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다신 이런짓 안할께!!! 안할테니까!!!!!!!!! 제발 눈좀떠!!!!!!!!".
통장을 세웠다. . 그런데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내렸다..
엄마의 편지였다. .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 나의 사랑하는 딸 민연이 보아라..
민연아. 내딸 민연아..
이 에미 미웠지? 가난이 죽어도 싫었지?.
미안하다...미안해....
이 엄마가 배운것도 없고, 그렇다고 돈도 없었어....
민연이한테 줄거라곤.. 이 작은 사랑...
이 쓸모없는 내 몸뚱이밖에 없었단다...
..아..엄마먼저 이렇게 가서 미안하다....
엄마가 병에 걸려서.. 먼저 가는구나...
실은.. 수술이란거 하면 살 수 있다던데.... 돈이 어마어마하더라...
그래서 생각했지...
그까짓 수술안하면.. 우리 민연이 사고싶은거 다 살 수 있으니까...
내가 수술 포기한다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어서... 이젠..몇달을 앞두고 있단다...
딸아...
이 못난 에미.. 그것도 엄마라고 생각해준거 너무 고맙다...
우리 딸..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거 알지?.
딸아..우리 민연아....
사랑한다.........사랑해.......
-엄마가-.
추신: 이불 잘 뒤져봐라.. 통장하나 더 나올꺼야...
엄마가 너 몰래 일해가면서 틈틈히 모은 2000만원이야.. .
우리 민연이.. 가난걱정 안하고살아서 좋겠네 』.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보고있자니...내 자신이 너무 미워진다..
그동안 엄마를 미워하던거보다 100배..아니 1000배..아니, 끝도 없이..내 자신이 미워지고 비열해진다.. .
왜 나같이 못난딸을 사랑했어..어..?.
수술비.... 내가 펑펑 쓴 그돈 수술비....왜 진작 말 안했어....어....? 왜 진작 말 안한거야...
엄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도 내팽겨쳤는데...엄마한테 신경질내고 짜증부렸는데...
엄마 너무너무 미워했는데...그렇게 밉고 나쁜 딸을 왜 사랑한거냐구...
어..?.엄마 바보야? 왜 날 사랑했어...왜...왜...... .
이젠 그렇게 보기 싫었던 누워있는모습조차 볼 수 없겠네...
엄마의 그 도시락도 먹을 수 없겠구...엄마가 맨날 깨워주던 그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겠네...
나.. 엄마 다시한번 살아나면...
하느님이 진짜 다시 한번 나한테 기회를 주신다면...나.. 그땐 엄마 잘해드릴 자신 있는데... 그럴 수 있는데.....
엄마, 다음세상에서 만나자...응..? 꼭 만나자..? 어..?.
엄마.......미안해.....정말 미안해....미안해..........
...나 이말 엄마한테 처음으로 말하는거다..?.
엄마.............사랑해.........사랑해...........
사랑해...........사랑해.................
결혼을 하자는 청혼을 받은지 일주일
남자친구는 우리집에 인사를 오겠다고. 언제가면 되냐고. 자꾸 조른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미 말했고 어머니는 아프다 라고 계속 미뤘다
마루하나 방 하나
조그마한 우리집을 선뜻보여주기 쉽지 않았다
그런 내맘을 알 턱이 없는 엄마는 오늘도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 집에 들어서면서 짜증을냈고, 짜증의 끝은 언제나 "해준게뭐야" 라는 칼이되어 엄마에게 날라간다
화딱지에, 눈물에, 냉장고 문을 확 열어 젖혔다
커다란 파인애플이 두개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때 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니 그 결혼한다는 친구 다녀갔다 너하고 같이 오려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니가 너무 바빠서 혼자 먼저왔대.. 내가 아프다며 파인애플을 사왔는데 나도 그녀석 온다길래 파인애플을 사다놨지뭐냐.. 그녀석 아주 선하니..좋게생겼드라"
나만빼고 다 착한세상 냉장고문을 붙들고 서서 하루종일 울었다
10년을 함께한 둘도없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정이란게 항상 같을순없는건지
서로 섭섭한 일들이 겹치면서 둘은 서로의 우정을 의심하게되었죠
어느날 학교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하던 두친구는
어두어지자 집에갈채비를 하기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한친구가 큰고민에 잠겨있는거같았습니다.
"너 고민있냐?"
"아..아냐 아무것도"
그렇게 둘은 말없이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한친구에겐 말못할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며칠전 집안사정땜에 등록금 걱정을하던중
의문의 전화를 받은것이지요
"니 친구를 죽여라 그러면 니통장에 학비를보내주지"
바로 이것이 친구를 고민하게 만드는것이였습니다.
다음날 고민끝에 그친구는
밤늦게 친구를 실험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결국 사랑하는 친구를 죽이고말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손에 봉투가 쥐어진걸 뒤늦게 발견했지요
봉투안엔 50만원이 조금넘는돈과 편지가있었습니다.
"친구야 너 요즘 고민많지?
등록금 그까짓거 뭐 내가 조금 보태줄께…
자식 너 웃는모습좀 보고싶다
그리고 며칠전에 전화받았지?
크크 내가 장난좀쳤다 너혹시 그전화받고
고민하는건 아니겠지?크크 임마 미안해하지말고
니옆엔 항상 내가있을께 사랑한다 친구야"
아내가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지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챙겨주지 못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날 저녁, 아이와 인사를 나눈 뒤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습니다.
그 순간 뭔가 느껴졌습니다.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 만한 라면이 이불에 퍼 질러진 게 아니겠습니까?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며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봐 이불 속에 넣어 둔 것이라고..
가슴이 메어 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일 년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7살,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죠.
얼마 전 아이에게 또 매를 들었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너무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았죠.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화가 나서 마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 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 유치원에서 부모님들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진학했죠. 그런데 또 한 차례 사고를 쳤습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날.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지장을 끼친다고 온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또 일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 가서 편지를 받아 온 후 아이를 불러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 졌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느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깐 손이 닿아서 다시 돌아와 다 들고 갔다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 나라에 있다고. 다음부턴 적어서 태워 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간 뒤 라이타 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하나의 편지를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생각 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척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봐 절대로 얘기 안 했어.
어느 사형수가 어린 딸의 손목을 꼭 쥐고 울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를 혼자 이 세상에 남겨두고 내가 어떻게 죽는단 말이냐" "아버지...아버지..."
마지막 면회시간이 다 되어 간수들에게 떠밀려 나가면서 울부짖는 소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애처로워 간수들의 가슴을 에어냈다.
소녀의 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그것을 신호로 하여 교수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소녀는 그 날 저녁에 종지기 노인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내일 아침 새벽종을 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종을 치시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아요."
"할아버지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네"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슬피 울었다.
"얘야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만약 내가 종을 안 치면 나까지도 살아 남을 수 가 없단다" 하면서 할아버지도 함께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다음 날 새벽이 밝아왔다. 종지기 노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종탑 밑으로 갔다. 그리고 줄을 힘껏 당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힘차게 줄을 당겨보아도 종이 울리지 않았다. 있는힘을 다하여 다시 잡아당겨도 여전히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러자 사형집행관이 급히 뛰어왔다.
"노인장 시간이 다 되었는데 왜 종을 울리지 않나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지 않소" 하고 독촉을 했다.
그러나 종지기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글쎄 아무리 줄을 당겨도 종이 안 울립니다." "뭐요? 종이 안 울린다니? 그럴리가 있나요?"
집행관은 자기가 직접 줄을 힘껏 당겨보았다. 그러나 종은 여전히 울리지 않았다.
"노인장! 어서 빨리 종탑 위로 올라가 봅시다."
두 사람은 계단을 밟아 급히 종탑 위로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의 추에는 가엾게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는 소녀 하나가 매달려 자기 몸이 종에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던 것이? ?
그 날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목숨을 대신해서 죽은 이 소녀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그 사형수 형벌을 면해 주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어린 딸을 부둥켜안고 슬피 우는 그 아버지의 처절한 모습은 보는 사람 모두를 함께 울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오늘은 한달 중 제일 기다려지는 용돈 받는 날. 그러나 오늘이 더욱더 기다려진 까닭은 수학여행 준비로 용돈을 좀더 넉넉히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손에 쥐어진 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3만원. 참고서 사랴, 학용품 사랴. 정말 3만원 가지고 무얼 하라는 건지. 그리고 또 모레가 수학여행인데. 나는 용돈을 적게 주는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수학여행인데... 평소에 쓰던 가방 가져가기도 민망하고... 신발도 새로 사고 싶었는데...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교실에 도착했다. 내 속을 긁기라도 하듯
내 짝꿍이 용돈 넉넉히 받았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 오늘 수학여행때 가져갈거 사러 가는데 같이안갈래? 한창 신나게 아이쇼핑을 즐기고 있을 때
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괜히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30분 후 다시 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핸드폰을 꺼버리고 밧데리까지 빼버렸다 그리고 신나게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괜히 화를 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신발도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었고 가방은 옆집 언니에게서 빌릴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지...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참! 엄마가 오늘 일나가는 날이었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습관대로 텔레비전을 켰다. 드라마가 나와야 할 시간에 뉴스가 나왔다.
뉴스 속보였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자주 타는 대구 지하철에 불이 난 것이다. 어떤 남자가 지하철에 불을 냈다. 순식간에 불이 붙어 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는 지하철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연결음만 이어지고 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리고 꺼버렸던 핸드폰을 다시 켰는데.
문자 다섯 통이 와있었다. 엄마가 보낸 문자도 두통이나 있었다.
엄마가 보낸 첫 번째 문자를 열었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나는 첫 번째 문자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 번째 문자를 열었다.
미안하다.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 엄마와 아들의 일기 ***
+ 엄마의 일기 어두운 밤 눈가에 흘리는 눈물을 누군가 볼까봐 연신 주위를 살폈다. 내일은 내 사랑하는 아들 현이가 소풍을 가는 날이다. 주인집 아줌마에게 사정을 해서 만원을 빌렸다. 김밥 재료를 사고 3000원이 남았다. 아들은 내일도 웃으면서 돈을 받지 않을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벌써 애는 일어나 나를 멀그러니 바라보고 있었다. 밥을 싸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온다. 혹시나 볼까봐 뒤로 앉았더니 애는 뭘 아는지 밖으로 나간다. 벌써 다 큰걸까? 남들처럼 잘먹였으면 키도 많이 컸을텐데 올 겨울이 걱정이다. 주인집에선 나가길 원하는 눈치인데 내일은 파출부 자리나 알아봐야겠다.
+ 아들의 일기 엄만 오늘도 우셨다. 내일은 말해야 할텐데 학교 등록금을 안냈는지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이제 반년만 지나면 졸업인데..... 자꾸 가슴 아픈게 심해진다.양호실에 또 가서 진통제를 받아야 하나... 엄만 많이 힘들어 하시는것 같은데......... 신문배달도 요즘 들어서 하기가 힘들어진다. 뛸수가 없으니...
+ 엄마의 일기 오늘도 아이는 도시락을 조금 남겼다. 매일 김치만 싸주니 오늘 저녁은 또 뭘먹이나?
+ 아들의 일기 어제 저녁에도 엄마에게 등록금 얘길 못했다. 간장에 밥비며 먹는 내 모습에 어머니가 서럽게 우셨다. 내일은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자퇴를 내야겠다. 돈을 벌어 어머니를 내가 모시는게 날것 같애! 아버지 제사날이 내일인데 어머니는 알고 계실까?
+ 엄마의 일기 아이가 잠을 못자는것 같다. 어디가 아픈건 아닌지?
+ 아들의 일기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학교를 그만 두었다. 내일은 신문보급소에 가서 얘기하고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어제밤에 한숨도 못잤다. 몹시 아팠지만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물도 못마셨는데 밥을 너무 못먹어서 그런가 간장만 먹으면 설사를 하니... 1200만원에 내 장기를 사준다니... 엄마에게는 그냥 주었다고 말해야겠다. 좀더 살고 싶지만 엄만 너무 힘들어 하신다. 내일은 아버지 산소에나 가봐야겠다.
+엄마의 일기 아들에게 고기를 사줄려고 머리를 잘랐다. 보자기를 쓰고 있는데 아들이 그냥 울고만 있다 고기는 먹지도 않고...
+ 아들의 일기 오늘 돈을 받았다. 엄만 길거리에 주었다고 하면 반드시 돌려 드리라고 하실건데.. 당분간 내가 갖고 있어야겠다. 방학을 맞아 친구네 놀러 간다고 하니 엄만 믿으신거 같다. 편지를 쓰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 엄마의 일기 아들이 방학을 맞아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단다!! 난 흔쾌히 허락했다..아무래도 여기 있는것보단.. 잘먹을수 있겠지.... 그런데 왠지 모르게..마음이.. 아들을 다시는 못볼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에이..괜한 걱정이겠지..
++ 아들의 마지막 편지 ++
어머니께 정말 사랑해요 슬퍼하지 마시고, 진지 꼭챙겨 드세요.... 그냥 저멀리 여행갔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엄마에게 효도 많이 했으니까 아버지에게도 해야돼죠... 아버지도 반가워 하실꺼예요..... 눈물은 제가 오늘 다흘릴테니까요... 어머니 이젠 눈물 흘리지 마세요.... 저 백혈병이래요. 수술해도 안된데요.......... 어머니 저 잊지 마시고요, 다음 세상에도 제 어머니 되어 주세요.. 사랑해요... 돈은 제가 선한일 해서 번거니까 마음 껏 쓰시고요.... 먼저가서 죄송해요... 참 저 생각 나시면 김밥이랑 만들어 두세요.. 어느집 보다 맛있어요... 울지 마시고요.. 꼬옥 오래 사시고 오세요.
우선 내 소개할게 난 중2고 동네에서 알아주는애야 이동네에 이어지는 다른 지역에서도 80~90%는 알아주는만큼 솔직히 싸움잘해.. 6학년때까지는 나 진짜 평범하게 자랐다 근데 중1 올라가고 신입생회같은거 하고 집에가는길에 조카 성기같이 험학하게 생긴언니들 10명정도가 와서 따라오래 순진한마음으로 따라갔다? 나보러 예뿌데.. 키도크고 날씬해서 호감간데.. 난 그저 칭찬에 좋았는데 그러더니 나보고 일찐을 들래 들어보기만 한 일찐.. 난 일찐이 그렇게 심각하고 사람 병신되는줄 몰랐다 그래서 난 가만있었더니 일찐하면 좋은게 혜택이 참 많데 언니들은 하나하나 설명해줬어 난 결국 그자리에서 일찐을 들고말았지 옆에 있던 2명의 친구들은 날 시큰둥하게 처다봤고.., 그리고 난 집에가는데 애들이 하는말이
"야 하지말지~ 좀 무서울텐데"
"그러게 말이야~ 진짜 어리벙하다 너 이제 인생 망칠텐데" 너희말을 들었어야 하는건데
"아니야 언니들이 안무섭데잔아 괜찬을껄? 그리구 하기싫음 안할꺼야"
라는 말만한체 난 집으로 뛰어갔지 그리고 난 술도 담배도 그리고....... 싸움도 모두 배워버렸지 태어나 사람한번 처본적 없는 나는 그저 싸움배울때 아프고 힘들었지만 일찐의 필요성이라는것 때문에 끝까지 배우고 말았어 나와 동값인 일찐애들 여자 8명가운데서 난 당당히 진짜 일찐이 되었어 그리고 학교 얼짱에 몸짱됬고 난 뭐 티비에 나오는 모델 부럽지 않을만큼 좋았지 그때부터 그러니까 중1 여름방학때부터 난 심하게 망가저갔지 왠만하면 중2 선배들도 중3 선배들이 졸업해야 우릴 키웠을텐데 아무튼 난 여름방학때 14년 검정색으로 살아온 내 머리를 황금색으로 염색시키고 귀, 코, 뚫었지 노출을 싫어했던 내가 끈나시, 핫뺀츠만 입고 돌아다녔고 남자사귀기 싫어해서 한번도 태어나 사겨본적 없는 남자를 한번에 5다리까지 걸처봤지 영화속에만 티비속에만 이루어질줄 알았던 그런게 나한테 모두 이루어졌어 그래도 기본머리가 있는 나는 1학년 첫중간고사때 94점을 받아 전교 10등을 했었지 선배,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20~50점인데 말이야 그리고 제데로 망가진 여름방학 후 그리고 2학기가 되어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30~50점이 되어버렸어 진짜 내가 웃겻어 한번에 평균 50점이 떨어질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근데 세상의 주인공은 그래도 난줄 알고 난 낮은성적에도 불쾌하지 안았어 부모님들은 날뛰고 점점 변해저가는 내모습에 입원까지 하셨지 집이 지긋한 나는 중2 초반에 가출을 했어 친구들집에 자다가 친구부모님 눈초리에 난 선배오빠들 집에서까지 잤지 평소 나를 좋아해주고 사귀자고 했던 오빠집에 갔을때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어 그래도 난 안심했지 근데 오빠가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나오더니 갑작이 덮치는거지 이거 안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에 난 눈감았지 일어나보니 내 보지속엔 피가 흐르고 내 가슴은 멍으로 가득했지 눈앞이 캄캄했어 그리고 난 처음으로 전치 12주에 이르게 여자한명을 죽도록 팼지
"가출했는데? 엄마아빠? 없어~"
"상관말아 나이렇게 막대먹은애니까"
"아줌마 딸이나 수술시켜줘"
아줌마는 가출한 나를 4달만에 엄마한테 대리고 가 수술비를 물어내라 통곡했고 엄마는 충격과 쇼크로 인해 그자리서 그만.........................돌아가셨어 외동딸이라 곱게 키웠는데 하.....그렇게 가시다니.................... 홀로남은 아빠.............. 난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잘못을 몰랐고 그날밤 동네 공원에서 혼자 술먹으며 울었고 그다음날 내 잘못을 비로소 깨닳았어.. 그리고 가출한지 4달만에 아빠품으로 돌아가서 무릎꿇고 6시간내내 울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아빠는 내용서를 끝내 허락해주시지 않더라... 그리고 다시 집을 나가 죽도록 공부를 했고 평균 97.72 라는 전교1등 성적표를 아빠에게 보여주며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난 새출발을 한다는 마음에 기..뻤....어... 가출한동안 공원바닥에 앉아 공부했던 주차장속에서 공부했던 내 행동이 헛되지 안았고, 그리고 그날 아빠와 함께 엄마가 있는곳을 가보았지 1시간넘게 흐르는 내 눈물을 감추며 그자리에서 엄마에게 사과를 했어.. 앞으로 좋은모습 보여줄테니 거기서 지켜보라고 전교1등은 내가 했다는 소문이 돌고 선생님들은 살짝 의심하기시작했지 하지만 첫 중1때 맞은 94점의 점수때문에 내가 공부해서 얻은거라 생각하시는 선생님도 많앗지만,,, 난 모두 무시했어 아니, 그래야만했어...... 날 비웃는사람도 날 의심하는사람도 그리고 홀로 남은 아빠만을 위해 난 달리고 또 달렸거든?... 하지만 일찐이라는 집단사이에 걸림돌이 되어버렸어... 선배한테 4시간동안 맞고 시퍼런 멍들과 그렇게 잡았던 후배들도 이제는 모두 날 무시해버리더라 다행히 얼굴엔 상처를 내지 안았고 가슴.. 보지...배.. 등. 등등.. 난 모두 멍자국 투성이었어 담뱃불로 지지고 하하하......... 교복입는다로 다리는 지저놓지 않더라 ? 난 그날밤 집에 들어가지 안았어 아빠에게 친구들과 숙제를 한다는 핑계로 그리고 난 그렇게 아픔으로 새출발 하려고 했고 그 다음날 집에 가니 아빠의 편지 한장만을 남겨논 빈집이더라...... 읽어보았지
"사랑하는 내딸아"
로 시작한 편지는 나를 또 한번 무너트렸어.... 선배와 맺은 성관계가 아빠 귀로 들어갔나봐... 마지막 다섯줄에 아빠는 이렇게 적어놓았어....
"아빠는 너무 힘들다 이렇게 막노동을 해서라도 조금버는돈이라도 모두 널위해 쓰고싶었는데 아빠 거기서 다첬다 근데 수술할돈이 만만치가 안더구나 아빠가 수술해도 여러번 더 수술을 걸처야 하는데 차라리 그돈으로 4년뒤에 갈 대학과 널 위해 써라 그리고 니가 그때 나쁜짓하고 성관계 맺은건 아빠가 다 용서해주마......사랑한다 내딸아......."
