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떤 부모인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가족이라는 말을 하는 아이 받아쓰기 100점을 맞아오며 90점 받은 날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이 이것 먹고싶다.. 게임하고싶다.. 이거 갖고싶다 절대로 떼쓰지 않는 아이 "아빠는 아들이 이제 닌텐도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라고 하면 "네 한번만 더 할께요" 라고 대답하고 딱 한번만 하는 아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고 물으면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에 사촌누나까지도 다 좋다고 말하는 착한 아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제 아들입니다. 이 아이에 엄마를 오늘 고소했습니다. \'간통죄\' 8년전 교제중 혼전임신을 하게됐고 결혼을 했습니다. 한번에 생긴 아이... 우린 이 아이를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결혼생활중 여러 가지 이유로 삐걱거리긴 했지만 해피엔딩을 꿈꾸며 서로 노력했습니다. 사치 할만큼 크게 돈을 벌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게으름 피운 적 없고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내는 작은 가게도 하게 됐고 저는 더 나은 연봉과 비젼을 위해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직장을 다니게 됐고 이제야 조금 넉넉해지는가 싶었습니다. 야근을 많이 하는 일을 했지만 수당이 많아서 좋았고 아내도 밤 10시까지 가게를 봐야하니 주말엔 아무리 피곤해도 제가 가게를 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 별명이 \'월화수목금금금\'이였을 정도입니다. 회사생활 1년만에 대리로 승진하고 현장에서 사무실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연봉도 3,000만원 가까이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낭비벽... 도무지 돈이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월급 받으면 모두 가게 물건값으로 지불해주고 용돈 10~20정도만 남겨놓았습니다. 저에겐 가게 수입이 보통 200~300만원정도 된다고 하였는데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전 용돈 몇개월간 모아서 30~40만원정도 되면 장모님 드리기도 하고 고생하는 아내 맘에드는 사고싶은 선물 사라고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연말정산 자료를 국세청에서 출력하는데 아내 명의의 카드가 있었습니다. 제가 모르고 있던 카드는 60~70만원정도씩 6~7월간 결제가 되어있었습니다. 전 제가 또 모으고있던 용돈 30만원정도를 가지고 가게로 갔고 카드사 홈페이지에 로그인 하여 같이 봤습니다. 보던 중 제가 모으던 30만원을 건네주며 그렇게 돈 쓰는게 좋으면 이 돈도 다 써버리라고 했고 아내는 울먹이며 자기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고... . 그 후로 2년이 채 되지 않았고 회사에서 제 연봉은 3,100만원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사이와 가정 형편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았고 전 3년 넘게 멀리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서 그런것 같아 함께 있으면 괜찮아질듯 싶어 회사를 그만두게됐습니다. 결혼한지 6년이 넘었고 맞벌이 한지도 3년이 넘었는데 제자리 걸음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우울하고 내 가정의 미래가 너무도 희미했습니다. .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었고 갔다 돌아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혼자 마음좀 추스르고 돌아오겠노라고... 아내는 전화와 문자로 뭐하는 짓이냐 너같은 아빠는 아이한테도 필요없다 이런말들로 저를 더욱 불안하게 했습니다. 너무 우울해서 서울의 누나네로 갔습니다. 모든사실을 털어놨고 누나는 이러고 있으면 처가에서 너만 나쁜놈으로 본다며 모든 사실을 처가에 알리라 했고 . 전 몇일 뒤 내려갔습니다. 사실 가게가 장모님 명의로 되어있고 처가는 근처에 있습니다. 아내는 그 몇일 사이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코 성형을 받았습니다. 전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장인어른을 뵙고 상황을 말씀드리고 너무 힘들다고 말씀드렸고 이혼하게되면 아이를 제가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아이 엄마가 완강하게 나온다면 소송으로라도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장인어른은 그래도 크게 빚진것도 아니고 이제부터 잘 모으고 살면 된다고 하셨고 그 말씀이 정답이라 생각했습니다. . 저는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누나는 엄마한테, 저는 아빠한테서 아니 할머니한테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아르바이트 하며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직업훈련학교와 컴퓨터 학원을 국비로 다녀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이 9개입니다. 