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월 14일 어느덧 2주가량 지나왔습니다. 다시는 느끼기 싫은 기분이여서 못하는 술을 매일먹고 자는걸 좋아하는데 몇날 몇일 밤을 지새웠습니다. 잊기위해 친구들을 하루도 안빼먹고 만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혼자 컴퓨터를 하다 네이트 판을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일주일째 제가 모시고 있습니다.] 예전같았으면 남일이기에 아 안됬다 하는 생각하고 다른일을 했을텐데 지금은... 저는... 머릿속이 하얗고 물고있던 담배가 타드러가는지도 모르고있었습니다. 문득 생각 나서 열어본 그 사람의 핸드폰 부재중 전화만 100통이 넘는다. 아직도 그 사람의 핸드폰엔 전화벨이 울리곤 한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핸드폰에서 그 사람에 핸드폰에 전화를 걸면... 사랑하는 아들♥ 이라는 이름이 뜬다 난 한번도 못해본 말인데 이제 저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제가 어릴적 어머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저 낳으실때 힘드셨나요?" "널 가졌을때부터 낳을때까지 죽을뻔했지 아마?" 어머니는 웃으시며 말씀해주셨습니다. 전 그때 아 어머니가 나때문에 엄청 힘드셨구나 생각하고 잘 해드리며 힘들지 않게 해드려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저희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항상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피곤하실법도 하신데 매일 제가 자고 있는 방에 오셔서 머리를 쓰담아주시고 이불을 덥어주시고 주무시러 가시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 중학교 생활을 하는데 모든것이 불만이고 불평이었습니다. 왜 나는 남들과 달리 가난하게 살아야하는가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것인가 그러면서 항상 어머니께 상처되는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살아왔습니다. 그치만 어머님은 제게 매번 "미안하다... 못난 어미여서 미안하다... 그래도 씩씩하게 자라주니 고맙구나."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말들도 더이상 듣기싫어 아에 말을 섞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때라 그 날도 친구들과 놀고있었는데 병원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께서 교통사고가 나셨다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보는데 어머니께서는 웃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곳 저곳 살펴보며 간호사에게 상태를 물어봤습니다. 경미한 사고였다는 간호사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있는데 의사선생님께 가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CT사진을 보여주시며 대학병원에 가보시는게 좋을거 같다고 하였습니다. 알고보니 어머니께서는 뇌종양 환자셨던 것입니다. 아들 하나 있는거 잘 살게 하시겠다고 밤낮으로 일을 하시며 병원가는 일마져 아깝다며 아프셔도 돈을 벌어오셨던 것입니다. 전 이런 상황이 너무나 원망 스러웠습니다. 나 까짓게 모라고... 돈이 모라고... 다행히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첫번째 수술은 성공적이였습니다. 회복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병원으로가 어머님을 뵜는데 병실에는 머리를 미시고 창밖을 보시다 저를 보고 웃어주시는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그 순간 너무 당황 스러웠으나 좋아졌다는 의사말에 다시 어머님과 살수있을꺼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 후 퇴원하셔서 정상적인 생활로 거의 돌아갈즈음 멍청한 저는 다시 예전의 저로 험한 말을 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하여 어머니께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치만 어머니께서는 되려 미안하다는 말씀뿐이셨습니다. 그러다 1년후... 어디 숨어있었는지 다시 종양은 재발하여 어머니를 다시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겠금 하였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쳐졌고 어머니께서는 다시 일반 생활을 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와의 시간을 오래 두자고 생각하고 대화도 길게 하고 항상 어머니 앞에선 웃어왔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고 드디어 어머니와 함께할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의 시간이 서서히 길어지는데 어머니께서 점점 이상해지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잘 걷지를 못하시고 대소변을 못가리시고 그러다 식사를 혼자서 못하시는 상황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저는 그 날 부터 제 생활 페턴을 어머니에 맞추고 매일 목욕 해드리고 식사를 드리고 이불도 갈아주고 주무실때 옆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그렇게 두 달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외삼촌께서 집에 오셔서 어머니의 상태를 보시고 왜 여태 말을 안햇냐며 속상하신 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혼자서 할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얼마후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1인실 병실로 들어왔는데 그날 새벽 어머니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아들~ 엄마는 아들이 장가 가는 모습 꼭 볼꺼야. 