아빠한테 용서빌고 다시 시작한지 2주일밖에 안됬는데 아빠 모야? 난 당장아빠한테 전화를 했지...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안았어.................... 그날밤 경찰에게서 전화가왔는데... 아빠가..................... 가셨다고............................. 엄마한테 갔나보다하고..... 그리고 흘러간 세월 3개월.................... 난 아빠도 엄마도 보고싶어, 내 헛된 생활 2년때문에 난 가족을 모두 잃고 내 인생마저 잃었거든.... 혼자가 외롭다........................... (-이번 기말고사때 받은 98.16 이라는 또 한번의 전교1등의 성적표는 부모님 싸인도 못받은체 내 방구석에서 날리고 있다 아빠 엄마가 있는곳에 놓고 왔어 엄마아빠 싸인해줄꺼지?-)
너네들..... 살아있을때 부모님들한테 잘해 너희 부모님은 맛있는거 모르는줄 알어? 다 너네 먹이려고 하는거야 그리고 이ㅅ발년들아, 엄마는 사람아니냐? 예쁜옷 예쁜머리 예쁜신발 예쁜악세서리 안하고 싶을줄아냐? 니들이 그런거 할려고 엄마한테 가져가는돈으로 엄마가 산다면 그걸로 엄마는 10년 넘게써 근데 너네는 그걸로 1년은 넘기니? 패션감각없다고 엄마를 쪽팔려해? 꾸미지 않는다구? 그럼 너네가 용돈받아쓰지말고 너희가 옷사러갈때 엄마 화장품, 예쁜옷 싼거 하나라도 사와봐 니네 그렇게 지금 입는옷 예쁘게 입을수있게 엄마가 못입는거야, 병신들아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들도 자기네가 뽀글뽀글 파마에 예쁜옷 못입고 창피하게 입는거 ..창피해 해..... 근데....... 너네들은 그런거 모르잔어 너희는 비싼메이커 사려고 안간힘 다 쓰지? 근데 엄마들은 옷한번 사려면 삼일 밤낮으로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싼거 없나 찾아봐 그거 알어? 엄마들은 그냥 시장에서 5000원짜리 후진옷 사놓고선 이거 편하고 디자인도 나한테 마음에 든다고 니가 볼땐 안이뻐? 엄마가 보니까 예쁜데~ 입어두 편하구 좋아 이렇게 넘어가시는거 알아? 엄마랑 너희랑 쇼핑할때? 엄마 사입으려고 해도 너희가 한번 비싼거 사면 엄마 몇년동안 옷 못사입어 알았니? 같은사람이야 엄마도 너희도..................... 엄마도 얼마나 예쁜옷 입고 싶겠어? 너희가 생각하는거 똑같이 엄마도 생활하고 싶어 같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너네 엄마한테 짜증 좀 내지마 ㅅ발년들아 넌 너네들보다 나이 어린애가 니들한테 짜증내면 좋니? 오늘밤............. 엄마아빠한테 따뜻한말한마디 챙겨드려 뭣모르고 일찐이 멋잇어보여서 그러는데 차라리 애들이 손가락질하는 찌질이로 살아라. 부모님 쪽팔려하지 마라. 신발 난 쪽팔려할 부모님도 없다...........................
전쟁후
어느 한 병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어느날 한 아이가 급히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피가 모잘라 생명이 위독해지게 되었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그 헌혈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지못해 의사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얘들아...저 아이가 지금 많이 아프단다
누가 저 아이를 위해 피를 조금 나누어 줄수 없겠니?"
아이들은 모두 겁에 질린듯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걱정이 되어 한숨만 쉬고 있는데
한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하기로 한거죠
아이는 수술실로 갔습니다 혈액을 뽑는 주사바늘을 꼽고 피가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간호사는 아이를 달랬고 이윽고 주사바늘을 빼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애야 다 끝났다. 근데 왜 눈을 감고 있지?"
아이는 말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주변에 있던 모든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그 아이는 헌혈을 해본적이 없기에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친구에게 주고 자기는 곧 죽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가 또 물었습니다.
"애야 그럼 넌 니가 죽는 줄 알면서도 헌혈을 한다고 했었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제 친구잖아요........"
"하루는 학교 갔다와서 엄마방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거야.
멀리서 잠자코 쳐다보고 있었어 우선은.
근데 엄마가 십분이 지나도 이십분이 지나도
계속 그 상태로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거야.
뒤척이지도 않고 정말 죽은 사람처럼."
"그래서?"
"가까이 가봤지. 코 앞에서 내려다봤어.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서 생각했지.
엄마가 죽은걸까. 눈물이 나려는데 엄마가 눈을 번쩍떳어.
그리곤 일어나서 방을 나가더니 점심을차려줬지.
숟가락을 내손에 쥐어주면서
그일에 대해선 아무 설명도 안해줬어."
"넌왜 안물어봤는데?"
"왠지 물어보면 안될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응."
"그리고 다음주 그 요일에.
또 그 다음주 그 요일에. 계속 그런식이엇어.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없이 누워서
내 시선을 받아내고 있엇어.
그런데 네번째인가 다섯번째인가 그날은
점심을 밥대신 국수를 먹었거든.
내 생일이였어. 오래살아야 된다면서
엄마가 이번엔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쥐여줬어.
막 국수를 한가닥 끌어올렸는데 엄마가 그랬어.
궁금하지않냐고. 왜그러고 있는건지.
사실 그때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사소한걸로 싸우기싫으니까 어.말해줘. 그랫지.
그러니까 엄마가 그래.
죽는 연습 하는거라고. 만약에 어느날 갑자기
또 어떤 이유로 그렇게 느닷없이
엄마가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날 단련시키는 연습을 하는거라고."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아. 그렇구나."
"그게 다야?"
"엄마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니까.
그랬는데 내가 막 여름방학 하던 날이었나봐.
그 날도 엄마는 연습을 하고있엇거든.
그 쓸데없는 연습. 방해하지않으려고
점심 안먹어도돼 오늘. 이러고 방에들어가서 놀다왔는데
그때까지도 엄마는 연습중이었어.
그레서 이번엔 나가서 놀다왔는데
그때도 엄마는 그상태 그대로였어.
다음날 자고 일어나서 방에 갔을때도 그대로인모습을 보고야말았어.
이번엔 연습이 아니네"
여전히 수잔과 남자는 걷고 있다.
느릿느릿 말하던 수잔의 고개는 지루한듯 떨어진다.
마치 남 얘길 하고있다는듯이.
"그런데 효력이 있더라고
별로 슬프지 않앗어. 난 단단해졌어 벌써."
"응"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
우뚝 멈추어서지도 불쑥 끊겨버리지도 않는다.
그대로 흐르고있다. 이 노곤하고 잔잔한 기류.
남자가 고갤 돌려 웃었다. 아니 웃은걸까.
"훈련시키는거냐. 나?"
"응. 그러니까 늘 긴장하고있어.
언젠가 진짜 헤어지는 날이 와도 슬프지 않게."
여러분들은 요구르트의 슬픈비밀을 아시나요? 아마 모르실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 역시 너무나 놀랐습니다.
구청에서는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들에게 매일 요구르트를 배달한다고 합니다.
사정을 몰랐을 때는 구청에서 구민들의 건강까지 챙겨주는 자상한 배려로 생각되어 흐뭇했었습니다.
그러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요구르트가 배달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유산균 음료를 요구르트라 부르지만, 이곳에서는 출석부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아침마다 요구르트를 돌리는데, 문 앞에 요구르트가 쌓여 있으면 그 집에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독거노인들이라서 무슨일이 생겨도 며칠씩 아무도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구청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짜낸 것입니다.
요구르트가 생가 여부를 체크하는 출석부가 된 것이지요.
설마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 됨으로서 소외받고 힘드신 노인들이 많아요.
따뜻한 마음으로 곁에 있는 이웃을 둘러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올해 24살된 여성입니다. 그냥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왠지 모르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 거리는..그래서 밖으로만 돌기 일수였고, 결국은 사고를 쳐 부모님을 경찰서로 오시게 한 이후로 저는 자퇴와 더불에 부모님께 큰 대못을 박고 말았지요.
여기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저를 감금하다 시피 하신 모습에 화가 올라가, 아빠는 직장도 없이 엄마만 돈을 벌고 있었고 할머니가 계시는 아파트에 얹혀살고 있어 형편도 어려운 시기에 엄마의 월급봉투에 손을 대서 13만원중 10만원을 들고 가출을 감행했습니다.(나름 양심이 있어 전부는 가져가지 못했죠.)
첫 가출 이후, 한달내내 엄마에게는 이메일이 도착했고, 남동생이 둘이나 있던 저는 여러가지로 이메일과 사진들이 도착했습니다. 아직도 볼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미칠 지경입니다. 하지만 철없던 저는 아빠에대한 말도 안되는 미움과 나를 찾지 않았다는 그런 어린생각으로 하루하루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었죠.
매일매일 찜질방에서 자기 일수였고 친구집을 전전 긍긍하고.. 가출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친구집도 조금 오래있으면 눈치가 무지 보인다는것을.. 여기저기 엄마의 피눈물과 동생들에 원망을 들으면서도 나혼자 잘 살겠다고 집을 나와 한참을 지내고 있던중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올때는 여름이었는데,추운 겨울 매일매일 어디서 자야할지 고민하고 그러던 중. 견디다 못해 "아 그냥 집에나 들어가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나는 눈물로써 흔쾌히 오라고 하셨고 저는 친구에게 돈을 꿔서 집앞에 도착했죠. 담배 하나를 피고 조금 냄새를 뺀 후 이제 들어갈까 말까 하고 문앞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땐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또 맞겠구나 싶어 그냥다시 갈까.. 하는 생각으로 복도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손발이 꽝꽝얼고 있을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가 나오셨습니다. 아마 담배를 피러 나오신듯하죠.
또 손지검하겠구나 생각하고 눈을 감고있는데 "어?XX왔네?추운데 여기서 뭐해?밥은 먹었어?" 하시는 겁니다. 속으로 그랬죠.'이 가식쟁이' 집문을 열더니 막 소리지르는 겁니다."XX엄마!XX왔어!!" 집안식구들이 모두 나왔고,할머니는 울고 계셨고 엄마는 눈물이 그렁해서 저를 잡아 끌어주셨습니다. 동생들도 잘왔다며,이제 자기들 사춘기라 누나한테 상담할게 많았다는데 잘됬다며 좋아해줬습니다.
아빠는 내가 들어가는걸 확인하고 할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앉혔는데 엄마가 그러는 겁니다. 아빠 들어오시면 잘못했다고 무릎꿇고 빌라고.. 속으로 그랬죠.'아XX 또 시작이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잘못했다고 빌라는건지, 도통 짜증이 나서 싫다고 했죠. 엄마는 부탁이니까 아빠한테 빌라는 겁니다. 젠장,어쩌겠어요.어쨌든 추운데서 안자도 되고 하니까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라 아빠가 들어왔습니다.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레파토리..다들 아시죠?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는데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누가 이런거 하래?..됐어..괜찮아~다리 저릴텐데 얼른 밥먹어.." 이러는 겁니다. 속으론 아싸를 연신 외쳤죠.근데 그때..
"XX.너 피자 좋아하지?피자먹자~밖에서 그런것도 못먹었을텐데 그거 먹자..~"이러는 겁니다. 그리고는 동생들을 불러 누나온 기념파티를 하자고.. 피자를 무려 세판이나 시켜주셨죠. 집이 가난해 그런건 꿈도 못꾸고 있었던..눈물이 나더군요..
저를 더 주저앉게 만들었던건 그 다음날 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빠는 나가시면서 "아빠는 니가 와서 정말 좋다." 이렇게 웃으시면서 일자리를 찾아 나가셨습니다. 으레 차를 끌고 나가시려니 했는데 일주일 후 밤에 엄마랑 슈퍼를 갔다 오는 길 저 멀리서 아빠가 걸어오시는게 보였습니다. (참고로 아빠는 권투선수셨는데 시합도중 눈을 다쳐 한쪽눈이 실명상태랍니다.즉 장애인이란 뜻이죠.) 어라,그런데 차가 없는겁니다. 왜 걸어오시냐니까 운동하시려고,배가 많이 나와서 그러셨다는 겁니다.
그려려니 하고 넘겼는데 그날 저녘. 동생이랑 한바탕 한 후 또 나가길 함행하려고 식구들 모두 잠든 틈을 타 아빠의 지갑을 공략했죠. 아빠의 지갑을 몰래 화장실로 가져가 살짝 열었는데
돈이 하나도 없고 아빠 지갑속엔 제 사진이 얼룩얼룩 한채로 거의 구겨지다 시피해서 민증사진 넣는곳에 있는거였습니다.
눈물이 그렁해서 사진을 뺏는데 뒤에 보니 아빠의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우리딸..보고싶다.."라고 써있는겁니다.
아빠도 제가 너무너무 보고싶으셨던 겁니다. 얼마나 혼자 우셨을까..얼마나 능력없는 당신을 탓하셨을까.. 생각하니,철없이 놀고 아빠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워서 견딜수가 없더군요.. 걸어다니신것도,아빠의 전재산이었던 돈을 피자를 사주셨기 때문이었고, 그 돈은 아빠의 일주일 점심값이 었던 것입니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저때문에 굶고다니신거였죠..
한번도 아빠에게 사랑한단 말 한마디 해본적 없는 못난 딸.. 아직도 저는 아빠에게 다정한 딸이 못됩니다.. 아빠가 이 글을 보실리 만무하지만..마음만은 통하리라 굳게 믿으며 사랑한다고,정말 죄송했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사랑해요
평생을 일그러진 얼굴로 숨어 살다시피 한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아들과 딸 남매가 있었는데
심한 화상으로 자식들을 돌볼 수가
없어서 고아원에 맡겨놓고
시골의 외딴집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자식들을 버렸다고
생각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자랐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라며 나타난 사람은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손가락은 붙거나 없는 모습이였습니다.
"저사람이 날 낳아준 아버지란 말이야?"
자식들은 충격을 받았고, 차라리 고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좋았다며
아버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식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며 혼자 외딴집에서 지냈습니다.
몇년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왕래가 없었고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자식인지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별다른 슬픔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낳아준 아버지의 죽음까지
외면 할수 없어서 시골의 외딴집으로 갔습니다.
외딴집에서는 아버지의 차가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인 한분이 문상을 와서 아버지께 평소에
버릇처럼 화장이 싫다며 뒷산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를 산에 묻으면
명절이나 때마다 찾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아서 화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온 자식들은
다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해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평소에 덮었던 이불이랑 옷가지들을
비롯해 아버지의 흔적이 베어 있는 물건들을
몽땅 끌어내 불을 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책들을 끌어내 불속에 집어널다가
'비망록'이라고 쓰인 빛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 했습니다.
불길이 일기장에 막 불붙는 순간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른 꺼내 불을 껐습니다.
연기가 나는 일기장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일기장 속에는 아버지께서 보기 흉한
얼굴을 가지게 된 사연이 쓰여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식들이었습니다.
일기장에 죽은 아내와 아들, 딸에게
쓰는 편지로 끝이 났습니다.
"여보게! 내가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놈인지
조차 모르겠소.. 그날 당신을 업고 나오지 못한날 용서하구려
울부짖는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당신만을 업고
나올수가 없었다오.. 이제 당신 곁으로 가려고 하니 너무 날
나무라지 말아주오..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오..
비록 아버지로서 해준것이 없지만 말이오..."
"보고 싶은 내 아들 딸에게.. 평생 너희들에게 아버지 역활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짐만되는 삶을 살다가 가는구나..
염치 불구하고 한가지 부탁이 있구나.. 내가 죽거든 절대로 화장을 하지 말아다오. 난 불이 싫단다.. 평생 밤마다 불에 타는 악몽에 시달리며 30년을 넘게 살았단다.. 그러니 제발..."
뒤늦게 자식들은 후회하며 통곡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화장되어 연기로 사라진 후 였습니다
나한테는 두 다리가 없는 형이 하나 있었다 형이라고 부르기에도 상당히 부끄러운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은커녕 짐밖에 되지 않는 못난 형
온몸을 방바닥에 문대며 두 팔로 기어가는 혼자서는 화장실 변기에 앉지도 못하는 그렇게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항상 형 노릇을 하려는 못난 형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형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항상 내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같이 나가서 뛰어 놀 수만 없었을 뿐이지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형과 함께 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비록 다른 형제들처럼 손잡고 함께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형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특수학교에 갈 때마다 혼자서 학교에 가는 내 걱정에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차 조심하고 누가 괴롭히면 형한테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그런 형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들어가고서 부터였다 물론 덩치는 형이 다리가 없어서 나보다 항상 작았지만 형의 존재가 작게 느껴진 건 그 때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같은 반 친구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가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그 친구를 도와주기는커녕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며 빙 둘러싸고 욕을 하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버젓이 알면서도 항상 주의만 주고 끝냈다
그렇게 반 친구들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학기가 끝나기 전에 그 장애를 가진 친구는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갔다
하지만 전학을 갔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특수학교에 가지 않는 한 일반학생과 다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비교적 양심이 있던 그 시절의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형이 생각나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 분위기 장애를 가진 친구를 놀림감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머릿속에 잡혀버린 나는 장애인 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점점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내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형이 창피해서
하지만 형은 내 생각도 모르고 항상 친구들 좀 집으로 초대하라고 그랬다
"진수야 너는 친구도 없냐? 집에 친구들 좀 데려와 같이 놀게"
형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다고 둘러댔다
"아, 내가 아직 친한 친구가 없어"
"그래? 너 혹시 왕따야?"
"그런 건 아니야"
"누가 너 따돌리면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형이 그럴 때마다 형이 조금씩 미워졌다 모든 게 형 때문인데 내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형이 본격적으로 싫어졌다
순전히 형의 장애 때문에 형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형을 증오하는 마음을 키운 것은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부모님의 탓이 컸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절실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형의 수발을 들라고 하시면서 강제로 나의 시간을 빼앗으셨다
고작 지 몸뚱이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병신 때문에 나는 번번이 내 자신을 억누르고 참아야했다
한 번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형이 말했다
"나가도 좋아 나는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와라 엄마가 뭐라고 하면 형이 꼭 지켜줄게 걱정 말고 다녀와"
왠지 선심을 쓰듯이 말하는 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형을 믿고 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싸대기를 맞았다
아버지는 내게 실망을 하셨다며 나를 때리셨고 어머니는 방바닥에 똥을 싸지른 형을 씻기느라 나는 신경 쓰지도 않으셨다
'지켜줘? 누가 누구를 지켜줘? 똥오줌도 못 가리는 병신주제에'
그 날 나는 아버지에게 맞은 뺨을 눈물로 쓸어내리며 잠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내 배 위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내 배위에 어떤 사람의 등짝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내 배 위에 눌러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해서 그 사람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돌아봤다 형이 웃고 있었다
"으악!!"
내 생에 가장 끔찍하고 더러운 악몽이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는 휴대용 변기가 생겼고 나는 그 변기를 닦고 처리하는 일을 도맡았다
고등학생인 내게 형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되어도 형이 내 곁에 있다면? 내가 성인이 돼서 독립을 하더라도 형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나는 형을 죽어야 할 사람으로 취급하고 막대하기 시작했다 형이 알아서 눈치껏 떠나주기를 바랬다
내가 형을 막 대하는 태도에 어머니는 형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하시지만 그것은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옭매는 사슬이었다
장애인 아들을 낳은 어머니의 죄책감이라는 끊어지지 않는 사슬 사실 어머니는 불쌍한 여자다 누구보다 형에게 얽매인 삶을 사셨으니
'신발, 망할 놈의 형 너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텐데'
그리고 나는 오늘 계획을 세웠다 그 망할 새끼를 패주기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일하러 나가신 오늘 나는 형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형은 공부를 하는지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병신이 공부해서 뭐하게?"
나는 형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반사람이랑은 말 섞기가 싫냐?"
나는 발로 치는 강도를 높였다 있는 힘껏 형의 얼굴을 발로 찼다 형의 코가 옆으로 꺾이면서 시뻘건 코피가 쏟아졌다 나는 피를 쏟으며 아파하는 형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형을 밟았다
지난 17년 동안 억눌려있던 분노를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터뜨렸다
얼마나 두드려 팼을까? 형의 얼굴은 이미 알아볼수 없을만큼 망가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는 이미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죽었나?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윗배가 아려오는 불쾌한 고통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불쾌한 기분을 씻어내 줄 시원한 바람이 필요했다 나는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까워지자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인가? 신발, 몰라 어쩌라고'
사이렌 소리 너머로 구급차에 실려 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형이었다 온몸이 터져서 알아볼 수는 없지만 형이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아이고!! 어쩌면 좋아!! 민수가 자살을 했어!! 자살을!!"
다음날 알았다
형이 유서를 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그 때 형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방안의 내 죄의 증거인 피를 전부 닦아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뛰어내린 것이었다 형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형이 꼭 지켜줄게"
윗배가 아려왔다 그 기분 나쁜 고통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어느 정도 충격에서 깨어나서 회복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내게 사진 한 장을 건네셨다
형과 내가 아기 때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형과 내가 함께 붙어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기는 두 다리는 서로 공유한 채 상체만 따로 가지고 있었다
서로 붙어있는 사진을 보고 당황한 나를 보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뒤에 있는 게 진수 너고 네 윗배에 붙어 있는 게 네 형 민수야 서로가 꼭 붙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불쌍한지 사진봐,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지? 엄마는 정말 고민 많이 했어 둘 다 살리려면 하나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
울먹이면서 말을 하시더니 끝내 어머니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셨다 윗배가 아려왔다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꼽추인 남녀가 서로를 무척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가졌다.
그 부부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혹시나 부모의 유전을 받아 꼽추가 되지는 않을지,
그러나 부부의 걱정과는 달리 무척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착한 아이도 엄마를
잘 따르며 건강하게 자랐다.
이제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된 엄마는 다시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엄마를 외면할까봐,
그런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한번도 학교에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도시락을 놓고 학교를 가게되었다.
엄마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락을 학교로 갖다주는게 나은지,
'도시락을 갖다주면 아이가 무척 창피해할텐데...'
그렇다고 갖다주지 않으면 점심을 굶어야했다.
이런저런 고민끝에 학교에 살짝 갖다주기로 했다.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볼까봐 몰래 수업시간 중에 학교로 찾아가게 됬다.
난생 처음보는 아이의 학교,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 엄마였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웬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어느 반의 체육시간이었나 보다.
그런데 저쪽 나무 밑에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반 체육시간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순간 당황했고, 학교를 급히 빠져나가려했다.
