어 주신다는 뜻인가요?"

 

"나는 널 믿어.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야. 그러니 너도 이 일은 잊고 사람들을 도와줘. 그래야 무사히

 

빠져나갈수 있어. 알겠니?"

 

"네!"

 

"그리고 아이큐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처음에는 네 기억력이 어쩜 그렇게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아이큐가 그렇게 높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잘 아는 동생이 있거든?

 

독고 선 이라고.. 특이한 이름이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학년은 달라도 시험날은 같잖아?

 

난 항상 밤 새서 공부를 하는데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그 녀석은 매일 놀러다니면서도

 

1등을 놓치지 않는거야.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녀석 아이큐가 170 이 넘더라구. 기억력이 워낙

 

좋아 수업 시간에만 집중해서 들으면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내용을 기억한데."

 

"독고 선.. 성은 거친 느낌인데 이름은 굉장히 부드럽네요. 부모님께서 이름을 잘 지으신것 같아요."

 

"나중에 소개시켜줄게. 얼굴도 잘 생기고 멋진 녀석이야."

 

"형보다요?"

 

"응?"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형보다는 못할거에요. 제 눈에는 그럴꺼에요~"

 

"그말 듣기 좋은데?"

 

"헤헤~"

 

"그만 삼천포로 빠지고 어서 자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면 자둬야 해."

 

"저 씻고 싶어요. 긴장해서 그런지 땀을 잔뜩 흘렸어요."

 

"그럴래? 그럼 같이 씻자. 내가 씻겨줄게."

 

"네?"

 

 

 

 

 

 

승현은 지용의 제안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끼리 같이 씻는건 전혀 이상할것 없는 일이었다.

 

여자들이 같이 화장실을 가는것처럼 남자들끼리는 목욕탕에 같이 가서 우정을 쌓기도 한다.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자신의 빈약한 몸을 부끄러워했던 승현은 한번도 남들 앞에서 옷을

 

벗은적이 없었다.

 

그는 끝까지 싫다고 버티며 고집을 피웠지만 지용은 승현을 번쩍 들어올려 욕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각 방마다 딸려 있는 욕실은 두 사람이 씻어도 좁지 않을 정도의 크기었다.

 

 

 

 

 

 

"옷 입고 씻을꺼야? 어서 벗어."

 

"형!"

 

 

 

 

 

 

지용은 욕조에 물을 받으며 승현을 불렀지만 그는 욕실문의 고리를 꽉 부여잡고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승현의 행동이 우스웠던지 지용은 웃으면서 윗옷을 벗었다.

 

그리고 물이 어느정도 다 받아지자 나머지 옷도 벗어버렸다.

 

승현은 그의 나체를 보며 동상처럼 얼어 붙어버렸다.

 

군살없이 잘 빠진 몸매는 부러울만큼 감탄이었지만 역시 나체는 무리였다보다.

 

지용은 시선을 둘곳없어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승현을 강제로 끌어다가 허리를 꽉 움켜잡고 억지로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승현은 끝까지 발버둥을 치며 반항했다.

 

 

 

 

 

 

"밤 샐꺼야? 나 피곤해."

 

"저.. 놔주세요! 제가 벗을께요."

 

"남자끼리 뭐가 부끄럽다고 그래?"

 

 

 

 

 

 

승현이 거의 애원하다시피 옷을 부여잡자 지용은 할수 없이 허리를 잡았던 손을 풀고 욕조로 들어갔다.

 

시원한 물이 찰랑거리며 턱을 간지럽히자 눈이 저절로 감겼다. 좋은 기분이었다.

 

승현은 그가 눈을 감은 틈을 타 잽싸게 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른채 욕조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오는것을 확인하자 지용은 미리 준비해둔 타올을 집어들어 비누를 이리저리 굴렸다.

 

 

 

 

 

 

"우선 앉아. 몸이 좀 식으면 씻자."

 

"혼자 씻어도 되는데.."

 

 

 

 

 

 

승현이 비맛은 땡중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마주보고 앉자 그는 승현의 몸을 끌여당겨 자신을 등지고

 

앉게끔 돌려앉혔다.

 

힘으로는 그를 당할 수 없는터라 승현은 발버둥을 치면서 그의 품으로 딸려 들어갔다.

 

 

 

 

 

 

"거참.. 엄청 앙탈부린다 너? 내가 잡아먹어?"

 

"씻자면서요? 자세가 어째.."

 

"내 맘이야. 물 튀니까 그만 저항해. 너 혼나?"

 

 

 

 

 

 

살짝 협박하며 웃던 지용은 그의 어깨를 가만히 안았다.

 

머리에 코를 대고 있자니 좋은 향기가 밀려들어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

 

 

 

 

 

 

"형? 뭐해요? 자요?"

 

"아니.. 머리 냄새 맡아."

 

"헉.. 냄새나요?"

 

"냄새나.. 좋은냄새.."

 

"좋은 냄새가 날 리가 없는데.."

 

"샴푸 냄새인가? 이거 좋다.."

 

"샴푸라봤자 산장 안에 있는건데요 뭘.."

 

"모르니? 같은 샴푸를 쓰더라도 사람마다 나는 향이 달라. 각자의 체취가 다르기 때문이야."

 

"그렇구나..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없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어."

 

"앗! 형!"

 

 

 

 

 

 

지용이 머리를 파고들며 손으로 가슴과 허리를 반복해서 쓸어내리자 승현은 기겁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을 읽은 지용은 팔이 힘을 주어 꽉 움켜잡고 행동을 계속했다.

 

승현이 몸을 약간 숙이자 차가운 물이 출렁거리며 얼굴을 간지럽혔다.

 

밤새 그의 머리에서 머물것 같던 지용의 입은 어느새 어깨로 내려와서 목줄기를 타고 번갈아 핥았다.

 

차가운 몸과 대조적으로 어깨에 따뜻한 혀가 닿자 몸은 금방 뜨겁게 달아올랐고 욕조를 강한

 

열기로 데워가고 있었다. 승현은 정신없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빠르게 숨을 내쉬었다.

 

지용의 손길이 점점 빨라지자 승현은 손을 뒤로 뻗어 그의 목에 둘렀고 완전히 바닥에 주저앉았던

 

자세가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댄체 체중을 뒤로 실고 살짝 몸을 세운 자세로 바뀌어버렸다.

 

지용은 승현이 자세를 바꾸자 머리를 뒤로 끌어당겨 강하게 키스했다.

 

조용한 욕실 안은 금새 그들의 나지막한 호흡소리로 가득찼다.

 

 

 

 

 

 

"네가 맘에 들어.. 돌아가도 나와 함께 해주겠니?"

 

"형.."

 

 

 

 

 

 

머리가 위로 들린채로 숨막힐듯한 키스를 반복하던 승현의 입가에 타액이 흘러내릴만큼 오랫동안

 

그의 입안 구석구석을 맴돌던 지용은 승현을 다시 돌려세워 자신을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명치를 중심으로 심장이 뛰고있는 왼쪽 가슴 언저리로 입을 가져가자 승현이 그의

 

머리를 꽉 끌어앉고 작게 신음했다. 옆구리 근처가 예민하게 반응하는듯 했다.

 

지용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자신의 어깨에 손톱을 세우기도 하고 머리채를 쥐어잡기도 하는 승현이

 

너무 귀엽다는 생각에 행동을 멈추지 않고 손을 들어 그의 뒤를 파고들었다.

 

그의 행동에 빠져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승현은 갑자기 자신의 안을 파고드는 이물감에 다급히

 

저항했다. 야릇한 느낌에 머리가 저릿저릿했다.

 

 

 

 

 

 

"형! 거긴 안되요!"

 

"괜찮다고 말해줘. 좋다고..."

 

"하지만.. 물이 들어온다구요! 느낌도.. 아..이상하구.."

 

"처음 아니구나?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니 다행이네."

 

 

 

 

 

 

사춘기 시절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고 남자를 만나왔던 승현은 관계가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용은 다른 상대와 조금 달랐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잘 생겼고 머리도 좋고 이상형에 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소녀들의 로망처럼 첫눈에 반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상대로 이처럼 가슴 뛰게 만든 상대도 지용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이토록 몸을 떨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이 아니라는것을 단번에 알아차리자 약간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지용에게 처음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었고 눈치빠른 지용은

 

자신의 말에 오해하지 말라며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널 나쁘게 보고 한 말이 아냐.. 난 과거는 필요없거든.. 앞으로는 내것일테니 상관없어.."

 

"하지만..."

 

"다시 내것으로 길들일거다. 그러니 앙탈부리지 말고 나에게 모든걸 맡겨."

 

"아..핫.."

 

 

 

 

 

 

차가운 물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며 내벽을 자극하자 승현은 엎드린 자세로 욕조 한쪽을 잡았다.

 

몸을 꽉 채우고 움직이는 그의 체온이 하나..둘..

 

몇개까지 늘었는지 모를만큼 한참을 입술을 깨물며 숨을 몰아쉬던 그에게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지더니

 

뒤이어 지용의 몸이 뜨겁게 그의 등에 포개어지더니 그의 것이 천천히 자신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는걸 느꼈다. 오랜만에 갖은 관계였기에 살짝 아픔이 느껴졌지만 잠시만 참아내면 고통이 쾌락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기에 꾹 참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긴장 하지말고 허리에 힘빼. 미끌어지지 않게 잡아줄게."

 

"형.. 조금만 천천히 해줄래요?"

 

"걱정마. 부드럽게 해줄게.."

 

 

 

 

 

 

승현을 배려하듯 삽입한 상태 그대로 익숙해 지기를 기다리던 지용은 그의 허리에 서서히 힘이 빠지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작을 할때마다 물이 찰랑거렸다.

 

승현도 기분이 좋아지는지 서서히 듣기좋은 소리를 냈다.

 

 

 

 

 

 

"아....이제 형 하고 싶은대로.. 하셔도 되요..."

 

"아프지 않아?"

 

"익숙해..졌어요.. 그러니 조금 더.. 세게 해주세요..느낄 수 있을만큼 강하게.. "

 

"저항하더니.. 이젠 더 적극적이잖아?"

 

"그렇게.. 말하시면.. 아..핫.. 제가.. 할말이 없잖아요.."

 

"말 잘하면서.. 뭘 그래? 하하.."

 

 

 

 

 

 

지용은 삽입한 상태 그대로 그의 몸을 돌려 자신의 다리위에 앉혔다.

 

물에 젖은 그의 갈색 머릿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은근히 자극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도 잊을 정도로 오랫동안 서로의 몸을 갈구했고 애타게 사랑을 나눴다.

 

단 시간에 불같이 타올라버린 열정적인 사랑이었다.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아침 9시를 알리는 자명종 소리를 시작으로 하나 둘 씩 식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전날 무리했다는 핑계로 늦잠이라도 잤을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볼을 꼬집거나 머리를 때려가며 자학을 하고 있었다.

 

지하실에 내려가 있는동안 또 누가 왔다 갔는지 깨끗한 옷과 수건. 음식등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승현이 식탁에 앉아서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자 지용은 컵에 포도쥬스를 가득 따라가며 그를 깨웠고

 

동팔은 포장 되어있는 인스턴트 햄버거를 데우겠다며 전자렌지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처음 산장에 왔을때는 나름대로 시끌벅적 했었는데 두명이나 죽고 나니 그들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료는 분위기가 쳐져있자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며 빵에 땅콩버터를 바르며 말을 꺼냈다.

 

 

 

 

 

 

"순화씨가 안 보이네요? 피곤했나보네.. 늦잠을 다 자구."

 

"어제 충격이 좀 심했나봐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상훈씨가 순화씨 좋아했었잖아요. 아마 순화씨도 그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하긴.. 3자인 저도 그걸 느꼈을 정도인데 순화씨라고 모를리 있겠어요?"

 

"말은 안했지만 눈빛이 늘 순화씨에게로 고정되어 있었잖아요."

 

"그렇죠? 지용씨도 알고 있었네. 아무튼 마음이 안좋아요. 상훈씨만 생각하면.."

 

 

 

 

 

 

료가 한숨을 쉬며 빵을 한입 베어물자 모두들 다시 침울해졌다.

 

나름대로 아침식사였지만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헷갈렸다.

 

동팔이 데운 햄버거를 입에 물며 식탁에 다가와 앉자 갑자기 식당문이 삐그덕 하고 열리더니

 

순화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모습이 반가웠던 사람들은 손짓을 해가며 들어오라고 재촉했지만 왠지 평소의 그녀와는

 

달라보였다. 잔뜩 헝크러진 머리라던가.. 눈치를 보는 겁먹은 표정이라던가.. 뭔가 낯설었다.

 

 

 

 

 

 

"순화씨? 뭐해요. 어서 들어와요."

 

 

 

 

 

 

료가 문으로 다가가 그녀에게 웃어보이자 갑자기 순화는 비명을 지르며 식당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어 익히지도 않은 고기를 꺼내더니 실실 웃으며 접시에 담아

 

정신없이 뜯어먹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상한 행동에 잠시 멍하니 서있었지만 생고기를 뜯어먹는 그녀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지용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그녀의 손에서 억지로 고기를 빼앗아 들었다.

 

 

 

 

 

 

"순화씨! 왜 이래요!"

 

"히히.. 맛있다.."

 

"순화씨?"

 

"빨리 내놔! 내꺼 빼앗가 가지마! 죽일꺼야!"

 

"정신 차려요! 순화씨!"

 

"히히.. 아저씨~ 말 잘들을 테니까 빨리 주세요. 배고파요~"

 

 

 

 

 

 

질겅질겅한 고기를 씹으며 맑게 웃는 순화의 얼굴은 또 다른 공포였다.

 

방어할 틈도 없이 찾아든 끔찍한 살인사건을 두번이나 목격한 그녀는 이미 정신을 놓은것 같았다.

 

감정의 기폭도 심한지 어린아이처럼 고기를 달라고 때를 쓰다가도 금새 돌변해 사납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더욱 기가 막힌것은 그녀가 가끔씩 내뱉는 말이었다.

 

 

 

 

 

 

"진주언니~ 언니도 이거 좋아하지? 내가 줄까? 히히.. 내가 언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우리 꽃구경 가자~ 언니가 데리고 간다고 했잖아. 내가 도시락 만들게~ 조금만 기다려. 히히히.."

 

 

 

 

 

 

사람이 극도의 충격을 받으면 정신을 놓게 된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도록 무섭기까지한 그녀의 행동에 남자들은 어찌할바 몰라 손 놓고 지켜봤지만

 

그녀가 진주의 이름을 부르며 허공을 향해 웃을때는 정말 두눈 뜨고는 봐줄수가 없었다.

 

참다못한 동팔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소리를 질러가며 정신을 차리게 했지만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동팔의 외침은 한귀로 흘려버리고 계속 다른쪽으로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그녀를 지켜보던 승현이 눈을 부릅뜨고 탄식하듯 말했다.

 

 

 

 

 

 

"저거! 순화 누나가 들고 들어온 저 접시!"

 

"승현아. 왜 그래?"

 

"저 접시! 제가 저번에 말했잖아요. 첫날 식사할때 나왔던 접시가 모두 사라졌다구요! 그때 사라진

 

접시중 하나에요."

 

"그래? 그런데 어떻게 저걸 순화씨가 가지고 있는거지?"

 

"몰라요! 순화누나! 이 접시 어디서 났어요?"

 

"히히.. 넌 누구니? 누나랑 같이 놀래?"

 

"누나!"

 

 

 

 

 

 

승현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접시의 행방을 묻는다는것 자체가 무리인듯 싶었다.

 

그들은 순화를 거들떠볼 여유도 없이 미션의 문제를 풀어야했다.

 

점점 짧아지는듯한 하루가 버겁게 느껴질만큼 다급했다.

 

그들이 식탁에서 몸을 일으키자 갑자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순화가 눈에 독기를 품고서 포크를

 

움켜쥐고 동팔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동팔은 급한대로 몸을 피한뒤 그녀를 옆으로 밀어내버렸다.

 

그러자 우당탕- 소리와 함께 식탁이 밀려나며 그녀가 바닥으로 굴렀다.

 

 

 

 

 

 

"순화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죽일꺼야! 죽여버릴꺼야!"

 

 

 

 

 

 

순화가 바닥에 누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발버둥을 치며 식탁을 발로 밀어내자 갑자기 툭-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큰 사각형으로 된 판자 같았다.

 

동팔은 재빨리 뛰어가 그 물건을 집어들고 반대로 돌렸다.

 

그러자 지용이 다가와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아.. 이건 문제에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지용이 소리치자 료가 재빨리 몸을 숙여 식탁 아래를 살피더니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식탁 아래에 접착제로 고정시켜 놓았던 것이로군요! 순화씨가 발로 차서 떨어진거구요."

 

"그렇다면 그림의 내용이 곧 있는 장소란 말이 되겠네요."

 

"그런것 같아요. 의외의 수확이네요."

 

 

 

 

 

 

료가 식탁 밖으로 기어나오며 웃자 지용은 재빨리 그림을 가지고 거실로 나갔다.

 

식당에는 칼이나 포크등 위험한 물건이 많았기 때문에 순화를 데리고 나왔다.

 

그들은 그림을 탁자에 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름 그림의 행방에 대해 생각했다.

 

순화는 정신을 놓은 상태라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 이제는 남자 네명의 몫.

 

그들은 힌트를 다시 한번 살피며 자신이 아는 그림을 찾기 시작했다.

 

 

 

 

 

 

"다 유명한 그림이네요. 산장 안에도 여러가지 그림이 걸려있었지만 다른 그림이었어요.

 

이 그림들은 확실히 숨겨져있는 모양이네요. 지용 형은 그림을 잘 그리니 그림에 대해서도 잘 알겠죠?"

 

"많이는 몰라도 유명한 화가와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편이지."

 

"그런데 여기좀 보세요. 그림 오른쪽 하단에 뭔가가 씌여 있네요? 이게 무슨 글자지? 페? 폐?"

 

"페가 맞는것 같은데?"

 

"보통 이 자리는 화가의 사인이나 낙관이 찍히는 자리 아닌가요?"

 

"그러게.. 다빈치 그림에 페라.. 무슨 뜻일까?"

 

 

 

 

 

 

지용과 승현이 서로 뜻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 거리자 동팔은 별 관심 없다는듯이 다음 그림에 집중했다.

 

 

 

 

 

 

"피카소의 꿈. 이 그림은 어떤 그림인가요? 지용씨?"

 

"여인이 잠을 자고 있는 평범한 그림이에요. 자면서 꿈을 꾼다는 작가의 상상이죠."

 

"그럼 침대에 그림이 숨겨져있지 않을까요? 보통 잠을 자면 침대에 누워서 자잖아요."

 

"침대요?"

 

"네. 지금 가서 침대를 뒤져보고 올께요."

 

"동팔씨. 잠시만요. 이 그림에서 여인은 침대에 누워있는게 아니라 쇼파에 비스듬히 기댄채 잠들어

 

있어요. 빨간색 쇼파 말이에요."

 

"쇼파요?"

 

"아! 쇼파! "

 

 

 

 

 

 

지용은 자신이 말하고도 뜻을 늦게서야 알아챘는지 급히 고개를 숙여 쇼파 밑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역시 그곳에는 피카소의 꿈 이라는 그림이 그의 설명 그대로의 내용을 담은채 감춰져 있었다.

 

 

 

 

 

 

"우리 짐작대로 그림이 뜻하는 장소에 숨겨져 있나봐요."

 

 

 

 

 

 

지용이 그림을 들어 먼지를 털어내며 웃었다.

 

그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순화가 그림을 잽싸게 가로채더니 쇼파 주변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히히.. 이거 내가 그린 그림이다~ 엄마. 나 그림 잘 그렸지?"

 

"순화씨. 이리 주세요!"

 

 

 

 

 

 

지용이 그림을 간단히 빼앗아들자 순화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욕을 해댔다.

 

하는 행동은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무척이나 공격적이었다.

 

승현은 순화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며 쇼파로 끌여들여 진정시켰다.

 

그녀는 아직도 지용이 마음에 안드는지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지만 지용은 그녀는 안중에도 없는듯

 

그림을 내려놓고 살폈다.

 

 

 

 

 

 

"안식? 여기에는 안식 이라고 적혀있네요."

 

"페.. 안식.. 이게 대체 뭐지?"

 

 

 

 

 

 

힌트의 내용은 사람의 이름인지 사물의 이름인지도 구분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아무래도 그림을 모두 찾아야 답이 풀릴듯 싶었다.

 

그때 동팔이 자신이 아는 그림이 있다며 지용에게 질문했다.

 

 

 

 

 

 

"제가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베아트리체에 대해서는 알것같아요. 이 그림 무지 예쁜 여자가

 

서있는 초상화 아닙니까? 입대전 인터넷에서 보고 반해버렸는데."

 

"맞아요. 베아트리체는 16세기 이탈리아의 귀족 딸이었어요.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들이 많았는데 그중 그녀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베아트리체가 14세가 되자 그의 아버지가

 

욕심이 난 나머지 그녀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저택 구석에 가두어놓고 범해버렸죠.

 

그후로 그녀는 아버지에게 깊은 앙심을 품게되었고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던 집사의 도움으로 결국 아버지를 살해하고 말아요. 그후 16세때 그 일을 빌미로

 

심한 고문을 당하고 처형당하지만 처형장에 있던 귀도 레니라는 화가가 죽기 직전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어요. 그게 그 유명한 베아트리체의 초상화죠. 그림에 신비한 힘이 있는지 아니면 그녀의

 

원한이 담겼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그녀의 초상화를 보던 사람중 일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요.

 

그것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하는데 예술 작품을 감상하던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짐을 뜻합니다."

 

"복잡한 사연이 있는 그림이군요? 아무튼 저 이 그림 알아요."

 

"여인의 그림이라..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용씨도 참.. 이럴땐 왜 이리 둔한겁니까? 지금 우리중에 여자라고는 순화씨 하나 아닙니까?

 

그러니 순화씨 방에 숨겨져 있겠죠."

 

"설마요.. 만약 그랬다면 순화씨가 모를리 없었겠지요."

 

"제 생각엔 말입니다. 아마도 순화씨의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 순화씨도 보지 못하고

 

넘어간것 같단 말입니다. 한번 가볼께요."

 

 

 

 

 

 

말은 그럴듯 했지만 정말 방에 숨겨져 있을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동팔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순화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을 뒤져 옷장 뒤에 감춰져 있던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를 꺼내들고 자랑스럽게 나타났다.

 

모두들 그의 추리에 박수를 보내며 칭찬했다.

 

 

 

 

 

 

"옷장 뒤에 숨겨져 있으니까 못봤죠. 그나저나 팔도 두꺼운데 이거 꺼내느라 꼬챙이질을 하도 했더니

 

어깨가 쑤셔 죽겠어요."

 

"하하.. 고생하셨어요. 동팔씨"

 

 

 

 

 

 

지용이 웃으며 동팔을 칭찬하자 칭찬에 약한 동팔은 금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에스텔 이라고 적혀있네요."

 

"에스텔요? 무슨 외국 여인의 이름인가? 하나같이 이상하네요."

 

"그러게요. 통 감이 안잡혀요."

 

 

 

 

 

 

지용과 료가 그림의 힌트를 보며 뜻을 몰라 중얼거리는동안 승현은 버릇적으로 재빨리 펜을 꺼내들고

 

종이에 힌트를 적었다.

 

 

 

 

 

 

"기억의 연속이 달리라는 사람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은 알것 같아요."

 

"승현이 네가 알고 있는 그림은 어떤 내용인데?"

 

"왜.. 약간 4차원 공간처럼 바다같기도 하고 사막같기도 한 배경이었는데요.. 시계가 물 흐르듯이

 

흐르고 있었고 나뭇가지에 젖은채로 빨래 널리듯 걸려있던 그림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요."

 

"그럼 달리의 기억의 연속이 맞아."

 

"그럼.. 그 그림대로 시계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시계 뒤에 감춰져 있다거나.."

 

 

 

 

 

 

승현이 시계를 지목하자 지하실의 기억이 떠오른 동팔은 기겁하며 눈을 부릅떴다.

 

 

 

 

 

 

"거긴 없을꺼야. 아까 시계문을 살짝 옆으로 밀어봤는데 벽말고 아무것도 안보였단 말이지! 그리고

 

다시 그 문은 열고 싶지도 않다!"

 

"꼭 시계 뒤라고는 볼수 없어요. 시계가 저렇게 큰데 꼭 뒤에만 숨겼을리 없잖아요."

 

"그럼 다른곳이란 말이야?"

 

"시계 추가 움직이는 안쪽을 살펴봐야겠어요. 저 정도의 크기라면 그림 하나쯤 쉽게 들어갈수 있어요."

 

 

 

 

 

 

승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시계로 가까히 다가갔다.

 

금색 손잡이를 당겨 시계 추가 움직이는 문을 열자 마치 동화속 어린양들이 늑대를 피해 시계안으로

 

숨어들었던것 처럼 그곳에 얌전히 그림 하나가 놓여있었다.

 

기쁜 마음에 그림을 들어 잽싸게 쇼파로 가져와 내려놓으니 역시 설명대로의 그림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 좋아해. 뭔가 다른 차원이 느껴지면서도 고요하고 잔잔한 느낌을 줘."

 

"형. 감탄 그만하시고 글자를 보세요. 파라 옥시 라고 쓰여있어요."

 

"이번에는 파라 옥시네.. 역시 모르겠어."

 

"파라옥시.. 파라옥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던 단어인데.."

 

"옥시크린의 옥시 아뇨?"

 

"동팔형이 오늘따라 무지 예리하시네요. 그 옥시가 맞는것 같아요. 후후.."

 

 

 

 

 

 

승현이 왠일로 동팔을 넌지시 칭찬했다.

 

전날 지용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더 이상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서로를 믿지 않으면 결국 자멸하고 말터.

 

우선은 억지로라도 서로간의 신뢰를 쌓는것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나온 글자가 페, 안식, 에스텔, 파라 옥시죠?"

 

"거참.. 어렵게 해놨네."

 

"그림에도 순서가 있나봐요. 이것 만으로는 알아낼수가 없을듯 해요. 다시 그림을 찾아야겠어요."

 

"저것들로만 뜻을 만들자면 에스텔이라는 사람이 페(폐)가 안좋으니 안식을 취해야 한다..아닐까요?"

 

"하하.. 동팔씨도 참.. 그러니까 옥시(OXY) 즉 산소를 마시며 요양해야 한다는 거죠?"

 

"이를테면요."

 

"그것도 나름대로 말이 되네요. 동팔씨 다운 생각이에요."

 

 

 

 

 

 

료가 동팔의 말에 흥미를 보이며 웃었다.

 

늘 엉뚱한 말만 골라서 하지만 가끔 뒷발질에 쥐를 잡을때도 있다는것을 알고 있는 료는

 

그의 단어조합 상상력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남은 그림은 4개. 시간은 정오를 가르키고 있었다.

 

 

 

 

 

 

"역시 우리의 한계는 절반인가요? 왜 반만 맞추면 그 다음부터는 헤매는걸까요?"

 

 

 

 

 

 

동팔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탄하자 료가 한가지 그림을 가지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지용씨. 이중섭의 흰소에 대해서도 잘 알죠?"

 

"아뇨. 안타깝게도 이중섭 화가의 작품은 접해본 적이 없어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가요? 그럼 제 기억대로 말해볼께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와서 본 동양화가 이중섭의 흰소 였는데

 

이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느낌이에요. 소가 하얀색이라서 흰소가 아니라 살이나 내장 없이

 

몸이 뼈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흰소에요. 마치 공룡 화석처럼 뼈밖에 없는 몸을 가진 소가 눈을

 

부릅뜨고 무섭에 서 있는 그림이었어요. 참 인상깊었죠."

 

"그렇군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제목 선택도 센스있죠? 흰소라.."

 

 

 

 

 

 

료가 그림을 떠올리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자 승현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질문했다.

 

 

 

 

 

 

"형은 동양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시네요?"

 

"말했잖아.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구."

 

"그래도 대단해요. 우리나라 사람들 보다도 더 많은것을 알고 계시.."

 

"이승현!"

 

 

 

 

 

 

지용이 승현의 말을 막고 몸을 끌여당겨 어깨에 팔을 두른채 작게 속삭였다.

 

 

 

 

 

 

"어제 약속했잖아.. 사람들 의심하지 않기로.."

 

"미안해요.. 하지만 너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

 

"그러지마. 료씨는 너에게 나쁜 감정이 없어. 아니 오히려.."

 

"네?"

 

"아니다. 아무튼 다음부터 그렇게 직접적으로 따지고 들지마. 알겠니?"

 

 

 

 

 

 

지용은 말을 어설프게 끊은채 승현에게 충고했다.

 

말을 길게 이어갔다면 료가 승현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말도 나올뻔했다.

 

그런 말은 승현에게 말해줘봤자 자신에게 별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에 재빨리 말을 끊어버렸다.