그래서 꼭 너 닮은 손자 볼꺼야. 엄마가 키울꺼야 꼭" 저는 당연한 소리를 왜 그렇게 하냐며 웃어넘어갔습니다. 절때 지키지 못할 약속 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그렇게 수술날짜가 오기 전날까지 매일 하루에 두번씩 휠체어를 타고 밖을 구경하고 바람도 쐬며 많은 이야기를 사소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수술 당일. 어머니는 역시나 웃으시며 들어가셨습니다. 2011 01 11 19시 03분 드디어 수술이 시작되고 저는 의자에 앉아 기도를 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모습은 정말 많이 지쳐 보이셨습니다. 다음날 중환자실로 면회를 가고 다음날도 다음날도 매일 갔습니다. 드디어 일반 병실로 옮겨지셨는데... 이제는 완전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그런 몸이 되셨습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얼마후 인근 의료기관으로 옮겨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어머니에게 찾아가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팔다리도 주물러드리고 항상 마지막은 웃으며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모르지만 어머니한테만큼은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기때문입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리부터 시작되는 근육경직 현상으로 시작해서 말씀을 잃으시고... 팔 마져 힘이 없으시고 식사도 못하시고... 숨도 거칠어지시고... 그렇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어머니는 보내고 계셨습니다... 5월말경 새벽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당장 와달라고 어머니가 숨을 안쉬신다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 고비는 넘겼다는 말에 다리가 풀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다 잠이 들엇습니다. 그로부터 2일후...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그날따라 어머니의 안색이 많이 안좋고 혈색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간호사님을 불러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바로 의사선생님께서 오셔서 어른들께 연락을 하라고... 심장이 멈췄다고... 전 당황해 하며 바로 전화를 하고 친척 누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왔는데 의사선생님께서 다행히 다시 뛰시는데 불안하시다고하셨습니다. 그로부터 30여분후... 다시 심장이 멈추셨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하시고 계신데 어머니의 얼굴은... 정말 힘들어보이셨습니다. 저를 낳으실때 힘드시단것보다 몇 천만배는 힘들어보이셨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죄송합니다. 운명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살아 생전 젊은 나이 하루도 빠짐없이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다는게 저로써는 용납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얀색 천에 감싸져 나오는 어머니를 차마 똑바로 처다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20살의 상주가 된 저는 어머니의 사진 옆에서서 하루를 지새고 둘째날 입관식을 하는데... 창 넘어의 곱게 단장하신 분이... 어머니란 사실에 당장이라도 뛰쳐들어가고싶었으나 이것 저것 순서를 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어서 마음을 추스리고 어머니를 마지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실때 화장한번 제대로 못하신 어머니께서 빨간 입술 붉은 볼 밝은 피부 눈화장 정말 고우신 어머니 더욱 고우신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팔 다리를 잡아 보았지만... 그 예전 따스한 어머님의 온기는 사라지고 차디찬...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말을 하라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속으로 진심을 담아 어머니께 진정으로 지킬수있는 약속들 그리고 걱정말고 편히 가시라는 말을 하고 어머니께서 관에 들어가시는 순간 그 관에 절을 하는 순간까지 어머니께 한시도 눈을 때지 못했습니다. 입관식이 끝나고 나서야 실감이 났는지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둘째날의 밤도 지나갔습니다. 마지막날... 어머니를 뒤에 모시고 화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뜨거운 기계속으로 들어가시고 기계 문이 닫히는 순간... 저는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골함을 받고 넓은 바다에 어머니를 뿌려드렸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자유롭게 정말 어머니만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사셨으면 합니다... 제게 우는 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어머니. 세상은 혼자 사는것이 아니니 항상 친절해야 된다고 가르쳐 주시던 어머니. 매번 투정부리고 짜증만 내던 아들 돈없다고 기죽지 말아야된다고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세상에는 희망이 있다고 가르쳐 주시던 어머니. 살아 계실적 한번도 사랑한단말 못 해드린 어머니. 한번도 못 업어 드린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어머니 부디 정말 좋은 곳으로 가셔서 이 아들 안좋은길로 빠지지 않게 지켜봐주시고 성공해서 사는 모습 지켜봐주세요 사랑해요 엄마... 22
못 난 아들을 항상 자랑스러워 해주시던 어머니, 20살의 상주 생활
오늘은 6월 14일 어느덧 2주가량 지나왔습니다.
