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건국기 1부- 2편 '베란두르의 용자들'

사반200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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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이 골목만 돌면 곧바로 도로시 아줌마네 술집이다.
모퉁이를 돈 쿠로는 흠칫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술집 앞에는 열명 남짓되는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쿠로는 잠시전까지만 해도 약주하시러 간 아부지를 기다리며 엄마랑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쿠로는 아이리스 누나를 발견하고는 창을 열고 반가운 인사를 하려다 아이리스 옆에 왠 무서운 아저씨들을 보고 엄마에게 먼저 말씀드렸다
그러자 쿠로의 엄마는 창밖을 몰래 한번 내다 보고는 갑자기 얼굴이 심각해지며 아빠에게 빨리 달려가 이 일을 알리라는 것이다.

 

쿠로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 뭔진 자세히 잘 모르겠지만 아주 안좋은 일이 생긴 것이고 그건 저기 아이리스 누나랑 같이 있는 험상궃은 아저씨들 때문인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서 빨리 도로시 아줌마네 있는 아부지한테 이 사실을 알리려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쿠로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기사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멀찍히 떨어져 동그랗게 부채꼬로 호를 그리며  슬그머니 술집 문에 다다랐다
뒷통수에 꽂히는 기사들의 시선에 머리속이 어질어질한 것을 느끼면서 쿠로는 자기 키보다 한참 높은 문고리들 올려다보며 앙증맞은 작은 두 손으로 문을 열었다

 

술집 안으로 들어선 쿠로는 문을 '쾅!' 닫고는 가슴을 크게 움직여 숨을 할딱거렸다.
오줌이 마려웠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던 쿠로는 아부지를 발견하곤 쏜살같이 달려갔다

 

네로는 늦게 얻은 자식인 쿠로를 애지중지했다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쿠로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자신에게 달려와 귀를 빌려달라고 난리다

 

네로는 어리둥절 의아했지만 기꺼이 허리를 숙이고 귀를 빌려주었다

 

쿠로가 아버지 네로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였다
네로는 다 듣고는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얼굴을 펴고는 웃는 얼굴로 쿠로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도로시 아줌마한테도 알려주라고 했다

 

쿠로가 쪼르르 달려가 도로시 아줌마에게 다시 귓속말을 속삭였다

 

도로시는 쿠로의 귓말을 다 듣고는 키를 맞추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고 네로를 똑바로 바라봤다
네로도 도로시를 바라봤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술집안에 사내들이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네로는  쿠로의 머리에 자신의 모자를 씌워주고는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잠그고  엄마랑 숨어 있으라고 조용히 말했다

 

쿠로가 문을 나서 무사히 골목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 네로는 문을 닫고는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었다.
그리곤 소리쳤다.

 

"도로시~! 여기 안주나 좀 주시게~!"

 

사내들이 벌떡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베르베르는 이 몹쓸 뚱뚱한 아줌마의 대답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곤 어찌할 바를 몰라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참이었다

 

'분명 이 뚱땡이 아줌마가 자신들이 찾고있는 그 아리따운 아이리스일 리는 없을 터인데... '

 

베르베르가 이런  바보 같은 생각에 푹 빠져있는 동안 술집 안의 사내들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흉흉한 살기를 품었다

 

"베르베르님!"

 

다급하게 외치는 루씨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베르베르는 검자루를 잡았다
루씨가 옆에서 달려드는 한 사내를 가볍게 내동댕이 치더니 검을 빼려는 베르베르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차 그렇지!"

 

이런 무지랭이 백성들을 벨 수는 없는 일이다.
베르베르는 덜렁대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총명한 루씨가 항상 자신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베르베르는 뽑으려던 검을 놓고 곧바로 유술을 쓰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상대의 관절을 제압하는 이 기술은 보기에도 매우 유려했다
특히 루씨의 몸놀림은 거의 예술이었다


가볍게 손목을 놀리는가 싶었는데 장정 너댓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베르베르도 흐뭇하게 웃으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저녀석 정말 잘 컸어~! 잠시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이겨냈어. 대견한 놈. 하하하~!"

 

속 좋은 웃음을 얼굴 가득 내비치던 베르베르는 목 주위에 서늘함을 느끼고 깜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루... 루씨"

 

막 사내 한명을 내리꽂으려던 루씨가 빙글 뒤를 돌아보자 베르베르가 멋쩍은 표정으로 미안스레 말한다

 

"그 ...그만하게"

 

베르베르의 목에는 커다란 낫이 둘러있었다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헤벌레하던 베르베르의 등뒤로 도로시가 몰래 다가가 슬그머니 목에 낫을 들이댄 것이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의 루씨가 손에서 힘을 풀자 멱살을 잡혀있던 사내가 '켁켁'거리며 풀려났다.
네로였다.

 

도로시는 베르베르의 뒤에서 낫을 그에 목에 둘러댄 채 천천히 루씨 앞으로 걸어나왔다
바닥에 쓰러졌던 사내들이 하나 둘씩 일어났다
도로시는 검은 머리의 소년 루씨에게 말했다.