 

지용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료가 말해준 흰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그림을 볼때 선이나 붓터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림에 내포 되어있는

 

내용도 유심히 관찰한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의 단어가 떠올랐다. 그는 손으로 짧게 무릎을 치며 말했다.

 

 

 

 

 

 

"노출이군요?"

 

"네?"

 

"노출이에요. 소의 몸에 가죽이 없다고 했잖습니까?"

 

"그랬죠."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는 가죽 또는 살로 덮여져 있어 몸 안을 들여다 볼수 없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뼈만 남았다는건 몸 안에 노출을 의미하죠. 다르게 빗대어 말하자면 소는 산장을 뜻해요. 가죽은

 

산장을 가려 외부의 노출을 막는 그 무언가를 뜻하죠. 가죽이 없어 뼈가 훤히 들어났듯이 산장에도

 

이것이 없으면 내부가 고스란히 노출되요. 뭔지 아시겠어요?"

 

"산장 전체에 쳐 있는 커튼 말인가요?"

 

"네. 그런것 같아요. 우리가 산장에 처음 왔을때부터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진주씨가 죽은 이후에 한번

 

살짝 열어보곤 그 누구도 열어보지 않았죠?"

 

"그거야.. 1층 거실의 창이 워낙 크니까 왠지 열어놓기 뭐해서 그랬죠. 햇빛도 싫고."

 

"그거에요. 발코니가 크면 클수록 외부에 노출되는 면적도 늘어나죠. 이게 그림의 의미에요."

 

 

 

 

 

 

지용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서 현관문 양쪽으로 넓게 자리잡은 커튼을 모두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 뽀얀 먼지가 가득해 기침을 유발하며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또한 크기도 만만치 않고 뻑뻑해서 잘 열리지도 않았다.

 

 

 

 

 

 

"역시.. 있네요. 생각보다 훨씬 강한 느낌의 그림이로군요."

 

 

 

 

 

 

식당의 입구와 통해있는 제일 오른쪽 커튼을 젖히자 그림은 주인을 기다리듯 얌전히 놓여있었다.

 

지용은 그림을 집어들고 제일 먼저 오른쪽 구석을 살폈다.

 

이번 글자는 논 이었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는것 같았다.

 

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가며 끙끙거리고 있는사이 순화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도자기를 깨트리고

 

휴지를 풀어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가 하면 컵에 물을 담아가지고 나와 여기저기 뿌리고

 

돌아다니는 등 사고를 치고 있었다.

 

승현은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답에 대해 생각하랴 뒷처리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형! 밀레의 만종 있잖아요. 아까부터 계속 생각해봤거든요?"

 

"그러니? 말해봐."

 

"그 그림이 부부가 밭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그림이잖아요?"

 

"그렇지. 수확을 마친 부부가 감사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니까."

 

"근데요. 제가 만종에 대해서 조금 다른 해석을 들은적이 있거든요? 원래 형 말대로 감사기도를 하고

 

있는 부부의 그림인데 원래 밀레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해요."

 

"또 다른 뜻이 있다는거니?"

 

"만종은 원래의 뜻인 안젤루스(Angelus) 의 뜻을 한자로 번역해서 저물 만 쇠북 종 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쇠북 종은 쇠로 종을 치면 아이가 운다.. 라는 뜻이 있어요.

 

즉 만종에는 아이의 울음이 저물었다 - 죽었다. 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거죠. 그 말이 나온 이유가

 

그림안에 있는 여자의 발밑 바구니 때문인데요. 그 바구니에는 지금처럼 감자가 아니라 아이의

 

시체가 담겨 있었데요. 밀레가 처음 그림을 그려서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한 친구가 아이의 시체를

 

보더니 미술계의 비판이 우려된다며 말렸데요. 밀레는 이삭줍기같은 평화로운 그림을 그리던 사람

 

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 시체 대신 감자로 바꿔 그린거래요. 그러니 수확에 감사드리는 부부의

 

모습이 아니라 원래는 아이가 죽어 슬퍼하는 마음으로 묻기전 천국으로 가기를 바라는 내용이란

 

이야기죠. 뭐..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라 확실하진 않지만요."

 

"그거.. 뭔가 느낌이 온다. 죽은 아이라.."

 

"제 생각에는요. 죽은 사람을 두고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를 가지고 보면 진주누나밖에 생각이 안나요.

 

죽기 직전까지 사자성어를 밝혀가며 우리를 도와줬던 누나잖아요. 비록 시체는 벌써 치웠는지 사라져

 

버렸지만 여전히 누나의 방만 보면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싶어지니까요."

 

"역시. 나도 같은 생각이 든다. 한번 올라가보자."

 

 

 

 

 

 

지용 승현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진주의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순화의 방과는 달리 숨겨지지도 않은채 진주의 시체대신 그녀의 침대위에

 

그림이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H 가 이런 생각을 한것을 보아하니 밀레의 아기 시체설이 그렇게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그림에 쓰여있는 힌트의 글자는 향산 이었다.

 

승현은 자꾸 눈에 익은 글자가 나오자 하나로 연결해 떠올리려고 애썼다.

 

 

 

 

 

 

"더 이상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냥 산장을 샅샅히 뒤져볼깝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렇게라도 해봐야 할것 같아요."

 

"그럼 흩어져서 찾아봅시다. 근데 순화씨는 해결하고 시작하죠."

 

"어떻게 해요. 묶어둘수도 없잖아요."

 

"우리가 신경 못쓰는 사이에 사고를 칠지도 모르니까 순화씨 방에 날카로운 물건들을 치우고 잠시

 

들여 보내야겠습니다. 순화씨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수 없네요."

 

"열쇠가 없어서 문을 잠그지 못하는데 열고 나올수도 있잖아요."

 

"문이 밖으로 열리는 구조니 문을 닫고 줄로 고리를 잡아당겨 맡은편 상훈씨 방 문고리에 팽팽하게

 

묶어두면 어느정도 해결이 될것 같아요. 그렇게라도 합시다."

 

 

 

 

 

 

동팔의 제안에 모두들 반박하지 않았다.

 

순화는 점점 상태가 심해지는것 같았다.

 

얼굴에 침까지 흘려가며 실실거리는 그녀는 도처히 어른이라고는 볼수 없었다.

 

료와 동팔이 순화를 번쩍 안아올려 방으로 데리고 가자 순화는 찢어지는듯한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다.

 

그들도 이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대로 두면 위험할것 같아 어쩔수 없었다.

 

내보내달라고 통곡을 하며 문을 두들이는 순화를 뒤로 한채 네명의 남자는 서둘러 산장을 샅샅히

 

뒤지기 시작했다. 허기가 지거나 목이 마르면 잠시 식당에 들어가서 각자 해결하는 방법을 써가며

 

날이 저물때까지 내부를 쥐잡듯 뒤졌지만 그림은 바늘이라도 되는것처럼 나오지 않았다.

 

밤 8시가 되자 모두들 지쳐 포기하고 다시 쇼파로 모여들었다.

 

 

 

 

 

 

"젠장! 초등학교때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보물찾기를 여기까지 와서 하고 자빠졌네! 이게 뭔

 

지랄같은 짓이야! 나 참.."

 

 

 

 

 

 

동팔이 욕을 해가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료는 그림이 나타나주질 않자 점점 초조해졌다.

 

좋게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시간이 다가오자 생각과는 달리 마음이 다급해졌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는 산장 밖으로 나가 빙 둘러보았지만 그곳에도 그림은 없었다.

 

승현은 지쳤다는 표정으로 지용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의 특유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기분좋게 전해져왔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던 승현은 자신이 너무 여유를 부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번쩍 눈을 떴다. 그런데 그의 눈은 문득 위로 고정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한곳을 가리켰다.

 

 

 

 

 

 

"형들! 천장을 보세요!"

 

 

 

 

 

 

승현의 말에 지용 료 동팔 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의없게도 그림은 천장 구석에 바짝 붙은채 모두를 조롱하듯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팔은 기가 찬다는듯 혀를 찼다.

 

 

 

 

 

 

"이제 별 방법을 다 쓰는구만? 저런 곳에다가 붙여 놓았단 말이지?"

 

"웃음밖에 안나오네요. 천장이 높아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것을 예상했나봐요. 결국 맞아 떨어졌네요.

 

등잔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헛튼 말은 아닌가봐요."

 

"저걸 어떻게 꺼내죠?"

 

 

 

 

 

 

막상 그림을 발견하긴 했지만 떼어낼수가 없었다.

 

산장의 천장은 1층 2층으로 구분되어져 있는게 아니라 오페라 극장처럼 하나의 높은 천장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왕이나 높은 귀족들이 앉는 특등석처럼 2층 방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에 돔 형식으로 되어있는 천장은 2층 난간에서 팔을 뻗어도 절대 손이 닿지 않는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림을 떼어 낼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용씨. 저 그림이 무엇 같나요?"

 

"잘 보이진 않지만 크기로 보나 복잡한 색감으로 보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떠오른건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같은 그림은 천장화로 많이 사용되는

 

그림이에요. 왜 진작 천장을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요."

 

"그나저나 어쩌죠? 저 그림을 떼어낼 방법이 없으니 힌트도 알수 없잖아요."

 

"정말 곤란하네요. 마치 이번 힌트는 버리라는 말 같아요."

 

 

 

 

 

 

H 는 치밀하고 빈틈이 없지만 때로는 이렇게 간사한 면모를 보였다.

 

문제를 살짝 비틀어 놓는다던가 분명 힌트를 남겼음에도 지금과 같이 손에 넣을수 없는 그림의 떡으로

 

만들어 버려 사람을 열받게 한다던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못먹는 감 쳐다보듯 하던 네 사람이 고개가 아플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료가 서둘러 사람들을 재촉했다.

 

순화도 지쳤는지 문을 두들기는것을 멈춘채 깔깔대며 혼자 웃고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네요. 답을 조합하는것도 어려울텐데.."

 

 

 

 

 

 

료가 초초한 얼굴로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자 지용이 입을 열었다.

 

 

 

 

 

 

"뭉크의 절규는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다들 아실꺼에요. 형체가 불분명한 남자가 양 뺨을 손으로

 

움켜잡은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듯한 그림이에요."

 

"혹시.. 그 그림 스크림에 나왔던 살인마같은 얼굴 아닌가요?"

 

"맞습니다. 동팔씨. 비슷한 형상의 그림이에요."

 

"아!"

 

 

 

 

 

 

동팔이 꽤나 적절한 표현을 하자 승현과 료도 알것 같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림의 제목은 절규.. 그들은 생각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지용은 문득 스치고 가는 생각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이거.. 말이 안 될수도 있는데요.. 혹시 그 그림 지하실에 있는거 아닐까요?"

 

"네?"

 

"절규하는 그림을 떠올려보세요. 그림안에 힌트가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앞에서 절규의 비명을 지른

 

사람은 단 한사람밖에 없어요."

 

"상훈씨 말인가요?"

 

"네. 진주씨는 활을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기 때문에 비명같은걸 지를 틈이 없었죠. 하지만 상훈씨는

 

몸이 얼어붙으면서 끔찍한 비명을 질렀잖아요. 우리가 산장에 들어와서 그런 비명을 들은건

 

그때가 처음이구요."

 

"지용씨! 그럴듯해요. 아무리 뒤져도 산장 안에 그림이 없는것으로 보아 가능성 있는 말이네요!"

 

"그럼 들어가볼까요?"

 

"전 싫습니다! 그 넓이 뛰기를 또 하란 말입니까?"

 

 

 

 

 

동팔이 질색하고 나서자 지용은 따라 들어가지 않아도 좋으니 문 여는것만 도와달라며 그를 달랬다.

 

동팔은 나름대로 고민하고는 몸을 일으켜 시계를 맞추고 문을 밀기 시작했다.

 

네명이 달라붙어 힘겨루기를 하자 다시 시계의 문이 열렸고 끔찍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계단이

 

눈앞으로 가득 펼쳐졌다.

 

지용은 승현을 입구에 세워둔 채 료와 같이 안으로 들어섰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화면도 꺼져있었고 문도 잠기지 않아 쉽게 열렸다.

 

여전히 어두운 조명에 눈이 아팠지만 문을 열자마자 방 한가운데 그들이 애타게 찾던 그림이

 

반가운 모습을 드러냈다.

 

지용은 서둘러 방의 바닥을 내리쳐봤지만 함정이 작동되지 않는듯 바닥은 열리지 않았고 혹시라도

 

질소가스가 새어나올까 염려한 그는 빠른 걸음으로 그림을 집어들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무사히 그림을 가지고 산장으로 되돌아온 지용과 료는 그림을 내려놓고 힌트를 읽었다.

 

뭉크의 절규 안에는 벤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글자가 페 - 안식 - 에스텔 - 파라 옥시 - 논 - 향산 - 벤 이렇게 7개입니다.

 

천지창조에 있는 글자를 알수 없으므로 이것만을 가지고 답을 맞춰야 한다는거에요. 순서 힌트가

 

뭐였죠? 불러주실래요. 동팔씨?"

 

"네. 그들의 그림을 묶어 한권의 책으로 낸다면 이렇게 표기할 것입니다.. 라고 씌여있네요."

 

 

 

 

 

 

동팔이 힌트를 큰소리로 불러주자 료가 웃으며 말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알아낸것처럼 기뻐했다.

 

 

 

 

 

 

"이거 너무 쉽잖아요. 책으로 내면 어떻게 표기하겠어요? 가나다 순이죠."

 

"아.."

 

"모든 책에 순서는 알파벳이나 가나다 같은 자음 순서잖아요."

 

"그런데 어떤게 답이죠? 화가 이름? 작품 이름?"

 

"제가 볼때 화가는 별 의미 없는것 같아요. 모든 힌트가 작품 안에 있었잖아요."

 

"그럼.. 첫번째가 기억의 연속. 두번째는 꿈. 세번째가 만종이고 네번째가 베아트리체. 그 다음은

 

절규... 그런데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은 둘다 ㅊ 인데 어느것이 먼저죠?"

 

"모음의 순서를 보면 되요. ㅓ 가 ㅚ 보다 앞에 오는 모음이니까 천지창조가 먼저에요."

 

"그럼 기억의 연속 - 꿈 - 만종 - 베아트리체 - 절규 - 천지창조 - 최후의 만찬 - 흰소 순이군요?"

 

 

 

 

 

 

동팔이 순서대로 작품을 나열하자 승현은 그 순서에 힌트를 대입시켰다.

 

그러니 비로소 자신이 알것 같았던 단어가 하나로 이어짐을 알았다.

 

 

 

 

 

 

"파라 옥시 - 안식 - 향산 - 에스텔 - 벤 - ? - 페 - 논 순이네요. 아! 속시원해."

 

"근데 왜 순서대로 이어놓아도 난 모르겠는걸까?"

 

"4개씩 끊어 읽어야 하나보네요. 뒤에 것은 저도 모르지만 앞에 것은 알아요."

 

"정말?"

 

"네. 료형..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텔. 이것은 보존제에요. 제가 화장품 설명서에서 읽은적이 있어요.

 

이것은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해주는 보존제지만 피부자극과 함께 인체에 해를 미치는 물질이라서

 

식약청에서 지정표시 성분으로 첨가량을 엄격히 규제한다고 했어요."

 

"화장품에 별게 다 들어가는구나?"

 

"제가 화장품을 잘못 발라서 독이 오른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세하게 알아봤었어요.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텔은 안식향산에 따라 위치에 에스텔 결합으로 붙은 기가 무엇인지에 따라

 

메칠- 에칠- 프로필- 부틸 로 나뉘어져요. 모두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텔 류라고 볼수있죠.

 

방부력과 인체독성은 부틸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프로필, 에칠, 메칠 순이구요. 물에 녹는 성질은

 

그와 정반대로 진행되요. 메칠이 가장 잘 녹고 부틸이 잘 안녹죠."

 

"승현이 넌 뭐하다 왔길래 그렇게 아는게 많니?"

 

"잡 지식이라고 해주세요~"

 

 

 

 

 

 

료의 질문에 승현이 가볍게 웃어 넘겼다.

 

동팔은 그의 설명을 가만히 듣더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냈다.

 

 

 

 

 

 

"에이! 뭔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아무튼 그러면 답이 화장품 아닙니까? 승현이가 화장품에서

 

봤다면 답은 화장품이겠네요. 현대 사회인이라면 누구든 쓰고 있고 인체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해롭기도 하고.. 정답을 화장품으로 합시다."

 

"그런데요. 그때 제가 자세히 알아보긴 했는데 저 뒤에 벤?페논? 이건 처음 듣는 이름이에요.

 

화장품마다 성분이 다른지도 모르지만 저런 비슷한 이름은 없었거든요."

 

"그래도 저 천장의 그림을 떼어올수도 없고 달리 방법이 없잖아. 벌써 10시 넘었다."

 

"정말 문제 어렵네요."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그들의 머리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컴퓨터도 없는 상태에서 이정도까지 맞출수 있다는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료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한시간 조금 넘게 남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며 계속 답에 대해 생각했다.

 

승현은 혹시나 순화가 화장품을 들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가~ 이리온~ 누나랑 같이 놀자~"

 

"순화누나. 노는건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해요."

 

"어서 오렴.. 누나가 같이 놀아줄게.."

 

"......................"

 

"빨리 와! 안오면 죽일꺼야!"

 

 

 

 

 

 

승현이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이리저리 살피며 화장품을 찾아내자 순화는 뒤에서 승현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소리질렀다. 머리가 통째로 뽑힐것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그녀의 화장품 표시성분을

 

확인했지만 역시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텔만 눈에 띌뿐 벤으로 시작하는 이름은 찾을수가 없었다.

 

 

 

 

 

 

"누나! 아파요! 이거 놔요!"

 

"진주언니~ 내가 강아지 잡았어~ 빨리 와~ 나랑 같이 놀자~"

 

 

 

 

 

 

미친사람은 힘이 세다고 했던가?

 

무서운 힘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순화의 손에 한움큼 머릿카락이 뽑히고 나서야 승현은 겨우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토록 온화하고 착했던 순화가 정신 나간 모습으로 웃고있으니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이윽고 11시 30분을 알리는 자명종의 울림이 한번 진하게 울리자 컴퓨터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알아낸 답은 하나. 문제가 너무 어려워 더 이상 답을 추리해 내는것도 불가능했다.

 

동팔은 어울리지 않게 잔뜩 긴장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신의 독수리 타법이 혹시 다른 키를 누를까봐 마음속으로 익숙하지 않는 자판을 훑어가며 화장품

 

이라는 단어를 눈에 익히고 있었다.

 

 

 

 

 

 

"동팔씨. 어서 답을 써봐요."

 

"이거.. 틀리면 어쩌죠? 무섭네요.."

 

"방법이 없잖아요. 저 신경쓰지 말고 어서 쓰세요."

 

 

 

 

 

 

료가 동팔의 어깨를 살작 쥐며 재촉하자 동팔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답을 써넣기 시작했다.

 

 

 

 

 

 

 

정답자 이름 : 동팔

 

정답 : 화장품

 

 

[Enter]

 

 

 

 

 

 

-Not Clear-

 

 

 

 

 

 

"아..."

 

 

 

 

 

 

역시 예상대로 오답이었다.

 

다른때와는 달리 시간이 부족한것이 아니라 문제가 어려워 답을 떠올릴수 없는것에 한탄하며

 

동팔은 그대로 얼굴을 키보드로 묻어버렸다.

 

료의 심장도 미친듯이 박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순화가 갑자기 웃으며 들어오더니 무언가 끈적하고 차가운 액체를 정신없이 날렸다.

 

 

 

 

 

 

"누나! 뭐하는거에요!"

 

"내가 같이 놀자고 했잖아! 이건 벌이다! 히히히.."

 

 

 

 

 

 

그녀는 언제 식당으로 들어갔다 왔는지 케찹을 들고 들어와 물총처럼 승현에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온몸이 붉은색으로 범벅이 된 승현이 버럭 화를 내자 지용은 재빨리 그녀의 손에서 케찹을 빼앗은 후

 

승현에게 외쳤다.

 

 

 

 

 

 

"순화씨는 형이 잡고 있을테니까 어서 방으로 돌아가서 옷 갈아입고 씻어."

 

"그래도 어떻게 지금 갈수 있어요. 끝나고 갈께요."

 

"형말 들어. 어짜피 답이 떠오르지 않기는 마찬가지야."

 

"네. 그럼 금방 올께요."

 

 

 

 

 

 

승현은 옷에 잔뜩 물든 빨간색 캐찹이 피같다는 생각에 몸을 떨며 곧권지용의 방에 딸려있는 욕실로

 

향했다. 여벌의 옷도 이미 그의 방에 옮겨놓았기 때문에 바로 갈아입고 대충 씻고 나올 생각이었다.

 

욕실로 들어가자 문을 잠그고 빠른 속도로 옷을 벗은 승현은 샤워부스로 다가가 물을 틈과 동시에

 

미끌거리는 뭔가를 밟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비누가 떨어져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 다친곳은 없었지만 그가 넘어지면서 팔을 허우적거린 탓에 옆에 세워두었던 샴푸와 샤워코롱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승현은 엉덩이가 아픈지 손으로 문질러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게 뭐야.. 오늘 하루종일 되는 일이 없네..."

 

 

 

 

 

 

그는 몸을 수습해 일어난 다음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그리고 바닥에 정신없이 굴러다니는 샴푸와 샤워코롱을 정리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때..

 

문득 샴푸의 뒷면에 있던 설명서가 강하게 눈을 파고 들었다.

 

 

 

 

 

 

*표시성분 :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텔. D- 벤조페논, 황색 4호 황색 5호 허브 추출물......

 

 

 

 

 

 

-모르니? 같은 샴푸를 쓰더라도 사람마다 나는 향이 달라. 각자의 체취가 다르기 때문이야.

 

 

 

 

 

 

그때서야 지난 밤 지용이 한 말이 떠올랐다.

 

정답은 샴푸였다.

 

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몸을 깨끗이 해주는 이로운 일을 하면서도 독성이 있어 해롭기도

 

하고 사람을 기억하는 수단중 하나인 향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승현은 씻던것도 중단하고 급하게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옷을 입은다음 정신없이 8번방으로 달려갔다.

 

 

 

 

 

 

"승현아? 씻고 나오라니까 그 꼴이 뭐야?"

 

"형! 답 알았어요."

 

"뭐?"

 

"샴푸가 답이에요! 빨리 써 보세요!"

 

 

 

 

 

 

동팔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반사적으로 정답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정답자 이름 : 동팔

 

정답 : 샴푸

 

 

[Enter]

 

 

 

 

 

 

-Clear-

 

 

 

 

 

 

"와! 정답이다! 정답이래요!"

 

 

 

 

 

 

동팔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자 그때서야 바닥에 부딧힌 통증이 되새겨지는지 승현은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버렸다. 시간이 초과될까 염려되어 정신없이 뛰었던 긴장이 지금에서야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의 몰골은 케찹과 물이 범벅이 되어 괴상망칙했지만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이 기쁜 마음에 잠시 긴장을 풀었을 그때.

 

순화가 갑자기 눈을 뒤집으며 웃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온통 흰자로 뒤 덮힌채 깔깔 거리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그들을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그들에게 보라는듯 그녀는 상상보다 빠른 걸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어나갔다.

 

 

 

 

 

 

"진주언니! 이히히히~ 같이가! 나만 혼자 두고 가면 미워할꺼야? 깔깔깔.."

 

 

 

 

 

 

진주언니라는 말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손 써볼 틈도 없이 진주의 방으로 들어간 순화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사람들이 방 안으로 들어섰을때는 이미..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커튼만 음산하게 허공으로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순화씨!"

 

 

 

 

 

 

-전 나중에 결혼해서 꼭 인형같은 딸을 낳을꺼에요. 정말 소중하고 예쁘게 키울 자신 있어요.

 

 

 

 

 

 

창문을 내려다보니..

 

그녀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싸늘한 인형처럼 변해버린 그녀의 주변으로는 천천히 잉크가 퍼지듯..

 

붉은 피가 번져나오기 시작했다.

 

 

 

 

 

 

 

 

 

 

 

 

 

 

 

 

 

 

-eight-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순화씨!!!!!!!!!"

 

"누나! 순화 누나!!!!!"

 

 

 

 

 

 

창 밖으로 떨어진 순화를 보고 모두들 정신없이 산장 밖으로 나갔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얼굴은 기쁜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섞인 뺨과 하늘을 향해 뻗은 가녀린 두 손은 숨이 끊어졌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싸늘히 식어있었다. 승현은 붉게 물든 그녀의 머리를 감싸쥐고 오열했다.

 

 

 

 

 

 

"순화누나! 빨리 눈 떠요! 눈 뜨란 말이야! 예쁜 딸 낳고 싶다면서.. 공주처럼 잘 키울꺼라면서!!!!"

 

"승현아.. 진정해.."

 

"그냥 추리시합이라면서.. 공포체험이라면서!!! 이렇게 사람을 죽게 만들고.. 미치게 만들고..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하냔 말이에요! 형! 내말이 틀려요?"

 

 

 

 

 

 

승현은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가며 절규했고 지용은 자신도 같은 처지이기에 특별히 해줄 위로가

 

없음을 깨닿고 주먹으로 땅을 치며 울고있는 승현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료는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떨어져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동팔은 입술을 꽉 깨물고

 

순화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었다.

 

언제나 상냥하고 나긋나긋했으며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순화의 죽음은 모두에게 있어서

 

가슴이 미어지는듯한 아픔과 더불어 극심한 충격.

 

동팔은 재빨리 상의를 벗어 그녀의 깨진 머리를 감싸고 두 팔로 안아올려 산장으로 들어갔다.

 

시체를 가까히 둔다는건 왠지 꺼림직했지만 그 동안의 정을 생각하면 도저히 차가운 바닥에

 

그녀를 방치해둘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순화를 침대에 바로 눕히고 감지못한 눈을 감겨주고 난 그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방으로 돌아갔다.

 

이번 쪽지는 지용의 방에 있었다.

 

 

 

 

 

 

 

*산장의 비밀. 제 5장*

 

네번째 주인공은 정 지용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인의 이름을 확인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동반자로는 이승현 님이 선택되었습니다.

 

정 지용 님이 정답을 맞추지 못할경우 이승현 님께서는 12시간안에 살해당하게 될것입니다.

 

참고하시고 최선을 다해 미션을 수행해 주십시오.

 

*Mission = 구슬을 맞춰 상자를 열고 상자 안에 있는 힌트가 의미하는 물건의 이름을 맞추시오

 

*Hint = 1. 구슬과 상자의 답이 일치하였을 경우 상자가 열리게 됩니다. 구슬의 위치가 바를 경우

 

파란색 불이 들어오며 위치가 잘못되었을 경우 붉은색 불이 들어오게 됩니다.

 

구슬은 21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번 상자안으로 들어간 구슬은 되돌릴수 없습니다.

 

답이 5개 이상 틀리면 상자는 열리지 않게 됩니다. 무리해서 열거나 던지면 상자가 폭발하게

 

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차갑고 푸른 빛은 정답을 불러오는 열쇠. 어둠속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내라.

 

정답 제출시간은 오후 11시 30분부터 30분간입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답을 입력할수 있는 기회는 한번 입니다. 정답이 입력되면 결과가 나온 후 자동 종료됩니다.

 

자세한 힌트와 설명을 드렸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지용이 마음속으로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한번도 정답자가 되본적 없는 자신이 정답자로 지목되었을때 동반자가 승현이 될 경우.

 

지용이 메모를 읽고 나머지 사람에게 돌리자 모두들 안색이 어두워졌다.

 

산장안에서 생활한지 6일째로 접어든 지금 머릿속에 담아둔 지식이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승현은 자신이 살인 명단에 올랐음에도 지용에게 걱정끼치지 않으려고 표정 관리를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고 지용은 그런 그의 행동에 말없이 어깨를 끌어 안아주었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 그렇게 참을 필요 없어.."

 

"아니에요.. 다들 한번씩 동반자의 명단에 올랐었잖아요.. 제가 조금 늦었을 뿐이에요.."

 

"어깨가 이렇게 떨리는데.. 목소리가 이렇게 떨리는데.."

 

"정답자가 형이잖아요. 괜찮아요. 저는 형을 믿으니까요."

 

"그래. 믿어줘.. 무슨일이 있어도 이 산장안에서 너 하나만은 지켜.. 반드시.."

 

 

 

 

 

 

료는 승현을 끌어안고 서서 귓속말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지용을 바라보고 서서 씨익 웃었다.

 

의미가 모호한 웃음이었지만 시선만은 진지했다.

 

그때. 아랫층으로 내려간 동팔이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세 사람은 그의 목소리에 2층 난간에 서서 아랫층을 내려다보았다.

 

동팔은 은색의 상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힘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이 상자 가지고 올라가서 보여주려고 했더니 무거워서 도저히 못 들고 올라가겠습니다!"