아이가 볼까봐, 친구들이 볼까봐,
서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힘든 몸을 이끈 채 조심조심 뛰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이가 엄마를 발견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놀라 더욱 빠른 발걸음으로 교문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저쪽 나무밑에서 아이가 교문 쪽을 바라보며
손으로 입을 모으로 소리쳤다.
"엄마!!!"
꼽추인 엄마의 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모 라디오 프로에서 채택된 사연이라고 합니다
어느 한 락카페에서 술취한 남자가
"모든 여자분들 잘들으세요 남자친구 있으신 여자분들! 지금 옆에 계신 남자친구분들께 잘하세요. 옆에있는 그 남자친구분들은 세상에서 자기 여자친구가 제일 이뻐보일거예요. 그렇죠?"
사람들은 미친사람 쳐다보듯 쳐다보는데 한 남자가 대답했다
"네"
"여자분들중 남자친구없으신 분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분 꼭 잡으셔야해요. 기다리는거 얼마나 힘든건지 아세요?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고통이니까 또 자신이 사랑하는사람 자신의 진심을 말로 다표현하세요. 그럼 남자분들도 여러분의 마음을 알아줄거예요. 그럼 모두들 행복한 사랑하세요."
그때 어떤 한 여자가 물었다
"저 근데 누구세요?"
"저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23년간 한 여자만 기다리다가
방금 그 여자 결혼식장에 갔다 온 사람입니다."
거의 매일같이 파티와 연회를 여는 호화로운집이 한곳 있었어.
그집엔 이쁘장한 딸도 한명 있었지.
그날도 다른날과 다름없이 저녁연회 준비에 분주했는데
전화벨이 울렸어.
별다른 생각없이 수화기를 집어든 그집의 딸은
수화기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
" 나 제대했어."
너무 반가운 말이었지. 그집의 딸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답 했어.
" 정말!잘됐다 !그럼 당장와. 오늘 저녁연회에 같이 참석하는거야."
" 그런데....."
'그런데' 라는 그의 말에 여자는 당황 했어. 바로 ' 알았어.' 라고 말하고 달려올줄 알았거든
" 어? "
" 내 동료도 데려가도 되겠어? "
" 동료? 몇명이든 데려와."
" 그게 한명인데.."
" 한명?그럼 오시라고 해."
" 얼굴이 온통 화상투성이야...다리도 한쪽이 절단됬고..."
" 그럼 와서 푹 쉬다 가라고 해."
여자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수가 없었지.
여자의 집에는 방이 많았거든.
그 사람이 온다면 몇일간 머무를수 있을테니까
" 후- 그게 아니고 난 그 친구를 평생 우리집에서 살게하자는 말이야."
여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 했지.
아무리 남편의 친구라고 해도 그런사람을 데려다 같이 살게되면 친구들이 숙덕거릴게 분명하고
동내사람들과의 저녁연회도 열지 못하게 될테니까
" 안되.그 친구의 딱한 사정은 알겠지만
그래도 그런사람을 데려오면 동내사람들이 숙덕댈꺼야.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창피해 하실꺼구."
".......창피해? "
" 응.솔직히 보기 흉하잖아.그런얼굴.. 같이 밥먹을수나 있겠어? "
" 그렇구나..."
" 그러니까 그냥 혼자와.저녁연회가 곧 시작할꺼같으니까."
"......."
" 여보세요? "
"......."
" 여보세요? "
여자가 말을 끝내기 전에 수화기를 놓아버렸는지 그사람은 더이상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 친구를 못데려오게한게 그렇게 속상 한건가.. 아무튼 그사람은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러곤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저녁연회를 즐기러 연회장으로 향 했고 두 세시간가량 진행된 연회에 피곤해진 여자는
먼저 가겠다고 하고는 집으로 향 했어.
- 덜크덕
" 휴- 그나저나 이사람은 왜이렇게 늦지.."
그러자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여자는 ' 당연히 그사람이겠지..' 라고 생각 하고는 수화기를 들었어.
" 여보세요? "
" 여기 경찰서인데요."
" 네? "
불길한 예감이든 그녀는 황급히 대답을 했어.
" 여기에 시신이 한구 있는데요 ."
"..........."
" 얼굴에 화상이 심하게 있고 다리 한쪽이
절단되어있는데..자살을 한듯 싶네요 ."
".........."
" 그런데 조사해본 결과 그집에 사위인것 같아서요 ."
"........."
'.......창피해? '
' 응. 솔직히 보기 흉하잖아 그런얼굴..같이 밥먹을수나 있겠어? '
우리누나는 심장병이다 달리는것은 물론, 걷는것도 굉장히 힘들어한다.
2001년, 12월, 우리누나는 3개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3개월 밖에 이세상에서 살수 없다는걸 가족들이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누나는 어렴풋이 눈치챈듯 하였고, 2001년 1월달 밤, 아빠, 나 친구를 가져보고 싶어요," 그리하여 컴퓨터를 샀다 달리기는 커녕 밖으로 나갈수조차 없던 몸이기 때문에,, 누나는 인터넷이 그 유일한 즐거움이였다. 그렇게 누나는 인터넷에서 맨살클럽에 가입을 했지만, 학교에 다닌건 옛날이였기 때문에, 친구들의 ID를 알턱이 만무했고 여전히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누나는 다시 컴퓨터를 멀리했고 그래서 새 컴퓨터의 덕을본건 나였다. 그당시 PC 방에서 디아블로를 즐기고, 집에서는 디아블로 모까페에서 놀았다. 누나는 디아블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내가 까페에 들어갔을때에는 항상 내 옆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누나는 결국 디아블로 씨디를 샀고, 이제 하루종일 디아블로를 즐기게 되었다. 누나는 까페에 가입을했다. 누나의 닉넴은, 뛰어....... 였다. '작명센스하고는' 난 이렇게 놀리고, 그날밤 이불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누나는 까페에 채팅방에서 처음 '라면' 이라는 닉넴을 가진 친구를 사귀었고 그 친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같이 게임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어느날, 누나가 나를 불렀다 '야 너 스타할줄 알지? ' 알고 보니 그 까페에서 사귄 사람들이 전부 디아를 안하고 스타를 하러갔는데, 그 잠시라도 떨어져있는 시간이 누나는 몇년만에 처음 사귄 '친구'라는 존재와의 소외라는. 불안함을 안겨줬었나보다. 결국 나는 누나대신 스타를 했고 보통 애들보다 약간 잘하던 내 스타실력 때문에 우리누나는 남자 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누나는 그후 스타를 연습했고 결국..... 스타 1000승 300패라는 여자로썬 보기 드문, 스타실력을 갖게 되었다 누나는 의사의 예상을 뛰어넘어. 2년 가까이 살았다. 친구를 갖게된 행복이 병의 진행을 방지시켜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처음으로 친구를 가져서 행복을 느끼는 누나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이였을까.. 디아블로 여자가 하기엔 흔치 않은 게임 실제로 약 15만여명이 회원으로 있던 그 까페에서 찾을 수 있었던 여자는 약 3명정도였다. 한명은 아줌마 두명은 대학생. 그리고 우리누나..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나이 어린 우리누나를 좋아 했다. 그리고.. 상처가 되는 질문들도 너무 많이했다. "학교는 어디다녀? " 누나는 이 질문을 받고. 한참동안 멍하니 있었다.
어느날. 누나가 나에게 물었다. ' 야, 너는 너보다 나이 많은 여자랑 노는게 껄끄럽냐? ' ' 글쎄. 아무래도 동갑이 좋겠지..' 왜그런가 했더니, 거기서 처음 사귄 친구가 누나보다 한살 어렸다. 그리고 누나는 혹시 그 친구가 누나를 껄끄러워 할까봐 나이를 속였다. 그리고 친구가 되었다.. ' 나.. 얘랑 친구하기로 했어.. ^ ^ ' ' 얘는 누나보다 한살 어린데..? ' ' 그렇긴 한데... ' ' 누나........ ' ' 응? ' '누나도 영계가 좋구나 -_-; ' 그날이후 누나는 밥도 많이 먹고. 비록 별로 안되는 거리이긴 하지만.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혼자서 걸을려고 노력했다. 그냥 누나는 이 행복함을 즐겼던게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행복함을 느꼈던건 나였다 여자라고 들어오는 무지막지한 아이템들 누나는 자기는 게임에는 많은 관심이 없다면서 아템을 받고. 게임을 할때에는, 나에게 게임을 하라고 하고 내 옆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하지만 누나는. 누나가 옆에서 보지 않을때에는 누나 ID 로 게임을 못하게했다. 난 항상 게임을 하고 싶은데. 누나는 누나가 없을때에는 게임을 하지 못하게했다. 심지어 내가 pc 방에가서 게임을 하다 온다고 비밀번호좀 알려달라고 해도 절대 안알려 줬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 야.. 누나가 어떤키를 눌렀는지 알수있는 방법 없냐.? ' ... 지금 생각하면 많이 후회된다.. 그래서, 그당시 많이 유행했던 디아블로 해킹프로그램을 우리집에 설치하고 누나가 게임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누나가 게임을 했고.... 나는 비번을 알아냈지만 게임을 할수 없었다.
누나의 비번은
TKFRHTLVEK 였다
/ 살고싶다→TKFRHTLVEK.
살고싶다를 영어로 써보세요.
서울에 있는 한 하숙집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한 대학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경찰은 타살인지 자살인지 밝히기 위해
방안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학생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경찰관은 죽음의 단서를 찾기 위해
그 일기장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일기장엔
바로 옆방의 어떤 여자를
짝사랑하는 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써 내려간 일기장에는
온통 그 여잘 사랑하면서 혼자 괴로워하며
아파하는 글로 메어져 있었습니다
자살하기 바로 전 날의 일기를 보았습니다
x월 x일 월요일 맑음
오늘도 그녀가 날 보며 웃음을 보였다
난 한마디도 말 못하고 그녈 피했다
너무도 사랑스런 그녀의 웃음을 피하기만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
그녈 생각하며 깡소주 비울 때 쯤
그녀의 방에서 들리는 침대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신음소리..
아닐거야 이건 환청일거야
날 보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녀가 그럴 리 없다
하지만 분명히 들리는 그녀의 신음소리..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세상이 싫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할 것 같은 한 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녀가 애써 그 소릴 외면하려해도
그녀의 추잡한 신음소리는
더욱 날 괴롭게 만든다.. 더럽다..
삶이 싫다.. 그녀가 더 이상 싫다
일기는 여기까지였다
경찰관은 그 여자가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옆방의 여잘 보기 위해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조용히 문을 두들겨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그 뒤론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몰래 그녀의 방을 수색하기위해
조용히 그녀의 방을 들어선 순간
침대 위에 싸늘히 식어있는 그녀의 시체를 보았다
한 손에 독약을 손에 쥔 채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던 것이였다
그리고 바로 책상 위에는 종이가 한장 남겨져 있었다
그 종이엔 대학생이 자살하기 바로 전 날 쓰여진 것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그는
오늘도 내 웃음을 외면하고 말았다
나 같은 여자는 사랑을 할 자격조차 없는걸까
아무리 내가 좋아한들 내겐 아무런 눈길조차
보여주지 않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해도 되는걸까
언제나 내게 싸늘한 뒷 모습만 보여주는거구나
한 남자에게조차 이렇게 외면당하는 내가 싫다
이 종이를 읽은 경찰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그 대학생이 들은 그녀의 신음소리는
그가 생각하는 다른 남자와는 추잡한 행위가 아닌
그 대학생을 너무나 사모한 나머지
그녀가 독약을 먹고 고통에 시달리며
이 세상을 떠나가는 마지막 몸부림이였던 것이다
2001년 12월 24일
같은 사람 일지라도 생각하는 건
하늘에서 땅 차이이다
서로가 마음을 열어 말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극만을 남겨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다가가 진실을 말했더라면
아마 저 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장난기가 아주 많았어
그래서 늘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고
누구나 그와 어울려 다니길 좋아했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은 친구들과
같은과 여학생들에게 매력도 만점이었지
그런데 딱 한사람
그것은 아주 못마땅에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의 연인이었어
처음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의 활달한 성격에 반했지만
그럴수록 유머 넘치는 그의 모습과
늘 그의 주변에서 맴도는 여자들때문에 불안 했던거야
그녀의 생일었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생일을 축복해 주기 위해서 모였고
생일파티는 점점 더 분위기가 고조 되었지
그러다 파티의 정점으로 남자가 그녀에게
생일선물을 주는 순서가 되었는데 모두들 기대가 많았어
디자이너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는 남자였기에
어떤 선물일까 궁금했지
근데 선물은
온통 난도질 된 원피스 였어
남자의 농담과 장난기 어린 표정에 다들 웃고 말았지만
그날 이후로 남자는 그녀와 연락을 취할 수 없었지.
너무나 화가 났던 그녀는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한거야
백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사과의 편지를 썼고
백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집앞에 장미곷을 놓고 기다리다 돌아가곤했어
그렇게
많은 날을 기다림속에 괴로워하고서야
겨우 용서를 받을 수 있었지
‘한번만 더 장난을 치면 우리 사이는 끝이예요...’
그날 이후론..
아무도..
그의 장난치는 모습을 볼수 없었고
아무도 그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
그러다 시간이 흘러 둘은 결혼 약속을했고
드디어 결혼식 하루 전이였어
남자는 심혈을 기울여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직접 만들었고
그녀는 무척 큰 기대를 갖고 있었지
결혼식 하루전 그녀의 아파트에서
남자는 모든 정열을 다 쏟아서 만든 드레스를 그녀에게 보여줬어
기대에 가득차 상자를 열어보던 그녀는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리며 말했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어요...”
“...안녕...”
남자에게 단 한마디 말할 기회도 주지 않은채
그녀는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지
그 옷은...
하얀색 원피스로 된 미니스커트였어
그녀는 긴 드레스를 만들어달라고 말했었거든
그 집에서 며칠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러헥 둘의 사랑은 끝을 맺고 말았어
세월이 흘러서 그녀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남들이 다 그렇듯 딸을 낳고
아주 평범한 아줌마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지
헤어진지 10년째 되는 그날은
초등학교 1학년인 그녀의 따링 학교의 연극에서
공주역을 맡아 돌아왔고
딱히 입힐 옷이 없어서 고민을 하던중이었어
옷장을 구석구석 뒤지던 그녀는
옜날 그녀가 받았던 그 드레스를 꺼내게 되었고
체구가 비교적 튼 딸이지만 아직 어른체형이 아니라
넉넉하게 내려오겠다 싶어서
아무생각없이 입혔지...
어린 딸애는 하얀색 드레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옷을 입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지...
그모습을 본...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맺히기 시작했어...
아이가 한바퀴 돌때마다..
미니스커트가 한단씩 밑으로 내려오는거야
끝내 펼쳐지고만 화려한 웨딩드레스가
남자는 그녀가 그 드레스를 입고
기뻐하며 빙글빙글 돌 거란 생각을 하며
그 드레스를 단들었던 거야...
이 얘기는 스웨덴에서 실제루 있었던 일이래.
평범한 하루가 시작 되는 어느날 아침 이었어.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지.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싣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어.
어느덧 버스는 횡단보도에 이르렀는데,
버스기사는 그제서야 브레이크가 고장 이라는것을 알게 된거야..
이미 때는 늦은거지..
운전기사는 핸들을 잡고 절망적인 기분으로 고민을 했어.
저 작은 아이를 피해 핸들을 꺾는다면 이 버스안의 사람들은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 그러나..
저 아이의 희생으로 이 사람들을 살릴수만 있다면..
버스 운전기사는 곧바로 아이를 향해 차를 몰았고
그 버스에 부딪힌 아이는 그자리에서 죽어버렸어..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운전기사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며 몰아세웠지..
승객들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작자라고 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어..
버스 운전기사는 조용히 버스에서 내려
죽은 아이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 .... 미안하다.. 아들아... "
차에 치인 아이는... 버스운전기사의 아들이였어.......
" 백설공주 이야기 읽어 본적 있어? "
" 응 "
" 그중에서 누가 백설공주를 제일 많이 사랑한 것 같아? 왕자일까?나는 일곱난쟁이 중에 막내가 공주를 더 사랑한 것 같은데...너는 누구라고 생각해? "
" 사냥꾼 "
" 응? 무슨 사냥꾼? "
" 백설공주를 숲에서 도망치게 한 사냥꾼 말야... 백설공주의 심장 대신 돼지심장을 가지고 여왕에게 갔었던... "
" 그사람이 왜? "
" 그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백설공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남자거든. "
우리 가족은 나와 아빠뿐입니다
엄마는 아빠가 택시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돼시자
몇달후 집을 나가셨어요
바로 그 교통사고 때 우리 아빠는 다리를 잃고 말았어요
그래서 우리 아빠는 오른쪽다리가 무릎까지 밖에 없어요
다리병신이 돼어버린거죠
수술을 2번이나 해보았지만
아빠의 다리는 이미 고칠 수 없는 다리가 돼었나봐요
난 한쪽다리가 반밖에 없는 아빠가 창피했어요
잘 걷지도 못하고 매일 목발을 집고 쩔뚝이고
가만히 오래 서있지도 못하고
그래서 아빠랑 외출하기도 싫어했어요
집에 있을때는 방문을 잠그고 방안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만 하고
나혼자 라면이나 끓여먹고
아빠가 심부름시키면 못들은척 방으로 들어가버렸어요
한쪽다리가 반밖에 없는 다리병신인 아빠보다는
차라리 아빠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이 많았어요
괜히 나한테 심부름만 시키고
아빠가 나를 도와주는게 아니라
내가 아빠를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였어요
아빠가밥좀 차려달라고 하면
맨날 나보고 시킨다고 혼자서 중얼중얼 욕도 하고 매일 투덜투덜
물컵도 식타위에 탁탁 놓아서 물을 쏟기도 하고
리모콘 같은거 집어달라고 하시면
왜 나만시키냐고 소리지르면서 리모콘 집어던지고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서 심술부리구요
아빠가 평소에 저한테 미안하셨는지
일부러2단지 상가까지 가셔서
머리핀하고 머리고무줄 사오셨는데
저는 촌스럽다고 안한다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는데
다음날 학교같다가 와보니까
아빠가 쓰레기통에서 주워서 제 책상위에 올려놨더라구요
저는 짜증을 내면서 그 머리핀을 쓰지도 않고
책상 밑 잡동사니에 던져버렸어요
그리고 몇달전에는요
아빠가 양말이 다 구멍이 났다고 저보고
좀 기워달라고 하셨어요 양말을 기울려면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데
허리를 구부리면 다리를 필수 없기 때문에
허리를 못구부리시거든요
아빠는 우리착한딸 가은이가 양말좀 기워달라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부탁하셨는데
저는 제가 아빠 하녀냐고 그러면서 그양말 받아서
휴지통에 집어던지고
그리고는 혼자 방에 들어가 버리고
아빠는 그래도 빙그레 웃으시면서
우리 가은이 그동안 힘들었나보구나 이러시면서
휴지통에서양말주워다가 구멍난거 그대로 신으시고
그다음날 제화 를 푸시려고 제가 좋아하는 통닭사가지고 왔는데
전 일부러 없는척 하고 일부러 문걸어 잠그고
방안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었어요
아빠는 어디갔나보구나 나중에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시고
저기다리다가 잠드시고
바보같이 옆집아줌마한테 얘기하면 될것을
경비아저씨한테 문열어달라고 하면 될것을
저는 다음날 모르는척 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학교에 갔다와보니
아빠는 어디갔는지 없으시고
식탁위에 싸늘하게 식은 통닭이 올려져 있더라구요
저는 통닭이 식었다고 화를내면서 통닭을먹었어요
근데 계속 먹다보니까 쌀쌀한 날씨에 얇은 티셔츠 하나입으시고서
배고프실텐데 나준다고 통닭도 안드시고
다리도 구부리지 못해서 앉아있으시지도 못하시고
계속 서있다가 누웠다가
나를 기다리시던 아빠를 생각하니깐 그냥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밥하나 혼자 못차려 먹어서 매일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시키시는
그런 무능력한 아빠인데 한쪽 다리도 없어서 잘걷지도 못하는 그런
장애인 아빠인데 그런무능하고 장애인아빠인데도
이상하게 막 눈물이 나구 미안한 생각이 들구 통닭도 먹기 싫구
저는 통닭을 쿠킹호일에 그대로 다시 싸놓고는
아빠드시라구 포크하고 물컵도 차려놓았어요
그리고는 제방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아빠가 안오시는거에요
저는 게속 잠도 안자고 기다리다가 갑자기 전화 한통이 왔어요
병원에서 전화가 왔더라구요
그사람은 간호사 같았는데
다짜고짜 이명식씨를 아냐고 물어보는거에요
전 우리아빠니까 당연히 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요 아빠가요
선물꾸러미 같은 비슷한걸 사가지구서
횡단보도를 목발집고 쩔뚝쩔뚝 걸으시다가
차에
부딪혀서 그만....