 

"이보게 꼬마 기사~! 이제 그만 항복하시지."

 

루씨는 광채 나는 검은 눈으로 도로시를 쏘아 보았다

 

 

 

쿠로는 집 근처에 다다르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말울음소리를 들었다
어지러이 흩어지는 말발굽 사이로 레오르도와 아이리스가 보였다
그롬웰과 다른 왕궁의 기사들이 레오르도와 아이리스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포위망을 만들고 있었다


쿠로는 문을 열고 엄마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
엄마는 쿠로를 안고 방 안에 불을 끈채 창문 밖을 주시했다

 

레오르도는 작은 검을 꺼내들었다
흉악한 왕궁의 기사단에게 자신의 딸을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흑마를 탄 기사들은 레오르도와 아이리스 주위를 계속해서 뱅뱅 돌며 검을 꺼내들었다
그롬웰 단장은 실룩실룩 웃어대며 멋스럽게 장식된 자신의 장검으로 레오르도를 한 번씩 슬쩍슬쩍 찔러댔다


그의 눈에는 당황한 표정의 레오르도가 무척이나 재미있어 보이는가 보다

 

그롬웰의 장검이 레오르도의 어깨를 찌르려는 순간 레오르도가 갑자기 대갈일성 소리를 지르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의 작은 검이 그롬웰의 목을 노렸다

 

그롬웰은 몹시 당황하여 허둥지둥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어찌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그가 타고 있던 말이 놀라 번쩍 앞발을 들며 세차게 울어댔다


그롬웰단장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자 포위망이 뚫렸다. 레오르도는 재빨리 아이리스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괘...괜찮으십니까? 단장!"

 

기사들이 말에서 내려 그롬웰을 부축하자 그롬웰은 화부터 낸다.

 

"이.. 이런 뒈질 놈! 죽여... 죽여버려!"

 

기사들이 모두 말에 올라 레오르도 부녀를 추격할 태세를 갖추자 그롬웰이 화를 진정시켰는지 정색하며 한마디 더 건넨다

 

"아~! 저기 잠깐 그 아가씨는 사로잡도록."

 

'이랴~!' 하는 소리와 함께 그롬웰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쿠로가 숨죽인채 엄마 품에 있다가 창가로 뛰쳐나와 바깥을 내다보며 나지막히 외쳤다

 

'누~나...'

 

 

버나드가 담뱃대를 문 채 망루에 있다가 저쪽에서 달려오는 레오르도와 아이리스를 보고 한달음에 뛰어내려왔다

 

"레... 레오르도... 아이리스..."

 

속으로 부녀의 이름을 되뇌던 버나드는 성문으로 달려갔다.
레오르도와 아이리스가 도착하기 전에 성문을 열어놓을 작정이었다

 

"레오르도! 아이리스! 빨리 오게~!"

 

성문을 활짝 연 버나드가 이렇게 소리지르며 뒤를 도는 순간 검광이 그의 눈앞에 번뜩였다
얼떨결에 뽑아든 검으로 막긴 했지만 버나드는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버나드에게 검을 휘두른 기사는 달려오는 기세 그대로 열발굽쯤 더 가서야 멈춰섰다

 

어느새 달려온 왕궁 기사단이 레오르도 부녀를 또다시 포위하고 있었다

 

"레오르도~!"

 

버나드는 재빨리 일어나서는 포위망 가운데로 짓쳐들어가 레오르도 부녀와 합류했다

 

"이..이런 멍텅구리같으니라구... 같이 포위당해버리면 어쩌자는 게야?"

 

"너무하네그려... 보자마자 구박인가?"

 

버나드는 얼렁뚱땅 받아넘기며 아이리스를 돌아보곤 찡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리스 걱정마라 ! 이 아저씨가 구해줄께"

 


그롬웰은 버나드의 호언장담에 코웃음을 쳤다

 

검과 검들이 부딪히며 말울음소리가 뒤엉켰다.
달빛은 더욱 짙푸르러간다
십여합쯤 검이 부딪쳤을까 버나드는 이미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나마 레오르도의 검솜씨가 뛰어나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으나 곧 이들이 패배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순간 검 하나가 레오르도의 어깨에 꽂혔다 레오르도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버나드는 몸을 내던져 레오르도에게 검을 꽂아던 기사를 물러서게 했다

 

그롬웰이 기사들에게 잠시 공격을 멈추게 하고는 말했다

 

"나 그롬웰은 왕국의 왕이시자 하늘의 권능을 위임받은 교황이신 니시마루님을 모시는 왕궁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솔직히 말해 너희를 죽이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운을 띄운 그롬웰이 입가에 '씨익~!' 불결한 미소를 짓더니만 한 박자 쉬고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러니 너희들이 이제 항복하기만 한다면 내 자비를 베풀어 그나마 왕궁의  어두운 지하감옥에서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롬웰이 짐짓 엄숙하게 타이르듯 말하자 레오르도의 눈이 뒤집혔다

 

"야 이 몹쓸 놈아~! 내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고귀한 것 하나와 가장 더러운 것 하나를 보았다
가장 고귀한 것 하나는 아스가르드 왕국을 세우신 위대한 정복왕 폴크스겐이시며 가장 더러운 것 하나는 그 빌어먹을 니시마루 교황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위대한 정복왕의 왕통를 이어받고도 백성들의 피를 빨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기만 하느냐!