 

"무거워요? 제질이 뭔가요?"

 

"엄청나게 무거운 쇳 덩어리네요. 뭐 이리 무거워! 젠장.."

 

"동팔씨! 상자 떨어뜨리면 폭발한다고 했잖아요. 무거우면 그냥 탁자에 내려놓으세요. 위험해요."

 

"아차!"

 

 

 

 

 

 

동팔은 폭발한다는 말에 기겁하여 들고있던 상자를 조심스럽게 탁자위로 올린다음 서둘러 2층으로

 

올라왔다. 무게가 상당했는지 그의 양손은 피가 몰려 붉게 물들어있었고 푹 패인 자국도 선명했다.

 

 

 

 

 

 

"들고 올라와서 연구좀 해보려고 했더니 너무 무거워서 들리지도 않네!"

 

"동팔씨. 상자는 열어 봤어요?"

 

"열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버튼 하나로 열리는 상자인듯한데 괜히 열었다가 어이없게

 

카운트라도 작동되면 곤란하잖습니까. 이제 시간에 쫓기는 거라면 질색입니다."

 

"구슬 맞추기라면 퍼즐처럼 맞추는건가? 도저히 감이 안잡히네요. 가서 보고와야겠어요."

 

 

 

 

 

 

료는 상자의 내용이 궁금한지 몸을 돌려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1층을 향해 계단을 반쯤 내려가더니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는지 방향을 바꿔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낡은 산장 내부가 삐그덕 거렸다.

 

 

 

 

 

 

"그냥 내일 보는게 좋겠어요. 열려져 있는거면 몰라도 닫혀져 있는걸 열어보려니 좀 그러네요.

 

어짜피 지금 시작할것 아니죠? "

 

"마음 같아서는 당장 시작하고 싶지만 무리일것 같습니다. 모두들 수면부족에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는

 

실정인데 밤을 샌다는 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쉬고 나서 아침에

 

다시 생각해봅시다."

 

"그래요. 지용씨.. 승현아. 너 졸렵구나? 눈이 반쯤 감겼네?"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네요.. 제가 방해가 됬나요? 료형?"

 

"아니야. 우리도 이제 자야지."

 

"지금 시작 안하실꺼면 저 먼저 들어갈께요.."

 

"그래. 피곤했지? 어서 자."

 

 

 

 

 

 

승현은 그들을 한번 휙 둘러본 후 말없이 지용의 방으로 들어갔다.

 

동팔은 지용과 료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는 눈짓을 하고 천천히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에게 더 이상 나눌 대화는 없었다.

 

그저 남은 48시간을 무사히 보내 지긋지긋한 산장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수 밖에.

 

 

 

 

 

 

"승현아. 자니?"

 

"...................."

 

 

 

 

 

 

지용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엎드린 채 누워있는 승현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깊이 잠이 든듯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는 혹여 숨이라도 막힐까 몸을 돌려 눕혀 주고는 수건을 하나 챙겨들고 욕실로 향했다.

 

승현은 죽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누워있었지만 정말 잠이 든건 아니었다.

 

순화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자신이 살인명단에 오른것에 대한 긴장이 겹쳐져 잠시 정신을

 

놓은것 뿐이었다. 잠이 들기 직전 몽롱한 상태처럼 느끼고 들을 수 있지만 몸을 움직이거나

 

눈을 뜨기 힘든 상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승현은 축 늘어진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들었나보네.."

 

 

 

 

 

 

어렴풋이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워기가 내뿜는 시원한 물소리는 멈춘것 같지 않은데 몸이 붕 하고 뜨는 느낌이 들면서 어지러워졌다.

 

승현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은 듯 정체 모를 힘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

 

발자국 소리와 삐그덕거리는 문소리가 반복해서 머릿속을 울렸다.

 

잠시 후 공중에 떠 있던 몸이 다시 푹신한 무언가에 내려지는 느낌을 느끼곤 다시 외부 감각에

 

둔해진 채 멍한 어둠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간거지?"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지용은 침대위에 있어야할 승현이 보이지 않자 서둘러 뛰어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잠들었을지 몰라 조심스러워하며

 

승현의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없네.. 대체 어딜 간거야?"

 

 

 

 

 

 

자신이 욕실을 쓰고 있는 사이 깼다면. 승현 역시 욕실을 사용하고 싶어했다면 자신의 방 욕실에

 

있어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욕실은 물론 방안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용은 혹시 순화의 방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다시 그녀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침대위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순화의 시체 뿐이었다.

 

그는 진주와 상훈의 방에도 승현이 안보이자 복도 중간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남은건 동팔과 료의 방뿐인데 두드려서 깨운다면 방해가 될지도 모르므로.

 

지용은 우선 식당과 거실로 내려가서 승현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불과 몇분만에 그렇게 깊이 잠든 아이가 어디로 사라진거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승현은 말없이 함부로 사라질 아이가 아니다. 특히 지용의 곁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지용은 혹시나 무슨일이 생기진 않았나 염려되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료와 동팔의 방을 살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똑똑 -

 

 

 

 

 

 

"동팔씨. 자나요?"

 

"누구야!"

 

"놀라지 마세요. 정 지용 입니다."

 

"지용씨? 무슨일 생긴거요?"

 

 

 

 

 

 

동팔은 잠이 들었었는지 꽉 잠긴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문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지용의 방문에 놀랐는지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다.

 

 

 

 

 

 

"별일은 아니지만 승현이가 없어졌습니다. 혹시 이 방에 오지 않았나요?"

 

"에이.. 난 또 뭐라구요.. 그 녀석이 제 방에 올리 없지 않습니까? 절 징그럽게 싫어하는데."

 

"싫어하다니요. 그런건 아닙니다."

 

"저도 눈치는 있습니다. 저만 보면 노려보고 피하지 않습니까? 하하. 쬐그만게 날카로워서리..

 

아무튼 이 방에는 오지 않았어요. 지용씨."

 

"그렇군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깼죠?"

 

"잠이 깬건 상관없는데 심장마비 걸리는줄 알았수."

 

"미안합니다."

 

"아니요. 그나저나 지용씨. 마침 잘왔습니다. 내가 조금전에 이상한것을 발견했는데 한번 볼래요?

 

잠깐 들어오세요."

 

 

 

 

 

 

 

 

 

 

 

 

 

 

 

 

 

 

"날 선택해.. 넌 날 선택하게 될꺼야.."

 

"으음.."

 

 

 

 

 

 

캄캄했던 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오는것을 느낀 승현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힘겹게 눈을 떴다.

 

어렴풋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낀 그는 자신의 앞으로 가까히 다가와 있는 어깨를

 

힘껏 끌어앉으며 매달렸다. 안도감에 다시 눈을 감았다.

 

 

 

 

 

 

"형.. 내가.. 얼마나 잔거에요.. 벌써.. 아침이에요?"

 

"아직 아니야. 더 자."

 

"좋다.. 눈을 떠도 형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승현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어깨를 끌어앉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지만 만족감에 가득찬 그가 계속 매달려있자 상대방도 거부하지 않고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절대로 감출수 없는것이 사람의 체취라고 했던가.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던 승현의 코로 이질감이 가득 베어있는 향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킨치고는 독한 향. 체취는 전혀 묻어있지 않은 인위적인 향.

 

 

 

 

 

 

-그러고 보니.. 이 어깨의 느낌도.. 형이 아니야..!!

 

 

 

 

 

 

처음엔 후각이 반응했다.

 

톡 쏘고 짙은 향의 스킨 냄새..

 

두번째로는 청각이 반응했다.

머리를 맴돌아 귓가를 스치는 미성의 목소리..

 

세번째는 촉각이 반응했다.

그의 것이라고 하기엔 골격이 뭔가 어설픈..

 

그리고 마지막이 되서야

머리가 반응했다.

 

 

 

 

 

 

"누구야!"

 

 

 

 

 

 

승현은 정신이 번쩍 들어 재빨리 자신이 안고 있던 어깨를 힘껏 밀치고 몸을 일으켰다.

 

눈을 감고있던 사이 눈물을 흘렸던지 말라붙어 뜨기가 어려웠고 초점도 희미했다.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자 상황이라도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한 승현은 온 몸의 신경을 눈으로

 

집중시켰다. 손 등을 들어 있는 힘껏 비벼댔더니 눈물이 흐를만큼 따가웠지만 조금씩 눈 앞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구분한건 미색의 머릿카락이었다.

 

 

 

 

 

 

"깼어? 더 자지 그랬어."'

 

"료..형?"

 

"나 처음봐? 뭘 그렇게 놀란 눈으로 쳐다봐."

 

"제가 왜 이방에 있는거죠? 어떻게 된 거에요?"

 

"네가 재워달라며 스스로 걸어들어왔잖아. 잠결이라 생각안나?"

 

"설마요.."

 

 

 

 

 

 

료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은 계속 잠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몸이 나른하고 피곤해서 누웠을뿐이다.

 

하지만 기억의 중간중간이 끊겨 이어지지 않는것을 보면 잠든것일수도 있다.

 

자신이 지용을 두고 스스로 료의 방으로 걸어 들어왔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실에서라면 제로. 아무리 잠결이라도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승현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는듯 멍하니 앉아 이리저리 눈을 굴려가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료가 상냥하게 웃으며 그의 곁으로 가까히 다가와 앉았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내가 거짓말 하는것 같아?"

 

"그런건 아니지만.."

 

"그리고 여기에서 자면 어때. 어짜피 네 방에선 잠을 자지 않잖아."

 

"그야.. 지용형과 같이 있고 싶으니까요."

 

"지용씨는 네게 있어서 뭔가 특별해?"

 

"......................."

 

"다른 사람하고는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는거야? 그래서 같이 생활하는거야?"

 

"특별하죠.. 좋아하니까요.."

 

"짝사랑이구나? 힘들겠다."

 

"네?"

 

 

 

 

 

 

료가 웃으며 짝사랑이라고 단정짓자 약간 당황한 승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웃으면 보이는 덧니와 나이보다 동안인 얼굴. 깨끗한 피부와 밝은 상아색의 머리는 미소년의 이미지인

 

료의 얼굴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아무런 감정없이 바라본 료의 얼굴은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가까히 다가온 그의 눈동자 속에는 평소와는 다른 묘한 깊이가 느껴져서 약간 부담스러웠다.

 

 

 

 

 

 

"지용씨가 그러더라구. 널 친동생 삼았으면 좋겠다구. 네가 부모님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산장에서

 

나가게 되면 동생이 되어달라고 할 계획이었나봐. 결혼해서도 계속 동생처럼 지내고 싶다더라.

 

지용씨는 정해진 약혼자가 있나봐. 그 나이에 벌써 약혼자라니.. 좋겠다."

 

"결혼.. 해서도..동생처럼.."

 

"아.. 내가 말실수를 한건가?"

 

"아니에요.."

 

 

 

 

 

 

승현은 료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아찔할만큼의 충격이 느껴졌다.

 

한번도 자신에게 들려주지 않았던 약혼자의 이야기.

 

 

 

 

 

 

-사랑한다고 말했어.. 날 사랑한다고 했어.. 키스하고 안아주기까지 했어.. 그런 형이 약혼자가 있다구?

 

 

 

 

 

 

믿고싶지 않았다.

 

원래 본인의 말을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소문따위는 믿지 않는 승현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료 한 사람만 은밀히 알고 있는 비밀같은 것.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에게는 사실과도 같은 착각이 들었다.

 

승현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한참을 침묵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료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쥐고 조용히 말했다.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야기를 꺼낸거 미안해."

 

"..........................."

 

"나는 안되겠니?"

 

"............................"

 

"널 좋아해. 처음 산장에 왔을때부터 좋아했어. 지용씨 대신 나는 안될까?"

 

"료형?"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이곳에서 무사히 나간뒤 계속 한국에 머무를 생각이야. 네가 내 마음을

 

받아준다면 늘 함께 있을게. 한국이 좋다고 하면 귀화하고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면 데리고 갈께.

 

절대 외롭게 하지 않을테니까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을래?"

 

 

 

 

 

 

 

 

 

 

 

 

 

 

 

 

 

 

"이것봐요. 이게 뭐라고 생각해요?"

 

"문 같은데요? 열리나요?"

 

"손잡이도 없고 틈도 좁아서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틈 사이로 동전을 밀어넣고 당겨봐도

 

열릴 생각을 안합니다. 이쪽에서는 안열리는것 같기도 하고.."

 

 

 

 

 

 

동팔의 방으로 들어선 지용은 천장 한 구석에서 작은 문 같은것을 발견하게 된다.

 

크기는 A4용지 정도였으며 언뜻 봐서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지용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상을 밟고 올라가 이리저리 살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열리는 문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자 그는 주머니속에 넣어둔 집 열쇠를 꺼내

 

틈 사이에 밀어넣고 세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역시 꼼짝하지 않았다.

 

 

 

 

 

 

"천장 위에서 열리게끔 되 있는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으면 안 열릴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별것 아닌데도 신경쓰이길래 지용씨에게 보여준거니 깊히 맘쓰지 마십셔."

 

"혹시 다른방에도 이런것이 있을까요?"

 

"글쎄요. 저도 발견한지 얼마 안되어서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가봐야겠습니다."

 

 

 

 

 

 

그냥 넘어가기엔 마음에 걸렸던지 지용은 몸을 돌려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밝은것이 싫어 켜놨던 작은 소등을 해제하고 전체등으로 바꾸자 방 안이 훤히 드러났다.

 

그는 책상을 밟고 올라가 천장을 살펴보았다. 역시 그의 방에도 같은 크기의 문이 존재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인가 보네요."

 

"위치가 책상 위입니까? 거참.. 자야하는데 잠깨게 만드네."

 

 

 

 

 

 

승현을 찾아야한다는 생각도 잠시 잊을정도로 강한 호기심을 느낀 지용은 동팔을 데리고 비어있는

 

다른 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방마다 책상의 위치는 제각각이었지만 조그만 문의 위치는 전부 책상 위에 위치했다.

 

지용과 동팔은 서로 말없이 한손으로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사람의 대화소리가 은근히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없어요.."

 

"........해도 ............수 없어.."

 

".............형!"

 

 

 

 

 

 

지용은 목소리를 듣고 번개같이 승현을 떠올렸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잠시 자신의 일을 잊고 있었던 그는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장소를 알아내기위해

 

귀를 귀울였다. 동팔도 뭔가를 들었는지 행동을 멈추고 협조했다.

 

위치는 료의 방이었다.

 

 

 

 

 

 

"이승현!"

 

 

 

 

 

 

지용이 재빨리 료의 방문을 열고 뛰어들어가자 침대위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승현과 그의 손목을

 

잡고 가까히 다가가 있는 료의 모습이 보였다.

 

동팔은 대수롭지 않게 책상쪽으로 다가가더니 천장을 살펴보았고 지용은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승현. 네가 왜 이곳에 있는거야?"

 

"형.."

 

"승현이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찾아왔어요. 그래서 오늘밤은 여기서 재울 참이었죠."

 

"누구 마음대로 말입니까?"

 

"누구 마음대로라니요? 지용씨. 지금 물건을 흥정하는것이 아닙니다. 승현이가 이곳에서 자고싶다고

 

직접 찾아왔는데 그것도 지용씨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료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지용의 눈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이야기하자 지용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한번 응시하더니 승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책상을 밟고 틈을 확인하던 동팔도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바닥으로 내려와 지용의 옆에 섰다.

 

 

 

 

 

 

"이승현. 네가 이곳에서 자고 싶다고 그랬니?"

 

".........................."

 

"왜 대답을 못해? "

 

"그런것 같아요."

 

"그런것 같다니?"

 

"정신이 없었거든요. 잘 기억은 안나지만 이곳으로 이동해온것은 맞아요. 그러니 제가 온것이겠죠"

 

"그때 료씨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지용씨. 지금 저의 알리바이를 캐물으실 작정입니까? 그 말투는 마치 제가 납치라도 해온것처럼

 

들리는게 기분이 썩 좋질 않군요. 너무 감정만 내 세우지 마세요."

 

"이봐요! 료씨!"

 

"정 지용씨. 제 이름이 한국식으로 표기되어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요. 료는 저의 이름입니다.

 

우린 그다지 친분이 깊은 사이가 아닌데 왜 계속 이름을 부르시는겁니까?

 

앞으로는 성을 불러주셨으면 좋겠네요. 일본인에게는 그것이 예의입니다."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니시키도상. 그럼 앞으로 니시키도상도 한국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둥

 

어설픈 교포 흉내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가자 승현아. 따라 나와."

 

"한번 료면 료지 이제와서 뭔 성을 부르라는 겁니까? 나 참.."

 

 

 

 

 

 

동팔이 료에게 불만섞인 말을 내뱉고 문을 나서자 승현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지용을 따라 나섰다.

 

그는 내내 손등으로 입술을 비벼대고 있었다.

 

료의 방을 나온 지용은 승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린듯 멍하니 입술만 비벼대는 승현의 행동에 의문을 품고 말을 꺼냈다.

 

 

 

 

 

 

"승현아. 왜 그래? 무슨일 있었어?"

 

"아니요.."

 

 

 

 

 

 

지용은 지하실에서 료가 승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승현이 그의

 

방에 있었다는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승현이 입술을 비벼대는 이유가 료가 기습적으로 그에게 키스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아직 눈채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지용의 방문앞에 서자 승현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그의 팔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오늘은 제 방에서 잘께요."

 

"왜 그래? 눈도 마주치지 않고.. 너 무슨일 있었지?"

 

"아니에요. 그냥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요."

 

"이유가 뭐니?"

 

 

 

 

 

 

쨍그랑 -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승현의 대답을 기다리던 짧은 공백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가

 

온 산장안을 울렸다.

 

놀란 지용은 재빨리 몸을 돌려 아랫층으로 내려갔고 소리가 생각보다 컸는지 동팔도 방문을 열고

 

재빨리 뛰어나와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승현은 멍청히 그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가 상황이 파악됬는지 뒤늦게 뛰기 시작했다.

 

 

 

 

 

 

"거기 서!"

 

 

 

 

 

 

지용이 어두운 1층 거실로 내려가자 마자 검은 그림자가 식당으로부터 튀어나와 산장문을 열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지용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그를 뒤쫓자 동팔과 승현도 산장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헉..헉..."

 

"지용씨! 무슨 일입니까?"

 

"매번 산장에 음식과 옷을 놓고가는 사람인것 같아요. 우리가 차를 타고 들어왔던 입구로

 

빠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온 이후로 막히지 않았습니까?"

 

"은으로 만들어진 철망 말입니까? 이건 열고 닫을 수 있는 장지가 되어있습니다. 그래야 차량이

 

드나들수 있으니까요. 조금 전 그 사람이 손으로 열고 나간후 다시 닫힌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은 전기가 흐르지 않겠군요?"

 

"잘 보세요."

 

 

 

 

 

 

지용이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은을 향해 휙 하고 던졌다.

 

그러자 불꽃이 파지직 튀면서 다시 그들의 앞으로 튕겨져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드나들고 있었군요.. 드나들땐 전기를 끊었다가 나가고 난 후에 다시

 

원 상태로 복구한다. 오늘 실수로 식당에서 무언가를 깬 덕분에 발견되었지만 늘 이런 늦은 시간에

 

몰래 드나들었군요.. 그러니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발견할수 없을 밖에요.."

 

"이건 어떻습니까? 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다시 이 함정을 보니까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세게 밀어

 

틈을 만든뒤에 빠져나갈수 있을것 같아요."

 

"저도 생각을 안해본것은 아닙니다만.. 틈을 만든다고 해도 망 자체가 워낙 세밀하게 만들어져있어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전부 무너질거에요. 은이 너무 얇아 틈이 벌어질동안 지탱해주지 못하는거죠.

 

높이가 어림잡아도 3M 이상. 매우 가벼워서 무너지는건 순식간. 한 사람이 희생해서 뚫어주지 않는

 

이상 힘들다는 결론입니다. 우린 더 이상 희생자를 내서는 안되요."

 

"이거.. 잠 안자고 잠복할수도 없고 난감할세.."

 

 

 

 

 

 

동팔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뒤늦게 도착한 승현은 아무말 없이 지용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이 아닌걸까.. 물어보고 싶지만 말이 안나와.. 만약 사실이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

 

 

 

 

 

 

서로 엇갈린 시선이 계속 되고 있었다.

 

갑자기 눈 앞으로 서늘할 정도의 날카로운 은색 물체가 번쩍- 하고 날아들자 세 사람은 반사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입니까?"

 

"썅.. 오늘 심장마비 걸려 뒤지겠네. 료씨! 이게 무슨 짓이요!"

 

"무슨 소리가 나길래 혹시 마스터 H 가 아닌가 해서 달려 나왔습니다."

 

"지금 들고 있는게 뭐요?"

 

 

 

 

 

 

료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여유있게 허리춤으로 밀어넣는 그것은 날이 길고 잘 빠진

 

일본도였다. 손질도 제법 잘 되어있어 어둠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났다.

 

다들 놀란 눈으로 칼에 집중하자 칼을 칼집에 밀어넣은 료는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산장에 왔을때 벽난로 위에서 발견한거에요. 꽤나 쓸만한 검이죠?"

 

"그걸 왜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말도 없이!"

 

"외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몸을 지킬수 있는 무기 하나정도는 가지고 있는게

 

좋지 않나요? 산장에 도착해서 어떤게 가장 좋을까 두리번 거리다가 챙겨둔것입니다.

 

아무래도 많이 접해본 것이 좋을것 같아서요. 검도를 했었기 때문에 도에는 익숙하거든요."

 

 

 

 

 

 

동팔이 료의 칼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화를 내자 지용이 앞으로 나섰다.

 

 

 

 

 

 

"한눈에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카타나(일본도)군요. 잘못 사용했다가는 큰일 나겠습니다. 니시키도상."

 

"후후.."

 

"지용씨. 저 칼은 뭐길래 저렇게 날카로운 겁니까?"

 

"칼에는 두가지가 있어요. 도와 검입니다. 도는 일본이나 한국같은 동양권에서 주로 사용하고 검은

 

유럽같은 서양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중세유럽의 전쟁에서는 병사들이 두꺼운 갑옷을 입었는데

 

그들을 찔렀을 경우 갑옷에 의해 칼날이 상할것 아닙니까? 그래서 검은 칼날을 약간 무디게 만듭니다.

 

반대로 도는 동양 무사들이 단칼에 적을 죽이기 위해 날카롭게 만든 칼이지요. 검은 찌르기 위한

 

칼이고 도는 베기 위한 칼입니다."

 

"칩입한 도둑 고양이보다 저 칼에 더 놀랬네! 당장 치워버리쇼!"

 

"후후.."

 

 

 

 

 

 

동팔이 료가 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계속 화를 내자 료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칼을

 

소중히 감싸쥐고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피곤했던 그들은 서둘러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지만 지용의 권유에도 승현은 결국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모두가 어수선한 마음으로 뒤척거리는 사이 어느덧 6일째의 아침이 밝아왔다.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이 구슬을 빈칸에 맞춰 넣으라는 말이죠?"

 

"글씨가 씌여있는데? 구슬은 나라 이름이고.. 상자에는.. 이게 뭐야?"

 

"건축물이네요. 유명한 건축물 이름이에요."

 

 

 

 

 

 

잠들지 못하고 날을 새다시피 한 4명의 남자들은 아침 일찍 상자가 있는 거실로 모여들었다.

 

모두의 앞에서 동팔이 버튼을 눌러 상자를 개봉하자 21개의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는 위 아래 두개의 칸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구슬이 들어있는 제일 윗칸은 쟁반처럼 들어올릴수

 

있게끔 되어있었다. 지용은 조심스럽게 구슬이 들어있는 칸을 상자에서 분리해냈다.

 

그 아랫칸은 가로 7칸 세로 3칸으로 이루어진 바둑판 모양의 상자였다.

 

각 칸마다 무언가가 적혀있었고 그 중 몇개로 미루어보아 그것은 건축물의 이름같았다.

 

 

 

 

 

 

-구슬 정보-

 

그리스 스페인 인도 터키 말리 칠레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페루 요르단 이집트

 

미국 멕시코 브라질 호주 캄보디아 일본 중국

 

 

 

 

 

 

-상자 정보-

 

오페라 하우스 마추픽추 이스터섬의 석상 아크로폴리스 콜로세움 고대도시 페트라 앙코르와트

 

알람브라 궁전 에펠탑 기자의 피라미드 기요미즈 사원 타지마할 노이슈반슈타인성 만리장성

 

자유의 여신상 성소피아 사원 스톤헨지 치첸이차 피라미드 팀북투 크렘린궁 그리스도상

 

 

 

 

 

 

"그러니까 이 건축물이 있는 나라를 짝지어 구슬을 넣으라는 것이군요?"

 

 

 

 

 

 

료는 가만히 문제를 바라보더니 호주라고 적혀있는 구슬을 오페라 하우스의 칸에 맞춰넣었다.

 

그러자 구슬이 푸른빛을 띄며 빛나기 시작했다. 상자에 센서가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정답임을 확인하자 그는 일본이라는 구슬을 집어들어 기요미즈 사원의 칸에 넣고 뒤이어 프랑스의

 

구슬을 에펠탑의 칸에 밀어넣었다. 두개 다 정답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기요즈미 사원이 일본의 건축물임을 모를리 없었다.

 

다른 사람 역시 이름만으로도 일본을 선택했을 터.

 

에펠탑 또한 이름만 들어도 나라를 떠올릴만큼 유명한 프랑스의 건축물이었다.

 

 

 

 

 

 

"다른건 모르겠고 아는거 두 가지 나왔네요. 하하.."

 

 

 

 

 

 

정답으로 맞아들어간 구슬이 파랗게 빛나고 있는것에 대해 관심있는 눈으로 지켜보던 동팔이

 

미국 구슬을 들어 자유의 여신상의 칸으로 툭 떨어뜨렸다.

 

자유의 여신상 역시 누구나 알고 있는 미국의 유명한 건축물이다.

 

자신이 맞춘 구슬이 빛나자 함박웃음을 띄우던 동팔은 중국 구슬을 집어들어 만리장성칸에 떨궜다.

 

머리를 굴리는 부분에서는 늘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뒤로 빠져있던 동팔은 비록 모두가 아는

 

문제였지만 스스로 동참을 했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해했다.

 

알고보면 동팔은 행동이나 말투는 험해도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었다.

 

순식간에 정답이 5개가 되었다.

 

 

 

 

 

 

"5개 이상만 틀리지 않으면 되는거죠? 저도 아는것 몇개 해볼께요."

 

 

 

 

 

 

지용은 구슬을 쭉 훑어보더니 그리스 구슬을 집어 아크로폴리스 칸에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

 

구슬이 푸른색으로 빛나는것을 확인하자 이탈리아 구슬을 집어 콜로세움칸에 맞췄다.

 

동팔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지용을 바라보았다.

 

 

 

 

 

 

"지용씨. 콜로세움이 원형 경기장이죠?"

 

"네. 맞습니다."

 

"로마에 있는거 아닙니까?"

 

"맞아요. 유럽 각지에 원형 경기장이 있지만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로마의 콜로세움 입니다."

 

"그런데 왜 나라가 이탈리아인거요? 그리스가 맞는거 아닙니까?"

 

"로마에 있는것이니 나라는 당연히 이탈리아죠. 이탈리아의 수도가 로마니까요."

 

"로마는 그리스 수도 아닙니까?"

 

"그리스의 수도는 아테네 입니다. 로마는 이탈리아 수도죠."

 

"헉.. 그럼 어째서 그리스로마 신화 라는 책이 나온거지? 여지껏 로마가 그리스 수도인줄 알았는데.."

 

"하하.. 동팔씨. 한때 유럽을 주름잡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 이름이 로마인데요

 

로마사람들은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를 짓는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 신화를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부르게 된것입니다. 이제 헷갈리지 마세요."

 

"이거 충격이네. 저 산장 들어와서 팔자에도 없는 공부 엄청 해가네요. 하하.."

 

 

 

 

 

 

동팔이 머쓱한듯 머리를 긁으며 웃자 지용도 그를 바라보며 웃더니 인도구슬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구슬을 타지마할 칸에 밀어넣으며 승현에게 물었다.

 

승현은 그때까지도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듯 멍한 모습이었다.

 

 

 

 

 

 

"이승현. 잠 못잤어? 눈이 빨갛네?"

 

"아니에요."

 

"멍하니 넋놓고 있지말고 너도 맞춰봐. 형이 확실하게 아는것은 여기까지다."

 

 

 

 

 

 

승현은 지용의 음성에 정신을 차리고 문제에 집중했다.

 

지용의 예상대로 한잠도 못잔터라 눈이 충혈되고 따가웠다.

 

승현이 손으로 눈을 비비며 구슬과 칸을 번갈아가며 훑어보는사이 동팔이 다시 질문했다.

