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사건

하하네가족201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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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Amendment II-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미국의 수정 헌법 제2조- 무기 휴대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 규율 있는 민병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미국 총기 소지의 합법화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서부개척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개척시대에는 자기 방어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얻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총기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개척시대 당시 '서부를 개척한 총' 윈체스터가 없었으면 지금의 미국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총으로 세워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총기 소지의 합법화는 당연히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만 1천여 명이 총기와 관련 되어 죽어가고 있고,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또 미국의 아이의 경우 부모님의 지도 아래 총을 사격할 수 있고, 만18세가 되면 범죄기록이 없는 한 아무 데서나 총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음주가 가능한 나이는 만21세 부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기 소지법이 낳은 처참한 결과가 바로 1999년에 있었던 콜럼바인 사건이다

 

 

 

전에 써놓은 거 이제야 정리하네요...OTL

I. 서론

Amendment II-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미국의 수정 헌법 제2조- 무기 휴대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 규율 있는 민병은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미국 총기 소지의 합법화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서부개척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개척시대에는 자기 방어를 위해서, 또는 자신이 얻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총기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개척시대 당시 '서부를 개척한 총' 윈체스터가 없었으면 지금의 미국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총으로 세워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총기 소지의 합법화는 당연히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만 1천여 명이 총기와 관련 되어 죽어가고 있고,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또 미국의 아이의 경우 부모님의 지도 아래 총을 사격할 수 있고, 만18세가 되면 범죄기록이 없는 한 아무 데서나 총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음주가 가능한 나이는 만21세 부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기 소지법이 낳은 처참한 결과가 바로 1999년에 있었던 콜럼바인 사건이다

II. 본론

1. 사건의 개요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에서 미국 전체를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두명의 고등학생-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이 학교에서 900발 이상의 총알을 난사하여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숨지게 하고 수십명에게 중상을 입혔고, 이것은 미국에서 가장 처참한 총기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2. 두 소년: 딜런 클리볼드와 에릭 해리스

 


딜런 클리볼드와 에릭 해리스는 모두 총명했고, 부모가 모두 있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두 명 모두 3년 위의 형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클리볼드와 해리스는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를 즐겼고, 컴퓨터 하는 것을 좋아했다.

 

두 소년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93년 Ken Caryl 중학교에서였다. 비록 클리볼드는 덴버 지역에서 자라났지만, 그의 아버지는 미국 공군에 속해 있어서 은퇴하기 전에 자주 이사를 가야했으며, 가족을 1993년 6월에 콜로라도주 리틀턴으로 이사시켰다. 두 소년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땐 그 어느 그룹에도 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흔히 있는 일로서, 두 소년은 운동선수나 타 학생에게 자주 괴롭힘 당하는 자신들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클리볼드와 해리스는 일반적인 청소년이 즐기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였다. 둘은 같이 근처 피자집에서 일을 했고, 둠(컴퓨터 게임)을 즐겨했으며, 졸업파티에 데리고 갈 여자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를 보면, 꼭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다.

 

3. 범행의 준비

그들의 일기, 쪽지, 그리고 남겨진 비디오에 의하면 클리볼드는 1997년부터 자살을 생각해오고 있었고, 둘은 1998년 4월부터 대형 학살을 계획하고 있었다-실제 사건으로부터 꼭 1년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말썽을 부리고 있었다. 1998년 1월 30일은, 클리볼드와 해리스는 밴을 훔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들의 면죄를 조건으로 둘은 1998년 4월에 청소년 전환 프로그램(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초범이었기에 만약에 이 프로그램을 무사히 통과하면 전과기록을 없애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1개월 동안, 둘은 워크숍에 다녔고, 카운슬러와 면담을 하고, 자원봉사를 했으며, 주위사람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 깊게 뉘우치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클리볼드와 해리스는 자신들의 고등학교에서 벌일 대규모 학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클리볼드와 해리스는 분노해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히던 운동선수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자, 흑인, 그리고 몇 사람이 말하길, 그들은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를 증오했다. 해리스의 일기 첫장을 보면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난 이 빌어먹을 세상을 증오해." 해리스는 또한 인종차별주의자, 권법 유단자, 그리고 자신의 차에 대해서 불평하는 자를 증오한다고 써 놓았다. 다음은 일기의 내용 중 일부이다.

 

"내가 뭘 싫어하는지 알아? 스타워즈 팬들이야. 삶을 좀 만끽해! 이 빌어먹을 괴짜들아! 내가 뭘 싫어하는지 알아? 빨리 달려야하는 구간에서 느리게 달리는 놈들이야, 이 새ㄱㄱㅣ들 운전이나 할 줄 아는 거야? 내가 뭘 싫어하는지 알아? WB 네트워크야(종교 채널)! '오 예수님,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난 이 채널을 제일 증오해!"

클리볼드와 해리스는 둘 다 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다. 1998년 봄 그들은 각자의 졸업앨범에 총을 들고있는 사람 주의에 시체들이 늘어져있는 사진과 함께 자신의 각오와 학살에 대해서 적었으며 다음과 같은 글을 추가하였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누군가 너를 아직 살려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둘은 인터넷을 통해 폭발물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고, 총, 칼 그리고 99개의 폭발물이 모여있는 군수품 창고도 만들었다.
클리볼드와 해리스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죽이길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식당의 인원을 조사하여 11:15이후 첫 번째 점심시간이 시작된 후 500명 이상의 학생이 있을 것이란 것을 조사했다. 그들은 식당의 시한 폭탄을 11:17에 맞춰 놓고 폭발 이후 도망가는 생존자들을 총으로 쏘려는 계획을 세웠다.
대학살을 4월 19일에 시행할 것인지, 20일에 시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의 불일치가 있었다고 한다. 19일은 오클라호마 폭탄 사건의 기념일이었으며, 20일은 아돌프 히틀러의 110번째 생일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였던 간에, 4월 20일이 그들의 최종 날짜가 되었다.
* 그들이 '트렌치 코트 마피아'의 일원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일원 중에 친구가 있었을 뿐이다. 둘은 주로 학교에 트렌치 코트를 입고 오지 않았으며, 4월 20일에만 자신의 무기를 숨기기 위해 입고 왔을 뿐이다.

