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자친구는 너무 게으릅니다.

쬐깐이 2011.06.14
조회357

제 남자친구는

잠이 참 많습니다. 24시간 자는건 기본입니다.

자느라고 5일을 잠적한 적도 있습니다.

 

초창기엔 안그랬는데 말입니다.

 

어느날 부터 연락이 너무 안돼서 걱정이 됐습니다.

무슨일이 생긴걸까, 혼자서 아픈건가 새벽 첫차가 다닐때

밤새서 찾아갔습니다. 자다가 깨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십대 후반의 남자친구와 서른살의 저.

 

직훈에서 만나 일년을 사귀었습니다.

저는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학원강사로 일해오다 작년에 새로운 일을 해보고자 고향을 떠나 이곳 직훈에왔고,

그 사람은 여기 사람이고, 디자인계통 전문대를 나와서 아르바이트를 좀 하다가 직훈에 왔답니다.

 

그냥 학교 누나 동생이다가

그 친구의 적극적인 구애로 연인이 되었습니다.

관심도 없던 그냥 동생 이상도 아니던 사람이었는데,

워낙 확고한 믿음을 갖고 제게 다가와서 얼떨결에 여자친구가 되었습니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배우자의 기도인가 그런걸 한다고 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주님이 저를 보내주신것 같다고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썸씽도 없이, 초고속 연인이 된거죠.

제가 틀림없이 자신의 연인이라고 하니, 정말 그런가 뭐에 홀린 마냥...

 

저희집은 선조께서 순교자이신 수대째 천주교집안이고

저도 모태신앙입니다.

 

억지로 종교를 바꾸길 종용하는 그 사람 때문에 첨에 많이 힘들었어요.

기독교 신자 몇몇이 있는 모임에서 저를 반쯤 사이비종교인으로 몰아서 울며 불며 싸운적도 있구요.

 

그이후론 종교이야기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모종의 약속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틈틈이 자신의 신앙심을 고취시켜줄 인연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저는 그 옆에서 죄인이 된 기분마져 들어요.

 

그렇게 일주일의 5일이상을 잠만자는 그사람은

신기하게도 일요일(주일을 일요일이라고 한다고 저를 사이비 취급했지요)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샤워도 하고 면도도 하고, 향수도 뿌리고 교회에 갑니다.

오후엔 교회사람들과 4시간이 넘게 축구도 합니다.

그러곤 피곤하니까 또 5일을 자고...

 

그사람을 만나려면 그사람 집에 가야합니다.

자고 있습니다. 조용히 깨우면 화를 냅니다.

제 목을 잡고 눕히고 옆에서 자라고 합니다.

아실분은 아시겠지만 산 송장처럼 눈뜨고 몇시간을 누워있는것은 참 힘듭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포트폴리오에 넣을 스케치라도 하고 있으면

갑자기 깨서는 화를 냅니다. 왜 옆에서 안자고 있냐고...

자고있는 자기에게 수치심을 주는것이라고 화를 냅니다. 소리없는 부담을 주고 있다고.

 

어쩌다 저희집에 며칠 온적이 있는데, 그건 아주 두고두고 생색을...

 

저는 23년을 앓아온 위장병이 있습니다. 5년전엔 위암수술도 했습니다.

최근 급격히 나빠져서 식사를 거르는것은 무척 위험합니다. 라면이나 밀가루는 독약입니다.

하지만 그의 집은 부모님집옆에 딸린 단칸방이라 부엌이 없고, 본가엔 항상 가족중 누구라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집에가면 굶어야만 합니다.

그사람은 자느라고 밥도 안먹습니다. 저는 배가 고파서 쓰러질것 같고 하늘이 빙빙 돌지만

무슨 방법이 없습니다.

하는수없이 도시락을 싸다닙니다.

그 사람 집에 도착합니다. 눕힙니다. 배고파서 일어나면 인기척에 눈떠 또 눕힙니다.

배고파서 그렇다고 하면 화를 냅니다. 자기 머리를 막 헝크리며 짜증내고 욕을 합니다.

