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쇄 살인범 헨리 리 루카스

꽃청년2011.06.20
조회14,991

   #### 연타발 자료 올리기.

           미국의 연쇄 살인범

           헨리 리 루카스에 대한 이야기야

           검색해봤는데 이거에 대한 자료는

           안뜨더라구.

           혹시 중복이면 말해줘~

 

 

 

 

 

 

 

 

 

 

 

Henry Lee Lucas 1936.08.23~2001.03.13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연쇄살인자.

자기 주장에 따르면 17개 주에 걸쳐 360명 이상을 살해했다고 한다.



9명 형제의 막내로 어머니는 매춘부였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의 불구자였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많았다.

극심한 허언증을 앓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자백을 여러번 번복하였으며

나중에는 실제로 살해한 것은 자기 어머니 뿐이라 증언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살해한 상대는 자신을 오랫동안 성적으로 학대한 어머니.

이름을 헨리에타(!)라고 붙이고 여자옷을 강요했으며 '손님'과 함께있는 모습을 강제로 보게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밥을 굶기거나 매질과 칼질로 학대했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40년형을 언도 받았다.

형무소 내에서는 환각, 환청으로 시달렸으며 본인이 가석방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에 시달리던 정부 시책으로 억지로 69년에 가석방,

이후 다른 가족에게 얹혀 살거나 잡다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채 떠돌이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79년, 공범이 되는 오티스 툴을 만나게 된다.

악마신봉자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다가 조카딸 베키과 함께 도망쳐 나온

저능아(IQ75)로서 죄의식이라고는 없는 그와 함께 강도, 강간, 살인을 반복하며

떠돌아 다니는 짓을 계속했다.



그의 살인 행각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베키였다.

9살에 떠돌이 생활을 시작해 10살도 되기 전에 끔찍한 악행의 공범자가 된 이 소녀는

그렇게 루카스의 애인이 되었으나 나중에는 기독교에 감화되어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결국 13살 되던 해인 83년, 말다툼이 원인이 된 싸움으로 칼에 찔려 살해된 뒤

시체는 사막에 유기되었다.



루카스는 그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불법 무기소지 혐의로 텍사스 주경찰에게

체포되었으며 이후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된다.
수사과정에서 600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던 것이다.

이미 몇 건의 살인에 대한 물증이나 심증이 굳어가던 상태였기에 결과적으로

미국 전역의 사법계가 난리가 났다. 35개주의 경찰이 미제 살인사건 210건을 들고와

루카스를 조사하려 했다. 이에 엄청난 혼란이 빛어졌고 이를 정리하기 위해

대규모 경찰 회의가 벌어지는 판이었다.

심지어 회의에서는 그가 자백한 특정사건이 자기 관할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경관들끼리 서로 다투는 삽질까지 벌어졌다.



결국 극단적 허언증과 박약한 정신상태에서 빚어진 웃지못할 촌극이었다.

사실 전설적인 프로파일러인 로버트 케슬러 조차 그가 1975년 이후 5명 정도의

살인만을 인정했으며, 나머지 자백은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경찰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아무튼 11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데엔 성공했으나

결국 물증이 있는 것은 2건(어머니와 애인)뿐이었고 때문에

98년 당시 텍사스 주지사 조지 W. 부시에 의해 사형집행이 반려된다.[1]



형무소 내에서 종교에 귀의하였으며 미싱 재봉사로 오랫동안 일했다.

결국 사형당하지 않고 2001년에 형무소 독방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어떤 의미에서 폭력이 한 인간의 인성을 얼마나 철저히 짓밟을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산 표본이라고도 할수있다.

그 언행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두편이나 제작되었고

그를 모델로 그 유명한 한니발 렉터박사가 창조되었다.[2]



[1] 일부 자료에서는 무기형으로 감형되었다고 하나 부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연기한 것 뿐이다. 사형 찬성론자인 부시의 평소 언동을 생각하면

그것도 예외 중의 예외. 한편 비슷한 시기에 종신형으로 감형을 탄원한

살인범 칼라 페이 터커는 얄짤없이 사형을 당했다.
[2] 그는 감방 내에서 사법 당국자들과 철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

하기를 즐겼고 몇몇 연쇄살인사건 수사에는 경찰에 어드바이스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