전 어느병원인지 들은다음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전 무슨말 이 안나왔어요
돈도 못벌고 뭣하나 할줄모르는 그런다리병신인 우리아빠
정말 너무너무 싫어서 없었으면 하는 아빠인데
그런아빠가 정말 없어진거에여
저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을 한참 부벼대다가
식탁위에 아빠먹으라고 차려놓은 포크하고
물컵하고 싸늘하게 식어있는 통닭을 보았어요
아빠먹으라고 맛있게 차려놨는데
아빠가 와서 맛있게 먹으라고 저렇게 차려놨는데
저렇게 준비해놨는데
저는 눈물이 울컥나왔어요
그눈물은 몇시간이고 멈추지 않았어요
전화기 옆에 기대어 놓은 아빠목발
그리고 책상옆에 놓여있는 아빠의 돋보기 안경
평소에는 그렇게도 싫고 던져버리고 싶은게
모두다
너무너무 그립게 느껴졌어요
저는 아빠목발을 붙잡고 또 한참을 울어댔어요
전다음날 퉁퉁부운 눈을뜨고
병원으로 찾아갔어요
한번도 하지않고 내팽겨쳐둔
아빠가 선물한 그머리끈과 머리핀을 묶고서
그리고 병원에가자
아빠는 영안실에 있어서 볼수가 없대요
마지막인줄 알았으면
더자세히 더가까이 가서 보아두는 거였는데
저는 굳게 닫힌 영안실 앞 의자에 앉아서
또다시 한참을 울었어요
아빠가 내가 이머리핀 꽂은거 보면
우리 가은이 이쁘다고
우리딸 이쁘다고
칭찬해 주셨을텐데 이렇게 예쁜딸모습
보지도 못하시고 그냥가시다니
저는 집에와서 엉엉울면서
서랍에서 구멍난 아빠양말을꺼내서
하나도 안빼놓고 다 기워놨어요
그리고 평소에 아빠가 해달라고 했던거
아빠 돋보기 안경 알도 새로 갈아끼워드리고
웅동화 끈도 곱게 예쁘게 묶어드리고요
목발도 물수건로 깨끗히 닦고
교통사고 나시고
엄마한테 버림받으시고
딸한테 구박 받으시고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가신 우리아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되어서
바보같이 아빠한테 효도 한번 못해드리고
매일 심술만 부리고 투덜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아빠한테 좋은모습 하나 안보이고
그냥 그렇게 아빠를 보내버린
이딸을 용서 하지 마세요
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이게뭐야!!"
"바쁘잖아.엄마가 미안해"
"이런 싸구려를 어떻게 입고가!!아.난몰라아!!"
"다음에 비싸고 더 예쁜거 사줄께.
오늘만 입고가.응..?우리딸 착하지.??"
"쪽팔리게 어떻게입어!!엄마나 입어!!"
"은강아!!"
쾅........
오늘도 밥한숟가락 떠먹여 주시려는 엄마의 힘든 표정을 모른척하고
꽃무늬 보라색 반팔티를 구석에 던져버린뒤 집을 나섰습니다.
촌스럽게 누가입어.
꽃무늬가 뭐야..꽃무늬가.
더군다나 날 화나고 창피하게 만들었던건 오천원이라는 가격.
엄만 딸을 몰라.
요즘에 누가 시장바닥에서 사온걸 입는다고..
"짜증나.내일이 소풍인데 어쩌겠다는 거야..."
온갖 멋은 멋대로 부리고 유행은 유행대로 따라다니는 실속 없고
욕심 많았던 나였기에 누구에게 뒷쳐지는것은 죽어도
싫은 일이였습니다.
유행하는건 무조건 내 차지.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것도 내가 독차지.
예뻐보이는것도 역시 나.
................
그렇게 그땐 엄마의 손때 묻은 만원짜리 두장이 그저 돈일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저도 참 후회스럽습니다.
#다음 날 .
학교까지 찾아와 내 손에 꾸깃 쥐어준 만원짜리 두장을 들고 친구들과
시내에 나왔습니다.
예쁜옷들이 내 눈길을 멈추게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때문에
난 얇은 티셔츠 한장에 딸랑 베이지색 반바지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장을 지우던 손길도 멈추고 날 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
"우리딸.그래 이제 니 맘에 드니..?"
"겨우 이만원에 뭐 예쁜걸 산다고 이 날리야.나 내일 김밥말고
볶음밥 해줘.친구들끼리 장기자랑 하기루 했으니까
사탕 한봉지두 사다주구"
내 뾰루퉁한 표정과 톡톡 쏘는듯한 말투에도 엄마는 그저 싱글벙글
하며 방으로 들어가 작은 쇼핑백을 내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이게 뭔데..?"
"이뻐보이길래 하나 샀어.그집 아가씨가 요즘 애들한테 유행이라길래.."
유행......??
유행이라는 말에 쇼핑백에서 옷을 끄집어 내 이리저리 둘러보는 나.
하지만......금방 인상을 찌푸려 버리는 나였습니다.
"검은색 칙칙하게 누가입는데!!아.짜증나!!이거 살돈 있으면
그냥 나한테 줘!!내가 사다입게!!그리고 이건 또 얼마나 줬어?!
만원..??..아니.또 오천원 하나..?!"
"이은강!!"
"안입어!!당장 가서 바꿔와!!"
"..너..!!"
......쾅..!!
이번에도 심술 잔뜩난 표정을 하고는 밖으로 옷을 내다 던져버리곤
엄마까지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땐 왜 그옷의 가격표가 3만원이 훌쩍 넘는다는걸
미쳐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그날저녁은 내 고집에 못이겨 밥조차 먹지 않았습니다.
.................
"정은이네 엄마는 친구처럼 유행도 잘 따라간다더니..
우리 엄만 뭐야.칙칙한것만 좋아하고..옷도 촌스러운것만 좋아 해"
다음날새벽.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달그닥 거리는 소리에 잠이깬 나는 부엌으로
건너갔습니다.
아니......이게 뭐야..
"김밥....나 김밥 안먹는다고 했잖아!!"
"어제 너무 갑작스럽게 예기하는 바람에..미리 사놓은걸 어떡해.
다음엔 엄마가...."
"됐어!!뭐야.그게!!맛도 없으면서!!친구들한테 자랑 다해놨는데!!
아.진짜 엄마 왜그래!!"
"........."
내 기세에 못이겨 금방 주눅이 들어버린 우리 엄마.
생선가게를 해 매일 늦어 내 사생활에 신경을 써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던
엄마였는데......그리고 결국 난 특별히 오뎅까지 들어간
김밥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나왔버렸습니다.
"은강아!!도시락 놓고 갔어!!"
"안먹어!!"
"은강아!!"
엄마가 목이 터져라 내 이름을 불러대도 난 그저 두눈 찔끔 감고
모른척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잠옷차림으로 나와 내 손에 도시락통을 쥐어주는 엄마.
"쪽팔리게 그게 뭐야!!누가 보면 어쩌려구!!"
"그냥 가져가서 먹어.응..?!혼자만 안가져 가면 누가 너 엄마
없는줄 알아.기지배야..먼길 가는데 배도 고플꺼 아니야"
"됐다구!!아 진짜.비켜!!"
바닥으로 쏟아져 버린 김밥들..
참기름에 깨소금 까지 뿌려 정성스럽게 만든 도시락이였는데..
미안한 마음도 잠시..
난 곧 엄마의 잠옷차림에 얼굴이 달아올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 후로도 학교.버스 안.소풍지에 도착해서까지 쉴세없이 울려대는
엄마의 전화에 난 핸드폰 밧데리 까지 빼놓으며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
드디어 점심 시간.
각자 모양도 예쁘고 오목조목하게 만든 김밥과 초밥을 꺼내놓으며
자랑을 하는 사이 난 텅빈 가방을 들여다 보며 물만 마셔댔습니다.
"은강이 넌 도시락 안싸왔어..?"
"아.엄마가..좀 바빠서.."
"그래..?..그럼 우리꺼 같이 먹자.나 엄마가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많이 싸줬는데..^ㅇ^.."
"..어...그래.."
가져올껄 그랬나......
후회되는 마음에 아까 아침에 바닥으로 쏟아져버린 김밥들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지만 볶음밥을 싸주지 않은건 엄마 잘못인걸..
...............................................
........................
# 집에 가는 길.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정류장 앞에 서서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까부터 쉴세없이 울리는 전화에 난 결국 짜증을 내며
수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습니다.
"아.뭐!!"
-혹시 김숙자씨 자녀 되시는분 맞습니까..?
"..네....??"
김숙자가 우리 엄만데....
왠 낮선 남자의 목소리에 난 조금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누구..."
-여기 현대병원인데요.
병원이라는 말에 또한번 벌컥 내려앉은 심장.
"병원이요?!!!우리 엄마 어디 아파요?!!"
-침착하시고..빨리 오셔서 마지막 모습을 보시는게..
마지막 모습..........
"현대병원이요..!?!현대 병원 맞죠..!?!!" ...................................
오늘 내리는 이 비가 당신이 내게 쏟으신 사랑같아서 당신보고싶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날 감사히 여기신 당신달빛우는 밤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싶습니다 엄마
어머니 사랑했습니다
작년 겨울까지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 때문에 스스로 '헤어졌다'는 걸 직감하고 울기도 참 많이 울어서 전화번호도 지워버렸습니다.
하지만 문자 하나만은 너무 아쉬워서 지우지를 못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군대에 가는 중학교 동창 녀석 송별회랍시고 모인 술자리에서 제가 술 마시던걸 탐탁치 않아했던 그 사람이 생각나 괜히 우울해졌습니다.
"그렇게 못 잊겠으면 술 핑계 대고 전화 한 번 해봐."
라는 친구의 말에 저장되어있던 문자 메시지 함을 열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잠깐의 신호 후 전화를 받은 그 사람. 여전한 목소리에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져 전화를 끊었는데, 한참 후에 그 사람의 번호로 <보고 싶다> 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날 잊지 않았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술이 확 깼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거는 사이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없는 번호라니.
의아한 마음에 몇 번씩 다시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고.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전화번호를 바꿨다고 들은 것 같아 오싹해져야 했겠지만,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게 서러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며칠 뒤. 우연히 그 사람과 자주 어울렸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oo가 수요일 새벽에 교통사고로 죽은 소식 들었어요?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그 녀석이 **씨 많이 보고 싶어 해서……."
수요일 새벽. 그 사람에게서 <보고 싶다>라는 문자가 온 날이었습니다.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2").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0").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
어느날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급히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피가 모자라 생명이 위태해지게 되었고
여기 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그 혈액형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식구들중에서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검사를 했는데
그 아이의 동생이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워낙 시간이 촉박한 지라 어린 아이지만
급한대로 혈액을 얻고자 했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얘야, 지금 형이 몹시 아프단다. 어쩌면 하늘나라로 갈지도 모른단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너가 너의 피를 형에게 좀 나눠 주어야겠구나.
좀 아프겠지만 형이 다시 살 수 있단다. 어떻게 하겠니?"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혈액을 뽑는 주사 바늘을 꼽고
피가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님을 쳐다봤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달랬고
이윽고 주사바늘을 빼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또다시 물어봤습니다.
"얘야, 다 끝났다. 근데 왜 눈을 감고 있니?"
아이는 말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그 아이는 헌혈을 해본적이 없기에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형에게 주고
자기는 곧 죽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 입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얘야, 그럼 넌 니가 죽는 줄로 알면서 헌혈을 왜 한다고 했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전 형이 좋거든요"
너 입맛 없다고 아침밥 먹기 싫다 투정부릴때,
엄마는 너 아침 따뜻한 밥 먹이려 새벽 5시에 일어나 쌀을 씻었고.
너 다리 아프다고 택시탈 때,
엄마는 버스비 900원이 아까워
큰 짐 머리에 이고 한 시간을 걸었단다.
너 술깬다고 노래방에서 괴성지를 때,
엄마는 늦게오는 널기다리다 어두운 골목길을 몇번씩두리번거렸고.
너 외출한다고 거울 볼때,
엄마는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늘어난 주름살에 쓴 웃음 지었단다.
너 음식 먹기 싫어 남 줄 때,
엄마는 과자 하나라도 너 주려고 살며시 가방안에 집어 넣었고.
너 청바지 입고 맵시 뽑낼 때,
엄마는 15년 된 정장 한벌을 입고 오랜만의 외출을 했단다.
너 나이트에서 즐거워 춤출 때,
엄마는 관절염에욱씬거리는 무릎과 저려오는손발에 몸을 뒤척였고.
너 유행가 들으며 거리 다닐때,
엄마는 우연히 들려오던 내 젊은날의 음악에 슬쩍 눈가를 적셨단다.
너 레스토랑에서 음식 남길때.
엄마는 가족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모아 쓱쓱 밥 비벼 먹었고,
너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떨 때,
엄마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은 너 그리워 방 앞을 서성였단다.
너 덥다고 에어콘 바람 쐴 때,
엄마는 너 더울까 시원한 화채 만들어주려
더운 땡볕을 지나 장을 봐왔고.
너 정치 경제 이야기 할 때,
엄마는아무것도 모른다며 날무시하는 너에게 조금은 속이상했단다.
너 친구랑 벚꽃 놀이 갈 때,
엄마는 TV에 나오는 벚꽃을 보며 행복해 했고.
너 사랑을 알았을 때,
엄마는 네가 나를 떠난 것만 같아 약간은서운했단다.
너 사랑을 품에 안을 때,
엄마는 네가 잘 자라주어서 너무나 행복했고.
너 사랑을 맹세할 때,
엄마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이 너에게 내려주기를 기원했단다.
그리고 너 널 닮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고맙다고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 모든 서운했던
기억들이 다 사라지는 것만 같았단다.
그래서 엄마는 행복하단다.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1").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
이 이야기는 어느 의사가 겪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 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Electrocardiogram,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는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 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다른 한자를 보고 잠시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어 지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둥 마는둥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웬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웬지 그의 생각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거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웬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역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듯 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한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내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게는 그녀가 그의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중이었다.
놀라움과 마음 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세지라고..
그것은 바로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믈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꼐 어떠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우리에게 가장 없어서는 안될
영혼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서는 후배들에게
나는 요즘도 이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제가 요번주말에 놀러가서 몇일 못와서 한번에 왕창싸그리올려요!!
갔다와서는 무서운만화 모음 왕창 올려요~
부모님한테 사랑한단말 한말씀 해주세요!
너무 가까이 보지마라
어지럽히지 마라
군것질 하지 마라
나쁜친구 사귀지 마라
밤 늦게 다니지 마라
끼니 거르지 마라
울지 마라
그리고
나는 걱정 마라
올해도 당신의 잔소리가
저희를 키웠습니다...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1").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
☆*감동적이야기모음2*★
난 지금도 시장길을 지날때면 시장구석진 자리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곤 한다.
예전에는 이 시장길을 지나는 것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이곳을 지날 여유도 없다.
어쩌다 가끔씩 들려보는 이곳 시장터.
난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한분의 고귀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엄마 시장갔다 올테니, 밥 꼭 챙겨먹고 학교가거라"
난 장사를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척 했다.
이 지겨운 가난. 항상 난 이 가난을 증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고 말리라는 다짐을 굳히곤 했다.
내가 학교가는길 시장 저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어머니가 나를 발견할까봐 얼른 도망친다.
우리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다고 한다.
일하는 도중 철근에 깔리신 어머니를 구하시려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일을 가시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나물을 캐서 팔곤 하셨다.
난 항상 들판에 절뚝거리시며 나가시는 어머니가 싫었고 밤새 다듬으시는 모습도
싫었다. 더더군다나 시장 한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
비슷하게 장사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퉁퉁부은 다리한쪽을 주무르시며 나물을 다듬고 계신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기쁜 낮으로 3,000원을 주신다.
난 그돈을 보자 화가 치민다.
"난 거지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돈 필요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버린다. 다음날 아침 난 어머니가 시장 간 틈을 타 집에가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 학교길 약수터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물로 배를
채운다.
난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했다. 하지만 그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않았다. 그날 4교시가 끝날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복도를 보니 어머니가 절뚝거리시며 교실로 들어선다.
선생님 드리려고 장사하려고 다듬은 나물을 한봉다리 들고서....
어머니는 내가 어제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셔서 학교에 오신거란다.
선생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이 한마디씩한다.
"야! 이민석 너네 엄마 병신었냐?"
그놈은 그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다.
현우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따라한다. 무엇이 우수운지 반 아이들은 웃어댄다.
난 화가 나서 그놈을 정신없이 두들겨 줬다. 그리고서는 교실을 나와 버렸다.
저녁무렵 집에 가니 집앞에 잘차려 입은 여자와 현우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거야 뭐야. 자식
교육좀 잘시켜, 어디감히 우리집 귀한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시종일관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도 어머니는 아무말씀 없으시다. 난 어머니에게 한마디한다.
"다시는 학교에 오지마 알았어? 챙피해서 죽는줄 알았단 말이야."
"그래 미안하다 난 민석이가 걱정이 되어서......"
"난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
난 해서는 안될말을 해버렸다.
슬픔을 보이시는 어머니를 못본척하며 자는 척 했다.
"난 꼭 성공할꺼야."
밤새 이렇게 외쳤다.
다음날 아침 수업료라며 엄마가 돈을 쥐어 주신다.
얼마나 가지고 계셨는지 너무도 꼬깃하고 지져분한 돈이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부르신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내편이셨다.
어머니께 잘 해드리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신다. 선생님께서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어머니께 전해 달란다. 난 그러마 했다.
하교 길에 길 모퉁이 배추가게 쓰레기통에서 배추잎들을 주어모으시는 어머니를
본다. 난 모른척 얼른 집에 들어와 버렸다.
그날 저녁 배추국이 밥상에 올라온다.
"이 배추!"
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께선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남은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민석이 국 끓여 주라고 하더구나"
어머니의 말에 난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난 거지자식이 되어버린것만 같았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어머니 생신이셨다고 한다.
~~~~~~~~~~~~17년후~~~~~~~~~~~~~~~
난 의사가 되었다. 가정도 꾸리고 병원도 장모님께서 개업해 주셨다.
난 너무도 풍요로운 생활에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께 보내 드렸지만 찾아가 본적은 없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해석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런 어느날.....
퇴근길에 우리집 앞에 어느 한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걸 봤다.
다가서니 그노인은 내가 가장 잊고자하는 어머니였다.
전보다 더 야윈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신다.
"민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어이 없다는듯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난 차갑게 한마디 한다.
뭐가 모자라서 나에게 온단 말인가.... 그동안 생활비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민...석....아....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전 민석이가 아니라 최영호입니다."
난 이 한마다를 끝으로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정부가 애써 돌려 보낸후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있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후 한달동안 난 악몽에 시달린다. 할수없이 난 다시는 되돌아 가기 싫은 시장이
있는 우리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시장 한귀퉁이에 여전히 나물을 팔며 기침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가만히 곁에 가서 지켜본다.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묻는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 아들이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만. 우리 아들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어머니는 자식자랑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물을 많이도 넣어 드린다.
그런 어머니를 뒤고하고 난 예전의 집으로 향한다. 아직도 변한게 없는 우리집
거의 쓰러져 가는데도 용케 버티고 있었다. 이런곳에서 살았다는게 생각에 없을
정도였다. 난 방틈으로 돈봉투를 넣어놓고는 돌아선다.
1년이 지난후 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고교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발길은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로 보이질 않았다.
도착한 곳에는 선생님이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나를 알아보신 선생님 아무말씀도 없으시다. 무거운 침묵.......
"민석아 내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셨다.
선생님께선 낯익은 보따리를 나에게 주신다.
바로 어머니가 가지고 다니시던 나물보따리셨다.
이 보따리에다 밤새 다듬은 나물들을 싸서 시장에 팔러 가시곤하셨다.
"풀러 보거라"
선생님의 말씀대로 난 보따리를 풀렀다.
"돈 아님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동안 네가
돌아올까봐서 그리고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수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렸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
동무가 되어드렸단다. 그래서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의 얘기는 이러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적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은 퇴근길에 쓰래기통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자식이 없던 터라 나를 데리고가서 키웠다고 한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얼마나 기뻣는지 모른다고 한다.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둘수 없어 항상 나를 공사판에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 어느날 무너지는 철근 밑어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뛰어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다고 한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로 살아난 운좋은 놈이라고 한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 다리마져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위사람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어머닌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기에 나를
버리시지않고 키우셨다고 한다.
그후 어머닌 아버지를 잊기위해 이곳으로 옮기셔서 나물을 팔며 나를
키워오신거란다.
내가 대학다닐때 암인걸 아신 어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내 학비를 마련하기위해
병원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내가 내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다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고자 물어물어 서울까지 오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난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던 어머니를 버린 나
자신을 용서할수갈 없었다.
하지만 나를 조용히 내려보시는 어머니의 사진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자식마져도 어머니는 사랑하시나 보다.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그후 난 시간이 날때마다 가끔씩 이곳을 들른다.
혹시나 어머니가 나물을 파시고 계실것 같은 착각에 말이다...
가슴 한구석이 못내 저려와
어떤 말로도 그 느낌을 나열할수 없을것만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곁에 항상 계시다하여
부모님의 사랑을 잊은채 생활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연인들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세상에 있도록 하여주신 부모님의 얼굴을
오늘!!! 다시한번 미소로 바라봄은 어떠한지요.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은
곧 나를 이토록 성장하게 하기 위함인 노력의 상징이요.
숯한 세월의 고난을 말하여주고도 남습니다.
떠오르는 지금 사랑한다고 전하며 말하여 보십시오.
"민연아 빨리 일어나, 학교가야지.."
엄마의 자명소리에 눈을 떴다.
늘 그랬다는듯 나의 시선은
유리깨진 낡은 시계를 향해 있었다.
시간을 보고 나는 인상부터 찌푸리고 언성을 높혔다.
"왜 지금깨워줬어!!! 아우 짜증나!!"
- 쾅..
방문소리가 세게 울려퍼졌다.
주섬주섬 교복을 입고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연아, 미안하다. 엄마가 몸이 좀 안좋아서..".
"아씨.. 또 감기야?! 그놈의 감기는 시도때도없이 걸려?!".
"..늦게..깨워줘서 미안하구나.. 자.. 여기.. 도시락 가져가렴..".
타악!.
"됐어! 나 지각하겠어! 갈께!".