다시는 느끼기 싫은 기분이여서
못하는 술을 매일먹고
자는걸 좋아하는데 몇날 몇일 밤을 지새웠습니다.
잊기위해 친구들을 하루도 안빼먹고 만나며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혼자 컴퓨터를 하다 네이트 판을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일주일째 제가 모시고 있습니다.]
예전같았으면 남일이기에 아 안됬다 하는 생각하고
다른일을 했을텐데 지금은... 저는...
머릿속이 하얗고
물고있던 담배가 타드러가는지도 모르고있었습니다.
문득 생각 나서 열어본 그 사람의 핸드폰
부재중 전화만 100통이 넘는다.
아직도 그 사람의 핸드폰엔 전화벨이 울리곤 한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핸드폰에서
그 사람에 핸드폰에 전화를 걸면...
사랑하는 아들♥
이라는 이름이 뜬다
난 한번도 못해본 말인데
이제 저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제가 어릴적 어머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저 낳으실때 힘드셨나요?"
"널 가졌을때부터 낳을때까지 죽을뻔했지 아마?"
어머니는 웃으시며 말씀해주셨습니다.
전 그때 아 어머니가 나때문에 엄청 힘드셨구나
생각하고 잘 해드리며 힘들지 않게 해드려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저희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항상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피곤하실법도 하신데 매일
제가 자고 있는 방에 오셔서
머리를 쓰담아주시고 이불을 덥어주시고
주무시러 가시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 중학교 생활을 하는데
모든것이 불만이고 불평이었습니다.
왜 나는 남들과 달리 가난하게 살아야하는가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것인가
그러면서 항상 어머니께 상처되는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살아왔습니다.
그치만 어머님은 제게 매번
"미안하다... 못난 어미여서 미안하다...
그래도 씩씩하게 자라주니 고맙구나."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말들도 더이상 듣기싫어
아에 말을 섞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때라
그 날도 친구들과 놀고있었는데
병원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께서 교통사고가 나셨다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보는데
어머니께서는 웃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곳 저곳 살펴보며 간호사에게 상태를 물어봤습니다.
경미한 사고였다는 간호사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있는데
의사선생님께 가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CT사진을 보여주시며
대학병원에 가보시는게 좋을거 같다고 하였습니다.
알고보니 어머니께서는 뇌종양 환자셨던 것입니다.
아들 하나 있는거 잘 살게 하시겠다고 밤낮으로
일을 하시며 병원가는 일마져 아깝다며
아프셔도 돈을 벌어오셨던 것입니다.
전 이런 상황이 너무나 원망 스러웠습니다.
나 까짓게 모라고... 돈이 모라고...
다행히 좋은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첫번째 수술은 성공적이였습니다.
회복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병원으로가 어머님을 뵜는데
병실에는 머리를 미시고 창밖을 보시다
저를 보고 웃어주시는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그 순간 너무 당황 스러웠으나 좋아졌다는 의사말에
다시 어머님과 살수있을꺼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 후 퇴원하셔서 정상적인 생활로 거의 돌아갈즈음
멍청한 저는 다시 예전의 저로 험한 말을 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하여 어머니께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치만 어머니께서는 되려 미안하다는 말씀뿐이셨습니다.
그러다 1년후... 어디 숨어있었는지 다시 종양은
재발하여 어머니를 다시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겠금 하였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쳐졌고 어머니께서는
다시 일반 생활을 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와의 시간을 오래 두자고 생각하고
대화도 길게 하고 항상 어머니 앞에선 웃어왔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고
드디어 어머니와 함께할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의 시간이 서서히 길어지는데
어머니께서 점점 이상해지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잘 걷지를 못하시고 대소변을 못가리시고
그러다 식사를 혼자서 못하시는 상황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저는 그 날 부터 제 생활 페턴을 어머니에 맞추고
매일 목욕 해드리고 식사를 드리고 이불도 갈아주고
주무실때 옆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그렇게 두 달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외삼촌께서 집에 오셔서 어머니의 상태를 보시고
왜 여태 말을 안햇냐며 속상하신 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혼자서 할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얼마후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1인실 병실로 들어왔는데
그날 새벽 어머니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아들~ 엄마는 아들이 장가 가는 모습 꼭 볼꺼야.