애초에 부모 사랑같은거 받지 못했고 달랑 하나밖에 없는 누나도 어릴 때 헤어져 몇년을 지나서야 만났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형편도 못되어 군에 입대후엔 부사관이 되어 중사로 전역했습니다. 정말 외롭게 살아왔고 내 아들만큼은 이런 환경을 물려줄 수 없어 어떻게든 참고 살아야겠다. 수도없이 다짐했었습니다. . 그래 무슨 죽을죄 지은것도 아니고 아이한테도 너무나 사랑을 주는 엄마이니까 그거 하나면 됐지...' 그리곤 취직을 하고 다시 아내가 하던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처음에 물건값 1500만원정도 주고 시작했는데 물건 정리하고 미수금 전부 해결하니 500만원도 남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런저런 문제들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면 새벽에 오는경우도 있었고 친구네서 잔다고 하여 고민 끝에 그러라고 했었는데 언젠가는 말도 없이 연락도 되지않고 외박까지 하는것이였습니다. 5월 중순쯤 알게됐습니다. 아내에게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각서를 쓰며 전부 시인했고 그 남자와도 통화를 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만나오며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모텔에서 잠도자고... 그러던 중 아내 전화기를 들어 카카오톡을 열어봤는데 아직 대화중인 내용이 있더군요 아내의 친구였습니다. 농협하고는 왜 문자했냐는둥 현대는 연락왔냐는 둥 남편이 헤어지자고 한다... 그넘들땜에 늦게 들어가서 이렇게 됐다... 차 문고리 잡고 늘어질 땐 언제고 그넘들 이제와서 뭐냐는둥 이제 애인이나 편하게 만나야겠다... 그래도 남편이 제일 나은데 아무튼 모르겠다 그 친구는 그래도 아직 법원간거 이니니까 제대로 한번 빌어봐라 그렇게 까지는 할 필요 없다... . 이 정도의 계집년인줄은 몰랐었습니다. 저는 병신인가봅니다. 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미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같이 있을 수가 없어 집을 나와 회사 동료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제 이혼소송을 하고 오늘 경찰서에 간통죄로 고소접수하였습니다. 내 아들에 엄마인 아직은 내 아내인 그년을 오늘 고소하였습니다. 자꾸만 아들이 떠오릅니다. 446
아직은 내 아내인 그년을 오늘 고소하였습니다.
세상 어떤 부모인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가족이라는 말을 하는 아이
받아쓰기 100점을 맞아오며 90점 받은 날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이
이것 먹고싶다.. 게임하고싶다.. 이거 갖고싶다 절대로 떼쓰지 않는 아이
"아빠는 아들이 이제 닌텐도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라고 하면
"네 한번만 더 할께요" 라고 대답하고 딱 한번만 하는 아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고 물으면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에 사촌누나까지도 다 좋다고 말하는 착한 아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제 아들입니다.
이 아이에 엄마를 오늘 고소했습니다. \'간통죄\'
8년전 교제중 혼전임신을 하게됐고 결혼을 했습니다.
한번에 생긴 아이... 우린 이 아이를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결혼생활중 여러 가지 이유로 삐걱거리긴 했지만 해피엔딩을 꿈꾸며 서로 노력했습니다.
사치 할만큼 크게 돈을 벌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게으름 피운 적 없고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내는 작은 가게도 하게 됐고 저는 더 나은 연봉과 비젼을 위해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직장을 다니게 됐고 이제야 조금 넉넉해지는가 싶었습니다.
야근을 많이 하는 일을 했지만 수당이 많아서 좋았고 아내도 밤 10시까지 가게를 봐야하니 주말엔 아무리 피곤해도 제가 가게를 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 별명이 \'월화수목금금금\'이였을 정도입니다.
회사생활 1년만에 대리로 승진하고 현장에서 사무실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연봉도 3,000만원 가까이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낭비벽...
도무지 돈이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월급 받으면 모두 가게 물건값으로 지불해주고 용돈 10~20정도만 남겨놓았습니다.
저에겐 가게 수입이 보통 200~300만원정도 된다고 하였는데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전 용돈 몇개월간 모아서 30~40만원정도 되면 장모님 드리기도 하고 고생하는 아내 맘에드는 사고싶은 선물 사라고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연말정산 자료를 국세청에서 출력하는데 아내 명의의 카드가 있었습니다.