도시락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신경쓰지 않고 내 갈길을 갔다.
뛰어가면서 살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말없이 주섬주섬 내팽겨진 도시락을 다시 담고있었다.
창백했다...
여느때보다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보였다.
하지만 늘 엄마는 아팠기때문에.
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종례시간이다.
이번주 토요일날 수학여행을 간덴다..
가고싶었다..
가서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놀고싶었다..
가난이란걸 깨끗히 잊고 오고 싶었고.
엄마도 잠시동안은 잊고싶었다..
집에와서 여느때처럼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인상이 먼저 찌푸려졌다..
"어어...우리 민연이왔어..?".
"엄마! 나 이번주 토요일 수학여행보내줘!".
다녀왔다는말도 안하고 보내달라고만 했다..
"어.....수학..여행이라구....?".
"어.".
"얼만..데..?".
엄만 돈부터 물어봤다. 우리집안 형편때문에 가야될지
안가야될지 고민했었다..
"8만원은 든다는데?".
"8.....8만원씩이나...?".
"8만원도 없어?! 우리 생그지야? 그지?!".
이런 가난이 싫었다..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가난이 싫었다...
엄마도 싫었고, 식구가 엄마와 나 뿐이라는것도 외로웠다..
엄마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이불 속에서 통장을 꺼냈다..
"여기..엄마가 한푼두푼 모은거거든..? 여기서 8만원 빼가..".
난생 처음보는 우리집의 통장을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는 말도없이 당장 시내의 은행으로 달려갔다..
통장을 펴보니 100만원이라는 나로선 어마어마한돈이 들어있었다..
이걸 여태 왜 안썼나 하는 생각에 엄마가 또한번 미워졌다..
8만원을 뺐다..
92만원이 남았다..
90만원이나 더 남았기대문에 더 써도 될것같았다. .
언틋 애들이 요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이라는게 생각이 났다..
40만원을 다시 뺐다..
가까운 핸드폰대리점에 가서 좋은 핸드폰하나 샀다..
즐거워졌다..
난생 처음 맛보는 즐거움과 짜릿함이였다..
핸드폰을 들며 거리를 쏘다녔다..
여러 색색의 이쁜 옷들이 많이 있었다..
사고싶었다. 또 은행을 갔다. 이번엔 20만원을 뺐다..
여러벌 옷을 많이 샀다..
예쁜옷을 입고있는 나를 거울로 보면서
흐뭇해하고있었을때.
눈에 띄는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엄마가 잘라준 촌스러운 머리였다..
은행에 또 갔다..
5만원을 다시 뺐다..
머리를 이쁘게 자르고, 다듬었다..
모든것이 완벽했다..
이젠 수학여행때 필요한걸 살 차례다. .
난 무조건 마구잡이로 닥치는데로 고르고, 샀다..
9만원이라는돈이 나왔다..
그렇게 집에 갔다..
또 그 지긋지긋한 집에 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가야만하기때문에 갔다..
엄만 또 누워있었다.일부러 소리를 냈다..
"흐흠!!!".
소리를 듣고 엄마는 일어났다. .
통장을 건내받은 엄마는
잔액을 살피지도 않고.
바로 이불속으로 넣어버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토요일이 왔다.
.
쫙 빼입고 온 날 친구들이 예뻐해주었다..
고된 훈련도 있었지만, 그때동안은 엄마생각과 가난, 그리고..
집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제 끝났다. 2박 3일이 그렇게 빨리지나가는지 이제 알았다..
또 지긋지긋한 구덩이안에 들어가야 한다..
"나왔어!".
".........".
왠일인지 집이 조용했다..
"나왔다니까!?".
".........".
또 조용하다. 신경질나고 짜증나서 문을 쾅 열었다..
엄마가 있었다. 자고있었다..
내가 오면 웃으며 인사하던 엄마가 딸이 왔는데 인사도 안하고 자기만한다..
"혹시 내가 돈 많이 썼다는거 알고 화난걸까? 쳇...
어자피 내가 이기는데 뭐..".
하고 엄마를 흔들려했다...
그런데....
그런데......
엄마가.....차가웠다......
이상하게 말라버린 눈물부터 났었다..심장이 멎을것 같았다..
그 싫었던 엄마가 차가운데.. 이상하게 슬펐다...
믿어지지 않았다...
마구 흔들어 깨워보려 했다. .
하지만..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았다....
얼른 이불에서 통장을 꺼내 엄마의 눈에 가져다 대고 울부짖었다..
"엄마! 나 다신 이런짓 안할께!!! 안할테니까!!!!!!!!! 제발 눈좀떠!!!!!!!!".
통장을 세웠다. .
그런데 무언가가 툭 떨어져 내렸다..
엄마의 편지였다. .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 나의 사랑하는 딸 민연이 보아라..
민연아. 내딸 민연아..
이 에미 미웠지? 가난이 죽어도 싫었지?.
미안하다...미안해....
이 엄마가 배운것도 없고, 그렇다고 돈도 없었어....
민연이한테 줄거라곤.. 이 작은 사랑...
이 쓸모없는 내 몸뚱이밖에 없었단다...
..아..엄마먼저 이렇게 가서 미안하다....
엄마가 병에 걸려서.. 먼저 가는구나...
실은.. 수술이란거 하면 살 수 있다던데....
돈이 어마어마하더라...
그래서 생각했지...
그까짓 수술안하면.. 우리 민연이 사고싶은거 다 살 수 있으니까...
내가 수술 포기한다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어서...
이젠..몇달을 앞두고 있단다...
딸아...
이 못난 에미.. 그것도 엄마라고 생각해준거 너무 고맙다...
우리 딸..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거 알지?.
딸아..우리 민연아....
사랑한다.........사랑해.......
-엄마가-.
추신: 이불 잘 뒤져봐라.. 통장하나 더 나올꺼야...
엄마가 너 몰래 일해가면서 틈틈히 모은 2000만원이야.. .
우리 민연이.. 가난걱정 안하고살아서 좋겠네 』.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보고있자니...내 자신이 너무 미워진다..
그동안 엄마를 미워하던거보다 100배..아니 1000배..아니, 끝도 없이..내 자신이 미워지고 비열해진다..
.
왜 나같이 못난딸을 사랑했어..어..?.
수술비.... 내가 펑펑 쓴 그돈 수술비....왜 진작 말 안했어....어....? 왜 진작 말 안한거야...
엄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도 내팽겨쳤는데...엄마한테 신경질내고 짜증부렸는데...
엄마 너무너무 미워했는데...그렇게 밉고 나쁜 딸을 왜 사랑한거냐구...
어..?.엄마 바보야? 왜 날 사랑했어...왜...왜......
.
이젠 그렇게 보기 싫었던 누워있는모습조차 볼 수 없겠네...
엄마의 그 도시락도 먹을 수 없겠구...엄마가 맨날 깨워주던 그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겠네...
나.. 엄마 다시한번 살아나면...
하느님이 진짜 다시 한번 나한테 기회를 주신다면...나.. 그땐 엄마 잘해드릴 자신 있는데... 그럴 수 있는데.....
엄마, 다음세상에서 만나자...응..? 꼭 만나자..? 어..?.
엄마.......미안해.....정말 미안해....미안해..........
...나 이말 엄마한테 처음으로 말하는거다..?.
엄마.............사랑해.........사랑해...........
사랑해...........사랑해.................
결혼을 하자는 청혼을 받은지 일주일
남자친구는 우리집에 인사를 오겠다고.
언제가면 되냐고. 자꾸 조른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미 말했고
어머니는 아프다 라고 계속 미뤘다
마루하나 방 하나
조그마한 우리집을 선뜻보여주기 쉽지 않았다
그런 내맘을 알 턱이 없는 엄마는 오늘도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
집에 들어서면서 짜증을냈고,
짜증의 끝은 언제나
"해준게뭐야" 라는 칼이되어 엄마에게 날라간다
화딱지에, 눈물에,
냉장고 문을 확 열어 젖혔다
커다란 파인애플이 두개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때 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니 그 결혼한다는 친구 다녀갔다
너하고 같이 오려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니가 너무 바빠서 혼자 먼저왔대..
내가 아프다며 파인애플을 사왔는데
나도 그녀석 온다길래 파인애플을 사다놨지뭐냐..
그녀석 아주 선하니..좋게생겼드라"
나만빼고 다 착한세상
냉장고문을 붙들고 서서 하루종일 울었다
10년을 함께한 둘도없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정이란게 항상 같을순없는건지
서로 섭섭한 일들이 겹치면서 둘은 서로의 우정을 의심하게되었죠
어느날 학교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하던 두친구는
어두어지자 집에갈채비를 하기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한친구가 큰고민에 잠겨있는거같았습니다.
"너 고민있냐?"
"아..아냐 아무것도"
그렇게 둘은 말없이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한친구에겐 말못할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며칠전 집안사정땜에 등록금 걱정을하던중
의문의 전화를 받은것이지요
"니 친구를 죽여라 그러면 니통장에 학비를보내주지"
바로 이것이 친구를 고민하게 만드는것이였습니다.
다음날 고민끝에 그친구는
밤늦게 친구를 실험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결국 사랑하는 친구를 죽이고말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손에 봉투가 쥐어진걸 뒤늦게 발견했지요
봉투안엔 50만원이 조금넘는돈과 편지가있었습니다.
"친구야 너 요즘 고민많지?
등록금 그까짓거 뭐 내가 조금 보태줄께…
자식 너 웃는모습좀 보고싶다
그리고 며칠전에 전화받았지?
크크 내가 장난좀쳤다 너혹시 그전화받고
고민하는건 아니겠지?크크 임마 미안해하지말고
니옆엔 항상 내가있을께 사랑한다 친구야"
아내가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지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챙겨주지 못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날 저녁, 아이와 인사를 나눈 뒤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습니다.
그 순간 뭔가 느껴졌습니다.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 만한 라면이 이불에 퍼 질러진 게 아니겠습니까?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며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봐 이불 속에 넣어 둔 것이라고..
가슴이 메어 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일 년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7살,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죠.
얼마 전 아이에게 또 매를 들었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너무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았죠.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화가 나서 마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 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 유치원에서 부모님들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진학했죠.
그런데 또 한 차례 사고를 쳤습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날.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지장을 끼친다고 온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또 일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 가서 편지를 받아 온 후 아이를 불러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 졌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느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깐
손이 닿아서 다시 돌아와 다 들고 갔다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 나라에 있다고.
다음부턴 적어서 태워 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간 뒤 라이타 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하나의 편지를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생각 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척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봐 절대로 얘기 안 했어.
어느 사형수가
어린 딸의 손목을 꼭 쥐고 울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를 혼자 이 세상에 남겨두고
내가 어떻게 죽는단 말이냐"
"아버지...아버지..."
마지막 면회시간이 다 되어 간수들에게
떠밀려 나가면서 울부짖는 소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애처로워 간수들의 가슴을 에어냈다.
소녀의 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그것을 신호로 하여
교수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소녀는 그 날 저녁에
종지기 노인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내일 아침
새벽종을 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종을 치시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아요."
"할아버지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네"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슬피 울었다.
"얘야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만약 내가 종을 안 치면 나까지도 살아
남을 수 가 없단다"
하면서 할아버지도 함께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다음 날 새벽이 밝아왔다.
종지기 노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종탑 밑으로 갔다.
그리고 줄을 힘껏 당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힘차게 줄을 당겨보아도
종이 울리지 않았다.
있는힘을 다하여 다시 잡아당겨도
여전히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러자
사형집행관이 급히 뛰어왔다.
"노인장 시간이 다 되었는데
왜 종을 울리지 않나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지 않소" 하고 독촉을 했다.
그러나
종지기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글쎄 아무리 줄을 당겨도
종이 안 울립니다."
"뭐요? 종이 안 울린다니?
그럴리가 있나요?"
집행관은 자기가 직접
줄을 힘껏 당겨보았다.
그러나 종은 여전히 울리지 않았다.
"노인장!
어서 빨리 종탑 위로 올라가 봅시다."
두 사람은 계단을 밟아 급히
종탑 위로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의 추에는 가엾게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는 소녀 하나가 매달려
자기 몸이 종에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던 것이? ?
그 날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목숨을 대신해서
죽은 이 소녀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그 사형수 형벌을 면해 주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어린 딸을 부둥켜안고
슬피 우는 그 아버지의
처절한 모습은
보는 사람 모두를
함께 울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오늘은 한달 중 제일 기다려지는 용돈 받는 날.
그러나 오늘이 더욱더 기다려진 까닭은
수학여행 준비로 용돈을 좀더
넉넉히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손에 쥐어진 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3만원.
참고서 사랴, 학용품 사랴. 정말 3만원 가지고 무얼 하라는 건지.
그리고 또 모레가 수학여행인데.
나는 용돈을 적게 주는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수학여행인데... 평소에 쓰던 가방 가져가기도 민망하고...
신발도 새로 사고 싶었는데...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교실에 도착했다.
내 속을 긁기라도 하듯
내 짝꿍이 용돈 넉넉히 받았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 오늘 수학여행때 가져갈거 사러 가는데 같이안갈래?
한창 신나게 아이쇼핑을 즐기고 있을 때
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괜히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30분 후 다시 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핸드폰을 꺼버리고 밧데리까지 빼버렸다 그리고 신나게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괜히 화를 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신발도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었고
가방은 옆집 언니에게서 빌릴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지...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참! 엄마가 오늘 일나가는 날이었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습관대로 텔레비전을 켰다.
드라마가 나와야 할 시간에 뉴스가 나왔다.
뉴스 속보였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자주 타는 대구 지하철에 불이 난 것이다.
어떤 남자가 지하철에 불을 냈다.
순식간에 불이 붙어 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는 지하철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연결음만 이어지고 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리고 꺼버렸던 핸드폰을 다시 켰는데.
문자 다섯 통이 와있었다.
엄마가 보낸 문자도 두통이나 있었다.
엄마가 보낸 첫 번째 문자를 열었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나는 첫 번째 문자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 번째 문자를 열었다.
미안하다.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 엄마와 아들의 일기 ***
+ 엄마의 일기
어두운 밤 눈가에 흘리는 눈물을 누군가 볼까봐 연신 주위를 살폈다.
내일은 내 사랑하는 아들 현이가 소풍을 가는 날이다.
주인집 아줌마에게 사정을 해서 만원을 빌렸다.
김밥 재료를 사고 3000원이 남았다.
아들은 내일도 웃으면서 돈을 받지 않을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벌써 애는 일어나 나를 멀그러니 바라보고 있었다.
밥을 싸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나온다.
혹시나 볼까봐 뒤로 앉았더니 애는 뭘 아는지 밖으로 나간다.
벌써 다 큰걸까?
남들처럼 잘먹였으면 키도 많이 컸을텐데 올 겨울이 걱정이다.
주인집에선 나가길 원하는 눈치인데 내일은 파출부
자리나 알아봐야겠다.
+ 아들의 일기
엄만 오늘도 우셨다.
내일은 말해야 할텐데 학교 등록금을 안냈는지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이제 반년만 지나면 졸업인데.....
자꾸 가슴 아픈게 심해진다.양호실에 또 가서 진통제를 받아야 하나...
엄만 많이 힘들어 하시는것 같은데.........
신문배달도 요즘 들어서 하기가 힘들어진다. 뛸수가 없으니...
+ 엄마의 일기
오늘도 아이는 도시락을 조금 남겼다.
매일 김치만 싸주니 오늘 저녁은 또 뭘먹이나?
+ 아들의 일기
어제 저녁에도 엄마에게 등록금 얘길 못했다.
간장에 밥비며 먹는 내 모습에 어머니가 서럽게 우셨다.
내일은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자퇴를 내야겠다.
돈을 벌어 어머니를 내가 모시는게 날것 같애!
아버지 제사날이 내일인데 어머니는 알고 계실까?
+ 엄마의 일기
아이가 잠을 못자는것 같다. 어디가 아픈건 아닌지?
+ 아들의 일기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학교를 그만 두었다.
내일은 신문보급소에 가서 얘기하고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어제밤에 한숨도 못잤다.
몹시 아팠지만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물도 못마셨는데
밥을 너무 못먹어서 그런가 간장만 먹으면 설사를 하니...
1200만원에 내 장기를 사준다니...
엄마에게는 그냥 주었다고 말해야겠다.
좀더 살고 싶지만 엄만 너무 힘들어 하신다.
내일은 아버지 산소에나 가봐야겠다.
+엄마의 일기
아들에게 고기를 사줄려고 머리를 잘랐다.
보자기를 쓰고 있는데 아들이 그냥 울고만 있다
고기는 먹지도 않고...
+ 아들의 일기
오늘 돈을 받았다.
엄만 길거리에 주었다고 하면 반드시 돌려 드리라고 하실건데..
당분간 내가 갖고 있어야겠다.
방학을 맞아 친구네 놀러 간다고 하니 엄만 믿으신거 같다.
편지를 쓰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 엄마의 일기
아들이 방학을 맞아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단다!!
난 흔쾌히 허락했다..아무래도 여기 있는것보단..
잘먹을수 있겠지....
그런데 왠지 모르게..마음이..
아들을 다시는 못볼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에이..괜한 걱정이겠지..
++ 아들의 마지막 편지 ++
어머니께
정말 사랑해요
슬퍼하지 마시고, 진지 꼭챙겨 드세요....
그냥 저멀리 여행갔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엄마에게 효도 많이 했으니까
아버지에게도 해야돼죠...
아버지도 반가워 하실꺼예요.....
눈물은 제가 오늘 다흘릴테니까요...
어머니 이젠 눈물 흘리지 마세요....
저 백혈병이래요.
수술해도 안된데요..........
어머니 저 잊지 마시고요,
다음 세상에도 제 어머니 되어 주세요..
사랑해요...
돈은 제가 선한일 해서 번거니까 마음 껏 쓰시고요....
먼저가서 죄송해요...
참 저 생각 나시면 김밥이랑 만들어 두세요..
어느집 보다 맛있어요...
울지 마시고요..
꼬옥 오래 사시고 오세요.
우선 내 소개할게
난 중2고 동네에서 알아주는애야
이동네에 이어지는 다른 지역에서도 80~90%는 알아주는만큼
솔직히 싸움잘해..
6학년때까지는 나 진짜 평범하게 자랐다
근데 중1 올라가고 신입생회같은거 하고 집에가는길에
조카 성기같이 험학하게 생긴언니들 10명정도가 와서
따라오래
순진한마음으로 따라갔다?
나보러 예뿌데.. 키도크고 날씬해서 호감간데..
난 그저 칭찬에 좋았는데
그러더니 나보고 일찐을 들래
들어보기만 한 일찐..
난 일찐이 그렇게 심각하고 사람 병신되는줄 몰랐다
그래서 난 가만있었더니
일찐하면 좋은게 혜택이 참 많데
언니들은 하나하나 설명해줬어
난 결국 그자리에서 일찐을 들고말았지
옆에 있던 2명의 친구들은 날 시큰둥하게 처다봤고..,
그리고 난 집에가는데 애들이 하는말이
"야 하지말지~ 좀 무서울텐데"
"그러게 말이야~ 진짜 어리벙하다 너 이제 인생 망칠텐데"
너희말을 들었어야 하는건데
"아니야 언니들이 안무섭데잔아 괜찬을껄?
그리구 하기싫음 안할꺼야"
라는 말만한체 난 집으로 뛰어갔지
그리고 난 술도 담배도 그리고.......
싸움도 모두 배워버렸지
태어나 사람한번 처본적 없는 나는 그저 싸움배울때 아프고
힘들었지만 일찐의 필요성이라는것 때문에
끝까지 배우고 말았어
나와 동값인 일찐애들 여자 8명가운데서
난 당당히 진짜 일찐이 되었어
그리고 학교 얼짱에 몸짱됬고
난 뭐 티비에 나오는 모델 부럽지 않을만큼 좋았지
그때부터 그러니까 중1 여름방학때부터 난 심하게 망가저갔지
왠만하면 중2 선배들도 중3 선배들이 졸업해야
우릴 키웠을텐데
아무튼 난 여름방학때
14년 검정색으로 살아온 내 머리를 황금색으로 염색시키고
귀, 코, 뚫었지
노출을 싫어했던 내가
끈나시, 핫뺀츠만 입고 돌아다녔고
남자사귀기 싫어해서 한번도 태어나 사겨본적 없는 남자를
한번에 5다리까지 걸처봤지
영화속에만 티비속에만 이루어질줄 알았던 그런게
나한테 모두 이루어졌어
그래도 기본머리가 있는 나는 1학년 첫중간고사때 94점을 받아
전교 10등을 했었지
선배,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20~50점인데 말이야
그리고 제데로 망가진 여름방학 후
그리고 2학기가 되어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30~50점이 되어버렸어
진짜 내가 웃겻어
한번에 평균 50점이 떨어질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근데 세상의 주인공은 그래도 난줄 알고
난 낮은성적에도 불쾌하지 안았어
부모님들은 날뛰고 점점 변해저가는 내모습에
입원까지 하셨지
집이 지긋한 나는 중2 초반에 가출을 했어
친구들집에 자다가 친구부모님 눈초리에
난 선배오빠들 집에서까지 잤지
평소 나를 좋아해주고 사귀자고 했던 오빠집에 갔을때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어
그래도 난 안심했지
근데 오빠가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나오더니 갑작이 덮치는거지
이거 안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에 난 눈감았지
일어나보니 내 보지속엔 피가 흐르고
내 가슴은 멍으로 가득했지
눈앞이 캄캄했어
그리고 난 처음으로 전치 12주에 이르게 여자한명을 죽도록 팼지
"가출했는데? 엄마아빠? 없어~"
"상관말아 나이렇게 막대먹은애니까"
"아줌마 딸이나 수술시켜줘"
아줌마는 가출한 나를 4달만에 엄마한테 대리고 가
수술비를 물어내라 통곡했고
엄마는 충격과 쇼크로 인해 그자리서
그만.........................돌아가셨어
외동딸이라 곱게 키웠는데
하.....그렇게 가시다니....................