 

 

 

 

 

 

"지용씨. 타지마할은 뭡니까? 왠지 많이 들어본 이름같은데.."

 

"타지마할은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뜻은 마할의 왕관입니다. 저도 이름은 잘 모르지만 무굴제국의

 

황제가 사랑했던 왕비 마할을 위해 세운것이라고 합니다. 약 22년간 나라의 재정이 기울어질만큼

 

거액을 들였다고 하네요. 저도 인도로 여행을 갔을때 잠깐 보긴 했는데 너무 아름다워요.

 

특히 달밤에 보면 돔 모양의 건물이 빛에 반사되어 감탄을 자아내죠."

 

"여기서 많은걸 알아뒀다가 사재로 나가면 대화의 질을 높여봐야지~ 종이에라도 적어가야겠어요."

 

"하하.."

 

 

 

 

 

 

지용이 동팔에게 타지마할에 대해 설명해주는 동안 승현은 손가락으로 남은 구슬들을 이리저리

 

밀고 당기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둘의 대화가 끝나고 다시 조용해졌음을 느낀 승현은 구슬을 집어 하나씩 맞추기 시작했다.

 

 

 

 

 

 

"페루 구슬은 마추픽추에. 성소피아사원은 터키에.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에 넣으면 되요."

 

"더 아는거 없니?"

 

"그리고 크렘린 궁은 러시아 그리스도상은 브라질이에요. 제가 아는건 이미 답이 된것을 제외하고

 

이렇게 다섯가지에요. 다른것은 긴가민가하네요. 조금 헷갈려요."

 

"그래도 많이 아는구나. 잘했다."

 

 

 

 

 

 

지용은 언제나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며 승현을 칭찬했지만 승현은 왠일인지 기뻐하지 않았다.

 

자꾸만 생각나는 료의 말에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까짓거 지용에게 속시원히 털어놓고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지만 역시 승현은 그 말이 사실일 경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놓고 묻기에도 조금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그들이 풀어낸 정답은 13개. 앞으로 8개만 잘 맞추면 1단계는 무사히 통과할수 있을것 같았다.

 

상자가 열린다는것으로 보아 제알 아래에 빈 공간이 있으리라.

 

빠른 진행에 용기를 얻은 동팔은 갑자기 이집트 구슬을 집어들더니 치첸이차 피라미드칸에

 

슬쩍 밀어넣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구슬은 오답인듯 붉은 색으로 빛났다.

 

료는 인상을 쓰며 짜증섞인 말투로 동팔에게 말했다.

 

 

 

 

 

 

"동팔씨. 정확하지도 않은 구슬을 상의도 없이 넣으면 어떻게 해요?"

 

"이집트라고 하길래 피라미드에 넣은것 뿐인데.."

 

"문제 좀 자세히 보세요. 피라미드가 두개에요. 치첸이차 피라미드와 기자의 피라미드요."

 

"이런.."

 

"우리 중 누가 이집트 피라미드를 모르겠습니까? 피라미드가 두개니까 섣불리 맞추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이게 틀렸으니 기자의 피라미드도 오답이라고 봐야겠네요. 한번 들어간

 

구슬은 나오지 않으니까 한번에 두 문제를 틀린 꼴이에요."

 

"거 미안하게 됬수. 하지만 표정이 어째 거슬립니다. 료씨?"

 

 

 

 

 

 

동팔은 료의 말투가 귀에 거슬렸는지 발끈하고 나섰다.

 

물론 잘못은 신중하지 못했던 동팔에게 있으나 사람을 약올리듯 슬슬 비꼬는 료의 말투는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지용이 말없이 동팔에게 눈짓을 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지만

 

동팔은 여전히 분을 삭히지 못해 얼굴이 붉히고 있었다.

 

8 문제중 2 문제를 틀렸으니 남은 문제는 6개.

 

마스터 H 가 낸 문제는 21개의 세계유산에 관한 것이므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건축물들이다.

 

단지 건축물과 나라를 연결하는 부분에서 약간 헷갈리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6개를 가지고 점심나절까지 진전이 없자 동팔은 건축물의 이름을 보고 느껴지는 나라를

 

찍어보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괜히 또 실수할까봐 말은 하지않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구슬들을 흔들어댔다.

 

 

 

 

 

 

"6개 남았는데 막히네요. 이중 3개만 맞춰도 상자 열수 있는거죠?"

 

"동팔형. 다섯개 이상이라고 했어요. 그러니 5개부터 안 열린다는 말이에요. 4개를 맞춰야해요."

 

"그런가?"

 

"네. 이스터섬의 석상.. 남 아메리카 어디였는데 떠오르지가 않아요. 이 문제가 위험한게요..

 

한 문제를 틀리면 답이 두개가 엇갈리기 때문에 두 문제를 틀린꼴이 되요. 앞으로 하나만 더 틀리면

 

기회는 영영 없어져요."

 

 

 

 

 

 

승현이 이스터섬의 석상을 두고 고민하자 지용이 고개를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승현아. 이스터섬의 석상이 남 아메리카라구?"

 

"네..."

 

"그럼 답은 칠레잖아. 뭘 고민해?"

 

"그런가요?"

 

"왜 그래?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는거야? 남은 나라는 여섯개야. 말리와 요르단. 캄보디아. 독일

 

영국. 칠레 이렇게 여섯나라. 그 중 남 아메리카라면 칠레밖에 없잖아?"

 

"아.."

 

 

 

 

 

 

승현은 지용의 말에 재빨리 칠레 구슬을 집어 이스터섬의 석상칸에 맞췄다.

 

구슬이 푸른빛으로 밝게 빛났다.

 

지용은 승현이 아무래도 이상해보였다. 여지껏 문제를 푼다는 핑계로 묵인하고 있었지만 아는 문제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팔려있는 승현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는 료가 자신에 대해 말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방에 있을때 무슨 일이 있었다고

 

짐작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드니까 자신이 료의 방으로 들어섰을때 승현이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문뜩 기분이 나빠져 료를 바라보았다.

 

그는 전혀 아무일 없다는듯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승현이 무슨 말을 해줄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으나 마음을 바꿨다.

 

 

 

 

 

 

"승현아. 잠깐 나좀 보자."

 

"네? 왜요?"

 

"따라와.."

 

 

 

 

 

 

지용은 승현의 손을 억지로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자 문을 잠구고 어깨를 붙잡고 벽으로 몰아 세우며 강한 시선을 보냈다.

 

 

 

 

 

 

"역시 무슨일 있지? 말해봐."

 

"없어요.. 형.."

 

"내 눈 똑바로 쳐다봐. 분명 무슨일이 있었어. 나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셈이야?"

 

".................."

 

"말해봐. 네가 넋 놓고 있으니까 나까지 불안해지잖아.. 어서.."

 

 

 

 

 

 

그의 행동이 거칠었는지 잡고 있는 어깨가 살짝 떨렸다. 응시하는 시선이 못 견디게 강했다.

 

승현은 잠시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다가 어짜피 풀어야할 이야기라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료 형에게 고백을 받았어요. 저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

 

"억지로 키스 당했지만 필사적으로 저항했어요. 그것밖에 없어요."

 

"저 자식이.."

 

"형.. 저를 동생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나요?"

 

"무슨 소리니?"

 

"약혼자가 있다면서요.."

 

"료가 말해준거야?"

 

"역시..사실인가보네요."

 

 

 

 

 

 

가슴이 찌를듯 아파오자 승현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지용은 다급히 그의 손목을 움켜쥐며 잡아세웠다.

 

 

 

 

 

 

"약혼자가 있어. 집안에서 어렸을때부터 정해준 약혼자야."

 

"어짜피 결혼하실꺼면서 왜 저에게 기대를 갖게 했어요! 동생으로 있어달라구요? 전 그럴 수 없어요!

 

생각보다 욕심도 많고 소유욕도 강해서 형이 다른사람에게 가버린후에도 태연하게 동생같은거

 

할수 없다구요! "

 

"승현아.. 내말 좀 들어봐.."

 

"기대했는데..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기만 한다면 형이 곁에 있어줄꺼라고 기대했는데.."

 

"왜 울어? 진정하고 내말 들어."

 

"전.. 동생같은거.. 할수 없단 말이에요.."

 

 

 

 

 

 

승현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지용은 잡고 있던 팔을 잡아당겨 그를 품에 안았다.

 

그리곤 미끄러지듯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은 자세를 취한다음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소리 하는거야. 네가 왜 동생이야.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 상대는 너 하나뿐이야.. 약혼자 이야기는

 

무심코 흘러가는 말중에 나온것 뿐이야.. 이런 너를 동생으로 둔다는건 나 역시 싫어.."

 

"...................."

 

"승현아. 사랑해온 시간이 짧다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가벼운게 아니야.. 일초를 한 시간 같이

 

여길만큼 마음속 깊이 널 좋아하고 있어.."

 

"...................."

 

"이미 머릿속은 한 사람으로 가득차서 다른 생각을 할수 없고 가슴은 그 생각을 표현하기도 벅차.

 

그 상대가 너 하나뿐인데 그런 네가 날 못믿으면 어떻게 해.."

 

"형................."

 

"그러니 쓸때없는 생각 말고 가서 문제풀자. 이제 이틀 남았다 힘내야지."

 

"사랑해요........"

 

"갑자기 쑥스럽게.."

 

"사랑해요........"

 

"그 마음 이상으로 나 역시 널 사랑한다.. 승현아.."

 

 

 

 

 

 

지용은 허리를 끌어앉은 자세 그대로 한참을 말없이 멈춰있었다.

 

오해가 풀리니 정지했던 사고가 제 자리를 찾으며 막혔던 문제에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아랫층으로 내려온 승현은 재빨리 구슬이 담긴 상자로 달려갔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개운해지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들어왔다.

 

그는 영국 구슬을 집어들며 환하게 웃었다.

 

 

 

 

 

 

"영국은 스톤헨지에요. 아까는 보지 못했네요."

 

"꼬맹이.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네? 아까와는 다른걸?"

 

"헤헤~"

 

 

 

 

 

 

동팔이 웃으며 승현에게 말을 걸자 그에게 까칠하게 굴었던 평소와는 달리 승현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료는 그런 승현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지만 당사자는 문제를 생각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오히려

 

지용이 날카로운 눈으로 료를 바라보고 있었다.

 

간밤에 일어난 미심쩍은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다 승현에게 그런 짓까지 서슴치 않았던 그인지라

 

지용의 심기도 꽤나 불편해져있는 상태였다. 단지 때가 아니라 적당히 참고있을 뿐.

 

승현은 손목을 매만지면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독일 구슬을 집어들어 노인슈반슈타인성 칸에

 

밀어넣었다. 구슬은 정답을 알리는 밝은 푸른빛을 띄었다.

 

 

 

 

 

 

"이제 요르단. 말리. 캄보디아. 세개 남았네요. 더 이상은 모르겠어요."

 

"이제부터는 운에 맡겨야 한다는 소린가?"

 

"만약 하나가 먼저 맞아준다면 나머지 두개에 상관없이 상자가 열릴꺼에요. 하지만 하나를 먼저

 

틀리게 되면 남은 두개중 하나는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요."

 

"위험하군.."

 

"어쩌죠? 어떻게 해볼까요?"

 

 

 

 

 

 

그들은 남은 세개의 구슬을 가지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서로 토론한 결과 다른건 몰라도 고대도시 페트라와 앙코르와트 둘중 하나가 요르단이라는 것.

 

잘 선택하면 좋지만 잘못 선택시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다들 선택을 피하고 있었다.

 

지용은 승현의 목숨이 달린 문제인지라 어느때보다도 심각했다.

 

시간이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음에도 다들 선뜻 결정하지 못하자 승현은 늘 가지고 다니는

 

종이를 반으로 찢어 O X 로 표시한다음 여러번 접었다.

 

 

 

 

 

 

"아직 상자가 열리지 않은 상태라 얼마나 많은 문제가 남아있을지 모르는데 여기서 시간을 보낼수는

 

없어요. 지용형이 이 종이를 잘 섞어서 던져주세요. 제가 하나 뽑을께요."

 

"그건 위험해.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보자."

 

"괜찮아요. 아는데 생각이 안나는 문제가 아니라 다들 모르는 문제에요. 매달려봤자 떠오를것이 없어요.

 

선택할꺼면 빨리 하는게 좋아요.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최악의 상황이 생겨도 대책을 세우죠."

 

"네 목숨이 달린거야.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되."

 

"제게 생각이 있어요. 한가지 답이 확 와닿았거든요. 그러니 걱정마세요."

 

 

 

 

 

 

승현이 밝게 웃으며 구슬을 바라보자 지용은 마지못해 종이를 섞은뒤 탁자위로 뿌렸다.

 

그러자 승현은 요르단 구슬을 집어든채로 종이를 한장 골라 그곳에 적혀진 앙코르와트 칸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오답이었는지 구슬에 붉은 빛이 돌았다.

 

 

 

 

 

 

"이런..오답이네."

 

"이제 하나는 반드시 맞춰야해요. 틀릴수 있는 기회는 다 사용했어요."

 

 

 

 

 

 

료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승현은 말없이 말리 구슬을 집어들었다.

 

 

 

 

 

 

"요르단의 짝이 고대도시 페트라 아니면 앙코르와트라고 생각했어요. 앙코르와트가 오답이니

 

요르단의 짝은 고대도시 페트라가 되겠죠? 이것때문에 다른 사실 하나를 더 알아낼수 있었어요.

 

남은 캄보디아와 말리중 하나가 팀북투의 짝이라는 거죠."

 

"50%의 확률이군.."

 

"정했어요. 팀북투는 말리에요."

 

"어감이 캄보디아 같지 않아?"

 

"료형. 이번에는 제 뜻대로 하겠어요. 틀려도 죽는사람은 저니까요."

 

"그러니까 걱정하는거야."

 

 

 

 

 

 

료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 보였지만 승현은 자신의 느낌을 믿었다.

 

그는 조심히 말리 구슬을 팀북투 칸에 밀어넣었다. 손에 땀이 베어났다.

 

 

 

 

 

 

"정답이란다! 꼬맹아!"

 

 

 

 

 

 

동팔이 두껍고 큰 손바닥을 마주치며 기뻐하자 그제서야 승현도 안도했다.

 

잠시 기다리니 상자 바닥이 위로 열리며 숨겨진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슬은 한번 들어가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모양인지 바닥이 들려도 붙어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물건을 예상했지만 시시하게도 그 안에는 종이 한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성격 급한 동팔은 재빨리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어 펼쳐들었다.

 

 

 

 

 

 

"마스터 망할놈.. 종이에 글씨 써 재끼는건 드럽게 좋아해요."

 

"뭐라고 써있나요?"

 

"이게 무슨뜻이죠? 달랑 두줄이네?"

 

 

 

 

 

 

뜻을 몰라 인상을 쓰던 동팔은 모두가 볼수 있게 종이를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그의 말대로 넓은 종이 안에 간단한 힌트가 달랑 두줄 뿐이었다.

 

 

 

 

 

 

*천상의 눈물 / 1000 Ha*

 

*대지의 슬픔 / 60~80 Km*

 

 

 

 

 

 

"이게 끝이야? 뭐 힌트가 이리 성의없어! 지용씨 Ha 가 뭡니까?"

 

"헥타르 입니다. 1만 제곱미터를 의미하죠."

 

 

 

 

 

 

문제가 생각보다 난감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이것저것을 생각할수 있을 정도의 비교적 정확한 힌트가 주워졌었는데

 

이번 힌트는 처음부터 짐작조차 할수 없는 어려운 것이었다.

 

끼니를 놓쳐 허기가 진 그들은 배를 채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간밤에 놓친 검은 그림자가 두고간듯한 음식이 식탁위에 가득 놓여져 있었다.

 

동팔은 손수 지은 따뜻한 밥이 먹고 싶다며 투덜대며 꾸역꾸역 빵과 음료수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으며

 

료는 컵라면을. 지용과 승현은 포장되어있는 덮밥을 전자렌지에 돌려 먹었다.

 

다들 문제푸는데 정신이 팔려있었기에 식사가 늦어져 오후 3시를 넘기고 나서야 다시 거실로

 

모여들어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천상의 눈물.. 대지의 슬픔이라.."

 

"하늘과 땅을 의미하고 넓이와 속도를 나타내는 무엇?"

 

"모르겠네요. 범위가 너무 넓어요."

 

 

 

 

 

 

지용과 료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사이 승현은 산장 이곳저곳을 살피고 돌아다녔다.

 

가만히 앉아있을 바에야 조금이라도 떠올릴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때 동팔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큰 소리로 승현을 불렀다.

 

 

 

 

 

 

"승현아. 현관문 좀 열자. 환기를 안 시켰더니 답답해서 못 살것다."

 

"네."

 

 

 

 

 

 

동팔의 부탁으로 승현은 현관으로 다가가 문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문 열라니까 뭐해?"

 

"형들.. 답 알것같아요!"

 

"뭐라구?"

 

 

 

 

 

 

승현이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모두들 그가 있는 현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승현은 현관문 양쪽으로 달려있는 손잡이를 잡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문 손잡이 장식이 답이에요. 한쪽에는 사자의 머리가 조각 되어있죠? 이것이 대지의 슬픔인것 같아요."

 

"대지의 슬픔과 사자가 무슨 관련있지?"

 

"대지는 땅이잖아요. 땅에서 60~80 Km 의 속력을 낼수있는것. 사자는 평균 시속 60 Km 에요.

 

최고 속력을 내어 먹이를 쫓을때는 80 Km 까지도 달린다고 해요. 땅에서 그렇게 달릴수 있는것은

 

자동차 아니면 사자같은 맹수류 뿐이에요."

 

"그렇구나."

 

"그리고 반대편에는 독수리의 머리가 조각되어있죠? 이것이 천상의 눈물이에요. 1000 Ha 를 단순히

 

넓이로만 생각했는데 독수리가 답이라면 이것은 독수리의 시야가 되요. 독수리의 시야는 인간이

 

상상할수 없을만큼 넓거든요. 결론적으로 하늘에 독수리가 한 마리만 떠있어도 여의도 3~4배에

 

달하는 지역의 먹이감들은 모두 포위망 안에 들다는거죠."

 

"역시 똑똑하구나! 꼬맹이!"

 

 

 

 

 

 

승현의 말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자 동팔은 기쁜 얼굴로 문을 열어 재꼈다.

 

료는 금색으로 빛나는 손잡이를 이리저리 살펴가며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손 끝이 독수리의 눈동자에 닿았을때 동그란 눈동자가 스르르 아래로 내려가더니

 

작은 구멍이 생기며 눈끝에 매달렸다.

 

료는 재빨리 사자의 눈도 눌러보았다.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눈동자가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

 

 

 

 

 

 

"이게 정답이 맞는 모양이네요! 눈동자 부분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작은 구멍이 생겼어요. 눈 끝에

 

눈동자였던 동그라미가 매달리니 꼭 눈물을 흘리는것 처럼 보이네요. 그래서 천상의 눈물과

 

대지의 슬픔이었나 봅니다."

 

 

 

 

 

 

그가 한쪽 눈을 감고 사자의 눈 구멍 안을 들여다보자 지용도 독수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뭔가 생각나는게 있는듯 동팔에게 비켜 설것을 부탁했다.

 

 

 

 

 

 

"잠깐만 문을 닫아야겠어요."

 

"왜 그래요? 지용씨?"

 

"떠오른게 있어서요. 동팔씨 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안으로 들어와보세요."

 

 

 

 

 

 

지용이 꾸물거리는 동팔을 안으로 밀어넣은 뒤 승현을 시켜 산장내의 모든 조명을 내리게 했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내부의 커튼을 모두 쳐놓은 상태라 승현이 거실의 전체조명을 끄니 산장안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지용은 사람들을 비켜서게 하고 동팔이 열어놓은 현관문을 천천히 닫았다

 

그러자 독수리와 사자의 눈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왔다.

 

공기중의 뽀얀 먼지까지 보일정도의 뿌연 빛줄기는 중간 지점에서 서로 교차해 각각 다른 물건의

 

끝에 닿아 있었다. 놀란 동팔은 서둘러 지용에게 질문했다.

 

 

 

 

 

 

"와.. 이걸 어떻게 알았어요? 빛이 지목하는 물건이 답이라는 말인가요?"

 

"산장 안과 밖을 연결하는 현관문에 구멍이 나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니 혹시 빛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도해봤습니다. 빛이 가리키는 물건이 맞는것 같네요."

 

"그런데 빛이 왜 똑바로 안가고 중간에서 교차한거죠?"

 

"조금 전 독수리의 눈을 들여다봤는데 중간에 뭔가가 있는듯 밖이 안보이더라구요. 분명 양쪽으로

 

뚫려있는데 말입니다. 빛이 교차하는건 중간에 빛을 반사시키는 무언가가 장치되어 있어서

 

들어오는 도중 굴절되었을 겁니다."

 

"가만 있어보자.. 사자로 들어온 빛은 양산을 가리키고 독수리로 들어온 빛은 후레쉬를 가리키니.."

 

"양산? 산장 안에 양산도 있었습니까?"

 

 

 

 

 

 

지용이 양산이라는 말에 의아해하자 동팔은 대답 대신 직접 양산을 들어 펼쳤다.

 

많이 낡아 보였지만 분명 여성들이 사용하는 양산이었다.

 

료는 문제가 적힌 메모를 유심히 살피더니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힌트에는 차갑고 푸른 빛이라고 했어요. 산장 불을 모두 끄니 빛이 희미하지만 푸른빛을 띄죠?

 

정답이 어둠속에 가려져 있다고 했으니 둘 중 문제의 답은 후레쉬가 되는 것입니다."

 

"이유는요?"

 

"동팔씨. 잘 생각해보세요. 양산은 햇빛을 가리기 위한 도구에요. 빛이 내리쬐는 낮에 쓰는 물건이죠.

 

하지만 후레쉬는 빛이 없는 밤에 어둠을 밝히기 위해 쓰는 도구에요. 그러니 정답일수밖에요."

 

"아..."

 

 

 

 

 

 

료의 말에 동팔은 강한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지용은 아직도 료에게 감정이 남아있었지만 그의 말 만큼은 진실인것 같아 아무말 없이 수긍했다.

 

생각보다 일찍 정답이 밝혀지자 그들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터지지는 않지만 각자 충전기와 핸드폰을 챙겨왔으므로 시계를 맞춰놓고 컴퓨터가 작동하기 전까지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지라 같은 시각에 이방 저방에서 핸드폰의 알람이 울린다면

 

누구나 깨어날수 있으리라.

 

그들은 시계를 11시에 맞춰놓고 간단히 샤워를 한뒤 정신없이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지용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승현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답이 나오긴 했지만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약간의 뒤끝이 남는듯한 기분이었다.

 

승현은 많이 피곤했는지 깊히 잠들어있었고 지용은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애쓰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한참동안의 적막이 이어지고 드디어 그들이 맞춰놓은 알람이 일제히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동팔씨! 일어나요!"

 

"에이...씨..."

 

"꾸물거릴 틈 없어요. 어서 일어나요. 11시 넘었어요."

 

 

 

 

 

 

알람이 울리기만 하면 벌떡 일어날수 있다고 호언 장담했던 동팔은 모두가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일때도

 

혼자 이불을 끌어안고 코를 골고 있었다.

 

료가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자 지용이 다가가 이불을 낚아채며 어깨를 흔들었고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동팔은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하품을 했다.

 

 

 

 

 

 

"세수라도 하고 정신 차리세요. 답을 맞추는건 저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지켜봐야지요."

 

"미안합니다. 정신없이 잤네요."

 

 

 

 

 

 

동팔이 꽉 잠긴 목소리로 사과를 하고 세수를 하러 들어간 사이 지용은 초초하게 컴퓨터가 작동되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승현의 목숨이 달려있는지라 반드시 정답이어야만 한다.

 

모두들 후레쉬를 정답으로 확신하고 있었지만 지용은 아직도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전원이 들어오면서 컴퓨터가 작동하였다.

 

보면 늘 긴장하는 푸른색의 정답 화면이 떠오르자 지용은 천천히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손에 땀이 났는지 키보드로 가져간 손 끝이 자꾸 미끌어졌다.

 

 

 

 

 

 

정답자 이름 : 정 지용

 

정답 : 후레쉬

 

 

 

 

 

 

엔터를 누르기만 하면 답이 입력될텐데 지용은 정답까지 적어 넣고는 망설이는듯 했다.

 

료와 동팔은 답을 맞추고 다시 잠을 자자며 그를 보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듯 지용은 반응이 없었다.

 

 

 

 

 

 

-차갑고 푸른빛.. 차가운 빛.. 어둠속에 가려진 진실..

 

 

 

 

 

 

"이런!"

 

"지용씨? 왜 그래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지용은 서둘러 정답화면에 입력했던 답을 지우고 급히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놀라 무작정 같이 뛰긴 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않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지용씨! 20분 밖에 안 남았어요. 빨리 정답을 입력해야해요."

 

"니시키도 상! 거실의 조명을 내려주세요."

 

"조명은 갑자기 왜요?"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싶은것이 있어요."

 

 

 

 

 

 

지용의 주문에 료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거실의 전체조명을 내렸다.

 

그러자 독수리와 사자의 눈 사이로 낮보다 훨씬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교차된 두 줄기의 빛은 낮과는 전혀 다른 물건을 지목했다.

 

사자는 비어있는 벽. 독수리는 도자기였다.

 

 

 

 

 

 

"낮과는 다른 물건을 가리키고 있어요. 어떻게 된거죠?"

 

"태양빛이 달빛보다 훨씬 강해서 그래요. 강한힘으로 밀려들어오는 빛이 더 멀리 갈수밖에요."

 

"사자는 아무물건도 가리키고 있지 않아요. 그냥 벽을 가리키는 건가요?"

 

"잘 생각해보세요 동팔씨. 첫날 이곳에 달력이 걸려있었잖아요. 산장에 어울리지도 않는 달력이

 

걸려있다고 웃었던거 생각 안나요? 제가 식당 그림 그릴때 달력 사용했잖아요."

 

"아! 그랬었지!"

 

"그러므로 사자가 가리키는건 달력. 독수리가 가리키는건 도자기에요."

 

"그럼 답이 뭡니까?"

 

"낮에 봤던 빛도 어두운 산장안에서 봤을때는 희미하고 푸르게 보이니까 답이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사실 차갑고 푸른빛은 달빛을 의미하는것 같습니다.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은 빛 자체를 생각해야

 

맞는겁니다. 그리고 어둠 역시 밤을 의미하는 단어죠? 밤에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빛을 전달하는

 

매개체인 독수리와 사자를 생각해야합니다.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는 일부만 밤에 활동하므로 완벽한

 

야행성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사자와 같은 고양이과의 맹수들이야말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죠.

 

답은 사자의 빛이 가리키는 달력이 되는것입니다."

 

"어짜피 정답자가 지용씨니까 확신이 있으면 빨리 답을 입력하세요. 시간이 없어요."

 

"네!"

 

 

 

 

 

 

지용은 서둘러 이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자신의 답을 무시한 지용에게 기분이 나빴는지 아니면 그의 답을 인정해 마음을 놓은건지 료는

 

그들에게 다음 미션 메모가 어떻게 방으로 전달되는지 보고싶다며 복도에 남기를 청했다.

 

료를 제외한 세 사람은 서둘러 8번방으로 돌아왔고 지용은 침착하게 답을 입력했다.

 

 

 

 

 

 

 

정답자 이름 : 정 지용

 

정답 : 달력

 

[Enter]

 

 

 

 

 

 

-Clear-

 

 

 

 

 

 

"형! 정답이래요!"

 

"다행이다!"

 

 

 

 

 

 

동팔과 승현이 뛸듯이 좋아했지만 누구보다도 기뻐보이는건 지용이었다.

 

하룻동안 승현 때문에 적지않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기뻐했다.

 

하루만 더 버티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마음에 설레이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컥!!!!"

 

"동팔씨!!"

 

 

 

 

 

 

앉아있던 지용의 시야를 가리며 서있던 동팔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듯 주저앉자

 

그 뒤로 시퍼런 날을 번뜩이는 카타나가 눈에 들어왔다.

 

놀란 지용은 다급히 손을 뻗어 승현을 자신의 등 뒤에 세우고 뒤로 물러서며 경계했다.

 

동팔은 등에 깊은 상처를 입었는지 쓰러진채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어짜피 이렇게 될줄 알았어.. 살아남는건 한 사람 뿐이야!"

 

"니시키도상! 왜 이러는 겁니까!"

 

"이승현.. 너는 살려줄께.. 이리와.. 내가 지켜줄테니까 어서 이리와.."

 

"료형! 미쳤어요?"

 

 

 

 

 

 

붉은 피를 머금고 부르르 떨리는 카타나의 검날은 보는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단정히 칼 자루를 쥔 료의 동작은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했다.

 

가린 앞머리 사이로 번뜩이는 그의 눈은 감정없이 적을 베고 일어서는 무사와도 같았다.