내 오늘 죽는 한이 있어도 니시마루의 수족인 너희들과 함께 동귀어진 할 터이다"

 

 


그롬웰이 레오르도를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폴크스겐이 죽은지 십오년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이런 충신이 있었나? 이 그롬웰은 정말 챙피하여 몸둘바를 모르겠군...
크크크... 늙은이가 변두리에서만 살아서 아직 뭘 모르나본데 폴크스겐은 지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미친 놈이었다
그런 놈을 아직까지 섬기고 있다니 늙은이도 참 딱하구만..."

 

혀를 차며 비꼬는 그롬웰의 말에 흑마를 탄 기사들이 모두 박장대소했다

 

"네 이놈~!"

 

레오르도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롬웰을 향해 죽자사자 달려들었다


그롬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재수없게 웃으며 부하들에게 차갑게 말했다

 

"죽여라!"

 

그롬웰의 명령이 내려지자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꽂았다

 

"잠깐만요!"

 

아이리스가 아버지 레오르도를 감싸 안은 채 소리쳤다

 

"제가 당신들을 따라갈테니 모두 보내주세요"

 

 버나드가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며 멍하니 아이리스를 바라봤다.
그롬웰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리스~! 그렇게는 안되지!"

 

우렁차고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로시가 베르베르와 루씨를 인질로 잡은 채 마을 사내들과 함께 도착해있었다
성문 근처 여기저기서 베란두르 마을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도로시 아줌마!"

 

아이리스의 외침을 뒤로하고 도로시는 베르베르의 목에 들이댄 낫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보쇼~!  어서 아이리스와 영감탱이들을 놓아주시오 안 그럼 당신들 대장의 목이 그대로 날아갈 터이니..."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도로시를 바라보던 그롬웰은 베르베르에게 눈길을 옮기곤 한참 살펴보다가 어리둥절 되물었다

 

"대장이라고? 대장은 난데...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요?"

 

"뭐~ 뭐얏!"

 

도로시는 당황했다. 분명 자신은 이 사람이 그들의 수장이라 생각하곤 인질로 잡은 것이었다.
낫에 목을 맡긴 채 베르베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겸연쩍게 말했다

 

"거보시오 난 아니라니까..."

 


'이...이런 낭패가...' 일이 틀어진 것을 알고는 도로시는 낫을 슬그머니 거두는 척 하더니 어깨에 힘을 실어 그롬웰을 향해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도로시가 던진 낫은 전광석화처럼 그롬웰에게 똑바로 날아갔다

 

당황한 그롬웰이 몸을 숙였건만 낫은 그롬웰의 어깻죽지에 깊숙히 박혔다

 

비명을 지르며 그롬웰이 말에서 떨어졌다
사내들이 기사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틈을 타 도로시가 레오르도와 아이리스, 그리고 버나드를 포위망에서 빼냈다

 

"레오르도~! 어서 아이리스를 데리고 성 밖으로 탈출하게 ... 곧 성주의 병사들이 올걸세"

 

레오르도도 알고 있었다
성주도 성안의 병사들도 모두 자신의 친구들이지만 한편으론 왕국의 병사들이다
일이 커지면 어찌됐든 자신들을 잡아갈 수 밖에 없다

레오르도는 그런 걸 알면서도 자신들을 돕는 도로시와 버나드 등이 고마왔다
여하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네로가 말 한리를 끌고 달려왔다

 

"레오르도~! 이 말을 타고 가시게"

 

레오르도는 울컥 눈물이 났다

 

"고맙네.. 네로"

 

레오르도와 아이리스는 말에 올라탔다.

 

"아줌마 아저씨들 잘지내세요"

 

아이리스의 인사에 도로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네로 아저씨! 쿠로에게도 인사 전해주세요"

 

"그러마...!"

 

덥수룩한 수염의 네로도 나이답지 않게 찔끔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레오르도는 도로시와 버나드 네로를 찬찬히 한번씩 훑어보고는 말의 배를 걷어찼다

 

성문을 나선 레오르도는 잠시 말을 세우곤 여태껏 자신이 살아온 베란두르를 돌아봤다
도로시,버나드,네로 그리고 마을 사람들 등 자신과 함께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온 진정한 '베란두르의 용자들'이 왕궁 기사단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베르베르는 포박당한 상태로 루씨에게 명령했다

 

"어서 아이리스님을 쫓아가라~! 나도 여기 일을 수습하고 곧 뒤따라 가겠다."

"예~!"

 

대답을 마친 루씨가 가볍게 포박을 풀어버리고 헝클어진 긴머리를 다시 차분하게 묶더니만 나는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베르베르는 그런 루씨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며 한참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자신이 아직 포박당한 상태인 걸 깨달았다.

 

"야~야~! 이녀석아~! 묶인 건 풀어주고 가야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