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대학생, 2030세대들을 위한 재테크칼럼을 시작하면서..” 재테크라는 단어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몇 년이 지났어도 재테크를 정말 잘하고 있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20대의 대학생들과 사회초년생부터 은퇴를 앞둔 50대까지.. ‘지혜롭게 돈을 불려나가는 기술’인 “재테크”라는 단어의 뜻을 벗어 나 과욕이 담긴 ‘투기’나 ‘빚으로 소비’를 하면서 고수익을 바라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의 꿈을 품진 않았는지 돌이킬 필요 가 있을 것이다. 70년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 중에는 IMF금융위기로 인한 부모님의 몰락을 지켜보며 금전적인 고통을 온 가족이 함께 겪었던 세대가 많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대기업 마케팅부장을 겪고 연구소에 근무하기까지 승승장구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4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일명 ‘명.퇴(명예 퇴직)’라는 것을 신청하시게 되었고, 사업을 하다 크게 빚진 친구를 대신하여 보증까지 서주시게 되었다. 그 때부터 필자의 가정 에는 금전적인 고통이 몇 년간 뒤따랐고 학교에서나 주위에서 이러한 사례는 쉽게 들을 수 있었다.) 1999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고3, 11월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 ‘내가 가게 될 대학의 선배들과 캠퍼스는 어떨까?’하는 즐거운 상상보다 ‘내가 원하는 대학의 등록금은 얼마일까?’ ‘집에서 끝까지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걱정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 걱정들은 곧 현실이 되었으며, 지금은 더 심각할 것이다.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은 대학생활 한학기만에 군 입대를 하였고, 주위의 적지 않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원했던 수도권 대학 의 경역학부 대신, 의사이신 외삼촌의 권유로 국내보다 비교적 학비가 저렴하고 대우가 좋았던 ‘중의학’을 선택하였던 나도 길 지 않은 유학생활을 2년 만에 접고 귀국하여 ‘단기 부사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선, 대학생들과 저소득층 일반인들 에게 무분별하게 발급해준 카드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한 신용카드사 들의 연체사태에 대한 뉴스가 붉어져 나오고 있었 다. 2003년말, 21살 막바지. 약 2년이란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남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대 학생활 중간에 휴학을 내고 약 2년 동안 군대에 있는 동안, 여학생들은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되도록 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하 여 스펙을 키운다. 4년 3개월 이라는 쉽지 않은 군 생활을 하면서 그리 즐기진 못해도 다른 인원들보다 뒤쳐지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하며 제대를 해서도 결코 써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원들도 있겠지만, 교관이 될 때까지 열심 히 노력했었고, 지금도 내 주특기가 숫자를 설명하고 만지는 ‘암호교신’이었다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군인공제대신 시작 한 해외주식매매와 펀드투자의 경험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훈을 주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인 ‘재무상담’과 ‘투자관리’, 재테크에 관련된 ‘칼럼기고’등..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꼭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피할 수 없고, 주어진 시간이라면 그 시간을 자신에 맞게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2005년, 중국B주 주식과 홍콩H주 주식, 국내 적립식펀드를 시작하였다. 펀드를 제외하고 약 2년이 넘게 주식으로만 300%가 넘 게 쌓아왔던 투자수익률을 모두 날리게 되었던 계기는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가치투자 원칙’과 ‘단기적인 고수익 추구’였으며 시장의 악재도 이어졌다. 글로벌 신용경색을 낳았던 “서브프라임 사태”에 이어 ‘중국 대폭설’과 ‘쓰촨성 대지진 사태’, ‘매도프 국제금융사기’등.. 악재가 멈추지 않았고 상품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뒤늦게 펀드와 주식을 시작했던 투자자들은 은행과 투자운용사에 무작정 소송을 걸기 시작한다. 2008년, 내가 스물 여섯살 이던 해였다. ‘가치 투자의 귀재, 워렌버핏’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투자와 펀드를 시작하여 우리가 평소에 즐겨 마시는 코카콜라의 대주주 가 되었으며, ‘버크셔 해셔웨이’와 함께 약 4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그와의 점심식사 한 끼는 무려 20억원이 넘는 가격 으로 경매로 낙찰되고 있다. 그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과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라 한다. 버핏이 성장기 때에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도 없었고, 요즘과 같이 재테크나 투자에 관련된 서적도 적었다. 반면, 오늘날의 사회는 너무도 많은 정보와 ‘단기간 고수익’등의 허위광고가 몇 초를 두고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더욱 이 우리세대 에게는 비싼 대학등록금으로 인해 사회로 진출하기도 이전에 ‘신.불.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월급으로 십년을 넘게 벌어도 집을 한 채 사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오늘날, “88만원 세대”, “이.태.백 세대”라 불리우는 우리 20대 30대 세대들에겐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하고 보다 넓어지고 빨 라진 정보매체를 스스로 필터링하여 ‘자신의 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실 속에 괴로워하며 계속해서 고민만 하거나 힘들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고군분투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학생들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며 발전을 이룩했으면 좋겠다.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갈 대한민국 인재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며 첫 글을 마친다. 2011. 5. 31 *재테크 상담 / 성공, 실패사례 제보 - imyouforever2@hanmail.net (H.P) 010-6481-9191 (트위터) @happymoneylife
[머니투데이] 대학생, 2030세대들을 위한 칼럼.. #1
“대학생, 2030세대들을 위한 재테크칼럼을 시작하면서..”