 

은색 칼날을 사이에 둔 그들의 주변에는 숨 막힐듯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nine-

 

 

 

 

 

 

 

 

 

 

 

 

-168 시간의 공포- *Rasian*

 

 

 

 

 

 

 

 

 

 

 

 

"저항하지 말고 물러서!"

 

"료씨. 왜 이러는 겁니까?"

 

"묻지말고 뒤로 물러서! 방 끝으로 걸어가서 뒤를 보고 손을 위로 올려!"

 

"료 형!"

 

 

 

 

 

 

날이 선 은빛 칼날이 정확히 지용의 목을 향해 번뜩였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동팔의 시커먼 피가 칼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료는 미션 메모로 보이는 하늘색의 쪽지를 손에 쥔채 무서운 눈으로 지용에게 명령했다.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찌를 기세였다.

 

 

 

 

 

 

"제가 그쪽으로 갈테니까 칼을 치워주세요."

 

"안돼!"

 

"지용 형! 빨리 뒤로 물러서세요!"

 

"상관없어. 그러니 절대 움직이지마!"

 

 

 

 

 

 

지용이 자신을 위해 료에게로 가겠다는 승현의 손을 움켜잡으며 실랑이를 벌이던 사이

 

목 끝으로 겨누어진 칼날에 스쳐 붉은 피를 흘렸다.

 

그가 아픔을 느끼고 잠시 주저하는 사이 승현은 재빨리 손을 뿌리치고 료에게 달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형! 저 때문에 그러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

 

"미쳤어? 이승현!"

 

"빨리 뒤로 돌아서서 벽으로 걸어가.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어."

 

"개 자식.."

 

 

 

 

 

 

료가 승현을 앞 세우고 칼을 세운채 다가오자 지용은 분한듯 입술을 깨물며 벽으로 걸어갔다.

 

부상을 각오한다면 충분히 맞대응 할수 있었지만 승현을 지키기 위해서는 화를 억누르고 한발 물러서서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벽 끝까지 걸어 들어간 지용은 료의 요구대로 손을 올리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료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킬킬 거리며 비꼬듯 말했다.

 

 

 

 

 

 

"아무리 애써도 우승자는 나야. 그 동안 잘난척 하느라 고생많았어."

 

 

 

 

 

 

료는 즐거운듯 계속 웃으며 승현을 잡아끌고 방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때까지 숨이 붙어있던 동팔이 이를 악물고 걸어나가는 료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당황한 료는 그의 손에서 다리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힘들어지자 칼을 높이 들어올렸다.

 

 

 

 

 

 

"가만히 있으면 조금은 더 살수 있었을텐데.. 멍청한 놈!"

 

"크헉!!!!"

 

 

 

 

 

 

위에서부터 수직으로 내리꽂은 칼날이 등 한가운데로 정확히 파고들자 동팔은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며 축 늘어져 버렸다.

 

몇번이고 찌르기를 반복하며 그의 죽음을 확인하는 료의 눈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승현은 동팔의 끔찍한 죽음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듯

 

료는 재빨리 옷을 끌어당겨 밖으로 잡아 끌었다.

 

붉게 물든 카타나를 허공에 휙- 하고 털자 식지 않은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들어가."

 

 

 

 

 

 

료는 승현을 억지로 자신의 방으로 들이 밀었다.

 

하지만 자신이 쥐고 있던 미션 메모를 동팔을 찌를때 떨어뜨린채 두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자

 

비어있는 주먹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8번방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안에서 잠긴듯 문은 열리지 않았다.

 

료는 화를 참지 못하고 문을 걷어차며 소리질렀다.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섭긴 했나보지? 좋아하는 녀석도 버리고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것을 보니!"

 

 

 

 

 

 

료는 문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승현이 후다닥 뛰어 나오더니 맞은편인 동팔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차 싶었던 료는 서둘러 뒤쫓았지만 인에서 문을 잠궜는지 열리지 않았다.

 

그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칼을 들어 문을 연거푸 찍었다.

 

힘으로라도 열겠다는 심신인듯 발길질과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제발.. 열리지 마... "

 

 

 

 

 

 

승현은 있는 힘을 다해 책상을 밀어 문을 가로막고 자리에 주저앉아 웅얼거렸다.

 

얼마나 걷어차는지 경첩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승현은 터질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머니로 손을 찔러넣어 여러번 접혀진 종이 한장을 꺼냈다.

 

한참을 꺼내지 않아 빳빳한 채로 굳어져 있는 종이가 손가락 사이에서 부스럭 거렸다.

 

그는 발 끝으로 체중을 가득실은 자세로 책상을 등지고 앉아 서둘러 종이를 읽어 내려갔다.

 

문의 흔들림이 점점 심해졌다.

 

 

 

 

 

 

 

 

 

 

 

 

 

 

 

 

 

 

*산장의 비밀. 제 7장*

 

마지막 미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미션에는 정답자와 동반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살아 남으십시오.

 

살고 싶다면 자신 이외의 사람을 산장 밖으로 내 보내지 마십시오.

 

최후의 승자 한 사람만이 산장을 빠져 나갈 수 있습니다.

 

금기시 되었던 살인을 허락합니다.

 

*Mission = 산장 주변을 통제하는 장애물을 해체할수 있는 리모컨을 찾아라.

 

*Hint = 산장의 심장이 되는 곳.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시간별로

 

통제가 되어집니다. 단지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확인해보면 아시겠지만 미션 종료 시간까지 산장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닫혀있는 산장문 역시 리모컨으로만 열수 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Master. H-

 

 

 

 

 

 

"하하.. 미안하지만 내가 이겼어.. 니시키도 료.."

 

 

 

 

 

 

 

 

 

 

 

 

 

 

 

 

 

 

콰당 -

 

 

 

 

 

 

"이승현! 당장 나와!"

 

"헉.."

 

 

 

 

 

 

심하게 요동치던 문이 부서지고 경첩이 떨어져 나가자 료의 칼이 불쑥 들어왔다.

 

겁에 질린 승현은 뒤로 물러나 욕실로 들어가 버렸지만 욕실에는 잠금 장치가 되어있지 않다.

 

방 자체가 개인실이라 방문을 잠그기만 하면 따로 욕실문을 잠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승현은 손톱을 물어 뜯으며 문을 막고 서 있었지만 강한 힘으로 밀고 들어온 료에 의해

 

다시 잡히고 말았다. 잡힌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아팠다.

 

 

 

 

 

 

"료 형.. 아파요.. 제발 놓고 이야기 해요!"

 

"좋아했었어. 하지만 넌 정 지용 이외에는 관심이 없잖아!"

 

"이거 놓으세요!"

 

"죽여 버릴꺼야! 널 가질수 없다면 그 자식과 함께 죽이겠어!"

 

"제발.. 정신 차리세요!"

 

"나에게 키스해."

 

"네?"

 

"살고 싶으면 키스해. 그럼 죽이지 않고 데리고 나가주지."

 

"싫어요."

 

"역시! 그럴줄 알았어!"

 

"아악!"

 

 

 

 

 

 

료는 머리 끝까지 화가난 듯 승현의 팔이 빠질 정도로 힘껏 잡아당겨 복도로 끌고 나갔다.

 

미션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미 그의 머리는 정상이 아닌듯 했다.

 

계단이 시작되는 복도 끝까지 질질 끌려나온 승현은 큰 소리로 지용을 불렀다.

 

료는 그대로 승현을 끌고 산장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콰당 -

 

 

 

 

 

 

"윽.."

 

"니시키도 료.. 미안하지만 승자는 나야.."

 

"컥..."

 

 

 

 

 

 

승현의 목소리를 듣고 번개같이 달려나온 지용이 료의 목을 졸랐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에게 목을 졸린 료는 양손 하나씩 잡고 있던 카타나와 승현의 손을 모두 놓친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지용은 온 힘을 다해 그의 목을 졸라 댔고 자유로워진 승현은 재빨리 1층 거실로 내려갔다.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만.. 너 같은 쓰레기에겐 설명하기 조차 귀찮아서 말이지.."

 

"커헉..죽인..."

 

"우리는 기막힌 악연이야.. 이런 모습을 숨기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

 

"으아아아악!"

 

 

 

 

 

 

목숨의 위협을 느낀 료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무릎을 세워 그의 복부를 찼다.

 

명치에 적중했는지 지용이 짧은 신음성을 흘리며 옆으로 쓰러지자 료는 격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린채 몸을 일으켰다. 지용 역시 배를 움켜쥐며 빠르게 일어섰다.

 

 

 

 

 

 

"헉.. 헉.. 처음부터 느낌이 안 좋았어.. 컥.."

 

"나 역시 마찬가지야!"

 

 

 

 

 

 

료가 몸을 숙여 칼을 집어들려고 하자 지용은 재빨리 그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빗나가자 료는 칼을 집어들고 손을 높이 올려들었고 지용은 그의 손목을 옆으로

 

비틀어 잡으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버텼다.

 

중심을 잃은 몸이 난간에 쿵-하고 부딧치지 낡은 난간은 두 사람의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자칫하면 난간이 부서져 아래로 곤두박질 치리라.

 

힘에서는 지용이 훨씬 우세할줄 알았는데 목숨이 걸린 싸움에서는 료도 만만치 않았다.

 

허공에 높이 떠 있는 두 사람의 손은 상극의 자기장처럼 서로를 강하게 밀어내고 있었고 료의 손아귀에

 

꽉 잡혀있는 카타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르르 떨다가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카타나는 칼자루의 무게에 의해 중심을 잃고

 

계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죽어! 살아나가는 사람은 나야!"

 

"웃기는 소리 하지마! 넌 무슨수를 써도 날 이기지 못해!"

 

"미션 메모를 봤다고 자신있게 말하나보지?"

 

"문제도 풀지 못한 주제에!"

 

 

 

 

 

 

칼을 잃은 두 사람은 상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서로의 목을 꽉 움켜쥐고 있다가 발을 헛딛어

 

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들은 한데 엉켜 가속도까지 붙은 상태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1층 거실까지 굴러왔다.

 

계단에 부딪혀 입술이 터지고 온 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두 사람은 상대가 칼을 집어들지

 

못하게 경계하며 엎치락 뒷치락 하고 있었다.

 

 

 

 

 

 

"승현아! 칼 건드리지마!"

 

"닥쳐! 너는 나에게나 집중해!"

 

"칼 건드리지마!"

 

 

 

 

 

 

지용에게 도움이 될만한것을 찾던 승현은 촛대를 집어들고 달려왔다가 떨어져 있는 칼을 보고는

 

촛대를 멀리 던져버리고 칼을 손에 넣었다.

 

두 사람이 이리저리 굴러다녀 표적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용은 승현을 바라보며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크게 소리질렀다.

 

 

 

 

 

 

"윽.. 빨리 칼 내려놔! 내가 해결해! 그러니 칼 내려놔!"

 

"형..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지용이 승현에게 말을 하느라 한 눈을 판 사이 그의 손 아래 짖눌려 있던 료가 재빨리 주먹을 들어

 

턱을 올려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차 싶었던 지용은 몸을 일으켜 료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숙인뒤 돌진해왔다.

 

순간.. 시간이 멈춘듯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으윽...."

 

"컥......."

 

 

 

 

 

 

승현이 던져버린 촛대는 료의 손에 들려 정확히 지용의 배로 파고들었고 동팔의 피를 머금은 채

 

날을 세우고 있던 카타나는 승현의 손에 들려 료의 옆구리로 파고 들었다.

 

외마디의 비명을 내 뱉으며 멈춰버린 세 사람의 머릿속으로 서로의 눈물 젖은 눈동자가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비집고들었다.

 

그리곤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피를 흘리며 무너지듯 쓰러져버렸다.

 

 

 

 

 

 

"형!!!!!!!!!!"

 

 

 

 

 

 

승현은 지용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다 숨은 붙어 있었지만 가망이 없어 보였다.

 

 

 

 

 

 

"쿨럭..."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숨을 몰아쉬던 료는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승현은 그의 이상한 행동이 눈에 들어오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무나도 허무한 끝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건 용서할수 없었다.

 

료가 부스럭 거리며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자 승현은 그를 찔렀던 칼을 다시 집어 높게 들어올리며

 

절규했다. 칼 끝은 정확히 심장을 향했다.

 

 

 

 

 

 

"그냥 죽어! 제발!!!!!!!!!"

 

 

 

 

 

 

칼 끝에 뼈가 닿아 딱딱한 느낌이 들자 료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승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머니로 찔러넣은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눈도 감지 못한채 숨을 멈췄다.

 

승현은 잊고 있던 공포를 느끼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자신을 부르는 지용의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산장에서...는... 한.. 사람만... 살아...나갈...수 있어...컥..."

 

"말하지 말아요! 피가 나오잖아요!"

 

"받아.. 산장 문과.....주변의 장애물을.. 열수...있는....열쇠야.... 꼭... 살아라......"

 

"그런말 하지말아요! 우선 피를 멈추는게.....형!!!!"

 

 

 

 

 

 

지용은 절망의 미소를 지으며 하얀색의 작은 리모컨을 건내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에 승현은 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붉게 물든 산장 안에 생존자가 자신 뿐이라는 사실이 엄청난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

 

믿을수 없는 모습으로 눈을 감아버린 지용의 상태를 확인하는것이 죽는것보다 두려웠다.

 

자기것이 아닌.. 이질적이면서 손에 잡힐듯 선명한 기억속에서 그는 심한 혼란을 겪었다.

 

 

 

 

 

 

"잠시 기절한거지? 그렇지 형?"

 

 

 

 

 

 

그는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죽음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귀를 심장에 가져다 대었을때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제 정신으로 버틸수 없을것 같았다.

 

상태를 지속시키면 자신도 미쳐버릴것 같아 정신을 다른곳으로 돌렸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참을 굴러가던 눈이 료가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에 고정되었다.

 

작은 칼이나 뾰족한 흉기로 예상했던 무언가는 다름 아닌 한장의 편지였다.

 

 

 

 

 

 

 

 

 

 

*비문 산장의 매니저 님께 알립니다*

 

 

 

1. 비문 산장 이벤트는 여러가지 심사를 거친 7명의 참가자로 진행됩니다. 그들을 매니저라 칭합니다.

 

2. 이벤트는 추리 대결로 진행되며 답을 가장 많이 맞춘 최후의 참가자가 마스터의 칭호를 받게됩니다.

 

3. 마스터는 상금 천만원과 함께 다음 이벤트의 문제 출제 권한을 가지며 신 계발되는 청주리조트의

 

평생 회원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프리미엄을 예상한다면 예상가는 5억 이상입니다.

 

 

 

*주의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산장 생활동안 상대에게 절대 매니저라는 단어를 꺼내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서로 매니저임을

 

알고 있지만 원활한 게임을 위해 내색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첫번째 금기사항이 됩니다.

 

위반시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 산장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정해진 룰을 따라야하며 단체생활 도중 개인행동을 하는등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게임을 포기하신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3. 게임 도중 살인이나 폭행. 강간. 거짓정보 유출등은 금지됩니다. 매너 게임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승현은 주머니에 들어있던 자신의 편지를 들어 료의 것과 비교해보았다.

 

하나는 료의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것.

 

처음부터 그들은 서로가 매니저임을 알고 있었다. 규칙대로 발설하지 않았을 뿐.

 

천만원이라는 상금보다는 리조트 회원권을 노린 게임이었으니 규칙을 어길 사람은 없었다.

 

승현은 처음부터 지용 역시 매니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둘 중 한 사람이 우승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살인이 목적인 추리게임에 예상은 빗나갔고 결국 자신 혼자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전원이 마스터의 자리를 노리고 벌인 추리대결이었지만 살인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이것이야말로 두려워했던 마스터의 함정이 된 셈이다.

 

승현은 눈물을 닦으며 두 장의 종이를 겹쳐 마구잡이로 찢었다.

 

 

 

 

 

 

끼익 -

 

 

 

 

 

 

동시에 산장문이 열리며 밝은 빛이 폭발할 듯 밀려 들어왔다.

 

승현은 눈이 부셔 인상을 찌푸린 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첫날 멤버들을 산장으로 데려다 주었던 험상궃은 인상의 운전사였다.

 

승현은 그의 등장에 잔뜩 긴장하고 몸을 낮췄다.

 

 

 

 

 

 

"겁 먹을 필요 없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어떻게 된 거죠?"

 

"산장 내부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모든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럼... 당신이 마스터 H 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이벤트를 총괄하는 집사입니다. 최후의 우승자에게 남긴 마스터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그는 구부정한 등을 두드리며 편지 한장을 건냈다.

 

승현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문 산장의 새로운 마스터님께 알립니다*

 

 

안녕하십니까. 5대 마스터 'H' 입니다.

 

6대 마스터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편지와 같이 동봉된 상금과 회원권을 확인해 주십시오.

 

이제부터 마스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임무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비문산장은 올해로 5회째를 맞이 하였으나 사실은 105회째임을 알려드립니다.

 

일년에 여름과 겨울. 2회로 진행되며 100회가 넘어가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1회로 표시하게 됩니다.

 

마스터는 원하는 이니셜을 선택하여 이름을 만들 수 있고 다음회의 문제 출제를 할수 있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두명의 도우미를 두게 되고 다음회의 게임에 함께 참가하게 됩니다.

 

주체측과 연락이 가능하고 게임 진행에 필요한 자금이나 도우미등을 지원받게 됩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운전을 맡고 있는 집사를 통해 하시면 됩니다.

 

6명의 매니저 선발은 주체측에서 하게 되며 체력이나 두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입니다. 참고하십시오.

 

 

마스터가 할일은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괸심이 집중될 마스터의 존재를 산장 외부로 돌려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게임에 도움을 주고 위험한 존재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산장 게임은 한명의 마스터와 6명의 매니저의 추리 대결이 되는 셈입니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마스터인 경우에는 계속 마스터의 자리를 유지할수 있으며 매니저에게

 

졌을 경우 최후 생존자가 다음 마스터 자리를 물려받게 됩니다.

 

마스터의 자리를 원하지 않을 경우 상금과 회원권을 반납하시면 포기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신상정보가 주최측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평생을 감시당하게 됩니다.

 

신고나 해외도피가 불가능하다는 점.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산장 내부 기능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1. 각 방 천장에는 미션 메모를 넣어둘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 메모를 넣고

 

시간을 입력시키면 정확한 시간에 집게발이 내려와 책상 위로 미션 메모를 전달하게 됩니다.

 

컴퓨터의 명령으로만 움직이는 기계이므로 외부에서 힘을 가해도 열리지 않습니다.

 

2. 공지사항을 모두에게 알리는 전체 스피커가 설치 되어 있으며 직접 음성변조도 할수 있습니다.

 

3. 산장 전체를 움직이는 메인 컴퓨터인 동시에 정답 컴퓨터는 8번방에 위치하게 됩니다. 사용시간은

 

모두가 잠든 새벽으로 한정해 주십시오. 마스터가 8번방을 사용하는 시간에는 내부 차단을 설정해

 

주십시오. 차단이 설정됨과 동시에 문의 폐쇄와 방음이 시작됩니다. 마스터 외의 사람들에게는

 

방의 개방시간을 정답시간 30분 전인 오후 11시부터 종료 30분 뒤인 12시 30분으로 한정해주십시오

 

4. 지하실의 함정을 사용하는건 자유지만 사용하실 경우 비밀번호와 문제를 따로 입력 해주십시오.

 

산장 내부와 지하실은 서로 다른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지하실의 메인 컴퓨터는 정답방인 끝방에

 

위치하게 됩니다. 산장과 마찬가지로 정답 컴퓨터인 동시에 함정을 움직이는 메인 컴퓨터가 됩니다.

 

각 방은 서로 다른 5개의 함정을 지원합니다. 메뉴얼을 보고 마음에 드는것으로 선택하여 주십시오.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지금 보시는것과 같이 마스터의 실명을 적은 편지를 준비하여 집사에게

 

전해주십시오. 이유는 대회 종료 후 마스터가 살해 당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대회가 끝나고 준비기간 동안은 평소대로 생활하시면 됩니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 제 99 ~ 105 회 Master H 정 지용 -

 

 

 

 

 

 

"이건...말도 안되.."

 

 

 

 

 

승현은 마지막 이름을 보고 경악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목숨을 내어준 지용이 사실은 모두가 두려워했던 마스터 H 였다는 사실.

 

그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용을 보며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처음 시작은 마스터였지만 그는 자신을 위해서 마스터의 자리를 포기해 주었다.

 

마스터는 생존자가 한명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터.

 

승현이 글을 다 읽을때까지 기다리던 집사가 조심히 말을 꺼냈다.

 

 

 

 

 

 

"마스터의 자리에 있는 동안 산장 관리권도 갖게 됩니다. 우선 차를 타고 함께 가시지요."

 

"이제.. 주최자가 누군지 알려 주실건가요?"

 

"주최자는 절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연락은 저를 통해 하게 됩니다."

 

"알려주세요! 누가 이런 미친짓을 했는지 알려달란 말이에요!"

 

"진정하십시오. 주최자는 이름이 알려지면 곤란할 정도의 높은 사람이라고만 알고 계십시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100회가 넘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거죠?

 

한회당 6명이 죽는다고 쳐도 상상할 초월할텐데.."

 

"매니저의 선발 기준 중 제 1순위가 친지 친척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친구들은 있을것 아니에요!"

 

"이승현님은 친구분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실종신고를 하거나 찾아 나서겠습니까?

 

친구라는 관계는 그렇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도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절대 실종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실종신고를 했다고 하더라도

 

주최측에서 깨끗하게 해결해 줄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귀는 말을 듣고 있지만 눈은 여전히 지용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극심한 혼란에 눈물은 마르지 않고 소리없이 계속 흘러내렸다.

 

산장 이벤트라기에 무료했던 일상을 달래보고자 여러가지 테스트를 거쳐 참가하게 되었지만

 

상상보다 끔찍했고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평생 할수 없을지도 모르는 애뜻한 사랑을 나눴다.

 

승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은채 오열하고 말았다.

 

 

 

 

 

 

"지용 형! 눈 떠! 미리 알고 있었으면.. 한명 밖에 살수 없다는걸 알고 있었다면 왜 날 선택했어..

 

차라리 마음을 주지 말지 그랬어! 내가 고백해도 매몰차게 거절해 버리지 그랬어!

 

미칠것 같아.. 형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잖아.. 죽을것 같다구... 지용 형......."

 

 

 

 

 

쿨럭 -

 

 

 

 

 

 

바닥을 치며 울부짓는 승현의 귀에 희미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흥건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지용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지용의 생사를 확인한 그는 이제부터 상대의 의사는 멸시해도 상관없는 암묵적인것이라고 판단했다.

 

 

한사람만 생각하자..

 

마스터여도 상관없다... 그 동안 받았던 사람에는 절대 거짓이 없었다..

 

 

승현은 몸을 휘청거리며 지용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다행이 숨이 붙어있었다.

 

 

 

 

 

 

"집사 아저씨! 형을 병원으로 옮겨주세요!"

 

"죄송합니다만 그건 곤란합니다."

 

"그런 말이 어디있어요! 아직 살았다구요! 병원으로 데려다주세요!

 

"안됩니다."

 

"포기할께요. 상금이고 회원권이고 다 필요없으니까 제발 병원으로 데려다주세요. 평생 감시해도 좋고

 

가둬놔도 좋아요.. 그러니 제발 형을 살려주세요.."

 

 

 

 

 

 

집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지금 바로 옮기지 않으면 출혈이 심해 정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승현은 급기야 무릎을 꿇고 집사에게 울며 매달렸다.

 

호흡이 거칠어 목소리 마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저 같은 아들이 있다면... 제발.. 제발 병원으로 데려다주세요.. 흑.. 제발 부탁이에요.."

 

"마스터가 자격을 잃으면 정보 노출을 피하기 위해 살려두지 않습니다. 목숨을 건지려면 마스터가

 

되기 이전에 포기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게다가 정 지용씨는 7회동안 마스터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벤트 사상 최장 기록이며 그는 이미 너무 많은것을 알고 있습니다."

 

"절대 발설하지 않을꺼에요. 제가 약속할께요.. 저 이 사람이 없으면 죽을것 같단 말이에요.. 제발....

 

뭐든지 할께요...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뭐든지 할께요.. 살려만 주세요.. 이 사람 없으면 저도 살아갈수

 

없단 말이에요.. 집사님! 제발.."

 

"............................."

 

"그럼.. 저를 죽이세요. 제가 포기하고 죽으면 되죠? 그렇게 할께요.. 어짜피 이 사람 없으면 저도

 

죽어요.. 그러니 저를 죽이시고 형 만은 살려주세요.. 흑.. 이렇게 부탁드려요.."

 

 

 

 

 

 

 

 

 

 

 

 

-168 시간의 공포- *라시안*

 

 

 

 

 

 

 

 

 

 

 

 

-형이 최고에요. 저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멋져요.

 

-늘 함께 해주실꺼죠?

 

 

 

 

 

 

"아... 푸..름.."

 

"정 지용씨 정신이 드십니까?"

 

"푸.....름...."

 

"정신이 들면 눈을 떠 보십시오."

 

 

 

 

 

 

누군가 엄지 손가락으로 눈을 힘껏 누르는것 같은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다.

 

빛을 마지막으로 본건 언제였을까..

 

힘겹게 벌어지는 눈꺼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빛에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지용은 흐트러져 있는 정신을 한데 모으려 애쓰며 눈을 비비고 몸을 일으켰다.

 

 

 

 

 

 

"으윽..."

 

"아직 일어나는건 무리입니다."

 

 

 

 

 

 

멀쩡한 갈빗대가 생으로 나가는것 처럼 말로 형용할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지용은 몸을 이르키길 포기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 한가득 들어오는 은은한 녹색의 줄무늬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는 커녕 구토를 일으킬만큼

 

어지러움을 유발했다.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에 그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병실치고는 꽤나 고급스러운 쇼파가 놓여져 있는 개인실.

 

아무도 왔다간 흔적이 없어 보이는 깨끗한 테이블과 시큼한 향을 풍겨대는 가습기.

 

병실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꽃병 가득 꽂혀있는 노란 장미.

 

지용은 한참동안 멍하니 눈을 굴리고서야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집사에게 말을 꺼냈다.

 

 

 

 

 

 

"제가 어떻게 된것입니까?"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과다 출혈로 위험할 뻔 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습니다."

 

"얼마나.. 이렇게 누워 있었죠?"

 

"오늘로 9일째입니다."

 

 

 

 

 

 

일주일을 넘게 혼수 상태로 있었으니 세상이 온통 낯설어 보일수 밖에.

 

정신이 들자 서서히 밀려오는 허리의 통증에 그는 조금이라도 자세를 바꾸기 위해 몸을 뒤척였다.

 

이마에 힘줄이 불거질만큼 이를 악물고 애써봤지만 내장이 파열될것 같은 고통에 그것마저 포기하고

 

인상을 구기며 몸을 떨었다.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상처가 커서 수술 부위가 넓습니다. 불편하더라도 가만히 누워있는 편이 좋습니다."

 

"집사님.. 혹시 산장에서 절 데리고 나올때 이승현이라는 남자 아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승현군 말입니까? 그는 무사히 돌아갔으니 걱정 마십시오."

 

"살아 있는겁니까? 정말 살아있는게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승현아..

 

 

 

 

 

 

지용은 집사의 눈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서야 그의 눈에 거짓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한 손을 이마로 올려 눈을 가렸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심장 박동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저를 왜 살려주신겁니까?"

 

"살아있는게 기쁘지 않습니까?"

 

"마스터의 자격을 잃으면 죽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선택한 접니다.

 

그런데 저를 살려주시다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승현군이 마스터의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승현이가 마스터를 포기한것과 제가

 

살아있다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너무 깊이 묻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정말.. 그 아이가 살아있긴 한건가요?"

 

"살아있습니다. 꽃병에 꽃을 꽂아둔 사람도 승현군 입니다. 내가 장담하지요."

 

"지금은 어디 있습니까? 불러 주실수 있나요?"

 

"일주일이 되던날 저녁 이후로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

 

"지용씨가 깨어나면 말을 전해 달라더군요."

 

"무슨.."

 

"노란 장미의 꽃말은 '이별' 이라고 말입니다."

 

"하....."

 

 

 

 

 

 

심장이 덜컹 내려 앉았다.

 

이별이라는 단어를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마스터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날짜가 흘렀지만 마치 먼 옛날 일처럼 빛 바랜 기억이었다.

 

지용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지용씨를 살려준것은 인간으로써의 지용씨를 믿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절대로 산장의 일을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보고 없이 저지른 일이기에 알려진다면 지용씨와 나. 두사람 모두 무사하진

 

못할겁니다. 잊고 살아가십시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 가십시오. 부탁이자 명령입니다.

 

지용씨를 믿고 길다면 길었던 저와의 인연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집사님.."

