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울진~봉화 '보부상 십이령 길' 걸어

김형석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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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100년 전 보부상 노랫가락 들리는듯 5월 마지막 '길 위의 인문학' 울진~봉화 '보부상 십이령 길' 걸어

샛재(鳥嶺)를 넘자 갑자기 눈앞이 자욱해졌다. 송홧가루였다.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툭 칠 때마다 '노란 안개'가 뿌옇게 산 아래로 흘러내렸다. 100년 전 어느 5월에 이 길을 지난 보부상(褓負商)도 패랭이와 등짐에 노란 물감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공동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이 경북 울진에서 보부상의 옛길을 따라 걸었다. 울진 바닷가에서 서쪽 내륙의 봉화까지, 쇠치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 등 열두 고개로 이어진 십이령(十二嶺)길이다. 보부상들은 울진의 여러 장터에서 소금·미역·건어물을 사 내륙으로 들어가 팔았고, 그 돈으로 곡식을 구입해 십이령을 거꾸로 넘었다.

인문학 탐방은 27일 오전 7시 30분 서울을 출발한 버스 안에서 보부상을 그린 역사소설 '객주' 듣기로 시작했다. 성우 서혜정의 목소리로 소설이 흘러나왔다. "계곡으로 길을 바꿔 잡았다. 달빛이 억새밭으로 쏟아졌다. 목덜미에 땀이 뱄다. 천봉삼은 바윗등에 풀썩 걸터앉았다…."

'길 위의 인문학' 울진~봉화 '보부상 십이령 길' 걸어 ▲ ‘길 위의 인문학’탐방단이 27일 울진 망양정 앞 해변을 걷고 있다. 정철이‘관동별곡’에서 백설(白雪)에 빗댔던 백사장이다. /울진=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삼척 죽서루를 지나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앞에 차가 멈췄다.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 문화유산해설사는 "울고 왔다 울고 가는 곳입니다. 멀어서 울고 헤어지기 싫어 울고. 경포대, 죽서루도 좋다지만 여기가 젤 좋습니다"라면서 신바람을 냈다. 망양정 아래서 푸른 파도가 뒤집히고 있었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천근(天根) 찾아 망양정에 오르니/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이냐"라고 노래했다.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한 숙종 임금도 시(詩)를 내렸다. "집채만 한 파도가 하늘에 닿아 있네/ 저 바다가 술이라면 내 어찌 300잔만 마실 수 있으리…."

탐방단은 월송정(越松亭)과 소나무숲을 둘러보고 구수곡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이헌창 고려대 교수는 보부상의 조직과 의미를 경제학적 관점으로 풀었다. 장꾼 또는 장돌뱅이로 불린 보부상은 조선 말의 영세한 상인 조직으로 강고한 체계와 규율을 갖고 있었다. 이헌창 교수는 "교통이 발달하고 상설시장이 생기면서 보부상은 쇠퇴했다"면서 "보부상이 기업가로 성장한 사례도 있지만 두산그룹 외에는 밝히기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했다.

살아 있는 우리말 채집으로 이름난 소설가 김주영은 "청송에 있는 내 고향 이름이 월전(月田), 즉 '달밭'"이라면서 "어려서 5일장 구경을 하면서 저 상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산골에서 태어난 게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등병의 편지'를 작사·작곡한 가수 김현성이 노래 선물을 했고, 임광원 울진군수가 '객주'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이튿날 탐방단은 십이령의 두 번째 고개인 바릿재로 갔다. 산길 초입에 내성행상불망비가 서 있었다. 보부상들이 우두머리의 은공을 기려 세운 철비(鐵碑)다. 일제 때는 공출을 피하려 땅에 묻었다 해방 후 캐냈다고 한다. 김주영은 "비석은 사람의 내왕이 가장 많은 곳에 세운다"면서 "이 산길이 봉화로 가는 지름길이었다"고 했다.

보부상 옛길은 과연 좁고 험했다. 돌길과 옆으로 난 계곡은 나란히 이어지다 불쑥불쑥 몸을 섞었다. '객주'에 나오는 갈대밭, 박달나무, 벼랑, 바람도 만날 수 있었다. 샛재까지 길잡이를 맡은 박영웅(69) 할아버지는 어릴 적 60리(24㎞)를 걸어 울진 장터에 곡식을 내다 팔았다는 '보부상의 후손'이다. 사양하던 그가 보부상 소리 한 자락을 풀었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소금만큼 짠한 곡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