배고픈것이 죄인것입니다.

내가 먹을밥을 싸와도 눈치가 보여서 못먹습니다. 나는 식충이가 된것 같습니다.

 

집안엔 발디딜 틈없이 옷가지가 늘어져있습니다. 치워주려고 하면 화냅니다. 알아서 치운다고...

머리카락에  그곳(?)털에,, 그집에 갔다오면 발바닥에 그털이 수십개씩 붙어있습니다.

 

기분이 좋은지 어떤날은 자고 가라고 합니다.

이불은 벌써 1년째 그대로 빨지 않고 덮습니다. 배게도...

깔개엔 여기저기 얼룩과 그털로 가득합니다.

 

저는 피부가 좀 예민해서 어릴때 흙장난만해도 두드러기가 나는 피부입니다.

지금도 곰팡이나 오염에 예민해서 최소 삼일에 한번씩은 침구를 바꿔야하고, 배게잎은 이틀에 한번씩 교체합니다. 빨래도 자주하고, 샤워도 매일 해야합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자게 되면 밤새 피가 나도록 긁어야하고,

두드래기로 며칠고생하고 병원에 가야하고,

한겨울에도 찬물밖에 안나와서 씻지도 못하고, 큰맘먹고 머리라도 감으면 감기걸려서 또 며칠 앓아 눕습니다.

여자친구가 그런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처음에 사귀자고 작업걸때 항상 병원에 따라오더니,,, 너무 약해서 걱정이라며 안아주더니...)

방청소 한번 안하고, 이불한번 안바꾸고,,,

온방에 담배 쩐내에, 프링글스 빈통마다 담배꽁초가 가득가득, 실수로 넘어뜨리면 죽일듯이 화내고...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하의 탈의는 기본, 떡진 머리에 꺼칠한 수염에 눈꼽을 잔뜩 달고,담배물고 맨날 하는일은 디시인사이드나 웃긴이야기 사이트를 몇시간이고 뒤집니다.

저는 아무리 흥미를 가지려해도, 눈쌀이 찌뿌려지거나 황당하거나 민망하거나 비방이 가득해서 공감은 커녕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이거봐 저거봐 하면서 제 동의를 구하지만, 처음 몇개월은 예의상에라도 웃어줬지만,

지금은 그사람이 그러고 앉아서 프링글스통 새워놓고 담배피고 모니터보며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뭘하고있나..싶어요.

같이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때도 그사람은 스맛폰으로 또 디씨와 웃긴사이트를 보며 낄낄댑니다.

함께 버스를 기다릴때도, 누워서 잠들기 전에도, 함께 카페에 갔을때도

항상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옆에있는, 혹은 앞에 앉은 저는 그냥 자리가 없어서 같이 앉은

남같습니다. 혼자 말하고 혼자 커피마시고 혼자 그림그리고....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애교 부리면서 내가 씻겨줄까 하면, 내가 더럽냐며 화냅니다.

며칠씩 자느라 입에서 썩은내가 나는데 억지로 키스하면 토할것 같습니다. 길게도 합니다.

혼자 필받아서 덮칩니다. 며칠을 안씻어서 쾌쾌한 그곳을 제입에 들이 댑니다.

혼자 신나서 거칠게 다룹니다. 억지로 쑤셔넣으려해서 제 그곳이 찢어지거나 다치는일은 일도 아닙니다.

덕분에 세균감염이 된적도 많지만, 자존심 상할까봐 씻으란 말도 못하겠습니다.

 

용기를 내서

자기야, 작업좀 하자 하며 스케치북과 노트북을 꺼내 들면 지금은 할기분이 아니라고 화를 냅니다.

 

낑낑거리며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두끼의 도시락에, 가끔 깨면 먹으라고 간식에 바리바리 싸가면 뭐합니까... 제가 한심해보여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곱게 차려입고 머리하고 화장하고 그래도 남자친구 보러가니까 설레며 갑니다.