재테크라는 단어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몇 년이 지났어도 재테크를 정말 잘하고 있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20대의 대학생들과 사회초년생부터 은퇴를 앞둔 50대까지.. ‘지혜롭게 돈을 불려나가는 기술’인 “재테크”라는 단어의 뜻을 벗어
나 과욕이 담긴 ‘투기’나 ‘빚으로 소비’를 하면서 고수익을 바라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의 꿈을 품진 않았는지 돌이킬 필요
가 있을 것이다.
70년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 중에는 IMF금융위기로 인한 부모님의 몰락을 지켜보며 금전적인 고통을 온 가족이
함께 겪었던 세대가 많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대기업 마케팅부장을 겪고 연구소에 근무하기까지 승승장구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4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일명 ‘명.퇴(명예
퇴직)’라는 것을 신청하시게 되었고, 사업을 하다 크게 빚진 친구를 대신하여 보증까지 서주시게 되었다. 그 때부터 필자의 가정
에는 금전적인 고통이 몇 년간 뒤따랐고 학교에서나 주위에서 이러한 사례는 쉽게 들을 수 있었다.)
1999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고3, 11월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 ‘내가 가게 될 대학의 선배들과 캠퍼스는 어떨까?’하는 즐거운 상상보다 ‘내가 원하는 대학의
등록금은 얼마일까?’ ‘집에서 끝까지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걱정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 걱정들은 곧 현실이 되었으며, 지금은
더 심각할 것이다.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은 대학생활 한학기만에 군 입대를 하였고, 주위의 적지 않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원했던 수도권 대학
의 경역학부 대신, 의사이신 외삼촌의 권유로 국내보다 비교적 학비가 저렴하고 대우가 좋았던 ‘중의학’을 선택하였던 나도 길
지 않은 유학생활을 2년 만에 접고 귀국하여 ‘단기 부사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선, 대학생들과 저소득층 일반인들
에게 무분별하게 발급해준 카드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한 신용카드사 들의 연체사태에 대한 뉴스가 붉어져 나오고 있었
다. 2003년말, 21살 막바지.
약 2년이란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남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대
학생활 중간에 휴학을 내고 약 2년 동안 군대에 있는 동안, 여학생들은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되도록 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하
여 스펙을 키운다.
4년 3개월 이라는 쉽지 않은 군 생활을 하면서 그리 즐기진 못해도 다른 인원들보다 뒤쳐지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하며 제대를 해서도 결코 써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원들도 있겠지만, 교관이 될 때까지 열심
히 노력했었고, 지금도 내 주특기가 숫자를 설명하고 만지는 ‘암호교신’이었다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군인공제대신 시작
한 해외주식매매와 펀드투자의 경험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교훈을 주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인 ‘재무상담’과
‘투자관리’, 재테크에 관련된 ‘칼럼기고’등..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꼭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피할 수 없고, 주어진 시간이라면 그
시간을 자신에 맞게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2005년, 중국B주 주식과 홍콩H주 주식, 국내 적립식펀드를 시작하였다. 펀드를 제외하고 약 2년이 넘게 주식으로만 300%가 넘
게 쌓아왔던 투자수익률을 모두 날리게 되었던 계기는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가치투자 원칙’과 ‘단기적인 고수익 추구’였으며
시장의 악재도 이어졌다.
글로벌 신용경색을 낳았던 “서브프라임 사태”에 이어 ‘중국 대폭설’과 ‘쓰촨성 대지진 사태’, ‘매도프 국제금융사기’등.. 악재가
멈추지 않았고 상품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뒤늦게 펀드와 주식을 시작했던 투자자들은 은행과 투자운용사에 무작정
소송을 걸기 시작한다. 2008년, 내가 스물 여섯살 이던 해였다.
‘가치 투자의 귀재, 워렌버핏’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투자와 펀드를 시작하여 우리가 평소에 즐겨 마시는 코카콜라의 대주주
가 되었으며, ‘버크셔 해셔웨이’와 함께 약 4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그와의 점심식사 한 끼는 무려 20억원이 넘는 가격
으로 경매로 낙찰되고 있다.
그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과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라 한다.
버핏이 성장기 때에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도 없었고, 요즘과 같이 재테크나 투자에 관련된 서적도 적었다.
반면, 오늘날의 사회는 너무도 많은 정보와 ‘단기간 고수익’등의 허위광고가 몇 초를 두고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더욱
이 우리세대 에게는 비싼 대학등록금으로 인해 사회로 진출하기도 이전에 ‘신.불.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월급으로 십년을
넘게 벌어도 집을 한 채 사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오늘날, “88만원 세대”, “이.태.백 세대”라 불리우는 우리 20대 30대 세대들에겐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하고 보다 넓어지고 빨
라진 정보매체를 스스로 필터링하여 ‘자신의 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실 속에 괴로워하며 계속해서 고민만
하거나 힘들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고군분투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학생들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며 발전을 이룩했으면 좋겠다.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갈 대한민국 인재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며 첫 글을 마친다.
2011. 5. 31
*재테크 상담 / 성공, 실패사례 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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