홀로남은 아빠..............
난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잘못을 몰랐고
그날밤 동네 공원에서 혼자 술먹으며 울었고
그다음날 내 잘못을 비로소 깨닳았어..
그리고 가출한지 4달만에
아빠품으로 돌아가서 무릎꿇고
6시간내내 울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아빠는 내용서를 끝내 허락해주시지 않더라...
그리고 다시 집을 나가 죽도록 공부를 했고
평균 97.72 라는 전교1등 성적표를 아빠에게 보여주며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난 새출발을 한다는 마음에
기..뻤....어...
가출한동안 공원바닥에 앉아 공부했던
주차장속에서 공부했던 내 행동이 헛되지 안았고,
그리고 그날 아빠와 함께 엄마가 있는곳을 가보았지
1시간넘게 흐르는 내 눈물을 감추며
그자리에서 엄마에게 사과를 했어..
앞으로 좋은모습 보여줄테니 거기서 지켜보라고
전교1등은 내가 했다는 소문이 돌고
선생님들은 살짝 의심하기시작했지
하지만 첫 중1때 맞은 94점의 점수때문에
내가 공부해서 얻은거라 생각하시는 선생님도 많앗지만,,,
난 모두 무시했어 아니, 그래야만했어......
날 비웃는사람도 날 의심하는사람도
그리고 홀로 남은 아빠만을 위해 난 달리고 또 달렸거든?...
하지만 일찐이라는 집단사이에 걸림돌이 되어버렸어...
선배한테 4시간동안 맞고 시퍼런 멍들과
그렇게 잡았던 후배들도 이제는 모두 날 무시해버리더라
다행히 얼굴엔 상처를 내지 안았고
가슴.. 보지...배.. 등. 등등.. 난 모두 멍자국 투성이었어
담뱃불로 지지고
하하하.........
교복입는다로 다리는 지저놓지 않더라 ?
난 그날밤 집에 들어가지 안았어
아빠에게 친구들과 숙제를 한다는 핑계로
그리고 난 그렇게 아픔으로 새출발 하려고 했고 그 다음날
집에 가니 아빠의 편지 한장만을 남겨논 빈집이더라......
읽어보았지
"사랑하는 내딸아"
로 시작한 편지는
나를 또 한번 무너트렸어....
선배와 맺은 성관계가 아빠 귀로 들어갔나봐...
마지막 다섯줄에 아빠는 이렇게 적어놓았어....
"아빠는 너무 힘들다
이렇게 막노동을 해서라도 조금버는돈이라도
모두 널위해 쓰고싶었는데
아빠 거기서 다첬다
근데 수술할돈이 만만치가 안더구나
아빠가 수술해도 여러번 더 수술을 걸처야 하는데
차라리 그돈으로 4년뒤에 갈 대학과 널 위해 써라
그리고 니가 그때 나쁜짓하고 성관계 맺은건
아빠가 다 용서해주마......사랑한다 내딸아......."
아빠한테 용서빌고 다시 시작한지 2주일밖에 안됬는데
아빠 모야?
난 당장아빠한테 전화를 했지...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안았어....................
그날밤 경찰에게서 전화가왔는데...
아빠가..................... 가셨다고.............................
엄마한테 갔나보다하고.....
그리고 흘러간 세월 3개월....................
난 아빠도 엄마도 보고싶어, 내 헛된 생활 2년때문에
난 가족을 모두 잃고 내 인생마저 잃었거든....
혼자가 외롭다...........................
(-이번 기말고사때 받은 98.16 이라는 또 한번의 전교1등의
성적표는 부모님 싸인도 못받은체
내 방구석에서 날리고 있다
아빠 엄마가 있는곳에 놓고 왔어
엄마아빠 싸인해줄꺼지?-)
너네들..... 살아있을때 부모님들한테 잘해
너희 부모님은 맛있는거 모르는줄 알어?
다 너네 먹이려고 하는거야
그리고 이ㅅ발년들아, 엄마는 사람아니냐?
예쁜옷 예쁜머리 예쁜신발 예쁜악세서리 안하고 싶을줄아냐?
니들이 그런거 할려고 엄마한테 가져가는돈으로
엄마가 산다면 그걸로 엄마는 10년 넘게써
근데 너네는 그걸로 1년은 넘기니?
패션감각없다고 엄마를 쪽팔려해?
꾸미지 않는다구?
그럼 너네가 용돈받아쓰지말고 너희가 옷사러갈때
엄마 화장품, 예쁜옷 싼거 하나라도 사와봐
니네 그렇게 지금 입는옷 예쁘게 입을수있게
엄마가 못입는거야, 병신들아
엄마도 사람이야
엄마들도 자기네가 뽀글뽀글 파마에 예쁜옷 못입고
창피하게 입는거 ..창피해 해.....
근데....... 너네들은 그런거 모르잔어
너희는 비싼메이커 사려고 안간힘 다 쓰지?
근데 엄마들은 옷한번 사려면 삼일 밤낮으로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싼거 없나 찾아봐
그거 알어?
엄마들은 그냥 시장에서 5000원짜리 후진옷 사놓고선
이거 편하고 디자인도 나한테 마음에 든다고
니가 볼땐 안이뻐? 엄마가 보니까 예쁜데~
입어두 편하구 좋아
이렇게 넘어가시는거 알아?
엄마랑 너희랑 쇼핑할때?
엄마 사입으려고 해도 너희가 한번 비싼거 사면
엄마 몇년동안 옷 못사입어 알았니?
같은사람이야
엄마도 너희도.....................
엄마도 얼마나 예쁜옷 입고 싶겠어?
너희가 생각하는거 똑같이 엄마도 생활하고 싶어
같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너네 엄마한테 짜증 좀 내지마
ㅅ발년들아
넌 너네들보다 나이 어린애가 니들한테 짜증내면 좋니?
오늘밤.............
엄마아빠한테 따뜻한말한마디 챙겨드려
뭣모르고 일찐이 멋잇어보여서 그러는데
차라리 애들이 손가락질하는 찌질이로 살아라.
부모님 쪽팔려하지 마라.
신발 난 쪽팔려할 부모님도 없다...........................
전쟁후
어느 한 병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어느날 한 아이가 급히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피가 모잘라 생명이 위독해지게 되었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그 헌혈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지못해 의사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얘들아...저 아이가 지금 많이 아프단다
누가 저 아이를 위해 피를 조금 나누어 줄수 없겠니?"
아이들은 모두 겁에 질린듯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걱정이 되어 한숨만 쉬고 있는데
한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하기로 한거죠
아이는 수술실로 갔습니다
혈액을 뽑는 주사바늘을 꼽고 피가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간호사는 아이를 달랬고 이윽고 주사바늘을 빼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애야 다 끝났다. 근데 왜 눈을 감고 있지?"
아이는 말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주변에 있던 모든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그 아이는 헌혈을 해본적이 없기에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친구에게 주고 자기는 곧 죽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가 또 물었습니다.
"애야 그럼 넌 니가 죽는 줄 알면서도 헌혈을 한다고 했었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제 친구잖아요........"
"하루는 학교 갔다와서 엄마방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거야.
멀리서 잠자코 쳐다보고 있었어 우선은.
근데 엄마가 십분이 지나도 이십분이 지나도
계속 그 상태로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거야.
뒤척이지도 않고 정말 죽은 사람처럼."
"그래서?"
"가까이 가봤지. 코 앞에서 내려다봤어.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서 생각했지.
엄마가 죽은걸까. 눈물이 나려는데 엄마가 눈을 번쩍떳어.
그리곤 일어나서 방을 나가더니 점심을차려줬지.
숟가락을 내손에 쥐어주면서
그일에 대해선 아무 설명도 안해줬어."
"넌왜 안물어봤는데?"
"왠지 물어보면 안될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응."
"그리고 다음주 그 요일에.
또 그 다음주 그 요일에. 계속 그런식이엇어.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없이 누워서
내 시선을 받아내고 있엇어.
그런데 네번째인가 다섯번째인가 그날은
점심을 밥대신 국수를 먹었거든.
내 생일이였어. 오래살아야 된다면서
엄마가 이번엔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쥐여줬어.
막 국수를 한가닥 끌어올렸는데 엄마가 그랬어.
궁금하지않냐고. 왜그러고 있는건지.
사실 그때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사소한걸로 싸우기싫으니까 어.말해줘. 그랫지.
그러니까 엄마가 그래.
죽는 연습 하는거라고. 만약에 어느날 갑자기
또 어떤 이유로 그렇게 느닷없이
엄마가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날 단련시키는 연습을 하는거라고."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아. 그렇구나."
"그게 다야?"
"엄마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니까.
그랬는데 내가 막 여름방학 하던 날이었나봐.
그 날도 엄마는 연습을 하고있엇거든.
그 쓸데없는 연습. 방해하지않으려고
점심 안먹어도돼 오늘. 이러고 방에들어가서 놀다왔는데
그때까지도 엄마는 연습중이었어.
그레서 이번엔 나가서 놀다왔는데
그때도 엄마는 그상태 그대로였어.
다음날 자고 일어나서 방에 갔을때도 그대로인모습을 보고야말았어.
이번엔 연습이 아니네"
여전히 수잔과 남자는 걷고 있다.
느릿느릿 말하던 수잔의 고개는 지루한듯 떨어진다.
마치 남 얘길 하고있다는듯이.
"그런데 효력이 있더라고
별로 슬프지 않앗어. 난 단단해졌어 벌써."
"응"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
우뚝 멈추어서지도 불쑥 끊겨버리지도 않는다.
그대로 흐르고있다. 이 노곤하고 잔잔한 기류.
남자가 고갤 돌려 웃었다. 아니 웃은걸까.
"훈련시키는거냐. 나?"
"응. 그러니까 늘 긴장하고있어.
언젠가 진짜 헤어지는 날이 와도 슬프지 않게."
여러분들은 요구르트의 슬픈비밀을 아시나요?
아마 모르실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 역시 너무나 놀랐습니다.
구청에서는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들에게
매일 요구르트를 배달한다고 합니다.
사정을 몰랐을 때는 구청에서 구민들의 건강까지 챙겨주는 자상한 배려로 생각되어 흐뭇했었습니다.
그러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요구르트가 배달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유산균 음료를 요구르트라 부르지만,
이곳에서는 출석부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아침마다 요구르트를 돌리는데, 문 앞에 요구르트가 쌓여 있으면
그 집에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독거노인들이라서 무슨일이 생겨도 며칠씩 아무도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구청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짜낸 것입니다.
요구르트가 생가 여부를 체크하는 출석부가 된 것이지요.
설마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 됨으로서
소외받고 힘드신 노인들이 많아요.
따뜻한 마음으로 곁에 있는 이웃을 둘러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올해 24살된 여성입니다.
그냥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왠지 모르게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 거리는..그래서 밖으로만 돌기 일수였고,
결국은 사고를 쳐 부모님을 경찰서로 오시게 한 이후로
저는 자퇴와 더불에 부모님께 큰 대못을 박고 말았지요.
여기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저를 감금하다 시피 하신 모습에 화가 올라가,
아빠는 직장도 없이 엄마만 돈을 벌고 있었고
할머니가 계시는 아파트에 얹혀살고 있어 형편도 어려운 시기에
엄마의 월급봉투에 손을 대서 13만원중 10만원을 들고
가출을 감행했습니다.(나름 양심이 있어 전부는 가져가지 못했죠.)
첫 가출 이후, 한달내내 엄마에게는 이메일이 도착했고,
남동생이 둘이나 있던 저는 여러가지로 이메일과
사진들이 도착했습니다.
아직도 볼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미칠 지경입니다.
하지만 철없던 저는 아빠에대한 말도 안되는 미움과
나를 찾지 않았다는 그런 어린생각으로
하루하루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었죠.
매일매일 찜질방에서 자기 일수였고
친구집을 전전 긍긍하고..
가출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친구집도 조금 오래있으면 눈치가 무지 보인다는것을..
여기저기 엄마의 피눈물과 동생들에 원망을 들으면서도
나혼자 잘 살겠다고 집을 나와 한참을 지내고 있던중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올때는 여름이었는데,추운 겨울 매일매일 어디서 자야할지
고민하고 그러던 중.
견디다 못해 "아 그냥 집에나 들어가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나는 눈물로써 흔쾌히 오라고 하셨고
저는 친구에게 돈을 꿔서 집앞에 도착했죠.
담배 하나를 피고 조금 냄새를 뺀 후
이제 들어갈까 말까 하고 문앞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땐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또 맞겠구나 싶어 그냥다시 갈까..
하는 생각으로 복도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손발이 꽝꽝얼고 있을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빠가 나오셨습니다.
아마 담배를 피러 나오신듯하죠.
또 손지검하겠구나 생각하고 눈을 감고있는데
"어?XX왔네?추운데 여기서 뭐해?밥은 먹었어?"
하시는 겁니다.
속으로 그랬죠.'이 가식쟁이'
집문을 열더니 막 소리지르는 겁니다."XX엄마!XX왔어!!"
집안식구들이 모두 나왔고,할머니는 울고 계셨고
엄마는 눈물이 그렁해서 저를 잡아 끌어주셨습니다.
동생들도 잘왔다며,이제 자기들 사춘기라 누나한테 상담할게
많았다는데 잘됬다며 좋아해줬습니다.
아빠는 내가 들어가는걸 확인하고 할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앉혔는데 엄마가 그러는 겁니다.
아빠 들어오시면 잘못했다고 무릎꿇고 빌라고..
속으로 그랬죠.'아XX 또 시작이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잘못했다고 빌라는건지,
도통 짜증이 나서 싫다고 했죠.
엄마는 부탁이니까 아빠한테 빌라는 겁니다.
젠장,어쩌겠어요.어쨌든 추운데서 안자도 되고 하니까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라 아빠가 들어왔습니다.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레파토리..다들 아시죠?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는데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누가 이런거 하래?..됐어..괜찮아~다리 저릴텐데 얼른 밥먹어.."
이러는 겁니다.
속으론 아싸를 연신 외쳤죠.근데 그때..
"XX.너 피자 좋아하지?피자먹자~밖에서 그런것도 못먹었을텐데
그거 먹자..~"이러는 겁니다.
그리고는 동생들을 불러 누나온 기념파티를 하자고..
피자를 무려 세판이나 시켜주셨죠.
집이 가난해 그런건 꿈도 못꾸고 있었던..눈물이 나더군요..
저를 더 주저앉게 만들었던건 그 다음날 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빠는 나가시면서 "아빠는 니가 와서 정말 좋다."
이렇게 웃으시면서 일자리를 찾아 나가셨습니다.
으레 차를 끌고 나가시려니 했는데
일주일 후 밤에 엄마랑 슈퍼를 갔다 오는 길
저 멀리서 아빠가 걸어오시는게 보였습니다.
(참고로 아빠는 권투선수셨는데 시합도중 눈을 다쳐
한쪽눈이 실명상태랍니다.즉 장애인이란 뜻이죠.)
어라,그런데 차가 없는겁니다.
왜 걸어오시냐니까 운동하시려고,배가 많이 나와서
그러셨다는 겁니다.
그려려니 하고 넘겼는데 그날 저녘.
동생이랑 한바탕 한 후 또 나가길 함행하려고
식구들 모두 잠든 틈을 타 아빠의 지갑을 공략했죠.
아빠의 지갑을 몰래 화장실로 가져가 살짝 열었는데
돈이 하나도 없고 아빠 지갑속엔 제 사진이 얼룩얼룩 한채로
거의 구겨지다 시피해서 민증사진 넣는곳에 있는거였습니다.
눈물이 그렁해서 사진을 뺏는데 뒤에 보니
아빠의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우리딸..보고싶다.."라고 써있는겁니다.
아빠도 제가 너무너무 보고싶으셨던 겁니다.
얼마나 혼자 우셨을까..얼마나 능력없는 당신을 탓하셨을까..
생각하니,철없이 놀고 아빠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워서 견딜수가 없더군요..
걸어다니신것도,아빠의 전재산이었던 돈을
피자를 사주셨기 때문이었고,
그 돈은 아빠의 일주일 점심값이 었던 것입니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저때문에 굶고다니신거였죠..
한번도 아빠에게 사랑한단 말 한마디 해본적 없는 못난 딸..
아직도 저는 아빠에게 다정한 딸이 못됩니다..
아빠가 이 글을 보실리 만무하지만..마음만은 통하리라 굳게 믿으며
사랑한다고,정말 죄송했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사랑해요
평생을 일그러진 얼굴로 숨어 살다시피 한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아들과 딸 남매가 있었는데
심한 화상으로 자식들을 돌볼 수가
없어서 고아원에 맡겨놓고
시골의 외딴집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자식들을 버렸다고
생각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자랐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라며 나타난 사람은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손가락은 붙거나 없는 모습이였습니다.
"저사람이 날 낳아준 아버지란 말이야?"
자식들은 충격을 받았고, 차라리 고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좋았다며
아버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식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며 혼자 외딴집에서 지냈습니다.
몇년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왕래가 없었고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자식인지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별다른 슬픔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낳아준 아버지의 죽음까지
외면 할수 없어서 시골의 외딴집으로 갔습니다.
외딴집에서는 아버지의 차가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인 한분이 문상을 와서 아버지께 평소에
버릇처럼 화장이 싫다며 뒷산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를 산에 묻으면
명절이나 때마다 찾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아서 화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온 자식들은
다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해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평소에 덮었던 이불이랑 옷가지들을
비롯해 아버지의 흔적이 베어 있는 물건들을
몽땅 끌어내 불을 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책들을 끌어내 불속에 집어널다가
'비망록'이라고 쓰인 빛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 했습니다.
불길이 일기장에 막 불붙는 순간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른 꺼내 불을 껐습니다.
연기가 나는 일기장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일기장 속에는 아버지께서 보기 흉한
얼굴을 가지게 된 사연이 쓰여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식들이었습니다.
일기장에 죽은 아내와 아들, 딸에게
쓰는 편지로 끝이 났습니다.
"여보게! 내가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놈인지
조차 모르겠소.. 그날 당신을 업고 나오지 못한날 용서하구려
울부짖는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당신만을 업고
나올수가 없었다오.. 이제 당신 곁으로 가려고 하니 너무 날
나무라지 말아주오..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오..
비록 아버지로서 해준것이 없지만 말이오..."
"보고 싶은 내 아들 딸에게.. 평생 너희들에게 아버지 역활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짐만되는 삶을 살다가 가는구나..
염치 불구하고 한가지 부탁이 있구나.. 내가 죽거든 절대로 화장을 하지 말아다오. 난 불이 싫단다.. 평생 밤마다 불에 타는 악몽에 시달리며 30년을 넘게 살았단다.. 그러니 제발..."
뒤늦게 자식들은 후회하며 통곡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화장되어 연기로 사라진 후 였습니다
나한테는 두 다리가 없는 형이 하나 있었다
형이라고 부르기에도 상당히 부끄러운 내 인생에 있어서
도움은커녕 짐밖에 되지 않는 못난 형
온몸을 방바닥에 문대며 두 팔로 기어가는
혼자서는 화장실 변기에 앉지도 못하는
그렇게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항상 형 노릇을 하려는 못난 형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형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항상 내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같이 나가서 뛰어 놀 수만 없었을 뿐이지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형과 함께 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비록 다른 형제들처럼
손잡고 함께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형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특수학교에 갈 때마다
혼자서 학교에 가는 내 걱정에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차 조심하고 누가 괴롭히면 형한테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그런 형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들어가고서 부터였다
물론 덩치는 형이 다리가 없어서 나보다 항상 작았지만
형의 존재가 작게 느껴진 건 그 때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같은 반 친구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가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그 친구를 도와주기는커녕 장애인이라고 무시하며
빙 둘러싸고 욕을 하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사실을 버젓이 알면서도
항상 주의만 주고 끝냈다
그렇게 반 친구들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학기가 끝나기 전에
그 장애를 가진 친구는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갔다
하지만 전학을 갔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특수학교에 가지 않는 한
일반학생과 다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비교적 양심이 있던
그 시절의 나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형이 생각나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 분위기 장애를 가진 친구를 놀림감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머릿속에 잡혀버린 나는
장애인 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점점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내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형이 창피해서
하지만 형은 내 생각도 모르고 항상
친구들 좀 집으로 초대하라고 그랬다
"진수야 너는 친구도 없냐? 집에 친구들 좀 데려와 같이 놀게"
형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다고 둘러댔다
"아, 내가 아직 친한 친구가 없어"
"그래? 너 혹시 왕따야?"
"그런 건 아니야"
"누가 너 따돌리면 말해 형이 꼭 지켜줄게"
형이 그럴 때마다 형이 조금씩 미워졌다
모든 게 형 때문인데 내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형이 본격적으로 싫어졌다
순전히 형의 장애 때문에 형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형을 증오하는 마음을 키운 것은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부모님의 탓이 컸다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절실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형의 수발을 들라고 하시면서
강제로 나의 시간을 빼앗으셨다
고작 지 몸뚱이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병신 때문에
나는 번번이 내 자신을 억누르고 참아야했다
한 번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형이 말했다
"나가도 좋아
나는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와라
엄마가 뭐라고 하면 형이 꼭 지켜줄게
걱정 말고 다녀와"
왠지 선심을 쓰듯이 말하는 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형을 믿고 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싸대기를 맞았다
아버지는 내게 실망을 하셨다며 나를 때리셨고
어머니는 방바닥에 똥을 싸지른
형을 씻기느라 나는 신경 쓰지도 않으셨다
'지켜줘? 누가 누구를 지켜줘? 똥오줌도 못 가리는 병신주제에'
그 날 나는 아버지에게 맞은 뺨을 눈물로 쓸어내리며 잠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내 배 위에 누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 내 배위에 어떤 사람의 등짝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내 배 위에 눌러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해서 그 사람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나를 돌아봤다
형이 웃고 있었다
"으악!!"
