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결과. 경기 상보 송고를 마치고 환호하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강팀이 꼭 승리하는 게 아니라는 축구계 속설을 보기 좋게 거부한 선수들이었다. 올 시즌 유럽 축구는 공평한 결과를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경기 전까지 전문가들은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다. 객관적 전력에선 바르셀로나가 확실히 앞서지만 단판승부라는 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도 절대로 약팀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략 등이 근거로 던져졌다. 유럽 챔피언 2회에 빛나는 명장 중 명장이라면 절대로 2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그런 분위기 형성을 주도했던 것은 단연 영국 언론이었다. 자국 클럽의 우승을 바라는 마음은 세상의 이치다. 더군다나 그들의 ‘맨유 편향’ 논조는 영어라는 편리한 수단을 빌려 전세계로 타전되었다. 영국제 색안경은 박지성의 조국에 있는 축구 팬들에게도 안성맞춤이었다. 지리적, 언어적 한계로 영국발 외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도 맨유 팬들만큼이나 이번 결승전을 기다렸다. 맨유가 바르셀로나를 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은 채.
후반 24분, 다비드 비야의 세 번째 골이 터지자 친구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한국에서 TV를 시청하던 친구가 보낸 문자에는 “다윗과 골리앗 같다”라고 써있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짧고 굵고 완벽한 평가였다. 축구라곤 국가대표팀과 월드컵밖에 모르는 친구의 눈에도 바르셀로나는 말도 못하게 강했고 맨유는 안쓰러울 정도로 무력했나 보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복사기의 기계열이 채 가시지도 않은 맨유의 출전명단을 본 순간 “어?”라는 탄식을 뱉었다. 바르셀로나 봉쇄를 위한 ‘깜짝’ 카드를 잔뜩 기대했는데, 퍼거슨 감독은 그냥 그 멤버를 그대로 선택했다. 거스 히딩크와 주제 무리뉴의 살신성인 교훈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던 4-4-1-1 전형(공격시 4-4-2, 수비시 4-5-1)이었다. 전성기를 한참 지난 라이언 긱스? ‘애송이’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4-5-1 또는 아예 4-6-0이라도 선택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선발 풀백이 스물한 살의 파비우?
물론 경기 중 맨유 선수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압박에 신경 썼다. 박지성은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웨인 루니도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했다. 마이클 캐릭은 슈팅을 막으려다 골문 앞에서 골키퍼와 충돌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아마도 선수들 개개인에 “다같이 막자”라는 메시지가 하달된 모양이다. 심지어 킥오프로부터 10분간은 맨유의 우세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10분이 지나자 바르셀로나가 볼 점유율을 즐기기 시작했다. 패스를 이어가고 볼을 빼앗기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다시 볼을 빼앗았다. 흔히 말하는 ‘원-사이드 게임’이 펼쳐진 것이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정말 놀라웠다. 맨유 선수들은 압박을 위해 본래 영역을 벗어나곤 했다. 비워진 공간은 당연히 주변 동료가 커버해준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공간 감지 능력과 패스 연결 속도가 맨유의 공간 커버보다 훨씬 빨랐다. 박지성이 가운데로 압박해오자 어느 샌가 바르셀로나의 패스와 아우베스가 그 공간을 향해 동시에 날아갔다.
토트넘 시절 이영표가 사석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프리미어리그에선 공격 가담을 함부로 못해요. 앞으로 올라가다 끊기면 상대 패스가 내가 비워놓은 공간으로 바로 날아들거든요. 연결만 되면 그냥 골 먹는 거죠.” 그런 동네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맨유이지만 바르셀로나는 전혀 다른 세상의 축구를 구사한 것이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렸다. UEFA의 경기 분석자료를 살펴보니 93분8초간 지속된 경기에서 맨유의 슈팅은 단 3개밖에 없었다. 2년 전 로마에선 적어도 슈팅 수만큼은 맨유가 바르셀로나에 앞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3개 중 하나가 득점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었다. 2년 전보다 맨유가 딱 ‘한 골’만큼 성장한 셈이다. 볼 점유율에서도 63:37로 바르셀로나의 일방적 우세였다.
퍼거슨 감독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까? 마지막 자존심이거나 혹은 부득이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명색이 맨유인데 결승전에서 ‘안티-풋볼’로 나가자고 마음먹는 게 어디 쉽겠나. 더군다나 경기 장소가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이었다. 홈 어드밴티지를 기대해도 좋을 법한 환경. 설사 안티-풋볼로 승부를 걸었다가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퍼거슨 감독 경력을 통틀어 최악의 결과가 될 것이다. “맨유, 우승컵과 축구를 모두 내던지다” 식의 헤드라인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맨유는 절대로 약팀이 아니다. 전세계를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강팀 중 강팀이다. 바르셀로나가 비현실적으로 강하다는 게 유일무이한 문제점이다. 결승전에서도 졌다고 퍼거슨 감독의 전술 선택을 비난하거나 선수들의 퀄리티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의 바르셀로나 앞에서는 누구라도 무능해지고 무력해지고 작아진다. 그들은 이미 50년대 헝가리나 레알 마드리드, 70년대 브라질, 90년대 AC밀란 급의 평가를 받는 역사적인 팀이다. 게리 리네커도 인정했듯이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스스로 무너지기를 바라야 하는 팀이다. 바르셀로나는 너무 강하고 맨유는 그들에게 패배한 수많은 팀들 중 하나일 뿐이다.