 

"빠른 회복하길 바랍니다. 퇴원할때까지의 병원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앞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 가십시오. 하룻밤 꿈처럼 산장에서의 일은 모두 잊고 새 출발 하십시오.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집사는 지용의 어깨를 가볍게 한번 두드리고는 몸을 돌려 병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문 손잡이에 손을 대는 동시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늘 말했던 주최측이라는 곳인지 조용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듯 했다.

 

길지 않은 통화인듯 짧게 용건을 마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그는 돌아보지 않고 등을 보인

 

상태에서 조용히 한마디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당신이 죽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살려만 주면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승현군.. 보기보다 강인한 아이입니다."

 

 

 

 

 

 

문이 닫히는 동시에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소리도 없이. 흐느낌도 없이 허공을 응시한 채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길 없어 한참을 혼란스러워했다.

 

 

그 후로 한달가량.

 

꽃이 시들고.. 상처가 아물고.. 비가오고.. 다시 화창한 햇살이 비추길 반복해도..

 

승현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번쯤은 들릴줄 알았던 막연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뀔때 쯤에서야 승현에 대해서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승현을 본 순간부터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것이다.

 

승현 하나만은 무사히 산장 밖으로 빠져나가길 원했기 때문에 주저함 없이 살인을 했고

 

마음을 주면 안됨을 알면서도 세상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원했기에 그를 안았다.

 

돌이켜보니 승현이 떠난게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은채 모든것을 혼자 끌어 안았던 이기심의 결과..

 

운신이 가능할 정도로 몸을 추스린 지용은 서둘러 퇴원했다.

 

오랫동안 비워둔 집은 산장보다 더 싸늘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그는 청소할 생각도 않고 무작정 침대로 다가가 쓰러지듯 누웠다.

 

 

 

 

 

 

-부모님이 날 버렸을때도 이렇게 가슴이 아팠을까? 아니면 버림받은 나의 가슴이 더 아팠을까..

 

 

 

 

 

 

지용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친 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된 입양아였다.

 

다행히 양부모가 그를 친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으나 그 분들 마저도 잃고 혼자가 되었다.

 

대단한 재산가였던 덕분에 왕래하던 사람도 많았고 물려받은 재산도 부족함 없었지만 그가 산장

 

마스터에 빠져 들면서 하나 둘씩 발을 끊기 시작하여 지금은 혼자가 되어버렸다.

 

승현이 올것이라는 기대에 잠을 설쳤던 병원 생활의 피로가 이제서야 몰려오는지 지용은 그대로

 

침대에 엎드려 꼬박 이틀동안 잠만 잤다.

 

 

 

 

 

 

-지켜달라는말.. 그런거 아무한테나 하는 바보가 어디있어요! 정말 믿을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라도 그런말 같은거 안할꺼에요.. 하지만 형은 그런말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죠?

 

 

 

 

 

 

잊혀지지 않았다. 아니.. 잊을수가 없었다.

 

기억이란 녀석은 날이 갈수록 또렷해져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않고 방에서 멍하니 보내기를 하루.. 이틀..

 

꽃집을 운영한다던 말이 떠올라 어딘지도 모르면서 한동안 눈에 보이는 꽃집은 미친듯이 뒤졌다.

 

자신을 보고 싸늘하게 돌아서더라도 미안하단 한 마디는 꼭 하고 싶었다.

 

물론.. 그가 원하는것은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환청처럼 메아리치는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정도로 강하게 파고 들었지만

 

반대로 얼굴은 기억할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더 이상은 승현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용은 난생 처음으로 죽을만큼 울고 난 뒤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래도 그를 챙겨주는 사람이 아직 한사람은 남아있는 셈이다.

 

 

 

 

 

 

"야! 정 지용! 얼굴이 이게 뭐야?"

 

"왔어?"

 

"이라크에 가서 막노동 하다 왔냐? 몰골이 이게 뭐야?"

 

"앉아."

 

"이벤트 참가한다고 잠수 타더니 세 달만에 연락하고.. 이런 무심한 놈아!"

 

"성재아. 차 가지고 왔어?"

 

"가지고 왔지. 왜?"

 

"바람 쐬고 싶다.. 어디로든 좀 가자."

 

 

 

 

 

 

우선은 괴로운 마음을 털어보고자 했다.

 

탁 트인 곳에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재의 잦은 방문으로 죽은 사람 같았던 지용도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던 어느날 이었다.

 

새로운 취직을 위해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던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용아. 지금 나올수 있어?"

 

"왜?"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 방구석에만 쳐박혀 있지 말고 나와."

 

"여자라면 사양이다."

 

"알고 있어. 너 여자취향 아니라는거.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내가 잘 아는 후배."

 

"............................"

 

"만나보면 너도 분명 즐거워질거야. 성격도 밝고 꽤 귀여운 녀석이라니까?"

 

"꼭 나가야해?"

 

"야! 너 때문에 부른건데 안나오면 안되지. 예전에 우리가 자주 다니던 카페에서 보자. 전화끊고

 

바로 나와. 안 나오면 죽는다."

 

"..........................."

 

"정 지용? 대답해. 자식아!"

 

"그래. 지금 나갈께."

 

 

 

 

 

 

이미 사람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지 오래였지만 친구가 자신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지용은

 

오랜만에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서 눈을 뜬 이후로 햇살은 적응할만도 한데 여전히 눈을 따갑게 비집고 들어온다.

 

차를 가져갈까 하다가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 타고 그들이 졸업한 대학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진한 모카향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지용아! 여기야."

 

"많이 기다렸어?"

 

"아냐. 그것보다 인사해. 이쪽은 내 후배 김 요한이야."

 

"안녕하세요? 성재 형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안녕.."

 

 

 

 

 

 

심장이 두근거렸다.

 

웃는 얼굴로 자신을 맞이하는 요한의 얼굴에서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용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멍하니 자리에 앉았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이나 옅은 갈색 눈동자가 왠지 승현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는 닥터페퍼 한잔을 주문하고 쇼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지용아. 너 이런거 안 마시잖아?"

 

"갑자기 마시고 싶어졌어. 날도 덥고 시원한게 좋을것 같아서."

 

"평소에는 아무리 더워도 죽어라 고집 부리면서 커피만 마셨으면서. 그 커피 이름이 뭐였지?

 

블루 마운틴이었나? 모카였나?"

 

"다 틀려. 아이리쉬야."

 

"암튼. 뭔가 이상해졌다니까? 하하.."

 

"성재형. 말씀하신것보다 훨씬 멋지신데요? 형이랑은 딴판이에요. 후후.."

 

"뭐야?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그렇다고 너무 환상 갖지마. 지용이 저 자식 은근히 골 때려. 알고보면 나와 다를것 없다니까?"

 

"성재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친구를 깎아 내리면 안되지."

 

"오늘은 날씨가 덥네? 어디 예쁜 여인 없나?"

 

"성재형 딴청 하는것좀 보세요."

 

"그러게.. 하하.."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

 

듣던대로 밝은 성격의 요한 때문에 지용도 성재도 만족할 만큼 즐거운 대화를 했다.

 

차가웠던 음료가 미지근 해질때쯤 그들은 식사할 장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용을 뺀 요한과 성재의 다툼이었지만 말이다.

 

 

 

 

 

 

"오늘은 일식집으로 가자구요."

 

"이 놈은 맨날 일식 타령이야. 오늘은 고기를 먹자니까?"

 

"형은 맨날 고기만 먹잖아요. 질리지도 않으세요?"

 

"원래 고기는 안 질려. 그냥 먹자!"

 

"싫어요! 오늘은 회가 먹고 싶다구요!"

 

 

 

 

 

 

자신의 앞에 앉은 두 사람의 신경전을 말없이 웃으며 지켜보던 지용의 귀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리더니 카페 문이 열리며 커다란 꽃다발을 든 누군가가 들어섰다.

 

언뜻 봐서는 작은 체구 같은데 얼굴도 안보일 정도로 큰 꽃다발을 들고 들어선것이 신기해

 

지용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꽃을 보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어머! 정말 가져온거야?"

 

"그럼요~ 전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라구요~"

 

"고마워. 꽃 너무 예쁘다. 근데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그 동안 누나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잖아요. 이건 저의 답례에요."

 

"고마워. 내가 밥살께. 나가자."

 

"와.. 오랜만에 좋은 기회인데 어쩌죠? 가게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은 안될것 같아요."

 

"그럼 다음에 편한 시간으로 정해. 맛있는거 사줄께."

 

"고마워요. 누나! 먼저 가볼께요~ 반은 꽃병에 꽃아두고 반은 따로 말리세요. 말려도 향은

 

잘 날아가지 않아요. 그럼 저 진짜 가요!"

 

"고마워~ 다음에 봐 승현아!"

 

 

 

 

 

 

쨍그랑 -

 

 

 

 

 

 

갈색 머리가 뺨을 가리고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승현이라는 이름 한 마디에 지용은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린 채 급히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성재와 요한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지용은 서둘러 핸드폰과 담배를 챙겨들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식사는 두 사람이 해. 가봐야할것 같아."

 

"그런게 어디있어! 야! 지용아!"

 

"성재야. 연락할께!"

 

 

 

 

 

 

 

 

 

 

 

 

 

 

 

 

 

 

 

 

 

 

 

 

"덥지? 의자에 앉아."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카페 누나가 이것저것 많이 챙겨줬잖아요. 꽃을 워낙 좋아하는 분이라

 

가끔 갖다주곤 해요. 어짜피 생계를 위해서 꽃을 파는건 아니니까요."

 

"승현아. 오늘은 얼굴이 좋아보이네?"

 

"에효.. 그런가요?"

 

"말하기가 무섭게 또 한숨이다. 그러지말고 나가자."

 

"안되요. 오늘은 꽃 주문이 많다구요."

 

"다른 가게로 돌릴수 있잖아. 그러지 말고 가자."

 

 

 

 

 

 

긴 머리의 훤칠한 남자는 땀을 닦아내고 있는 작은 아이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가자며 보채고 있었다.

 

가게 안을 꽉 채운 각양 각색의 꽃들이 내뿜는 향기가 어울어져 숨이 막힐정도였다.

 

계속된 그의 꼬임에 채념한 듯 아이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아이를 잡은 남자의 손을 강한 힘으로 뿌리치는 다른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형씨. 약속은 내가 먼저야."

 

"...................."

 

"승현아. 잠깐 나와.."

 

"...................."

 

"승현아. 이 사람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아뇨.. 모르는 사람이에요..."

 

 

 

 

 

 

승현은 시선을 떨구며 그를 외면했다.

 

재빨리 돌아서서 널려있는 포장지와 리본을 정리하는척 했지만 손이 떨려 바닥으로 놓쳐버리고 말았다.

 

긴 머리의 남자는 지용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질문했다.

 

 

 

 

 

 

"당신 누구야? 누군데 알지도 못한다는 사람을 찾아왔어?"

 

"당신에겐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버르장 머리를 상실한 놈이네? 어디 처음보는 사람에게 반말이야!"

 

"승현아. 할말이 있어. 잠깐이면 되."

 

"너랑 말하고 싶지 않다잖아!"

 

"이승현!"

 

"이 새끼가 사람 말이 안 들리나!"

 

 

 

 

 

 

지용의 행동에 기분이 나빠진 남자는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았다.

 

한 마디만 더 하면 한대 칠 기세였다.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승현은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둘 중 누구를 바라보는지 모를 정도의 애매한 시선이 한참을 머물었다.

 

 

 

 

 

 

"지용..형.. 나오세요.."

 

"승현아?"

 

"저 이분과 잠시 할말이 있어요. 가게 좀 봐주세요.."

 

"모르는 사람이라며?"

 

"잠깐이면 되요.."

 

 

 

 

 

 

승현이 말을 끝내고 그들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자 지용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고 옷을 툭툭 털었다.

 

그제서야 승현의 몸에 강하게 배어있던 좋은 향이 여러가지의 꽃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영문도 모른채 자신 앞에 우투커니 서 있는 남자를 한번 노려보고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습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날이 더워. 잠깐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자."

 

"여기가 편해요. 할 말이 있다고 했죠? 하세요.."

 

"잘 있었니?"

 

"안부는 묻지 마세요. 보면 아시잖아요."

 

"미안했다."

 

"뭐가요? 형이 마스터였다는거요? 아니면 저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거요?"

 

"널 살릴수 있었기에 마스터였다는 것은 후회안해. 네게 말했다면 내 의견을 따르지 않을게 뻔했기

 

때문에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도 후회 안해."

 

"그럼 왜 왔어요! 그것도 아니면 저에게 미안한게 뭐죠?"

 

"보고 싶었어.."

 

"그런 말을 듣자고 나온게 아니에요!"

 

"보고... 싶었어..."

 

"들어갈래요."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듯 승현은 지용을 싸늘하게 외면하고 몸을 돌렸다.

 

순간.. 어깨가 뜨겁게 타는 느낌과 함께 숨이 막혀왔다.

 

지용은 승현이 도망가지 못하게 뒤에서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승현은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의 손은 강한 올가미처럼 더 이상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찾아온거에요.. 어떻게 찾아온거에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가게에 있던 사람 애인이니?"

 

"......................."

 

"애인.. 인거야?"

 

"네..."

 

 

 

 

 

 

지용은 그의 정확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팔에 힘을 풀고 뒤로 물러섰다.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자 그제서야 웃음섞인 한숨이 터져나왔다.

 

 

 

 

 

 

-마지막까지 웃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그것이 내가 해줄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지용은 머리가 허락하지 않는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며 조용히 말했다.

 

 

 

 

 

 

"행복해 보이는구나.. 그걸로 됬어.."

 

"...................."

 

"미안해.. 마지막으로 한번쯤은 보고 싶었어.."

 

"...................."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래.."

 

 

 

 

 

 

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질릴 정도로 되 뇌었던 대사들은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싸늘한 얼굴을 마주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먼저 잘못한건 자신이었고 그런 자신이 싫다고 떠난 아이었다.

 

욕심에도 한계라는게 있어서 자신을 보고 괴로운 얼굴을 하는 그를 잡을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용은 자신이 좋아했던 갈색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들릴듯 말듯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진심으로 사랑했어.. 아니.. 여전히.."

 

 

 

 

 

 

눈물이 나올것 같아 하늘을 바라보니 강한 태양빛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그 이유가 태양 때문이라고 생각 되어질만큼 시린 눈을 부릅떴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전기가 흐르듯 스파크가 일었다.

 

그 현상은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옷을 움켜잡는 강한 힘이 느껴질 때까지 계속 되었다.

 

 

 

 

 

 

"용서할수 없어! 형.. 정말 나쁜 사람이야...."

 

"....................."

 

"누가 날 위해 죽어달라고 했어?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말도 없이...."

 

"승현아...."

 

"찾아온건 형이면서.. 아무것도 묻지않고 돌아가버리면 정말로 용서 안해!"

 

"승현아!"

 

 

 

 

 

 

가슴 한 가운데 응어리져 있던 그리움이 일순간 폭발해버렸다.

 

욕심은 힌계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

 

 

지용은 몸을 돌려 자신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는 승현을 힘껏 끌어안았다.

 

쉬어지지 않는 숨은 더운 날씨 때문일까.. 컨트롤 할수 없는 심장 박동 때문일까..

 

 

 

 

 

 

"보고싶었어.. 찾아지지 않아서 눈에 보이는 꽃집이란 꽃집은 전부 뒤졌어."

 

"애인일리 없잖아요!"

 

"뭐?"

 

"보고싶어 미칠것 같은데.. 없으면 죽을것 같은데.. 내가 그런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날리 없잖아!"

 

"승현아.."

 

"다시는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떠나지 말아요.. 그게 두려워 내 스스로 형을 떠나게 만들지 말아요.."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간단한것.

 

다시는 떠나지 마세요.. 다시는 떠나지 않을께요..

 

 

 

 

 

 

지용은 밝게 웃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입을 맞췄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갈색 눈동자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용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대고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산장에서보다 더 마른듯 힘을 주면 부러질것처럼 가늘고 위태로운 느낌이었다.

 

 

 

 

 

 

"나와 함께 가자. 같이 살자.."

 

"형?"

 

"거절하지 않을거라는거.. 알고 있어. 그러니 아무것도 묻지말고 대답해줘."

 

"나쁜 형.. 꼭 약점을 파고 들어요.."

 

"사랑해.."

 

"............"

 

"넌 대답하지 않아도 되. 지금 우리는 새로 시작하는거고 널 짝사랑 하는 사람은 나인거야.

 

앞으로 날 사랑해줄 수 있겠니?"

 

"헤헤~"

 

"있다구? 좋아. 가자!"

 

"잠깐만요! 어딜 가요?"

 

"밀월여행."

 

"헉.. 짝사랑 한다면서요? 짝사랑 한다면서 왠 밀월여행?"

 

"나 원래 이래. 여지껏 네가 착각한거야."

 

"형! 가게는 어쩌구요?"

 

"몰라!"

 

 

 

 

 

 

대책없이 손을 잡아끄는 지용의 행동에 당황한 승현은 겨우겨우 졸라 가게로 되돌아갔다.

 

가게 안에 남아있는 꽃을 길가는 사람들에게 전부 나누어주고 임시휴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나자

 

비로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두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산장에서의 일주일은 추억으로 남을것이고 앞으로의 생활속에서 점점 잊혀져 갈것이다.

 

포기라는 단어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하지 않다.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느낄수 있게 될테니까..

 

 

 

 

 

 

 

 

 

 

 

 

-The End-

 

 

 

 

 

 

 

 

 

 

 

 

 

 

 

 

-외전-

 

 

 

 

 

 

 

 

 

 

 

 

-168 시간의 공포 (번외)- *라시안*

 

 

 

 

 

 

 

 

 

 

 

 

*Do kun Story*

 

 

 

 

 

 

 

 

 

 

"헉헉.. 지용아! 오래 기다렸어?"

 

"형? 뛰어온거야?"

 

"너무 늦을것 같아서."

 

"전화는 뒀다 뭐해! 연락하면 데리러 갈꺼 아냐!"

 

"또 화낸다. 잘 생긴 얼굴 인상쓰면 보기 싫어."

 

"형이 자꾸 걱정을 시키니까 그렇지! 그러다 또 넘어져서 다리 부러지고 싶어? 왜 맨날 뛰어다녀?"

 

"재미있잖아. 바람속을 달리는 느낌. 은근히 중독성 있다니까?"

 

"내가 제 명에 못 죽어.."

 

 

 

 

 

 

나에게는 연인이 있다.

 

몸도 약하고 운동신경도 썩 좋지 않으면서도 달리는것을 좋아하는 엉뚱한 연상의 연인이다.

 

처음 만남은 20 살이 되던 해 인터넷 동호회에서였다.

 

나는 '환상의 마을' 이라는 인터넷 추리 동호회 회원이었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추리소설이나

 

영화. 만화등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가족같은 분위기의 동호회였다.

 

그곳은 새로나온 신간이나 회지등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접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회원들이 직접 만들어 올리는 추리 연재란이었다.

 

때로는 뻔한 추리에 웃기도 하고 가끔씩은 엄청난 추리에 놀라기도 하던 나는 그 중 가장 뛰어난

 

추리글을 연재하는 작가 하나를 눈 여겨보게 되었다.

 

'Destiny' 라는 아이디를 가진 그 사람은 상상한것 이상의 반전으로 사람들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었다.

 

아이디의 뜻은 운명..

 

어느샌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름도 모르는 작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Jerry : 전에도 의견을 말씀드린적이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정모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정팅에 참가하신 분들은 모두 참석할수 있으시죠?

 

be loved : 어디로 가는 건가요?

 

Jerry : 참가하는 인원수에 따라 달라지지만 10분 미만이면 저의 시골인 경기도 청평이 될것 같습니다.

 

2박 3일 계획을 잡고 있으며 작은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으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우선 참가를 약속하신 분은 allia 님 qkqhdkslek님 Destiny님..

 

 

 

 

 

 

대학교에 합격하고 입학을 기다리는 동안 환상의 마을에 빠져살던 나는 정모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정팅에 참가했다. 그리고 참가자 명단에서 Destiny 라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앞 뒤 생각 없이 정모에

 

참가 신청을 했다.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는것도 좋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빠져들게 만드는 엄청난 글을 쓰는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정모가 확정된 날부터 나는 큰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학 합격 발표를 듣는 것보다 훨씬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사는 지역과 하는 일이 달라 모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지만 즐거운 정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우선 저는 환상의 마을 시샵인 Jerry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저씨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하하..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다니. 참가인원이 9명이군요. 저는 진행자이므로 오늘부터 2박 3일간

 

같이 추리대결을 펼칠 파트너를 뽑겠습니다. 종이에 숫자를 적어놨으니 한장 뽑으시면 됩니다."

 

 

 

 

 

 

참가자는 모두 남자였다. 그럼 Destiny 역시 남자라는 소린데..

 

나는 눈을 굴리며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신중하게 종이 한장을 뽑았다.

 

 

 

 

 

 

NO. 3

 

 

 

 

 

 

나의 손에 들려진 한장의 종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 뽑은 번호를 가지고 짝을 지어보세요. 1부터 4까지의 번호니 같은 번호를 뽑은 사람과 짝을

 

지으시면 됩니다. 밥 먹어야하니 서두르세요~"

 

 

 

 

 

 

사람들을 둘러보며 한참동안 눈을 굴리고 있던 나에게 얼굴이 하얀 소년 하나가 다가왔다.

 

목까지 오는.. 남자치고는 긴 머리에 평범한 외모를 가진 그는 나의 앞으로 다가와 앉더니 종이를

 

펼쳐 눈 앞으로 바짝 들이댔다. 그의 숫자 역시 3번이었다.

 

 

 

 

 

 

"어떻게 아셨죠? 제 번호가 3번이란걸?"

 

"벌써 다들 짝을 찾아갔어요. 그러니 남은 사람이 저와 짝인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아..."

 

"낯선 곳에 오니 왠지 무섭네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절 좀 챙겨주세요. 부탁드려요. 저는 남자치고

 

힘도 없고 날렵하지도 못하거든요.. 대신 당신에게 다른 도움을 드릴께요."

 

"네?"

 

 

 

 

 

 

첫 만남부터 꽤나 얼빠진 모습을 보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뜻인것 같았다.

 

가슴 앞으로 내밀어진 손이 가늘고 길었다.

 

 

 

 

 

 

"아이디가 뭐죠?"

 

"Rune 입니다. 이름은 정 지용이에요."

 

"룬님이었구나? 매번 남겨주신 감상 잘 읽었어요. 저는 Destiny 라고 해요. 이름은 송 나진."

 

"데스..티니?"

 

 

 

 

 

 

역시.. 운명이었다.

 

환한 미소로 다가온 나의 운명은 설레임 이상의 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즐거웠던 2박 3일의 여행이 끝나고도 만남을 지속할 정도로 나는 그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물론 억지로 전화번호를 물어본 것도 나였고 만나자고 일방적인 약속을 잡은것도 나였지만

 

그런 만남이 하루 이틀 지속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연인이 되어 있었다.

 

20살인 나보다 3살 연상인 나진이란 이름의 연인은 똑똑한 머리와 밝은 성격을 가진 삶의 활력소였다.

 

막 미성년자 딱지를 뗀 20살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리는 달달한 애정을 과시하며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왔다. 약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나진이 가끔 넘어져 다치는것을

 

빼고는 지루하다고 여길만큼 사이가 좋았다. 그가 연인임을 알고 있던 친구들은 다들 내가 아깝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평범한 외모지만 그건 나진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애교가 많고 밝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진실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다.

 

 

 

 

 

 

"지용아! 빨리 와!"

 

"형! 저 사람들 누구야? 왜 쫓아오는거야?"

 

"이유는 묻지 말고 어서 뛰어!"

 

 

 

 

 

 

어느날 부터인가 만남에 방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때나 둘이 있을때나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졌으며 급기야는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이

 

우리를 미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수 없었지만 나진은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헉..헉.. 끈질기다.."

 

"형! 저 사람들 누군지 말 안해줄꺼야?"

 

"내가 빚이 좀 있거든. 사채업자가 보낸 사람들이겠지 뭐.."

 

"뭐? 얼마나 빚을 많이 졌길래 그래?"

 

"헤헤~ 좀 그렇게 됬어."

 

"얼마야? 내가 대신 갚아줄께."

 

"대학생 주제에? 됬네요~"

 

"얼만데 그래? 왠만한 금액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어."

 

"아하~ 넌 카미아의 외아들이었지? 하지만 괜찮네요~"

 

 

 

 

 

 

나는 카미아 회장의 외아들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입양된 양자다.

 

고아원에 버려져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그 곳에서 자란 나는 6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추운 겨울 고아원 앞에 버려졌다는 사실 외에는 부모나 다른 이야기를 전혀 들은적이 없다.

 

어쨋든 현재 나는 잘 나간다는 카미아 그룹의 외아들이고 나진의 빚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끝내 거절하고 쫓겨 다니기를 반복했다.

 

문득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거 놔! 당신들 뭐하는 사람이야!"

 

 

 

 

 

 

그러던 어느날..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나기로 약속했던 나진은 나의 앞에서 이름모를 사내들에게 끌여갔다.

 

약간의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끌려간 후 그대로 사라져 모습을 감췄다.

 

첫날은 연락을 기다렸다. 둘째날은 그가 자주 가던 서점이나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고 셋째날은

 

그가 다닌다는 학원을 무작정 찾아가 하루 종일 기다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열흘째.

 

힘없이 수업을 마치고 교문 밖을 걸어나오던 나는 그를 납치해간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어디론가

 

끌려갔다. 저항을 해보았으나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언가가 코끝에 와 닿는 동시 정신을 잃어버렸다.

 

 

 

 

 

 

 

 

 

 

 

 

"으...."

 

"이제 정신이 드는가 보군."

 

"누구..십니까..?"

 

"우선 물 마시고 정신 차려라."

 

"누구십니까? 누군데 사람을 납치 하는거죠?"

 

"이름이 정 지용이라구? 카미아 그룹 사장의 외아들이었구만?"

 

"어떻게 저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그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 없어."

 

"돌아가겠습니다. 아무일 없었으니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

 

"듣던대로 정 회장은 똑똑한 아들을 두었군."

 

"저의 부모님을 알고 계신가요?"

 

"나는 송아 그룹 회장이다."

 

"송아 그룹.. "

 

"너도 알다시피 카미아와 송아는 사이가 좋지 않다. 하지만 네게 아무짓 안할테니 긴장하지 말거라.

 

초면에 네게 험한 행동을 보였구나. 우리 애들이 실수한것이니 부디 이해하길 바란다.

 

그것보다 너의 부모님이 카미아와 송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는가?"

 

"카미아와 송아의 관계라니요?"

 

"데리고 들어와!"

 

"네. 회장님."

 

 

 

 

 

 

끌려가 처음 눈을 뜬 곳은 넓은 방 안에 쇼파와 사무용 책상 하나만이 놓여져 있는 사무실이었다.

 

나는 낯선 곳에서 영문도 모른채 나에 대해 알고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주위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송아 그룹의 회장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는것으로 봐서는 이곳이 송아 그룹의 회장실인 듯 했지만

 

눈매가 다부지고 턱선이 날카로운 그는 회장의 자리에 있기에는 너무 젊어 보였다.

 

 

 

 

 

 

"이거 놔! 나 혼자 갈수 있다니까!"

 

 

 

 

 

 

가시방석 같은 쇼파에 한참을 앉아있으니 낯익은 느낌의 음성이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꼈다.

 

힘은 없으나 호소력은 강한 목소리. 가슴이 저릴 정도로 그리워 했던 목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귀를 기울였다.

 

역시.. 그였다.

 

 

 

 

 

 

"나진 형!"

 

"지용아!"

 

 

 

 

 

 

회장이라는 자의 수하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 들어온 그는 나를 보고 놀라 손을 내밀었다.

 

예상밖의 상황에 당황한 나 역시 그를 향해 손을 뻗어봤지만 서로의 만남을 허락할수 없다는듯

 

회장이라는 남자가 그의 손을 창가로 잡아 끌었다.

 

 

 

 

 

 

 

 

"놔주세요!"

 

"어른한테 명령을 하면 쓰나."

 

"나진 형!"

 

"내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가겠다는데 네가 무슨 권리로 지껄이는 거지?"

 

"아들?"

 

"그렇다. 송 나진. 나의 외아들이며 앞으로 송아 그룹을 이끌어 나가야 할 후계자."

 

"하.. 그랬던거야?"

 

"모르고 까부는 모양이니 이제부터 정확히 설명해주겠다."

 

"........................."

 

"사람은 이치에 맞게 살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너와 나진은 남자임에도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

 

내말이 틀린가? 정 지용군?"

 

".........................."

 

"난 나의 아들이 게이가 되는것을 눈 뜨고 볼수 없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허락할수 없어.

 

너희 집에는 아직 비밀로 했지만 알려지면 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가? 내 말이 맞지 않는가?"