내 생에 가장 끔찍하고 더러운 악몽이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는 휴대용 변기가 생겼고
나는 그 변기를 닦고 처리하는 일을 도맡았다
고등학생인 내게 형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되어도 형이 내 곁에 있다면?
내가 성인이 돼서 독립을 하더라도
형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나는 형을 죽어야 할 사람으로 취급하고 막대하기 시작했다
형이 알아서 눈치껏 떠나주기를 바랬다
내가 형을 막 대하는 태도에
어머니는 형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하시지만
그것은 어머니께서 스스로를 옭매는 사슬이었다
장애인 아들을 낳은 어머니의 죄책감이라는 끊어지지 않는 사슬
사실 어머니는 불쌍한 여자다
누구보다 형에게 얽매인 삶을 사셨으니
'신발, 망할 놈의 형
너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텐데'
그리고 나는 오늘 계획을 세웠다
그 망할 새끼를 패주기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일하러 나가신 오늘
나는 형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형은 공부를 하는지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병신이 공부해서 뭐하게?"
나는 형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반사람이랑은 말 섞기가 싫냐?"
나는 발로 치는 강도를 높였다
있는 힘껏 형의 얼굴을 발로 찼다
형의 코가 옆으로 꺾이면서 시뻘건 코피가 쏟아졌다
나는 피를 쏟으며 아파하는 형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형을 밟았다
지난 17년 동안 억눌려있던 분노를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터뜨렸다
얼마나 두드려 팼을까?
형의 얼굴은 이미 알아볼수 없을만큼 망가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에는 이미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죽었나?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윗배가 아려오는 불쾌한 고통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불쾌한 기분을 씻어내 줄 시원한 바람이 필요했다
나는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까워지자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인가? 신발, 몰라 어쩌라고'
사이렌 소리 너머로 구급차에 실려 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형이었다
온몸이 터져서 알아볼 수는 없지만 형이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아이고!! 어쩌면 좋아!! 민수가 자살을 했어!! 자살을!!"
다음날 알았다
형이 유서를 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그 때 형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방안의 내 죄의 증거인 피를 전부 닦아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뛰어내린 것이었다
형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형이 꼭 지켜줄게"
윗배가 아려왔다
그 기분 나쁜 고통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어느 정도 충격에서 깨어나서 회복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내게 사진 한 장을 건네셨다
형과 내가 아기 때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형과 내가 함께 붙어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기는 두 다리는 서로 공유한 채
상체만 따로 가지고 있었다
서로 붙어있는 사진을 보고
당황한 나를 보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뒤에 있는 게 진수 너고 네 윗배에 붙어 있는 게 네 형 민수야
서로가 꼭 붙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불쌍한지
사진봐,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지? 엄마는 정말 고민 많이 했어
둘 다 살리려면 하나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
울먹이면서 말을 하시더니
끝내 어머니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셨다
윗배가 아려왔다
내 신체의 일부가 떼어져 나가는듯한 아련한 고통
꼽추인 남녀가 서로를 무척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가졌다.
그 부부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혹시나 부모의 유전을 받아 꼽추가 되지는 않을지,
그러나 부부의 걱정과는 달리 무척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착한 아이도 엄마를
잘 따르며 건강하게 자랐다.
이제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된 엄마는 다시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철이 들어감에 따라 엄마를 외면할까봐,
그런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한번도 학교에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도시락을 놓고 학교를 가게되었다.
엄마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락을 학교로 갖다주는게 나은지,
'도시락을 갖다주면 아이가 무척 창피해할텐데...'
그렇다고 갖다주지 않으면 점심을 굶어야했다.
이런저런 고민끝에 학교에 살짝 갖다주기로 했다.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볼까봐 몰래 수업시간 중에 학교로 찾아가게 됬다.
난생 처음보는 아이의 학교,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 엄마였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웬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어느 반의 체육시간이었나 보다.
그런데 저쪽 나무 밑에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반 체육시간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순간 당황했고, 학교를 급히 빠져나가려했다.
아이가 볼까봐, 친구들이 볼까봐,
서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힘든 몸을 이끈 채 조심조심 뛰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이가 엄마를 발견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놀라 더욱 빠른 발걸음으로 교문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저쪽 나무밑에서 아이가 교문 쪽을 바라보며
손으로 입을 모으로 소리쳤다.
"엄마!!!"
꼽추인 엄마의 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모 라디오 프로에서 채택된 사연이라고 합니다
어느 한 락카페에서 술취한 남자가
"모든 여자분들 잘들으세요 남자친구 있으신 여자분들! 지금 옆에 계신 남자친구분들께 잘하세요. 옆에있는 그 남자친구분들은 세상에서 자기 여자친구가 제일 이뻐보일거예요. 그렇죠?"
사람들은 미친사람 쳐다보듯 쳐다보는데 한 남자가 대답했다
"네"
"여자분들중 남자친구없으신 분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분 꼭 잡으셔야해요. 기다리는거 얼마나 힘든건지 아세요?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고통이니까 또 자신이 사랑하는사람 자신의 진심을 말로 다표현하세요. 그럼 남자분들도 여러분의 마음을 알아줄거예요. 그럼 모두들 행복한 사랑하세요."
그때 어떤 한 여자가 물었다
"저 근데 누구세요?"
"저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23년간 한 여자만 기다리다가
방금 그 여자 결혼식장에 갔다 온 사람입니다."
거의 매일같이 파티와 연회를 여는 호화로운집이 한곳 있었어.
그집엔 이쁘장한 딸도 한명 있었지.
그날도 다른날과 다름없이 저녁연회 준비에 분주했는데
전화벨이 울렸어.
별다른 생각없이 수화기를 집어든 그집의 딸은
수화기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
" 나 제대했어."
너무 반가운 말이었지.
그집의 딸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답 했어.
" 정말!잘됐다 !그럼 당장와. 오늘 저녁연회에 같이 참석하는거야."
" 그런데....."
'그런데' 라는 그의 말에 여자는 당황 했어.
바로 ' 알았어.' 라고 말하고 달려올줄 알았거든
" 어? "
" 내 동료도 데려가도 되겠어? "
" 동료? 몇명이든 데려와."
" 그게 한명인데.."
" 한명?그럼 오시라고 해."
" 얼굴이 온통 화상투성이야...다리도 한쪽이 절단됬고..."
" 그럼 와서 푹 쉬다 가라고 해."
여자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수가 없었지.
여자의 집에는 방이 많았거든.
그 사람이 온다면 몇일간 머무를수 있을테니까
" 후- 그게 아니고 난 그 친구를 평생 우리집에서 살게하자는 말이야."
여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 했지.
아무리 남편의 친구라고 해도 그런사람을 데려다 같이 살게되면
친구들이 숙덕거릴게 분명하고
동내사람들과의 저녁연회도 열지 못하게 될테니까
" 안되.그 친구의 딱한 사정은 알겠지만
그래도 그런사람을 데려오면 동내사람들이 숙덕댈꺼야.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창피해 하실꺼구."
".......창피해? "
" 응.솔직히 보기 흉하잖아.그런얼굴.. 같이 밥먹을수나 있겠어? "
" 그렇구나..."
" 그러니까 그냥 혼자와.저녁연회가 곧 시작할꺼같으니까."
"......."
" 여보세요? "
"......."
" 여보세요? "
여자가 말을 끝내기 전에 수화기를 놓아버렸는지
그사람은 더이상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 친구를 못데려오게한게 그렇게 속상 한건가..
아무튼 그사람은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러곤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저녁연회를 즐기러 연회장으로 향 했고
두 세시간가량 진행된 연회에 피곤해진 여자는
먼저 가겠다고 하고는 집으로 향 했어.
- 덜크덕
" 휴- 그나저나 이사람은 왜이렇게 늦지.."
그러자 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여자는 ' 당연히 그사람이겠지..' 라고 생각 하고는 수화기를 들었어.
" 여보세요? "
" 여기 경찰서인데요."
" 네? "
불길한 예감이든 그녀는 황급히 대답을 했어.
" 여기에 시신이 한구 있는데요 ."
"..........."
" 얼굴에 화상이 심하게 있고 다리 한쪽이
절단되어있는데..자살을 한듯 싶네요 ."
".........."
" 그런데 조사해본 결과 그집에 사위인것 같아서요 ."
"........."
'.......창피해? '
' 응. 솔직히 보기 흉하잖아 그런얼굴..같이 밥먹을수나 있겠어? '
우리누나는 심장병이다
달리는것은 물론,
걷는것도 굉장히 힘들어한다.
2001년,
12월,
우리누나는 3개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3개월 밖에 이세상에서 살수 없다는걸
가족들이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누나는 어렴풋이 눈치챈듯 하였고,
2001년 1월달 밤,
아빠, 나 친구를 가져보고 싶어요,"
그리하여 컴퓨터를 샀다
달리기는 커녕
밖으로 나갈수조차 없던 몸이기 때문에,,
누나는 인터넷이 그 유일한 즐거움이였다.
그렇게 누나는 인터넷에서
맨살클럽에 가입을 했지만,
학교에 다닌건 옛날이였기 때문에,
친구들의 ID를 알턱이 만무했고
여전히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누나는 다시 컴퓨터를 멀리했고
그래서 새 컴퓨터의 덕을본건
나였다.
그당시 PC 방에서 디아블로를 즐기고,
집에서는 디아블로 모까페에서 놀았다.
누나는 디아블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내가 까페에 들어갔을때에는
항상 내 옆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누나는 결국 디아블로 씨디를 샀고,
이제 하루종일 디아블로를 즐기게 되었다.
누나는 까페에 가입을했다.
누나의 닉넴은,
뛰어....... 였다.
'작명센스하고는'
난 이렇게 놀리고,
그날밤 이불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누나는 까페에 채팅방에서
처음 '라면' 이라는 닉넴을 가진 친구를
사귀었고 그 친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같이 게임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어느날, 누나가 나를 불렀다
'야 너 스타할줄 알지? '
알고 보니
그 까페에서 사귄 사람들이 전부 디아를 안하고
스타를 하러갔는데,
그 잠시라도 떨어져있는 시간이
누나는 몇년만에 처음 사귄 '친구'라는
존재와의 소외라는.
불안함을 안겨줬었나보다.
결국 나는 누나대신 스타를 했고
보통 애들보다 약간 잘하던 내 스타실력 때문에
우리누나는 남자 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누나는 그후 스타를 연습했고 결국.....
스타 1000승 300패라는
여자로썬 보기 드문,
스타실력을 갖게 되었다
누나는 의사의 예상을 뛰어넘어.
2년 가까이 살았다.
친구를 갖게된 행복이 병의 진행을
방지시켜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처음으로 친구를 가져서
행복을 느끼는 누나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이였을까..
디아블로
여자가 하기엔 흔치 않은 게임
실제로 약 15만여명이 회원으로 있던 그 까페에서
찾을 수 있었던 여자는 약 3명정도였다.
한명은 아줌마 두명은 대학생.
그리고 우리누나..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나이 어린 우리누나를 좋아 했다.
그리고..
상처가 되는 질문들도 너무 많이했다.
"학교는 어디다녀? "
누나는 이 질문을 받고.
한참동안 멍하니 있었다.
어느날.
누나가 나에게 물었다.
' 야, 너는 너보다 나이 많은 여자랑 노는게 껄끄럽냐? '
' 글쎄. 아무래도 동갑이 좋겠지..'
왜그런가 했더니,
거기서 처음 사귄 친구가
누나보다 한살 어렸다.
그리고 누나는
혹시 그 친구가 누나를 껄끄러워 할까봐
나이를 속였다.
그리고 친구가 되었다..
' 나.. 얘랑 친구하기로 했어.. ^ ^ '
' 얘는 누나보다 한살 어린데..? '
' 그렇긴 한데... '
' 누나........ '
' 응? '
'누나도 영계가 좋구나 -_-; '
그날이후 누나는 밥도 많이 먹고.
비록 별로 안되는 거리이긴 하지만.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혼자서 걸을려고 노력했다.
그냥 누나는 이 행복함을 즐겼던게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행복함을 느꼈던건 나였다
여자라고 들어오는 무지막지한 아이템들
누나는 자기는 게임에는 많은 관심이 없다면서
아템을 받고. 게임을 할때에는,
나에게 게임을 하라고 하고
내 옆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하지만 누나는.
누나가 옆에서 보지 않을때에는
누나 ID 로 게임을 못하게했다.
난 항상 게임을 하고 싶은데.
누나는 누나가 없을때에는 게임을 하지
못하게했다.
심지어 내가 pc 방에가서 게임을 하다 온다고
비밀번호좀 알려달라고 해도
절대 안알려 줬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 야.. 누나가 어떤키를 눌렀는지 알수있는 방법 없냐.? '
... 지금 생각하면 많이 후회된다..
그래서, 그당시 많이 유행했던
디아블로 해킹프로그램을 우리집에 설치하고
누나가 게임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누나가
게임을 했고....
나는 비번을 알아냈지만
게임을 할수 없었다.
누나의 비번은
TKFRHTLVEK 였다
/ 살고싶다→TKFRHTLVEK.
살고싶다를 영어로 써보세요.
서울에 있는 한 하숙집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한 대학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경찰은 타살인지 자살인지 밝히기 위해
방안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학생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경찰관은 죽음의 단서를 찾기 위해
그 일기장을 읽어보았습니다
그 일기장엔
바로 옆방의 어떤 여자를
짝사랑하는 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써 내려간 일기장에는
온통 그 여잘 사랑하면서 혼자 괴로워하며
아파하는 글로 메어져 있었습니다
자살하기 바로 전 날의 일기를 보았습니다
x월 x일 월요일 맑음
오늘도 그녀가 날 보며 웃음을 보였다
난 한마디도 말 못하고 그녈 피했다
너무도 사랑스런 그녀의 웃음을 피하기만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
그녈 생각하며 깡소주 비울 때 쯤
그녀의 방에서 들리는 침대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녀의 신음소리..
아닐거야 이건 환청일거야
날 보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녀가 그럴 리 없다
하지만 분명히 들리는 그녀의 신음소리..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세상이 싫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할 것 같은 한 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녀가 애써 그 소릴 외면하려해도
그녀의 추잡한 신음소리는
더욱 날 괴롭게 만든다.. 더럽다..
삶이 싫다.. 그녀가 더 이상 싫다
일기는 여기까지였다
경찰관은 그 여자가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옆방의 여잘 보기 위해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조용히 문을 두들겨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그 뒤론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몰래 그녀의 방을 수색하기위해
조용히 그녀의 방을 들어선 순간
침대 위에 싸늘히 식어있는 그녀의 시체를 보았다
한 손에 독약을 손에 쥔 채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던 것이였다
그리고 바로 책상 위에는 종이가 한장 남겨져 있었다
그 종이엔 대학생이 자살하기 바로 전 날 쓰여진 것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그는
오늘도 내 웃음을 외면하고 말았다
나 같은 여자는 사랑을 할 자격조차 없는걸까
아무리 내가 좋아한들 내겐 아무런 눈길조차
보여주지 않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해도 되는걸까
언제나 내게 싸늘한 뒷 모습만 보여주는거구나
한 남자에게조차 이렇게 외면당하는 내가 싫다
이 종이를 읽은 경찰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그 대학생이 들은 그녀의 신음소리는
그가 생각하는 다른 남자와는 추잡한 행위가 아닌
그 대학생을 너무나 사모한 나머지
그녀가 독약을 먹고 고통에 시달리며
이 세상을 떠나가는 마지막 몸부림이였던 것이다
2001년 12월 24일
같은 사람 일지라도 생각하는 건
하늘에서 땅 차이이다
서로가 마음을 열어 말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극만을 남겨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다가가 진실을 말했더라면
아마 저 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장난기가 아주 많았어
그래서 늘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고
누구나 그와 어울려 다니길 좋아했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은 친구들과
같은과 여학생들에게 매력도 만점이었지
그런데 딱 한사람
그것은 아주 못마땅에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남자의 연인이었어
처음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의 활달한 성격에 반했지만
그럴수록 유머 넘치는 그의 모습과
늘 그의 주변에서 맴도는 여자들때문에 불안 했던거야
그녀의 생일었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생일을 축복해 주기 위해서 모였고
생일파티는 점점 더 분위기가 고조 되었지
그러다 파티의 정점으로 남자가 그녀에게
생일선물을 주는 순서가 되었는데 모두들 기대가 많았어
디자이너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는 남자였기에
어떤 선물일까 궁금했지
근데 선물은
온통 난도질 된 원피스 였어
남자의 농담과 장난기 어린 표정에 다들 웃고 말았지만
그날 이후로 남자는 그녀와 연락을 취할 수 없었지.
너무나 화가 났던 그녀는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한거야
백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사과의 편지를 썼고
백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집앞에 장미곷을 놓고 기다리다 돌아가곤했어
그렇게
많은 날을 기다림속에 괴로워하고서야
겨우 용서를 받을 수 있었지
‘한번만 더 장난을 치면 우리 사이는 끝이예요...’
그날 이후론..
아무도..
그의 장난치는 모습을 볼수 없었고
아무도 그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
그러다 시간이 흘러 둘은 결혼 약속을했고
드디어 결혼식 하루 전이였어
남자는 심혈을 기울여
그녀의 웨딩드레스를 직접 만들었고
그녀는 무척 큰 기대를 갖고 있었지
결혼식 하루전 그녀의 아파트에서
남자는 모든 정열을 다 쏟아서 만든 드레스를 그녀에게 보여줬어
기대에 가득차 상자를 열어보던 그녀는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리며 말했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어요...”
“...안녕...”
남자에게 단 한마디 말할 기회도 주지 않은채
그녀는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지
그 옷은...
하얀색 원피스로 된 미니스커트였어
그녀는 긴 드레스를 만들어달라고 말했었거든
그 집에서 며칠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러헥 둘의 사랑은 끝을 맺고 말았어
세월이 흘러서 그녀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남들이 다 그렇듯 딸을 낳고
아주 평범한 아줌마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지
헤어진지 10년째 되는 그날은
초등학교 1학년인 그녀의 따링 학교의 연극에서
공주역을 맡아 돌아왔고
딱히 입힐 옷이 없어서 고민을 하던중이었어
옷장을 구석구석 뒤지던 그녀는
옜날 그녀가 받았던 그 드레스를 꺼내게 되었고
체구가 비교적 튼 딸이지만 아직 어른체형이 아니라
넉넉하게 내려오겠다 싶어서
아무생각없이 입혔지...
어린 딸애는 하얀색 드레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옷을 입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지...
그모습을 본...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맺히기 시작했어...
아이가 한바퀴 돌때마다..
미니스커트가 한단씩 밑으로 내려오는거야
끝내 펼쳐지고만 화려한 웨딩드레스가
남자는 그녀가 그 드레스를 입고
기뻐하며 빙글빙글 돌 거란 생각을 하며
그 드레스를 단들었던 거야...
이 얘기는 스웨덴에서 실제루 있었던 일이래.
평범한 하루가 시작 되는 어느날 아침 이었어.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지.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싣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어.
어느덧 버스는 횡단보도에 이르렀는데,
버스기사는 그제서야 브레이크가 고장 이라는것을 알게 된거야..
이미 때는 늦은거지..
운전기사는 핸들을 잡고 절망적인 기분으로 고민을 했어.
저 작은 아이를 피해 핸들을 꺾는다면 이 버스안의 사람들은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 그러나..
저 아이의 희생으로 이 사람들을 살릴수만 있다면..
버스 운전기사는 곧바로 아이를 향해 차를 몰았고
그 버스에 부딪힌 아이는 그자리에서 죽어버렸어..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운전기사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며 몰아세웠지..
승객들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작자라고 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어..
버스 운전기사는 조용히 버스에서 내려
죽은 아이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 .... 미안하다.. 아들아... "
차에 치인 아이는... 버스운전기사의 아들이였어.......