 

4. 사건의 내용

4월 20일, 16분간의 공포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이미 식당에 11시에 폭발하기로 되어있는 2개의 폭탄을 설치한 상태였다. 그들은 그 시간대에 식당에 가장 많은 학생이 있다는 것을 계산하였다- 점심시간에는 900여명의 학생이 식당에 있었다. 식당에 있었던 폭탄들은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가장 큰 폭탄들이었으며, 각각 9kg이었고, 원형 연료 탱크를 프로판으로 가득 채운 폭탄들이었다. 둘은 이미 캠퍼스 주변에 여러개의 폭탄들을 설치했지만 대부분 폭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폭탄을 가방에 가지고 오거나 몸에 두른 채로 학교에 반입하였다. 에릭과 딜런은 자신들이 학교에 총과 폭탄을 반입한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긴 트렌치 코트를 입고 학교에 등교하였다.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11:19경에 처음으로 학교 주차장에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11:25에는 Rachal Scott을 쏴 숨지게 했으며, 이어서 식당으로 뛰어들어가 다른 학생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설치한 폭탄에 총을 쏴 폭발시키려 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만약에 그들이 쏜 총에 폭탄이 폭발하였더라면 식당에 있던 448명 대부분의 목숨은 없었을 것이다. 몇 학생들은 옷장, 화장실, 사무실이나 책상, 의자 밑에 숨었고, 나머지 학생은 건물 밖으로 대피하였다. 몇몇 학생은 몸을 피한채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도움을 청했다.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 되었던 것은 11:25이다. 수위가 학교에서 총성을 들었던 것이다. 수위는 지붕에서 총을 가진 자가 있다고 했지만 조사 결과 그것은 저격을 피해 달아난 수리공이었다.
11:28에 Neil Gardner 부관은 학교 입구에서 해리스, 클리볼드와 총격전을 벌였다. 그는 11:29에 무전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지원병력은 11:30에 현장에 도착했고, 그들은 총성과 폭발음을 들으며 다른 기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저격자들은 윗층으로 올라가 교실에 있던 학생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그 후 학교 도서관으로 이동하여 10명의 학생을 숨지게 하고, 여럿을 부상 시켰다. 둘이 학교에서 탈출하지 않을 것이 확인 되자 둘은 자살을 기도하였다. 해리스는 샷건을 입에 물었고, 클리볼드는 소총이었다. 해리스는 11:31에 마지막 희생자를 부상시켰고, 12:30에 둘의 죽음은 확인되었다.

 

 

총격 종료

정오가 되자 SWAT은 학교 주변에서 폭발물을 발견하였고, 앰뷸런스는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였다. 부모들은 Leawood 초등학교로 모여들었다. 혹시 모를 또 한번의 총격적을 대비해 여분의 탄약을 요청한 것은 12:20이었다. 하지만 살인범들은 12시 이전에 저격을 중단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12:30에 SWAT팀은 학교 전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고, 13:00에 몇 개의 폭탄이 더 발견되었다.
SWAT팀은 14:30부터 숨어있던 학생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후송되어 간단한 심문을 했고 치료를 해주었다. 순경들은 15:30에 도서관에서 사체를 발견하였다.
16:00에 보안관은 25명의 교사와 학생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실제보다 10명이 많은 것이었다. 경찰관들은 도서관에서 해리스와 클리볼드의 사체를 찾고있었다. 16:30에 학교는 안전하다고 공표 되었지만 15:30에 주차장에서 몇 개의 폭탄이 더 발견되었다. 하는 수 없이 보안관은 학교 전체를 노란 테이프로 두름으로써 학교 전부를 범죄 현장으로 명하였다. 이 시각에 사체들은 아직 학교 안에 있었다. 22:45에 경찰이 사제 폭탄을 해제를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폭발하였다.

III. 결론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왜 클리보드와 해리스가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가설 중에는 그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 그들이 했던 잔인한 게임(둠)들, 여러번을 반복하며 봤던 영화(Natural Born Killers), 들었던 음악, 인종 차별, 고쓰족, 우울증 등이 있다.
이 둘이 이런 살인을 저지르게 된 방아쇠를 당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들은 주위사람을 속이는 데 꽤 노력했다. 놀랍게도, 이 사건이 있기 한달 전, 클리볼드의 가족은 3박4일의 갔는데 클리볼드의 부모는 딜런에게 아무런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카운슬러와 다른 사람도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돌이켜 보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 되고있다는 것을 알기엔 충분한 힌트들이 있었다. 비디오 테이프, 일기, 총과 폭탄, 이것들은 부모가 찾아보았다면 얼마든지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해리스는 추적 가능한 혐오스러운 욕으로 찬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콜럼바인 참사는 미국에서 아이들과 학교를 바라보는 눈을 달라지게 하였다. 폭력은 더 이상 방과후나 도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데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