그래서 꼭 너 닮은 손자 볼꺼야. 엄마가 키울꺼야 꼭"
저는 당연한 소리를 왜 그렇게 하냐며 웃어넘어갔습니다.
절때 지키지 못할 약속 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그렇게 수술날짜가 오기 전날까지 매일 하루에 두번씩
휠체어를 타고 밖을 구경하고 바람도 쐬며 많은 이야기를
사소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수술 당일.
어머니는 역시나 웃으시며 들어가셨습니다.
2011 01 11 19시 03분
드디어 수술이 시작되고
저는 의자에 앉아 기도를 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모습은 정말 많이 지쳐 보이셨습니다.
다음날 중환자실로 면회를 가고
다음날도 다음날도 매일 갔습니다.
드디어 일반 병실로 옮겨지셨는데...
이제는 완전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그런 몸이 되셨습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얼마후 인근 의료기관으로 옮겨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어머니에게 찾아가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팔다리도 주물러드리고 항상 마지막은 웃으며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모르지만
어머니한테만큼은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기때문입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리부터 시작되는 근육경직 현상으로 시작해서
말씀을 잃으시고... 팔 마져 힘이 없으시고
식사도 못하시고...
숨도 거칠어지시고...
그렇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어머니는
보내고 계셨습니다...
5월말경 새벽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당장 와달라고 어머니가 숨을 안쉬신다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 고비는 넘겼다는 말에 다리가 풀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다 잠이 들엇습니다.
그로부터 2일후...
어머니를 뵈러 갔는데 그날따라 어머니의 안색이
많이 안좋고 혈색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간호사님을 불러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바로 의사선생님께서 오셔서
어른들께 연락을 하라고... 심장이 멈췄다고...
전 당황해 하며 바로 전화를 하고
친척 누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왔는데 의사선생님께서
다행히 다시 뛰시는데 불안하시다고하셨습니다.
그로부터 30여분후... 다시 심장이 멈추셨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하시고 계신데 어머니의 얼굴은...
정말 힘들어보이셨습니다.
저를 낳으실때 힘드시단것보다
몇 천만배는 힘들어보이셨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죄송합니다.
운명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살아 생전 젊은 나이 하루도 빠짐없이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다는게
저로써는 용납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얀색 천에 감싸져 나오는 어머니를 차마 똑바로
처다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20살의 상주가 된 저는
어머니의 사진 옆에서서
하루를 지새고 둘째날
입관식을 하는데...
창 넘어의 곱게 단장하신 분이...
어머니란 사실에 당장이라도 뛰쳐들어가고싶었으나
이것 저것 순서를 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어서
마음을 추스리고 어머니를 마지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실때 화장한번 제대로 못하신 어머니께서
빨간 입술 붉은 볼 밝은 피부 눈화장
정말 고우신 어머니 더욱 고우신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팔 다리를 잡아 보았지만...
그 예전 따스한 어머님의 온기는 사라지고
차디찬...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말을 하라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속으로 진심을 담아
어머니께 진정으로 지킬수있는 약속들
그리고 걱정말고 편히 가시라는 말을 하고
어머니께서 관에 들어가시는 순간
그 관에 절을 하는 순간까지
어머니께 한시도 눈을 때지 못했습니다.
입관식이 끝나고 나서야 실감이 났는지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둘째날의 밤도 지나갔습니다.
마지막날... 어머니를 뒤에 모시고
화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뜨거운 기계속으로 들어가시고
기계 문이 닫히는 순간...
저는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골함을 받고
넓은 바다에 어머니를 뿌려드렸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자유롭게
정말 어머니만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사셨으면 합니다...
제게 우는 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어머니.
세상은 혼자 사는것이 아니니
항상 친절해야 된다고 가르쳐 주시던 어머니.
매번 투정부리고 짜증만 내던 아들
돈없다고 기죽지 말아야된다고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세상에는 희망이 있다고 가르쳐 주시던 어머니.
살아 계실적 한번도 사랑한단말 못 해드린 어머니.
한번도 못 업어 드린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 어머니
부디 정말 좋은 곳으로 가셔서
이 아들 안좋은길로 빠지지 않게
지켜봐주시고
성공해서 사는 모습 지켜봐주세요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