제가 모르고 있던 카드는 60~70만원정도씩 6~7월간 결제가 되어있었습니다.
전 제가 또 모으고있던 용돈 30만원정도를 가지고 가게로 갔고 카드사 홈페이지에 로그인 하여 같이 봤습니다. 보던 중 제가 모으던 30만원을 건네주며 그렇게 돈 쓰는게 좋으면 이 돈도 다 써버리라고 했고 아내는 울먹이며 자기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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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2년이 채 되지 않았고 회사에서 제 연봉은 3,100만원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사이와 가정 형편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았고 전 3년 넘게 멀리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내서 그런것 같아 함께 있으면 괜찮아질듯 싶어 회사를 그만두게됐습니다.
결혼한지 6년이 넘었고 맞벌이 한지도 3년이 넘었는데 제자리 걸음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우울하고 내 가정의 미래가 너무도 희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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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었고 갔다 돌아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혼자 마음좀 추스르고 돌아오겠노라고...
아내는 전화와 문자로 뭐하는 짓이냐 너같은 아빠는 아이한테도 필요없다
이런말들로 저를 더욱 불안하게 했습니다.
너무 우울해서 서울의 누나네로 갔습니다. 모든사실을 털어놨고
누나는 이러고 있으면 처가에서 너만 나쁜놈으로 본다며 모든 사실을 처가에 알리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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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몇일 뒤 내려갔습니다. 사실 가게가 장모님 명의로 되어있고 처가는 근처에 있습니다.
아내는 그 몇일 사이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코 성형을 받았습니다.
전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장인어른을 뵙고 상황을 말씀드리고 너무 힘들다고 말씀드렸고 이혼하게되면 아이를 제가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아이 엄마가 완강하게 나온다면 소송으로라도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고...
장인어른은 그래도 크게 빚진것도 아니고 이제부터 잘 모으고 살면 된다고 하셨고 그 말씀이 정답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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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누나는 엄마한테, 저는 아빠한테서 아니 할머니한테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아르바이트 하며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직업훈련학교와 컴퓨터 학원을 국비로 다녀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이 9개입니다.
애초에 부모 사랑같은거 받지 못했고 달랑 하나밖에 없는 누나도 어릴 때 헤어져 몇년을 지나서야 만났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형편도 못되어 군에 입대후엔 부사관이 되어 중사로 전역했습니다.
정말 외롭게 살아왔고 내 아들만큼은 이런 환경을 물려줄 수 없어 어떻게든 참고 살아야겠다. 수도없이 다짐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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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슨 죽을죄 지은것도 아니고 아이한테도 너무나 사랑을 주는 엄마이니까 그거 하나면 됐지...'
그리곤 취직을 하고 다시 아내가 하던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처음에 물건값 1500만원정도 주고 시작했는데 물건 정리하고 미수금 전부 해결하니 500만원도 남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런저런 문제들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면 새벽에 오는경우도 있었고 친구네서 잔다고 하여 고민 끝에 그러라고 했었는데 언젠가는 말도 없이 연락도 되지않고 외박까지 하는것이였습니다.
5월 중순쯤 알게됐습니다. 아내에게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각서를 쓰며 전부 시인했고 그 남자와도 통화를 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만나오며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모텔에서 잠도자고...
그러던 중 아내 전화기를 들어 카카오톡을 열어봤는데 아직 대화중인 내용이 있더군요
아내의 친구였습니다.
농협하고는 왜 문자했냐는둥 현대는 연락왔냐는 둥 남편이 헤어지자고 한다... 그넘들땜에
늦게 들어가서 이렇게 됐다... 차 문고리 잡고 늘어질 땐 언제고 그넘들 이제와서 뭐냐는둥
이제 애인이나 편하게 만나야겠다... 그래도 남편이 제일 나은데 아무튼 모르겠다
그 친구는 그래도 아직 법원간거 이니니까 제대로 한번 빌어봐라 그렇게 까지는 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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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계집년인줄은 몰랐었습니다. 저는 병신인가봅니다.
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미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같이 있을 수가 없어 집을 나와 회사 동료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제 이혼소송을 하고 오늘 경찰서에 간통죄로 고소접수하였습니다.
내 아들에 엄마인 아직은 내 아내인 그년을 오늘 고소하였습니다.
자꾸만 아들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