바르사, 맨유에 너무 벅찼던 그 이름
[스포탈코리아 2011-05-30]
공평한 결과. 경기 상보 송고를 마치고 환호하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강팀이 꼭 승리하는 게 아니라는 축구계 속설을 보기 좋게 거부한 선수들이었다. 올 시즌 유럽 축구는 공평한 결과를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경기 전까지 전문가들은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다. 객관적 전력에선 바르셀로나가 확실히 앞서지만 단판승부라는 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도 절대로 약팀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략 등이 근거로 던져졌다. 유럽 챔피언 2회에 빛나는 명장 중 명장이라면 절대로 2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그런 분위기 형성을 주도했던 것은 단연 영국 언론이었다. 자국 클럽의 우승을 바라는 마음은 세상의 이치다. 더군다나 그들의 ‘맨유 편향’ 논조는 영어라는 편리한 수단을 빌려 전세계로 타전되었다. 영국제 색안경은 박지성의 조국에 있는 축구 팬들에게도 안성맞춤이었다. 지리적, 언어적 한계로 영국발 외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도 맨유 팬들만큼이나 이번 결승전을 기다렸다. 맨유가 바르셀로나를 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은 채.
후반 24분, 다비드 비야의 세 번째 골이 터지자 친구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한국에서 TV를 시청하던 친구가 보낸 문자에는 “다윗과 골리앗 같다”라고 써있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짧고 굵고 완벽한 평가였다. 축구라곤 국가대표팀과 월드컵밖에 모르는 친구의 눈에도 바르셀로나는 말도 못하게 강했고 맨유는 안쓰러울 정도로 무력했나 보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복사기의 기계열이 채 가시지도 않은 맨유의 출전명단을 본 순간 “어?”라는 탄식을 뱉었다. 바르셀로나 봉쇄를 위한 ‘깜짝’ 카드를 잔뜩 기대했는데, 퍼거슨 감독은 그냥 그 멤버를 그대로 선택했다. 거스 히딩크와 주제 무리뉴의 살신성인 교훈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던 4-4-1-1 전형(공격시 4-4-2, 수비시 4-5-1)이었다. 전성기를 한참 지난 라이언 긱스? ‘애송이’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4-5-1 또는 아예 4-6-0이라도 선택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선발 풀백이 스물한 살의 파비우?
물론 경기 중 맨유 선수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압박에 신경 썼다. 박지성은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웨인 루니도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했다. 마이클 캐릭은 슈팅을 막으려다 골문 앞에서 골키퍼와 충돌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아마도 선수들 개개인에 “다같이 막자”라는 메시지가 하달된 모양이다. 심지어 킥오프로부터 10분간은 맨유의 우세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10분이 지나자 바르셀로나가 볼 점유율을 즐기기 시작했다. 패스를 이어가고 볼을 빼앗기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다시 볼을 빼앗았다. 흔히 말하는 ‘원-사이드 게임’이 펼쳐진 것이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정말 놀라웠다. 맨유 선수들은 압박을 위해 본래 영역을 벗어나곤 했다. 비워진 공간은 당연히 주변 동료가 커버해준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공간 감지 능력과 패스 연결 속도가 맨유의 공간 커버보다 훨씬 빨랐다. 박지성이 가운데로 압박해오자 어느 샌가 바르셀로나의 패스와 아우베스가 그 공간을 향해 동시에 날아갔다.
토트넘 시절 이영표가 사석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프리미어리그에선 공격 가담을 함부로 못해요. 앞으로 올라가다 끊기면 상대 패스가 내가 비워놓은 공간으로 바로 날아들거든요. 연결만 되면 그냥 골 먹는 거죠.” 그런 동네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맨유이지만 바르셀로나는 전혀 다른 세상의 축구를 구사한 것이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렸다. UEFA의 경기 분석자료를 살펴보니 93분8초간 지속된 경기에서 맨유의 슈팅은 단 3개밖에 없었다. 2년 전 로마에선 적어도 슈팅 수만큼은 맨유가 바르셀로나에 앞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3개 중 하나가 득점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었다. 2년 전보다 맨유가 딱 ‘한 골’만큼 성장한 셈이다. 볼 점유율에서도 63:37로 바르셀로나의 일방적 우세였다.
퍼거슨 감독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까? 마지막 자존심이거나 혹은 부득이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명색이 맨유인데 결승전에서 ‘안티-풋볼’로 나가자고 마음먹는 게 어디 쉽겠나. 더군다나 경기 장소가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이었다. 홈 어드밴티지를 기대해도 좋을 법한 환경. 설사 안티-풋볼로 승부를 걸었다가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퍼거슨 감독 경력을 통틀어 최악의 결과가 될 것이다. “맨유, 우승컵과 축구를 모두 내던지다” 식의 헤드라인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맨유는 절대로 약팀이 아니다. 전세계를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강팀 중 강팀이다. 바르셀로나가 비현실적으로 강하다는 게 유일무이한 문제점이다. 결승전에서도 졌다고 퍼거슨 감독의 전술 선택을 비난하거나 선수들의 퀄리티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의 바르셀로나 앞에서는 누구라도 무능해지고 무력해지고 작아진다. 그들은 이미 50년대 헝가리나 레알 마드리드, 70년대 브라질, 90년대 AC밀란 급의 평가를 받는 역사적인 팀이다. 게리 리네커도 인정했듯이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스스로 무너지기를 바라야 하는 팀이다. 바르셀로나는 너무 강하고 맨유는 그들에게 패배한 수많은 팀들 중 하나일 뿐이다.
〔스포탈코리아 홍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