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목멱산으로 불리던 서울의 상징 남산.
도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으로 불리어 왔으며 북촌의 권세가와는 달리
'샌님' '딸깍발이' '생원'으로 불리던 가난한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남산골한옥마을은 1998년 4월 18일 시내에 산재해 있던 서울시 민속자료 한옥 5채를 이전, 복원하고 이 한옥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성격에 걸맞는 가구 등을 배치하여 선조들의 삶을 재조명 하였으며, 전통공예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상품을 항상 전시·판매하고 있다.
남산골한옥마을 앞마당에서 본 남산의 모습.
남산골한옥마을에서는 전통혼례도 가능.
관훈동 민씨 가옥의 부엌.
옛 조상들이 쓰던 소반과 술통, 술 증류하는 항아리도 보이는데 조선시대 양반집에서는 손님 대접에 쓸
미뉴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다.
2011.06.11.
남산골 한옥마을 http://hanokmaeul.seoul.go.kr/
옛날 목멱산으로 불리던 서울의 상징 남산. 도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으로 불리어 왔으며 북촌의 권세가와는 달리 '샌님' '딸깍발이' '생원'으로 불리던 가난한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남산골한옥마을은 1998년 4월 18일 시내에 산재해 있던 서울시 민속자료 한옥 5채를 이전, 복원하고 이 한옥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성격에 걸맞는 가구 등을 배치하여 선조들의 삶을 재조명 하였으며, 전통공예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상품을 항상 전시·판매하고 있다.
남산골한옥마을 앞마당에서 본 남산의 모습.
남산골한옥마을에서는 전통혼례도 가능.
관훈동 민씨 가옥의 부엌.
옛 조상들이 쓰던 소반과 술통, 술 증류하는 항아리도 보이는데 조선시대 양반집에서는 손님 대접에 쓸
술을 준비하는 일이 상당히 큰 일이었다고 한다.
관훈동 민씨 가옥 툇마루에서 수업중인 미뉴녀석들과 오늘도 수고해 주시는 부평 가족역사 탐방교실 역사 샘.
관훈동 민씨 가옥은 일제시대 친일파였던 민영휘의 가옥으로 민영휘는 일제강점기 조선최대 재벌 중 하나였다 하며 그에 걸맞게 집의 규모도 대단하였슴을 알 수 있다.
관훈동 민씨 가옥의 사랑채.
주로 남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사랑채의 높이가 높은 것은 머슴들의 눈 높이 위에서 생활하려 함이라 한다.
관훈동 민씨 가옥의 출입문이 이토록 높은것은 가마를 타고 드나들기 위함인데,
그 당시 민영휘의 위세가 얼마나 컷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부분이다.
조선말기 오위장(*조선시대 무관)을 지낸 김춘영 가옥 담장 아래서 담소중인 학부모들과 역사 샘.
전체적으로 서민주택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 아버지 윤덕영 소유로 1910년대에 지은 집인 옥인동 윤씨 가옥.
옥인동 윤씨가옥의 치장등을 보면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지붕 기와 아래에 봉창이 보이는데, 채광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이 봉창은
뜬금없는 사람이나 행동을 일컬어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ㅎㅎ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앞에 핀 꽃과 빨갛게 익어가는 앵두나무 열매.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의 모습.
순종의 장인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딸 윤비가 동궁계비에 책봉(1906년)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
서울 한복판에서 바라다 보이는 정겨운 남산골한옥마을과 청사초롱
그리고 우뚝 솓아있는 서울의 랜드마크 서울타워의 조화가 제법 그럴듯하다.
도편수 이승업가옥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 시절 경복궁이 중건 될 대 도편수였던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중인의 집.
*도편수 - 집을 지을 때 책임을 지고 일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목수.
제법 더운 날씨임에도 군소리?없이 역사 선생님의 안내를 제법 잘 따라다닌 미뉴녀석들.
그리고 감사나운 녀석들을 잘 인솔해 주신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