 

"그것 때문에 형을 잡아가신 겁니까?"

 

"물론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몸이 안좋아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너를 만난 이후로 정신 못차리고 밖으로 나돌더니 급기야는 집을 나가더구나. 애비된 입장에서

 

그런 아들을 두고볼 수 있느냐? 넌 일년이나 나진을 만났으면서도 그런것 하나 모르고 있었느냐?"

 

 

 

 

 

 

듣고 보니 그의 말이 전부 맞았다.

 

나는 나진을 만나면서도 그의 관한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너무 믿었기 때문일까.. 집안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기에 부모님과 사이가 안좋은것쯤으로

 

가볍게 웃어 넘겼고 가끔 얼굴빛이 좋지 않았는데도 공부를 한다기에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나름대로 그를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방관하고 있었던것 같다.

 

 

 

 

 

 

"오늘 널 부른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정 회장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 네게

 

직접 설명해주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유없는 초대는 거절할것 같아 억지로 데리고 왔지만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제게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회사에 관한 일입니까?"

 

"카미아 그룹과 송아 그룹은 오래전부터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그건 너도 이미 잘 알고 있을것이다.

 

네가 양아들이라지? 정 회장이 네게 얼마나 많은걸 이야기 해줬는지 모르지만 잘 모르고 있는것

 

같아 내가 말해주는거다. 두번 설명하지 않을테니까 잘 듣도록 해라."

 

"네. 말씀 하십시오."

 

"너희 집안과 우리 집안이 공동 주최하는 이벤트가 있다. 이름을 말하자면 비문산장 이벤트 라고 하지.

 

일년에 두번. 여름과 겨울로 진행되며 7명의 참가자들이 마스터의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

 

너도 알고 있느냐? 오래 전 송아와 카미아의 자리 다툼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본 사건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로 들었지만 대단했다더군요. 양쪽 다 타격이 심했다지요?"

 

"한쪽이 우세하면 다른 한쪽을 집어 삼키겠지만 워낙 다툼이 치열해서 계속 가다가는 경쟁만 하다

 

양쪽 모두 무너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너희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산장 이벤트다."

 

"양쪽 그룹의 경쟁과 산장 이벤트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입니까."

 

"일종에 도박이라고나 할까? 내기라고나 할까.. 머리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 추리 게임을 벌이고

 

우승자는 일확천금을 획득하게 된다. 우리는 우승자를 걸고 내기를 해 맞춘 쪽 집안이 1년간 모든

 

상권에서 우선시 된다. 진 쪽이 이긴 쪽에게 싸움을 걸지 않고 양보한다는 소리지."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말도 안되는 망상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벤트를 먼저 제안한건 네 할아버지야.

 

동의한 우리쪽도 우습긴 마찬가지지만 여지껏 그런식으로 도우며 살아오고 있다."

 

"그건 돕는 차원이 아니잖습니까? 회사가 물건도 아니고 내기를 하다니.."

 

"어짜피 네가 물려 받아야 할 일인데 뭘 그리 질색하느냐?"

 

"전 절대 그런 일 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물려받는다 해도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습니다."

 

"하하.. 그래? 그거야 네 마음이고.. 산장 이벤트에 참가해라. 나의 용건은 이것이다."

 

"네?"

 

"너희 쪽에서 8회째 지고있다. 지금은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너도 알고 있지?"

 

"어째서........"

 

"지금껏 98회의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너는 99회부터 참가하면 된다."

 

"제가 왜 이런걸 해야 합니까?"

 

"끝장을 보자. 앞으로 8회다. 99회의 우승자가 네가 될 경우 1차적으로 시급한 자금 문제를 해결해주마.

 

그리고 8회 연속 마스터의 자리를 지켜낸다면 모든 이벤트를 종료하고 카미아에게 상권을 양보하겠다.

 

나진과의 교제도 허락하겠다. 반대로 네가 실패한다면 카미아의 모든 자금줄을 끊겠다."

 

"산장 이벤트라니..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금줄을 끊겠다니요?"

 

"지금 상태로는 카미아의 유지가 힘들다. 정 회장이 우리측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어. 그 말인 즉

 

그만큼 너희 회사 사정이 안 좋다는 말이다. 아직 네게는 말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나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진 못할것이다. 벌써 주측이 되는 계열사들이 속속 부도가 나고 있다. 이대로 카미아가

 

무너지게 되면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 너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겠지?

 

흘려 듣지 말고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거라. 분명 해가 되는 제안은 아니니 말이다."

 

"우선 형부터 풀어주십시오. 억지로 가둬두지 마십시오."

 

"그럴수는 없다. 난 아직도 너희들의 만남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나진은 몸이 많이 약해져서

 

당분간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네가 나의 제안에 응하고 성공한다면 그때 만나게 해주마."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회사를 빠져나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대기업 사이에서 이런 황당한 내기가 벌어진다는 것도 웃기고 그것을 제안한

 

할아버지도 웃기고 제안에 응한 송아 측 사람들도 웃기지만..

 

분명 이대로 뒀다가는 카미아는 무너질 것이 자명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피하기만 한다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하자. 원하는 두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자..

 

나진이 송아그룹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 되찾을수 있는 방법은 그의 제안대로 움직이는

 

것 뿐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알고 있는지라 억울하긴 하지만

 

자존심을 접고 그의 제안을 응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복잡하게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미 연락을 받은 듯 아버지는 초초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동안 숨겨서 미안하다 지용아."

 

"아닙니다 아버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미안하구나. 송 회장이 너를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줄 몰랐다."

 

"한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아버지는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버지라면 충분히

 

송아에게 지지 않으실꺼라고 확신합니다. 어째서 내기 같은것을 하고 계십니까?"

 

"이것은 내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계약이다."

 

"계약이요?"

 

"네 할아버지께서 송아측과 계약을 하셨다. 나도 아버지께서 무슨 마음으로 이런 계약을 하셨는지

 

아직도 모르겠구나.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니 알턱이 없지. 하지만 처음부터

 

송아와 카미아의 사이가 나빴던것은 아니다. 지금의 송 회장 아버지과 나의 아버지는 어린시절부터

 

절친한 죽마고우였으니까. 그러다 회장 자리를 물려받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자 양쪽회사

 

모두 강한 타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던 두분은 엉뚱한 제안을 하셨지.

 

산장 이벤트를 열어서 맞춘 쪽에게 상권을 양보하면서 회사를 존속시켜 나가기로 말이다."

 

"아무리 엉뚱하셔도 그렇지 큰 회사를 가지고 그런 내기를 하다니요."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정확한 내막은 알기 힘들지. 하지만 두 분은 경쟁자이기 이전에

 

친구 이상으로 절친한 관계였다. 아마도 놀이를 핑계로 서로에게 상처 입히는것을 피하려 했겠지.

 

두 분은 문서로 계약을 했다. 110회동안 이벤트를 존속시키되 일년에 두번 진행하기로."

 

"100회면 100회지 110회는 뭡니까?"

 

"계약이 있었던 때가 두 분이 55세가 되던 해였다. 나이와 두 사람을 의미하는 2를 곱한 수가 바로

 

계약의 기간이다. 먼저 계약을 파기하는 쪽은 두말없이 회사를 포기 하겠다는 다소 무리가 있는

 

계약이지. 이번이 99회째다. 앞으로 12회만 버티면 모든 계약은 종료된다. 하지만 지금 회사 사정으로는

 

그때까지 버텨낼 힘이 없어. 지금은 나의 아버지가 살짝 원망스럽구나."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송 회장님의 말대로

 

이벤트에 참가하면 되는 것입니까?"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은 맞추는 횟수가 비슷해 나름대로 유지가 잘 되어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점점 이기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8회째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어.

 

이벤트가 시작되면 송아의 회장과 나는 일주일동안 같은 방에서 폐쇠 회로를 통해 전송 되어오는

 

모니터를 주시하며 마스터를 맞추게 된다. 그 누구와도 상의할수 없게끔 되어있지. 하지만 나에게는

 

마스터를 예상할만한 능력이 없어. 운이 좋아 한 두번 맞출뿐.. 정확한 답을 알아내긴 힘들어."

 

"도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그러십니까?"

 

"추리 게임이다. 우승자인 마스터와 그의 자리에 도전하는 6명의 매니저가 벌이는 추리 게임.

 

머리와 체력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게 되며 일주일 동안 산장에 갇혀 문제를 풀게되지.

 

우승하는 사람에게는 큰 상금이 주워지며 상금은 송아와 카미아에서 반반씩 부담하게 된다."

 

"가서 문제를 풀고 이기면 되는것입니까? 그것 뿐입니까?"

 

"그렇다. 송 회장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해왔다. 네가 이벤트에

 

참가해서 우리가 연패를 한 횟수인 8회동안 마스터의 자리를 지켜내면 110회 예정이었던 이벤트를

 

단축하여 종료하고 모든 상권을 우리 쪽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모든 상권을 넘기겠다.. 결국은 우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하고 있군요?"

 

"그런 모양이다."

 

"문제가 많이 어렵나요?"

 

"일반적인 머리로는 도저히 풀수 없을만한 문제들이 출제된다. 매회 문제 출제 권한은 마스터에게

 

있지만 마스터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문제출제는 카미아와 송아에서 도맡게 된다. 이번 마스터는

 

문제출제 권한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자신이 직접 문제를 내겠구나."

 

"해보겠습니다. 힘들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해보겠습니다."

 

"정말 미안하구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이를 악물고서라도 버텨낼테니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로써 할 부탁이 아니지만 이번 한번만 부탁한다. 8회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번회에서

 

네가 우승하게 되면 자금 사정이 어느정도 풀릴꺼야. 그때까지만 버텨다오."

 

"걱정 마세요. 오갈때 없는 절 이만큼 키워주신것 만으로도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지용아.."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는 아버지의 머리가 모르는 사이 많이 희끗해졌음을 알았다.

 

그동안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러니 반드시 우승해서 버려진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께 보답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진도 만나고 싶었다.

 

송 회장의 힘으로라면 평생 그를 찾을수 없는 곳으로 빼돌릴 수도 있다.

 

해볼 수 있는데까지 해보자.

 

 

 

 

 

 

"우승을 하던 못하던 넌 언제나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지용아."

 

 

 

 

 

 

아버지의 진심 어린 한마디를 들으며 나는 99회 이벤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머리쓰는것을 좋아했던지라 긴장보다는 묘한 흥분감이 일었다.

 

예상대로 문제는 상상할수 없을만큼 어려웠다. 게다가 참가자들 모두 엄청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첫번째 문제를 읽어내려 갈때까지는 이기겠다는 다짐과 함께 강한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다는 형식의 살인 게임임을 알았을때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아버지가 나를 살인이 일어나는 지옥으로 밀어 넣은것인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2일째 되는날의 문제를 틀리자 예고는 현실로 다가왔다.

 

 

 

 

 

 

"죽었어! 정말 죽었어!"

 

"거짓말.. 이 살인 예고가 사실이었단 말야?"

 

 

 

 

 

 

정답자가 문제를 맞추지 못한 다음날 동반자는 가슴에 칼이 박힌 끔찍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연실색한 사람들은 시체를 보고 기겁해 문을 닫고 도망가버렸다.

 

산장안에서 시체를 처리할 수 없는지라 문을 닫고 방을 피해다니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었다.

 

산장내부로 모르는 사람이 돌아다니는지 매번 새 옷과 음식이 채워졌고 시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시체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궁금했지만 문제푸는것도 힘에 부쳐 알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나와 다른 한 사람.. 둘만이 남게 되었다.

 

마지막날 문제는 지나간 6일동안의 문제와는 달랐다. 추리문제가 아니라 산장의 문을 열수 있는

 

리모컨을 찾으라는 문제였다.

 

정신을 집중하고 죽을 힘을 다해 리모컨을 찾아내자 대회가 종료되며 낯익은 남자가 등장했다.

 

그 사람은 첫날 모두을 산장까지 데려다준 운전사였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전 대회의 마스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회가 종료되자 같이 있던 남자가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죽은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승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말았다.

 

자신을 집사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따라 산장을 벗어나 처음보는 큰 별장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부모님과 송아 회장 내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대단하구나."

 

"왜 이런 대회라고 미리 말씀해주지 않으셨죠? 송 회장님은 그렇다 치고 아버지마저 절 속이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엉뚱한 대회라고 생각했지만 이정도로 비열할줄은 몰랐습니다!"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죽은 이유가 모두 나의 탓인것 같은 자괴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 나를 보고도 부모님은 아무말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때 송회장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울컥 넘어오는것을 억지로 참았다.

 

 

 

 

 

 

"우선 우승을 축하한다.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구나."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너의 승리로 카미아의 자금사정은 전보다 훨씬 수월해질것이다. 약속은 약속이니 내가 장담하마.

 

마스터는 스스로 권한을 포기할수 있다. 기회는 1회 우승을 했을때 한번 뿐이며 그 이후로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마스터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하겠느냐?"

 

"미쳤어! 다들!"

 

"대답하거라. 하겠느냐? 말겠느냐?"

 

"아버지!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토록 잔인하실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울부짖어도 그 분들은 끝내 답을 해주지 않았다.

 

오기가 치밀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하겠느냐? 말겠느냐?"

 

 

 

 

 

 

아제와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아무말도 해주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나란 존재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도구일뿐인가?

 

그래. 어짜피 버려져서 죽을 뻔한 목숨.. 키워 준 당신들에게 주지..

 

그것을 원한다면 기꺼히 그렇게 해주지..

 

 


나는 고통이 지나쳐 아픔을 느낄 수 없을때까지 강하게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모두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죽는걸 바라신다면 죽겠습니다.

 

이것이 저를 키워주신 보답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하.. 정말 대단한 아들을 두셨군요. 부럽습니다. 만약 포기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계속 도전하겠다고 하니 이만 사실을 밝혀도 될것 같습니다. 정 회장님."

 

"지용아. 일어나거라.. 미안하다.."

 

 

 

 

 

 

내가 결정을 내리자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일으켜세웠다.

 

영문을 알수 없었다.

 

아까와는 다른 태도로 웃고 있는 송 회장과 아버지 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역시 아쉬운 사람이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맞는 모양인지 그토록 당당했던 아버지가

 

송 회장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졌다.

 

내가 쇼파에 다가가 앉자 그제서야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그런 눈으로 바라볼것 없다. 사람들은 모두 무사히 살아있다."

 

"아버지?"

 

"아무리 도박이라고 해도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수는 없지 않느냐. 참가했던 사람들은 모두

 

멀쩡히 살아있다. 그러니 화 풀고 설명을 듣거라."

 

"그들은 분명 칼에 찔린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죽었지? 그것 자체가 이벤트 내용중 하나이다."

 

"네?"

 

"죽은게 아니라 약으로 잠시 잠들어 있었다는 말이다. 칼이나 피는 모두 분장일 뿐이야."

 

"이해를 못하겠습니다만.."

 

"산장에는 마스터를 도와주는 두 명의 도우미가 존재한다. 주최측에서 지원하는 사람들이지.

 

정답자가 문제를 맞추지 못할 경우 모두가 잠든 새벽 동반자의 방으로 도우미가 찾아간다.

 

탈락된 동반자에게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참가비를 지급하며 연극 협조를 받는다."

 

"그럼 여지껏 죽은줄 알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연극을 벌였다는 말인가요?"

 

"그런 셈이지."

 

"왜 그렇게 까지 하며 사람을 속이는거죠? 그냥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이 룰 역시 역대 회장님들이 정한거라 어쩔수가 없다. 이유는 목숨의 위협을 느껴야

 

잠재되어 있는 생존 본능이 발동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정답자가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동반자가 살해된다는것.

 

그것부터가 이상합니다.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그 사람이 탈락해야지 왜 다른사람이 탈락하는거죠?"

 

"동반자와 정답자의 관계를 깊이 생각할 필요 없다. 어짜피 문제는 다 같이 상의해서 풀수 있는것.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문제를 푸는 사람은 정답자가 아니라 동반자라는 말이다.

 

궁지에 몰리면 머리가 상상 이상의 지혜를 발휘하게 된다. 정답자 역시 어느 정도의 책임을 느끼며

 

문제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지. 만약 정답자가 살해되는 시스템이었다면 조바심을 내는것은

 

본인 뿐. 나머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것을 우려한 어른들께서는

 

정답자와 동반자라는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하여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최소 두명 이상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되겠느냐?"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으나 믿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 말입니다. 제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만약 실제 살인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내가 아들인 너를 게임에 참가시켰겠느냐? 회사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 너를 참가시키지 않았을것이다. 또한 정말 살인 게임이었다면 양쪽 모두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약을 파기했을 것이다."

 

"그럼 마스터가 되면 이 사실을 알고 게임에 참가하는 건가요?"

 

"마스터들도 물론 사실을 알고 있지. 최종 마스터로 선발된 사람을 불러 다음 게임 참가여부를

 

물어 승락하면 모든 사실을 알려주게 된다. 거절할 경우 자세한 내용을 밝힐 필요가 없겠지."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다가 만약의 경우 정신을

 

놓아 버린다던가 돌발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오면 어쩝니까?"

 

"걱정 말거라. 여지껏 그런 일은 없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위기가 닥칠수록 이성이

 

강해지더구나. 어떻게든 정신을 집중해 살아나갈 궁리를 하지."

 

"그렇군요.."

 

"이제 네 궁금증이 풀린듯 하니 마지막 확인을 해야겠지? 김 비서. 사람들을 들여보내세요."

 

"네. 회장님."

 

 

 

 

 

 

아버지가 비서에게 무언가를 시키자 잠시 후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직접 모습을 보고서야 정말 거짓죽음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가슴속에 단단히 응어리진 무언가가 단번에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지용씨. 축하드립니다. 많이 놀라셨죠?"

 

"다행입니다!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살아 생전 처음 느껴본 안도감이었다.

 

예수님이 돌문을 열고 부활하셨을때 그의 제자들이 느낀 감정이 이것과 같았을까?

 

직접 그들을 만져보고 멀쩡하다는것을 확인했을때야 비로소 분노로 가득찬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나는 그 후로 산장 마스터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버지. 마지막 문제는 산장을 빠져나가는 리모컨을 찾는 것. 단 하나죠?"

 

"그래. 마지막 문제는 마스터도 손 댈수가 없다. 매니저와 마스터가 단 둘이 살아 남았을 경우

 

모든 문제가 마스터에게 유리하지 않느냐. 그럼으로 마지막 문제는 변하지 않고 늘 한문제이며

 

순서와 관계없이 매니저가 마지막 문제를 맞췄을 경우 마스터는 자격을 박탈 당하게 된다.

 

마스터가 주최측에게 문제 출제를 맡겼을 경우 카미아에서 세문제, 송아에서 세문제를 출제하게되며

 

마지막 날의 문제는 변함없이 한가지가 된다."

 

"저라면 문제 출제를 맡기지 않겠습니다. 모르는 문제를 풀면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 룰을 만든 이유는 혹시라도 문제 출제할 능력이 없는 마스터가 뽑혔을 경우 사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지껏 문제 출제 권한을 포기한 마스터는 없었어."

 

"네. 알겠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마스터의 자리를 거머쥐자 일은 탄탄대로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4회 연속 마스터 자리를 지켜냈고 회사도 점점 안정되어 가는듯 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런 어이없는 내기를 하신 역대 두 회장님의 의도가 궁금했지만 두 분은

 

혹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었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보았다.

 

물론 모든것을 내 기준에서 생각했기에 그런 추측이 나왔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수 천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대 기업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는게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화살과 같은 빠르기로 시간이 흐르고 모든게 수월하게 풀려갔으나 나진은 여전히 만날수 없었다.

 

송 회장이 손을 쓰고 있는 모양인지 얼굴은 커녕 2년동안 연락 한번 오지 않았다.

 

그가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막무가내로 송회장의 자택으로 찾아가기도 했지만 약속한 8회를 채우라는

 

말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했다.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나는 그를 얻고 싶었다.

 

 

 

승리에 대한 강한 자신은 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마지막 날의 문제다. 매니저가 문제를 맞춘다면 자동으로 마스터의 자리를

 

빼앗기게 되니 말이다. 그것의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평소 사람들과의 신뢰를 두텁게 쌓은 다음 마지막 날 맞추지 못하도록 약간의 방해만 하면 된다.

 

사람들의 심리도 어느정도 파악이 되자 나의 산장 생활은 더욱 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나의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는지 이벤트가 끝나면 아버지는 생존자를 꼭 확인시켜주셨다.

 

살인이 아니라 살인 당한 연기일 뿐이라면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5회 대회를 준비하던 어느날 아버지를 통해 몰랐던 한가지 사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하실에 있는 함정을 사용해 보았느냐?"

 

"위험할 것 같아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깜박 잊고 너에게 말해주지 않았구나."

 

"함정이라면 위험한 것 아닙니까?"

 

"물론 함정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스터가

 

함정을 사용할 경우 사람들을 무조건 통과하게 만드는 것이 규칙이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함정도 문제를 맞추면 통과하게끔 되어 있다. 문제 출제하는 것이 마스터일 경우 사용할 수

 

있는데 마스터는 사람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도록 도와주면 된다."

 

"어짜피 통과할 함정이라면 왜 만들어 놓은 것입니까?"

 

"그것도 공포 산장의 하나의 이벤트지. 결과적으로는 목숨을 잃지 않지만 마치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심리를 움직여 그들의 생존 본능을 확인하게 되지. 일종의 담력훈련 같이 말이다.

 

무엇보다 그 곳에는 정말 재미있는 장치들이 많이 있어."

 

"어떤게 재미 있습니까?"

 

"함정의 방은 5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1번부터 5번으로 표시한다. 각 방마다 5가지의 함정이 지원된다.

 

마스터는 메뉴얼을 보고 함정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메뉴얼에는 함정을 통과하는 법이

 

자세히 나와있다. 1번부터 4번방 까지는 그렇게 되어있다."

 

"할아버지께서 정말 엉뚱하셨군요? 그나저나 4번까지라면 5번방은 조금 다릅니까?"

 

"5번방이 지나면 정답방이기 때문이 마지막 방이 되는 5번째 방은 함정이 한가지 밖에 없다.

 

이름하여 삶과 죽음의 방이지. 이것 역시 마스터들에게 공개하는 부분이니 부담갖지 말고 듣거라."

 

"네. 아버지."

 

"5번 방에는 문이 두개있다. 오른쪽은 정답방으로 향하는 입구. 왼쪽 방은 산장 밖으로 나가는 입구.

 

문이 두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수결로 결정을 하더구나."

 

"왼쪽문을 선택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산장을 빠져나갈수 있습니까?"

 

"그렇다. 만약 전원이 왼쪽 문을 선택 한다면 이벤트는 그것을 종료. 전원 탈락하게 된다."

 

"그럼 마스터도 탈락하는것 아닙니까?"

 

"마스터도 예외는 아니지."

 

"말이 안됩니다. 그런 것이라면 마스터가 자신에게 분리할지도 모르는 지하실을 사용하지 않을것

 

아닙니까? 마스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함정방은 50회가 넘도록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네 말대로 위험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이

 

왼쪽 방을 선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64회때 처음으로 지하실을 사용해 4회간 마스터를

 

지켜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회장자리에 앉기 이전의 일인데 그 마스터는 탈락의 위험을

 

감수하고 함정을 사용했다고 하더구나. 결과는 무척 놀라웠지. 위험할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끼리의 다수결에서는 항상 오른쪽방이 선택 되었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으나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방향쪽에 위치한 문이 더 믿음직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함정에서 마스터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 나온 사람들은 그 이후로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위험을 감수하는대신

 

사람들의 확실한 믿음을 얻는 셈이지."

 

"여지껏 왼쪽을 선택해 전원이 빠져나간 적은 없었나요?"

 

"물론 있었다. 함정 사용 횟수 21회중 2번 전원 탈락자가 나왔지. 어짜피 함정 사용 결정권도

 

마스터에게 있으니 네가 사용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갑자기 이런 이벤트를 만든 두 분의 어르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고 싶네요."

 

"정말 이해할수 없는 분들이긴 하다. 그나저나 미안하구나. 회사사정이 어렵다보니 너만 이벤트에

 

참가해서 고생을 하는구나. 처음에는 송 회장의 아들과 대결을 시켜보자고 했으나 그 아들이 몸이

 

많이 약하다지? 치료를 받고 있어 힘드니 우리쪽만 참가하는 대신 1회우승만 하면 자금을 융통해

 

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현재 우리쪽에서는 거절할 입장이 되지 못해서.."

 

"잘 하셨습니다. 저 혼자 참가하는 편이 나아요. 그것보다 그 아이.. 지금 어디있는지 알수 없을까요?"

 

"송 회장 아들 말이냐?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아프다고 들었다. 외국으로 나가 치료를 받는다던데"

 

"하.. 그렇습니까?"

 

 

 

 

 

 

아직도 여전한 사랑이라고 확신하고는 있지만 떨어져 있는 2년의 공백은 너무나도 컸다.

 

처음에는 보고싶어 못 견딜것 같더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마음은 앙금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별의 절차도 없이 이미 헤어진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확실히 말할수 있는것은 가끔 보고싶어 눈물이 날것 같다는 것.

 

 

 

그렇게 절절한 그리움만 남아있는 가슴이 점점 지쳐가고 있을때 쯤.

 

5회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정신적 공황상태를 경험하게 해줄 엄청난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를 만난지 3년째 되는 23살의 봄이었다.

 

 

 

 

 

 

"지용아. 검은색 정장으로 갈아입고 내려오너라."

 

"갑자기 검은색 정장은 왜요?"

 

"저번에 말했던 송 회장 아들있지? 그 아이가 죽었다는구나."

 

"..........................."

 

"아무리 사이가 안좋아도 안면이 있는 사람인데 문상을 안가서야 되겠느냐. 어서 준비하고 내려오너라."

 

"큭큭..큭.."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지만 처음 느낀 감정은 웃음 그 자체였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면 덜컥 믿어버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웃었다. 미친사람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배를 잡고 웃었다.

 

하지만 그 사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쉴새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웃음과 눈물. 뭔가 앞 뒤가 맞지 않는 감정이었다.

 

어느 순간 웃음이 멈추더니 가슴으로 싸한 통증이 밀려 올라왔다. 그것은 그리움? 두려움?

 

스스로의 감정조차 정확한 이름으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선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만 했다. 말로 들어서는 사실을 받아들 수 없었다.

 

한 겨울 맨 몸으로 빙판 위에 서 있는것 보다 더한 한기가 느껴졌다.

 

온 몸이 격하게 떨렸다.

 

 

 

 

 

 

"그 동안 많이 아팠다지? 외국에 나가서 치료를 했나보던데.."

 

"어린 나이에 참 안됬어.. 그래서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라니까?"

 

 

 

 

 

 

모든게 산장과 같은 이벤트일거라는 망상과는 달리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슬픔과 오열 그 자체였다.

 

장례식장으로 들어서니 힘 없이 빈소를 지키는 정회장의 까칠한 모습과 바닥에 주저 앉아 통곡하는

 

그의 부인의 모습이 눈을 찌르며 들어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자네가 와줄줄은 몰랐네. 고맙네.."

 

"얼마나 슬프겠나.. 기운 내게.."

 

 

 

 

 

 

아버지는 송 회장에게 다가가 장례식장에서 흔히 하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지독한 국화꽃 향기에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아내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먹은것도 없는데 쓴 물이 쉴새없이 올라왔다.

 

더 이상 게워낼 것도 없을 만큼 구역질을 해댄 뒤에서야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죽여 흐느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숨이 쉬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형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날수 있어!!!!!!!"

 

 

 

 

 

 

아무도 없는 빈 화장실에 나의 절규섞인 울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만큼 눈 앞이 핑 돌았다.

 

차라리 꿈이라면 좋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눈을 뜨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꿈이었으면..

 

다시 빈소로 돌아갈 수 없었던 나는 그 길로 미친듯이 뛰어나가 소주를 한병 샀다.

 

그리고 어딘지도 모르는 골목 한 구석에 기대 앉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지나가던 동네 꼬마들이 미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 해댔지만 그런것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세상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덜컥 남겨진 기분이었다.

 

 

 

 

 

 

"뭐라도 먹어야지. 지용아?"

 

".........................."

 

 

 

 

 

 

그날 이후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어두운 방 구석에 틀어 박혔다.

 

그의 미소가 떠오르는 밝은 빛이 싫어 커튼을 치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벽만 바라보았다.

 

내가 걱정된 어머니는 죽을 가져다 주시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다 내려 가셨지만

 

이성을 상실한 나에겐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큰일이야.. 이번에는 금액이 너무나 커..."

 

"괜찮겠어요? 불안해 죽겠어요."

 

"당신은 너무 걱정하지 말구려. 내가 어떻게든 해볼테니 지용이에겐 비밀로 하고.."

 

 

 

 

 

 

일주일을 꼬박 틀어박혀 폐인처럼 생활하던 내가 처음으로 아랫층에 내려갔을 때였다.