" 백설공주 이야기 읽어 본적 있어? "
" 응 "
" 그중에서 누가 백설공주를 제일 많이 사랑한 것 같아? 왕자일까?나는 일곱난쟁이 중에 막내가 공주를 더 사랑한 것 같은데...너는 누구라고 생각해? "
" 사냥꾼 "
" 응? 무슨 사냥꾼? "
" 백설공주를 숲에서 도망치게 한 사냥꾼 말야... 백설공주의 심장 대신 돼지심장을 가지고 여왕에게 갔었던... "
" 그사람이 왜? "
" 그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백설공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남자거든. "
우리 가족은 나와 아빠뿐입니다
엄마는 아빠가 택시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돼시자
몇달후 집을 나가셨어요
바로 그 교통사고 때 우리 아빠는 다리를 잃고 말았어요
그래서 우리 아빠는 오른쪽다리가 무릎까지 밖에 없어요
다리병신이 돼어버린거죠
수술을 2번이나 해보았지만
아빠의 다리는 이미 고칠 수 없는 다리가 돼었나봐요
난 한쪽다리가 반밖에 없는 아빠가 창피했어요
잘 걷지도 못하고 매일 목발을 집고 쩔뚝이고
가만히 오래 서있지도 못하고
그래서 아빠랑 외출하기도 싫어했어요
집에 있을때는 방문을 잠그고 방안에서 하루종일 컴퓨터만 하고
나혼자 라면이나 끓여먹고
아빠가 심부름시키면 못들은척 방으로 들어가버렸어요
한쪽다리가 반밖에 없는 다리병신인 아빠보다는
차라리 아빠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이 많았어요
괜히 나한테 심부름만 시키고
아빠가 나를 도와주는게 아니라
내가 아빠를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였어요
아빠가밥좀 차려달라고 하면
맨날 나보고 시킨다고 혼자서 중얼중얼 욕도 하고 매일 투덜투덜
물컵도 식타위에 탁탁 놓아서 물을 쏟기도 하고
리모콘 같은거 집어달라고 하시면
왜 나만시키냐고 소리지르면서 리모콘 집어던지고
그리고는 방에 들어가서 심술부리구요
아빠가 평소에 저한테 미안하셨는지
일부러2단지 상가까지 가셔서
머리핀하고 머리고무줄 사오셨는데
저는 촌스럽다고 안한다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는데
다음날 학교같다가 와보니까
아빠가 쓰레기통에서 주워서 제 책상위에 올려놨더라구요
저는 짜증을 내면서 그 머리핀을 쓰지도 않고
책상 밑 잡동사니에 던져버렸어요
그리고 몇달전에는요
아빠가 양말이 다 구멍이 났다고 저보고
좀 기워달라고 하셨어요 양말을 기울려면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데
허리를 구부리면 다리를 필수 없기 때문에
허리를 못구부리시거든요
아빠는 우리착한딸 가은이가 양말좀 기워달라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부탁하셨는데
저는 제가 아빠 하녀냐고 그러면서 그양말 받아서
휴지통에 집어던지고
그리고는 혼자 방에 들어가 버리고
아빠는 그래도 빙그레 웃으시면서
우리 가은이 그동안 힘들었나보구나 이러시면서
휴지통에서양말주워다가 구멍난거 그대로 신으시고
그다음날 제화 를 푸시려고 제가 좋아하는 통닭사가지고 왔는데
전 일부러 없는척 하고 일부러 문걸어 잠그고
방안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었어요
아빠는 어디갔나보구나 나중에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시고
저기다리다가 잠드시고
바보같이 옆집아줌마한테 얘기하면 될것을
경비아저씨한테 문열어달라고 하면 될것을
저는 다음날 모르는척 학교에 갔어요
그리고 학교에 갔다와보니
아빠는 어디갔는지 없으시고
식탁위에 싸늘하게 식은 통닭이 올려져 있더라구요
저는 통닭이 식었다고 화를내면서 통닭을먹었어요
근데 계속 먹다보니까 쌀쌀한 날씨에 얇은 티셔츠 하나입으시고서
배고프실텐데 나준다고 통닭도 안드시고
다리도 구부리지 못해서 앉아있으시지도 못하시고
계속 서있다가 누웠다가
나를 기다리시던 아빠를 생각하니깐 그냥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밥하나 혼자 못차려 먹어서 매일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시키시는
그런 무능력한 아빠인데 한쪽 다리도 없어서 잘걷지도 못하는 그런
장애인 아빠인데 그런무능하고 장애인아빠인데도
이상하게 막 눈물이 나구 미안한 생각이 들구 통닭도 먹기 싫구
저는 통닭을 쿠킹호일에 그대로 다시 싸놓고는
아빠드시라구 포크하고 물컵도 차려놓았어요
그리고는 제방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아빠가 안오시는거에요
저는 게속 잠도 안자고 기다리다가 갑자기 전화 한통이 왔어요
병원에서 전화가 왔더라구요
그사람은 간호사 같았는데
다짜고짜 이명식씨를 아냐고 물어보는거에요
전 우리아빠니까 당연히 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요 아빠가요
선물꾸러미 같은 비슷한걸 사가지구서
횡단보도를 목발집고 쩔뚝쩔뚝 걸으시다가
차에
부딪혀서 그만....
전 어느병원인지 들은다음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전 무슨말 이 안나왔어요
돈도 못벌고 뭣하나 할줄모르는 그런다리병신인 우리아빠
정말 너무너무 싫어서 없었으면 하는 아빠인데
그런아빠가 정말 없어진거에여
저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을 한참 부벼대다가
식탁위에 아빠먹으라고 차려놓은 포크하고
물컵하고 싸늘하게 식어있는 통닭을 보았어요
아빠먹으라고 맛있게 차려놨는데
아빠가 와서 맛있게 먹으라고 저렇게 차려놨는데
저렇게 준비해놨는데
저는 눈물이 울컥나왔어요
그눈물은 몇시간이고 멈추지 않았어요
전화기 옆에 기대어 놓은 아빠목발
그리고 책상옆에 놓여있는 아빠의 돋보기 안경
평소에는 그렇게도 싫고 던져버리고 싶은게
모두다
너무너무 그립게 느껴졌어요
저는 아빠목발을 붙잡고 또 한참을 울어댔어요
전다음날 퉁퉁부운 눈을뜨고
병원으로 찾아갔어요
한번도 하지않고 내팽겨쳐둔
아빠가 선물한 그머리끈과 머리핀을 묶고서
그리고 병원에가자
아빠는 영안실에 있어서 볼수가 없대요
마지막인줄 알았으면
더자세히 더가까이 가서 보아두는 거였는데
저는 굳게 닫힌 영안실 앞 의자에 앉아서
또다시 한참을 울었어요
아빠가 내가 이머리핀 꽂은거 보면
우리 가은이 이쁘다고
우리딸 이쁘다고
칭찬해 주셨을텐데 이렇게 예쁜딸모습
보지도 못하시고 그냥가시다니
저는 집에와서 엉엉울면서
서랍에서 구멍난 아빠양말을꺼내서
하나도 안빼놓고 다 기워놨어요
그리고 평소에 아빠가 해달라고 했던거
아빠 돋보기 안경 알도 새로 갈아끼워드리고
웅동화 끈도 곱게 예쁘게 묶어드리고요
목발도 물수건로 깨끗히 닦고
교통사고 나시고
엄마한테 버림받으시고
딸한테 구박 받으시고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가신 우리아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되어서
바보같이 아빠한테 효도 한번 못해드리고
매일 심술만 부리고 투덜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아빠한테 좋은모습 하나 안보이고
그냥 그렇게 아빠를 보내버린
이딸을 용서 하지 마세요
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이게뭐야!!"
"바쁘잖아.엄마가 미안해"
"이런 싸구려를 어떻게 입고가!!아.난몰라아!!"
"다음에 비싸고 더 예쁜거 사줄께.
오늘만 입고가.응..?우리딸 착하지.??"
"쪽팔리게 어떻게입어!!엄마나 입어!!"
"은강아!!"
쾅........
오늘도 밥한숟가락 떠먹여 주시려는 엄마의 힘든 표정을 모른척하고
꽃무늬 보라색 반팔티를 구석에 던져버린뒤 집을 나섰습니다.
촌스럽게 누가입어.
꽃무늬가 뭐야..꽃무늬가.
더군다나 날 화나고 창피하게 만들었던건 오천원이라는 가격.
엄만 딸을 몰라.
요즘에 누가 시장바닥에서 사온걸 입는다고..
"짜증나.내일이 소풍인데 어쩌겠다는 거야..."
온갖 멋은 멋대로 부리고 유행은 유행대로 따라다니는 실속 없고
욕심 많았던 나였기에 누구에게 뒷쳐지는것은 죽어도
싫은 일이였습니다.
유행하는건 무조건 내 차지.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것도 내가 독차지.
예뻐보이는것도 역시 나.
................
그렇게 그땐 엄마의 손때 묻은 만원짜리 두장이 그저 돈일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저도 참 후회스럽습니다.
#다음 날 .
학교까지 찾아와 내 손에 꾸깃 쥐어준 만원짜리 두장을 들고 친구들과
시내에 나왔습니다.
예쁜옷들이 내 눈길을 멈추게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때문에
난 얇은 티셔츠 한장에 딸랑 베이지색 반바지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장을 지우던 손길도 멈추고 날 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
"우리딸.그래 이제 니 맘에 드니..?"
"겨우 이만원에 뭐 예쁜걸 산다고 이 날리야.나 내일 김밥말고
볶음밥 해줘.친구들끼리 장기자랑 하기루 했으니까
사탕 한봉지두 사다주구"
내 뾰루퉁한 표정과 톡톡 쏘는듯한 말투에도 엄마는 그저 싱글벙글
하며 방으로 들어가 작은 쇼핑백을 내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이게 뭔데..?"
"이뻐보이길래 하나 샀어.그집 아가씨가 요즘 애들한테 유행이라길래.."
유행......??
유행이라는 말에 쇼핑백에서 옷을 끄집어 내 이리저리 둘러보는 나.
하지만......금방 인상을 찌푸려 버리는 나였습니다.
"검은색 칙칙하게 누가입는데!!아.짜증나!!이거 살돈 있으면
그냥 나한테 줘!!내가 사다입게!!그리고 이건 또 얼마나 줬어?!
만원..??..아니.또 오천원 하나..?!"
"이은강!!"
"안입어!!당장 가서 바꿔와!!"
"..너..!!"
......쾅..!!
이번에도 심술 잔뜩난 표정을 하고는 밖으로 옷을 내다 던져버리곤
엄마까지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땐 왜 그옷의 가격표가 3만원이 훌쩍 넘는다는걸
미쳐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그날저녁은 내 고집에 못이겨 밥조차 먹지 않았습니다.
.................
"정은이네 엄마는 친구처럼 유행도 잘 따라간다더니..
우리 엄만 뭐야.칙칙한것만 좋아하고..옷도 촌스러운것만 좋아 해"
다음날새벽.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달그닥 거리는 소리에 잠이깬 나는 부엌으로
건너갔습니다.
아니......이게 뭐야..
"김밥....나 김밥 안먹는다고 했잖아!!"
"어제 너무 갑작스럽게 예기하는 바람에..미리 사놓은걸 어떡해.
다음엔 엄마가...."
"됐어!!뭐야.그게!!맛도 없으면서!!친구들한테 자랑 다해놨는데!!
아.진짜 엄마 왜그래!!"
"........."
내 기세에 못이겨 금방 주눅이 들어버린 우리 엄마.
생선가게를 해 매일 늦어 내 사생활에 신경을 써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던
엄마였는데......그리고 결국 난 특별히 오뎅까지 들어간
김밥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나왔버렸습니다.
"은강아!!도시락 놓고 갔어!!"
"안먹어!!"
"은강아!!"
엄마가 목이 터져라 내 이름을 불러대도 난 그저 두눈 찔끔 감고
모른척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잠옷차림으로 나와 내 손에 도시락통을 쥐어주는 엄마.
"쪽팔리게 그게 뭐야!!누가 보면 어쩌려구!!"
"그냥 가져가서 먹어.응..?!혼자만 안가져 가면 누가 너 엄마
없는줄 알아.기지배야..먼길 가는데 배도 고플꺼 아니야"
"됐다구!!아 진짜.비켜!!"
바닥으로 쏟아져 버린 김밥들..
참기름에 깨소금 까지 뿌려 정성스럽게 만든 도시락이였는데..
미안한 마음도 잠시..
난 곧 엄마의 잠옷차림에 얼굴이 달아올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 후로도 학교.버스 안.소풍지에 도착해서까지 쉴세없이 울려대는
엄마의 전화에 난 핸드폰 밧데리 까지 빼놓으며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
드디어 점심 시간.
각자 모양도 예쁘고 오목조목하게 만든 김밥과 초밥을 꺼내놓으며
자랑을 하는 사이 난 텅빈 가방을 들여다 보며 물만 마셔댔습니다.
"은강이 넌 도시락 안싸왔어..?"
"아.엄마가..좀 바빠서.."
"그래..?..그럼 우리꺼 같이 먹자.나 엄마가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많이 싸줬는데..^ㅇ^.."
"..어...그래.."
가져올껄 그랬나......
후회되는 마음에 아까 아침에 바닥으로 쏟아져버린 김밥들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지만 볶음밥을 싸주지 않은건 엄마 잘못인걸..
...............................................
........................
# 집에 가는 길.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정류장 앞에 서서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까부터 쉴세없이 울리는 전화에 난 결국 짜증을 내며
수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습니다.
"아.뭐!!"
-혹시 김숙자씨 자녀 되시는분 맞습니까..?
"..네....??"
김숙자가 우리 엄만데....
왠 낮선 남자의 목소리에 난 조금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누구..."
-여기 현대병원인데요.
병원이라는 말에 또한번 벌컥 내려앉은 심장.
"병원이요?!!!우리 엄마 어디 아파요?!!"
-침착하시고..빨리 오셔서 마지막 모습을 보시는게..
마지막 모습..........
"현대병원이요..!?!현대 병원 맞죠..!?!!"
...................................
엄마...........
...............................................
.......................
그렇게 얼굴은 땀 범벅이 되어 30분만에 찾은 병원 응급실.
"엄마!!엄마!!!!"
"김숙자씨 자녀분...."
그때 내 옆에서 자료정리를 하던 여자가 날 흰천으로 가려진 곳으로
안내했고......
".....어....엄마......."
"...이은강씨 맞습니까.....?"
"엄마......어..엄마...우리 엄마........."
"임종 하셨습니다"
"............하.............."
의사선생님의 천청병력과도 같은 말에 난 두 다리를 넘어뜨렸고
곧이어 또박또박 말을 잊는 의사선생님.
"아침 일찍부터 어딜 좀 가셨던 모양입니다.
사고 시각이 9시쯤 되었으니까.아까부터 전화를 받지 않으시길래
저희도 나름대로 응급처치를 다 해봤지만....."
"....엄마..............."
그럼 아침부터 울려대던 그 전화가...
"이게...김숙자씨 유품입니다"
그리고 내손에 쥐어주는 쇼핑백......
다 찢어져서는 손잡이만 간신히 붙어있는...어제 그 옷가방...
그리고 그 안에는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뀐
티셔츠와....
".....볶음밥......하.....볶음밥..........."
혹시 흘릴까 고무줄에 랩까지 싸서 꽁꽁 말은...볶음밥..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정말 이 하얀 천을 걷어내면 엄마가 있을까 봐....
이 모든게 다 연극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엄마가 있을까봐 난 차마 그 흰천은 만질수가 없었다
내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은.....그 하얀 천을 천천히 걷어내었고..
맙소사.......오 맙소사.. 피를 흘리며 조용히 눈감은 엄마의 얼굴..
촌스럽다고 매일 짜증부렸던 그 곱슬대던 파마머리가 자연스럽게
펴져있고...평소엔 갈색밖에 바르지 않았던 립스틱 색깔..
눈감은 엄마의 빨간 입술........
"....나때문에......나같은거 한테.....겨우 도시락 하나 챙겨주러..
혹시 내가 또 창피해 할까봐.....굶어서 또 혼자 화나있을까 봐..
엄마 원망 할까봐....애들이 나한테 뭐라고 수군댈까 봐..."
내가 사랑했던........하나뿐인 엄마는......편히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평생을 생선 비린내 속에서
썩어 살면서 딸에게는 고등어 꼬리 하나 만지지 못하게 했던 그녀........
혹시 내 마음이 다칠까..혹시 친구들이 욕할까 생활조사서 마다
주부 라고 적었던 그녀.......
그녀
단 하나뿐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제
어머니
당신은 어머니
오늘 내리는 이 비가 당신이 내게 쏟으신 사랑같아서
당신보고싶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날 감사히 여기신 당신달빛우는 밤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싶습니다
엄마
어머니
사랑했습니다
작년 겨울까지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 때문에
스스로 '헤어졌다'는 걸 직감하고 울기도 참 많이 울어서
전화번호도 지워버렸습니다.
하지만 문자 하나만은 너무 아쉬워서 지우지를 못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군대에 가는 중학교 동창 녀석 송별회랍시고 모인 술자리에서
제가 술 마시던걸 탐탁치 않아했던 그 사람이 생각나 괜히 우울해졌습니다.
"그렇게 못 잊겠으면 술 핑계 대고 전화 한 번 해봐."
라는 친구의 말에 저장되어있던 문자 메시지 함을 열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잠깐의 신호 후 전화를 받은 그 사람.
여전한 목소리에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져 전화를 끊었는데,
한참 후에 그 사람의 번호로 <보고 싶다> 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날 잊지 않았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술이 확 깼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거는 사이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없는 번호라니.
의아한 마음에 몇 번씩 다시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고.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전화번호를 바꿨다고 들은 것 같아 오싹해져야 했겠지만,
오랜만에 들은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게 서러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며칠 뒤.
우연히 그 사람과 자주 어울렸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oo가 수요일 새벽에 교통사고로 죽은 소식 들었어요?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그 녀석이 **씨 많이 보고 싶어 해서……."
수요일 새벽. 그 사람에게서 <보고 싶다>라는 문자가 온 날이었습니다.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2").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수건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0").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어느날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급히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피가 모자라 생명이 위태해지게 되었고
여기 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그 혈액형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식구들중에서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검사를 했는데
그 아이의 동생이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워낙 시간이 촉박한 지라 어린 아이지만
급한대로 혈액을 얻고자 했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얘야, 지금 형이 몹시 아프단다. 어쩌면 하늘나라로 갈지도 모른단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너가 너의 피를 형에게 좀 나눠 주어야겠구나.
좀 아프겠지만 형이 다시 살 수 있단다. 어떻게 하겠니?"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혈액을 뽑는 주사 바늘을 꼽고
피가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님을 쳐다봤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달랬고
이윽고 주사바늘을 빼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또다시 물어봤습니다.
"얘야, 다 끝났다. 근데 왜 눈을 감고 있니?"
아이는 말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그 아이는 헌혈을 해본적이 없기에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형에게 주고
자기는 곧 죽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 입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얘야, 그럼 넌 니가 죽는 줄로 알면서 헌혈을 왜 한다고 했니?"
아이가 말했습니다.
"전 형이 좋거든요"
너 입맛 없다고 아침밥 먹기 싫다 투정부릴때,엄마는 너 아침 따뜻한 밥 먹이려 새벽 5시에 일어나 쌀을 씻었고.
너 다리 아프다고 택시탈 때,
엄마는 버스비 900원이 아까워
큰 짐 머리에 이고 한 시간을 걸었단다.
너 술깬다고 노래방에서 괴성지를 때,
엄마는 늦게오는 널기다리다 어두운 골목길을 몇번씩두리번거렸고.
너 외출한다고 거울 볼때,
엄마는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늘어난 주름살에 쓴 웃음 지었단다.
너 음식 먹기 싫어 남 줄 때,
엄마는 과자 하나라도 너 주려고 살며시 가방안에 집어 넣었고.
너 청바지 입고 맵시 뽑낼 때,
엄마는 15년 된 정장 한벌을 입고 오랜만의 외출을 했단다.
너 나이트에서 즐거워 춤출 때,
엄마는 관절염에욱씬거리는 무릎과 저려오는손발에 몸을 뒤척였고.
너 유행가 들으며 거리 다닐때,
엄마는 우연히 들려오던 내 젊은날의 음악에 슬쩍 눈가를 적셨단다.
너 레스토랑에서 음식 남길때.
엄마는 가족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모아 쓱쓱 밥 비벼 먹었고,
너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떨 때,
엄마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은 너 그리워 방 앞을 서성였단다.
너 덥다고 에어콘 바람 쐴 때,
엄마는 너 더울까 시원한 화채 만들어주려
더운 땡볕을 지나 장을 봐왔고.
너 정치 경제 이야기 할 때,
엄마는아무것도 모른다며 날무시하는 너에게 조금은 속이상했단다.
너 친구랑 벚꽃 놀이 갈 때,
엄마는 TV에 나오는 벚꽃을 보며 행복해 했고.
너 사랑을 알았을 때,
엄마는 네가 나를 떠난 것만 같아 약간은서운했단다.
너 사랑을 품에 안을 때,
엄마는 네가 잘 자라주어서 너무나 행복했고.
너 사랑을 맹세할 때,
엄마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이 너에게 내려주기를 기원했단다.
그리고 너 널 닮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고맙다고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 모든 서운했던
기억들이 다 사라지는 것만 같았단다.
그래서 엄마는 행복하단다.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1").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이 이야기는 어느 의사가 겪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 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Electrocardiogram,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는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 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다른 한자를 보고 잠시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어 지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둥 마는둥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웬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웬지 그의 생각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거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웬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역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듯 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한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내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게는 그녀가 그의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중이었다.
놀라움과 마음 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세지라고..
그것은 바로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믈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꼐 어떠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우리에게 가장 없어서는 안될
영혼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서는 후배들에게
나는 요즘도 이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제가 요번주말에 놀러가서 몇일 못와서 한번에 왕창싸그리올려요!!
갔다와서는 무서운만화 모음 왕창 올려요~
부모님한테 사랑한단말 한말씀 해주세요!
너무 가까이 보지마라
어지럽히지 마라
군것질 하지 마라
나쁜친구 사귀지 마라
밤 늦게 다니지 마라
끼니 거르지 마라
울지 마라
그리고
나는 걱정 마라
올해도 당신의 잔소리가
저희를 키웠습니다...
var anchor_links = document.getElementById("brd_content_1").getElementsByTagName("A"); for (i = 0; i < anchor_links.length; i++) { if (i == 0 && anchor_links[i].id === "target1") { } else { anchor_links[i].target = "_blank"; } }아그리고
이글은 올릴때가 없어서 인기있는 엽호글에 올려요~~