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혈서설의 진실 여부가 뚜렷한 증거 없이 증언으로서 뒷받침 되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몇 년 전인가 몇 달 전인가요, 그 증거랄 것을 찾지 않았습니까?>
이거요.
1939 3월 31일자 만주신문이구요. 으음.. 관련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첨부합니다.
(오마이뉴스 09.11.05 기사에요)
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지원하며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내용의 혈서를 썼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박정희 혈서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이다.
박정희 혈서설은 "1938년 5월경 학교 숙직실에서 만주군관학교 입학적령 20세에 걸려 고민하는 박정희가 혈서를 써서 편지와 함께 만주군관학교에 보냈다"는 문경보통학교 동료교사 유증선의 증언(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해당 기사에 따르면, 당시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했다가 연령 초과로 1차 탈락하자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하여 1939년 군관에 재차 지원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만주신문>은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23)군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며 박 전 대통령의 편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고 밝히는 등 만주군 임관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만주신문>은 이어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만주국 군관 지원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세 번째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하는 등 '꿈'을 이룬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1944년 12월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군 보병소위로 임관해 일제 패망 직전까지 만주군 중위로 활동했다.
이러고보면 마냥 거짓정보라고 덮어둘 것만도 아닌데요.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거짓정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네요.
이 증거로는 충분치 않다는 말씀이신지, 어떤 입장이신건지 궁금하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도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같이 써주셨음 좋겠어요.
"야, 너"라는 등 시크한 척 하지말고 아주 부드럽게 말해보아요.
정말 제가 놓친 게 있는지 궁금해서 올리는 것이니, 속박으로 동여맸었던 가슴을 모두 열어젖히고 말해보아요.
박정희가 혈서 썼다는 게 왜 거짓정보에요?
톡에 글 처음 쓰네요. 댓글은 많이 썼는뎅 ㅡ.,ㅡ;
일단 무서운 글이 아니라서 죄송해요. 궁금한 게 있어 참을 수가 있어지요.
니르팡인가 나프랑인가 하는 분이 박정희 친일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만화를 올렸었는데
그게 지금 여기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무엇이 거짓이라는 것이지요?
그동안 혈서설의 진실 여부가 뚜렷한 증거 없이 증언으로서 뒷받침 되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몇 년 전인가 몇 달 전인가요, 그 증거랄 것을 찾지 않았습니까?>
이거요.
1939 3월 31일자 만주신문이구요. 으음.. 관련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첨부합니다.
(오마이뉴스 09.11.05 기사에요)
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지원하며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내용의 혈서를 썼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박정희 혈서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이다.
박정희 혈서설은 "1938년 5월경 학교 숙직실에서 만주군관학교 입학적령 20세에 걸려 고민하는 박정희가 혈서를 써서 편지와 함께 만주군관학교에 보냈다"는 문경보통학교 동료교사 유증선의 증언(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해당 기사에 따르면, 당시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했다가 연령 초과로 1차 탈락하자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하여 1939년 군관에 재차 지원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만주신문>은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23)군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며 박 전 대통령의 편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고 밝히는 등 만주군 임관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만주신문>은 이어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만주국 군관 지원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세 번째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하는 등 '꿈'을 이룬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1944년 12월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군 보병소위로 임관해 일제 패망 직전까지 만주군 중위로 활동했다.
이러고보면 마냥 거짓정보라고 덮어둘 것만도 아닌데요.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거짓정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네요.
이 증거로는 충분치 않다는 말씀이신지, 어떤 입장이신건지 궁금하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도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같이 써주셨음 좋겠어요.
"야, 너"라는 등 시크한 척 하지말고 아주 부드럽게 말해보아요.
정말 제가 놓친 게 있는지 궁금해서 올리는 것이니, 속박으로 동여맸었던 가슴을 모두 열어젖히고 말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