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여행과 만유기다림의법칙 (카오산로드)

쾌락여행마법사 201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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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내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직접 찍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빌딩이나 강, 숲이 나오는 넓은 풍경 사진이래야 몇 컷이면 충분하다.

말 걸기가 쑥스러워 다른사람 사진도 많이 담지 못한다.

그러니 작은 카메라에 담겨 있는 대부분은 클로즈업된 사물들이다.

 

시끌시끌한 클럽에서 프란체스카 여사(다른 무엇이었겠지만 그 모습과 복장이란 꼭 그랬다)로 코스프레한 퍼포머의

혼을 쏙 빼놓는 공연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넘어가는데

아무래도  오늘 뭔가를 다 마치지 못한 것처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리저리 이 찝찝함을 좀 달래보려고

빅픽처, 극락타이생활기 같은 책도 뒤적거리고,

랩탑 음악을 크게 틀어봐도 나아질 것이 없다.

 

이왕이면 다시 옷을 입고 나가 늦은 밤과 이른 새벽 사이 방콕 거리를 좀 쏘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클럽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그 차도 없이 텅비고 캄캄한 밤으로 다시 나가는 게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충전 중인 카메라를 열고 이미 두 번, 세 번 보았던 오늘 사진들을 다시 돌려봤다.

역시나, 멈추거나 잠깐 방치된 사물들이 가득 들어차있다.

식당에서 밥을 시켜놓고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

지상철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

집으로 돌아가면 태국 음식을 주제로 포스팅을 해볼 생각으로 찍은 음식 사진,

승객을 기다리는 버스,

주인을 기다리는 뚝뚝이,

달리길 기다리는 택시, 공중전화기, 채소 같은 것들.

 

그렇게 별 생각도 없이 사진을 휙휙 넘기며

이런 건 보정이 좀 필요하겠군, 회색으로 칼라를 다 날리면 아마추어 느낌은 덜 하겠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문득.

이것들이 온통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어느 특별한 날을, 성공을, 사랑을, 아침을, 여행을, 삶의 화려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물건들도 모두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꼭 사람의 물건만 그런 게 아니다.

농사짓지 않는 멕시코 과나후아토 근처 초원의 선인장도 적당한 햇빛을 기다리고 있었고

고향에 엄마가 새로 얻어 온 행운목도 물 몇 모금을 기다렸다.

 

그러니, 어쩌면 기다림이라는 건

구심력이나 원심력, 마찰력, 혹은 만유인력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적 법칙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어릴 적에 누군가로 부터 들은 그럴싸한 얘기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몇 번 여호와의 증인 회관을 오가는 동안 들었을 수도 있다)

이야기인 즉,

세상에는< 어떻게>와 <왜>라는 게 있다.

<어떻게>는 과정이고 <왜>라는 것은 이유인데.

상대적으로 <왜>라는 것에 비해 규명하기 쉬운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아 놓고는

사람들은 그게 마치 <왜>인 것처럼 설명한다.

 

Q1: 안개는 왜 생겼을까?

A1: 그건 지상의 차가운 공기가 갑자기....

Q1: 아니, 안개가 <어떻게> 생기는 지 말고 안개는 <왜> 생겨났을까, 말야. 

 

Q2: 너 지독한 감기몸살이라며. 왜 그런거야?

A2: 응, 회사 동료가 감기에 걸렸는데 아무래도 엊그제 같이 점심을 먹다가...

Q2: 아니, 몸살이 <어떻게> 걸렸는 지 말고 <왜> 걸렸을까, 말야.

 

 



 

 


 

 

 

이 질문은 말 장난같아 보이지만

간혹 <어떻게>라고 물었으면 그냥 고개 끄덕이고 말았을 것들에 대해

<왜>라고 물으면 가슴 가운데가 쓰윽- 하고 활짝 열릴 때가 있다.   

 

응, 안개는 신이 너무 외로워서 말야.

응, 네가 너무 힘들게 달려가고 있으니까. 네 몸이 마음에게 말야......

 

그리고

내가 말하는 기다림이라는 법칙이란

혹시 <어떻게>가 아닌 <왜>라는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는 데 그럭저럭 쓸모있는 법칙인 게 아닐까?

 

억지소리가 아니다.

 

나는 이별의 때에, 꿈이 무너지는 어느 시간에, 실패의 시절에, 통증의 순간에 

기다림의 법칙, 그리움의 법칙, 실패의 법칙과 같은 지극히 인위적이면서도 충분히 자연적인 법칙들을 통해

튼튼한 힘을 빌리는 친구들을 꽤 알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으로 돌아오자.

마지막으로,

그들의 튼튼함을 좀 닮고 싶어서 이건 내가 연습 중인 기다림의 법칙을 써먹는 예시이다.

 

나는 기다린다. 온통 기다리는 것 투성이다.

조금 더 살맛나는 쫄깃쫄깃한 세상이 어서 오기를,

그런 세상을 만들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좋은 가정을 만들어 볼 수 있기를,

그러면서도 혼자서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먼 길 앞에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사실은 나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엄마도, 아빠도, 이명박 대통령이나 달라이라마나,

어느 먼 별에서 어린왕자도,

집 앞에 외등이나 도로에 그려놓은 횡단보도도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기다리는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공을 떨어트리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거나

지구가 태양을 벌써 오래 전부터 돌고 있는 것처럼

기다림이란 그런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기다림에 다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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