컴컴한 방에서 자고있는 남자친구는 그게 보일리 없습니다.

허무에게 보내는 재물입니다.

예뻐보이고 싶은데 예뻐할사람이 없습니다.

예쁜옷을 입고가도 감탄은 커녕 끌어다 눕히니 다 구겨지거나 함부로 벗겨 땅에 처박힐 뿐입니다.

예쁘게 화장하고 머리를 해도, 제멋대로 헝클어지고 번져서 술집 작부같아집니다.

바리바리 싸온 간식과 굶을까봐 열심히 지어온 도시락도 방한구석 널부러져있습니다.

 

사랑받는게 뭔지 느껴본게 몇달전인지 모르겠습니다.

외롭다 힘들다 말하면, 제가 바라는것만 많고 만족이라곤 모르는 된장녀 취급합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하는거 아니냐고 소리지릅니다.

 

아무리 연인은 존재만으로도 행복한것이라고 하지만,

그 날씨 좋던 봄날도 다가가고,

눈이 부시게 화창한 날도 억지로 눕혀져 자야만 하고,

아름다운 신록의 거리도 도시락과 노트북을 들고 낑낑거리며 땀범벅이 된채 홀로 외로이 거닐었네요.

 

제 외로움과 서운함은 비단 저의 욕심이 원인일까요.

제가 그렇게 욕심이 많고, 남자친구를 닥달하는 사람일까요.

 

어서 취업해서, 일의 보람도 느끼고, 주말의 데이트도 즐기고 싶은데.

언제까지 잠든 시체같은 남자친구 옆에서 눈뜬 송장처럼 억지 잠을 청해야할까요.

어두운 방안에서 블라인드사이로 새들어오는 봄 볕을 그저 눈물로 바라봐야할까요...

제위에 올라타 배려심없이 쑤셔박기만하는 그사람은 제 기분과는 상관없이 찍찍 사정하면 관계는 끝납니다.

오늘은 피곤해서,,하며 거절하면 죽일듯이 화냅니다. 감히 남자친구를 거부하냐고.

 

화를 내면, 평생을 살아도 듣지 못할

온갖 욕을 쏟아 냅니다. 제가 시발년이고, 미친년이고, 개똘아이같은 년인지 몰랐고.

제가 가지는 모든 서운한 감정이 지랄인지, 성기같은 건지 몰랐습니다.

 

왜 저는 남자친구의 존재만으로 행복하지 않을까요.

 

제 모든 충고와 감정표현은 자신을 죄인취급하고 무시하는 말이라고 소리지릅니다.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자기 맞다고 해야지, 내생각은-이라고 말했다가는

그래 너 잘났다. 또 욕이 쏟아지고 고분고분하지 못한 여자가 되어 질펀히 욕을 먹습니다.

도끼같은 눈에 서슬이 퍼렇게 서려서, 눈밑이 파르르 떨리고, 터질것 처럼 시뻘건 얼굴과 목에

여기저기 튀어나온 핏줄로 저를 쳐다보면, 저는 그냥 다타버린 재처럼 파스라지고 싶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됩니다. 그냥 존재자체가 사라지고 싶습니다.

 

이제는 내가 왜 이사람을 만나게되었을까 원론적인 의문을 갖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가 갈리도록 저주스럽습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생각좀 해보자-라는 냉전기에 돌입했습니다.

이게 몇번째인지요.

항상 내가 너무 심했지,,하며 연락이 왔습니다.

미안해.라는 말에 마음이 무너져 한바탕 눈물이 납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도 듣습니다.

냉전기 동안 낯선도시에 홀로 남겨진 제가 불쌍하고 죽음같은 외로움이 엄습했기에

그의 연락을 저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사람밖에 없는것 같으니까요.

그런 그는

또 다시 저를 안고 뒹굽니다.

벌거벗겨진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후회의 눈물이 또 흐를거면서..

 

다시 저를 붙잡는 그를 또 받아주는 저를 저주하고 싶네요.

 

우린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