 

우연히 들은 부모님의 대화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나를 현실로 이끌었다.

 

그때 이미 회사는 돌이킬 수 없을만큼 기울어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자금을 융통해 보겠다며 불안한 어머니를 달래고 있었고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연신 한숨을 내 뱉었다. 그럼에도 내가 걱정할까봐 비밀로 해달라는 아버지의 말씀.

 

 

그래. 아직 내가 해야할 일은 남아있는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들지만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기에는 아직 할일이 남아있다.

 

슬퍼할 기회는 앞으로도 충분히 있다. 우선 눈 앞에 들이닥친 일부터 수습하고 나서 슬퍼하자.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여름 이벤트 준비에 들어갔다.

 

나진을 주겠다는 약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회사를 도와 주겠다는 송 회장의 약속은 아직 유효한것.

 

 


모두가 미쳤다. 회사를 두고 내기하는 모든 사람들은 미쳤다. 이벤트를 생각해낸 역대 두 회장님들은

 

정말 제대로 미쳤다. 이런 말도 안되는 내기에 응한 나 역시 미쳤다.

 

그러니 미친 사람들 끼리의 계약은 반드시 끝을 봐야하는 것이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5회 마스터 자리를 지켜냈으니 앞으로 3회 남았구나."

 

"송 회장님.."

 

"왜 그러느냐?"

 

"약속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말도 안되는 내기라도 약속은 약속인 겁니다."

 

"걱정 말거라. 송아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는 5회 이벤트에서도 마스터 자리를 지켜냈다.

 

이벤트가 끝나면 늘 그래왔듯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 별장에 들렀다.

 

그곳에서 송 회장의 약속을 다시한번 다짐 받은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채 별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응접실에 산장에서 사용하던 수첩을 두고

 

나왔다는 생각에 다시 현관으로 들어서던 나는 의미를 알수 없는 이상한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이대로 두면 위험하겠지?"

 

"생각보다 보통이 아닙니다. 서둘러 조취를 취하시는 편이.."

 

 

 

 

 

 

철컥 -

 

 

 

 

 

 

"누구냐?"

 

"수첩을 두고 나와서 다시 들렀습니다."

 

"지용이구나? 최 비서. 이걸 지용에게 가져다 주십시오."

 

"네. 회장님."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기도 뭐해 현관에 잠시 서서 기다리니 그의 비서가 수첩을 들고나왔다.

 

나는 수첩을 받아 주머니에 찔러 넣은 뒤 송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송 회장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이벤트가 끝나면 아버지가 모든것을 챙겨주는데 급하게 외국을

 

나가신 터라 이번 생존자 확인과 뒷 마무리는 송 회장이 도맡아 진행했다.

 

그의 눈매는 나진의 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울컥 눈물이 나올것 같아 그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위험하겠지?

 

-생각보다 보통이 아닙니다. 서둘러 조취를 취하시는 편이..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살짝 엿들었던 송 회장과 비서의 대화가 머리속에서 생생하게 맴돌았다.

 

누굴 두고 하는 말인지는 알수 없었으나 나와도 관련되어 있을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반년의 휴식이 주워졌고 회사 사정은 더욱 더 악화되었다.

 

연이어 터지는 부도를 막아보고자 동분서주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무슨일이 있어도 반드시 8회를 채워서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나진을 얻을 수는 없지만 그 대신

 

송 회장이 내 세운 어이없는 제안은 꼭 현실화 시켜 보이겠다고.

 

학교는 이미 휴학기간이 지나 재적처리 된지 오래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학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재 입학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건 아버지와 회사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6회의 문제를 만들었다. 완벽하다고 느낄때까지 고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복잡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여전히 눈물이 날만큼 그가 그립다..

 

 

 

 

 

 

 

 

 

 

 

 

"안녕하십니다. 저는 정 지용 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3세이고 컴퓨터 프로그래머 입니다."

 

 

 

 

 

 

또 다시 거짓 미소로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지독한 바람이 살갗을 에이는 추운 겨울이었다.

 

처음 마스터가 되었을때는 혹 정체가 탄로나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냈는데 이제는 오히려 깜짝깜짝

 

놀랄만큼 능숙한 연기를 펼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픔을 견디는것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슬픔을 견디는것은 그것보다 더 긴 나날들을 보내야하지만

 

타락하는것은 순식간인듯 싶다.

 

 

 

 

 

 

"이봐요! 민식씨! 어서 칼을 내려놔요!"

 

 

 

 

 

 

처음 산장에 도착 했을때부터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민식이라는 사람이 거슬렸다.

 

기존에 봐왔던 매니저들과는 달리 말투나 가지고 있는 지식이 약간 허술해 보였다.

 

그러던 도중 3일째 되던 날 아침.. 나의 생각이 현실화 되어 나타나고야 말았다.

 

민식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미친척 난동을 부리며 칼을 들고 사람들을 협박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그를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나는 침착하게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미친게 아니다. 눈을 보면 알수 있다. 미친 척하는 것 뿐이지 결코 미친것은 아니었다.

 

나는 민식이 잠시 한눈을 파는 틈을 타 재빨리 그의 복부를 발로 힘껏 걷어차고 칼을 빼앗아들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넘어진 그를 둘러싸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산장에 두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내가 산장에 있는 한 실제 살인이 벌어져선 안된다.

 

곰곰히 방법을 생각하다가 모두가 잠든 뒤 민식의 이름을 동반자로 바꿔 올렸다.

 

다행히 그는 아직 동반자가 된적이 없다. 잘만 하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도 그를 탈락시킬수 있다.

 

나는 모두가 식사를 하는 틈을 타 옷을 갈아 입겠다는 핑계를 대고 2층으로 올라와 메모를 조작했다.

 

정답자를 내 이름으로 하고 동반자를 그의 이름으로 하면 큰 어려움 없이 내 방에서 해결할 수 있다.

 

미션 메모가 모두에게 공개되자 사람들은 일제히 정답을 맞추기를 거부했다.

 

모두가 그에게서 같은 위험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군중 심리는 이럴때 정말 편하다.

 

결국 민식은 그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해 문제를 풀지 못하고 탈락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도 혼자 문제를 맞추기 힘들다.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으며 여유있는 웃음을 지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니 나머지는

 

두 회장님이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지.

 

 

나는 그 이후로 돌발 사태에 대비해 칼 한자루를 침대 맡에 두는 버릇이 생겼다.

 

유리로 된 접시도 이곳 저곳에 숨겨 또 다시 덤벼들면 아쉬운 대로 깨트린 다음 저항할 수

 

있도록 만발의 준비를 갖췄다.

 

산장의 정답 컴퓨터인 동시에 전체를 움직이는 메인 컴퓨터를 추리해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모양이었다. 산장의 심장이라는 힌트가 꽤 쉽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맞추지 못하는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 6회째 마스터의 자리마저 거머쥐게 된 나는 이벤트가 끝나자 마자 생존자를 확인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언제나와 같이 반갑게 맞아 주셨지만 얼굴빛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안 계시네요?"

 

"아버지는.. 창원에 내려가셨다.. 그게.."

 

"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되요."

 

"지용아.."

 

 

 

 

 

 

그늘 진 어머니의 눈가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전보다 깊은 주름이 가득했다.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지만 느껴지는 집안의 공기는 위태위태 했다.

 

회사는 이미 손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셨고 혼자 남아 불안해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나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남아 돌봐드렸다. 혹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한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돌아와서인지 어머니는 그나마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죽어버린줄 알았던 핸드폰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 지용! 이늠 시키! 아직도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거냐?"

 

"성재구나?"

 

"때로는 밝은 빛을 보는것도 도움이 된다. 지금 나와라. 형님이 밥 산다."

 

"지금? 지금은 좀.."

 

"네가 청승떤다고 하늘에 있는 나진씨가 좋아할줄 알아? 그러니 잔말말고 나와!"

 

 

 

 

 

 

 

 


나에게는 고등학생때 부터 절친했던 성재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내가 나진과 만나느라 연락이 뜸해져도, 산장에 신경을 기울이느라 연락을 하지않아도

 

언제나 한결같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마침 부모님이 동반 외출을 하신 상태라 하루쯤은 외출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옷을 갖춰입고 외출 준비를 했다.

 

평소에 늘 입던 옷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니 얼마나 집에만 있었던 걸까.

 

 

 

 

 

 

 

 


"가끔은 이렇게 외출을 해 줘야 한다니까?"

 

 

 

 

 

 

 

 


밥을 먹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성재는 우울해 하는 나를 위해 신간 게임의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맛보는 아이리쉬의 향을 가슴 깊히 들이마셨다.

 

은근히 나른한 느낌을 주는 커피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드르르르륵 -

 

 

 

 

 

 

 

 


"뭐해? 전화 안받아?"

 

"내 전화?"

 

"그래. 지 전화를 왜 나한테 물어? 그리고 진동좀 해제해라. 노인네냐?"

 

"하하.."

 

 

 

 

 

 

 

 


입술을 삐죽거리며 놀리는 성재에게 손을 흔들어보인 나는 폴더를 열어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이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신기했다.

 

 

 

 

 

 

 

 


"여보세요?"

 

"지용이니?"

 

"김 비서님? 어쩐일로 제게 전화를 다 하셨어요?"

 

"놀라지 말고 듣거라.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사고를 당하셨다. 네가 지금 이리로.."

 

 

 

 

 

 

 

 


쨍그랑 -

 

 

 

 

 

 

 

 


김비서가 전해주는 사고소식에 놀란 나는 들고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린 채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재는 떠들던 입을 다물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에게

 

자세히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길로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렸다.

 

가슴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김 비서님!"

 

"지용아. 빨리 왔구나!"

 

"어떻게 된거죠? 아버지는 무사하신가요? 어머니는요?"

 

"사모님은 이미..유명을 달리하셨다.. 회장님은 수술중이셔.."

 

"하...."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지만 당황함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침까지 웃으며 인사를 나눴는데 갑자기 죽음이라니..

 

나는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충격에 점점 익숙해지는걸까.

 

 

 

 

 

 

 

 


"사고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15년 넘게 회장님을 모셔온 기사가 졸음 운전을 했을리도 없고

 

게다가 대낮에 20m 가 넘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도 이상하고.."

 

".........."

 

 

 

 

 

 

김 비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있자 -수술중- 이라는 안내등이 꺼지며

 

흉직한 몰골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이 미친사람처럼 달려가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절규했다.

 

돌발적인 행동에 놀란 의사와 간호사들은 나를 저지한후 아버지를 급히 응급실로 이동시켰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심장은 또 한번 나를 비탄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후로 세 시간 남짓.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듣고 시신을 확인하자 그때서야 응어리져 있던 눈물이 타버릴듯한 열기를

 

동반하며 가슴 깊속한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지용아.. 이 어린것.. 불쌍해서 어째.. 흑흑..."

 

 

 

 

 

 

빈소에 찾아든 지인들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작은어머니의 통곡을 듣고 나서야 나는 현실을 인정하며

 

절망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이제는 정말 이 세상에 나 혼자.

 

슬픔보다는 두려움에 질려 눈물이 났다. 외로움이라는 것을 새삼 뼈져리게 느꼈다.

 

 

입관과 염이 끝나고 화장 되어진 부모님의 시신는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다시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 분들께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허탈 그 자체였다.

 

 

 

 

 

 

"지용아. 너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회사는 돌이킬수 없게 되었다. 회장님마저 돌아가신 지금

 

주주회의를 통해 절차를 밟고 송아에 합병. 또는 매각이 될 예정이다. 미안하구나.."

 

"김 비서님이 저에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목숨은 하늘의 뜻인걸요.."

 

"이제 말도 안되는 산장 이벤트는 그만 둬. 송 회장도 사람이라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을것이지만

 

혹여나 계속 진행이 된다 하더라도 넌 참가할 필요가 없다. 손을 떼."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갔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는 말처럼 내 몫으로 남겨진 유산은

 

충분했다. 받은 은혜는 너무나 많은데 되돌려드릴 수가 없어 가슴이 아팠다.

 

나는 모든것을 정리하고 작은 아파트 하나를 구해 이사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자 미루어두었던 그리움이 소스라칠만큼 강하게 밀려들었다.

 

 

 

 

 

 

-형.. 형이라도 볼수 있다면 이렇게 가슴 아프진 않을텐데.. 잘 지내고 있는거야?

 

-한마디 상의 없이 날 버리고 떠났으니 행복하게 잘 지내야해.. 하늘에서마저도 슬퍼한다면

 

-그땐 내가 용서하지 않을꺼야.. 그래도.. 보고싶다.. 한번만이라도 웃는 얼굴을 봤으면 좋겠어..

 

 

 

 

 

 

처음 만났을때 동호회에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하길 수천번.

 

이제는 보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그와의 추억을 정리해나가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때쯤 잊고 있었던 산장이 떠올랐다.

 

회사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긴 시간을 투자했던 그곳.

 

나는 긴 고민끝에 송 회장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지용아. 잘 지냈느냐?"

 

"안녕하십니까. 송 회장님."

 

"얼마나 상심이 크겠느냐. 그동안 네가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그래. 네가 날 만나고 싶어 했다구?"

 

"그렇습니다. 산장 이벤트를 마지막으로 진행시켜 주십시오."

 

"그건 이미 끝났다.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았느냐?"

 

"저는 회장님의 약속을 믿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저는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었고 남은것 하나 없이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억울합니다."

 

"비록 뜻하지 않은 결과가 생겨 버렸지만 그 누구를 탓할수 있겠느냐.."

 

"약속하신 8회 이벤트를 마저 진행해주십시오. 제가 6회를 승리했으니 앞으로 2회입니다.

 

제가 8회동안 마스터 자리를 지켜낸다면 송아로 넘어간 계열사 중 하나를 저에게 주십시오."

 

"뭐라구?"

 

"그동안 저희 아버지를 목숨과 같이 따른 식구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들은 하루 아침에 갈곳을

 

잃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제가 아버지 대신 그분들을 돌봐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카미아 역대 회장님들이 작은 회사를 일궈내어 큰 그룹으로 성장시켜낸것 처럼 저도 다시 회사를

 

일으켜보고 싶습니다. 저의 제안에 동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흠.."

 

 

 

 

 

 

송 회장은 나의 뜻을 충분히 알아들은 듯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날 이후로 모든것을 잊은채 문제 출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 더 이상은 잃을것도 없는 나에겐 오히려 자극이 되었다.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 문제를 만들었다. 그 동안 만들었던 문제중 단연 최고라는 자부심이

 

들만큼 신중을 기해 문제 출제에 임했다.

 

예정대로 7번째 산장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24살이 되던 여름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느낌이 안좋아요.."

 

"무슨 소리니?"

 

"그냥 느낌이 안좋아요. 그러니 도착해서 무슨일이 생기면 절 좀 챙겨주세요. 부탁드려요.

 

저는 남자치고 힘도 없고 날렵하지도 못하거든요.. 대신 형에게 다른 도움을 드릴께요."

 

 

 

 

 

 

-낯선곳에 오니 왠지 무섭네요. 무슨일이 생기면 절 좀 챙겨주세요. 부탁드려요. 저는 남자치고

 

-힘도 없고 날렵하지도 못하거든요.. 대신 당신에게 다른 도움을 드릴께요."

 

 

 

 

 

 

같은 말을 하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은 잠잠했던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만큼 전율이었다.

 

 

 

 

 

 

 

 

"식탁위에 있는 음식부터 말씀드릴께요. 각 자리마다 숟가락과 젓가락 물컵 북어국이 담긴 국그릇이

 

놓여있었어요. 겨자소스와 간장이 담긴 종지도 두개씩 있었구요. 제일 가운데에는 찌게가 담긴

 

전골 냄비가 있었고 냄비의 오른쪽에는 총각김치. 왼쪽에는 물김치가 있었어요. 근데.."

 

 

 

 

 

 

-카페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네요?

 

-별로 달라진게 없는데요 손님?

 

-아니에요. 장식되어있는 소품의 위치가 바뀌었어요.

 

-나진 형. 그걸 어떻게 알아?

 

-난 한번 보면 절대 잊지 않거든. 저기 보이는 크리스탈 장식은 원래 바의 오른쪽에 있었고 화병은

 

-창가에. 액자는 출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걸려있었고 시계는 카페 중앙에 있는 기둥이었어요.

 

-와.. 손님.. 정말 기억력이 대단하시네요!

 

 

 

 

 

 

그 아이를 보고 나진의 얼굴이 떠오른건 절대 아니다. 나진은 눈에 띄지 않을만큼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 아이는 곱상하니 예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때때로 심장이 멎을만큼 그를 떠오르게 하는 말을 내 뱉곤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쩌면 그 사실을 알기 전부터 이미 눈여겨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승현..

 

 

 

 

 

 

"정신차려요! 진주씨!!"

 

"언니! 일어나요! 빨리 일어나!!!! 흑... 일어나란 말야!!!!"

 

 

 

 

 

 

승현이란 아이에게 집중되는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고민할때쯤..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를 도와 탈락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연극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첫날 문제때 사용할 가사

 

도우미의 마네킹을 부탁했었는데 진짜 그녀의 시체가 차가운 식당 바닥을 뒹굴고 있었으며

 

이벤트에 참가한 진주라는 여자가 눈 앞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놀란 마음에 급히 확인해보니 거실 커튼뒤에 몰래 감춰져있던 석궁이 그 원인인것 같았다.

 

이해할수가 없었다. 분명 이벤트가 진행되기 전 산장을 꼼꼼히 점검했는데 그런 석궁따위는

 

발견하지 못했다. 갑자기 일이 꼬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인과 부모님의 이어진 죽음에 피를 보면 치가 떨리도록 강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내가 마스터라는 사실을 밝힐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던 중 나의 이름이 동반자에 오르게 된 날 밤이었다.

 

 

 

 

 

 

"만약 형이 죽는다면 저도 죽을꺼에요.."

 

"뭐?"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버렸는데.. 형과 같이 이 산장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그 편이 나아요."

 

 

 

 

 

 

멈췄던 설레임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거짓없는 눈으로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며 고개를 떨구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은 정신없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낭떠러지 끝으로 추락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과연 이 감정이 사랑인것인가.. 죽은 나진과 비슷한 모습에 머리가 혼란을 일으킨것은 아닌가..

 

밤새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결론은 -이미 사랑하게 되었다- 였다.

 

 

인정을 하고 나니 더욱 더 깊이 빠져들었다.

 

나진에게는 변명할 수 없을 잘못인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죽어서 나진을 만나면 어떤 원망에 말을 듣게 될까..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최악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말 잘하는 나보다 한번보면 모든걸 외워버리는 너의 머리가 더 대단하다.

 

식당 그림 그릴때도 느꼈지만 너처럼 기억력 좋은 사람은 처음봐."

 

 

 

 

 

 

승현 외에도 나를 주목하게 만드는 인물이 한 사람 더 있었다.

 

일본에서 온 교포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 니시키도 료.

 

원래 매니저를 선발할때 의학을 전공했거나 그 방면으로 연관되어 있는 사람은 뽑지 않는게 정상이다.

 

나름대로의 살인을 가장한 이벤트를 벌일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슴에 칼을 꽂은 채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시체를 보면 죽었다고 확신하여 줄행랑을

 

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피를 흘리는 사람의 몸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혹시라도 시체 검시를 해보자며

 

덤빌지도 모르는 노릇이기에 될수 있으면 그쪽에 관련된 인물은 뽑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아닌데다 의대생이기까지 한 료가 매니저로 뽑혔다는것은 왠지 이상했다.

 

그 밖에도 별다른 재능이 없어보이고 난폭하기까지 한 동팔도 의심이 되었지만 료에게 품은

 

의혹이 너무나 짙어 그에게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일의 심각함을 느끼고 송 회장과의 연락을 시도했다.

 

산장에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기에 모두가 잠든 새벽 컴퓨터를 통해 접촉하는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늘 열어두었던 대화방은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송 회장이 직접 접속을 하지 않더라도 집사는 늘 접속이 되어있었는데 오늘따라 아무도 없는게

 

이상했다.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게 분명하다.

 

 

나는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고 방으로 돌아가 가방속에 들어있는 담배를 가지고 산장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어렴풋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마십시오. 출제된 문제가 너무 어렵긴 하지만 예상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료?

 

 

 

 

 

 

"그렇게만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수고해주세요."

 

 

 

 

 

 

송 회장이 나에게 붙여준 도우미와 료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나자 뒷통수를 세개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료라는 사람이 송 회장측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고 확실한 물증도 없이 그를 붙잡고 늘어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방 침대 맡에는 작은 버튼이 하나 달려있다. 그것은 남들 모르게 도우미를 부를때 사용하는 것이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버튼을 눌러 도우미를 부른 뒤 잠든 승현이 깰까 염려되어 그와함께 8번방으로

 

들어갔다. 내부 차단을 설정하자 나지막하게 윙- 소리가 나더니 문이 폐쇄되었다.

 

 

 

 

 

 

"조금 전 니시키도 료씨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에 대해 설명 해주십시오."

 

"네?"

 

"어째서 도우미가 매니저와 그것도 밤 늦은 시간에 몰래 만나고 있는거죠?"

 

"그건.. 제가 몰래 이동하다 료씨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발각되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를 붙잡고 함구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정말 그것 뿐입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그것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본사와 연락이 되는대로 제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언뜻 들은 대화의 내용은 분명 그것이 아님에도 도우미는 서툰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그를 돌려보냈다. 어짜피 산장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경계를 강화해야할것 같았다.

 

문제는 내 스스로 만든 것. 열쇠는 나에게 있다.

 

 

 

 

 

 

료의 대한 의심이 점점 심해지자 나는 극단적인 판단을 내릴수 밖에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 둘. 그리고 지키고 싶은 소중한 목숨이 하나.

 

나는 결정을 내리고 위험할지 몰라 망설였던 지하실 문을 열게 되었다.

 

 

 

 

 

 

"문제가 아리송하네요. 다 정답같기도 하고 다 오답같기도 해요. 이건 다수결로 선택해보죠.

 

우선 저는 오른쪽 방이에요."

 

 

 

 

 

 

예상대로 료가 정답방으로 통하는 오른쪽 방문쪽으로 다가서자 나는 급히 왼쪽 방문을 선택했다.

 

사람이 죽어나가느니 차라리 회사를 포기하더라도 그들을 살리고 보는게 우선이었다.

 

 

 

 

 

 

-제발.. 왼쪽 문을 선택해.. 마스터를 포기할테니 제발 이쪽으로 오라구!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간절히 바랬다.

 

모든것을 밝히고 사람들을 억지로 잡아끌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나를 믿어줄것

 

같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올랐다.

 

승현은 나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망설임없이 왼쪽문을 선택했지만 나머지 네명의 사람들이 모두 오른쪽

 

방문을 선택하고 나섰다. 절망이었다.

 

 

 

 

 

 

"빨리빨리 정하고 여길 빠져나갑시다. 지겨워 죽겠어요."

 

 

 

 

 

 

미친 사람 소리를 듣는 한이 있어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상훈이 잽싸게 왼쪽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한번 문이 열리면 다른쪽 문은 자동 폐쇄되는 것.

 

차라리 그 자리에서 맞아 죽더라도 사실을 밝힐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상훈씨!!!!!!!"

 

 

 

 

 

 

액체 질소로 추정되는 것에 의해 상훈마저 죽고 나자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이벤트를 중단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송 회장과의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송 회장은 커녕 도우미도 나를 피하는듯 쉽게 모습을 드러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나고 순화까지 죽자 나는 씻을수 없는 죄책감에 자포자기 하고 말았다.

 

모든일은 송 회장이 꾸미고 있는 것이며 나를 도와주고 있는 도우미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와 알고 있는 료는.. 문제의 답을 알아내거나 나를 감시하는 명목으로 붙여 놓았겠지..

 

 

그 와중에도 절절할 만큼 승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자 그제서야 나는 송회장이 바라는것이 무엇인지

 

깨달을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것은 방해가 되는 사람에 죽음. 자라나지 못하게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무서운 계략.. 스스로 무덤을 파고들었다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산장에 남아있는 사람을 모두 죽이겠다는 건가.. 그런 건가..

 

 

 

 

 

 

스스로 어느정도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독이 될 만큼의 자만이었다.

 

승현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나는 결심했다.

 

나진을 잊고 정신없이 빠져들만큼 나를 나쁜놈으로 만든 아이는 무슨일이 있어도 지켜 내겠다고..

 

나진을 지켜내지 못했으니 이 아이만은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결심을 굳힌지 하루가 지나자 드디어 료가 진면목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동팔을 죽이고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그의 모습을 보자 여지껏 살인을 행했던 사람은 도우미가 아니라 료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인을 결심했다.

 

 

 

 

 

 

"윽.."

 

"니시키도 료.. 미안하지만 승자는 나야.."

 

"컥..."

 

 

 

 

 

 

내가 먼저 죽는다면 료는 분명 승현을 살해할것이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먼저 료를 죽여야 했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죄값을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예상치 못한 흉기가 혈액이 역류할만큼의 지독한 고동을 가져다주며 복부로

 

밀려 들어왔다. 죽는게 낫다고 여겨질 만큼 끔찍한 고통이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의 옆구리에 찔러넣은 칼을 비틀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산장에서...는... 한.. 사람만... 살아...나갈...수 있어...컥..."

 

 

 

 

 

 

-제발 너 만은.. 살아줘..

 

 

 

 

 

 

"말하지 말아요! 피가 나오잖아요!"

 

"받아.. 산장 문과.....주변의 장애물을.. 열수...있는....열쇠야.... 꼭... 살아라......"

 

 

 

 

 

 

-날 실망 시키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 남아.. 부탁이야..

 

 

 

 

 

 

"그런말 하지말아요! 우선 피를 멈추는게.....형!!!!"

 

 

 

 

 

 

희미한 기억속으로 잠식 당하던 순간.. 승현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나진의 기억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무언가가 얼굴을 간지럽히는 느낌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살고 싶어..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정말 죄송합니다..정말..

 

 

 

 

 

 

 

 

 

 

 

 

눈을 뜨자 현실같은 지옥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지용씨를 살려준 사실은 아직 회장님께서 모르고 계십니다. 그러니 조용히 살아가십시오.

 

이미 회사는 넘어갔습니다. 그러니 모든것을 잊으십시오."

 

"자수.. 할겁니다.."

 

"그건 옳은 판단이 아닙니다. 어짜피 지용씨가 저지른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저도 모르게

 

진행된 회장님의 독단적 행동이었던것 같습니다. 산장으로 사람들을 데려다 준 다음 주워진 일을

 

처리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다시 돌아와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군요."

 

"저 때문입니다.. 제가 이벤트를 제안하지 않았다면 모두 잘 살고 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대로

 

살아간다 해도 그것은 지옥이나 다를 바 없을것 같습니다.. 자수.. 하겠습니다."

 

"승현이라는 아이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그러더군요. 지용씨 없이는

 

살아갈수 없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말입니다. 그 아이는 평생 송 회장님의 감시를 받게 될것입니다."

 

"......................"

 

"그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자수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집사님.."

 

"제가 할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승현군을 지키고 싶다면 조용히 살아가십시오."

 

"어짜피 제가 살아있다는건 금방 알게 될거에요."

 

"그러니 거래라는 것입니다. 이번일에 대해 침묵하는 대신 회장님이 지용씨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감시하거나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집사님이 무슨 힘으로 송 회장님을 막겠다는 거죠?"

 

"저도 이 일과 큰 관련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송 회장님의 동생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어리석은 판단으로 나는 모든것을 잃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무의식중에 승현을 그리워 하며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이어진 운명의 실처럼 다시 돌아온 사랑은 자포자기한 나에게 살아갈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내가 마스터라는 사실을 알고도 선택해준 한결같은 사랑..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겼다.

 

 

 

 

 

 

-나진 형.. 미안해.. 형에게만 주겠다고 약속한 사랑..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어..

 

-처음에는 형을 대신 할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을 넘어선것 같아..

 

-저 아이가 필요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만큼 절실히 필요해..

 

-그러니 날 용서해 줘..

 

 

 

 

 

 

여전히 안타깝게 죽은 순화나 진주. 상훈 동팔의 기억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속죄할 방법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

 

승현을 평생 책임지며 보살피는 것으로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될것이다.

 

죽어서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머리숙여 잘못을 빌테니. 부디 날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다.

 

 

 

 

 

 

"형! 빨리와요! 기차 출발하겠어요!"

 

 

 

 

 

 

이미 집사에게 들어 내가 살인을 저지른 나쁜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승현도 알고 있겠지만

 

기회가 나면 정확한 내용을 설명해줘야 할것 같다.

 

 

 

 

 

 

"그래! 금방 갈테니 너무 서두르지는 마!"

 

 

 

 

 

 

모든것을 털어버리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선은 한숨 돌려야겠다.

 

아직 해야 할일이 산더미 처럼 남아 있으니까.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